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8

** 希修 굳이 '영성'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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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가능한 다른 단어들이 있는 경우에조차
굳이 '영성'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그 마음은 대체 얼마나 '영적'인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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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면하는 댓가로 중세 로마가톨릭이 금품을 받고 발행한 증명서인 면죄부 얘기를 들으면 모두들 실소를 금치 못 한다. 그러나 면죄부와 똑같은 일들은 지금도 무수하게 각종 종교 단체들에서 행해지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만큼은 그 면죄부와 전혀 다르다!'라고, 모두가 저마다 굳세게 믿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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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체나 조직이 형성되고 세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와 권력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절제도 제어도 안 되는 인간의 욕망 자체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라는 것을 무조건 비웃던 사람이 불치병 말기 진단을 받고서 갑자기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위로를 받기 위함이다. 본인도 빚더미에 올라 있고 아이들도 '말썽'만 피우는 사람은 뭔가 희망이라도 얻고자 종교의 문을 두드린다. 이런 사람들에게 "현재의 너의 고통은 니가 神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 혹은 "니 마음 속의 탐진치를 네 스스로 다스리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성직자는 드물다. "그러니 학창시절 영어 공부하듯 그렇게 단어 하나 하나 그 정확한 의미를 찾아 가면서 경전부터 독해하고 완전히 이해해라!"고 말한다면 그 종교는 신자들의 발길이 끊겨 곧 세상에서 사라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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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런 이들에게 "내가 당신 이마에 물 한 방울 묻혔으니 당신은 죽어서 천당 갈 거요," "매일 새벽 부처님께 108배만 열심히 올리면 당신의 건강도 좋아지고 자녀도 대학에 합격할 거요," "경전 공부도 탐진치 제거도 안 해도 돼요. 알아차리기만 해도 충분히 마음챙김이예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건만 ‘마음챙김의 패션화’) 같은, 당장 대중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얘기만 하는 종교라야만! 그래야만 세상에서 살아남고 부도 권력도 얻을 수 있는 것. (사실 부처님은 "천도재 지내면 고인이 극락 간다"든가 "이 부적을 몸에 지니면 복 받는다" 류의 儀式에 대한 의존 자체를 10대 족쇄 -ten fetters-의 하나로 꼽으셨다. 종교적 의식/의례에 대한 신뢰도 占術에 대한 신뢰와 똑같은! 迷信 '길 잃은 믿음'이라는 얘기로 나는 이해한다. 4대 종교의 대표적 종파들 안에서 행해지는 의식/의례들도 부처님이 보시기엔 아마도 迷信에 불과할 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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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가장 세속적인 욕망의 추구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투자! (이승에서도 내가 원하는 부귀영화 다 얻고 내세에서까지 부귀영화가 보장되는 10,000% 수익률!)가
'진리'니 '성스러운'이니 하는 포장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블랙 코미디일 뿐 아니라 두 배의 욕심이기도 하다.
세속적인 욕심도 다 챙기고 거기다가
'진리'니 '영성 (spirituality)'이니 뭐 이런 이미지까지 챙기겠다는 것이니.
神이든 보살이든 어떤 초월자에게 줄 대어서
남의 덕으로 행복해지겠다는 건 결국 사행심일 뿐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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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신통력은 갖추었으나
입에서 나오는 얘기의 절반이 manipulation, 가스라이팅, 권모술수, '거짓말'
('나쁜 의도'에서 하는 극악한 거짓말은 아닐지언정
자기 딴에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사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기본적으로 '거짓말'이라는 것이 불교의 정의)임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 걸러 한 번씩 '영성'/'영적인'이라는 단어를 끼워넣는 어떤 '도사'
(스스로를 '깨달은 이'라고 칭하는)를 보고 나서,

그런데도 사람들은 숭배하느라 정신 못 차리는,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사판 같은 일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나서,
나는 '영성' 혹은 '영적인'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알러지가 생겼다.

