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8

Jaesoon Park 씨알 함석헌의 생명철학적 존재론

(3) Facebook

Jaesoon Park
1t3Spuohnsnlorlfed  · 
씨알 함석헌의 생명철학적 존재론(씨알사상연구원 발제에 대한 논평문)

김형근의 ‘저항 속에 존재하는 씨ᄋᆞᆯ: 하늘(ㅇ), 나(ㆍ), 저항(ᅟᅠᆯ)’을 읽고-씨ᄋᆞᆯ 함석헌의 생명철학적 존재론을 중심으로

박 재 순

나는 이미 김형근 씨ᄋᆞᆯ이 ‘청년씨ᄋᆞᆯ회’에서 발표한 글들을 여러 편 읽었으며 그가 진지하고 뛰어난 함석헌사상 연구자임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발표한 김형근의 글은 함석헌의 씨ᄋᆞᆯ사상에 대한 깊고 명확한 논의와 주장을 담고 있다. 그 내용과 주장은 내가 다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논쟁을 벌이거나 비판을 하고 싶은 내용은 없다. 다만 내가 강조하고 접근하고 싶은 관점과 지향점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관점과 지향점을 밝힘으로써 김형근 씨ᄋᆞᆯ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맞추어보려고 한다.
김 씨ᄋᆞᆯ의 글은 두 가지 독특한 주장과 관점을 담고 있다. 첫째 글 제목에서 ‘저항 속에 존재하는 씨ᄋᆞᆯ’이라고 함으로써 ‘씨ᄋᆞᆯ의 존재’를 ‘저항’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씨ᄋᆞᆯ의 생명활동 ‘ᅟᅠᆯ’을 저항으로 파악함으로써 생명의 근본 활동과 성격을 저항으로 제시하였다. 둘째 “씨ᄋᆞᆯ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실존적인 물음에서 시작하여 그 물음을 따라서 씨ᄋᆞᆯ사상의 핵심을 파고 들어간다.
이런 접근과 문제의식은 사회역사의 현실과 대중문화적 현실과 접촉점을 마련하고 현실과의 대화를 발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항’을 강조함으로써 씨ᄋᆞᆯ사상은 역사와 사회 속에서 혁신과 변화를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저항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연대 협력할 수 있으며, 투쟁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씨ᄋᆞᆯ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은 함석헌의 제자로 자처하거나 씨ᄋᆞᆯ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전하는 물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물질론과 기계론이 지배하는 현대산업문명 속에서 생명과 영혼을 잃고 헤매는 대중들을 일깨우는 실존적인 물음이 될 수 있다. 
김형근은 저항을 씨ᄋᆞᆯ 생명의 존재와 본성으로 파악하면서도 생명의 존재와 본성의 핵심에는 ‘자기초월’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씨ᄋᆞᆯ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내가 씨알이다. 씨알은 내 안에 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김형근의 이런 논의가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김형근이 도달한 씨ᄋᆞᆯ 생명의 자기초월과 “내가 씨ᄋᆞᆯ이다.”는 씨ᄋᆞᆯ의 자기선언에서 함석헌의 씨ᄋᆞᆯ생명철학이 비로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해방자와 창조자
함석헌은 ‘우리가 내세우는 것’에서 씨ᄋᆞᆯ은 “우리 자신을 모든 역사적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내기 위해 일부러 새로 만든 말”이라고 하였다. 그는 ‘씨ᄋᆞᆯ’에서 ‘ᄋᆞᆯ’을 이렇게 풀이하였다. “‘ㅇ’은 극대(極大) 혹은 초월적(超越的)인 하늘을 표시하는 것이고, ‘ㆍ’은 극소(極小) 혹은 내재적(內在的)인 하늘 곧 자아(自我)를 표시하는 것이며, ‘ᅟᅠᆯ’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라고 하였다. 또 함석헌에게 인간은 우주 자연, 생명 진화, 인간 역사, 신적 생명의 씨ᄋᆞᆯ이다. 인간 속에는 무궁한 과거와 영원한 미래의 생명이 씨ᄋᆞᆯ로서 심겨져 있다. 
