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2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 로이 (지은이),허우성 (옮긴이) 2012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 현대사회의 딜레마들에 불교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데이비드 로이 (지은이),허우성 (옮긴이)불광출판사2012-02-28

원제 : Money, Sex, War, Karma (2008년)

15,000원

13,500원 (10%, 1,500원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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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쪽

 Money, Sex, War, Karma: Notes for a Buddhist Revolution (Paperback) Paper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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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 교양 강의 책. 불교의 핵심이 ‘사람들의 고(苦)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불교가 지금 의미 있으려면 ‘현대의 고’를 줄이는 데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돈, 섹스, 시간, 음식, 명성, 전쟁과 같이 우리 삶과 구체적으로 만나는 지점들에서 불교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경전과 역사를 넘나들며 우리시대와 통하는 살아 있는 불교를 찾아 헤맨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과연 불교는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곱씹어볼 만한 생각거리들을 저자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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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불교는 우리에게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제1장 나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제2장 부자가 계속 돈을 원하는 이유는?


제3장 왜 우리는 명성에 매달리는가


제4장 시간 안에 갇히다


제5장 언어로부터의 자유란 무엇인가


제6장 업(業) 사용설명서


제7장 섹스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제8장 붓다라면 어떻게 했을까


제9장 경제, 군대, 대중매체?탐욕, 악의, 망상의 제도화


제10장 주의력결핍장애 시대에 산다는 것


제11장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제12장 유전자변형식품은 우리에게 행복을 줄까


제13장 우리는 왜 전쟁에 매혹되는가


나가며: 불교 혁명을 위한 노트


역자의 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 스터디


책속에서


P. 49 돈의 유혹에 빠지면 그 ‘순수한 수단’을 얻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점이다. 즉 지구는 자원이 되고, 우리의 시간은 ‘노동’이 되고, 우리의 관계는 이용해야 할 ‘연줄’이 된다.


P. 50~51 마침내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의 가격은 알게 되었지만, 그 어떤 것의 가치도 알 수 없게 되었다.


P. 62 명성은 “그가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것을 보장해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마침내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이고, 그 덕분에 당신은 살아 있지만 죽은 목숨(living death)인 무명(無名)에서 구원받기 때문이다.”


P. 73 내가 시간과 공간 안에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이 바로 여기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게 나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P. 104 업(業) 이론은 우리 삶의 문제적 상황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라고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대, 자비, 불이(不二)적 지혜로 그런 상황에 대처하여 우리의 영적인 삶과 세계의 상황을 개선하라고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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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2년 03월 10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데이비드 로이 (David R. Loy) (지은이) 


불교학자이자 선禪 수행자. 1984년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 하와이에서 야마다 코운, 로버트 애잇킨과 함께 불교를 만나 수행하고, 1984년 일본으로 건너가 선 수행을 계속했다. 20여 년 간 일본에 머무르며 분쿄 대학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1998년 법사 인가를 받은 뒤 본격적인 선 지도자의 길로 나섰으며, 스피릿 락Spirit Rock, 바르 불교학센터Barre Center for Buddhist Studies. 오메가연구소Omega Institute, 캠브리지 인사이트 센터Cambridge Insight Center, 파리의 테르 데빌Terre d’eil, 부다페스트의 다르마 게이트Dharma Gate와 같은 곳에서 국제적인 수련회와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적 참여불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로 모교인 칼튼 대학Carlton College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화석연료에 대한 대학의 기금 투자를 철회하지 않기로 한 대학 이사들의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서 그는 나중에 이 학위를 학교에 반납했다.)


로키산 에코다르마 수행센터의 부원장이기도 한 그는 불교와 생태주의와 행동주의에 관해서 많은 기사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으며, www.davidloy.org에서 글과 팟캐스트를 볼 수 있다. 저서로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불광출판사 펴냄), 《새로운 불교의 길A New Buddhist Path》과 《결핍과 초월Lack and Transcendence》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 총 18종 (모두보기)


허우성 (옮긴이) 


경희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및 비폭력연구소 소장이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객원교수(한국연구재단 강의 파견 교수, 1998), 일본 교토대학교 종교학 세미나 연구원, 도쿄대학교 외국인연구원, 미국 UC 버클리 대학교 방문교수, 한국 일본사상사학회 회장,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일본국제문화교류센터 해외연구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 《간디의 진리 실험 이야기》 등이 있고, 옮긴 ... 더보기


최근작 :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색>,<동아시아 속 한국 불교사상가>,<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인문학> … 총 2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는 왜 고통스러울까?

