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9

알라딘: 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캇 펙

알라딘: 거짓의 사람들


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캇 펙
(지은이),윤종석 (옮긴이)
비전과리더십2007-08-30

원제 : The People of The Lie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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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9,800원



양장본
514쪽
152*223mm (A5신)
925g
ISBN : 9788990984340

주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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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책소개
인간은 어떻게 해서 악을 행하게 되는가. 나아가 그 악을 어떻게 직면하고 극복할 것인가. 스테디셀러 &;lt;아직도 가야 할 길>의 지은이 스캇 펙 박사가 정신 치료 현장에서 맞닥뜨린 악에 대한 생생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거짓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는 책.

지은이는 강박증, 자폐증, 아동학대, 베트남 전쟁, 인종 청소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 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또한 개인의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집단 악의 문제에 접근하는데,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을 성찰하면서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심층을 추적하고 있다.


목차


추천의 말
머리말

1. 악마와 계약을 맺은 남자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조지의 문제/강박증의 근본 원인/악마와 계약하다

2. 악의 심리학을 찾아서-자신을 속이고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
의학적 모델과 신비한 영역/삶과 죽음의 문제/바비와 그 부모의 사례/누가 환자인가/악과 죄/나르시시즘과 자기 의지/

3.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악-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로저와 그 부모의 사례/악의 미묘성과 교활성/하틀리와 사라의 사례/정신질환과 악의 이름짓기/안젤라의 꿈에 나타난 부두교 의식/빌리의 거미 공포증

4. 악의 실체에 대한 접근-악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
혼돈스러운 출발/유아냐 성인이냐/퇴행과정의 경험/자신을 가둬 버린 성(城)/꿈에 나타난 신기한 무기/이기지 못한 게임/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면

5. 귀신들림의 진단과 치료-귀신들린 사람들과 치료하는 사람들
마귀는 존재하는가/주의 : 고압선/귀신들림의 진단과 치료/과학적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거짓의 아비

6. 영혼을 잃어버린 집단의 악-집단의 이름으로 악을 자행하는 사람들
전범/사다리 오르기/복합적인 책임의 소재를 찾아서

7. 악의 심리학, 그 위험과 희망- 인간 악의 근원적 치료법, 사랑
악의 심리학의 위험/사랑이라는 방법론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그해 10월 어느 날 오후, 그때까지만 해도 조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p123
악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의 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은 죄의 난해성, 완고성, 경직성에 있다. 악한 사람들의 핵심적인 결함은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에 있다. - sara
참된 크리스찬이란 예수님이 기쁨으로 거하시는 처소인 사람을 말한다 - jay


추천글
스캇 펙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악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과 소외, 편견, 분노, 적개심, 갈등을 분석한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거짓’의 정체를 탁월한 필력으로 드러낸다. 인간 이해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 정동섭 (가족관계연구소 소장, 전 대전침신대 상담학 교수, 박사)
- 정동섭 (가족관계연구소장, 전(前) 침례신학대 상담심리학 교수, Ph.D.)

정말 놀랍고 훌륭한 악에 관한 연구.... 이 책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을 관통해서 퍼 올린 산지식이다. - 워싱턴 타임즈
- 워싱턴 타임스

<악이란 무엇인가?>에 정면으로 맞서 치료해야할 질병으로 정의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거짓의 사람들』을 집필한 스캇펙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 필리스 써로우 (작가)
- 필리스 서루 (『The Journal Keeper: A Memoir』 저자)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종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그들은 깨진 가정, 인간관계의 갈등, 편견, 타인에 대한 분노, 적개심, 문화적 인습이라는 외적 모습을 갖고 있는 희생양인 것이다. 저자는 이들 외적 모습들 이면에 숨어 있는 악의 세력, '거짓'의 정체를 밝히고자 시도한다. 저자는 이 모든 희생과 파괴의 조정자로서 '악령'을 지목하고, 그 정체를 구체적인 존재로서 형상화해 내며, 그 존재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린다. 그 분노는 너무도 강렬하여 영적 세계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전율케 한다. - 이만홍 (전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로뎀신경정신과 원장)
- 이만홍 (한국목회상담협회 영성과 상담분과위원장, SoH영성심리연구소 대표)

징병제는 차악의 선택
- 정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저자 및 역자소개
M. 스캇 펙 (M. Scott Peck)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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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하버드대학(B.A.)과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M.D.)에서 수학한 후, 10여 년간 육군 군의관(정신과 의사)으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개인과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고 그러한 통찰은 여러 편의 책에서 구체화된다. 1978년, 마흔두 살에 쓴 첫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사랑, 전통적 가치, 영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심리학과 영성을 매우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며 이후 《뉴욕타임스》의 최... 더보기

최근작 : <아직도 가야 할 길 세트 - 전5권>,<마음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아직도 가야 할 길, 그 길에서의 명상> … 총 138종 (모두보기)

윤종석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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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Golden Gate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학(MA)을,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상담학(MA)을 공부했다. 『예수님처럼』『하나님의 모략』『메시지』(복 있는 사람), 『하나님의 임재 연습』(두란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IVP)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최근작 : <아침마다 새로우니>,<묵상하는 삶> … 총 5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저자 스캇 펙은 거짓의 사람들을 악한 사람들로 규정한다. 그는 악함의 원인으로 병적인 나르시시즘과 마땅히 치러야할 댓가를 치루려하지 않는 게으름, 그리고 이런 심성을 가진 사람들을 조종하는 사탄의 세력을 들고 있다.

악한사람들이 지닌 병적인 나르시시즘은 만성적인 책임 전가로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그래서 스캇 펙은 “악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자신의 죄나 불완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드는 점이다. 악한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자신의 양심을 직시하는 고통, 자신의 죄성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고통”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그는 “악한 사람들이 파괴적인 이유는 종종 그들이 악을 퇴치하려는데 있다. 문제는 그들이 악의 소재지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악을 퇴치하려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속의 질병부터 막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접기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로 시작하는 위험한 책, <거짓의 사람들>을 읽었다. 저자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거짓의 사람들>은 정신 치료 과정에서 저자가 만나고 치료했던 여러 환자의 임상과 그 현장에서 맞닥뜨린 악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이 책의 중요한 논거는 ‘악하다’는 것을 인간 성격의 한 측면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질병’의 하나로 보았다는 점이다. 정신 의학자이며 의사로서 가지고 있는 학문적 배경과 임상 경험을 통해 ‘거짓말을 잘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악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대응이 비교적 소상하게 그려져 있다. 챕터 6에서는 <집단의 이름으로 악을 자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며, 그 실례로 미국의 베트남전 파병과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그 곳에서의 악행을 다루었고, 당연히 한나 아렌트의 논의와 다른 철학적 접근도 이야기하고 있다.

챕터 5에서는 ‘축사’라는 부분이 다뤄지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듯싶다. 일단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라고 믿는 사람들과 ‘영혼이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악한 영의 존재는 실재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런 건 오로지 사람들의 상상력의 산물이다’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을 테다. 

저자는 기독교인이면서 정신과 의사로서 오랫동안 이런 ‘악한 영’의 존재에 대해 불신해 왔는데, 부인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한 이후에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대한장로회 통합 측의 엄격하고 경직된 분위기의 장로 교회에 자랐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여러 장소(기도원 등등)에서 여러 초자연적인 장면들의 ‘일부’가 되었던 터라, 그런 서술이 전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인간에게 ‘몸’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고, ‘육체’라는 이 껍데기 너머에 (내부에, 이면에) 하나님의 거룩한 일부(하나님의 영)가 거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73쪽의 이 문장들을 이해할 뿐 아니라 믿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는, 인간의 삶 속에는 성스러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과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우리는 신을 닮은 존재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인간의 삶에는 성스러운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73쪽)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정신 상담을 위해 찾아온 ‘십대 환자’의 ‘악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전문가인 의사의 조언이나 설명을 듣지 않고 자기변명에 빠진 부모들. 자신들은 괜찮은 정도를 넘어 ‘좋은’ 부모라는 착각에 빠진 부모들을 세세히 관찰한 부분이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사실 그 문제에 제대로 파고 들어가 보면 문제의 진짜 원인은 자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 가정, 학교, 사회에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픈 아이 뒤에는 아픈 부모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 생각에는 아이들을 고쳐야 한다고 판단할지 몰라도 대개 서둘러 고쳐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는 부모 자신들이다. 진짜 환자는 부모들인 것이다. (105쪽)

나는 경험에 의해 악은 후손에게 이어지는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4장에서 예로 들게 될 그 사람에겐 악한 부모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대물림 현상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오랜 '유전이냐 환경이냐'는 논쟁의 해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악이 후손에게 내려가는 것은 그것이 유전자를 통하여 전달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이가 부모를 보면서 배우고 따라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부모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려다 그렇게 되는 것인가? 악한 부모를 둔 많은 자녀들이 상처는 받으면서도 악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과학적인 연구 작업이 지속되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모를 것이다. (145쪽)





인간 성격 형성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당연히 부모다. 유전적인 요인의 핵심이 바로 부모이고, 유아기에 특히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 역시 부모가 결정한다. 정확히는 부모가 결정한다기보다는 부모 자체가 환경이다. 유전과 환경이 부모에게 달려있다. 악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악한’ 사고의 흐름과 생활방식을 학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악한 부모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려다 오히려 더 악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악한 부모를 두었는데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부모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흔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 상황에 대해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인간 삶에 미치는 다양한 변인을 통제하거나 관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알 수가 없다.








