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7

[애들레이드 장로교회] 소요리문답 해설 1부 1과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

 소요리문답 해설 1부 1과^사람의 제일목적


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애들레이드 장로교회]

: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1) 그를 영원토록 즐거 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4:11).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73:25, 26)



I. 세상과 인간의 기원(존재 이유) 대한 답을 어디서 얻을까? 

1) 답은 창조주만이 있습니다.

이 우주만물의 존재의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는 누구인가?

우리 생명의 발생의 원인을 말해 줄 수 있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사람들은 그 답을 찾기 위하여 무척이나 노력하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인간의 편에서 나온 최고의 답은 모든 것이 우연이라는 답입니다.

우연히 진화되어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모든 존재의 이유는 "우연"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게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창조주가 계시고, 그 창조주는 인격과 지성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십니다.

이 세상은 그의 지성과 인격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그의 완전한 목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하나님은 모든 만물 중에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니까 만물의 존재 이유, 특히 인간의 삶의 목적은 인간 속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를 창조하신 분만이 답을 주실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

그 창조주의 계시인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이 원래 하나님의 참된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자기 중심보다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다고 밝히십니다.

죄가 만물을 파멸시키기 전, 인간의 유일한 생각과 욕망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 분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담이 처음 하나님을 거슬러 범죄했을 그때, 모든 것은 변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분이신가를 생각하는 대신에 자신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그 자신이 위대해질 수 있다면 무엇과 같이 될 것이며, 얼마나 그 자신을 즐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삶의 모든 활동이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즐거워하는 가운데 수행되어 졌던 삶이 이제는 삶의 모든 활동이 자신을 섬기고 즐거워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두 상태의 차이를 보도록 합시다.


[그림 A]는 창조된 본래의 인간 (아담)을 나타냅니다.

이 그림은 삶의 모든 활동이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즐거워하는 가운데 수행되어짐을 보여 줍니다.

 [그림 B] 죄 중에서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을 나타냅니다. 이 그림은 삶의 모든 활동이 자신을 섬기고 즐거워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3) 이타적으로 사는 같지만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서 사는 인본주의적

[그림B]의 설명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그를 즐거워하기 위해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어떤 이상이나 철학을 구현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 듯한 여러 가지 일들에 헌신합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은 국방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철학적 이상이나 민족 해방, 가난자의 구제 등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인류의 행복을 추구할 것입니다.

최대 다수를 위한 최대 유익의 공리주의적인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인류의 행복을 추구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최대 다수를 위한 최대 유익이 란 사상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 역시 [그림 B]에서 볼 수 있는 동일한 개념의 삶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인간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주된 목적이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는 실제로 그는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이니 이는 그도 역시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자들은 다만 진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 신자들 뿐입니다.

삶의 주된 목적이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는 실제로 그는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이니 이는 그도 역시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음으로 마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그를 즐거워하기 위해 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4) 성경은 우리의 삶의 창조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누가 이 원래의 창조 목적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요?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이해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 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자들은 다만 진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 신자들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신이라 부를 수 있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가 있는 이유입니다.

II.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자연과 인간의 차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미 충분히 영광스러우신 분이기에 우리가 그를 더욱 영화롭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우상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데로 멋있게 꾸미기도 하고, 높이 올려 놓기도 함으로써 더 영광스럽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든다.”란 뜻이 아닙니다. 이미 언급한데로 하나님은 이미 완전하게 영화로우시며, 영원부터 영화로우십니다. 그러므로 그로 말미암아 창조된 어떤 것도 이미 영화로운 그 분을 더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이미 존재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한다(to reflect)" 또는 "반영한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19:1).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는 하나의 거울과 같으며, 그 거울을 들여다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 온 우주만물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그것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그 분 안에 기뻐하는 것을 위하여 초대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우주 만물, 즉 자연은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므로 선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초대되었다는 것은 이 일을 자원하여 할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 부여되었습니다. 이것을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합니다. 물론 그런 면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지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그의 아버지를 섬기던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17:4).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기를 원하신 바를 행하셨습니다. 그가 그것을 하신 것은 하나님이 원하셨고 또 예수님 자신도 기쁨으로 그것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원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고, 또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축복스러운 초대를 받았고,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며 불손종하고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주의 뜻에 순복하고 살아감으로 그 분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리모트 컨트롤 하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물건이나 동식물로 만들지도 않으셨습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셨고 인격을 가진 영적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창조되어진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이자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III.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가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사람들은 왜 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간혹하 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눈을 감게하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거부하고, 또 반발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 돌리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그들에게는 공허하게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이야기로 치부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인생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어야지..."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주장입 니다.