이 짧은 글 속에 씨ᄋᆞᆯ사상의 생명철학이 담겨 있다. ‘우리 자신’이라고 함으로써 함석헌은 인간이 씨ᄋᆞᆯ사상과 실천의 주체적 참여자이고 당사자임을 밝혔다. 씨ᄋᆞᆯ로서 인간은 모든 역사적 죄악에서 자신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주체이며 자신이 스스로 해방하고 구원할 대상이다. 자신의 해방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해방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자신과의 대립과 갈등, 모순과 역설 속에 있다. 또한 인간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내야 할 존재다. 인간은 자신의 해방자이면서 새로운 창조자이며 자신의 해방과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내야 할 존재다.
씨ᄋᆞᆯ이 자신의 해방자와 창조자라는 관점에서 ‘ᄋᆞᆯ’에 대한 풀이를 볼 때 그 생명철학적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씨ᄋᆞᆯ로서 인간은 ‘극대 혹은 초월적 하늘’을 품은 존재이며 ‘극소 혹은 내재적 하늘 곧 자아를 지닌 존재로서 활동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이다. 하늘은 땅의 물질적 속박과 법칙을 초월한 것이다. 씨ᄋᆞᆯ의 생명은 땅의 물질에 터잡고 물질에 의존하여 살면서도 하늘의 초월적 자유를 누리며 실현한다. 더 나아가서 씨ᄋᆞᆯ은 자신의 역사적 죄악에서 자신을 해방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존재다. 역사적 생명으로서 씨ᄋᆞᆯ은 물질적 제약과 법칙적 속박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자신을 해방하고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초월하는 존재이다. 
함석헌 씨ᄋᆞᆯ사상의 생명철학적 존재론 
우주 만물, 생명진화, 인류역사, 신적인 얼과 혼의 씨ᄋᆞᆯ인 인간의 자아 속에는 물질, 생명, 감정, 지성, 영성, 신성의 심층적이고 입체적인 수많은 차원의 존재들이 압축되어 있다. 인간의 자아는 자기포기와 초월을 통해서 낮은 차원의 존재들을 승화 고양시킴으로써 보다 높은 차원들의 존재들을 구현해 간다.
함석헌의 존재론은 물질적, 관념적 존재론이 아니라 생명철학적 존재론이며 생명철학적 존재론은 주체적 자아의 존재론이다. “세계란 것이 먼저 있어 가지고 그 한 모퉁이에 내가 버섯 돋듯 나온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내가 벌써 있었고 내가 있음으로 세계가 있다. 나 가기 전에 누가 낸 길이 있어 그것을 내가 걷는 것 아니라 천지 창조하기 전에 아버지 안에 내가 벌써 있었고 내가 있을 때 내 안에 길이 있었다. 길 위에 내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207) 함석헌은 하나님과 씨ᄋᆞᆯ도 주체적 자아로 파악한다. “우주는 움직이는 우주요, 인생은 자라는 인생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되자는 이, 되어가고 있는 이다....‘있어서 있는 자’....‘나는 나다 하는 자다.’...‘나는 있으려는 자로 있으려는 자.’다.”(211) “우리는 터져 나가는 우주에 산다. 우리가 터져 나가는 우주다. 우주의 씨이다. 우주의 한 없는 겨레가 터져 나올 씨이다.”(새 삶의 길’ 함석헌전집 2권 1983. 212) “모든 있음[存在]은 그 속에서 피어나오는 정신에 자기를 양보해서만 생(生)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살이 사라짐으로만 정신은 살아날 것입니다.”(‘비폭력 혁명’, 함석헌전집 2권. 35)
생명철학적 존재론에서 존재, 있음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며 자기부정과 초월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고 창조되는 것이고, 생성과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이 둘이 아니요, 있음과 생각과도 둘이 아닐 것이다. 있다 하면 없는 것이요, 없다 하면 있는 것이다. 참 생각이야말로 있음이요, 참 있음이야말로 생각이다. 있다 함은 벌써 생각이 끊어진 것이요, 생각하면 벌써 있음은 깨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순이다···생명은 이것으로써 자기초월을 해 나간다. 인격의 본질은 자기초월이다. 제가 저를 아는 것이 긍정이면서도 자기부정이 된다...인격은 자기반성으로 자기부정을 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순간 자기는 자기 이상일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쉬임 없이 자기초월을 해나가는 것이 인격이다.”(‘인간혁명’ 함석헌전집 2권. 95) 생명은 자기부정과 초월을 하는 것이므로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고 창조되는 것이다. 주체적 자아의 존재는 주체적 자아의 활동(생각)과 대립과 갈등, 모순과 역설 속에 있다.
