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4

아시아에 녹색당 ‘큰 깃발’ 꽂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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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매장이냐, 화장이냐” 장례 문화의 현주소

 蘇成玟 기자 () 승인 199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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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장례 문화·묘자리 덕 보기 의식 여전…“나는 화장” 증가 추세

지난 9월 쌍용그룹 사보 〈쌍용〉은 그룹내 과장급 이하 30대 사원 1백50명을 대상으로 이색적인 설문 조사를 했다. SK그룹 최종현 전 회장의 시신 화장을 계기로 사내 직원들이 사망자의 시신 처리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려는 여론 조사였다.

자신의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매장(14%)보다 화장(78%)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그런데 부모의 시신 처리에 대한 응답에서는 화장(26%)보다 매장(66%)이 두드러져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이 조사 결과는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는 한국 장례 문화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나날이 잠식되어 가는 좁은 국토 때문에 언제까지 매장만 고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사랑하는 가족을 화장하자면 꺼려지는 현실. 응답자들은 한국인이 아니면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이중적 의식 구조를 드러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응답자들이 자기 시신에 대한 처리 방식에서도 화장을 선호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응답자의 78%가 화장을 원한 것으로 공개되었지만, 질문 내용을 들여다보면 ‘화장하기로 결정했다’는 항목에 답한 경우는 27%에 그쳤다. 나머지 51%는 ‘화장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항목에 점을 찍었을 따름이다.

한국인들이 화장이라는 장례 방식에 거부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이유로는 우선 인체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하는 유교적 사고 방식을 들 수 있다. 어린이들의 수신서인 〈소학〉에 나오는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몸을 함부로 다치게 하는 것은 불효라는 인식이 오랜 세월 전해져 왔다.



그러나 화장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다르다. 화장을 정식 장례법으로 택하고 있는 불교 교리에 따르면, 육신은 흙·물·불·바람 4대 원소로 구성되어 있어 영혼이 떠난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순리이다. 곧 불교에서 화장이란 육신을 태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행위일 따름이다. 불교의 근본 사상은 무아(無我), 즉 나라는 존재가 본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육신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이런 불교 가르침과 전통 때문에 화장은 특히 불교식 장례 방법으로 인식되어 왔다. 중국에 처음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중국인들이 불교를 ‘부도(浮屠;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라고 불렀을 정도로, 화장은 시신을 매장하던 사람들의 눈에 특이한 장례법이었다.



인도는 석가모니가 출생하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전통적으로 화장법을 택해 왔다. 무더운 지방이어서 시신이 쉽게 부패할 뿐만 아니라 매장할 경우 전염병이 생길 우려가 있어서 인도에서는 신분의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 화장한다. 화장이라는 장례 방법은 이처럼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다.



현재 전국의 화장장 시설은 44곳. 한보광 교수(동국대 불교대학)는 지금처럼 유족이 보는 앞에서 시신을 시뻘건 화구에 밀어넣는 식의 ‘정나미 떨어지는’ 화장 시설로는 화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인들은 왜 오랜 불교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유독 매장을 선호해 왔을까. 최 아무개씨(30·회사원)의 경험담을 들어 보면 매장 문화가 한국인의 삶에서 차지해 온 비중을 엿볼 수 있다. 최씨의 고향은 경남 고성군 마암면이다. 4대를 모셔야 할 종손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명절 때만 되면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마을 선산을 돌아다녔다. 보학(譜學)에 능통했던 조부인지라 직계 조상들의 이력쯤은 훤히 꿰고 있었다. 증조부와 고조부 무덤 옆에 서서 최씨는 선조들의 생애는 물론, 고향 선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4대조 이상 조상 이야기까지 조부로부터 전해 들었다.



최씨가 고교에 다닐 때 할아버지는 별세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 깊숙한 곳에는 이미 ‘뿌리’를 소중히 여기는 의식이 배어 있었다. 그에게 조상들의 묘소는 괴기 드라마에서 흔히 묘사되듯이 으스스한 기운이 감도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길에도 할아버지 등처럼 기대어 쉬었다 갈 수 있는 포근한 안식처였다. 명절 때면 고향 선산에서 조상들의 산소에 절한 뒤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최씨는 자신의 눈길에 할아버지의 시선이 겹치는 듯한,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힌 적도 많다.