왜 항상 돈이 부족할까?

우리는 왜 명성을 얻고 싶어 하나?

현대인이 시간에 쫓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섹스에 매달릴까?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 걸까?

어쩌다 생태계가 이렇게 파괴되었을까?

생명공학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이 모든 질문들에

불교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 교양 강의


붓다가 미국에 살았다면? 현란한 광고와 자극적인 이미지, 자본의 논리로 작동되는 사회체제, 국익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정부를 보고 그는 뭐라고 말했을까?


붓다는 혁명가였다. 그는 당대의 사람들을 억압하는 종교와 사회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혁신적인 가르침을 펼쳤다. 그로부터 2,6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그가 전한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할까?


저자는 불교의 핵심이 ‘사람들의 고(苦)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불교가 지금 의미 있으려면 ‘현대의 고’를 줄이는 데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돈, 섹스, 시간, 음식, 명성, 전쟁과 같이 우리 삶과 구체적으로 만나는 지점들에서 불교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경전과 역사를 넘나들며 우리시대와 통하는 살아 있는 불교를 찾아 헤맨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과연 불교는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곱씹어볼 만한 생각거리들을 저자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돈과 명성에 목을 매는 이유


논의의 출발점은 불교의 ‘무아’(無我)이다. 무아는 우리가 보통 변치 않는 ‘나’라고 인식하는 게 실제로는 없다는 개념으로, 우리의 상식에 정면 도전한다. 그럼 불교에서는 왜 ‘나’가 없다고 하는 걸까? 세상 모든 것은 서로 맺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영양을 주는 음식, 생명을 준 부모, 기쁨을 주는 친구, 숨 쉴 공기를 주는 나무 등을 비롯한 세상 모든 것으로 꽉 짜여 있는 그물의 어느 한 지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이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나’로 여긴다. 이렇게 스스로를 왕따시킨 결과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 자기의 존재 이유를 모르는 데서 오는 극심한 결핍감을 느끼며 “살아 있지만 죽은 목숨”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돈과 명성에 목을 매는 건 이 둘이 그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돈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 부자나, 더 큰 명성을 얻고 싶어 하지 않는 유명인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수단들이 진정한 치유책이라면 어째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없는 걸까? 혹시 이런 노력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닐까?


우리는 ‘나’가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나’가 없는데 어떻게 ‘구멍’이 있을 수 있는지, 우리가 존재의 비어 있는 곳을 과연 메울 수 있는지도 성찰해야 한다. 우리가 하얀 종이를 볼 때마다 거기에 떠 있는 구름 한 조각을 볼 수 있을 때까지(184쪽 틱낫한 글 참고).




섹스의 불편한 진실


불교 승려는 섹스를 한 사실이 들통 나면 승려 집단에서 쫓겨난다. 왜 섹스는 그렇게 큰 잘못이 되었을까? 승려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섹스 덕분인데. 이를 알기 위해선 불교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훑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섹스가 승려 집단에 초래할 두 가지 위험을 주목한다. 하나는 섹스의 결과 태어난 아이 문제이다. 아이가 생겨나면 승려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는 일본불교에서 볼 수 있는 가족 사업화된 사찰이다. 그렇게 되면 돈이 되는 장례식과 추도식을 뺀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승려와 후원자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승려 집단은 불교도 후원자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형식으로 발전해왔는데, 후원자들이 승려에게 더 큰 순결성을 요구한 결과 승려들의 순결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승려가 아닌 우리들은 제약 없이 섹스를 해도 되는 걸까? 불교의 관점에서 답하면 ‘그렇지 않다.’ 그런 행위로는 고(苦)를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신화에 빠져든 나머지 섹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적 친밀감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섹스는 자연의 속임수이고, 낭만적 사랑이란 그 속임수 위에 덧칠해놓은 정서적 광택이다.” 낭만적 사랑이 끝난 자리에 자녀 양육과 같은 책임만 남았을 때,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저자가 섹스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그것의 장점을 인정한다. 다만 “섹스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신화가 감추고 있는 “섹스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자고 제안할 뿐이다.




