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5

<오징어 게임> 기독교 악질적 묘사, 대응책은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오징어 게임> 기독교 악질적 묘사, 대응책은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오징어 게임> 기독교 악질적 묘사, 대응책은
| 입력 : 2021.10.03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세계 1위 오른 <오징어 게임> (中)

근래 콘텐츠, 교회가 악인들만 있는 듯 현실 왜곡
기독교 신앙 근본적 가치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조롱과 비난만 자행, 무지와 적개심 소치

기독교계, 교회 바깥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교회의 선한 면 납득되게 소개할 콘텐츠 제작을
비판적 논평만으로 왜곡 메시지 차단·교정 못해




▲목숨을 건 잔혹한 데스 게임을 소재로 삼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대중문화 속 기독교 비하: 교회를 악인들의 집합소로 묘사한 <오징어 게임>


최근 많은 국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노골적인 기독교 비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에 반응해 여러 목회자들과 기독교 평론가들이 유감과 우려,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작품 속 기독교 비하 내용 대부분은 작품 중반부에 등장하는 줄다리기와 구슬치기, 그리고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에 집중되어 있다.



먼저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 사사건건 하나님의 뜻을 들먹이며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논리를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데 앞장서는 태도를 보이는 한 사이비 교인이 등장한다.


다음으로 지영(이유미 분)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기독교 교역자와 얽힌 자신의 지옥 같은 과거를 이야기한다. 자신의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딸인 자신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다가 만류하는 아내를 살해하였고, 이에 지영은 인면수심의 아버지를 칼로 살해했다는 암울한 이야기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로지 기독교 비하를 위한 목적으로 소비되는 캐릭터 지영(왼쪽, 이유미 분).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 두 가지 악질적인 묘사는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 첫째,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은 이들, 성경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왜곡해 받아들이는 이들의 비위와 몰상식한 행태가 교회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 얼마나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지 보여준다.




둘째, 교회가 이런 거짓된 기독교인들을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 방치해 둠으로써 감내해야 할 해악에 대해 되새기게 해준다.


일단 <오징어 게임> 내에서 기독교를 비하하는 방식은 분명 크게 잘못되어 있다.



자극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극단적이고 극악한 예를 든 다음, 마치 그것이 기독교 신앙 본연의 한계인 것처럼 묘사하는 처사는 신앙의 본모습에 대한 심각한 편견과 무지의 소치다. 이에 대한 목회자들과 기독교 평론가들의 비판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다만 <오징어 게임>에 묘사된 거짓된 기독교인들의 저열한 행태가 전적으로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자신의 실책과 이기적인 모습을 신앙과 하나님을 뜻을 들먹이며 합리화하는 행태를 자주 목격한다. 또한 일부 부적격 목회자들이 성범죄를 저질러 교회의 성결함을 위협해 왔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오죽 하면 목회자의 성범죄를 중심 소재로 담은 영화가 개봉되겠는가. 4년 전 논평한 영화 《로마서 8:37》은 한 중대형 교회 중년 담임목회자가 교회 봉사에 열심인 대학부 자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교회의 중책을 맡는 한국교회의 비정상적 행태를 비판한다.



그나마 이 영화는 신앙의 순전함을 바라는 반대편 교역자와 성도들이 성범죄 문제 해결과 피해자 보호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함께 담아내면서 한국교회의 신앙과 정서 전반을 두루 살피려 한다.


반면 <오징어 게임>은 온전히 거듭나지 않은 채 교인 혹은 교역자 신분을 자처하며 어둡고 부정적인 행위들을 자행하는 이들을 마치 한국교회 교인들과 교역자들의 정형인 것처럼 소개한다. 오로지 악하고 위선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그것이 핵심이자 본질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교회의 책임도 존재한다. 한국교회는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회심을 촉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남의 노력이 보이지 않을 경우 “이방인과 같이 여기거나(마 18:17)” 혹은 “교회로부터 물리쳐야 할(고전 5:2)” 책임을 오랜 시간 회피한 채 교회의 양적 팽창에 치중해 왔다.