이러한 자기초월과 혁신의 존재론은 생명의 근본원리 ‘스스로 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하는 생명은 존재의 까닭과 이유, 동기와 목적을 자신 안에 가진 것이다. “인격의 본질이 자기초월이라는 말은, 생명의 근본은 스스로 함이란 말이다...모든 것은 결국 생명이 스스로 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우리 눈에 모순의 통일로 보이는 것은 우리 이성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이 설명 못한다는 것은 까닭을 알 수 없단 말이다. 까닭을 모르는 그것은 스스로 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까닭은 물건에 있지 생명에는 까닭이 없다. 그 자신이 까닭이다. 내가 사는 것은 까닭이 있어 사는 것 아니다. 그저 살고 싶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라시니까 산다든지 하나님을 위해 산다든지 하는 말은 결국 까닭 없다는 말이다. 까닭은 물적 이유, 원인이다. 정신에는 까닭 없다. 하나님은 까닭 없이 있는 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있어서 있는 자라 한다. 우리 생존 이유를 하나님에 붙인다는 것은 우리 생존이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순정신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정신은 까닭 없이 있어 모든 그의 까닭이 되는 것이다. 뜻이 만물을 있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격은 이 스스로 자존하는 데 뿌리를 박은 후에야 비로소 힘이 있는 생활 곧 자신(自新)해가는 생활을 할 수 있다.” (‘인간혁명’, 함석헌전집 2권. 95)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물질적 육체 안에 있는 것이며 물질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은 온전히 스스로 하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존재이며 물질과 육체의 물질적 속박과 법칙적 제약 속에 사는 존재다. 물질적 속박과 법칙적 제약 속에 살기 때문에 생명의 자유로운 본성과 사명을 거스르는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물질적 속박과 법칙적 제약을 극복하고 초월하여 자신의 죄악에서 벗어나 생명으로서 자신의 본분과 사명을 구현해야 하는 존재다.
함석헌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죄악‘은 인간 자신이 저지른 것이며 그 역사적 죄악에 사로잡힌 자아를 해방하는 것은 그 자아를 부정하고 초월하고 혁신하여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아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자기 부정과 초월, 자아혁신과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 새로운 자아로 되어가는 존재다. 생명과 생명적 자아의 존재(있음)는 늘 새로운 존재로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고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씨ᄋᆞᆯ이라야 산다.”는 함석헌의 말은 생각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자아)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부정과 초월을 통해 새로운 자아, 새로운 차원의 자아와 존재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석헌은 ’있음‘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면 생각이 끊어진 것이고 생각하는 순간 있음은 깨어지고 부정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생각, 의식, 정신은 생명과 자아의 존재를 깨트리고 부정하고 초월하여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고 형성하는 것이다. 스스로 하는 생명의 자발적 주체로서 자아는 물질(육체)적 자아(물질 육체적 존재)와 관념적 자아(관념, 지식적 존재)를 깨트리고 부정하고 초월하여 스스로 하는 자발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물질적 관념적 존재와 순수한 자발적 주체로서의 자아는 대립과 모순, 갈등과 역설의 변증법 속에 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은 생명과 정신을 물질적, 관념·논리적 인과관계를 벗어난 것으로 이해했다. 모든 물질과 관념은 자기밖에 원인과 결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하는 생명의 주체적 자아는 제가 저의 까닭,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제 안에 있다. 그러므로 자아를 잃은 것이 모든 간난과 폐해의 근원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이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일, 자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 일이 백 가지 병, 백 가지 폐해의 근본원인이 된다. 나를 잊었기 때문에 이상이 없고 자유가 없다. 민족적 큰 이상이 없기 때문에 대동단결이 안 된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전집 1권. 1983. 297)  
전통적 존재론과 생명철학적 존재론의 차이
인간의 생명과 자아에 대한 함석헌의 논의는 생명철학을 드러낸다. 생명은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한 것이다. 생명체는 물질적 육체를 가진 것이면서 비물질적 초물질적 정신(의식)을 가진 것이다. 생명의 생명다운 특징과 본질은 비물질적 초물질적인 데 있다. 생명의 근본 특징과 원리는 스스로 하는 자발적 주체성, 통일적 전체성, 창조적 진화성이다. 주체성과 전체성과 진화성을 관통하는 원리는 ’나‘(자아)다. 스스로 하는 주체가 나이고 전체의 통일적 초점과 중심이 나이며 진화의 동인과 목적, 주체와 대상도 나다. 생명의 본성적 특징과 원리인 주체, 전체, 진화, ’나‘는 물질적으로 측정되거나 계산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의 주체인 ’나‘, 자아는 물질, 육체적 자아에 대하여 끊임없는 부정과 초월을 통해서 새로운 자아로 진화 고양 향상 초월하여 초월적 하늘(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존재다. 자기부정과 초월을 통해서 물질적 관념적 존재를 깨트리고 부정하고 초월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롭게 혁신되고 창조되는 존재다. 