'정서적 건강'이나 '심리'라는 멀쩡한 어구들까지도 죄다 무조건 '영성'이라는 단어로 대체해 버리는 뉴에이지도 이 알러지에 한 몫 크게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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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처럼 ‘도그마 없는 영성’을 추구하다 보면, '영성'이나 '윤리' 같은 개념들의 정의/기준 자체가 모호해지고
철학 체계! 또한 빈약해지기에 필연적으로 self discipline 체계! 역시 결여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분위기만 풍기다 끝나는 '사이비' = '비슷하지만 아니다'가 될 확률이 높고. 이로 인한 필연적 귀결은,
자신의 감정/욕망을 과신/절대시하면서 거기에 '영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포장하는 자기기만/자기합리화만 남는다는 것이다 - 일관된 철학 체계!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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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각이나 이성을 초월하는 현상들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누군가가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주는 인상보다는
그의 믿음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왜 꼭 그 단어를 사용해야만 하는지,
'감정', '심리적 문제', '초자연적 현상' 같은 표현들 놔두고서
굳이 '영성'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내 마음의 밑바닥에 어떤 의도나 욕망이 잠복해 있는지를 스스로 정직하게 검열해야 한다는 얘기.

하지만 appropriate attention과 integrity가 '나는 100% 순수한데 대체 무슨 검열을 하라는 것인가?' 정도밖에 안 되는 이들도 많고,
이런 얘기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히 남에게도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떳떳한 이들은 거의 없으니 (나부터도 이런 글 쓰는 자체가 사실 민망),
그러니 인간계는 영원히 '서로 눈 가리고 아웅 놀음'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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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긍정적으로 살자? '무조건 부정적'도 물론 안 좋지만, '무조건 긍정적'도 당장 맘 편해지는 댓가로 결국은 장기적 자기기만/인지부조화를 비용으로 치러야 하는 경우가 워낙 많은지라.. not worth it..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사기에 넘어가는 이들은 예외 없이 '순진'하고 '긍정적'인 이들이다. "매사 긍정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 식으로 살으라"는 얘기를
부처님은 하신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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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soo Hong and 1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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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규민
    Self discipline이 빠뜨린 채 깨달음이니 알아차림이니 하는 '쉬운 영성'이 너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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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d
    • 希修
      문규민 그러게 말입니다. 쉬워야, 그리고 당장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줘야 팔리니.. 맑스가 종교는 아편이라 말한 건 참 두루두루 여러 면에서 탁월한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영성'이나 '윤리' 같은 개념들의 정의/기준 자체가 모호하면, 필연적으로 self discipline 결여되어 분위기만 풍기다 끝나는 '사이비' ('비슷하지만 아니다')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because they don't even know what they are talking about. 부처님은 45년 내내 오직 "탐진치 제거"만을 말씀하셨건만, 왜들 그리 스스로도 해석 못 할 詩들을 읊어 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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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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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규민
      希修 요즘엔 특히 유튜브를 통해 그런 아편들이 확산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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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d
  • Aiden Kim
    왼걸음쟁이들이 갖은 표어나 문구, 기존용어와 뜻은 같으나 다른표기의 용어 그리고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이유기도하죠. 여기에 약간의 포장과 양념으루곁들인 뒤에 손발맞춘 극렬추종자 몇명과 연기쟁이 한둘이 개입되면 나머지는 레밍이되어 우르르 몰려갑니다. 선동의 기제죠. 여기에 의문을 표하면 탄압을 받게 됩니다. 반동분자, 이단, 기득권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공격해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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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d
    • 希修
      네. 正名조차 안 되는 인간의 수준에선 영성이든 사회이념이든 결국은 '간지나는 장식품'에 그치기가 쉬운 것 같아요. 뭐 그래도 인권이라는 것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향상되어 온 자체도 그러고 보면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암튼, 자신이 추구한다고 스스로는 생각하는 그 이념에 오히려 방해가 될 행동을 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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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d
  • 이명훈
    일단 영성이란 단어가 나오면 도교 아닌가 싶은데… 초기불교에선 이런 개념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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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d
    • 希修
      'Noble life' 혹은 'contemplative life' 같은 표현들이 초기경전에 나오기는 합니다. 아마도 '수행자의 삶'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중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spiritual life'라고 표현하시는 분도 계시기는 합니다. 도가/도교에서는 그냥 '도'라는 단어를 대개 사용하시는 것 같고, '영성'이라는 단어는 주로 뉴에이지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표현이 "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고 뭐 여기까지도 좋은데, '정서적 건강'이나 '심리 문제'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경우에조차 무조건 '영성'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면서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좀 있죠.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감정/욕망을 과신/절대시하면서 거기에 '영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포장하는 자기기만/자기합리화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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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속이지 말라
      암자에서 만난 성철 스님 이야기정찬주 저 | 열림원 | 2005년

