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0

퀘이커 운동 - 영성에 기초한 사회적 실천의 모범 - 에큐메니안

퀘이커 운동 - 영성에 기초한 사회적 실천의 모범 - 에큐메니안

퀘이커 운동 - 영성에 기초한 사회적 실천의 모범<이진권의 온전한 삶을 찾아 떠난 여행 : 펜들힐 이야기 2>
이진권 목사 | 승인 2014.09.19 13:04

‘펜들힐’이란 이름을 듣게 된 것은 함석헌 선생님의 책을 통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걸출한 사상가이자 비폭력 평화운동의 주창자였던 함석헌 선생님은 60년 대에 3번이나 펜들힐에 머무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글로 남겼지요.(함석헌 전집 중에 ‘펜들힐 명상’이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함 선생님이 이렇게 펜들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펜들힐이 퀘이커들이 세운 피정과 공부를 위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함 선생님은 퀘이커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한 기독교 공동체란 점에서 큰 충격과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퀘이커는 양심적 병역거부 등 반전 평화운동을 일관되게 자신들의 중요한 사회적 증언으로 삼아 왔습니다. 또한 미국 역사에서 만민 평등 사상에 기초한 흑인노예해방운동을 가장 최초로, 조직적으로 전개한 집단이기도 합니다.(퀘이커들은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80년 전에 노예들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퀘이커들은 어찌보면 대단히 급진적인 사회적 실천운동들을 진행하면서도, 자신들의 신앙과 영성을 충실하게 지켜 왔습니다. 다른 종교적 전통이나 세속주의 문화나 운동에 대해 결코 배타적이지 않고 열려 있으면서도, 350여년이 넘는 세월가운데서도 자신의 신앙적, 영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해 오고 있는 영적 공동체 운동인 것입니다.

20대부터 진보적 기독교운동을 경험해 온 저는 그 운동의 세례를 통해, 비판적이고 예민한 역사의식과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 진보적 신학사상, 삶을 온전히 내어 던지는 헌신성 등 여러 귀한 보물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성이란 단순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속에서도 풍성하게 경험될 수 있는 차원이 있음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에 참여하면서 그 풍성하고 치열했던 정치,사회적 이론과 실천만큼이나 깊이 있는 영성수련(기도)의 경험이나, 따뜻하고 섬세한 영적 공동체(관계)의 경험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 주류가 보여줬던 구복적이고 피안적인, 심각하게 뒤틀린 종교적 영성추구에 대한 탈출의 저항은 강했지만,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적인 영성형성에는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깊이 기도하는 법을 잃어 버렸고. 그러면서 내면의 영성의 샘은 점점 메말라 갔습니다. 간헐적으로 이런 저런 영성수련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풍성한 영성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경험한 영성수련 프로그램들은 개인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내면적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내면의 정화와 자기비움이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거룩한 사랑이 샘솟아 올라와 고난받는 이웃(생명)과 연대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해 과감한 정치,사회적 실천을 감행하는, 그런 통합적 영성(실천)에 대한 목마름은 갈수록 더해 갔습니다.

퀘이커와 펜들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곳에 가면 그러한 저의 갈망을 풀어갈 수 있는 어떤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펜들힐 경험을 통해서 퀘이커의 역사와 현재, 그 영성적 기초와 사회적 실천의 통합에 대해서 조금씩 맛보게 되었습니다. 퀘이커 공동체의 두드러진 특징은 사람들 누구에게나 ‘내면의 빛’ 또는 ‘내면의 그리스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개인과 공동체의 ‘침묵기도’속에서 실제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내면의 신적 존재와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일상생활과 사회속에서 실천되고 증언된다는 점입니다.

  
▲ 펜들힐의 침묵예배 공간. 매일 아침 침묵예배가 드려지고, 여러 강연이나 회의, 등도 이루어지는 다목적 용도로 사용된다.
실제로 펜들힐 공동체의 일상생활의 중심에는 함께 드리는 침묵기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식사 후 오전 8시 30분부터 30분간 침묵 기도의 시간이 있습니다. 또한 매일 저녁 9시 15분부터 15분 간 하루를 마감하는 ‘에필로그’라 불리우는 침묵기도의 시간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공부나 회의 할 때에도 요소 요소에 침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런 의식이나 장치 없이, 그저 고요히 침묵 가운데 머무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또한 그 침묵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게 되면, 인간의 모든 판단과 경험을 넘어서는 ‘신적 사랑의 풍요로움’이 존재합니다.

  
▲ 에필로그 기도장면. 매일 저녁 함께 모여, 시나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기도 하고, 그냥 침묵으로 하루를 돌아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30분의 아침 침묵예배 시간이 시간이 지날 수록 혹독한 시련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두려움, 분노, 욕망들, 신에 대한 불신 등, 참으로 많은 것들이, 솟구쳐 올라와 저를 공격해 왔습니다. 도망치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매일 매일 그 시간에 그 공간에, 그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저의 내면의 모든 번뇌가 한 순간에 사라지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요와 평화, 기쁨이 찾아 왔습니다. 이 경험으로 저는 가슴 존재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불현 듯 깨닫게 되었고, 이를 일상의 순간 순간으로까지 확장시켜 가게 되었습니다. 
 
퀘이커 공동체는 역사적으로는 17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지 폭스 라는 분이 퀘이커의 창시자로 불리우는데, 이 분도 침묵기도를 하면서 ‘죄를 짓기 이전의 태초의 아담’과도 같은 지극히 선하고 평화로운 경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경험을 가능케 하는 ‘내면의 빛’ 이 존재한다는 증언과 믿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이러한 강렬한 내면적 경험은, 당시 청교도 혁명과 반혁명의 혼돈과 폭력의 아수라장이었던 영국사회에서 비폭력 평화운동과 평등 운동으로 드러났습니다.

새로운 사회질서는 증오와 폭력이 아닌 사랑과 평화적 수단에 의거해 가능하다는 사회적 비전을 고수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들은 투옥과 고문, 죽임당함까지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또한 퀘이커 공동체는 하나님 앞에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초기부터 여성지도자들이 배출되었고, 예배 시간에 여성들도 자유롭게 자신들의 신비적 경험을 증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초기부터 퀘이커 공동체들은 평화(peace), 평등(equality), 단순함(simplicity), 온전함(integrity- 신앙과 삶의 일치)를 사회적 증언(testimony)으로 삼는 전통을 지켜 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증언이란 말이 중요한데, 이는 자신들의 사회적 실천이 자신들이 내면에서 경험한 진리체험을 증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퀘이커 전통에서의 이러한 점은 오늘날 우리에게, 특별히 진보적 교회들이나 기독교사회운동에 크나 큰 시사점을 던져 준다고 봅니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세상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교회들과 기독교 사회운동은 그 근저에 내면에서의 깊은 영적 각성과 울림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거대한 구조악과 세력들에 맞서 싸우다 보면, 자칫하면 그 악한 기운-증오와 대립-에 사로잡힐 때도 많고, 지치고, 절망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넉넉히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들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내면의 그리스도’를 일상에서부터 꾸준히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어떤 어둠도 넉넉히 밝힐 수 있는 ‘내면의 빛’ ‘내면의 진리와 생명’과 늘 접속하고, 그로부터 풍요로운 에너지를 공급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의 사회적 실천은 정세분석이나, 사회과학적 분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출발은 ‘내면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자비’의 샘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