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겐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가 있다"
[대담] 최문순 강원도지사-조셉 거슨 박사-웬 티진 소장... 동북아시아 평화체제 모색13.11.08 16:42
최종 업데이트 13.11.08 16:42▲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대담 참석자들. 사진 왼쪽에서부터 웬 티진 소장, 조셉 거슨 박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이정옥 대구가톨릭대 교수. | |
ⓒ 박민화 |
"1953년에 정전이 된 이후, 지금 우리 강원도는 분단 상태에 놓여 있는 한반도 안에서도 유일한 분단도로 남아 있다. 남강원도의 인구는 155만, 북강원도의 인구는 168만이다. 그렇게 둘로 나뉘어 있는 가운데, DMZ의 2/3를 공유한 채 중무장한 군대가 양쪽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다. 그래서 군사적 규제를 강하게 받고 있다. 그 바람에 경제적 발전도 가장 뒤처졌다. 한마디로 살기 어려운 지역으로 남아 있다. 올해로 정전 60주년이다. 강원도가 이제는 평화와 번영의 지역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최문순 강원도지사
지난 6일 강원도 춘천에서 '강원DMZ국제평화생명포럼 2013'이 개최됐다. 이 포럼은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분단국가 안에서도 유일하게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는 지역인 강원도에서 평화 비전을 구상하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이 포럼에서는 국내외에서 평화 운동을 이끄는 여러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모여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이 포럼이 열리는 동안에 '강원DMZ국제평화생명포럼 2013 조직위원회'와 <오마이뉴스>는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미국에서 정치와 국제안보학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셉 거슨 박사, 그리고 중국에서 인민대학교 지속가능발전 선도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웬 티진 소장 등이 참석해 함께 대담을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조셉 거슨 박사는 AFSC(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퀘이커 교도 평화운동 조직) 대표로, '2010 핵확산금지조약(NPT) 국제설계위원회' 등을 공동 설립하고, '중국 파견 미국평화활동대사'로 활동한 바 있다. 웬 티진 소장은 중국 국무부 자문위원회와 환경보호 정부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담 주제는 주로 한반도의 긴장 상태가 분단도인 강원도에 미치는 영향과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강원도가 해야 할 역할 등에 집중됐다. 대담은 6일 저녁 춘천 라데나 리조트 안에 있는 한 카페에서, (사)한국NGO학회 회장인 이정옥 대구가톨릭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이날 대담 자리에서 오고간 대화 전문이다.
남북 관계 경색으로 일상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한국인들
▲ 이정옥 교수. | |
ⓒ 박민화 |
웬 티진(중국 인민대학교 지속가능발전 선도연구소 소장) : "나는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연구를 진행했다. 많은 분쟁 지역을 돌아봤다. 그중에서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이라든지,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지역, 북인도 지역, 멕시코 국경 등 이런 지역들에서는 게릴라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페루도 마찬가지로 분쟁 지역에 속해 있다. 태국 남부도 국경 분쟁에 휩싸여 있다.
그런 연구를 진행한 것은 그 지역에서 그런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아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이런 폭력적인 사태들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에 지역에서 그런 사태들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 지역 정부에 엄청난 도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지역적인 분쟁이 일어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지역에 국한시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것이 있다. 특정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데는 국제적인 배경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지역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조셉 거슨(퀘이커 교도 평화운동 조직 대표) : "내가 다녀온 분쟁 지역들은 주로 중동에 있는 국가들이다. 레바논이나 팔레스타인, 북아일랜드를 꼽을 수 있다. 이런 곳에서 발생한 분쟁들은 웬 티진 교수가 지적했듯이 국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내전과 같은 측면도 있다. 물론, 분쟁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다양한 상황이 존재한다.