      독자 평점 9.8!믿고 읽는 최은영

      100년에 걸친
      사랑과
      숨의 기록독자 평점 9.8!

      [도서] 자기를 속이지 말라


      책소개

    • 소설『산은 산 물은 물』을 통해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바 있는 정찬주 씨가 이번에는 성철 스님이 수행의 터전으로 삼았던 암자들을 따라가며 그곳에 새겨진 스님의 말씀과 발자취를 글로 담아냈다.

      '불기자심(不欺自心)', 즉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화두를 품고 8년간의 장좌불와 수행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지켜낸 성철 스님. 평생 자신과의 약속에 어긋남이 없었던 구도자, 그 철두철미한 생은 한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정찬주 씨는 스스로 또다른 구도자가 되어 살아생전 성철 스님의 가르침, 그리고 추억과 에피소드를 책 한권 안에 가득 불러들였다. 1부 '성철 스님 암자 기행'에서는 백련암, 운부암 등 스님이 머물렀던 암자들을 따라가며 성철 스님의 가르침과 저자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펼쳐냈으며, 2부 '어둔 마음을 밝히는 성철 스님의 말씀'에서는 스님이 중생들에게 전한 말씀을 어록 형식으로 차분히 정리했다. 작가의 암자기행에 동행하며 사진 작업을 병행한 유동영의 흑백사진은 글로써 미쳐 표현하지 못한 스님의 자취를 향취 그득 전해준다.

      목차

    • 제1부 성철 스님 암자 기행
      백련암에서는 까마귀도 선문답을 하네
      그릇이 비어 있다고 그릇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영원한 진리를 홀로 밟으며 나가리라
      뜻은 비로자나불 정수리에 두고 행동은 동자 발 앞에 절하듯 하라
      운부암 무쇠솥은 불길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는구나
      이 산길은 구름 위에 뜬 암자로 가는 문
      서리 인 소나무처럼, 물 위에 뜬 달처럼 살자
      침묵하라, 그대를 벙어리라 말하지 않으리라
      복천암 흐르는 물이 온몸을 다 바쳐 살라 하네
      물 흐르듯이, 혹은 구름 흐르듯이
      선승에 의해 선방으로 환생한 복천암
      평등한 성품을 깨달아라
      봉암사 용곡 물은 예나 지금이나 회초리처럼 차갑네
      연탄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침류교 위에서 진정한 벗을 그리워하다
      원망하는 사람마저 부처님처럼 섬기라
      스님은 왜 암자 이름을 천제굴이라고 했을까
      시물을 화살처럼 무서워하라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섬기라. 그것이 참 불공이다
      철조망을 둘러치고 왜 성전암에서 산비둘기와 함께 살았을까
      인생이란 가둠과 풂,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
      암자는 작으나 법계를 머금고 있으니
      나 잘나지 못함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소서
      중음신의 대중을 위해 최초로 설법한 김룡사
      어찌 세상에 공짜가 있으랴
      제 앞길 가리지 못하면 산 사람도 중음신이다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다시 금강굴과 백련암에서 발심의 말뚝을 박는다
      영원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자기를 속이지 말라

      제2부 어둔 마음을 밝히는 성철 스님의 말씀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다
      부처님을 팔지 말라
      사탄이여,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누가 깨쳤다고 하는가,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라
      성철 스님 행장
      접어보기
      ----
      저자 소개 (1명)
      저 : 정찬주 (무염(無染), 벽록檗綠)

    • 자기다운 삶으로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온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상명여대부속여고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현재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2002년부터 자연을 스승 삼아 벗 삼아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암자로 가는 길』(전 3권)을 비롯하여, 이 땅에 수행자가 존재하는 의미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수십 권의 저서를 펴냈다.