‘모든 책이 육아서로 읽히던 계절’을 지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내 자신의 ‘부모됨’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아이들이 제법 자랐으니, 이제 무언가를 ‘주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276쪽 저자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자면 ‘자녀의 독립과 분가를 위해서는 부모가 자신들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어야만 한다’는데 동의한다. 나 역시 그러고 싶고, 또 현재로서는, 부모인 내가,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기대지 않으면서 나 자신의 외로움을 잘 견뎌낼 수 있을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남편과 부모님과는 다른, 그러니까 내게 전혀 다른 질감과 무게의 감정을 불러오는 아이들에 대한 내 사랑이,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내게도 각별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완벽하게 구별된 존재이되 하나의 공간 속에 같이 살았던 공존의 시간 말고도 아이와 나만이 공유했던 경험과 느낌이 존재하니 말이다.








지난주, 출근하는 중에 라디오를 들었다. 10. 29 참사 희생자 어머니의 인터뷰를 듣고 있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따라 렌즈를 끼고 있어서 눈앞이 금방 뿌옇게 변하는 것을 핸들을 꽉 움켜지고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먼저 죽은 자식의 생일상을 준비하는 마음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여행 계획을 맡아했던 아이가 이제 이 세상에 없어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모른다. 알 수 없는데. 알 수 없는 내 마음은 같이 울고 있었다. 오히려 그 어머니는 덤덤하신데도 말이다.





10. 29 참사에 대한 글을 머릿속으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내 생각과 내 느낌, 내 글의 뿌연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그 사건의 원인과 현재, 그리고 잃어버린 159명의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서울 한복판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벌어진 이 참혹한 사고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그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너무 무겁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절절한 외침이 꼭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책임자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 크게 도울 수 없다면, 적어도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계속 말하고 싶고, 그리고 또 말하고 싶다.

















단발머리 2023-11-01 공감 (32) 댓글 (18)

언제나 글을 썼다. 10대에는 종잇조각들, 상자, 맥주 받침 뒤에다 끄적거리곤 했다. 공책, 책 앞뒤에 붙은 백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급하게 찢어 낱낱이 흐트러진 종이 쪽지들로 가방이 꽉 차곤 했다. 영수증은 모두 펼쳐서, 납작하게 눌러 뒷면에 반 정도만 알아볼 만한 낙서로 뒤덮었다. 한번은 여성 경찰관에게 붙잡혔는데 그 경찰관이 내시와 운문들을 읽는 부끄러움을 참아야 했는데,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이거 네가 쓴 거니?"라고 물었다. 수치가 증발했다. 비웃을 거라 짐작했다. 대신 그 경찰관이 감동해 나도 감동받았다. 내가 살던 삶이 내게 적합하지 않음을 누군가 생각해줬다는 사실을 알아서 좋았다. (355쪽)


레이첼 모랜이 ‘언제나 글을 썼다’라고 말할 때, 그 문장이 주는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정신질환을 앓는 엄마와 가끔 나타나는 우울한 아빠 사이에서 자란 가난한 소녀가 ‘쓰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영수증을 납작하게 눌러 거기에 글을 쓰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두 번째로 읽기 시작하면서 내 의문은 사실 하나였다. 어제의 글은 이 책에 대한 나의 답이자 결론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질문은 다른 거다. 그러니까, 내 질문은. 어째서 어떤 사람은 이 난관을 극복해 내는가? 이다. 어떻게 레이첼 모랜은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탈출했을까. 어떻게 다른 사람을 저주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까. 어떤 여성들은, 그녀처럼 우연한 기회에 혹은 어쩔 수 없이 성매매에 발을 디디고, 다시는 거기에서 탈출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녀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 크게 낙담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큰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갈까.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힘들어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마저도 용서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은 포기를, 또 다른 사람들은 도전을 선택하는 걸까.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 했다. 일단 질문을 여기에 써놓는다. 어디선가 해답에 가까운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 볼 뿐이다.













<포스트모던의 조건>은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는데 내내 그 자리다. 구입한 책 아니면 안 읽었을 분위기다. 정희진쌤이 극찬하셔서 구입했는데, 아, 진짜 제 스타일이 아니네요.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참고도서나 기타 등등 자료 가지고 계셔서 뭐든지 가르쳐주실 분, 연락 바랍니다! (이 문장 쓸 동안에는 마음 속에 건수하님 두고 있음^^)



<전체주의의 기원>은 밤에 20쪽씩 읽는데 이러다 언제 다 읽나 싶다. 다른 책을 다 미뤄두고 집중적으로 읽어야 할 텐데,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여 내내 미루고 있다. 그대, 아렌트. 아직은 내게 너무 멀리 있네요.



<504 Words> 어제 안 해서 하루치 밀리고 오늘도 안 해서 이틀째 밀렸다. 어째 잘 나간다 싶었다.












<거짓의 사람들>은 레이첼 모랜 책의 인용구를 보고 어제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로 받았는데, 시작부터 흥미롭다. 서문 첫 문장.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암요, 그렇구말구요.

단발머리 2023-10-25 공감 (34) 댓글 (18)



스스로에게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거짓으로 대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악이 된다는 내용. 심리치료를 퇴마와 구축에 연관시켜보는 해석도 흥미롭다. 83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통찰력이 넘치는 책.
Kletos 2021-06-11 공감 (1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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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 속의 성스러운 의미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로 시작하는 위험한 책, <거짓의 사람들>을 읽었다. 저자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거짓의 사람들>은 정신 치료 과정에서 저자가 만나고 치료했던 여러 환자의 임상과 그 현장에서 맞닥뜨린 악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이 책의 중요한 논거는 ‘악하다’는 것을 인간 성격의 한 측면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질병’의 하나로 보았다는 점이다. 정신 의학자이며 의사로서 가지고 있는 학문적 배경과 임상 경험을 통해 ‘거짓말을 잘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악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대응이 비교적 소상하게 그려져 있다. 챕터 6에서는 <집단의 이름으로 악을 자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며, 그 실례로 미국의 베트남전 파병과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그 곳에서의 악행을 다루었고, 당연히 한나 아렌트의 논의와 다른 철학적 접근도 이야기하고 있다.









챕터 5에서는 ‘축사’라는 부분이 다뤄지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듯싶다. 일단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라고 믿는 사람들과 ‘영혼이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악한 영의 존재는 실재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런 건 오로지 사람들의 상상력의 산물이다’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을 테다. 저자는 기독교인이면서 정신과 의사로서 오랫동안 이런 ‘악한 영’의 존재에 대해 불신해 왔는데, 부인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한 이후에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대한장로회 통합 측의 엄격하고 경직된 분위기의 장로 교회에 자랐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여러 장소(기도원 등등)에서 여러 초자연적인 장면들의 ‘일부’가 되었던 터라, 그런 서술이 전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인간에게 ‘몸’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고, ‘육체’라는 이 껍데기 너머에 (내부에, 이면에) 하나님의 거룩한 일부(하나님의 영)가 거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73쪽의 이 문장들을 이해할 뿐 아니라 믿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는, 인간의 삶 속에는 성스러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과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우리는 신을 닮은 존재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인간의 삶에는 성스러운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73쪽)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정신 상담을 위해 찾아온 ‘십대 환자’의 ‘악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전문가인 의사의 조언이나 설명을 듣지 않고 자기변명에 빠진 부모들. 자신들은 괜찮은 정도를 넘어 ‘좋은’ 부모라는 착각에 빠진 부모들을 세세히 관찰한 부분이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사실 그 문제에 제대로 파고 들어가 보면 문제의 진짜 원인은 자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 가정, 학교, 사회에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픈 아이 뒤에는 아픈 부모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 생각에는 아이들을 고쳐야 한다고 판단할지 몰라도 대개 서둘러 고쳐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는 부모 자신들이다. 진짜 환자는 부모들인 것이다. (105쪽)






나는 경험에 의해 악은 후손에게 이어지는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4장에서 예로 들게 될 그 사람에겐 악한 부모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대물림 현상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오랜 '유전이냐 환경이냐'는 논쟁의 해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악이 후손에게 내려가는 것은 그것이 유전자를 통하여 전달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이가 부모를 보면서 배우고 따라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부모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려다 그렇게 되는 것인가? 악한 부모를 둔 많은 자녀들이 상처는 받으면서도 악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과학적인 연구 작업이 지속되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모를 것이다. (145쪽)





인간 성격 형성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당연히 부모다. 유전적인 요인의 핵심이 바로 부모이고, 유아기에 특히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 역시 부모가 결정한다. 정확히는 부모가 결정한다기보다는 부모 자체가 환경이다. 유전과 환경이 부모에게 달려있다. 악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악한’ 사고의 흐름과 생활방식을 학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악한 부모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려다 오히려 더 악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악한 부모를 두었는데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부모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흔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 상황에 대해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인간 삶에 미치는 다양한 변인을 통제하거나 관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알 수가 없다.








