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잖은 여성들이 걷게 되는 인간관계 테크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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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여성에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봉사적이어야 한다"라는 기대와 억압이 가해지고 대개의 경우 그걸 다소라도 내면화, 스스로 강제하게 되기에 여성에 한정했음. 남성들에겐 또 다른 고유한 고충들이 분명 있을 텐데 나는 잘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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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맑~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님처럼 살고자 하는 '노력'은 최소한 하면서 산다고 믿고 본인도 그렇게 살으려고 노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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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착하게' 살수록 오히려 점점 더 채무자 취급 받음. 여기서 깨닫지 못 하고 멍청하게 '어, 어..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가?' 하면서 넘기다 보면, 상태 더 안 좋은 사람들만 점점 엮여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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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온갖 피해의식과 원한으로 가득찬 사람(*)이 가여워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면 저럴까. 나라도 얘기좀 들어 주면 나아지려나' 싶어, 평균 하루 30분씩 단 하루도 안 거르고 6개월간 글자 그대로 감정쓰레기통 (수십년간 축적된 온갖 정서적 피고름 받아 주는) 역할을 해 줘도, 심기 거스르는 단 한 마디 '말실수' (그 사람이 듣기 싫어한 얘기)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원수취급 받음. 그 사람의 정신건강 상태가 나아지기라도 했다면 보람이라도 있으련만, 6개월동안 그 사람은, 내가 보여 준 공감을 지렛대 삼아 자기 '서사'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 자신만의 주관적 해석과 망상이 결합하여 발효까지 일으킨, 의도적 거짓말은 아닐지언정 '객관적 사실/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그 본질일 수밖에 없는)를 스스로 믿는 확신만 점점 더 강해졌고 그러면서 분노와 원망을 오히려 증폭시켰으며, 내게 남은 건 피폐해진 정신건강과 상대방으로부터의 원수취급 뿐임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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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상처 입었을 때 반창고 붙여 주는 정도 이상의 '도움'을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성인들 사이에선 '오만'일 뿐임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help one another so that one can help oneself 에 불과함을, 실은 부처님조차 남을 '구원'하긴 커녕 그저 가르침을 남겼을 뿐 남의 상처를 치유해 주거나 남의 업/근기를 변화시켜 주거나 하지 못 하셨음을 비로소 깨달음. (이 시점 즈음에 神에 귀의하는 사람들도 있음. 충분히 이해 가고도 남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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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패잔병처럼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어 그제라도 *와의 관계로부터 발을 빼려고 하면, *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마치 입양된 아이가 양부모에게 버림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제3자들로부터 "아, 난 자세히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은데, *의 분노/눈물 감당하고 싶지 않으니 니가 어떻게 좀 해라. 너는 쟤보다 나은 상황이니 걍 니가 더 감당해라" 류의 요구를 받게 됨. 나의 입장을 묻거나 걱정하는 말 단 한 마디 없이, 다짜고짜 저런 요구부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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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에게 털어 놓을 수라도 있는 고민은 사실 가벼운 축에 들며, 누구나 나이 들면서 인간혐오 시기를 겪게 됨. 마음의 벽을 쌓고 경계의 날을 세우고 지내는데, 이 생활이 몇 년 계속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외로움도 함께 자라나며, 세 갈래로 나뉘어지는 기로 앞에 서게 되는 시점이 대개 4말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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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첫번째 선택지. 5번의 생활을 고집하면서 외로움으로 인해 정서적 불균형과 인지적 왜곡이 진행됨. 더 좁은 우물을 더 깊이 파고들어 가면서 *의 모습으로 점차 변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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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두번째 선택지.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 해 가끔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하지만, 스스로 자기 껍질 안에만 머무르니 인격적 만남이나 진정한 소통은 불가하고, 그럼에도 다른 방법을 찾지도 못 해 상대만 바꿔 가면서 이런 무의미한 표면적 관계들을 지속함. 