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농업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글 / 금창영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입력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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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은 자연의 치유와 균형...생물다양성 높이는 순환농법으로 바꿔야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전문가는 연구실 박사들이 아니라 현장의 농민
해답은 자연의 치유와 균형...생물다양성 높이는 순환농법으로 바꿔야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전문가는 연구실 박사들이 아니라 현장의 농민
2016년부터 6년째 경운하지 않고, 기계를 쓰지 않는 논농사를 짓고 있다.
나는 농부다. 50대의 나이지만 마을에는 어렸을 때부터 농사경력을 쌓은 어르신들이 넘쳐나니 비교하면 보잘 게 없다. 하루하루 어떻게 버티고 있지만, 농사는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곡예하듯 피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농부는 어떤 존재일까?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의 부러워하는 눈빛과, 자식들이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동네 어르신들이 생각하는 농부, 그 사이에 어중간하게 있지 않을까?
농부라는 직업이 기술이나 능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렇다고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공생의 삶을 살아가지도 않는다. 돈이 안되거나 육체적 한계상황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대부분 즐겁고 흥미로우며 보람도 있으니 그저 이어갈 뿐이다.
기후위기? 아무리 우리나라 농업이 국제경쟁력이 없고, 소득이 낮으며, 농민들 간의 소득격차가 벌어진다고 해도,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 그런대로 살만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 기후위기나 기후재앙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날씨나 기후라면 농사짓는 우리가 가장 신경써야 할 분야 아닌가?
사실 날씨가 예전같지 않다는 말은 농민들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농사라는 것이 50일 이상 비가 내리고, 20일 이상 폭염이 이어져도 그것을 극복하는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정말 기후위기가 왔다고 해도 농민에게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그저 봄이 되면 밭 갈고 씨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이다. 더불어 농사란 자고로 경험에 기반하기에 변화를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1년에 벼농사 한 번 짓는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라고 한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하지만 그냥 모른척하기에는 온통 난리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산불이 이어지고, 이상기온이 일반적인 상황이란다. 지구가 불타고 있고, 인류는 생존을 걱정해야 한단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지금 생활에서 변화를 줘야한다는 생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생겨난다.
IPCC나 1.5도, 해수면 상승 등 이런저런 어려운 이야기는 모르겠고,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더워진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뭔가 이상하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농업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전체 온실가스의 3%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유럽은 25%라고 하고, 미국은 30%라고 말한다. 차이가 나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이것이 첫 번째 의문이다.
두 번째는 탄소이야기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단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저탄소 농법이라는 것이 자주 거론된다. 농사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2010년을 전후해서 연구와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그중에는 ‘농업부문 온실가스 감축사업’ 이라는 것이 있다. 이름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증도 주고, 감축량을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은 그 분야가 고효율 보온자재, 순환식 수막재배, LED조명 교체, 지열히트펌프 이용 등이다. 당연히 이런 사업은 시설재배에 적용된다. 그렇다면 그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온실가스에 대한 지적은 왜 없는 것일까?
세 번째는 농촌진흥청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농민들에게 권장하는 일이다. 토양개량제를 뿌리고, 퇴비는 부숙해서 사용하며, 벼 중간 물떼기 기간을 늘리고, 플라스틱과 비닐을 수거하고, 농기계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란다. 한쪽에서는 인류멸종을 이야기하는데, 정말 이렇게만 해도 탄소중립이 가능한 걸까?
네 번째는 기후위기에 이어 나오는 말이 식량위기다. 이해할 수 있다. 가뭄이나 장마가 이어지면 식량생산량이 줄어들테고, 그렇다면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악착같이 생산량을 늘리는 농사를 지어왔다. 그것은 친환경농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생산량을 늘려왔으면 산지에서 폐기하는 일이 일어나겠는가? 어쩌면 지금의 농사방식이 기후위기와 관련이 있을텐데, 그럼에도 농사에서는 식량위기만 생각하며 지금처럼 생산량을 늘리는 농사를 지으면 되는 것인가?
여기저기서 기후위기와 관련한 세미나에서부터 간담회나 시위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와 관련한 전문가에 정작 농민은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당사자가 전문가이지 이런저런 사례를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는 이가 어찌 전문가일 수 있는가?
나는 농부다. 50대의 나이지만 마을에는 어렸을 때부터 농사경력을 쌓은 어르신들이 넘쳐나니 비교하면 보잘 게 없다. 하루하루 어떻게 버티고 있지만, 농사는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곡예하듯 피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농부는 어떤 존재일까?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의 부러워하는 눈빛과, 자식들이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동네 어르신들이 생각하는 농부, 그 사이에 어중간하게 있지 않을까?
농부라는 직업이 기술이나 능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렇다고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공생의 삶을 살아가지도 않는다. 돈이 안되거나 육체적 한계상황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대부분 즐겁고 흥미로우며 보람도 있으니 그저 이어갈 뿐이다.