그 결과 교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급격하게 나빠졌고,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기독교 신앙 자체가 거짓과 위선의 산물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데 열심을 내고 있다.





▲지영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기독교 비하를 위한 목적으로 소비되는 캐릭터, 244번 기독교인 참가자.
◈대중문화를 통한 기독교 변증: 선악의 공존 속에 신앙의 숭고함과 순전함을 추구하는 교회




그러므로 일단 한국교회 일부 교인들과 교역자들 사이에 잔존하는 성경에 대한 오해와 무지, 그리고 죄악된 습성과 미혹을 파하고, 온전한 신앙의 갱신을 이루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모습에 대한 세간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첫 번째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기독교에 대한 극단적 비하가 일상화된 대중문화 콘텐츠 조류에 대응하기 위해 역량을 지닌 교회 및 교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올바르게 소개하는 영향력 있는 콘텐츠 제작에 힘써야 한다.


일단 기독교 신앙을 제법 설득력 있게 격하시키는 콘텐츠가 한번 대중에게 공개되면 그 파급력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


특히 <오징어 게임>처럼 여러 국가에서 인기를 얻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작품의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이런 콘텐츠가 공개되면 목회자들이나 기독교 문화 평론가들이 아무리 그 문제점을 면밀하게 밝혀 제시해도, 대중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애초 강력한 영상미와 스토리를 지닌 콘텐츠 앞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들은 사후약방문 수준으로 취급될 뿐이다.


그래서 기독교계는 대중문화의 기독교 비하 행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바로 기독교 신앙의 선하고 공의로운 본모습, 그리고 그 신앙을 추구하는 이들의 약점과 고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흡입력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에 힘써야 한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 교회는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2019년 개봉한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 2019)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2013년 전임 가톨릭 교회의 수장 베네딕토 16세(요제프 라칭거)가 퇴위하고, 현재의 수장 프란치스코(호르헤 베르고글리오)가 후임으로 들어온 이야기를 상당히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전임 수장과 현 수장의 만남과 대화를 담은 영화 ‘두 교황’(2019).
베네딕토 16세의 퇴위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크게는 로마 교황청 내부의 각종 비리 및 부정부패, 그리고 동성애 범죄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자정과 개혁을 시도하던 베네딕토 16세가 조직 내 파워게임에서 밀려난 것이라는 의견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프란시스코의 가톨릭 교회 수장 취임 역시 뒷말이 많았는데, 이는 그가 과거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민주화 저항운동을 주도했던 가톨릭 사제들을 만류하는 한편, 젊은 사제들이 해방신학에 물들지 않도록 단속하면서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하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차단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두 교황>의 서사는 두 사람의 가톨릭 교회 수장이 각각 겪고 있는 개인적 차원의, 혹은 교회 차원의 부조리와 불의를 조명하면서, 이런 한계와 실책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앙의 순전함은 여전히 숭고하며(가톨릭 교인들 입장에서), 이 숭고한 이상을 위해 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여전히 싸워나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두 교황>의 예를 차치하고서라도, 가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이 참되고 순전한 신앙을 가졌다는 점을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지속적으로 어필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엑소시즘 영화들이다. <엑소시스트> 시리즈로 대표되는 엑소시즘 영화들은 귀신에게 붙들린 자들에 대한 연민과 영적 싸움 가운데 겪는 고뇌를 회피하지 않는 헌신적인 구마사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 신앙의 변증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전에 한국에서 개봉한 <검은 사제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가톨릭 교회 구마사제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 ‘검은 사제들’(2015).
가톨릭 교회의 대중문화 활용 방식은 한국교회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가톨릭 교회를 변호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가톨릭 공동체가 무조건 선하고 신실한 이들로만 채워져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 안에 거짓되고 악질적인 이들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서도, 그런 이들이 가톨릭 신앙의 본모습에서 한참 먼 이들이며, 상당수의 진정한 신앙인들이 그런 위선과 죄악에 대항해 싸우고 경계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전략은 외부인들로 하여금 교회의 상황 전반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교회 안에는 분명 거짓되고 불의한 거짓 신자들, 거짓 교역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근래 제작되는 많은 기독교 비하 콘텐츠들은 그런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만 조명해서 마치 교회가 순전히 악인들로 구성된 것처럼 현실을 왜곡한다.