우리는 왜 전쟁을 멈출 수 없는가


전쟁의 이유에 대한 사회·경제적인 분석은 지금까지 자주 있어왔다. 그런 분석들에서는 전쟁을 사회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흐르게 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 상황을 만들어내려는 권력자의 의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세계를 손 안에 두려는 강대국의 욕망 등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한 인간으로서도 전쟁에 매혹된다. 왜냐하면 “전쟁은 우리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채널 서핑이나 쇼핑에 빠진 채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사회 구조 안에서 정해진 위치에 따라 살면 되었던 전통사회와는 달리, 지금 우리는 홀로 내던져진 존재가 되어 각자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 쉽지 않은 과업을 달성하지 못한 우리들 대다수에게는 권태와 공허만 남는다.


하지만 전쟁 상황이라면 다르다. 일단 적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편으로 똘똘 뭉치게 된다. 이 “따스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유대감”과 생존본능은 우리의 주의를 권태와 공허에서 떼어놓는다. 더군다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한 정의 혹은 신의 사명 같은 환영을 전쟁에 덧씌워놓는다면, 선의 편에서 우주적 차원의 전쟁에 참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의기양양해지겠는가! 그러한 “영적 투쟁은 죽음조차 초월할 수 있는 영웅적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인생의 공허를 직시했다는 점에서는 옳다고 본다. 하지만 전쟁이 불러오는 비참은 그쳐야 하며,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처방은 망상으로 본질을 가려놓은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만일 전쟁이 결핍에서 오는 집단 문제에 대한 집단 반응이라면, 우리는 전쟁이 종식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삶의 공허에 대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영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백 번 생각보다 한 번 행동을


“나는 지옥에 좌선만 하는 사람을 위한 특별 장소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시종일관 바른 앎을 강조하지만, 아는 데서 그치는 건 불교도의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는 만큼 즉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개인의 복을 비는 구복불교와 수행 제일주의로 기운 나머지 사회 참여를 소홀히 하는 한국불교계를 향한 따끔한 지적처럼 들린다. ‘보살도’(bodhisattva path)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보자.




“보살은 다른 생명을 돕기 위해서 자신의 완전한 깨달음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보살에겐 타인을 돕는 것이 자신의 깨달음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보살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해방을 다른 사람들의 해방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보살도에 대한 이런 이해는 카르마, 곧 업(業)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여실히 반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업을 ‘다음 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 정도로 이해하지만, 사실 업은 바로 지금 생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행복은 덕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스피노자)인 것처럼 우리는 “죄 때문에 벌을 받는 게 아니다. 죄 그 자체가 우리에게 벌이다.” 업 이론은 삶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면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한다. 당신의 마음이 달라지면 세계도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에 다르게 반응하면, 세계도 우리에게 다르게 반응한다.”


우리들은 이러한 인식을 인간세계에서 지구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초래할 전 지구적 위험은 무시하고 넘어갈 수준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석 위에 앉아 참선만 하느니 차라리 남극에서 오존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자외선에 화상을 입을 것이며, 툰드라 지방에 가서 녹아내리는 영구동토층 위에 뒹굴어라.