내가 한국을 돌아본 바에 따르면, 한국에는 여전히 이산가족이 많이 남아 있다. 이산가족은 심리적이며 정신적인 상처가 여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정전 상태이고 부분적으로 전쟁 상태인,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로 인해서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이곳 강원도 같은 곳은 지역상 남·북이 대치하는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 위기가 강원도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로 인해 강원도 주민들에게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분단 상태에 있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까닭에 많은 남자들이 군 복무를 하고 있다. 심지어 전쟁 직후, 그러니까 전쟁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의무징병제에 따라 군대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것은 사회가 군사화한 결과로 봐야 한다. 정전 이후 군사화 된 사회가 도래하면서, 오늘날 이렇게 최문순 도지사처럼 민주적으로 선출된 도지사를 맞이하는 데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포럼에서 여러 차례 말한 바 있지만, 강원도는 북한과 맞닿아 있는 최접경 지역이기 때문에 당연히 경제적인 면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굉장히 중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직후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북한과 미국 간에 이뤄진 합의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좌초되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는 그 이후 또 한국의 햇볕정책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이런 조치를 취함으로써, 북한과 미국이 국가와 국간 간의 관계가 아니라, 마치 불법적인 집단과 국가 간의 관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식의 조치들이 결국 한국민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미국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도 평화를 통해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최문순(강원도지사) : "두 분 말씀이 굉장히 정확한 부분이 있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맞다. 그것 때문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제약을 겪고 있는 지역이 바로 강원도다. 생활상 일상적인 불편이 뒤따른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도 바로 38선이 지나가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전쟁 당시에 치열한 살육전이 벌어졌던 현장에 앉아 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분쟁은 레바논이나 스페인하고는 좀 다르다. 민족이나 문화, 종교 이런 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념이라는 우리들의 삶과는 큰 관계가 없는 비본질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53년에 정전이 된 이후, 지금 우리 강원도는 분단 상태에 놓여 있는 한반도 안에서도 유일한 분단도로 남아 있다. 남강원도의 인구는 155만, 북강원도의 인구는 168만이다. 그렇게 둘로 나뉘어 있는 가운데, DMZ의 2/3를 공유한 채 중무장한 군대가 양쪽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다. 그래서 군사적 규제를 강하게 받고 있다. 그 바람에 경제적 발전도 가장 뒤처졌다. 한마디로 살기 어려운 지역으로 남아 있다. 올해로 정전 60주년이다. 강원도가 이제는 평화와 번영의 지역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북 간 민간 교류, 중앙정부가 권한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이정옥 : "강원도는 그동안 도 자체적으로 북한과 꾸준히 교류와 협력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최근 5년여 기간 동안에는 남북강원도 양쪽 지역 간의 관계도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우리는 이때 교류와 협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강원도가 남북 간 교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웬 티진 소장. | |
ⓒ 박민화 |
우리는 어떤 사람이 정치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정치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하면, 그 말을 듣고 설득을 당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냥 싸우자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이슈와 관련해서는 생태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실제 중국에 있어서도 남부 중국과 북부 중국을 연결하는 생태 회랑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를 통해서 두 지역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시작한 생태 회랑이 대륙으로 뻗어나가면서 국제적으로 많은 국가들을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 러시아까지 해당이 될 수 있다. 이런 생태 회랑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투자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도 필요하고, 새로운 사회적 자본도 필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적인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런 사회적인 운동이 결국엔 정부의 목표를 충족할 수 있게 된다. 실질적으로 중국에서 사회단체가 조직됐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사회단체가 조직이 되면, 국제적으로 한국과 북한, 중국, 러시아가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적인 워크숍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그런 워크숍을 통해 국제적인 회랑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조셉 거슨 : "지금 여기서 논의가 되고 있는 것들이 강원도 차원에서 혹은 시민단체 차원에서 남과 북이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해서 경제, 사회, 환경을 개발하는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진행해 보자는 얘기가 오고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을 어디서 어떻게 이뤄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문제들은 국가 안보와 연관이 있다. 국가 안보라는 문제 때문에 강원도에서도 많은 곤란과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제안을 드리자면, 중국에 가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유럽이나 다른 중립국 등 제3국에 있는 NGO의 협력을 받아 진행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지 간에 결정은 전적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가지 답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답이 여러 단계에서 또 여러 차원에서 있을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의 정치 상황과 문화적이고 전통적인 정서를 고려해서 한국에서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문순 : "두 분이 굉장히 핵심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 같다. 지금은 남북 관계와 관련한 모든 권한을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권한을 중앙정부가 독점하지 말고 시민사회, 그리고 지방 정부와 나눠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안보와 직접 관련이 없는 문제, 아까 웬 티진 교수가 말한 생태 회랑을 건설하는 문제라든지 또 인도적인 차원의 민간 교류 같은 것은 민간단체나 지방 정부에서 결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다.
