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가능한 다른 단어들이 있는 경우에조차
굳이 '영성'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그 마음은 대체 얼마나 '영적'인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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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면하는 댓가로 중세 로마가톨릭이 금품을 받고 발행한 증명서인 면죄부 얘기를 들으면 모두들 실소를 금치 못 한다. 그러나 면죄부와 똑같은 일들은 지금도 무수하게 각종 종교 단체들에서 행해지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만큼은 그 면죄부와 전혀 다르다!'라고, 모두가 저마다 굳세게 믿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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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체나 조직이 형성되고 세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와 권력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절제도 제어도 안 되는 인간의 욕망 자체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라는 것을 무조건 비웃던 사람이 불치병 말기 진단을 받고서 갑자기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위로를 받기 위함이다. 본인도 빚더미에 올라 있고 아이들도 '말썽'만 피우는 사람은 뭔가 희망이라도 얻고자 종교의 문을 두드린다. 이런 사람들에게 "현재의 너의 고통은 니가 神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 혹은 "니 마음 속의 탐진치를 네 스스로 다스리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성직자는 드물다. "그러니 학창시절 영어 공부하듯 그렇게 단어 하나 하나 그 정확한 의미를 찾아 가면서 경전부터 독해하고 완전히 이해해라!"고 말한다면 그 종교는 신자들의 발길이 끊겨 곧 세상에서 사라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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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런 이들에게 "내가 당신 이마에 물 한 방울 묻혔으니 당신은 죽어서 천당 갈 거요," "매일 새벽 부처님께 108배만 열심히 올리면 당신의 건강도 좋아지고 자녀도 대학에 합격할 거요," "경전 공부도 탐진치 제거도 안 해도 돼요. 알아차리기만 해도 충분히 마음챙김이예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건만 ‘마음챙김의 패션화’) 같은, 당장 대중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얘기만 하는 종교라야만! 그래야만 세상에서 살아남고 부도 권력도 얻을 수 있는 것. (사실 부처님은 "천도재 지내면 고인이 극락 간다"든가 "이 부적을 몸에 지니면 복 받는다" 류의 儀式에 대한 의존 자체를 10대 족쇄 -ten fetters-의 하나로 꼽으셨다. 종교적 의식/의례에 대한 신뢰도 占術에 대한 신뢰와 똑같은! 迷信 '길 잃은 믿음'이라는 얘기로 나는 이해한다. 4대 종교의 대표적 종파들 안에서 행해지는 의식/의례들도 부처님이 보시기엔 아마도 迷信에 불과할 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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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가장 세속적인 욕망의 추구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투자! (이승에서도 내가 원하는 부귀영화 다 얻고 내세에서까지 부귀영화가 보장되는 10,000% 수익률!)가
'진리'니 '성스러운'이니 하는 포장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블랙 코미디일 뿐 아니라 두 배의 욕심이기도 하다.
세속적인 욕심도 다 챙기고 거기다가
'진리'니 '영성 (spirituality)'이니 뭐 이런 이미지까지 챙기겠다는 것이니.
神이든 보살이든 어떤 초월자에게 줄 대어서
남의 덕으로 행복해지겠다는 건 결국 사행심일 뿐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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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신통력은 갖추었으나
입에서 나오는 얘기의 절반이 manipulation, 가스라이팅, 권모술수, '거짓말'
('나쁜 의도'에서 하는 극악한 거짓말은 아닐지언정
자기 딴에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사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기본적으로 '거짓말'이라는 것이 불교의 정의)임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 걸러 한 번씩 '영성'/'영적인'이라는 단어를 끼워넣는 어떤 '도사'
(스스로를 '깨달은 이'라고 칭하는)를 보고 나서,
그런데도 사람들은 숭배하느라 정신 못 차리는,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사판 같은 일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나서,
나는 '영성' 혹은 '영적인'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알러지가 생겼다.
'정서적 건강'이나 '심리'라는 멀쩡한 어구들까지도 죄다 무조건 '영성'이라는 단어로 대체해 버리는 뉴에이지도 이 알러지에 한 몫 크게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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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처럼 ‘도그마 없는 영성’을 추구하다 보면, '영성'이나 '윤리' 같은 개념들의 정의/기준 자체가 모호해지고
철학 체계! 또한 빈약해지기에 필연적으로 self discipline 체계! 역시 결여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분위기만 풍기다 끝나는 '사이비' = '비슷하지만 아니다'가 될 확률이 높고. 이로 인한 필연적 귀결은,
자신의 감정/욕망을 과신/절대시하면서 거기에 '영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포장하는 자기기만/자기합리화만 남는다는 것이다 - 일관된 철학 체계!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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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각이나 이성을 초월하는 현상들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누군가가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주는 인상보다는
그의 믿음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왜 꼭 그 단어를 사용해야만 하는지,
'감정', '심리적 문제', '초자연적 현상' 같은 표현들 놔두고서
굳이 '영성'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내 마음의 밑바닥에 어떤 의도나 욕망이 잠복해 있는지를 스스로 정직하게 검열해야 한다는 얘기.
하지만 appropriate attention과 integrity가 '나는 100% 순수한데 대체 무슨 검열을 하라는 것인가?' 정도밖에 안 되는 이들도 많고,
이런 얘기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히 남에게도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떳떳한 이들은 거의 없으니 (나부터도 이런 글 쓰는 자체가 사실 민망),
그러니 인간계는 영원히 '서로 눈 가리고 아웅 놀음'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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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긍정적으로 살자? '무조건 부정적'도 물론 안 좋지만, '무조건 긍정적'도 당장 맘 편해지는 댓가로 결국은 장기적 자기기만/인지부조화를 비용으로 치러야 하는 경우가 워낙 많은지라.. not worth it..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사기에 넘어가는 이들은 예외 없이 '순진'하고 '긍정적'인 이들이다. "매사 긍정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 식으로 살으라"는 얘기를
부처님은 하신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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