2021/01/21

성도재일맞이 - 쌋짜까에 대한 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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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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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고타마 싯달타가 부처님 되신 날, 성도재일.
절에서는 지금 <성도재일맞이 철야정진>을 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 밤샘은 거뜬했는데, 지금의 내게는 고행이 되었다. 
'음... 뭐, 부처님도 고행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가셨다지' 
그러면서 예불과 도법스님 법문까지만 듣고 집으로!
그냥 쉬려고 했는데, 자꾸 미련이 남는다. 
경전을 펼치고 오늘 저녁부터 내일 새벽까지 부처님의 수행을 따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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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세의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아무리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했다고 해도 이와 같은 것이 가장 극심했던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미래세의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아무리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할 것이라고 해도 이와 같은 것이 가장 극심한 것일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은 없을 것이다. 현세의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아무리 공격적이고 격렬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이와 같은 것이 가장 극심한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고행의 실천으로도 인간을 뛰어넘는 법, 고귀한 님들이 갖추어야 할 탁월한 앎과 봄을 성취하지 못했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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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아버지 싸끼야 족의 왕이 농경제 행사를 하는 중에, 나는 장미사과나무의 서늘한 그늘에 앉아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는데,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일까?’ 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 길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새김에 따른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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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와는 관계없는 즐거움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악기베싸나여, 나는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와는 관계가 없는 즐거움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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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베싸나여, 그러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극도로 야윈 몸으로는 그러한 즐거움을 성취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단단한 음식이나 끓인 쌀죽을 먹으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단단한 음식이나 끓인 쌀죽을 먹었습니다. 그 때 악기베싸나여, 나는 ‘다섯 수행승이 나를 기다리며 ʿ우리의 수행자 고따마가 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면 우리에게 알리러 올 것이다.ʾ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단단한 음식이나 끓인 쌀죽을 먹었다면 다섯 수행승은 이와 같이 ʿ수행자 고따마는 사치스럽게 살며, 자신의 정진을 포기하고 윤택한 삶으로 돌아갔다.ʾ라고 생각하며 나를 싫어하여 떠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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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단단한 음식이나 끓인 쌀죽을 먹어 힘을 얻어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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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두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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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열이 사라진 뒤, 희열이 사라진 뒤,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평정하게 지내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있는 행복한 삶이라 부르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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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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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전생의 기억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에 관하여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 네 번 태어나고 다섯 번 태어나고 열 번 태어나고 스무 번 태어나고 서른 번 태어나고 마흔 번 태어나고 쉰 번 태어나고 백 번 태어나고 천 번 태어나고 십만 번 태어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수많은 세계가 생성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생성되는 시간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고 나는 그 곳에서 죽은 뒤에 나는 다른 곳에 태어났는데, 거기서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다. 그 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기억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나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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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베싸나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야에 도달한 첫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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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뭇삶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뭇삶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삶들에 관하여 ‘어떤 뭇삶들은 신체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고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잘못된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뭇삶들은 신체적으로 선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선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선행을 하고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지 않고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올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뭇삶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서 등장하는 뭇삶들에 관하여 분명히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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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베싸나여, 이것이 내가 밤의 중야에 도달한 두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즐거운 느낌이 생겨나더라도 그것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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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앎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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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자,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존재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해탈되었을 때에 나에게 ‘해탈되었다.’는 앎이 생겨났습니다. 나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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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베싸나여, 이것이 내가 밤의 후야에 도달한 세 번째의 앎입니다.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악기베싸나여,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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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역
《맛지마니까야》 〈쌋짜까에 대한 큰 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