기후위기? 아무리 우리나라 농업이 국제경쟁력이 없고, 소득이 낮으며, 농민들 간의 소득격차가 벌어진다고 해도,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 그런대로 살만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 기후위기나 기후재앙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날씨나 기후라면 농사짓는 우리가 가장 신경써야 할 분야 아닌가?
사실 날씨가 예전같지 않다는 말은 농민들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농사라는 것이 50일 이상 비가 내리고, 20일 이상 폭염이 이어져도 그것을 극복하는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정말 기후위기가 왔다고 해도 농민에게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그저 봄이 되면 밭 갈고 씨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이다. 더불어 농사란 자고로 경험에 기반하기에 변화를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1년에 벼농사 한 번 짓는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라고 한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하지만 그냥 모른척하기에는 온통 난리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산불이 이어지고, 이상기온이 일반적인 상황이란다. 지구가 불타고 있고, 인류는 생존을 걱정해야 한단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지금 생활에서 변화를 줘야한다는 생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생겨난다.
IPCC나 1.5도, 해수면 상승 등 이런저런 어려운 이야기는 모르겠고,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더워진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뭔가 이상하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농업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전체 온실가스의 3%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유럽은 25%라고 하고, 미국은 30%라고 말한다. 차이가 나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이것이 첫 번째 의문이다.
두 번째는 탄소이야기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단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저탄소 농법이라는 것이 자주 거론된다. 농사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2010년을 전후해서 연구와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그중에는 ‘농업부문 온실가스 감축사업’ 이라는 것이 있다. 이름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증도 주고, 감축량을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은 그 분야가 고효율 보온자재, 순환식 수막재배, LED조명 교체, 지열히트펌프 이용 등이다. 당연히 이런 사업은 시설재배에 적용된다. 그렇다면 그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온실가스에 대한 지적은 왜 없는 것일까?
세 번째는 농촌진흥청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농민들에게 권장하는 일이다. 토양개량제를 뿌리고, 퇴비는 부숙해서 사용하며, 벼 중간 물떼기 기간을 늘리고, 플라스틱과 비닐을 수거하고, 농기계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란다. 한쪽에서는 인류멸종을 이야기하는데, 정말 이렇게만 해도 탄소중립이 가능한 걸까?
네 번째는 기후위기에 이어 나오는 말이 식량위기다. 이해할 수 있다. 가뭄이나 장마가 이어지면 식량생산량이 줄어들테고, 그렇다면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악착같이 생산량을 늘리는 농사를 지어왔다. 그것은 친환경농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생산량을 늘려왔으면 산지에서 폐기하는 일이 일어나겠는가? 어쩌면 지금의 농사방식이 기후위기와 관련이 있을텐데, 그럼에도 농사에서는 식량위기만 생각하며 지금처럼 생산량을 늘리는 농사를 지으면 되는 것인가?
여기저기서 기후위기와 관련한 세미나에서부터 간담회나 시위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와 관련한 전문가에 정작 농민은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당사자가 전문가이지 이런저런 사례를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는 이가 어찌 전문가일 수 있는가?
식물은 기후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그러니 최소한으로 작물이 자라는 주변만 풀을 정리하고, 나머지 부분은 그냥 둔다.
아! 그들은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나는 앞에서 말한 몇 가지 의문을 푸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와 관련한 답을 찾는 기본이며, 핵심이라 생각한다. 우선 정부나 농업연구기관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살펴보자. 왜 그들은 3%를 이야기하고,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시설 중심으로 고민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으로 스마트팜을 1순위로 이야기할까?
아! 그들은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나는 앞에서 말한 몇 가지 의문을 푸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와 관련한 답을 찾는 기본이며, 핵심이라 생각한다. 우선 정부나 농업연구기관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살펴보자. 왜 그들은 3%를 이야기하고,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시설 중심으로 고민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으로 스마트팜을 1순위로 이야기할까?