진정으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믿는 자는 물론 하나님께 그 베푸신 구원을 인하여, 그리고 인도하시는 사랑의 섭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립니다.

반면에,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려 한다 할지라도, 심지어 하나님 섬기기를 고의적으로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지배 아래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든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하리요”( 9:21-23).

이 말씀은 즉, 구원 밖에 있는자, 즉 유기된 자(버려진 자)나 구원 받은 자나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들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원 받은 자들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란에 대한 찬송이 드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버려진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가 나타나게 될 것이고, 그 공정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 차이란, 곧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버려진 자들)에게는 그들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위해 심판하시며,

구원을 받는 자는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 분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누가 주님의 예정 가운데 있는 지인지 죽는 순간까지 남을 판단하도록 알 지는 못합니다. 예수님 한편에서 마지막 십자가 상 구원을 받은 강도는 그 누구도 그가 예정 가운데 있는 자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자신이 구원받은 자인지 아닌지를 알 것입니다. 자신에 예수를 지금 믿고 있는 지 아닌지는 자신이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2,13)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위 속에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열매를 보면 그 뿌라를 알 수 있듯이 약간의 짐작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고, 또 권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의 장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는 자는 구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것이고, 믿지 않는 하나님의 공평한 진노로 역시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여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만물이 걸국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마지막, 최고의 목적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할 때에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IV. 성도의 삶은 신앙과 일반 삶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영역은 일반 직장, 학교, 집안 가정 생활, 친구들과의 교제, 여가, 교회 일 등 여러 가지로 구분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일과 일반일을 구분하여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 생활은 교회와 연관된 삶, 즉 예배, 전도, 봉사 등이고, 그 외에는 신앙생활과는 구분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이렇게 신앙생활과 일반생활을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삶이 예배의 연장입니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그러므로 일반 삶을 통해서도 우리는 연장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동시에 어떤 사람이 복음을 전한다고 교회 일을 한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츨릴 수도 있습니다.

많은 전도자가 거짓 교리를 전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기도 합니다.

반면에 많은 기독 신자들이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성경의 원칙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마치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로 살아가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지요.

결코 신앙의 시간과 일반의 삶이 분리되어 신앙 따로 삶 따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그는 모든 시간과 활동을 불문하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으로 하여야만 합니다.

성실한 작업, 건전한 휴식은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거나, 불신자에게 전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 신자의 인생관은 삶의 전부가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이름을 찬양하며, 그에게 예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기 전까지는 삶의 모든 영역들이 결국 "" 중심의 이기적인 삶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 돕는 것도 결국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후에는 그 모든 삶의 영역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이 된 것입니다.

결코 거듭난 자의 삶이 이 세상과 분리되어 오직 예배만 드리는 수도사의 삶을 의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안에서 삶의 모든 영역을 통틀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산제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영역을 나누어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 중심으로 구성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일부분은 하나님이 안 계신 영역은 없는지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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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이 교리문답에서제일되는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본인의 말로 설명하여 보세요.

 

2.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누가 정의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영화롭게 하다.”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4.        죄를 지은 후 인간은 무엇 중심이 되었는가?

5.        참된 신자의 삶은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은 우리릐 삶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인가요?

6.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 중에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것 같은 이타주의 적인 삶이 결국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못 미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7.        자연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것 사이엔 방법적인 차이가 있습니까?

8.        불신자나 행악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나요? 그 이유를 설명하여 보십시오.

9.        삶의 어떤 부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설교자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보다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요? 그 이유를 설명하여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