‘모든 책이 육아서로 읽히던 계절’을 지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내 자신의 ‘부모됨’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아이들이 제법 자랐으니, 이제 무언가를 ‘주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276쪽 저자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자면 ‘자녀의 독립과 분가를 위해서는 부모가 자신들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어야만 한다’는데 동의한다. 나 역시 그러고 싶고, 또 현재로서는, 부모인 내가,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기대지 않으면서 나 자신의 외로움을 잘 견뎌낼 수 있을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남편과 부모님과는 다른, 그러니까 내게 전혀 다른 질감과 무게의 감정을 불러오는 아이들에 대한 내 사랑이,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내게도 각별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완벽하게 구별된 존재이되 하나의 공간 속에 같이 살았던 공존의 시간 말고도 아이와 나만이 공유했던 경험과 느낌이 존재하니 말이다.


지난주, 출근하는 중에 라디오를 들었다. 10. 29 참사 희생자 어머니의 인터뷰를 듣고 있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따라 렌즈를 끼고 있어서 눈앞이 금방 뿌옇게 변하는 것을 핸들을 꽉 움켜지고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먼저 죽은 자식의 생일상을 준비하는 마음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여행 계획을 맡아했던 아이가 이제 이 세상에 없어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모른다. 알 수 없는데. 알 수 없는 내 마음은 같이 울고 있었다. 오히려 그 어머니는 덤덤하신데도 말이다.





10. 29 참사에 대한 글을 머릿속으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내 생각과 내 느낌, 내 글의 뿌연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그 사건의 원인과 현재, 그리고 잃어버린 159명의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서울 한복판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벌어진 이 참혹한 사고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그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너무 무겁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절절한 외침이 꼭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책임자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 크게 도울 수 없다면, 적어도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계속 말하고 싶고, 그리고 또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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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11-01 공감(32) 댓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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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



이 세상에는 악한 사람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스캇펙은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사이코패스같이 정신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래도 '악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왜 악한 것인가? 태어날 때부터 악한 것인가? 스캇펙은 악의 근원을 사탄이라는 영적인 존재로 설명한다. 아니 갑자기 무슨 사탄 같은 생뚱 맞은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도 정신과 의사인 저자의 입에서.



악한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책에서는 여러 사례를 이야기하며 악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한다. 책에는 정말 경악할 만한 사례들이 나온다. 첫아이가 권총으로 자살했는데 그 권총을 둘째 아이의 생일에 선물하는 부모, 자살을 시도하는 남편과 그 남편을 자립시키려는 치료 대신 끝까지 자신의 손안에 두려고 하는 아내(기생적 공생관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끊임없이 책임을 미루며 자식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모 등.

특히, 겉으로는 문제가 없고 고소득에 교양 있는 부모의 이야기는 '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교모하게 사람을 포장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부모는 상류층답게 교양이 있고 지적이다. 스캇펙의 조언에 우아한 표정을 지으며 경청한다. 그러나 결코 그 조언에 따르지 않고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중에 일이 터지자 뒤늦게 조언을 구하러 다시 온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스캇펙의 조언대로 하지 않으면서 스캇펙의 조언대로 자식을 다른 학교로 보냈다는 편지를 보낸다. 스캇펙은 첫 조언에서는 다른 학교로 보내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그대로 다니게 할 것을 조언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겉으로는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정신과 의사도 만나고 조언도 구했고 시키는대로 했다고 말하고 다닐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했고 의사의 조언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자식의 이야기도 전혀 듣지 않았다. 스캇펙은 이런 것을 악이라고 말한다.



악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미워하고 살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포장했지만 정작, 그 안에 사랑이 없고 자신의 욕심과 허영, 탐욕으로 가득 찬 것이 바로 악이다.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관심 가지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이 없다고 해서 악이 아니다. 사랑이 없는 대신 그 안에는 다른 것들도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한 사람은 치유될 수 있는가? 정신질환도 아니고 사탄, 귀신들림에 의해 악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가? 여기에 스캇펙은 오직 사랑으로만,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스캇펙은 자신이 경험한 두 번의 사건을 통해 설명하는데, 결코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귀신들림을 치료하기 위해 그는 팀을 꾸렸고 팀 인원은 5명이 넘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이야기하며 기도하며 축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 귀신이 축사자에게 들어가려고 시도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귀신들림을 치료하려고 하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악의 치유, 그것이 과학적이든 아니든 모두가 오직 개인의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거기엔 자발적 희생이 요구된다. 치유자 개인은 자신의 영혼이 전투장이 되도록 허락해야 한다. 그는 희생적으로 악을 흡수해야 한다."


스캇펙은 단순히 '악'이라는 개념이 궁금해서, 아님 학문적인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그가 만난 수많은 환자들 중에서 치료의 진척이 없고 치료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돌이켜보니 정신질환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그가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악'이라는 관점으로 그 환자들에게 접근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쓴 것이다. 앞으로도 악은 존재할 것이고 그렇다면 현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환자들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이 악에 대한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하며 "이 책에 기록된 어떤 말도 최종적인 것을 받아들 이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의 목적은 악이라는 문제에 우리가 현재 얼마나 무지한 상태인지 밝힘으로써 당신으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해 뭔가 미흡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일부는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 사탄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하면서 그냥 넘기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스캇펙은 이에 대해서 다시 경고한다.


"사탄이 갖고 있는 유일한 힘은 거짓을 믿는 인간의 신념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악의 영은 비현실의 영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자신의 현존성을 감쪽같이 숨겨 버리는 일이다. 사탄은 그 점에서 전폭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이 사탄이 없다고 믿게 하는 전략이야 말로 사탄이 거둔 큰 성공이라는 점이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고 '악'에 대해, '사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꼭 한 번 거짓의 사람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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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데굴 2017-10-18 공감(2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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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거짓의 사람들

‘악은 질병이다‘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다. 악은 교묘하고 은밀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파괴적 행위로 결과가 드러나서야 세상은 알게 된다. 하지만 악은 드러나는 순간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저자는 악은 치료의 대상이 되는 병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수많은 심리치료상담 중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 상담내용과 저자의 생각을 보니 그간 머리속에서 부유하던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관계의 마지막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자강 2020-09-06 공감(1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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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에서 시작된 자기만족과 게으름


지난 한 달여를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의견도 구하고 생각도 해 보았다.

스캇펙 박사는 그의 임상경험을 통해 기존의 DSM으로 분류할 수 없는 다른 형태의 personality disorder의 한 유형을 기술한다. 그것은 때로는 강박증의 옷을 입기도하고 교묘한 manupulater 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특징은 치료자에게 혐오감과 혼돈의 역전이를 느끼게 한다는 것과 특징적으로 죄의 은폐와 탐욕, 저속함, 책임전가(희생양 찾기)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 자기를 우상화하는 나르시시즘으로 기존 체제에 분류된다. 지속적 악의 선택의 습관은 성격으로 굳어지는데 이른다. 그들은 주위의 인간을 지배하며 떠나지 못하게 하며 자기 욕구의 해소물로 삼는다. 구마와 축사는이런 성격질환의 배후에 영적 어두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집단적 차원에서 자행된 전쟁범죄를 통해 개인의 결함이나 착각이 아닌, 이러한 퇴행적인 나르시시즘과 게으름을 타고 들어온 악의 존재가 있음을 드러낸다.

그는 이런 악의 근원에 거짓이 존재함을 지적한다. 나르시시즘이라는 거짓, 그것이 개인의 자아도취든 운동클럽의 우월감이든 지역의 편파감정이든 민족의 자부심이든 국가의 자긍심이든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가당치 않은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이다. 이것은 다른 인간을 깔보고 무시하고 욕하고 학대하고 고문하며 죽이는데까지 나아간다. 아동과 여자학대, 타인종의 학살, 사회적 열등층에 대한 폭력, 도덕적 결함층에 대한 살인, 범죄자에 대한 잔혹함. 거짓의 결과는 악이다

게으름이라는 거짓, 노력하지 않고 잘 살수 있고,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랄 수 있으며, 내가 책임지지않아도 알아서 누군가가 그 문제에 발벗고 나설 것이라는 자기기만은 이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들은 자기사느라 바빠서 이런 일은 우리가 얼렁뚱땅해도 몰라." 아직도 어떤 전문가들은 대중의 게으름을 기반으로 악을 키워나가고 있다. 문제의 회피. 회피할때 그 문제는 제대로 자라나기 시작하며 형태를 바꾸어 해결할 수 없는 또아리를 만들고 만다. 과학도 인간을 악에 빠지게 하려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가치판단이 과학자의 손에 맡겨지면 과학도 악을 잉태한다. 율법이 하고 신학이 하며 철학이 한 일을 왜 과학이 할 수 없겠는가?

