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보다 감정과 정서가 행복에 중요한 열쇠다”
입력2021.08.04.
조현 기자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①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노는 것과 휴식 구분하는 게 좋아
놀기=창조·연결 위한 에너지 쓰기
휴식=에너지를 저축하는 것
너무 심하게 불안하면 정신적 장애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은 되레 좋아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행복의 척도 바꾸면 즐거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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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의 지혜를 전해준 멘토 김경일 교수. 조현 기자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해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첫번째 인생멘토는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51)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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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는 고려대 심리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 해결, 창의성을 연구했다. 김 교수의 인지심리학 강의는 아주대에서 여러 차례 ‘최우수 강의’로 선정된 바 있다. 아주대 창의력연구센터장과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거쳐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에 이어 최근 출간한 <적정한 삶>(진성북스 펴냄)을 통해 불안을 건너는 인지심리학적 통찰을 전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인사동 플라톤아카데미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방송과 강사로 불려 다니느라 무더위에도 연일 강행군인데도 그는 미소년 같은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적정한 삶’이란 그 유연함에서 샘솟는 듯했다.
그의 장점은 상식적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해주는 데 있다. ‘너 왜 그렇게 감정적이냐’며 ‘감정적’인 것을 죄악시하는 고정관념에 대한 역발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감정과 정서야말로 행복을 좌우하는 열쇠”라며 ‘적정한 삶’을 위한 ‘적정한 감정’을 강조했다. 세계 어느 곳보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는 이기적 사람보다 이타적이고 협조적인 인간이 더욱 오래 살고, 더욱 창의적이라는 점을 심리학 연구 결과를 통해 강조한다.
그는 한국인들의 불안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우려가 큰 한국인들의 갈등과 다툼에 대해서도 “오히려 역동적으로 싸우며, 관계를 중시하는 관계주의 문화를 지닌 한국인들이 다변화한 사회에 더욱더 잘 적응할 수 있다”고 고무찬양해준 것도 그다운 독려다. 그는 ‘생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히는’ 인지학자답게 팬데믹의 족쇄를 풀고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비법을 유쾌하게 전했다. 일문일답이다.
-한국인들은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돈 벌고, 뛰는 걸 잘 그치지 못한다. 왜 그럴까?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 행복 연구자들에 따르면 ‘아난다마이드’라는 신경전달물질이 행복감을 가져다 주는데 한국인들에게 이게 적게 나온다. 동아시아권이 대부분 그렇다. 한국인들이 열심히 사는 것은 일차적으로 뇌 자체가 쉽게 행복해지지 않아서다. 통계치를 보면 한국인은 세계에서 노동시간도 1등, 노는 시간도 1등이다. ‘너 뭐해’ 물으면 ‘집에서 논다’고 하지만, 뭔가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노는 것과 휴식을 구분하는 게 좋다. 휴식은 에너지를 저축하는 것이고, 노는 것은 창조와 연결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놀 때 노는 3분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인은 노는 것을 욕하는 경향이 있다. ‘자알 논다’, ‘놀고 자빠졌네’라고 말이다. 세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행복해진다.”
-한국인들이 유독 남들과 비교 경쟁하는 소유욕이 강하지 않나?
“최진석 (전 서강대)교수의 말처럼 이제 선진국 개념이 아니라 선도국 개념으로 가야 할 때다. 선진국은 많이 가진 나라다. ‘한국의 아이들처럼 놀고 싶고, 저들처럼 하고 싶고, 되고 싶고, 닮고 싶다’는 이들의 모델이 선도국이다. 한국이 아무리 가져봤자 큰 나라들보다 많이 가지기 어렵다. 물리적인 자원으로 국가의 부를 따질 때는 선진국이 유리하지만 이체 초현실, 메타버스가 일상화되는 시대다. 이제 그런 나라, 그런 사람들이 ‘한국인을 따라 하고 싶다. 저들처럼 되고 싶다’는 선도인이 되는 게 좋다.”
-한국인들은 유달리 불안이 크다는데, 그것도 심리적으로 문제가 되나?