저자는 우리시대와 통하는 살아 있는 불교를 찾아 경전과 역사를 두루 섭렵한다. 그 결과 현대사회의 애매한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모든 것은 변하는 과정 위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다만 저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길 원한다면 우리가 맞닥뜨린 딜레마들에 영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생각거리들을 불교에서 찾아 우리에게 건네주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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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9.5


우왕 2014-07-27 공감 (0) 댓글 (0)


불교의 핵심 가르침으로 오늘날의 문제를 해법하는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 하는 모범적인 사례. 명철하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이고 소위 전문가들이 흔히 늘어놓는 복덕방노인네같은 미사려구로 헛소리하지 않는다.  구매


고기 2012-06-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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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향한 진군은 우리 이웃, 사회, 나라와의 따스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유대감을 만들어냈고 소외와 혼란이라는 불편한 암류를 완전히 제거했다. 전쟁의 매력은 이것이다. 전쟁은 그 파괴와 대학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생에서 갈망하는 것을 줄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목적, 의미, 삶의 이유를 준다. 전장에 있으면 우리 인생의 대부분을 채우는 피상성과 권태가 뚜렷해진다. 전쟁은 우리를 고귀하게 해준다.”


9/11 사태 때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를 몰고 돌진한 이유는 바로 그 ‘고귀함’ 때문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영적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난민촌에서 미래에 대한 별 희망도 없이 점점 쇠약해지는 것이나 TV 채널 서핑에 빠져 있거나 상점에서 쇼핑하는 것에 비해 얼마나 의기양양한 대안인가? 영적 투쟁은 죽음조차 초월할 수 있는 영웅적 정체성을 부여한다. 위험하고 혼란스럽고 격렬한 바다(현대사회)에서 종교는 형안의 항구에 내린 닻이다. 깊고도 거의 초월적인 의식수준에서 그들(종교 테러리스트)은 자신들의 삶이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감지한다. 그리고는 그 혼란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느끼면서도 자신들 역시 그 혼란의 희생자라 생각한다. 그런 세계에서 종교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종교적, 인종적, 국가적 공동체보다는 위험에 처한 자신의 개인적 자아에 주로 관심을 쏟는다.”


그들이 느끼는 무의미함은 성(聖)의 차원이 세속화된 이 세계에서 거세되었기 때문이다. “저 폭력적인 종교운동에도 일리는 있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으며 우리 또한 그들과 공유하는 기본 문제는 다른 종교들이 제기하는 위협이 아니라 이데돌로기가 아닌 체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세속주의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인데도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세계인 것처럼 가장ㄴ다는 점이다.”


세속주의는 아주 독특하고 특이한 현상이다. 성과 속이란 대립개념은 성의 증발 때문에 태어났다. “성속의 구별은 우리의 결핍감을 달래기 위한 더욱 개인적인 길이었다. 루터는 신앙을 내면화하고 신의 거룩한 영역을 세속의 저 높은 곳에 투사함으로써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이 서로 연속한다는 중세의 세계관은 무너졌다. 그, 둘 사이에서 새롭게 해방된 공간은 새로운 것, 곧 세속적인 것을 창조햇다.” 왜 이것이 문제인가? “세속세계에는 뭔가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즉 세속세계에는 우리의 결핍감을 이해하고 해소할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영적 문제이다.”


그 결핍감을 기독교에선 원죄란 말로 설명했고 여러 종교들이 그것을 설명하고 처리할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더 이상 그런 처리는 가능하지 않다. “나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많은 사람을 오래 살게 하고 때로는 죽음을 육체적으로 덜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잇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공허에 대한 해답은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세상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 줌심의 바닥없는 구멍을 메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우리가 갈망하는 의미를 우리에게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전쟁이라는 방식은 우리의 삶의 잘못되었음을 확실히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전쟁은 우리의 개인적인 결핍을 묶어서 그것을 외부의 적에게 투사하는 단순한 방법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이 종식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근본적인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저자는 방법을 불교가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런 결핍감, 뭔가 없다는 느낌, 내 인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우리의 잘못된 자아 감각이 갖는 어두운 면으로 본다.” 즉 고(dukka)이다.