      장편소설로는 인간 이순신을 그린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전7권), 『광주 아리랑』(전2권), 『천강에 비친 달』,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다산의 사랑』, 『칼과 술』,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 『니르바나의 미소』, 법정스님 일대기 장편소설 『소설 무소유』, 성철스님 일대기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하늘의 도』, 『다불』, 『가야산 정진불』(전2권), 『만행』, 『대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추어라』, 조광조가 꿈꾼 나라를 다룬 『나는 조선의 선비다』(전3권), 『천년 후 돌아가리-茶佛』 등이 있다.

      산문집 『행복한 무소유』, 『부처님 8대 인연 이야기』, 4백여 곳의 암자를 직접 답사하며 쓴 『암자로 가는 길』(전3권),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법정스님의 뒷모습』, 『불국기행』,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돈황 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공부하다 죽어라』, 『정찬주의 다인기행』, 중국 선(禪)유적지를 답사한 여행기 『뜰 앞의 잣나무』와 『행복한 중국 선여행』 등이 있다. 동화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동자』, 『눈부처』 등이 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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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모든 사람들이 성철 스님을 존경하고 잊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성철 자신부터 '불기자심'을 평생 동안 실천한 데 있지 않았을까.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며 사는 것이 중생의 모습이라고 볼 때 나그네는 성철 스님을 생불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불기자심이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평생 동안 지키며 살았던 성철 스님을 우리 시대의 부처라 부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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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 소설가 정찬주의 신작 산문집 『자기를 속이지 말라』가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5월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부처님 오신 날' 주간을 맞아 독자들을 찾아가는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한국 불교에 중요한 족적으로 기록되고 있는 성철 스님(1912~1993)이 살아생전 수행과 공부의 터전으로 삼았던 암자들을 따라가면서 곳곳에 새겨진 성철 스님의 말씀과 발자취, 그리고 암자에 전해져 내려오는 향기로운 이야기들을 함께 담아낸 주옥 같은 산문집이다. 기행문의 현장성, 명상서의 성찰성, 전기(傳記)의 서사성이 탁월하게 어우러진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한 사람의 위대한 종교인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가는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현실에 두루 해당되는 폭넓은 마음공부를 다루고 있는 산문집이다. 성철 스님은 암자에서 무엇을 공부했나, 성철 스님은 암자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질문을 화두 삼아 참다운 '나'를 찾아 떠나는 마음의 기행문인 것이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스테디셀러 『암자로 가는 길』 『선방 가는 길』의 저자이자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의 저자인 정찬주는, 선방과 암자를 돌아다니며 깊이 있는 명상적 글쓰기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몇 년에 걸친 자료 조사와 취재를 통해 엮어낸 책으로, 입적한 지 오래되었으나 변함없이 마음속에 살아 있는 성철 스님을 오늘날 우리가 진정한 마음의 스승이자 삶의 구체적인 지침으로 모셔야 하는 이유와 성철 스님이 여전히 우리 앞에 눈 부릅뜨고 계시는 진정한 의의를 전하고 있다.

      '불기자심(不欺自心)', 즉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성철 스님이 저잣거리의 사람들에게 즐겨 주시던 좌우명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자신의 목표와 좌우명을 잃어버린 채, 삶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 채, 힘겨운 일상을 영위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진짜 어려움은 다른 사람 아닌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사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날마다, 혹은 순간순간 자기와 여러 가지 약속을 한다. 그러나 자기와의 약속을 모두 지키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서릿발 같은 결심을 했다가도 슬그머니 물러서버릴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부도란 사업하는 사람만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도 마음의 부도를 내며 살고 있다. 마음의 부도는 알게 모르게 자기 질서를 허물어뜨리고 마침내 부실한 사람이 되게 하고 만다.'