“만약 내일이 시험이라면 불안해하는 게 맞다. 그래서 하던 놀이나 게임 중단하고, 티브이도 그만 보고 시험공부를 하는 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실제로 학점이 좋고, 일을 잘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을 보면 평균보다 약간 더 불안하다. 너무 심하게 불안하면 정신적인 장애지만,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은 문제가 될 게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성보다 감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너 나한테 감정 있냐’, ‘감정 조절이 안 돼?’라고 하는데, 감정이 부정적인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다. 만약 감정 영역이 망가지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악수를 두고 만다. 이성만 발달하고, 감정이 망가진 유형이 소시오패스다. 감정이 없고 이성만 남으면 자녀도 죽일 수 있다. 계산해보니 ‘내가 왜 애를 돌보느라 이 고생을 해야 하지’ 한다. 그러나 지적장애인은 계산하는 데는 문제가 있어도, 감정적으로 자녀를 안아주고 보살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회적으로도 지적장애인보다 계산과 이성만 발달한 소시오패스가 훨씬 위험하다. 결국 히틀러 같은 소시오패스는 가장 빨리 강자의 위치에 도달하지만, 가장 빨리 내려오게 된다. 오래 생존하는 이들은 감정이 발달한 이들이다. 따라서 내 자녀가 오래 생존하기를 바란다면 얼마나 구구단을 빨리 외고, 영어를 빨리 읽느냐보다 감정이 제대로 발달했느냐를 중시해야 한다. 오직 지적능력만 갖춘 사람으로 키우면, 결국 가장 빠르게 도태된다. 적절한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적절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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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의 텔레비전 강연 모습. <티브이엔>의 <어쩌다 어른> 화면 갈무리
-그렇다면 지적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이들보다 이성과 계산만 발달한 사람을 장애인으로 불러야 하지 않나?
“그렇다. 과연 우리가 지적장애인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 반인륜범죄자들은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이 아니라 감정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인류가 수십만년 동안 누구를 오래 살려뒀나. 능력 있고 못된 인간, 감정에 문제가 있는 인간 즉 그런 독재자들이 힘이 셀 때는 숨죽이고 있지만, 힘이 약해지면 거세게 그들을 제거해왔다.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긴 것도 감수성이 더 발달해서다.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기본적인 지적능력은 필요하지만, 감정과 정서야말로 필수적인 요소다.”
-감정과 정서, 어떨 때가 문제인가?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아파야 할 때 아프지 않은 게 가장 문제다. 감정적으로 처리한다고 하면 수긍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은 우린 감정적이다. (기자의 옷을 만지며) 이 옷은 왜 샀는가. 뭔가 감정과 정서가 반응해서 구매라는 판단에 이른 것 아닌가. 이성만 가지고 판단하는 게 아니다. 자기감정을 모르면 답답하다. 20대가 ‘내가 저 차를 정말 좋아할까, 살까 말까’ ‘ 내가 저 여자를, 저 남자를 사랑하는 걸까 아닐까’, 자기감정을 몰라서 답답하다. 자기감정을 아는 능력이 ‘메타 인지’다. 심리학이 다음에 갈 영역이다. 자기가 짜장면을 좋아하는지 짬뽕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중국집에서 짬짜면을 내놓고, 탕수육까지 삼등분한 메뉴를 내놓겠는가.”
-‘오늘 점심때 뭘 먹지’ ‘오늘 누구를 만나지’ ‘주말에 뭐하지’, ‘어떤 영화를 볼까’ 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며 결정을 못 내리는 것도 이성과 논리 탓이 아니라 정서나 감정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건가?
“결정을 내릴 때는 느낌이 동반되어야 한다. ‘점심때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는 ‘무엇을 먹고 나서 더 만족할까’가 명확해질 때 판단할 수 있다. 그런 게 명확하면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도 쉽고, 스트레스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저녁에 시원하게 ‘치맥’을 할 생각을 하며 행복해지면 스트레스받는 일도 좀 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 행복은 목표가 아닌 도구다. 오늘 행복감을 느끼면 내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행복감을 좌우하는 게 정서다. 오늘도 무덥고 일이 많아 지쳤는데 아내에게 ‘돼지고기 고추장에 볶으면 맛있겠다. 소주도 차갑게 얼려줘’라고 하고 나니 저녁에 그것을 먹을 생각에 없던 힘이 생겼다.”