“고의 요점은 돈이 많고 건강한 사람들조차도 근원적인 불만, 곧 부단히 괴로운 불편(dis-ease)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인도의 전통에서 고란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요가도 자이나교도 그외 수많은 (불교의 입장에서) 외도들 모두 고의 문제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고를 자아감각과 연결시킨 것이 불교의 진정한 업적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불교에서는 자아가 바로 고이다”




 




연기란 말은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구성된다는 말이다. 자아감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아에 대한 ‘나의’ 느낌은 습관적으로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런 무상한 과정들은 다른 과정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사물들로부터 분리된 자아감각을 발생시킨다. 만일 그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과정을 모두 제거한다면 그것은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다. 마지막에 이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문제는 우리가 無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중심에 나 있는 텅빈 구멍은 우리를 매우 괴롭힌다.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은 [우리 자신과] 일치시킬 것도 매달릴 것도 없다는 말이다. 즉 내가 ‘무’라는 건 구성된 느낌으로서의 자아가 근거 없는 것이고 그 근거 없는 자아가 비실재성과 불안전성(insecurity)이라는 근본적인 느낌의 출몰로 괴로움을 겪는단 말이다. 자아감각은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 그것은 안정적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無我란 말의 요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비실재감을 ‘내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느낌으로 경험한다.” 문제가 있다는 그 느낌, 그 불편함이 바로 고의 내용이라고 불교는 말한다.




 우리는 그 불편함을 억압하려 한다.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 불편함, 자신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느낌, 결핍감을 메우기 위해 뭔가에 매달리려 한다. 그 뭔가가 전쟁이 되고 돈이 되며 명성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慾이란 결핍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돈은 우리가 그것으로 어떤 것이든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집단 속에서 우리가 실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기 때문에 중요하다. 명성 역시 비슷하다. 만일 내가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면 그만큼 나는 정말로 더 실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다 해도 우리의 결핍감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욕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권력이 우리 실재의 가시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그것을 갈망한다.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지배햇다. 르거나 그들은 실제로 안전하다고 느낄 정도로 상황을 통제하지는 못햇다. 권력을 가장 많이 요구하는 자는 가장 지독한 편집광이 되고 만다.”


내가 無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에 우리는 不善하게 된다. 불교가 말하는 三毒, “탐욕, 악의, 망상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아주 곤란하게 만드는 문제 있는 동기들이다.” 그것을 불교에선 業이라 말했다. “나의 자아감각이 내가 습관적으로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면 업은 내가 가진 어떤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그 자체이다. 중요한 건 내 존재를 바꿈으로써 곧 내가 습관적으로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재구성함으로써 내 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왜 업을 바꾸어야 하는가? “내가 만일 탐욕, 악의, 망상에 따라 움직인다면 다른 사람을 조종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킬 뿐 아니라 나 역시 그들로부터 더욱 분리된 존재라고 느끼게 한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나의 자아’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방어하고 띄우기에 바쁘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잘못된 자아 감각을 강화한다. 내가 (삼독의 반대인) 관대함과 자비로 움직일 때 나는 여유를 갖고 마음을 열며 덜 방어적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모두를 위해 고를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불교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하다. “우리가 텅 비어 잇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방식이 문제를 키운다.” 무아의 요점은 “자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자아가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기에 제거는 불가능하다.”


“고는 일반적으로 고통으로 번역되지만 기본적인 불편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낫다. 고란 무언가를 성가셔하는 깨닫지 못한 마음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가장 근본으로 불교에서 강조하는 바는 고와 자아 사이에 연관관계가 잇다는 통찰이다. 내가 살아가고 잇는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잇다고 자아가 느끼는 것, 바로 여기에서 가장 깊은 좌절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분리감은 환상이며 실제로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망상이다.”


그러나 불교의 통찰은 새로운 질문으로 바꿀 필요가 잇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지옥에 좌선만 하는 사람을 위한 특별 장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지옥으로 치닫는 바깥세상에 무관심한 채 자기자신에게만 빠져서 방석에 앉아 좌선을 한다.”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삼독 역시 집단적으로 작동하는가? 집단자아가 있다는 말은 집단적인 탐욕, 집단적인 악의, 집단적인 망상이 존재한다는 의미인가? 이런식으로 질문을 던지면 답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현재 경제제도는 탐욕을 제도화하고 군사주의는 악의를 제도화하며 기업화된 대중매체는 망상을 제도화한다. 이와 같은 제도화된 삼독의 본성을 깨닫는 일을 우리가 영적 수행의 결과로 얻은 개인적 깨달음만큼이나 중요하다. 실제로 방석 위에서 좌선하여 얻는 개인적 깨달음은 그러한 ‘사회적 깨달음’으로 보완될 때까지는 불완전하다. 보통 개인 차원에서 달성하는 확장된 의식을 수행의 목표로 떠올리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집단 망상을 걷어내어 사회, 경제, 생태에 관한 이분범에 감춰진 실체를 폭넓게 이애해야 한다. 개인의 고와 집단의 고가 같이 간다면 오늘의 거대한 사회, 경제, 생태적인 위기는 동시에 영적인 도전이며 그러하므로 그에 요구되는 대응에도 영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교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이라 저자는 본다.