자기부정과 초월을 통하여 끊임없이 새롭게 창신되는 주체적 자아의 자기부정과 초월, 자아혁신과 창조의 생명철학적 존재론은 끊임없이 새로운 차원의 존재를 열어가고 지어가는 심층적이고 역동적인 존재론이다. 이러한 생명철학적 존재론은 이성과 물질을 중심으로 형성된 서양의 물질적 존재론과 관념적 존재론, 천지인합일의 우주자연과 인간심성을 리와 기로 설명되는 동아시아의 존재론과는 구별된다. 
기존의 전통적 존재론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은 이데아와 질료로 구성되는 존재론이다. 이것은 보고 인식하는 인간의 이성이 주도하고 지배하는 존재론이다. 인간의 이성이 순수하게 보는 수학, 기하학의 논리적 관념과 도형, 이데아, 형상이 존재의 불변적 본질과 실체이며 물질적 질료는 생성소멸하면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가변적 존재이다. theoria(이론) idea(이데아)는 모두 ’본다‘는 말이다. 이성이 보는 관념, 형상, 이론, 지식이 물질적 존재를 형성하고 지배한다.
둘째 데카르트가 대표하는 근현대의 정신·물질의 이원론적 존재론이다. 그는 생각하는 이성의 관념적 논리적 사유의 세계와 과학이 탐구하는 자연물질세계를 엄격히 분리시켰다. 관념적 사유의 세계로부터 자연물질세계를 분리독립시켰다. 결국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는 자연물질세계이며 관념과 논리의 사유세계는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쪼그라들었다. 따라서 근현대문명은 생명없는 물질론과 영혼없는 기계론이 지배하게 되었다. 나와 다른 사람과 우주자연생명세계를 물질과 기계로만 인식하고 대접함으로써 현대문명은 자기파괴와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서로 물질과 기계가 되고 물질적 기계적 효율성과 합리성만을 추구하게 되었고 생명과 영혼을 잃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길로 들어섰다.
셋째 천지인합일의 통합적 생명세계를 지향한 중국의 합일적 존재론이다. 중국의 존재론은 천지인합일에 이르는 우주자연과 인간의 심성(心性)을 도(道), 리(理), 기(氣)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도는 천지인합일에 이르는 길이며 리는 하늘의 도를 드러내고 이해하는 이치이며 기는 땅의 물질과 생명과 정신을 꿰뚫는 기운이다. 기는 아무리 고양되어도 땅의 자연 물질 생명 세계에 속한 것이다. 동학처럼 지기(至氣)와 천주(상제)를 동일시하면 천주는 우주 자연 생명 세계에 속할 뿐이며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는 초월자가 되지 못한다. 이런 존재론은 자연생명세계와 인간의 심성을 생명친화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지만 자기 초월과 새로운 창조의 혁신적 역동적인 생명철학적 존재론에 이르지는 못한다. 동아시아의 생명철학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통합하는 조화와 상생의 공동체적 존재론을 제시했지만 하늘과 땅과 인간을 창조하고 혁신하는 자기초월적 생명철학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오늘날 인간은 자연 만물과 자기 자신의 본성과 본질을 개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국가와 사회와 역사를 새롭게 지어갈 수 있는 주체가 되었다.