-한국인들은 나보다는 ‘우리 집’, ‘우리 와이프’, ‘우리 아이들’이라고 ‘우리’를 앞세우니 나 자신의 감정을 더 모르는 것은 아닌가?
“일본은 집단주의라면 한국은 관계주의 문화다. 자기소개서 쓸 때도 자기 이야기보다 ‘나는 자상하신 부모 아래서 몇남몇녀 중 몇째로 태어났다’며 부모님과 자라온 환경 등 ‘관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역사 연구자들에 따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백년의 환란의 위기를 거치며 나보다 ‘우리’가 강해졌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미국 유학 중이었는데, 미국 방송들이 한국이 4강에 든 건 전혀 관심이 없고, 어떻게 5천만이 같은 색 옷을 입고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지에 충격을 받고 보도를 했다. 또 ‘너희들 구제금융 때 온 국민이 금을 모았다며?’라고 희귀동물 보듯 묻곤 했다. 함께 국난 극복하는 게 취미인 나라다. 집단주의인 일본은 세대 차이로 말이 안 통하면 아예 상대 안 하고 서로 다른 층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한국기업에 가면 임원들이 ‘어떻게 하면 저 젊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느냐’고 계속 물으며 관계에 고민한다. 관계주의에서는 관계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일본의 집단주의는 일렬종대로 세우니 문제나 잡음이 적다. 관계주의는 이 관계, 저 관계 때문에 역동적이며 시끄럽다. ‘코로나 시대’임에도 여야가 쉬지 않고 싸우는 놀라운 나라가 우리나라다. 산업사회에서는 집단주의가 성장의 원동력이 됐지만, 다변화된 사회에선 역동적인 한국이 훨씬 잘 적응해간다.”
-한국의 갈등과 다툼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은데 어떻게 보나?
“싸움을 외면하면 안 되고, 잘 싸워야 한다. 부부끼리도 싸움을 회피하는 경향이 짙은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맨날 싸우는 거 보고 무서워서 ‘냄비근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싸움을 외면하면 끝난 관계다. 안 싸우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잘 싸우고, 싸움에서 잘 빠져나오는 게 좋다. 일본인들은 뜨겁게 타오른 적이 없어서 ‘냄비’라는 안 좋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업하는 분들은 일본이 갈라파고스섬처럼 고립되어간다고 본다. 다행히 한국은 관계주의 문화여서 다양한 관계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 관계주의라고 해도 젊은이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한 관계주의이고, 어른세대는 집단주의 성향이 더 강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조직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애들 군기가 빠졌다’는 말을 잘한다. 군기가 센 게 좋은가?
“자율성과 타율성 중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군기가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타율적인 환경에서는 굳이 창조성을 발휘하지 않고,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해도 잘했다는 긍정적 착각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서는 상관에 대해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을 군기가 잘 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미군이 제정신을 차리고 싸움에 임한 뒤엔 일본군은 제대로 싸운 적이 없다. 소대장이 죽으면 40명이 몰살당하고, 중대장이 죽으면 중대 120명이 다 죽고 말았다. 가치에 충성하지 않고 사람에게 충성하면 그 사람이 사라지면 와르르 붕괴된다. 자기 상관에게만 충성해서 다른 지휘관의 지휘를 못 받아 병종 병과 간 협조가 엉망진창이었다. 전쟁은 바보처럼 하면서 식민지 약자를 괴롭히는 데만 발휘되는 창의적인 문화는 대단한 문화로 봐줄 수 없다. 반면 미군 중 누구도 루스벨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은 없었지만, 다른 부대와는 능동적으로 협조해 전쟁에 승리했다. 사람이 아니라 가치다. 천재라는 것도 한국에서 구글 검색하면 아인슈타인이 나오는데, 미국에서 구글을 치면 전구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천재로 보는 것이다.”
-<적정한 삶>에서 심리적 아픔도 몸을 다친 것과 같아서 사별, 이혼이나 갈등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 때도 진통제가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인가?