기독교회가 말하는 거듭남과 구원이란 죄와 허물로 가득한 인간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고상하게 포장하기 위한 가상적 이론이라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조롱과 비난만을 자행하는 무지와 적개심의 소치다.



그래서 기독교계도 교회 바깥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교회의 선한 면과 부족한 면을 납득되도록 소개해 줄 수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에 나서야 한다.


물밀듯이 쏟아지는 기독교 비하 콘텐츠들에 대해 단지 소극적으로 비판적 논평만 덧붙이는 것으로는, 이런 대중문화 작품들이 행사하는 왜곡된 영향력과 메시지를 차단하고 교정할 수가 없다.





▲편파적이고 무책임한 기독교 비하 내용을 담은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은 이러한 어려움을 재차 상기시켜 준다. 이 작품에 소개된 기독교인과 목회자의 부정적이고 죄악된 모습은 분명 한국교회 내부의 거짓 신자들, 거짓 교역자들 사이에서 간간이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이비 신앙인을 마치 전체 교회 교인들의 본모습처럼 매도하는 드라마의 묘사는 극도로 악의적인 일반화로서, 신실한 신앙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의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이런 행태는 교회에 대해서만 아니라 교회 바깥의 이들에 대해서도 일종의 기만이다. 이 기만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적개심과 조롱의 정서를 심어주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이런 부당한 문화적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그리고 교회 바깥의 이들이 기독교인 개개인과 교회에 대해 보다 온전하고 균형잡힌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작품성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 노력이 한국교회에 절실히 요구된다고 믿는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바라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반기독교 코드, 병적 수준으로 악의적”
“한국교회여,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해 주세요”
김학중 목사 “‘오징어 게임’ 같은 이 시대 속, 교회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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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관점으로 바라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세계 1위 오른 <오징어 게임>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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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데스 게임 콘텐츠에 깃든, 종교성과 미신적 요소
귀신이 인간 농락하는 힘 가진 상위 존재로 설정돼 있어
신-인간 관계, 불안정하고 두렵고 위협적으로만 묘사해
이 두 가지 그릇된 방식, 초월적 실재 성경 가르침 왜곡





▲목숨을 건 잔혹한 데스 게임을 소재로 삼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데스 게임 콘텐츠: 일본식 데스 게임 콘텐츠의 지배적 영향력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미국 내 넷플릭스 TV 시리즈 부문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하면서 큰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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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과중한 채무에 시달리는 이들이 수백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상금을 두고 서로 죽고 죽이는 생존 게임에 돌입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일전에 <머니게임>에 대한 논평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에서 제작되는 데스 게임 콘텐츠 대부분은 망가(漫画, まんが), 즉 일본 만화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데스 게임 콘텐츠의 원조는 미국이다. 통상 1979년 스티븐 킹이 발표한 소설 <롱 워크>(The Long Walk)를 데스 게임 장르의 출발점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이 데스 게임 장르를 서브컬처에 편입해 본격적으로 대중화한 것은 일본의 소설가와 만화가들이다. 1998년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 1999년 타카미 코슌의 소설 <배틀 로얄>, 이 두 작품은 일본식 데스 게임의 전형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일본식 데스 게임 콘텐츠는 카이타니 시노부의 <라이어 게임>(2005-2015), 카네시로 무네유키, 후지무라 아케지의 <신이 말하는대로>(2011-2017) 등을 통해 명맥을 이어 왔다.


이 작품들은 일본 문화 특유의 폐쇄성과 호전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일본은 섬나라로서 고립된 지형적 특성, 그리고 초대형 재난이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위협적인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다.


이로 인해 일본의 고대 및 중세 역사는 거의 항상 다이묘(大名)로 대표되는 군벌들의 군사적 연합과 경쟁으로 점철되곤 했다.