한마디로 농업의 역할은 국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이어 식량위기가 올 것이니 안정적인 식량생산방식은 무엇일까? 답은 스마트팜이다. 간단하다. 노지농사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토마토를 한평에서 190kg씩 생산할 수 없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30억에서 60억, 많게는 300억씩 스마트팜을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스마트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더워지는 날씨에 적응이 가능한 새로운 작물을 개발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병충해에 대해 연구하며, 이모작이 가능해지는 지역이 늘어날테니 그에 대한 연구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모두 생산성 향상과 관련한 것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날씨가 따듯해지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고 인식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중부지방에서 감귤을 생산하면 되고, 사과는 북부지방으로 올라가고, 남부지방에서는 열대과일을 생산하면 된다. 염려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왜 시설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지원할까? 간단하다.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업은 데이터에 근거해서 만들어진다.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근거는 대부분 데이터라는 이름을 가진 통계이다. 사업의 지속여부도 데이터를 통해서 판단된다. 그러니 지열히트펌프를 노지농사에 지원할 수 없다. 설치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노지에서는 순도가 보장되는 데이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 스마트팜에 더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설을 만드느라 여러 가지 자재들이 들 것인데, 그것으로 인해 늘어나는 온실가스는 생각하지 않는가? 또한 농민들은 말할 것이다. 농사의 결과가 어찌 지열히트펌프를 설치한 결과라고만 볼 수 있는가? 농사는 자고로 해와 비, 땅의 상태, 병해충 등 다양한 조건의 결과이지 않는가? 물론 그들도 이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애써 무시한다. 왜냐하면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통제되지 않거나 연구를 시도하기에는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300평에 감자농사를 짓는다면 그저 감자를 심고, 수확하는 것과 관련한 통계만 내는 것이다. 그러니 3%이다. 하지만 농사는 그렇지 않다. 어떤 거름을 넣을까에서부터 경운은 어떻게 하고, 씨감자는 어떤 것을 쓰고, 멀칭은 어떤 것으로 하며, 관수는 어떻게 하고, 어떤 방법으로 수확하고, 얼마가 나왔으며, 도시민의 식탁으로는 어떻게 이동하는지도 다 다르다. 더불어 얼마만큼 버려지는지도 알 수 없다. 이 많은 경우의 수를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3%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것을 의미 있는 데이터라고 할 수 있기는 한 걸까? 하지만 세상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에게 전문가라는 칭호를 준다. 변수가 워낙 많아 정확하게 수치를 계산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는 주목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소위 농업관련 전문가들은 농업부문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전체 온실가스의 3%라고 생각한다. 에너지부문이나 일상생활에 비해 적은 수치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유럽은 농업의 과정뿐만 아니라 유통과 소비까지 분석해보니 25%라고 하는 것이고, 미국은 축산과 관련한 온실가스가 더 많으니 30%라고 하는 것이다. 3%밖에 되지 않으니 나오는 대책이라는 것이 퇴비를 부숙해서 사용하고, 농기계 점검을 자주 하라는 것이다.
만약 연구가 계속되어 우리나라도 유럽이나 미국처럼 농업과 관련한 온실가스 배출이 전체의 20%가 넘는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이건 그들에게 큰일이다. 그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생산성과 효율성만을 생각하는 농업을 전파하고, 생물다양성이나 생태계보호는 생산량이 줄어들지 않는 선에서만 염두에 두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제 농업은 꽤나 진입장벽이 높은 직업이 되었다. 처음 농사를 시작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시설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미 우리나라 하우스 면적은 세계 3위이다. 156,655,675평. 하지만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일본이 10,890,000평이니 우리가 14배나 많다. 시설은 극도의 생산성을 추구하는 농사방식이다. 더불어 시장이 요구하는 상품성에 대응하기 적절한 방식이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조건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시설이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농민의 처지가 일본보다 열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농민들은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노지농사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당근이나 양파, 배추, 감자, 콩 등 대부분의 작물에 물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수확량과 상품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농민들은 품질이 좋으며 안정적으로 공급가능하고 가격도 저렴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위험과 싸워왔다면, 이제부터는 일상적인 기후위기와도 싸워야 한다. 밭농사는 외국인노동자가 없이는 어렵다고 말하고, 논농사는 모든 기계를 가지고 5만평은 넘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시절이 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농업은 누가 보아도 불붙은 기관차가 전속력으로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그 해답은 우리가 알고 있다.
그것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농사현장에서 계속해서 그 해답을 접하면서 살고 있다. 해답은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지금까지 스스로 치유해왔고, 스스로 균형을 유지해왔다. 자연이야말로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을 근거로 회자되는 농사법 몇 가지만 거론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농법, 자연재배, 예술자연재배, 보존농업, 재생농업, 공생농법, Zero budget natural farming, 농생태학, 퍼머컬쳐 등이다.
이름은 다양하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생물다양성을 높여야 한다. 섞어짓기, 돌려짓기, 사이짓기, 소량다품종농사. 농기계사용을 최소한으로 한다. 외부에서 사오는 것을 줄이고 내부의 순환체계를 강화한다. 비닐멀칭을 줄인다. 씨앗을 받아서 농사짓는다. 녹비작물을 심어야 한다. 땅을 건강하게 만든다. 경운하지 않는다. 토양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표토가 드러나지 않게 한다.
그렇게 농사가 되겠는가? 그렇게 해서 먹고 살 수 있겠는가? 생각이야 좋지만 현실성이 너무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만. 모두 좋다. 그럴 수 있다. 어찌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겠는가?
생각이나 처지가 다르니 각자 실천의 모습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농민에 대해 말로는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공익적인 일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개별사업자다. 본인이 판단해서 그 결과를 본인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농민들의 생각과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다. 그러니 군대나 학교처럼 통일되고 단일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결국 농민들은 생존과 관련한 문제이니 항상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하거나 검증된 것을 선택하는 보수적 존재가 된다.
하지만 정책입안자들의 의식부족, 농민들의 의지부족, 소비자들의 인식부족을 탓하면 우리의 역할이 끝난 것인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고 전 사회적으로 이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가 난무하지만, 실제 움직임이 없음에 한탄하거나 원망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니 각자가 본인의 논과 밭에서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뿐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어떠한 농사를 지어야 할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는 연구실에 있는 박사들이 아니고, 현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이다.
글 / 금창영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