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0

조선 식문화와 ‘먹방’의 상관관계? – SK이노베이션 전문 보도채널 SKinno News

조선 식문화와 ‘먹방’의 상관관계? – SK이노베이션 전문 보도채널 SKinno News

<역사혁신> 조선 식문화와 ‘먹방’의 상관관계?
2015.07.16
 
대식가의 나라 조선과 ‘먹방 전성시대’ 

요즘 TV를 보면, 이른바 ‘먹방’과 요리(사) 전성시대입니다. 공중파건, 종편이건 연예인이나 쉐프들이 등장해 요리 경쟁을 하거나, 음식 맛을 품평하는 예능프로그램들이 대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반응도 뜨겁습니다.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죠^^;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조상들도 먹는 것과 관련해서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민족이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자 1차적 생존 조건인 식욕을 바탕으로 한 문화야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건 존재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조선의 식문화는 눈에 띌 정도로 도드라졌습니다. 좀 민망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양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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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요리 /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구한 말 한반도를 찾은 이방인들은 하나같이 조선 사람들의 유별난 먹성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독일인 헤세 바르텍이 남긴 견문록(한국판 이름 <조선, 1894년 여름>)의 한 구절을 보시죠.

“조선인들이 ‘대식가’라는 점에서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이웃(조선인)이 자신들보다 세배나 많이 먹는다고 말하는데,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들이 거의 같은 비율로 섞여 사는 항구도시 제물포에서 보니 정말로 그랬다. (중략) 믿을 수 없이 많은 양의 밥이 커다란 붉은 고추 한줌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17세기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도 조선 사람을 가리켜 “하얗고 명랑하며 대식가”라고 평가했답니다. 남들 눈에만 그리 보인 게 아니었습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조선 사람들이 먹는 것은 천하제일”이라며 “이는 유구(오키나와)에도 소문이 났다”며 개탄합니다. 폭식과 탐식 때문에 조선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탄식이었습니다. 실제 조선의 밥그릇은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보다 두배 이상 컸습니다.

명사들의 식탐도 빠질 수 없겠죠. 세종대왕은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을 정도였고, 임진왜란 때 단 한번의 패배로 수군을 말아먹은 원균도 ‘한 끼에 쌀 한 말을 지어 먹고 반찬으로 닭 여러마리를 잡아먹을 정도’로 대식가였다고 합니다. <홍길동전>을 쓴 조선시대 최고의 반골이자 낭만가였던 허균은 지방 수령으로 발령나거나 귀양을 갈 때면 맛난 음식이 나는 고장(남원, 공주, 함열 등)으로 보내달라는 인사 청탁을 할 정도였다죠. 어렵사리 부임한 현지 음식 맛이 기대에 못미치면 세상에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서러워했다는 그는 귀양 중에 생전에 맛본 여러 음식들에 대한 평가 등을 담은 일종의 칼럼집인 <도문대작>을 펴낼 정도로 유명한 탐식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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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대작 /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사실, 한국인은 밥을 먹을 때 (한번에 많이씩 빨리 먹기에 편한) 숟가락을 사용하는 유일한 민족입니다. 동남아나 인도인들은 주로 손으로 밥을 먹고, 일본인은 젓가락을 이용하지요. 중국인들도 숟가락을 쓴다지만 주로 국을 떠먹을 때 이용하지요. 숟가락 문화는 쌀밥을 위주로 한 대식 문화가 이 땅에 오랜 세월 뿌리를 내려왔다는 증표이기도 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선조들은 왜 그렇게 탐식, 대식을 했을까요? 초식을 주로 한 농경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습니다. 알다시피 조선시대 소는 중요한 노동력 제공원인지라 자기 소유라도 마음대로 잡아먹을 수 없었습니다. 험준한 산이 많다 보니 대규모 가축 사육도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별다른 단백질 흡수원이 없다 보니, 쌀 같은 곡식과 채소를 최대한 많이, 오랫동안 섭취하는 방향으로 몸과 식문화가 발전해왔다는 것이지요. 식물성 위주 식습관 때문에 한국인의 소장은 서양인들에 비해 30%가량 더 길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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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 볼까요. 10여년 남짓 되는 ‘먹방의 역사’에서도 변화와 혁신이 진행되고 있는 듯합니다. 2000년대 들어 미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맛집 탐방 프로그램들이 각광받았다면, 2010년 즈음엔 인터넷방송에서 혼자 요리를 만들어 하염없이 먹어대는 모습을 보여주던 ‘초기 먹방’이 등장해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출연자들이 재료를 채취하거나 직접 요리해 먹는 ‘쿡방’으로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중에서도 요즘 가장 핫한 방송인(이자 체인음식점 사업가)으로 뜬 백종원씨 경우는, 먹방을 넘어 사회 각 분야에서 혁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시사점을 주는 듯합니다. 그의 음식솜씨는 미식가들을 감탄시킬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조리법에 특색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영양학적 관점에서 보면, 대놓고 설탕과 돼지기름을 사랑하는 그의 조리법은 퇴보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 그의 요리는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낮은 문턱’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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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 이미지 출처 : 플리커>

누구나 ‘나도 할 수 있겠는 걸’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헐렁함과 편안함이 성공의 열쇠였던 것입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기술적(요리맛과 조리법)으로는 퇴보에 가깝지만 공감과 참여가 성공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겠죠. 결국 궁극의 혁신은 기술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가능한 것 아닐까? 란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그런 금언이 적용되는 분야는 비단 요리만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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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순혁 기자
‘철학’을 전공하고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