우리는 대중이 될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서 판단하고 원래 되어야 했을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미디어 권력과 똑같은 인간을 찍어내는 교육체제와 우리나라를 우월화시키려는 사탕발림의 착각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다.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들을 것이다. 내가 알고 싶어한다면 누군가는 알려주고 싶어할 것이다. 내가 일어나면 무언가는 변할 것이다. 아니어도 그렇게 살아야한다. 내가 나를 속이면 누구도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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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2009-10-21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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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을 치유해가는 위대한 여정



지하철에 붙은 액자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빛에서 더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 빛에서 어둠으로 나아가는 사람,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 어둠에서 더 깊은 어둠으로 빠지는 사람. 액자 앞에서 한참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난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일까?’

『아직도 가야할 길』로 유명한 M. 스캇 펙의 수많은 저서 중에서도 『거짓의 사람들』은 가장 특별한 저술이다. 소설가 김형경이 중앙일보 책 리뷰에서 스캇 펙의 시리즈를 다루며, 이 책에 대해 ‘천재의 비애’라고 표현하며 ‘너무 천재여서 미쳤나보다’ 식의 평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만큼 이 시대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미지의 영역을 서술하고 있고, 대단히 위험하며, 그 이상으로 절실히 요구되어온 진리를 담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캇 펙이 이 책을 펴내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했을지 짐작하노라면, 아무리 찬사를 퍼부어도 부족할 것이다.

스캇 펙은 이 저술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잠재된 악(惡)을 드러내고, 그 실체에 직면하고자 한다. 악이 얼마나 자주 일상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지, 집단의 광기를 불러오는지, 그것이 우리의 삶과 사랑을 어떻게 시험하는지, 흥미롭고 풍부한 임상 사례들을 통해 기술한다. 환자를 대하는 그이의 사랑과 인내와 비상한 공감 능력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데 성공한 ‘조지’와, 악한 부모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로저’의 사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연민은 기꺼이 ‘악’한 사람들에게까지 이른다. 악을 질병으로 규정함으로써, 악을 단순한 규탄의 대상에서 치유의 대상으로 전치한 것이다.

진리에 자신을 맡긴다는 것은 거대한 신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과 같다. 어떤 위대한 힘(power) 앞에서도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기를 거부하는 ‘악’한 이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스캇 펙은 어둠에서 더 깊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진 ‘찰린’을 구해주지 못했지만, 또 다른 찰린들을 돕기 위해, 편견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귀신들림과 악이라는 현상을 연구했고, 악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렀다. 찰린이 이 책을 읽었다면, 그녀는 알 수 있었을까. 치유자와 더 큰 존재(신이라 해도 좋고 진리라 해도 좋은)의 사랑을.

베트남전과 징병제에 대한 저자의 시각도 흥미롭다. 모병제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해온 나는 이 책을 읽은 뒤, 놀랍게도 여자를 포함하는 징병제에 찬성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에 어떻게 마녀사냥이, 나치즘이, 베트남전이, 이 모든 끔찍한 학살들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 인간 악을 이해하길 원하는가? 나아가 이 치유 작업에 동참하기를 원하는가? 당신의 기존 지식과 가치관을 모두 무너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간절히? 그렇다면 주저 말고 이 책을 읽어라! 우리 모두가 나르시시즘과 게으름을 극복하고 자유의지로 사랑을 선택하게 될 그날까지. 이 책은 그 모든 걸음 중 하나이고, 나와 당신 역시 그 책임을 함께 지기로 한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사랑을 향한 우리의 여행은 결코 끝이 없다.

- 책 속 문장

깊은 치유가 진행될 수 있으려면 환자는 일정 단계부터는 어느 정도 퇴행을 해야만 한다. 적어도 정신 분석적 치료 장면에서는 그렇다. 그것은 어렵고도 두려운 작업이다. 심리적인 성숙과 독립의 부속물들에 익숙해 있던 성인이 다시 스스로를 의존적이고 유약한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장애가 심할수록 즉 환자의 어린 시절이 배고프고 고통스럽고 상처받았을수록 치료 관계 속에서 그 시절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그것은 죽는 것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일이다. 일단 그것이 되면 치료는 따라나오게 된다. 그것이 안 되면 기초는 건설되지 않는다. 퇴행 없이는 치료 또한 없다. 아주 간단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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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프러스 2007-12-16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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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고 한 때 많은 위안과 도움을 받았다.

그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과 책에서 제시한 삶의 방법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가끔 생활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전환점이 필요하거나 산란해진 정신을 추스릴 때 한 번씩 꺼내 읽곤 했던 책이었다.

'거짓의 사람들' 또한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책인데 최근에야 읽게 되었다.

실제로 박사와 상담을 거쳤던,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인텔리거나 대외적으로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거나 어떤 면에서는 매우 매력적이기까지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꼈던 것은 '이 사람들, 어쩌면 이렇게 솔직하지 못한가.' 였다.

자신의 정신적 결함 때문에 주변의 누군가를 우울하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으면서도 원인 제공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한다.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모두 외부로 돌려버린 채 본인 스스로는 아무런 변화도 꾀하지 않고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표정만 짓고 있는 것이다.

곰곰 돌아보면 나 자신 또한 그러한 범위에서 크게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다지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우시는 데 얼마나 최선을 다하셨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뭐가 잘못되기만 하면 다 부모님 탓이고 잘된 일들은 나 혼자 잘나서 그런 것처럼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에 꽝꽝 대못을 박는 자식을 부모라면 백퍼센트 이해해줘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으며 약이 되는 충고에 대해서는 너무 쓰다며 겉에다 꿀을 발라 달라고 땡깡을 부릴 때도 있다.

물론 후회를 하는 데엔 채 오 분도 안 걸린다.

항상 트러블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고 특히 나의 나약함이 가장 큰 원인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한 번 더 하고 잠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와 책임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적절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강한 사람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한 자아를 방어하기에만 급급해서 매사 고집스럽고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지만 강한 사람들은 몇 가지 인간적 결점 때문에 자신의 자아가 파괴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점이나 과오를 깨끗이 인정한 후에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인간, 더 바람직한 삶 속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나는 대개의 악한 사람들은 다만 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결점이나 실수가 질병으로 나아가지 않고 나 스스로를 제대로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히 미안해졌다.

자기합리화의 명수, 책임 전가의 명수, 나도 불행하고 남도 불행하게 만드는 불행의 명수가 되기 전에 반성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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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6-01-25 공감(3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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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live을 거슬러 보면 악 evil 새창으로 보기
원 제목은 People of the lie <거짓의 사람들>이고, 부제가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으로 붙어 있다.

심리상담가인 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할 길>은 정말 유명한 책이다. (여기 저기서 많이 들어 봤는데 아직 읽진 못했다. 도서관 갔을 때마다 대출중인 책.)

스캇 펙 박사의 상담 사례를 읽는 일은 여느 추리소설을 읽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간혹 이렇게 글쓰는 사람들을 보면 샘이 난다. 글샘이... 난 글샘은 많은데, 게을러서 쓰길 싫어한다.(핫, 게으름은 악의 한 표현인디...)

박사는 <악>을 기존의 종교적, 도덕적 잣대에서 과학적 판단으로 차원을 바꿔 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 데 힘을 행사하는 것>>

박사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온전한 정신의 탈을 쓰고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속으로는 악한들'이다. 자식을 우울증에 빠지게 하면서도, 자신들은 교묘하게 최선을 다한다고 믿게 만드는 교활한 사람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우리 주변에는 <<  >>에 정의한 사람의 예를 들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들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 공부하지 못한 것, 출세하지 못한 것을 보상받겠다는 듯이 자식에게 목매다는 엄마들이 그렇고,
자기네 학교에서 서울대를 몇 명 갔는지가 교육 성공의 지표라도 되는 듯한 신앙을 가진 숱한 교육 관료들이 그렇고,
국립대 수준 진학하지 못할 놈들은 인간 쓰레기 취급하는, 폭력적이고 야비한, 그러면서도 <金봉투>는 잘도 챙기는, 그래서 국민들이 교원 평가를 적극 환영하도록 만드는 많은 교사들이 그렇고,
정부의 정책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자 힘으로 민중을 압살해 왔던 이 땅의 독재자들이 그렇고,
우리 영화를 싹쓸이하고 있는 것처럼, 이 땅의 조폭 문화가 그런 악의 증거들이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내가 우리 아들에게, 아내에게 가부장적인 가장일 수 있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폭력적이며 편향된 교사일 수 있고,
가족의 안일을 위하여 사회적 관심엔 고개 돌리는 <악한>이 바로 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악을 <과학적> 고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질병'은 치료할 수 있어야 하며, 과학적인 치료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일반적인 통념 때문이다. 그래서 악을 가장 궁극적인 질병으로 정의하여, 혐오스럽고 없애버리고 싶은 욕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연민을 가지고 치료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그 길은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살핀대로, 일상적으로 숨어있는 개인적인 악의 문제도 그 해결이 평탄하지 않은데, 사탄(마귀)을 쫓아내는 축사 의식이나, 집단 의식 속에 숨어있는 <악>의 문제는 그 해결이 훨씬 어렵게 보인다.