군벌들이 군사력을 바다 너머 외부까지 펼치기 어려웠고, 백성들 대다수가 사람의 목숨이 자연재해 앞에서 별 가치가 없는 허망한 것임을 일상적으로 목격해온 탓에 내부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혈전에 자주 돌입했던 것이다.


일본식 데스 게임 콘텐츠의 설정 역시 이러한 일본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폐쇄된 공간에 갇힌 게임 참여자들이 정해진 룰에 따라 서로 목숨을 내건 경쟁에 돌입한다.


패자는 죽고, 승자는 막대한 보상을 획득한다. 참가자들이 각자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경쟁하는 상황은 독자들에게 상당한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일본의 대표적 데스 게임 콘텐츠, <배틀 로얄>의 한 장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한국이 큰 강점을 보이는 산업 및 문화 발전 방식인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외교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는 국가들의 선진 기술이나 콘텐츠를 힘써 모방한 뒤, 한국의 기술 및 문화요소를 약간 가미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하는 것, 이 전략이 <오징어 게임>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막대한 채무에 짓눌린 인간 말종들을 상금을 미끼로 꾀어내는 것은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설정을 빌려온 것이다.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서로 죽고 죽여 최후의 1인이 모든 보상을 가져가는 것은 <배틀 로얄>과 <신이 말하는대로>의 설정을 차용한 것이다.


각 참가자에게 1억원씩 상금을 배정하여 서로 목숨을 걸고 빼앗도록 하는 것은 <라이어 게임>의 설정을 가져온 것이다.


게임의 내용 역시 일본 데스 게임 만화에 등장한 게임들을 비슷하게 모방했다.


1단계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분명 한국의 놀이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룰은 일반적인 룰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기괴한 인형이 술래로 등장하고 제한 시간 안에 특정 라인에 도달해야 하는 규칙은 <신이 말하는대로>의 첫 번째 게임인 ‘다루마’ 놀이의 룰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오징어 게임> 3단계에 등장한 서바이벌 줄다리기 역시 <신이 말하는대로>에 등장한다.


5단계의 징검다리 게임은 <도박묵시록 카이지>에 등장하는 ‘인간 경마’ 게임을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높은 곳에서 다리를 건너다가 떨어져 죽는 설정, 다리를 건너는 순번을 놓고 눈치싸움을 하거나 앞의 경쟁자를 밀어 떨어뜨리는 설정, 그리고 강화유리로 만든 다리라는 설정을 차용했다.


이렇듯 <오징어 게임>은 일본의 데스 게임 콘텐츠 설정 및 요소들을 이리저리 모방해 한국식으로 절묘하게 가다듬었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오징어 게임>의 표절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데스 게임과 종교: 오니(鬼, おに)로 구체화된 일본식 종교성과 미신의 유입


일본의 대표적인 데스 게임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가운데 가장 최근에 발표된 작품은 <신이 말하는대로>이다.


이 만화는 데스 게임 특유의 잔혹성과 고어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작품으로, 일본의 다신교 신들이 등장해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주관한다.


게임 참가자들은 고등학교 학생들이며, 매 단계마다 위험한 생존 게임이 전개된다. 게임에서 생존한다고 해서 특별한 보상은 없다. 참가자들의 목표는 오로지 신들의 잔혹한 놀이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다루마(달마, 선불교의 시조) 인형, 거대 마네키네코(돈을 벌게 해주는 고양이 모양의 장식물), 인간 크기의 코케시(머리와 몸통만 있는 인형) 등 일본의 토속 종교와 미신을 반영하는 형상들이 등장해 게임을 주관하는 동시에, 패배한 인간들을 잔혹하게 처형하는 관리자 역할을 맡는다.



▲실사 영화 <신이 말하는대로>에 등장하는 마네키네코.


신이나 요괴, 오니 등에 농락당하고 살해당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는 일본의 신화 및 민담에 흔하게 등장한다.


앞서 말했듯 일본은 태풍,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등 각종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게다가 지형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산악 지형이 많아, 과거에는 산마다 도적이 들끓기도 했다. 여러 모로 인간의 삶에 두려움을 선사하는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 이전까지 이런 불가해한 자연현상과 위협적인 환경은 일본인들 특유의 정령신앙(animism)에 의거해 각종 신들의 현현으로 해석되었다.