실제로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으며, 정신적 수준은 영원히 '나만 정상이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비정상'의 상태로 남음. 아이러니한 것은, 부모님의 인격 수준이 그 세대 평균을 초과할수록 오히려 이런 미성숙에서 평생 못 벗어날 확률도 높아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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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난 날들을 곰곰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과거에도 현재에도 탐진치 덩어리일 뿐이며, 그렇다면 나 역시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로부터 받은 대접/상처 비슷한 것들을 분명 주었겠구나 (의도적이 아니었기에 내 기억에 선명하지 않을 뿐) 하는 자각이 들기 시작함. 즉,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다 그저 종의 문제인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처럼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 자신의 친딸을 수십년간 성폭행하는 사람들, 보험금이나 주택청약을 위해 아이를 입양했다가 '목적달성' 후엔 그 가여운 아이를 때려서 죽이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을 부모로 두기도 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서.. 내 부모는 저 정도는 아니었기에 내가 내 세대 평균은 되는 정신건강을 유지하며 자랄 수 있었음을, 그리고 어떤 우여곡절을 거쳤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저런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한 사람임을 진심 감사하게 됨.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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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사람들처럼 될 수도 있고 이태석 신부님처럼 될 수도 있고 이런 가능성들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이 그저 인간임을 ('본성'이라는 것의 존재를 부처님은 부정하셨음), 더이상 토달지 않고 깨끗이 받아들임. 선한 면을 키우고 악한 면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은 개인 차원에서도 사회 차원에서도 계속해야 하겠지만, 착했든 멍청했든 자기 삶 전체에 대한 감당도 책임도 결국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이 '고통 많은 인간계에 태어난 댓가'라고 승복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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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면, 전엔 '당연한 매너'라 여겼던 대다수 인간들의 '정상적' 행동 하나 하나가 오히려 반짝 반짝 빛나 보이고 그 개인 역시 appreciate 하게 됨.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자기중심적 혹은 이기적인 면이 보일 때는 잠시 짜증났다가 이내 impersonal 해짐. 진짜 악의적인 범죄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기대가 없다면 미움도 생겨날 일이 없으며, 악의도 없건만 결과적으로는 좀비처럼 남들에게 폐만 끼치고 다니는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탐진치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가 스스로 되고 말기에, 그런 점에서 그 사람에 대한 연민과 '저 사람이 조금 달리 생각/행동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도 생김. 그러나 이런 '여유'는 나 자신 안전할 때에만 가능한 사치라는 것 또한 이젠 알기에,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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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의 덜떨어진 이해 수준에서는, 이런 태도가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mettā/goodwill과 upekkhā/equanimity이며 또 가장 현실적인 삶의 태도 아닌가 싶다는. 모든 인간을 무조건 신뢰하거나 무한정 사랑하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고 결국 神에 대한 믿음과 神으로부터 받는 능력에 의지해야만 가능할 것 같은데, 전지전능 완전무결 오로지 평화와 사랑뿐인 그런 神의 존재가 내게는 보이지도 믿어지지도 않으므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 누구에 대해서도 personal한 미움은 최소한 갖지 않는, 그저 이 정도 수준이라도 지키며 사는 것이 목표. 인간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그 낙차로 인한 충격과 상처와 원한도 필연적으로 깊을 수밖에 없고, 1,000명이 노력하여 단 한 명이 이태석 신부님처럼 되는 것인데 그 와중에 인간좀비들에 의해 망가지거나 희생되는 999명에 대해서는 세상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어느 종교도 책임져 주지 못 하므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 자신의 탐진치/좀비성이나 걱정하며 살기로. 그리고 나 또한 갖고 있는 나의 서사들은 가끔 들여다 보며 거르고 또 거르다가, 결국 몇 알갱이만 남게 되면 그땐 후~하고 바람에 날려 보내는 것이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최선이라는 사실도 배워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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