인간은 나르시시즘의 자기 기만 기제를 통하여 집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예비군 훈련에 가 본 사람이라면 군복의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것이다. 집단에 의하여 예비군은 금세 야비군이 되지 않던가. 인류 역사상 파렴치했던 전쟁들도 그 실례가 되고 있다. 군인에 의한 민간인 집단 살상, 나치의 학살 말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큰 문제를 저지른 학생이라 하더라도 쉽게 감응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정말 정나미가 똑 떨어지는 학생도 있다. 심지어 그 부모까지 가세해서 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인간은 모두 부처>라는 논리에 따라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된다. 이성적으론 사형 제도를 반대하면서도, 인간 안될 놈들 앞에 맞닥뜨리면 감성적으로 찬성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경우가 실제론 많지 않은가.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 류의 만화를 보면, 법의 권한을 뛰어넘는 교활한 악에 대항하여 개인적 복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우린 훨씬 동정심을 갖게 되지 않는가.

삶 live 의 반대편에 악 evil 이 존재한다는 통찰과 같이, 삶과 함께 생길 수밖에 없는 <악>을 과학적으로 고찰하고 치료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과학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클리오 님 덕분에 구해서 읽게 된 책인 만큼, 도서관 가는 길에 기증해야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악>에 대항할 수 있도록... (클리오 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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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1-21 공감(20)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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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의 최종분석 새창으로 보기
얼마 전 계모의 말만 듣고 아직 어린 아이를 돌아가며 구타한 한 마을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도벽이 있다는 계모의 말만 듣고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볼 때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머리통을 쥐어박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나는 그 기사가 사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집단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무시무시한 영화를 한편 보고 난 기분이랄까. 현실은 종종 나쁜 영화보다 훨씬 악독하다.

악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책이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극찬했다는 M.스코트 팩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었다. 저자의 머리말 첫 대목이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이다.

'인간의 악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기 전까지는 치유의 희망을 꿈꿀 수 없다. 그런데 악이란 기분좋은 볼거리는 아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다룬 책이 유쾌하게 읽힐 리는 없다. 그런데 나는 그 어두운 면에 평소 호기심이 많다.

10년 전쯤, 남대문시장 골목 노상에서 칼국수를 사먹는데 나는 칼국수를 말아주는 여성의 안 보아도 좋을  얼굴을 보고 말았다. 어쩌다보니 나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 그녀의 좌판 앞 긴 나무의자에 궁둥이를 걸쳤다. 다른 나무의자 위는 바글바글했다. 그녀는 그것이 몹시 유감이었던 듯 혼자서 앙앙불락이었다. 그나마 하나 얻어걸린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하긴 해야겠는데 기분이 몹시 나쁘니 혼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도 덩달아 어쩔 줄을 몰랐다. 억지로 웃는 얼굴의 무시무시함이라니! 그녀는 여차하면 자신의 손님을 모두 가로채가는 옆 가게 여자에게 칼이라도 던질 기세였다. 나는 침통한 얼굴로 칼국수를 먹었다. '하고많은 가게 중에 왜 하필 이런 가게로 기어든 거야. 아아, 내가 사는 건 왜 이 모양일까!' 속으로 탄식하며 말이다. 나는 왜 그때 그녀의 안 봐도 좋을 얼굴까지 고스란히 보고 앉아 있었던 것일까! 내게도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날 저녁 퇴근 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을 만났다. "신이 내릴려나, 제 눈엔 요즘 이상한 게 자꾸 보여요. 모르고 지나가도 좋을 사람들의 얼굴까지!" 그날 낮에 본 칼국수집 여자 이야기를 하자 그 시인은 씨익 웃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걱정 마! 로드무비는 절대 신이 내릴 얼굴이 아냐!"

"가려진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숨바꼭질 놀이, 단 하나뿐인 인간의 영혼은 그 속에서 혼자서 치고받다 스스로 피하여 숨는다."(저자가 Good and Evil이란 책에서 인용한 글)

위의 구절은 남대문시장 칼국수집 여자가 국수를 끓이고 또 내가 국수를 다 먹길 기다리는 20여 분 동안 보여준 바로 그 무시무시한 원맨쇼에 대한 기록에 다름아니다.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저 구절을 보는 순간 그녀가 의식의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다.

악은 아주 멀쩡하고 태연한 얼굴로 우리의 일상 속에 출몰한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알코올로 도망가는 것만이 악이 아니다. 악은 아주 교묘한 모습으로 나타나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삶을 뒤흔든다. 자기 기만, 무정한 것, 이 모두도  악에 포함된다.

교회 헌금통 속에 55센트를 넣다가 어느 순간 '너는 55세에 죽을 것이다'라는 밑도끝도 없는 문장이 머리속에 떠오른 조지. 차를 달리다가 45마일 속도제한 표지판을 보는 순간 '너는 45세에 죽을 것이다' 하는 말이 떠오른다. 그는 결국 그런 식의 강박에 시달리다 못해 상담을 받기 위해 저자를 찾아온다. 그는 얼마나 그런 생각에 시달렸던지 마침내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그는 그 전까지만 해도 아주 평범하고 멀쩡한 시민이었다.

또 이런 부모도 있다. 형이 자살한 후 급격히 우울증에 빠진 소년 바비. 그의 무정한 부모는 그런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총을 선물한다. 바로 바비의 형이 자신을 쏘았던 그 총을......

부모자식 간의 기묘한 관계(바비, 로저의 두 경우), 뒤틀린 부부관계(사라와 하틀리), 애증의 모녀(빌리), 자신의 상담의사조차 가지고 놀고 장악하려다 실패하고 사라지는 찰린이라는 독신 여성......이 책에는 정말 이 인간 세계에서 타인과 자신을 속이며 어두운 얼굴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 생생한 사례들을 읽다보면 깨닫지 않을 수 없다.거짓을 바탕으로 한 관계는 반드시 무너지고 만다는 걸......

'악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겁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모습이 빛 가운데 드러나는 걸 끊임없이 피하면서 자신의 목소리 듣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완전한 공포 속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더이상 지옥에 갈 필요가 없다.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무시무시한 실체 그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이 책을 쓰는 나의 의도다.'

나는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속에서 내 속에도 고스란히 있는 악의 씨들이 꿈틀꿈틀하는 걸 느꼈다. 그런데 저자의 다음과 같은 명쾌한 정의가 조금 위로가 된다.

'인간은 우연히 악의 파트너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인이다. 우리는 운명적으로 어쩔 수 없이 악의 세력에 붙잡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덫을 놓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스스로 덫을 놓고 그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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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11 공감(20) 댓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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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대하는 방식 새창으로 보기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읽는 도중에 그런 글을 만났다. 저자가 미주리주에서 같은 라이더이자 요가 강사가 라이더들이 묶는 숙소에 남긴 메모를 옮기는 부분이다.

“사납고 나쁜 사람들을 피하기를. 그들은 영혼을 갉아 먹으니.” 라는.

세상에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사납고 나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미워하거나 경멸하기에 앞서 피하라는 말. 미워하거나 경멸하다보면, 그런 사람들을 닮아가기 쉽기에.

스콧 팩 박사는 이 책의 전작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도 그런 말을 했었다. 어떤 식으로든 말할 수 없는 고통, 보통 사람들이 겪는 것보다 훨씬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정신적으로는 누구 못지 않게 건강하고 진보된 사람들이라고.

요즘 이 말처럼 나에게 위안을 주는 글을 없었다.

감정적인 고통을 겪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마음을 떨쳐내보자 싶다.

사실, 악하다는 것은 자신들의 고통을 남에게 떠넘김으로써 자신에게 찾아올 죄책감의 고통을 깨끗이 거부하는 행위의 일종이다. 죄책감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죄, 부적절성, 불완정성을 일깨워 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니까.

좌절과 혼란과 절망을 고스란히 경험하는 것은 자신감에 차 있고, 편안하고 자신에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면서 힘든 일과 부딪칠 때, 고통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겪어내고 나면, 정신적으로 부쩍 성장을 이룬다.