특히 괴팍한 성격에 우락부락한 체격, 무서운 얼굴을 가진 악귀 오니는 일본인들이 산적, 범죄자, 혹은 일본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 족을 보고 창안해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오니들은 인간과 내기를 즐기며 비위를 거스리는 자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특성을 가졌다. <귀멸의 칼날>은 이런 오니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으로 손꼽힌다.


<신이 말하는대로>는 이런 오니에 대한 일본의 전통 민간 신앙이 데스 게임에 접목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일본에서 꽤 가까운 시기까지 지속되었던 인신공양 풍습도 모티프로 삼는다.


<신이 말하는대로>에 등장하는 악신들은 기괴한 게임을 통해 인간들을 학살하는 것을 즐기고 그것을 그들의 존재 이유로 삼는다.



▲<오징어 게임> 1단계에 등장하는 거대 소녀 인형.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주관한다.


<오징어 게임>은 일본의 데스 게임 콘텐츠, 특히 <신이 말하는대로>의 설정과 분위기 일부를 그대로 채용해 서사를 진행한다.


무엇보다 1단계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장면은 <신이 말하는대로>의 설정 요소뿐 아니라, 무서운 분위기의 초월적 인형이 자아내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마저 그대로 모방했다.


이런 일본식 종교성과 미신적 요소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니, 즉 귀신을 인간보다 상위의 존재자로 설정하고 인간을 능히 농락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신-인 관계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불안정하고 두렵고 위협적인 것으로만 묘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월적인 영역에 대한 이 두 가지 그릇된 묘사 방식은 영적 실상, 초월적 실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크게 벗어나는 왜곡 행위로 간주된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반기독교 코드, 병적 수준으로 악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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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반기독교 코드, 병적 수준으로 악의적”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입력 : 2021.09.25 14:36




기독 유튜버 ‘책읽는사자’, 반기독교·반서구문명 코드 분석

악행 저지른 종교인 설정, ‘회개’ 확대 왜곡 및 일반화
사람 죽이고 감사 기도하는 캐릭터, 기독교 이해 부족
마지막 게임, 굳이 크리스마스 이브로 설정한 이유는





▲ⓒ책읽는사자
기독교 유튜버 ‘책읽는사자(이하 책사)’가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반기독교 코드를 지적했다.

책사는 “매우 아쉽게도, 총 9편으로 제작된 드라마 <오징어게임> 전반에 짙게 스며든 반기독교·반서구문명 코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를 넘어 거의 병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볼 정도로 악의적”이라며 “대부분 대중예술가가 반미, 반기독교, 반자본주의 사상에 경도된 것은 사실이지만, <오징어 게임>은 (특히 반기독교 코드는) ‘한두 번 하고 마는’ 보편적(?) 수준을 뛰어넘어 매우 일괄적이고 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물론 과대해석이자 의미 부여라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만약 이 작품에서 풍자하고 혐오하는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이었다면, 주님과 하나님이 아닌 ‘알라’였더라면 어땠을까”라며 “애초에 감독이 그런 시나리오를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적 분노’는 이미 유명하다”고 지적했다.


책읽는사자는 작품 속 ‘반기독교 코드’에 대해 먼저 “‘구슬치기 신’에서 여성 출소자 ‘지영’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엄마가 바닥에 죽어 있었고, 옆에는 아빠가 칼을 들고 서 있었고, 조금 후 ‘지영’은 그런 아빠를 자신이 죽였다고 이야기한 뒤 아빠의 직업을 ‘목사’라고 특정한다”며 “그녀는 ‘엄마를 때리고 나한테 그 짓을 하던 인간’이라며, 그런 악행을 저지른 후에는 꼭 ‘기도’를 했다고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책사는 “실제로 말도 안 되는 악행을 저지른 종교인은 ‘당연히’ 있다. 천주교 신부들의 광범위한 아동 성폭행과 조직적 은폐를 다룬 실화 영화 <스포트라이트>도 있지 않은가”라며 “그러나 이것은 ‘종교의 패악’보다 ‘인간의 죄성’으로 다가가는 게 보다 ‘사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종교인에게 기대하는 일종의 군중심리가 있는 것도, 기대감이 큰 만큼 실망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혜민 스님 풀 소유 논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며 “‘지영’의 입을 빌려 굳이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아빠의 직업을 특정하는 것 역시, 작가가 가진 (일종의) 배신감일 수도 있다”고 했다.