장례 방식에 대해서는 최씨 역시 “묘지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나의 주검도 화장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를 화장하는 데에는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정서로는 부모가 스스로 화장해 달라고 유언하지 않는 한 자손이 먼저 부모에게 화장을 권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최씨가 성장하면서 겪은 체험은 이제 더 이상 보편적인 것이 못된다.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촌락과 선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친족간 유대와 조상 숭배 사상은 점점 엷어지고 있다. ‘매장’이라는 풍속만 남아 있을 뿐, ‘뿌리’라는 의식은 약해져 현실적인 괴리감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장현섭 교수(그리스도신학대학·사회복지학)는 그같은 현실적 괴리감이 극명하게 표출되기 시작한 예로 95년 추석 연휴를 꼽는다. 당시 전국적으로 2천8백만명이 이동했는데, 이 가운데 연휴를 즐기려는 인파가 절반 가까운 것으로 추산되었다. 90년대 들어서 임협이나 농협 등을 통해 묘지 관리를 대행하는 사업자들이 생긴 점도 조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음을 드러낸다.



장교수는 〈죽음의 질 개선 방안〉이라는 소론에서 ‘현대 한국의 묘지는 전통 사회처럼 효 사상을 이어 주거나 가족 및 친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기능을 하기보다는 조상에게서 복을 구하려는 미신적 요소를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 시대에 묘지 제도를 장려했던 근본 목적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장소를 통해 유교 이데올로기인 효 사상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풍수지리설(82쪽 상자 기사 참조)에 내포된 기복적 속성에서 이미 후세 장례 문화의 난맥상이 예고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현대에 이르러 묘지 제도의 이데올로기는 약해지고 조상의 묘자리를 잘 써서 후손들의 안녕을 도모하려는 이기주의적 발상만 살아 남았다. 이는 전통적 매장 풍습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이를 쉽게 개선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립 묘지, 대통령 80평·장병 1평 ‘차별’



하지만 묘지가 후손에게 주는 정서적 위안과 가족간 통합 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필도 책임연구원이 ‘한국형 가족묘’를 확대 보급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형 가족묘는 대개 납골함을 모아 한데 보관하는 방식이지만 ‘매장식 납골묘’를 이용하면 화장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줄이면서도 묘지가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매장식 납골묘는 석관 2개 위에 직사각형으로 봉분을 쌓고 그 옆에 납골함 16개를 나란히 설치할 수 있게 한 분묘 양식이다.



이씨는 화장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후손들의 삶의 질이 똑같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6·25 전쟁 후 폐허를 딛고 일어난 한국 민족의 저력에 조상 숭배 사상이 기여한 부분도 크다고 평가한다. 그는 “문제는 ‘체면과 과시’의 거품을 제거하는 일이다. 우리는 평소 그렇지 않다가도 혼례와 장례 같은 특정 행사 때에는 과용하는 풍습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처럼 국토가 좁은데도 매장만 고집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화장률은 전체 시신 처리의 20%). 일본·홍콩·네덜란드·영국 등은 화장을 주된 장례 방식으로 택한다(화장률 70∼98%). 대만·프랑스·미국 등 매장을 선호하는 나라도 있지만 한국과는 실정이 다르다. 일정 시한이 경과하면 납골하도록 하는 시한부 매장제를 의무화하고 있는 데다(미국 제외), 묘지 1기가 차지하는 면적이 2.5∼4㎡에 그쳐 법정 허용 기준조차 30∼80㎡에 달하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다.



적어도 무덤에 관한 한 그들에게 신분의 격차는 허용되지 않는다. 부산의 유엔 묘지에 안장된 외국인 전몰 장병의 묘소를 보면 장군과 사병이 똑같은 면적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천여 평짜리 묘지가 있을 정도로 불법 조성된 개인 호화 분묘들은 제쳐 놓더라도 국립 묘지 같은 국가적 기념 묘역에서부터 신분 차별을 당연시한다. 국립 묘지의 경우, 대통령의 묘자리는 80평, 장군은 8평인데 일반 장병은 1평이다.



기득권 세력부터 솔선하여 장례 문화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지 못한다면 한국인들이 앓고 있는 이중적 의식 구조의 딜레마는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