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와 서구의 신화의 몰락
이종철 철학박사 l 기사입력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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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철 철학박사. ©브레이크뉴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특히 놀란 것들 중의 하나는 방역과 관련한 서구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렸던 이들 나라가 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가? 제 3 세계권에서 바라보던 그들은 지난 수 세기 동안 근대화와 제국주의를 통해 전 지구를 서구화하는 단단한 신화를 구축했었다. 오리엔탈리즘과 대비되는 유로 센트리즘은 서구인들의 자신감과 오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오랫동안 근대화는 곧바로 서구화로 인식되었고, 서구가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인식을 정착시켰다. 이런 근대화의 가장 밑바탕에 놓여 있는 사상 중의 하나가 독립적인 개인과 그런 개인의 자유, 더 나아가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생각이다. 그들에게 ‘개인의 자유’는 어떤 경우든 양보할 수 없는 천부인권의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상은 비단 서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근대화의 영향권에 속한 다른 문화권과 지역에도 그대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개인의 자유’라는 사상은 특수한 지역과 정부를 예외로 둔다 하더라도 지구촌에서 거의 보편화된 사상이다.
그런데 이 ‘개인의 자유’라는 사상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대 팬데믹의 시대에 심각한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는 그 한계를 지정할 수 없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이 되기에는 오늘날 너무나 공동체의 존립에 위협적인 한계로 등장했다. 전통적으로 동양은 공동체 중심이고, 서양은 개인 중심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바이다. 이러한 사상의 차이가 전무후무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동양권과 서양권의 차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해서 중국이 이 문제로 곤욕을 치루고 있었을 때 서구의 저널들과 정치인들은 비난과 조롱, 인종주의적 편견과 전체주의의 혐의를 거침없이 쏟아 부었다. 내가 이글에서 중국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한을 강력하게 봉쇄한 중국의 조치가 없었다고 한다면 세계는 더 큰 위험에 처했을지 모른다.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은 바이러스 피해와 관련한 통계를 보아도 가장 큰 피해 지역은 주로 중국과 아시아를 조롱했던 유럽과 미국과 같은 서구 지역에 해당한다. 아시아권에서는 인도가 특히 크지만 이 지역은 동서양의 중심 지대에다가 전통적 의미의 동양권 혹은 유교 문화권과 차이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차단제가 마스크이다. 그런데 이 마스크 착용에서 동서양인들 간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공동체적인 전통에 익숙한 아시아권은 마스크 착용에 대해 순순히 응한다. 반면 서구인들은 마스크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서구인들은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초기에 마스크 착용을 외면하고 적극적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이런 안일한 반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창궐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까지 마스크 사용을 거부할 정도로 무책임하게 행동했다. 그 결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는 중국이나 한국 혹은 동남 아시아권처럼 전통적 의미의 아시아권 보다는 서구 선진국에게서 훨씬 심각하게 나타났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 등 이른바 선진국으로 자처했던 이들 나라에서 하루 수천명씩 죽어 나가고 그들이 자랑하던 방역 시스템들이 완전히 붕괴되다시피 했다. 미국은 이런 피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컸고, 현재도 그 끝을 모르는 상태로 진행 중이다. 코로나가 한 풀 꺾였다가 다시 유행을 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파리나 베를린을 중심으로 마스크를 거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다. 무엇보다 마스크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 피해가 다시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동서양 간의 이런 큰 차이는 단연코 마스크 착용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의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에 따르면 마스크는 대인 접촉에서 바이러스 전달의 직접적 매개체인 비말을 현저하게 차단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마스크는 타인으로부터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는 수동적 방어의 의미도 있지만, 혹시 모르게 나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받을지도 모르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적극적 배려의 의미도 있다. 마스크가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확산시킬지도 모를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타인과 공동체의 안위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는 의미도 강하다. 그런 면에서 마스크는 너와 나 상호 간의 배려 관계이고, 타자에 대한 이런 배려 정신이 개인 이상으로 공동체의 유지와 존립이 중요하다는 사상이다. 이런 공동체 중심의 정신은 아시아인들의 오랜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 반면 서구 근대화와 민주주의 혁명을 이룩한 개인주의는 공동체 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전통이 강해서 마스크가 자신의 건강을 지킨다는 것 보다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고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마스크를 거부하는 많은 서구인들에게 이런 공동체 중심의 생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들은 마스크 착용을 강요하는 정부에 대해 자신들을 억압하기 위한 획책이라고 적극 거부하는 집단행동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바이러스의 과학 보다는 개인의 자유라는 절대적 신념이 우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념의 대가는 너무나 혹독하다.
개인의 자유는 양보와 제한이 불가능한 절대적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봉건 체제의 억압과 구속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계몽사상의 중요한 산물이지만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태생을 갖고 있다. 서구의 사회 체제는 이 개인의 자유에 기초해서 사유 재산권과 시장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기초를 제시한 아담 스미스도 개인의 이기적인 욕구와 자유로운 경제 활동,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시장 경제야말로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효율화할 수 있는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사상은 대 펜데믹의 시대에는 더이상 무소불위의 개념이 될 수 없다. 바이러스의 시대에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개인의 행동이 타인들과 공동체의 존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을 적극 받아 들이고 이런 행동이 결국은 타인들과 공동체의 존립에도 도움이 된다고 행동하는 아시아에서의 피해가 정반대로 행동하는 유럽이나 남미와 달리 현저하게 적다는 실증적 사실을 그들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서구의 근대화를 뒷받침 해왔던 ‘개인의 자유’라는 신화도 오늘날에는 재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절대적 자유가 아니라 사회 역사적 한계를 지닌 것이고, 공동체의 존립에 심각한 위해가 될 경우는 어느 정도 제한을 둘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의 생명과 자유가 중요한 것처럼 타인의 생명과 자유도 중요하다. 아울러 지금의 시대는 개인의 욕망 이상으로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100년 전에 ‘서구의 몰락’을 주창한 슈펭글러의 비판은 오늘 날 ‘개인의 신화의 몰락’에서 실질적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Jogel4u@outlook.com
*필자/이종철(연세대 인문학 연구원, 철학박사)
연세대 정법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철학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연세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 몽골의 후레 정보통신 대학의 한국어과 교수를 역임했다.(사)푸른아시아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 인문학 연구원 상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