▲탈북민 여성과 대화하는 출소자 여성 ‘지영(왼쪽)’. ⓒ책읽는사자
그러나 “작가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회개’를 확대 왜곡하고, 섣불리 일반화했다. 후에 설명할 극 중 캐릭터 ‘244번 참가자’가 이기적인 행동이나, 하물며 살인을 한 후에도 감사 기도를 드리는 ‘종교적 자기합리화’ 역시 같은 선상에서 악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작가는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무슬림들의 악행과 그들의 종교심 역시 같은 선상에서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작가의 세계관 형성에 있어 ‘기독교의 사회적 패악’이 얼마나 큰 인상을 남겼는지 모르겠다”며 “부디 눈을 들어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그 죽은 사람의 친척들까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버리는 곳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한 슬픔과 의분도 균형 있게 자리잡길 바란다”고 했다.


‘244번 참가자’에 대해선 “유독 이 작품에 몰입을 방해하는 캐릭터다. 전 직업은 모르겠으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왜곡된 기독교 사상을 보여주는 인물”이라며 “예를 들어 목숨을 건 줄다리기 게임을 한 뒤, 게임 참가자들은 목숨을 부지했다는 감사함과 동시에 남의 목숨을 빼앗아갔다는 죄책감과 절망감에 빠져있을 때, 그는 혼자 감사 기도를 올린다. 목숨을 건 ‘징검다리 게임’에서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본인이 살았다는 감사 기도를 하기도 한다. 매사에 그런 식”이라고 설명했다.


책사는 “물론 이런 서바이벌 영화나 자연재해 영화에서 단골로 나오는 캐릭터가 ‘맹목적 종교인’이다. 시종일관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캐릭터로 묘사되는 게 다반사이고, 나아가 자신의 이기심을 종교로 합리화하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며 “특히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는 관객들에게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세속화된 종교와 그에 따른 부작용은 분명 비판받을 지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오징어게임> 작가는 두 가지 어설픈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 본인이 비판하려는 ‘기독교’에 대한 무지다. 작가가 비판하려 한 대상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다 보니, 작가의 풍자가 풍자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라며 “둘째, 244번 캐릭터의 당위성 부족이다.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다. 이것을 캐릭터 연기 톤의 문제라 지적할 수도 있겠으나, 시나리오 자체가 작위적이라는 게 1차 원인이라 보는 게 보다 자연스럽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아무리 극적 묘사라지만, (244번) 혼자 너무 ‘정극’을 하고 있다”며 “작가 개인이 무엇을 비판하고 싶은 줄은 알겠으나,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실력이 부족했다(참고로 나는 영화 <남한산성>을 매우 재밌게 봤다. 한국도 이런 영화가 나왔구나 하며)”고 비판했다.





▲주인공과 ‘참가자 1번’의 마지막 게임 모습. ⓒ책읽는사자
끝으로 마지막 회 ‘참가자 1번’과의 마지막 게임 신에 대해 “작가(겸 연출 겸 제작자)는 둘이 만나는 날짜와 시간을 굳이 보여준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 곧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바로 전 날”이라며 “장소 역시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여의도 금융가 건물”이라고 했다.




책사는 “이 마지막 게임에서 12시 직전 극적으로 주인공이 승리한다. 이는 작가가 갖고 있는 반기독교·반서구문명적 코드가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라며 “작가가 주장하는 선이 악을 이겼다는 것이다. 작가(이자 연출자이자 제작자인 그)는 그 이후 12월 25일, 즉 성탄절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가 울리게 연출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그 종소리가 의미하는 바는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기독교와 서구 문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일 수도 있고, 마지막 게임을 이긴 주인공을 축하하는 의미의 종소리일 수도 있다”며 “매우 신성모독적인 일이긴 하다. 마호메트 성일로 동일하게 설정했다고 생각해 보라.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 결코 ‘친기독교적’이거나 ‘친서구문명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명징한 정체성”이라고 했다.