씨ᄋᆞᆯ생명철학의 심층적 중층적 다차원적 존재론
함석헌의 씨ᄋᆞᆯ사상은 자기부정과 초월을 통해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고 열어가는 생명철학적 존재론을 제시한다. 씨ᄋᆞᆯ로서 인간은 자신의 해방자와 구원자이며 자신이 해방하고 구원해야 할 대상이다. 또한 씨ᄋᆞᆯ로서 인간은 자신의 창조자와 피조물이다. 생명진화와 인류역사를 돌이켜 보면 생명과 인간은 자신의 창조자와 피조물로서 죽음과 신생을 통해서 새로운 존재의 차원을 열어왔다. 씨ᄋᆞᆯ은 초월적 하늘(하나님, 하나임)을 품고 그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솟아올라 나아가는 존재이다. 또한 씨ᄋᆞᆯ은 스스로 내재적 하늘로서 끊임없이 자기초월을 하는 자아를 가진 존재이고 생명으로서 참된 주체와 전체와 진화를 이루기 위해서 활동하는 존재이다. 
씨ᄋᆞᆯ의 존재와 활동은 생명철학적 존재론을 드러내고 구현한다. 씨ᄋᆞᆯ은 스스로 땅 속에 묻혀서 자기를 깨트리고 썩고 죽음으로써 새 생명으로 태어난다. 씨ᄋᆞᆯ은 새싹으로 싹트고, 줄기와 가지, 잎과 꽃과 열매를 맺음으로써 죽음과 신생, 자기부정과 초월, 탈바꿈과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 새롭고 크고 높은 생명으로 진화하고 고양된다. 자기부정과 초월을 통해 내재적 하늘인 자아가 존재의 차원변화를 일으키며 초월적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나아가는 씨ᄋᆞᆯ생명철학의 심층적이고 역동적인 존재론을 좀 더 생각해보자. 우주와 자연생명과 인간의 사회역사와 하늘의 얼과 신의 세계는 다층적이고 심층적이며 복합적인 존재의 차원들을 지니고 있다. 
수학과 기하학의 수와 도형, 개념과 논리, 지식과 정보는 2차원 평면 세계에 속한다. 3차원 공간의 물질세계, 4차원 시공간의 우주는 중력과 물리역학, 상대성원리와 같은 자연법칙이 지배한다. 5차원 생명세계는 2~4차원의 수리 물리 화학 법칙들을 충족시키면서 그 법칙들을 초월하는 상생공존의 생리세계다. 6차원은 5차원 생리세계를 뛰어넘는 심리세계다. 7차원은 6차원 심리세계를 뛰어넘어 개인과 집단의 주체들이 갈등하고 대립하며 협력하고 공존하는 역사 사회의 도리(道里) 세계다. 8차원은 개인과 집단의 갈등과 대립을 뛰어넘는 몰아적 신명과 신비적 합일의 종교 예술적 영리(靈理)세계다. 9차원은 개별적 자아의 깊은 자각을 가지면서 서로 주체로서 생명(우주, 인류)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구도자적 애리(愛理)의 세계다. 10차원은 개별적 주체의 자아가 생명 전체(초월적 하늘, 하나님)와 완전한 합일에 이르는 신리(神理)세계다. 자기부정과 초월을 통해서 초월적 하늘에 이르는 과정에서 낮은 차원들은 높은 차원들에 포섭되고 포월되어 고양되고 승화되며, 높은 차원들은 낮은 차원으로 육화, 물화되어 개별화하고 구체화한다. 물질과 육체는 생명화, 정신화, 영화, 신화(神化)하며 하늘의 얼과 신은 물화, 육화한다.
물질론과 기계론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생명의 심층적 중층적 차원들은 그 깊이와 높이와 풍부함을 잃고 수학적 계산과 기하학적 도형, 디지털 지식과 정보(데이터)의 2차원 평면세계로 위축된다. 2차원 평면세계는 생명과 정신, 얼과 혼이 없는 사회다. 인터넷 공간과 메타버스(metaverse)의 세계에 생명과 영혼의 가치와 의미를 반영시킬 수는 있지만 인터넷 공간과 메타버스는 생명과 영혼이 결여된 세계다. 씨ᄋᆞᆯ사상은 인간이 물질론과 기계론을 넘어서,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평면 세계를 넘어서 생명과 영혼, 감성과 이성과 영성의 심층적이고 중층적인 다차원적 존재의 세계를 구현하는 생명철학이다. 2차원 평면세계에서 초월적 하늘에 이르는 우주의 대자연과 인간의 생명과 정신, 하늘의 얼과 혼에 담긴 참되고 어질고 아름답고 거룩한 존재의 세계를 드러내고 실현하는 것이 내재적 하늘을 품고 초월적 하늘을 지향하는 인간의 자아가 씨ᄋᆞᆯ로서 지닌 사명과 본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