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구한말 선교사 알렌이 남긴 문서 3천 8백여건 대공개 - 교수신문
한국학중앙연구원, 구한말 선교사 알렌이 남긴 문서 3천 8백여건 대공개
이승주
승인 2021.08.10
- 1884년부터 21년간 조선에서 활동한 미국인 알렌이 남긴 방대하고 세세한 자료
- 세로로 쌓았을 경우 2.7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 3,869건, DB화 및 공개
- 동시대 서양인이 남긴 자료 중 가장 우수한 컬렉션, 한국 근대사 사료로 중요도 高
- 건양대 김현숙 교수 연구팀에 3년간 연구비 지원한 한국학진흥사업의 결실
- 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 누리집 통해 누구나 무료로 자료 열람 가능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은 구한말 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이 조선에서 활동하면서 기록한 3,869여건의 문서를 DB로 구축하여 연구자 및 일반국민에게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건양대학교 김현숙 교수 연구팀에 3년간 연구비를 지원하여 정리한 것으로, 의료 선교사로 알려진 알렌의 활동이 의료분야를 넘어 문학, 경제, 외교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루어졌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
미국인 의료 선교사 알렌은 개항 초기인 1884년 9월부터 1905년 6월 까지 약 21년 간 조선에 체류했다. 그는 조선에서 의사, 선교사, 경제인, 외교관, 정부 고용인, 고종의 참모, 번역가, 작가 등 여러 직업을 섭렵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에 관여하였다. 이때 생성된 다수의 문서들을 ‘알렌 문서’라고 부른다.
알렌 문서 생산자인 알렌은 주한 미국공사관의 전권공사라는 직위를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고종의 최측근으로 정권핵심에 있으면서 주미한국공사관 설치, 춘생문 사건, 아관파천, 독립협회, 하와이 이민 등 한국 근대사의 핵심적인 사건들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점에서 그가 남긴 방대하고 세세한 자료는 한국 근대사의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1884년 상하이의 상하이 머큐리(Shanghai Mercury)사에서 간행된 『한국에 대한 기록(Notes on Korea)』라는 제목의 책
금번 공개하는 3천6백여 건의 알렌 문서는 알렌이 1924년 뉴욕공립도서관에 기증한 자료를 전량 수집하여 일반 대중과 연구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다.
해당 문서를 세로로 쌓으면 2.7m에 달할 정도의 방대한 양이며, 여기에는 주한미국공사관 서류를 비롯한 각종 공문서와 지도, 사진, 신문 기사 등을 비롯해 알렌의 일기와 서신, 메모, 원고 등의 개인 문서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동시대 서양인들이 남긴 자료 중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또한 주제의 다양성 측면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우수한 컬렉션이다.
알렌이 조선에 들어온 직후 갑신정변이 일어났는데, 정변 세력에 의해 죽을 뻔한 민영익(명성황후의 조카)을 치료하여 조선 조정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경인철도 부설권 및 평안도 운상광산 채굴권을 미국에 주도록 주선하였고, 심지어 직접 광산용 목재 조달에 관여하는 등 경제인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DB에서 “금광”, “광산”을 검색하면 300건이 넘는 문서들이 검색된다. 당시 열강이 금광 채굴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들이다.
1889년에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흥부전」 등의 한국 문학을 알리고,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에 조선 악공들을 데려가 한국 음악을 소개하였으며,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하여 논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심은 그의 컬렉션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음악에 대한 글, 도자기의 목록, 한국과 세계의 고지도, 미술과 문학에 대한 미발간 저술 등이 그것이다.
알렌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에 체류한 서양인 중 TV 드라마 등을 통하여 일반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컬렉션은 연구자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관심을 유도할 수도 하다.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담은 촬영일자 미상의 사진
알렌 문서에 포함된 애국가 악보와 각종 초대장, 여권, 사진, 고지도와 고서, 미국공사관의 회계 장부, 알렌 개인의 가계부 등은 소설과 드라마, 연극, 영화 등 새롭고 유익한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서양인들이 남긴 한국 관계 문헌들은 한국학 연구에 있어 조선인이 아닌 외국인의 시선으로, 다양한 정보와 통찰을 제공해 왔다. 알렌 문서는 역사학, 정치외교학, 의학, 민속학, 문학, 신학, 미술사, 음악사 등 제반 분야에서 근대 전환기 한국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이 자료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자료들은 영어 원문과 내용 요약문으로 서비스 되고 있으나 향후 번역하여 이용의 편의를 도모할 예정이다. 해당 자료는“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 누리집(waks.aks.ac.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 검색방법 : 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 누리집 검색창에서 ‘알렌’ 입력 → 하단 ‘연구과제(1)’ 클릭 → ‘홈페이지’ 클릭 → ‘자료보기’ 클릭 → 좌측 ‘문서분류’에 따라 검색하거나 검색창에 직접 입력하여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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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공개하는 3천6백여 건의 알렌 문서는 알렌이 1924년 뉴욕공립도서관에 기증한 자료를 전량 수집하여 일반 대중과 연구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다.
해당 문서를 세로로 쌓으면 2.7m에 달할 정도의 방대한 양이며, 여기에는 주한미국공사관 서류를 비롯한 각종 공문서와 지도, 사진, 신문 기사 등을 비롯해 알렌의 일기와 서신, 메모, 원고 등의 개인 문서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동시대 서양인들이 남긴 자료 중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또한 주제의 다양성 측면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우수한 컬렉션이다.
알렌이 조선에 들어온 직후 갑신정변이 일어났는데, 정변 세력에 의해 죽을 뻔한 민영익(명성황후의 조카)을 치료하여 조선 조정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경인철도 부설권 및 평안도 운상광산 채굴권을 미국에 주도록 주선하였고, 심지어 직접 광산용 목재 조달에 관여하는 등 경제인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DB에서 “금광”, “광산”을 검색하면 300건이 넘는 문서들이 검색된다. 당시 열강이 금광 채굴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들이다.
1889년에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흥부전」 등의 한국 문학을 알리고,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에 조선 악공들을 데려가 한국 음악을 소개하였으며,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하여 논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심은 그의 컬렉션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음악에 대한 글, 도자기의 목록, 한국과 세계의 고지도, 미술과 문학에 대한 미발간 저술 등이 그것이다.
알렌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에 체류한 서양인 중 TV 드라마 등을 통하여 일반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컬렉션은 연구자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관심을 유도할 수도 하다.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담은 촬영일자 미상의 사진
알렌 문서에 포함된 애국가 악보와 각종 초대장, 여권, 사진, 고지도와 고서, 미국공사관의 회계 장부, 알렌 개인의 가계부 등은 소설과 드라마, 연극, 영화 등 새롭고 유익한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서양인들이 남긴 한국 관계 문헌들은 한국학 연구에 있어 조선인이 아닌 외국인의 시선으로, 다양한 정보와 통찰을 제공해 왔다. 알렌 문서는 역사학, 정치외교학, 의학, 민속학, 문학, 신학, 미술사, 음악사 등 제반 분야에서 근대 전환기 한국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이 자료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자료들은 영어 원문과 내용 요약문으로 서비스 되고 있으나 향후 번역하여 이용의 편의를 도모할 예정이다. 해당 자료는“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 누리집(waks.aks.ac.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 검색방법 : 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 누리집 검색창에서 ‘알렌’ 입력 → 하단 ‘연구과제(1)’ 클릭 → ‘홈페이지’ 클릭 → ‘자료보기’ 클릭 → 좌측 ‘문서분류’에 따라 검색하거나 검색창에 직접 입력하여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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