강원도 같은 경우 예전에는, 말라리아에 감염된 모기가 남쪽으로 넘어오기 전에 북한에서 방재하는 사업을 했었다. 그리고 또 소나무 병충해가 남쪽으로 넘어오기 전에 북한에서 방재하는 사업도 진행했는데, 지금은 그 사업들이 모두 중단됐다. 이런 비정치적이고, 또 방재사업 같이 우리가 필요로 해서 하는 사업들은 이제 서로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에 가 있지 않다."
정전 이후 고립된 강원도, 국가 발전 전략에서 누락됐다
이정옥 : "강원도는 지정학적인 위치에 의해서 예로부터 대륙으로 가는 교통망의 경유지 역할을 해온 지역이다. 옛날에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가는 철도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단됐다. 강원도는 이 철로들을 다시 연결해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걸 고민 중이다. 그렇게 했을 때 그것이 이 지역의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그리고 강원도가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데 방해가 되는 요인이 생긴다면, 그 문제들은 또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겠는가?"
웬 티진 : "서울에서 DMZ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이 실제 기차 선로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그 선로가 지금도 남아 있기는 하지만 기차는 다니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거기가 바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시베리아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듯이, 강원도도 그런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에 식품을 주로 수출한다. 그것 외 중국 내륙과 별다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내륙에서 생산한 잉여 생산물을 그냥 한국에 수출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 중국 내륙의 전통 문화가 다 파괴되고 있다. 내륙 사회에서는 솔직히 얻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 부분은 더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지금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산업화라는 것은 어떻게 되면, '과잉생산'이란 말로 정의될 수 있다. 그에 반해 새로운 문명은 '생태 문명'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이 새로운 문명에서는 지역의 자연과 문화적 다양성, 사회적 다양성 등이 다 새로운 자원이 될 수 있다. 개발이 고도화된 나라에서는 이런 새로운 자원들이 파괴되기 일쑤이지만, 생태 문명이 싹트고 있는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자원들이 모두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생태 회랑이 가지고 있는 성격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이런 회랑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회랑을 건설하는 데서 이뤄진 발전들은 모두 그 지역의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회랑은 그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짧지 않다. 길게 이어지는 것이라서 시베리아까지 연결될 수도 있다. 이렇게 회랑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산업사회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강원도는 그동안 산업화에 낙후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는 데 좋은 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자원을 잘 활용하면, 지역끼리 얼마든지 회랑을 연결할 수 있다. 나는 강원도가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조셉 거슨 : "스웨덴의 한 교수가 유라시아를 잇는 대륙 횡단 철도에 대해 발표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 새로운 상상력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한반도가 양 대국 사이에서 어떻게 상생 전략을 모색할 것인가 하는 것은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과 EU를 연결하는 새로운 벨트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는 조금 회의적이다."
▲ 최문순 강원도지사. | |
ⓒ 박민화 |
우리는 지금 TSR(시베리아횡단철도), TCR(중국횡단철도), TMR(몽골횡단철도)을 계속 주장하고 추진하고 있다. 그 철도들을 통해 화물과 관광객들을 가장 안전하고 싸게,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동시킬 수 있다. 그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지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철도가 연결돼 있다. 그 길이가 8088km다. 거기에 북한만 연결하게 되면, 강원도에서 모스크바까지 8500km 가량의 철도가 연결될 수 있다. 이것은 중국, 러시아, 몽골 등 인근 국가에 모두 이익이 된다. 우리는 또 이것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그 중간 지점에 북한이 있다. 이 문제의 핵심 역시 평화가 과제다. 평화가 지역을 발전시키고, 세계 질서를 바꾸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평화 체제가 구축되면, 기존의 문제들은 모두 사라진다
이정옥 : "미국에는 한국이 육로를 통해서 중국과 러시아와 연결이 되는 것에 약간 저항하는 세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 3개국이 서로 유대관계를 맺는 것이 정당하다는 걸 알리고 싶다. 조셉 거슨 박사께서는 미국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조셉 거슨 : "여러 차원에서 가능하다. 한 가지 방법으로는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다양한 다자간 대화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토론을 하게 되면, 미국에서도 이런 관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택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웬 티진 : "미국에 한국인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문화도 경험하고 한국 문화도 경험했던 그런 사람들이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가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강원도 출신의 재미교포들을 조직해서 그들로 하여금 미국 정부에 여론을 전달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미국에게 주어지는 이익을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정옥 : "중국 정부에는 한국이 도 차원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이런 일과 관련해, 중국 정부뿐만 아니라 중국 내 시민사회단체와도 협력을 구하는 게 얼마나 가능한지 알고 싶다."