완벽와 안정에만에 몰두하고 고통 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신세를 좀 볶더라도, 참고 받아들여 보자 싶다.





p.53

여기서 잠깐 여덟 살짜리 내 아들의 말을 인용해 보자. 아주 단순하고도 독특한 시각이다.
"아빠, '악(evil)'이라는 말은 '산다(live)'라는 말의 철자를 거꾸로 늘어놓은 거예요."



p.160~161

악이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 데 힘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희생양을 찾되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를 찾는다. 악이 힘을 악용할 수 있으려면 우선 행사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힘을 행사할 영역, 즉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그 지배 관계로 가장 흔히 나타나는 것이 부모 자녀 관계다. 아이들은 약하고 방어력이 없으며 부모와의 관계에 꽉 붙잡혀 있는 존재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얽매여 있다. (...) 그들에게는 빠져나갈 자유도 힘도 없기 때문이다.


p.241

나는 악한 사람들이란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으로 자기 자신을 과대화시키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들은 그 어느 거에도 자기를 굽힐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극단적인 자기 의지와 고집은 정치적 와해로 몰아가게 되어 있다.

p.278

무시무시한 대학살은 물론 아주 사소한 악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곤 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습니까?"

어리석고 무지한 질문이다. 기독교의 대답은 우리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는지 몰라도 그리 모호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포기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서로에게 행하는 악행들을 막는 데 있어서도 무능하시다. 그분은 다만 끊임없이 우리와 더불어 슬퍼하실 수 있을 뿐이다. 그분은 그분의 모든 지혜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내주시지만,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하는 것을 선택하게 만드실 수 없다.


p.297

 

힘든 상황이 오래 계속되다 보면 우리 인간은 자연적으로, 거의 불가피하게 퇴행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적 성장은 역류하게 되고 성숙도 온데간데 없어지고 만다. 아주 급속도로 우리는 어린애가 되고 야만인이 된다. 힘든 상황은 곧 스트레스가 된다. 이를테면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만성 스트레스에 접할 때 퇴행하려는 자연스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p.311

징집제야말로 군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게 아니라면 군은 필연적으로 기능 면에서 전문화가 될 분만 아니라 심리 면에서도 점점 더 전문화가 되어갈 것이다. 신선한 공기는 완전히 차단될 것이다. 그것은 계속해서 기존의 자기 가치관을 강화시켜 점점 자기 우물에 갇히게 될 것이고, 그러다가 다시 한 번 고삐가 풀어지는 날이면 베트남에서와 똑같이 피에 굶주려 날뛰게 될 것이다. 징병제는 고통이 뒤따르는 제도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험료 지불과 다를 바 없다. 징집 복무야말로 우리 군의 '왼손'을 건강하게 지켜 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p.336
투표 때 단 한 표가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처럼, 인간 역사의 모든 과정도 고독하고 미천한 한 개인의 마음의 변화에 영향받을 수 있다. (...)




얼마 전 한 저녁 만찬에서 손님 가운데 한 분이 어느 유명한 영화 제작자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은 역사에 자기 발자취를 남겼어요." 순간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도 다 역사에 자기의 발자취를 남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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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8-26 공감(3)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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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부제가 '인간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이라고 붙어있다. 인간의 악에 대해서 다루겠다는 말이다.

인간악이라니 무척 거창한 주제다. 사실 악이란 개념은 보는 시각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해석될 수있는 개념이다.

악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악에 대한 대처방법이나, 저자의 주장대로 악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악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 지에서부터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악이란 개념은 사실 매우 종교적인 개념이다. 이미 악이란 단어 속에 악과 대립되는 선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이란 보통 종교에서 신의 영역이다.

따라서 종교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인간악을 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보인다.  가치중립적인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스캇 팩은 과감히 과학적인 입장에서 인간악을 논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악을 하나의 질병으로 본다. 악이란 증상이 있고 치료가 필요한 마음의 병이란 것이다.

저자는 과학적 입장에서 인간악에 대한 이해와 치료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자신의 종교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한계가 분명한 책이다.

특정한 종교적 가치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는 한계로 비쳐지는 이 부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해답으로 방향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관점의 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란 것이 있건 없건, 악이라고 부르든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아니면 하나의 심리적 질병으로 인식하든, 인간내면에 어두운 면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볼 때 스캇 팩이 바라본 인간악의 실체는 무서우리만큼 진실에 다가서 있다.  

스캇팩은 악의 본질이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스스로는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에 있다고 본다.

"악이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데 힘 을 행사하는 것이다."

"악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자신의 죄나 불안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드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숨으려할때 악하게 된다."

저자가  정의하는 악의 개념에 동의하든 안하든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하는 것을 악이라 규정하지않고 자신의 불완전함이나 죄를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으려 하는 것, 오히려 자신의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은폐하려는 모습을 악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의 통찰력은 예리하다.

"악한 자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자신의 양심을 직시하는 고통, 자신의 죄성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고통이다."

저자는  심리치료가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정말 악한 사람은 그늘 속에 숨어 밖으로 나오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마음이 건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이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고쳐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저자가 악을 질병으로 보는 이유가 그것이 심리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치료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악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하나는 인간적이 악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적인 악이다. 인간적인 악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심리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악마적인 악은 그 실체가 성서에 나오는 사탄 혹은 악령이라는 것이다. 사탄은 외롭고 약한 인간의 내면에 침투하여 그 인간의 정신적 성장을 막고 영혼을 파괴한다.

이러한 사탄이나 악령은 구마 (마귀를 내쫓음)나 축사(사악한 기운을 물리침)를 통해 인간 밖으로 내쫓음으로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사탄이라 불리는 악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저자의 경험 속에서 어떤 악은 인간적인 악을 벗어나 보다 근원적이고 사악한 실체에 의한 악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실체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을 그가 믿는 종교적인 테두리안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 부분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한계일 수도 있고 저자의 개인적 신념이나 믿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같은 종교인이 아니라면 상당히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 책엔  저자가 상담한 여러 사람들의 상담사례가 실려 있다. 그 상담사례를 읽다보면 온 몸이 옥죄어오고 떨려오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자신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상대의 영혼까지도 파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무서운 건 그것이 그들만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내 안에도 그들과 같은 모습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안에도 악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문득문득 숨어있는 내 어두운 내면이 들여다보일 때마다 나는 악에 대한 스캇 팩의 경고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님을 깨닫는다.

저자의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을 떠나서 이 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악의 모습이 도처에 널려있는 인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나 자신의 모습을 비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선과 악의 중간에서 수없이 좌우를 오가며 살아간다.  선과 악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내가 악의 축으로 기울어져있다고 판단되는 순간 선의 방향으로 다시 돌아설 수 있는 힘이 있는 인간이라야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올까?  저자의 지적대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에서부터 올까?

수많은 생각들로 긴긴밤을 지새우며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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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나무 2005-04-29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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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히코박터를 위한 변명 중에서 2 ... 새창으로 보기
 환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틱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한 나는 어떤 상을 받을 수 있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 아자~

 

 

 

 레옹은 환자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의대학생을 비롯한 정신건강관련 전문가가 되기 위한 학생들의 교재용으로 만들었으나, 의외로 일반인들도 많이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러한 목적에도 맞도록 보완하였다.

 1. 정신의학의 개념과 그 역사 / 2. 인간행동에 관한 생물학적 이론 / 3. 인간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이론 / 4. 사회와 정신의학 / 5. 인격발달 / 6. 정신장애의 발생 / 7. 정신의학적 증상 / 9. 정신의학적 진찰 / 10. 의사-환자 관계 / 11. 기질성 정신장애 / 12. 정신분열병 / 13. 기분장애 / 14. 망상장애 / 15. 기타 정신병적 장애 / 16. 불안 장애 / 17. 신체형 장애 / 18. 해리장애 / 19. 인격장애 / 20. 적응장애 / 21. 충동조절장애 / 22. 알코올 및 물질관련장애 / 23. 성과 성장애 / 24. 성적 정체성 장애 / 25. 정신신체의학 및 자문조정 정신의학 / 26. 인위성 장애 및 기타 정신과적 장애 / 27. 정신지체 / 28. 수면과 수면장애 / 29. 식사 및 섭식장애 / 30. 소아,청소년 정신의학 / 31. 노인정신의학 / 32. 정신사회적 치료 / 33. 생물학적 치료 / 34. 자살과 폭력 및 기타 정신과적 응급 / 35. 정신의학 서비스 / 36. 법정신의학과 윤리

임상피부과학 "방귀는 그 사회가 선진화된 정도를 나타내는 리트머스 실험지이다." 