책읽는사자는 작품의 반미, 반서구문명, 반자본주의 성향에 대해서도 설명한 뒤 “현재 작가는 ‘여성혐오’와 ‘외국인 노동자 비하’ 논란에 서 있다(표절 논란은 논외로 한다). 둘 다 ‘PC주의’의 정치적 맥락 안에 있는 주제들”이라며 “PC주의의 핵심 정치기조인 반기독교·반서구문명 코드가 분명한 작품인데도, 그들에게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 비판받는 모습이 참으로 코미디”라고 밝혔다.





▲목숨을 건 잔혹한 데스 게임을 소재로 삼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그러면서 “좌파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비판에 뚜렷한 찬반이 갈리면서도(개인적으로 난 PC주의를 분명히 반대한다), 더 짙은 혐오와 차별이 철철 흘러넘치는 반기독교·반서구문명 코드에는 이리도 조용한 것 역시 코미디”라고 했다.




그는 “결국 작가이자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자본주의’ 사회 속 경쟁에 대한 문제의식이라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런 ‘부정적인’ 경쟁을 부추기는 ‘악의 축’으로 기독교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며 “(어떤 의미에서) 아주 정확하다.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미국식 서구 문명은 생기지도 않았을테니”라고 말했다.


책사는 “하지만 작가는 알까. 자신이 이렇게 작품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자신이 비판하는 기독교와 서구 문명의 산실인 ‘자유민주주의’라는 시스템에서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이라며 “역사와 사상을 어설프게 아는 ‘순박한’ 이들은 썩은 열매가 있다고 나무 그 자체를 썰어버리는 우를 범한다. 작가는 미국식 자본주의(기독교+서구 문명의 산실)의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인 영화문화산업 군에서 큰 부와 명예와 권력을 획득한 ‘자본가들 중의 자본가’이다. 싫든 좋든 이게 팩트”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과도한 경쟁으로 우리 삶이 피폐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근 100년 동안 1억 명 가까운 대학살을 자행한 소련과 중국, 북한 사회보다는 분명 옳다. 자정 능력이 있는 시스템과, 눈에 거슬리면 죽여버리고 가둬버리는 독재는 근본이 다르다. 비교가 불가하다”며 “<오징어게임>의 잔혹함은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과 중국에서 자행되고 있다. ‘인민’의 생명을 짓밟는 ‘참가자 1호’는 아직 저 북한에서 돼지처럼 먹고 논다. 실로 이 작가를 포함해 좌경도된 많은 예술계 종사자들의 근시안적 관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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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여,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해 주세요”
| 입력 : 2021.10.03 08:16

10월 첫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총회장 이취임 감사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
“한국교회여,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해 주세요.”


최근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한 관심이 가히 폭발적입니다. 오죽하면 추석 연휴에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으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넷플릭스 TV 부문 시청률 1위에 오를 정도로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감독은 10년 전부터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방송사나 영화사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아, 제작을 하지 못하고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받아준 것입니다. 왜냐면 넷플릭스 회사의 모토는 ‘창작의 자유 보장’이기 때문에, 어떤 주제나 소재의 제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는 실업자, 신용불량자, 소매치기, 조직폭력배,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여성 출소자, 시한부 환자 등 돈에 쫓겨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는 절박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총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1번부터 456번까지 참가자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등 총 6개의 게임을 통과해야 합니다. 최후의 승자만이 456억 원을 받게 되고, 게임에서 탈락한 사람은 총에 맞아 죽습니다.