      이러한 어려운 시대에 있어 성철 스님의 삶과 수행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성철 스님은 평생 누더기 장삼만을 입는 검박한 삶으로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낸 '자기를 속이지 않는 삶'을 살아냈던 선승이다. 그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한 순간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을 8년간 계속했고, 철조망을 치고 수년 동안 동구불출했을 뿐만 아니라,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모든 이들의 성품이 평등하다는 믿음을 실천했으며, 부처님 계율을 실천하여 출가정신을 회복하고 수행자로서의 위의(威儀)를 바로 세우는 정화운동을 이끌어간 원칙주의자였다. 성철 스님의 삶이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것은, 삶을 지탱하는 자신과의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지켜내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기를 속이지 않는 삶이 자신을 스스로 빛나게 해주리라는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가르침을 그대로 체현해낸 성철 스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정신적 스승인 것이다.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또한 성철 스님이 길 잃은 산비둘기를 입에 넣어 씹은 콩으로 키우기도 했고, 아이들과 장난치며 노는 것을 즐겼으며, 가까운 도반들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과 어떻게 지냈는지를, 성철 스님이 거쳐간 암자들을 따라가며 현장감 있고 흥미롭게 그려 보여주고 있다. 신도들에게 삼천배를 시키는 계기가 된 일화 등 성철 스님의 숨어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담겨 있어 성철 스님의 또 다른 면모들을 가깝게 느끼게 해준다. 성철 스님이 터전으로 삼았던 여러 수행 도량들을 되밟아가며, 그 암자에 변함없이 전해오는 무정물(無情物)들의 설법과 역사적 실화들에 귀 기울이며 특별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이제까지 나온 성철 스님 관련 책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작가 정찬주와 암자를 직접 기행하며 사진 작업을 한 유동영의 흑백사진들 또한 성철 스님의 씌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탁월한 행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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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성철 스님 암자 기행'은 백련암, 운부암, 복천암, 봉암사, 천제굴, 성전암, 김룡사 등 성철 스님이 머물렀던 암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산문이며, 2부 '어둔 마음을 밝히는 성철 스님의 말씀'은 성철 스님이 곳곳에서 중생들에게 전한 말씀들을 어록 형식으로 정리한 글이다. 말미에는 성철 스님의 행장(行狀)이 정리되어 있어 성철 스님의 발자취를 한눈에 들여다보게 해준다. 성철 스님이 암자에서 무엇을 공부했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읽고 듣고 깨달았는지를 추체험하게 하는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성철 스님의 삶이 이루어낸 그윽한 향기를 신록의 계절을 맞아 더욱 짙게 다가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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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철 스님 암자 기행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g********m | 2006-04-08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21313

    • 스님이 돌아가신 지도 한참 됐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육체가 사라지는 것일뿐 그 형형한 정신이야 사라질 리가 있겠는가. 이 책은 성철 스님이 몸담았던 암자 기행과 스님 말씀 모음집이다. 스님이 말씀이 그렇듯이, 또는 스님들 말씀을 모아 놓은 책이 늘 그렇듯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화려하게 포장해서 선전하려는 우를, 무던히도 열심히 피해간다. 암자를 찾아다니며, 스님과 관련된 일화와 말씀, 사진과 삽화를 적당하 조화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가벼움을 넘어설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 십 년, 이십 년 입을 열지 말고 말없이 공부하거라. 그래도 너희를 벙어리라 말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공부하여도 성취가 없거든 노승의 머리를 베어가라." 벽암록에 단골로 등장하는 마조선사의 말이라고 한다. 성철 스님의 생은 이 말씀의 실천이었다. 공부하고 공부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작은 공부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부. 더욱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려는 공부였다. 결국,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을 속이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 그 방법이 선방에서 용맹정진 하든, 피씨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든, 처음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궁극에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찾아 즐길 수 있어 모든 것을 잊고 살 수 있는 삶을 찾아가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삶이다. " 자기와의 약속을 지킨 사람은 밤 하늘의 별처럼 자기 생을 빛나게 한다" 몇 번의 실패로 나태해지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삶이었는데, 스님의 삶이 시퍼런 깨침의 죽비가 되어 나의 등을 후려친다.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시린 먼지가 앉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용맹정진해야겠다. 그 삶이 한갖 미물의 삶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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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라딘 독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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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不欺自心