 " 경험있는 정신과 의사라면, 이 세상에 사랑 없는 부모가 많이 있다는 사실과, 그들 중 대부분이 최소한 어느 정도는 사랑을 위장하는 자세를 고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204-205쪽)

 

 



 데스티네이션 (Final Destination)

파리로의 수학여행, 의문의 비행기 폭발 사고, 7명의 생존자...그러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10대들이 차례로 죽어간다! Death Is Coming!
아브라함 고등학교의 평범한 학생인 알렉스는 친구들과 함께 파리로 수학여행을 가게 된다. 그러나 비행기 이륙 직전, 자신이 탄 비행기가 폭발하는 악몽을 꾼 그는 꿈에 본것과 똑같은 조짐들이 느껴지자, 공포심에 사로잡혀 여행을 포기한다. 알렉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여행으로 들떠있던 일행들에게 찬물을 끼얹게되고, 급기야는 몸싸움이 벌어져 담당 여선생을 포함해 최종 7명이 탑승을 포기하게 된다.
싸움을 건 카터와 여자 친구 테리, 루튼 선생, 그리고 싸움을 말리던 빌리, 토드, 클레어... 공항 유리창 너머로 활주로를 달려가는 비행기를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이륙하자마자 폭발하는 끔찍한 광격을 목격하고만다. 알렉스의 악몽이 실현된 것! 7명의 생존자. 그러나 친구들은 죽음을 모면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마음 한편에 불길한 징후를 예견한 알렉스에게는 두려운 마음을 갖게된다. 의심많은 FBI도 가세해 알렉스를 집요하게 추궁하는데...
하지만 악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행기 폭발사고 이후에도 알렉스는 계속해서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고, 7명의 폭발 사고 생존자들이 하나 둘씩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친구들이 죽음을 당하게된 현장에 있던 알렉스는 FBI로부터 살인혐의까지 받고 쫓기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 마침내 알렉스와 친구들은 그들을 조여오는 알 수 없는 죽음의 위협에 맞서기로 결심하는데......



 먹는다는 것이 점점 공포스러운 일로 바뀌고 있다.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계화의 바람 속에 '식품의 세계화', '질병의 세계화'를 초래하는 원인과 과정 그리고 나타나는 결과에 대한 생생한 리포트이다.
연일 세계 각지에서 탑 뉴스를 장식하는 광우병, 대장균O157, 환경 호르몬, 유전자 조작 식품… 이 책은 식품에서 비롯된 위험과 부작용은 우연이나 재수가 아니라, 현대의 식품업계 시스템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가공식품이 늘어남에 따라 천식에 걸리는 어린이의 비율이 증가하고, 날로 번창하는 패스트푸드와 외식산업은 현대인의 비만이라는 '전염병'에 걸리게 한다. 햄버거에서 검출되는 대장균은 대규모의 사육과 도축이 이루어지는 축산업의 산물이며,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식품기업의 광고에 현혹되어 스스로의 건강을 망치고 있다.
『슈피겔』지의 전 편집자이며,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한스 울리히 그림은 그간 과소평가되었던 산업 가공식품의 영향과 건강과의 관련성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세계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식품 오염의 세계화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 수렵을 하던 인류의 조상들이 농경생활을 하면서 '기대수명이 감소하고, 영양결핍이 흔하게 되었다.'고 한다. 농경생활로 인해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수명이 감소한 이유는 단백질과 비타민의 결핍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가축을 데려다 기름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한다. 여기서 보듯이 육식은 나름대로 이로운 면이 있지만, 육식을 하면서 섭취해야 하는 콜레스테롤로 인해 육식은 두고두고 탄압을 받아야 했다. ] 

 

 



 육식을 즐기며, 스스로 고기를 생산해내던 축산업자가 자신과 이 지구의 건강을 위해 채식주의자가 되기까지의 체험담.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저자는 환경 대란에 빠져들고 있는 인류에게 쇠고기 자체의 문제점, 육식이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문제점, 축우 산업이 지구의 환경에 미치는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채식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는 축산업자였다가 채식주의자가 된 저자는 1996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여 소가 소를 먹고 있는 현실, 즉 인간이 소비하고 남은 소의 찌꺼기들을 사료로 가공해 소에게 먹이고 있는 축우 산업계의 실상을 폭로하며 '광우병'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육류 산업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진 그의 발언은 축산업자들의 반발에 부딪쳤고, 그는 '음식물 경멸법'이라는 묘한 법에 의해 고발당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와 채식의 이점, 육식의 문제점을 비롯하여 축우 산업이 우리 지구를 어떻게 절망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지 밝히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소들을 더 빨리 자라고 더 살지게 만들기 위해 미국 축산업자들을 소를 도살한 후 인간이 먹는 고기를 제외한 부분, 피와 뼈와 내장과 뿔, 머리, 배설물들을 섞어 만든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였다. 거기에는 소의 찌꺼기들뿐만 아니라 안락사시킨 동물들과 한적한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도 포함된다. 미국에서는 육우의 약 75퍼센트가 '영양가를 높인' 동물성 사료를 일상적으로 먹는다. 또 위생적으로나 병리학적으로 절대 안전할 리 없는 닭똥이 단지 값싸고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가공되어 축우의 먹거리가 된다.
또한 항생물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효능이 떨어지므로 점점 더 강력한 항생제를 사료에 섞어 먹인다. 소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여성 호르몬제도 수없이 사용된다. 그밖에도 저자는 축우 산업은 환경 파괴의 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숲을 파괴한다는 점을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하면서 경고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도 방목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숲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또한 동맥경화증의 주된 원인이 육류라고 지적하고 채식을 주장한다. 이렇게 길러진 육류의 소비는 최근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광우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채식은 동맥경화증 비율을 크게 낮추고 암 발병률을 낮춘다.
육류업자였던 저자가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축산업과 현실과 육류 소비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책으로 흥미있는 책이다.



 한국의 식약청은 물론이고 미국 FDA에서 의약품허가제도에 관련해 생생한 경험을 한 사람으로 유일무이한 저자는, 지난 여름 국민들의 머릿속에 ‘식약청’이라는 기관의 역할에 관해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 ‘PPA 파동’의 경위를 살피어 그 본질적 문제를 지적함과 동시에, 세계 최고의 기관으로 인정받는 FDA를 냉철하게 분석한 후 그 곳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 식약청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올바른 규제기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음식이나 약품, 의료기구에서 심심치 않게 그 이름이 거론되는 FDA의 실체를 역사적인 배경과 조직적 구성, 역할의 관점에서 자세히 고찰하고 그 특징을 열거하면서 이를 기준으로 우리 식약청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상세하고도 합리적이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민의 건강 보호’라는 절대적인 사명 아래 규제과학(의약품허가에 관련된 세 종류의 지식, 즉 의학, 과학, 관련법에 대한 지식을 통합하여 의약품개발과 허가신청자료의 심의에 적절히 적용하는 원칙을 말함)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여 미처 예기치 못한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발빠르게 최선의 대응책을 강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식약청의 존재 이유는 무엇보다도 명확해진다. 바로 의약품 허가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 국민의 건강 보호라는 것!
또한 끊임없는 교육이 배출해내는 전문가 집단의 탁월성, 투명하고 공개적인 시스템, 약은 사용되어 환자의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는 사고 아래 임상의로서의 의사에게 그 최종 결정권이 맡겨져 운영되는 FDA는 또한 우리 식약청에게 약 중심적 사고에서 횐자 중심적 사고로 시급히 전환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의료관련자와 정부를 믿고 자신의 건강을 챙겨나가려는 국민에게 생명의 안전을 위협하는 PPA 파동 같은 사태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
저자는 그렇다고 반드시 FDA를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각각의 여건에 따른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기에, 이 책의 마지막에 약허가의 바람직한 모델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독립성을 발휘하는 FDA와는 달리 복지부의 산하 기관으로 자율성을 제한받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가능한 우리만의 대안으로 ‘삼자심의(독립된 비정부기관으로 심의기구를 구성하고 의약품허가신청자료 중 임상자료의 심의를 위임하는 것)’를 제시한다.
FDA와 식약청을 비교하면서 우리 식약청의 올바른 청사진을 제시하는 이 책은 식약청의 사명은 우리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고 따라서 약허가의 판단 근거는 어디까지나 약 중심이 아니라 환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환자에 대해서 전문가인 의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명확히 밝히는 이 시대의 성명서이다.