영화는 너무나 잔인하고 선정적이며 엽기적인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이 영화는 자본이라고 하는 맘몬의 신에 영혼마저 빼앗겨 버린 채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적 생존게임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보여주는 메타포라고 할 수 있지요.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저 같이 바쁜 일정을 보내는 사람이 어떻게 총 9편으로 구성된 드라마를 다 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현 시대의 사회현상과 문화적 흐름은 알아야 하기에, 비서실에서 다운 받아준 영상을 부분적으로 보고 총체적인 이야기는 몇 부교역자들과 제 아들이 정리해 준 자료와 크리스천투데이 이대웅 기자가 쓴 기사로도 읽었습니다.


드라마를 본 기독교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너무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폄하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설정하여 보기 불편하더라는 것입니다.





▲지영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기독교 비하를 위한 목적으로 소비되는 캐릭터, 244번 기독교인 참가자.
데스 게임에 참가한 244번 참가자는 위기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혼자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러다가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을 할 때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주저하는 앞 사람을 뒤에서 밀어 죽인 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합니다.




240번 참가자 지영은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면서,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인 아버지를 자신이 칼로 찔러 죽였는데, 그 아버지가 목사였다고 말합니다.


왜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 혐오적인 이미지를 조장하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는지 분하기도 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욕망과 탐심, 생존 본능을 들추어내고자하는 의도라면, 왜 굳이 기독교인만을 특정하여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국내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드라마라고 하는데, 그들의 눈에 기독교의 모습이 어떻게 이미지화 되었을지를 생각하면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지금 현대 사회는 극한의 생존 서바이벌 게임에 함몰되어, 영혼마저 빼앗긴 채 서로 죽고 죽이는 오징어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비극의 데스 게임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 중 과반수만 반대를 해도 언제든지 게임을 멈추고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참가자들은 거액의 상금에 눈이 멀어 끝까지 멈추지 못하고 죽음의 질주를 합니다.


그 죽음의 질주 끝에 최후 승자는 고향 후배 상우(박해수 분)를 제친 성기훈(이정재 분)이었습니다. 그는 456억의 우승 상금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지 못하고 노숙자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던 중, 오징어 게임의 설계자를 만납니다. 그 설계자 역시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오징어 게임을 만든 이유는 오로지 심심해서, 재미삼아였다고 말합니다. 또한 성기훈에게 인간을 신뢰하느냐고 물으며 또 다른 노숙자 게임을 제안하더니, 갑자기 병상에서 죽고 맙니다. 아무리 창작의 자유를 존중한다 하더라도, 이 드라마는 반인간적이고 패륜적인 모습을 지나치게 표출시키고 말았습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소개 화면.
저는 목회자로서 오징어 게임에 나타나는 탐심과 증오, 분노의 표출들이야말로 오히려, 인간 세계의 유일한 희망의 출구는 사랑과 희생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의도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잃어버린 채,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한국교회에 그래도 다시 한 번 구조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평론적 해석도 해 보았습니다.


이 오징어 게임을 본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제발,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해 달라고, 부디 데스 게임에 몸을 맡긴 채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 상처 입은 영혼들을 사랑으로 안아주고 손을 잡아 구원해 달라고 말이죠.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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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목사 “‘오징어 게임’ 같은 이 시대 속, 교회의 역할은…”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입력 : 2021.10.01




▲목숨을 건 잔혹한 데스 게임을 소재로 삼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김학중 목사(안산 꿈의교회)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이정재·박해수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해 SNS에서 언급했다.

바빠서 프로그램 전체를 보지 못하고 요약해 놓은 짧은 클립만 봤다는 그는 “한 사람이 죽어야 내 앞에 쌓이는 1억,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 저 돈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커지는 순간은 언제일까”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두려움’으로 게임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 ‘기대감’으로 게임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라며 “이 게임에서 지는 순간은, 어쩌면 육신의 죽음보다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더 커지는 바로 그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인간성’의 함몰과 ‘진실한 관계’의 상실. 과연, 그 게임장 안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에, 진실한 우정과 사랑은 가능할까”라며 “헛된 ‘기대감’은 훌훌 털고, 옥죄는 ‘두려움’은 극복하고…, 그 진실한 우정과 사랑의 단초를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이 스친다”고 말했다.


끝으로 “오징어 게임장과 같은 이 시대 속 복음과 교회, 그리고 크리스천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단상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