      사실 이 책을 사기로 결정한 데에는 성철 스님의 자필 인쇄본 윗 글이 동봉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을 먼저 받자마자 이 글을 펼쳐보며 ‘자기를 속이지 말라’ 무슨 말일까? 하고 한참을 쳐다보았던 생각이 난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들이 사람을 속이는 경우를 접할 때가 있다. 그것이 선의에 의한 것이든 악의에 의한 것이든 그 말을 하는 사람 스스로의 마음에선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에 거짓을 증하게 된다. 그러니 요행히 인간관계에서 그 결과를 자신이 직접 받게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선량한 마음 속에 찍은 거짓된 마음의 인과는 피할 길이 없다.



      때로는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어떤 약속 같은 것을 한다. “나는 앞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라든지 “앞으로는 남들 앞에서 특정인을 욕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라든지 “앞으로는 부지런히 공부하겠다”라는 다짐의 약속을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이 삼일을 넘겨서 초심이 지속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도 확 불붙는 듯한 약속이나 다짐을 하기보다는 끊일듯말듯 하면서도 꾸준하게 하는 다짐이나 약속이 더욱 신뢰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철 스님은 자신에게 너무나 철저한 분이셨기 때문에 불같은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 경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으셨다. 자신이 일생의 큰 뜻을 품고 공부하는 것과 관련해서 그 약속은 더욱 철저했으며 일반대중이 보기에는 너무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를 모른체하고 만나주지 않는다던지, 자신을 찾아온 속가 아내를 내쫓는다든지, 환속시키기 위해 찾아온 아버지의 입에서 ‘부처가 나의 평생 원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셨다.



      그런데 한번은 이 말씀을 자신의 본성을 속이지 말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말이다. 물론 내가 타인에게 또는 내 스스로의 생활상의 약속도 다 못 지키며 사는 세인이지만 이렇게 마음을 돌리니 그 긴장성과 더불어 내 마음을 돌려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성철 스님에게 있어서는 큰 진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신 분이니 일상생활이 수행이요 수행이 일상생활이었으니 일반인인 우리에게 있어서의 생활 속의 자기와의 약속과 자신의 본성을 속이지 말라라는 뜻이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이렇게 마음을 두게 되면 자연히 “그러면 과연 나의 본성은 무엇인가?” “원래 내가 부처라는데 그 부처의 자리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지속되다가 보이는 모든 사물이 ‘불기자심’하게 된다. 마치 모든 사물에 글자를 붙여놓은 듯 그것이 마음으로 계합되는 경우가 생긴다. 원택 스님도 해인사에 와서 삼천배를 하고 이 말을 받아 서울로 갔다가 생활하던 중 이 말을 다시 새기게 되고 그렇게 출가를 하셨다. 아마 그 분의 마음 속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던 성철 스님의 그 마음이 담긴 화살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언제이던가? 제일 처음 공부에 입문하고자 책을 편 것이 성철스님 시봉일기라는 책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읽었던 백일법문에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읽었던 신심명 증도가에 돈황본 육조단경까지 하면 옛날에 출판되었던 “고경”이란 책을 구하지 못해 단행본으로 나온 책들을 나름대로는 구해 읽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철스님의 글이, 그 힘이 넘치고 포효하는 듯한 글이 나름대로 친근함으로 수용되어진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고 스님의 책 두 권을 더 보관함으로 담았다. 이제 몸으로 스님을 만날 수 없으니 남긴 글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쫓아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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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팽이 2007-02-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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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속이지 말라 - 암자에서 만난 성철 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은이),유동영 (사진),송영방 (삽화)열림원200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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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 자기를 속이지 말라
      기자명 법장 스님 본문 글씨 키우기 본문 글씨 줄이기 바로가기 기사저장
      법장스님의 지범개차 입력 2020.01.28 13:49 호수 1522  댓글 0
      “거짓말은 다른 이에 앞서 나부터 속이는 중죄”

