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1

이병철 -꼰대의 독백 또는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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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8 h  · 
-꼰대의 독백 또는 유감(有感)/
어느새 세상 나이로 칠십이 훌쩍 넘었다. 애쓰지 않았는데도 절로 나이가 들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꼰대의 세대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나를 꼰대라고 불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꼰대라고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나의 바람과 상관없이 세상이 우리 세대를 일컫는 하나의 명칭이 된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꼰대가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꼰대가 아닌 척하지 않는다. 
꼰대를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정체성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꼰대이다. 꼰대가 우리 세대를 일컫는 하나의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나는 꼰대이면서 동시에 꼰대를 넘어선 다른 무엇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꼰대의 세대와 꼰대가 아닌 세대의 차이, 특히 꼰대와 젊은 세대와의 차이에 대한 인정과 함께 그 차이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 상호보완하면서 함께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꼰대의 세대는 꼰대가 되기까지, 꼰대라고 불리게 되기까지 우리 세대의 경험치와 이 경험치가 가져오는 이해와 인식(사고)의 틀이 있다. 이것은 다른 세대들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다. 
따라서 그런 경험과 인식에 따른 통찰은 독특하면서 소중한 사회적, 시대적 자산이기도 하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꼰대로서의 발언이 갖는 의미이고 역할이다. 젊은 세대는 꼰대의 이런 발언과 메시지를 통해 그 너머로 갈 수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젊은 세대의 몫이기도 하고 역할이기도 하다. 
결국, 젊은 세대의 역량에 따라 지금의 꼰대 세대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가 가늠된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역할은 꼰대 세대에 대한 외면이나 무조건적 비판이 아니라 꼰대의 긍정적 경험치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서는 일이다. 
이것이 포월(抱越)이다. 역사의 바른 진전, 진보란 이처럼 이어가면서 넘어서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한 젊은 세대의 첫 질문은 '저들은 어떻게 저런 꼰대가 되었는가.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동시대의 나와 같은 동료(?) 꼰대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부디 자기 목소리를 잃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고집하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젊은 세대들이 세상의 주역이니 이젠 그들의 말을 듣고 무조건 따라가야만 한다거나 한술 더 떠서 그들에게 영합하여 그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젊은 세대를 돕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릇되게 하는 짓이기 십상이다.
우리가 아무리 젊은 세대를 흉내 내거나 추동한다고 해도 결코 꼰대 세대를 벗어날 수는 없다. 이미 말했듯 역사적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의 경험, 그것은 외면하거나 부정하거나 청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것을 디딤돌 삼아 딛고 넘어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꼰대가 아닌 척하지 말자. 그것은 꼴불견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추한 꼰대 짓이 달리 또 있겠는가.
문제는 꼰대들의 꼰대 짓이 아니라 꼰대 세대가 아닌 세대들의 꼰대 짓이다.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기 경험치가 아닌 것으로 세상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것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사이비이고 거짓이고 기만이다. 그래서 더욱 위험한 짓이다. 

이른바 민주화 세대라고 자부하는 일부 586 정치세대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걸핏하면 역사적 청산과 적폐 척결을 내세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역사를 후퇴시킨다. 낡은 이념과 퇴행적 역사관 그것이 꼰대 짓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저들이 경험한 바 없는 사실을 저들의 입맛에 따른 허황한 잣대로 재단하고 규정한다. 그 결과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지금 이 나라 꼴이다. 
꼰대들이 아닌 자들의 가짜 꼰대 놀음에 꼰대들이 단호하게, 추상같이 호통을 쳐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꼰대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여 꼰대들을 농락했기 때문이고 자칫 나라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가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방관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꼰대들 스스로를 모독하는 행위이자 애써 이루어온 지난 세대의 결실들을 거덜 내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 꼰대들은 스스로 당당히 꼰대임을 자임하면서 젊은 세대들이 그것을 딛고 넘어서게 하자. 넘어서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닌 오로지 그들의 몫이니.
꼰대로서, 꼰대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당당하게 발언하며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깊게 경청이고 가슴으로 소통하자. 우리 또한 밤마다 혁명을 꿈꾸었던 뜨거운 청춘이었고 앞 세대의 꼰대 짓에 저항했던 젊음이었음을 기억하자.
모든 새로운 것은 옛것이 있어 비로소 새로울 수 있었음을 잊지 말자. 꼰대로서의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게 하는 징검다리라는 사실에 감사하자. 그러니 꼰대의 역할에 충실하자. 꼰대들 또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니 이 사회와 나라의 소중한 세대적 자산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래된 미래라는 말처럼 자기주장이 당당한 꼰대들과 이 삼십 대의 풋풋한 젊음의 패기와 열정 그 상상력이 합작 또는 융합하여 새로운 나라를 그리는 것은 한갓 꼰대의 꿈에 불과한 것일까.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산업화의 신화로 넘어선 세대들의 경험과 지혜와 사이비 꼰대들에 의해 거덜 난 나라의 안팎으로 밀려오는 거대한 전환의 파고 앞에서 새로운 나라를 열어가야 할 젊은 세대들의 열정이 결합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희망을 일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젊은이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꿈꾸는 철없는 꼰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