“2011년부터 심리학 연구에서 관찰된다. 사람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면 그가 휘두른 칼에 맞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럴 때 정신력으로만 이기려고 하는 건 오만이다. 몸을 다친 것처럼 맛있는 것도 먹고, 맺힌 것을 풀어 주면서 보살피라는 이야기다. 한국인들은 워낙 머리도 좋고 열심히 살아서 정신력에 대한 환상이 많다. 그 결정판이 스포츠 중계 때 나온다. 한국 선수들이 후반전에 지쳤을 때 ‘이제 정신력으로 싸우라’고 한다. 대부분 정신력과 체력은 거의 같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의 바둑 스승이 ‘네가 막판에 대국을 왜 망치는 줄 알아. 체력이 떨어져서 그래’라고 하지 않은가. 막판에 순간적으로 뽑아내는 의지력이 있긴 하지만. 매일 한일전처럼 싸우다간 죽는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엔 애착이 필요하다. 애정보다 더 위가 애착이다. 교사가 애정을 가지고 지도하겠다는 것은 실은 애착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애정은 이성 간의 성적인 측면이자 흥분성이라면 애착은 인간 대 인간으로 가지는, 가까이 묶이고 싶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면서 숭고한 욕구다. 애착이 만들어진 관계는 서로 싸우지 않고, 많은 것을 거저 줄 수 있다. 누군가 ‘부부간에 애정이 변했다’고 하면. ‘이젠 애착을 가지고 살아라’고 권한다. 부부는 2년간의 애정에 속아 50년의 애착으로 살아간다. 한국인은 애착 형성이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잘 돼 있다. 서양선교사들이 150년 전 한국에 들어와 놀란 것이 부모도 아닌 조부모까지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늘 안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린 안아주고 업어주는 애착문화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 자식 간, 어느 나라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게 한국인들 아닌가?
“너무 애착이 잘 형성돼 있어서다. 사춘기 아이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부모는 애착의 훈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사춘기는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이니, 잘 붙은 애착을 떼어 내려면 얼마나 난리를 쳐야겠나.”
-이기적이고 힘센 종이 멸종하는 반면 오래 살아남은 생물종과 공동체의 특성을 이타성으로 보았는데, 실제 그런가?
“전쟁에서 이긴 쪽은 적군의 왕과 대장부터 죽인다. 서로 보듬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친 사람을 돌보고, 타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민초들의 자손들이 더 오래 살아 남았다. 이타적인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자’ 식이 아니라, 적정하게 경쟁하고, 적정하게 취하고, 적정하게 나눠준다. 내 아이가 자기 것을 다 퍼주고 다른 아이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안된다. 그건 이타주의가 아니다. 이타주의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도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최상위권 아이들은 꼴찌들을 가르쳐 주면서 막연했던 지식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제 이타주의는 역량이다. 기업들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요시한다.”
-창의성도 버릇없고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더 있다고 한 이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순간적으로 우연히 나올 수 있지만, 저 혼자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훈수도 필요하고 협동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부적응적이거나 이기적인 인간은 단 한 두번의 ‘창의’는 가능하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 심리실험에서도 같은 문제를 내주고, ‘창조적으로 해결하라’고 했을 때보다 ‘친한 친구를 도와주라’고 했을 때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태안 앞바다가 기름으로 덮였을 때도 봉사에 나선 국민이 모두 과학자가 된 듯 창의적으로 기름을 걷어내지 않았나.”
-부모들은 시험을 앞둔 아이를 친구들과 비교하며 자극하곤 하는데, 그게 효과가 있나?
“그런 비교는 ‘옆집 아이도 낙제에서 빠져나오는데 넌 못 빠져나오냐’처럼 나쁜 상황을 피하도록 회피 동기를 자극할 때만 힘을 발휘한다. 한일전을 할 때 하루나 이틀 전에 하면 효과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그런 비교로 압박감을 가중시키는 것은 오히려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게 심리실험 결과다.”
-해리 프랭크퍼트가 쓴 <개소리에 대하여>를 자주 언급하며, ‘대중을 현혹시키는 허튼소리’인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들이 ‘개소리’에 잘 현혹되는가?
“종교적 신념이 비뚤어지게 강한 자. 이상향에 대한 강박 관념이 강한 자가 그렇다. 사람들은 맞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믿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믿는다. 개소리는 진심으로 하는 헛소리다. 거짓말과는 다르다.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개소리장이는 진심으로 말한다. 독일인들도 히틀러의 개소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선거의 허점은 진심으로 이야기한 것은 옳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데 있다. 히틀러 이후에도 진심으로 개소리하는 이들이 지지를 받아 많이 당선됐다. 고학력자라도 지적 수준이 낮으면 본질이 아닌 진심만 보려 한다. 그러니 팩트 체크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게 진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개소리장이는 욕구를 감추기에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기에 그들은 파괴적이다. 그들이 결국 개소리장이인지 아닌지는, 파괴적인지 공존하게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떻게 해야 개소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가?