 포경수술이 질병 예방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와 통계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포경수술이 과학이 아니라 신화와 환상, 문화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학사가인 저자는 소년의 성인식에 사용되던 원시적 의례가 의학전문가들의 주목을 끌어 건강의 상징으로 탈바꿈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상식과 열정, 두 개가 극한의 대척점에 올라 천칭 게임을 하듯 중심점을 찾을 길 없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종가의 축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기본 구도로 하여 펼쳐지는 이야기는 언간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인물들의 행동 양상을 나열한다. 장손으로서 종가를 이어 나가야 하는 책임은 예나 지금이나 막중한 임무로 작용했고, 이를 지켜 나가기 위해 안동 김씨(언간의 지은이)의 시아버지와 상룡의 할아버지가 보이는 행동 양식은 시대는 다르지만 서로 유사하다. 하지만 차후 세대가 그들의 열정을 소화하는 면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아녀자인 안동 김씨는 시아버지의 폭력 앞에 어쩔 수 없이 희생당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상룡은 서자라는 잠재된 상처를 떨치지 못한 채 그 투영물과도 같은 다리병신 정실과의 사랑에서 존재감을 얻으며 할아버지에게 저항한다.
이 소설에서는 인물들의 열정과 상식은 부유(浮游)하지만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어느 하나에 떠밀리는 상황이 계속된다. 치유되지 못한 자신의 내밀한 상처가 한 극단으로 치닫는 힘으로 작용하고 이로 인해 타자와 원활한 소통을 이루지 못한 채 갈등하는 양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연민은 있으나 적합한 소통 경로를 찾지 못함으로써 죽은 감정으로 자리했던 모습은 귀신이 된 해월당 유씨와 상룡이 서로에 대한 오해를 푸는 장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소통되었던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상황은, 잉태치 못하는 정실이―상룡의 생모가 준 사랑의 초콜릿과 해월당 유씨의 귀신이 준 배[腹]를 통해 맺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상룡의 아이를 가지게 되지만, 안동 김씨의 딸아이가 그 할아버지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듯 상룡의 할아버지에 의해 다치게 되는 장면에서도 그려진다.
상룡과 할아버지는 마지막 언간을 사이에 두고 가치의 대립을 벌인다. 학교에서 배운 상식과 가문에 대한 열정은 언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하나의 가치로 맞서게 되고 이 둘은 쉽게 합일점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바로 서지 못했던 각자의 정체성 또한 대립한다. 이제 그들에게는 하나의 몫만 남아 있을 뿐이다.
소설을 통해 종가의 전통을 다소나마 살펴볼 수 있으며 우리 선조들의 살아 있는 열정이 은은히 이어져 왔음을 느낄 수 있다. 접근하기 쉽지 않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끈기 있게 주제를 천착해 나간 신인 작가의 패기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인간의 성 문제는 단지 학문적, 개인적인 관심의 대상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볼 때 정치적·법적·종교적 중요성을 갖는 지식과 경험의 영역이다. 킨제이연구소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근거를 둔 사실, 될 수 있는 한 가장 새로운 정보를 일반인들에게 제공하여 성생활에 관한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성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라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 문제에 당혹감을 느끼며 자신의 신체와 성감, 성생활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성 문제는 드러내 놓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편안하게 상담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성에 대한 욕구는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보다 위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성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점들을 소개하고, AIDS를 비롯한 최신 의학 정보를 제공하여 해결책을 제시한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세태풍속의 꼼꼼한 관찰도 인간생태의 냉정한 해부도 아니며, 잘못된 분배구조에 대한 계몽적 비판은 더욱 아니다. 이 소설은 단지 사적인 기억과 회상을 통해 과거의 한 시절을 극히 소박하게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장석조네 사람들」을 통해 하찮은 사람들의 사소한 삶에 내포된 고유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김소진은 그의 마지막 소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에서 미아리 산동네는 "여태껏 나를 지탱해왔던 기억, 그 기억을 지탱해온 육체" 라고 고백한다. 그러니까「장석조네 사람들」은 김소진만이 쓸 수 있고, 또 쓸 수밖에 없었던 소설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김소진이 미아리를 쓴 것이 아니라, 미아리가 그의 손을 빌려 그 스스로를 썼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진정석(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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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11 공감 (7)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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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자꾸 멈춰지는 책 새창으로 보기
    

<거짓의 사람들>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을 할까.
모두 조금씩은 섬찟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책 속에 나오는 '찰린'이라는 여자, 저자가 끝내 치료에 실패하고 만 그 환자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는 서평단에 뽑혀서 받은 책이다. 이처럼 책을 받고서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책은 처음이다. 리뷰를 올려야한다는 생각에 읽던 다른 책 밀쳐 두고 받은 책부터 읽곤 했는데, 이 책은 진도가 나가질 않고 있다. 이유는, 나의 역사 지식, 시사 상식의 부족이라고 밖에. 하지만 읽다 보니 흥미가 새로이 생겨 난다. 꼬투리까지 잡아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세한 것은 다 읽고 리뷰에 쓰기로.

<거짓의 사람들> 본문에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사람 사는 것이 딱하고 비참하게만 보일 때가 있다. 요즘 대체로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그렇다. 일조량의 부족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날은 잔뜩 흐려 있고. 일기예보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때 비'라는 말. 햇빛이 필요해. 식물만 살아가는데 빛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동물은 광합성이 아닌, 다른 이유로 햇빛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올 가을, 정말 그냥 보내기 싫다. 지금 내 노트북과 함께, 포맷팅 작업이 필요한 시점. 자꾸 미루면 지금 내 노트북 상태처럼 된다. 버벅...버버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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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10-04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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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악'에 대하여 새창으로 보기


 

 

 

 

 

  "아빠, 악(evil)이란 말은 산다(live)라는 말의 철자를 거꾸로 늘어놓은 거예요."
  그렇다. 악은 삶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력을 역류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살인과 관련이 있다. 불필요한 살상, 즉 생물학적 생존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그러한 죽임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악이 살인과 관련 있다고 할 때 그것이 꼭 육체의 살인에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악은 또한 영혼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에는 여러 가지 필수적인 속성들이 있다. 지각, 운동, 인식, 성장, 자율, 의지 따위가 그런 것이다. 실제 몸은 죽이지 않더라도 이런 속성들 가운데 그 어떤 것을 죽이거나 죽이고자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 한 마리나 어린아이 한 명을 털끝 하나 만지지 않고도 '파괴시킬' 수 있다.

......이로써 악이란 인간의 안 또는 밖에 존재하는 생명이나 생명성을 죽이고자 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악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의 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죄의 난해성, 완고성, 경직성에 있다. 악한 사람들의 핵심적인 결함은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에 있다.

  우리는 이미 악의 정의를 가장 간단하게 내렸었다. 악이란 자신의 병든 자아를 방어하고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는 데 정치적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부분과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과학과 종교를 섞어놓는 것, '악'을 실체로 인정하는 것 등)이 혼재되어 있어 읽는 내내 머리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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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23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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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가장 근본적인 죄는 태만과 교만 새창으로 보기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나는 '가장 근본적인 죄는 태만'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제 다음 중간 단락에서는 '그것은 교만'이라는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교만의 죄라 했을 때 그들이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어떤 일을 잘 이루고 난 뒤에 누릴 수 있는 온당한 성취감이 아니다. 그런 교만은 정상적인 나르시시즘과 마찬가지로 약간의 함정은 있을지 몰라도 건강한 자신감의 일부이자 현실성 있는 자기 가치의 일부인 것은 분명하다. 교만이 진짜 의미하는 바는 자신의 내적 죄성과 불완전함을 터무니없이 부정하는 그런 교만, 날마다 뻔히 보이는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려 주어도 그것을 극구 부인하고 심지어 반격까지 하려 드는 그런 파렴치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이다.

  어찌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전쟁(베트남전)이 본질에 대하여 화가 나거나 의심을 품거나 적어도 진지한 관심을 가져 보지 않았던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모든 인간에게 너무나 깊이 내재하고 있는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에 부딪치게 된다. 만사 제쳐두고 우선 너무 귀찮았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날마다 일상사가 있었다. 일해야지, 차도 사야지, 집 장만도 해야지, 아이들 대학도 보내야지.....

 

이 대목을 읽을 때 얼마나 찔렸는지 모른다. 나는 예전부터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게으름과 교만'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만, 은 모르지만 게으름을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데......저렇게 적시를 해 주니 뜨끔하다. 한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여기서 '교만'이란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까지 부인하는 '교만'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인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인정'조차도 그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안심시키고 자기합리화 하기 위해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인정을 했으면 개선을 해야 하는데 그냥 살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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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23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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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악한 사람들의 특징 새창으로 보기


 

 

 

 

 

일반적인 성격 장애 질환의 공동 특징인 책임 기피와 아울러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나타난다.

(1) 파괴적인 행동, 희생양 찾기(책임 전가) 행동이 일관성 있게 나타나며 그 양상은 대개 아주 미묘하다.

(2) 비난이나 그 밖의 형태의 나르시시즘적 상처들을 지나치리만큼 못 견뎌하는데 대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3)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 이미지와 사람들이 자기를 존중해 주는가에 대하여 유별난 관심을 갖고 있다.

(4) 지적인 속임수를 자꾸 쓰게 됨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가벼운 정신 분열증적 장애와 같은 모습이 점점 많이 나타난다.

 

2번은 나를 두고 하는 얘기 같다. 누가 날 비난하면 굉장히 분노한다. 하긴 분노하다보니 눈에는 잘 띈다^^

책 한권으로 페이퍼를 몇 개나 쓰는 거냐고 비.난. 하지 마세요^^;;; 앞으로도 두세개 더 쓸 예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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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23 공감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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