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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핵활동가가 본 미국 핵정책과 반핵반전운동
[핵안보정상회의 이후](4) 조셉 거슨 강연회
임월산(노동자운동연구소) 2012.04.15
3월 26~27일에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를 비판하고 그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서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을 중심으로 기자회견, 집회, 대항국제회의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명박 정권이 정상회의의 국제적 성격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필리핀, 대만, 일본, 미국, 베트남 등 여러 나라 반핵활동가가 참여해 세계적인 반핵의 목소리를 전한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핵안보의 위선이 알려져 있고 반핵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핵안보정상회의 대응 일정에 참석한 해외 활동가 중에 미국 반핵활동가인 조셉 거슨(Joseph Gerson) 박사가 있었다. 퀘이커교 단체인 미국친우봉사회(AFSC,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에서 1976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조셉 거슨 박사는 미국의 외교군사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활동, 핵전쟁 반대, 핵무기 금지, 그리고 외국 주둔 군대들 철수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9.11 이후 만들어진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대(United for Justice and Peace), 해외 군사 기지 폐쇄를 위한 국제 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to Abolish Foreign Military Bases), NATO 반대-전쟁반대 네트워크 (No NATO-No War Network), 핵폐기 2000 (Abolition 2000) 등 다양한 반전반핵 연대기구의 창립자이며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3월 23일, 연세대학교에서 ‘미국 핵정책과 반핵운동’에 관한 조셉 거슨 박사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분석과 세부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강연에 핵심 내용을 이 기사를 통해서 전한다.
[출처: 거슨 박사]
제국과 군산복합체
미국의 핵정책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미국의 정치문화와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강연의 시작으로 거슨 박사가 이 내용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을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조섭 거슨(이하 거슨): 미국은 제국이다. 동부 지역 13개 주로 탄생해 시간이 지나면서 대륙을 모두 점령했고,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패권을 행사하는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핵, 특히 핵무기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는 미국이 제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어떤 나라가 군사 정권인지를 알기 위해서 그 나라의 예산을 보면 된다. 미국 예산의 60%가 국방부로 들어가고, 나머지가 사회적 비용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전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통령까지 좌우하게 된다. 많은 미국인들도 행정부라 하면 민간인들의 정부라고 생각하지만 군부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군수산업은 정부를 장악하는 데에 돈이 결정적인 것을 잘 알고 이를 이용한다. 전투기를 만든다면 머리는 어느 주에서 만들고, 날개는 어느 주에서 만들고 하면 공장이 전국으로 퍼질 텐데, 그럼 상원의원들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 계속 군수산업계에 연락하면서 자기 주 공장이 이용될 수 있도록 요구한다. 의회에 대한 군수산업의 영향력이 확대된다. 군부, 군수산업과 정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를 군산복합체라고 한다.
군산복합체가 민주당, 공화당 양쪽에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공화당과 연관이 깊다. 거슨 박사는 공화당은 극우 성향의 ‘종교 근본주의’와 ‘기업주의’라는 두 그룹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기업주의 세력은 무기생산에 필요한 철강, 중공업, 화석연료 산업으로 대표된다. 공화당 두 그룹은 인종주의, 왜곡된 군사적 애국주의를 활용해 부자 뿐 아니라 가난한 국민들에게서도 지지를 얻는다. 거슨 박사는 극우의 이념이며 기업주의 공화당의 기반인 군사주의가 미국의 전체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거슨: 미국 자체가 군사화되었다.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슈퍼볼 등 중요한 스포츠 경기에서 국가를 부를 때 전투기 에어쇼가 벌어진다. 미국인들은 군사적인 쇼를 보고 그것이 애국주의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 어떤 의미에서라도 참전 군인을 비판하면 미국인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이 너무나 널리 퍼져 있다.
미국 핵협박의 역사
거슨: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까지 2차 대전을 끝내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살펴보면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 군대의 고위 간부들을 제외한 천황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일본이 전쟁에서 졌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자폭탄 투하 전에 일본 외교관들은 모스크바, 스위스, 포르투갈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항복 기준을 교섭하려고 노력 중이었지만, 트루먼은 원자폭탄 투하 이후에 항복을 받아들인 것이다.
원자폭탄 투하에는 4가지의 주된 이유가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이 싸움에 합류하기 전에 전쟁을 끝냄으로써 전략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었다. 트루먼은 동아시아에서 소비에트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트루먼은 핵무기의 종말론적 힘을 과시하고 미국이 일반시민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스탈린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었다. 셋째, 트루먼은 폭탄을 만들기 위해 20억 달러나 사용했기 때문에 만약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1948년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본인이 불리한 입장에 처할 것을 걱정했다. 넷째, 인종주의로 더 부추겨진 일본에 대한 복수의 열망도 또 다른 이유로 작용했다.
거슨 박사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이 억제론 때문에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국이 핵무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거슨 박사는 미국 역사를 보면 핵무기가 억지력, 즉 방어적인 수단 아니라 협박의 수단으로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거슨: 나는 북한 정권, 그리고 지도자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이 왜 핵무기를 만들고자 하는지를 이해한다. 1950년 맥아더 장군은 “30개에서 50개의 원자 폭탄”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전쟁 이후에도 이러한 위협이 끝나지 않았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미국 대륙에서 핵무장한 폭격기가 이륙했다. 2003년 부시 대통령이 핵 선제 공격을 이야기했을 때에도 말만 한 것이 아니라 폭격기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은 9번 이상 북한에 핵공격 위협을 가했다.