      망어계는 크게 2가지로 구분
      깨달았다 공표하는 대망어와
      거짓말과 거짓행동도 파계행
      망어는 누군가의 목숨도 앗아
      우리가 살면서 가장 쉽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우리가 항상 하는 ‘말’을 가장 주의시킨다. 말은 무엇을 하건 항상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기에 그것에 따르는 책임은 무겁다. 불교에서는 말로써 짓는 죄를 ‘망어(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기어(綺語)’의 4가지로 보고 엄격하게 주의시키고 있다. 이는 어떤 죄보다도 말로 하는 것이 가장 가볍게 저지를 수 있고 그 책임에 대한 마음을 쉽게 못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로 짓는 죄를 ‘범망경’에서는 ‘제4 망어계’로 다루고 있다. 이 망어계는 다른 사람을 속이겠다는 마음을 갖고 행하는 모든 말을 중죄로 다룬다. 어떤 의도에서 했던 간에 그 말 안에 삿된 의도가 들어 있었다면 모두 죄가 되는 것이다. 보다 세분화된 내용을 48경계 중에 ‘제18 무해작사계(아는 것 없이 스승이 되지 말라)’와 ‘제19 양설계’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이 망어계 안에서 보다 무거운 죄로 거듭 주의시키고 있다.

      망어에 대해서 ‘대지도론’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속인 뒤에 다른 사람을 속여서 거짓을 실제라고 하여 거짓과 실제를 구분 못하여 바른 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는 우선 자신부터 속이게 된다. 어떤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다른 의미로 전달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속이고 그 진실을 자신 안에서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뒤에도 그 거짓말을 강하게 주장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거짓말이 거짓말이었던 것조차도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고 어떤 조언도 들리지 않게 된다. 즉 거짓말을 했던 의도조차도 사라지고 스스로 자신을 끊임없이 속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망어계에 대해 불교에서는 크게 2가지로 나누고 있다. 일반적으로 망어계라고 하는 것은 ‘대망어’라고 하여 거짓으로 자신이 깨달았다고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된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대망어는 특히 율장에서 엄하게 다루고 있는데 거짓된 수행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이기에 죄의 무게가 그 어떤 잘못 보다도 더 무겁다. 옴진리교의 가스 테러 등은 우리가 경험한 잘못된 종교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만큼 올바른 종교와 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청정한 계율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고 바른 수행을 통해 얻어진 가르침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한없이 베푸는 참된 종교를 선택하여 함께 수행하고 보다 밝은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종교를 거짓으로 포장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는 어떠한 죄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살아가며 하는 일반적인 거짓말과 행동은 ‘소망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 율장에서는 다소 가벼운 죄로 구분하지만 ‘범망경’에서는 이 또한 같은 망어로 보고 무거운 죄로 판단한다. 즉 ‘범망경’에서는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을 가진 것 자체를 죄의 원인으로 판단하여 그러한 마음으로 대망어를 하든 소망어를 하든 전부 사람을 속인 것이기에 중죄가 된다고 한다. 가벼운 거짓말이라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에 별 뜻 없이 한 거짓말이 상대에게는 큰 상처가 되거나 비극적인 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터넷 등에서 악플을 쓰는 행동들도 이러한 망어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악플을 달고 자신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없다고 하는 행위는 명백한 망어이며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주는 것이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남을 속이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자신을 속이고 무거운 죄를 만든 것이다. 자신에게 솔직하듯이 남에게도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고 말을 한다면 그 마음과 말은 우리에게 그대로 되돌아오게 된다. 보다 좋은 사회를 바란다면 바로 우리 내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법장 스님 해인사승가대학 교수사 buddhasto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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