“자기 욕구는 솔직히 이야기하기 싫은데, 자기 느낌은 정당화 하고 싶은 사람들이 개소리를 많이 한다. 미국 심리학자들이 ‘귀여운 개소리장이’로 거론하는 트럼프도 ‘이거 나를 위한 거라고’ 자기 욕구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다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임원이 사장과 만남을 앞두고 회의를 소집해 ‘이 회의는 다 여러분들 잘되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그건 개소리다. 대신 ‘나를 위한 회의야. 여러분들 아이디어를 다 뽑아내고 싶어’라고 자기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면서 ‘나 사장님한테 인정받고 싶어. 내 이기심을 채워줘’라고 허심탄회하게 말하면 직원들도 진심으로 돕게 마련이다. 히틀러는 자기 욕구를 감춘다. ‘게르만족을 위한 전쟁’이라고 하고, ‘내가 죽으면 독일도 죽는다’고 한다. 개소리다. 개소리장이들에게 가장 쉽게 현혹되는 사람들도 자기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뭔가를 쉽게 얻으려는 이들이다.”
-대부분이 ‘돈이면 행복할 수 있다’며 ‘돈돈돈’ 하는데, 심리연구에선 어떤가?
“무일푼이었다가 연 소득이 만불이 되면 당연히 행복감이 상승한다. 행복감은 수입이 늘수록 상승하는데, 그 분기점이 7만~8만달러 정도다. 그때부터는 수익이 늘어난다고 행복감도 그만큼 늘지는 않는다. 연봉 8천만원에 이르면 이제 돈이 아닌 다른 요인이 얹어져야 행복감이 상승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의 상한선은 연봉 8천만원쯤이다.”.
-같이 로또에 당첨되고도 불행해지는 사람과 행복해지는 사람의 차이는?
“돈을 버는 것만 목표로 삼고, 돈을 벌면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적이 없으면 큰돈이 생겨도 행복해지기 어렵다. 그 돈으로 뭔가 하고 싶은 게 없이 돈만 모은 사람은 이 돈을 빼앗기지 않을까 불안해져 돈이 형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부자가 아닌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살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지만 부잣집 자식들은 ‘남을 믿어선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 남을 믿을 수 없으니 얼마나 힘들 것인가. 자기가 돈을 얼마를 벌면 무엇을 할 것인가 ‘위시리스트’(소원 목록)을 작성해두는 게 좋다. 목적이 없으면 돈이 생기고 건물주가 되어도 갈수록 삶이 허망해진다. 돈은 소원을 풀기 위한 도구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적정한삶>에서 행복의 척도를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바꾸라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다른가?
“‘원트’와 ‘라이크’가 거의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를 앞세운 관계주의 문화에서는 둘이 다른 경우가 많다. 너무 원했지만 실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게 부러워서 비싼 값을 주고 산 옷과 신발, 가방은 사놓고 보면 정작 좋아한 게 아니어서 흥미를 잃을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비싼 돈 들이지 않고도 남들이 가진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
-칭찬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고, ‘정확한 칭찬’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정확한 칭찬’이란?
“바둑으로 치면 질 좋은 복기다. 첫째 재능보다는 과정과 노력을 칭찬해야 한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 조금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면, 진짜 조금만 한다. 재능만 칭찬받는 경우, 노력의 성과가 안 나오면 바로 그만둬버린다. 재능에 칭찬받은 아이들이 부정행위도 더 많이 한다. 두번째는 방법을 칭찬하라는 것이다. 친구가 금연하고 있다면,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의지를 칭찬하기보다는 ‘방법이 뭐야’라고 물으며 자신의 전략을 스스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칭찬해주는 게 좋다. 의지만 칭찬받으면 결국 의지가 바닥날 때 금연도 끝나버리지만, 방법을 칭찬받으면, 의지가 바닥을 쳐도 다른 방법을 만들어 금연을 성공시켜간다.
조현(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