북한 뿐 아니다. 미국의 핵공격 준비와 위협은 중동에서의 전쟁과 위기 시기인 1956년, 1958년, 1967년, 1972년, 1980년, 1991년, 1998년 그리고 2003년에 이뤄졌다. 중국은 최소한 5번 이상의 위협을 받았고, 베트남은 4번의 위협을 받았다. 다른 핵보유 국가들도 적어도 한번 씩은 핵공격 준비와 위협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이 핵 협박을 해 온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는커녕 북한, 파키스탄, 인도 등 많은 핵비보유국들이 핵개발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최근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비확산 제체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비확산 체제의 다른 한 축인 핵무기 보유국의 핵군축 약속은 성실히 이행되지 않았다.
미국 핵군축에 대한 움직임과 그의 함의
최근에 상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소한 미국의 엘리트들 일부는 핵비확산조약(NPT)이 요구하는 핵군축을 추진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러시아와 체결한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등 군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거슨 박사는 이러한 흐름에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반전운동의 압력이다. 대통령 선거 시절 오바마는 평화운동 투표자들에게 NPT의 군축 조항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보다 중요한 두 번째 원인은 미국 지배계급 내에 핵확산 가속화에 대한 인식 문제다. 미국 전 국무장관 슐츠와 키신저, 전 국방장관 윌리암 페리 같은 인사들이 다른 나라의 핵보유 열망을 억제하기 위해서 핵보유국들이 유의미한 군축 노력을 보여줘야 할 것을 이해하게 됐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프라하 연설에서 미국이 앞장서서 핵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거슨 박사는 미국의 핵정책의 모순점을 강조한다.
거슨: 오바마 대통령은 “이러한 무기들이 존재하는 한, 미국은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무기를 가질 것이며 우리의 동맹국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한다. 펜타곤과 핵산업계의 압박 아래 오바마 행정부의 핵태세 검토보고서는 미국의 선제 핵 공격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모의 핵실험 및 임계치 이하의 핵무기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 비준에 필요한 상원의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오바마는 미국의 핵무기 생산 기반을 확대시키고,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며 더욱 발전된 핵무기 운반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1,850억불을 추가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핵군축 약속을 지켜왔다.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에서는 미미하지만 무기 감축에 동의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미국과 러시아간의 협상의 기초가 될 오바마 행정부의 내부 지침(Nuclear Guidance Review)이다. 이와 관련해 1) 현재의 상황 유지, 2) 700~800개의 전략 핵무기 감축, 또는 3) 약 300~400개의 실전배치 전략 핵무기 감축 등의 세 가지 가능성이 계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오바마가 왜 이렇게 모순적으로 행동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산의 60%가 군부로 간다는 것, 공화당을 구성하고 있는 힘이 강한 철강산업, 중공업에 깊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슐츠나 키신저, 오바마는 미국의 패권을 건드릴 생각이 없다. 재래식 무기만 갖고도 충분히 지배할 수 있으니 핵무기를 없애 핵전쟁의 위험을 없애자는 주장이다. 변화는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다.
거슨 박사는 미국의 반전반핵운동이 엘리트 내 분열을 기회로 삼아 핵무기 현대화와 핵 선제 공격 같은 모순적인 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면서 오마바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최근 미국 반핵운동의 주요 전략을 반영한다. 2009년 반핵단체들은 대부분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이 비준될 수 있도록 핵의 위험을 주장하는 의원들과 관계를 맺어 비준 캠페인에 주력했다. 반핵운동은 미국 국방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 축소를 지적하면서 오마바 정권의 추가 핵군축 논의를 환영하고 있다. 이 논리는 미국 대외정책에서 핵무기가 재래식 무기로 교체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함축을 담고 있다. 핵무기 자체의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공세적인 패권정책과 군산복합체의 정부 장악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핵무기가 재래식 무기로 교체되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 해소, 나아가 세계의 안전과 평화 달성에 있어 매우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거슨 박사는 이러한 전략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대중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거슨 박사는 미국 국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러한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거슨: 현재 미국인들은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때문에 힘들어하고 신물이 나 있다. 베트남 전쟁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일자리, 주택 문제 등 고민이 많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혁명적인 운동, 즉 점령운동(Occupy)이 탄생했다. 이들은 주로 경제 정의에 초점을 두고 있다.
거슨 박사에 따르면 10년 동안 실패해 지쳐 있던 반전운동이 점령운동을 보고 고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점령운동과의 교류는 제한적이며, 반전반핵운동의 과제가 점령운동 내에서 아직은 큰 쟁점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점령운동과의 연대관계 형성, 경제위기 대응을 반전반핵운동과 연결시키는 것이 현재 미국 반전반핵운동의 중요한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거슨 박사가 제안한 국방예산 삭감과 사회적 투자 확대 요구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데 중요한 연결거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동시에 미국 반전반핵운동이 핵 폐기를 위해 의원 로비에 집중하는 협소한 활동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거슨 박사 본인이 설명한 군산복합체의 정치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폭로하고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며, 이에 적합한 운동 전략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거슨 박사의 강연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