웬 티진 : "중국의 후원을 얻는 것은 매우 쉽다. 나는 전략적 싱크탱크의 회원으로 중국 정부에 정책 컨설턴트를 하고 있다.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하기도 하는데 그 리포트는 정치가들에게도 전달된다.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정책 분야 연구에서 20년을 일했다. 공식적으로 이런 논의를 끌어올 수 있는 영향력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회랑'에 대해서 미국이나 일본이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강원도로서는 호재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시베리아의 천연 자원에 굉장히 많은 관심이 갖고 접근했다. 하지만 러시아에 적대적인 세력이 많아, 지금은 약간 후퇴한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강원도가 지금 상당히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앞서 최 지사께서 횡단철도 이름에 몽골이나 중국 등 특정 국가 이름을 넣었는데, 그렇게 하면 또 미국이 반대할 수 있다. 국가 이름 대신에 시베리아처럼 특정 지역의 이름을 붙이면 저항이 덜하다. TCR(중국횡단철도)처럼 그림을 너무 크게 그리지 않는 게 좋겠다. 내가 '회랑'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정옥 :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지금 군사적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렇게 고조되는 긴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긴장을 해소하는 데는 어떤 방법이 좋은지 묻고 싶다. 그리고 또 항구적인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강원도민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혜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강원도민들에게 평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묻고 싶다. 미국은 그동안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하지만 최근에 보여준 모습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이다."
▲ 조셉 거슨 박사. | |
ⓒ 박민화 |
이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점점 더 민주주의 모델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쇠퇴하는 제국이다. 그리고 군사적인 긴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 제일 긴장된 곳이 센카쿠 열도와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이다. 그쪽에 긴장이 강화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조금 완화되는 추세다. 거기에다가 지금 북한과 한국, 그리고 북한과 미국이 물밑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정치가들에게 계속 대화를 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는 데서 강원도민들이 어떤 혜택을 입게 되느냐 하는 문제는 그 전에 강원도민들이 정전 상태로 인해서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를 아는 데서 해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만약에 현재의 정전 협정이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바뀐다면, 정정 협정으로 인해 받고 있던 피해들이 모두 끝난다고 볼 수 있다. 경제는 계속 발전될 것이고, 이산가족은 아무런 제약 없이 상봉할 수 있게 되고, 군사력은 더 이상 증강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웬 티진 : "위기에는 주기가 있다. 앞으로는 중국이 위기를 맞이할 차례다. 중국이 위기를 맞으면 미국은 중국을 억누르기가 좀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기가 아니더라도 미국은 중국을 무너뜨릴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해군을 움직여 중국을 자극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일반 국민들은 왜 중국이 필리핀한테도 꼼짝 못하냐라는 식의 민족주의적인 요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그 배경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중국 국민은 중국 지도부를 불신하게 된다. 미국은 중국 정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수단을 여러 가지로 가지고 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중국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안하는 이유가 중국을 무너뜨리고 난 뒤의 결과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을 부상하는 제국이라고 하지만, 사실 중국은 부상할 생각도 없다. 미국이 부상하게 놔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국제 문제에서 극히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에 중국한테 기회가 생긴다면 미중간의 군사적 긴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스스로 내부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국가 간에 승자와 패자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지역 주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국가 간의 경쟁도 의미가 없다. 지역 주도성이 강조돼야 한다. 국가 간의 관계가 너무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제는 지역 주민이 자기 생존권을 스스로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문순 : "남북 간의 갈등도 그렇고, 동북아시아의 갈등도 매우 복합적이다. 3중 4중의 갈등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강대국들이 직접 전쟁을 하게 될 가능성은 무척 적다고 본다. 다만 그것이 남북 대리전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늘 그래 왔던 경험이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인 긴장이 고조되면 그만큼 국지전, 대리전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 때 남북 관계에서 평화가 더 중요해지는 게 아닌가 한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시 평화가 근본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한 번, 멀리서 찾아와 긴 시간 함께 포럼에 참석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