내면을 바라볼 때 나는 내가 무임을 본다. 그것이 지혜이다.


바깥을 바라볼 때 나는 내가 모든 것임일 안다. 그것이 사랑이다.


이 둘 사이에서 내 인생은 맴돈다.


나사르가다타 마하라지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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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lu 2012-04-15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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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대사회의 딜레마에 대해서 불교의 가르침을 내세운 책이다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책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모두 인간이 가진 욕망과 욕심을 나타내주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이란 결국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하지만 돈으로 인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의 진정함을 알지 못한채 돈에 속박 당한채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돈으로 인해서 오는 무수한 사건사고들을 접하다 보면 도대체 돈이 뭐길래 돈 앞에서 사람이 저렇게 까지 행동할수 있으며 어떻게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의 탈을 벗고 인간이기를 포기할 만큼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가끔씩 들기도 한다




돈으로 인해서 생명을 사고 돈으로 인해서 사람을 사고 무수히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불법적인 행동들을 볼때마다 결국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 구토가 유발되고 사회에 염증이 생기는것 같기도 하다




돈이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삶을 살아나가는데 아무런  불필요한 점은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필요한 만큼 자급자족 해서 살아가면 되니까 그리고 돈은 자기가 관리할수 있을만큼 만 가지고 일상생활에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자기가 관리도 못할만큼 재산을 쌓아두고 사는 건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하는 무수한 선택속에서도 가장 비루한 선택으로 별로 라고 생각하며 삶을 완성할 마지막 단계에서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게 삶을 잘 마무리 짓는 방법중에서도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쫓는다 정작 자신의 꿈은 잊어버린채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 보면 돈 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물질적인 것보다 내면적으로 쌓아나가야 할 행복이 우리 주변에 는 많기 때문에 꼭 돈을 쫓기 보다는 지금 나에게 정작 중요한게 무엇인지 좀더 크게 생각해서 자신의 정말 원하는 인생의 로드맵을 찾았으면 좋겠고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섹스 ㅋ


인간의 종족번식력과 욕망 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단어 섹스


인간이기에 욕망을 다 저버릴순 없지만 무분별하게 하는 섹스 보다는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 줄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섹스가 더 아름답지 않을까 ???????


성을 돈을주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돈을 주고 하는 섹스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오르가즘을 느낄수 있을지 궁금하다


섹스를 하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까 ???????


전쟁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눈에 띄는 전쟁 아주 작게는 타인과의 나와의 전쟁에서 부터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 우리들은 어쩌면 늘 끊임없이  전쟁중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전쟁이란게 되돌아 생각해 보면 내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과 타인과의 잘못된 소통결여로 이뤄지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 땅위에서 자행되는 전쟁을 모두는 없앨수는 없지만 전쟁으로 인해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이 입는 피해를 생각하면 정말 전쟁만큼 사람이 살아가면서 업을 쌓는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에서 불행하지 않고 행복할수는 없는걸까 ??????????


이책은 돈 섹스 전쟁 카르마에 대해서 불교의 가르침을 전수 받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욕심과 욕망에 대해서 생각할 문제와 그 문제들을 해결할 고민들로 스스로 를 반성하게 만드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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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핫 2012-06-1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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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 현대사회의 딜레마들에 불교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 현대사회의 딜레마들에 불교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epub

데이비드 로이 (지은이), 허우성 (옮긴이) | 불광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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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성 (지은이), 라가반 이예르 (엮은이) | 풀빛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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