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30

공(空), 공(公), 공(共) -이정배, 에큐메니안

공(空), 공(公), 공(共) - 에큐메니안


공(空), 공(公), 공(共)소위 개벽 신학의 세 토대로서
이정배(顯藏아카데미) | 승인 20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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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空’을 깨닫고, ‘公’을 확장하고, ‘共’을 되살리는 개벽 기독교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Getty Images

이 글의 아이디어는 신익상 박사가 이끄는 ‘기후 환경 포럼’에서 강의 후 박영식 교수의 질문에서 비롯했다. - 저자 주


“종교(기독교)는 ‘空’을 몰랐고, 경제(자본주의)는 ‘公’을 독점했으며,
정치(민주주의)는 ‘共’을 파괴시켰다”

개벽(開闢)은 다시 세상을 연다는 뜻이다. 다른 세상을 꿈꿨다는 의미겠다. 19세기 말 서세동점 시기, 외세의 침략과 기존체제(질서)의 폭정 속에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종교체험을 통해 계급해방, 민족(국가)해방 나아가 종교해방의 길을 열었던 사건이었다. 개벽 체험은 하늘과 인간 사이에 틈이 없다는 ⟪천부경⟫ 속 ‘천인무간’(天人無間)의 사유가 화급한 정세 속에서 발화한 것이었다. 유불선 속에 내주하며 사람들을 살려냈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현묘(玄妙)한 도(道)가 난세에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에토스로서 창발 된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런 개벽 사상을 신흥종교의 범주로 간주하고 무시, 홀대했다. 기독교 최고의 사상가로 일컫는 다석과 함석헌 역시 이를 미신적 종교로 여겼다. 토착화 전통을 지닌 감리교 신학은 소위 고등종교인 유교와 불교와만 대화했고 민중신학의 경우 이들의 혁명성에 경도된 관심을 보였다. 전자는 정세에 둔감했고 후자는 종교, 문화적 측면을 간과했다. 더러 필요한 만큼 인용했을 뿐 개벽 종교들 속에 스며든 개벽 사상을 총체적으로 수용한 경우를 개신교 내에서 찾기 어렵다.

개벽 사상이 유교 속에서 동학, 천도교가 되었고 도교(선도)와 만나 천지공사(天地公事)와 해원 상생(解冤相生)을 말하는 증산교를 탄생시켰으며, 불교 원리와 접해 정신 개벽을 개교표어로 내건 원불교로 재탄생되었다면, 항차 기독교 또한 개벽 사상과 만나 ‘개벽적 기독교’로 재(再)구성될 수도 있겠다. 이 시대의 난제인 기후 붕괴, 자본의 횡포에 맞서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개벽’을 매개로 서로 뜻을 나눌 때가 된 것이다.

이를 위해 백 오십 년 역사를 훌쩍 넘긴 기독교는 이제 일방적 선포(전달)자의 입장을 그치고 수용자의 입장에 설 필요가 있다. 지금껏 기독교가 자신의 진리를 주장, 선포했던 것 같으나 실상 우리 민족의 기초이념-하늘 경험과 힘 지향성-이 기독교를 수용토록 도왔다고 말하는 종교학자도 있었다. 동학에 부정적이었으나 정작 多夕의 동양적 기독교 이해가 이런 과제를 수행하는 매개고리가 될 수 있다.

1.

이 글에서는 - 사실 이 글은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 탓에 청탁 여부와 관계없이 쓰게 되었다 - 제목으로 언급한 세 개념, 空, 公, 共을 갖고서 개벽 신학의 기초를 서술코자 한다. 이후 거듭 보완, 수정되어야 마땅한 일이겠으나 거칠게나마 떠오른 생각을 일단 정리할 목적에서 썼다.

첫 번째 ‘空’은 있음(有)만 강조하는 서구와 변별되는 동양적 개념으로서 동학의 무위이화(無爲而化), 다석의 ‘없이 있음’의 관점에서 서술될 수 있다. 기후 붕괴에 대처하는 생태학적 토대로서 무엇보다 공(公)개념 회복을 위해 아주 중요하게 사용될 것이다. 두 번째 公은 앞선 空을 전제하는바 공적인 것을 사사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비판과 연계시켜 논할 주제이다.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 속에 미래를 위해 남겨진 씨앗(碩果不食)이 바로 ‘公’이다. 이를 통해 개벽 사유의 일환으로서 공유경제를 논할 수 있다.

마지막 共은 公을 公 되게 하는 것으로 ‘空’을 지향하는 삶의 에토스를 일컫는다. 한마디로 있음(有)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견물불가생(見物不可生)의 경지라 하겠다. 이 경우 共은 공생공빈(共生共貧), 곧 최소한의 물질로 사는 삶을 목적한다. 여기서 세 공, 空, 公, 共은 각기 인간의 내면적 각성, 자본주의 이후의 체제, 시민사회의 정치적 삶의 에토스를 적시한다. 첫 것이 종교적 과제라면 둘째는 국가적 소임이겠고 마지막 것은 시민사회의 정치적 책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무엇보다 개벽적 기독교를 위해 ‘空’개념이 우선 되어야 옳다. 서구 기독교는 지금껏 대상적 사유와 친밀했다. 소위 ‘있음’(有)이 하느님을 이해하는 근본 범주로 여긴 것이다. 숨어계신 하느님을 말했으나 소수 신비주의 신학을 제외하곤 십자가에 달린 예수(역사성)로 환원되었고 영의 보편성을 통해 神을 확장시켰으나 그것은 그리스도 영에 종속되어야만 했다. 철학으로부터 존재자의 ‘존재’, ‘과정’(Process)으로서의 神 사유를 배웠음에도 결국 ‘존재 신비주의’ 내지는 미래적인 ‘목적’ 개념에 머물고 말았다. 한마디로 ‘A=非(Non)A’라는 배중률 논리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내 마음이 그(네)마음’이라는 수운의 神 체험은 대개 동양적 사유가 그렇듯이 서구 神 이해의 지평을 벗어났다. 시천주(侍天主)의 자각에서 비롯하여 양(養)천주, 체(體)천주를 거쳐 인내천(人乃天)으로 귀결된 것이다. 천인무간(天人無間)의 개벽적 체험은 사람을 하늘로 여기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생각으로 이어져 서구와 전통, 양면적 억압으로부터 씨알을 구원했고 향아설위(向我設位)를 통해 신/인간 틈새를 만들었던 기성종교를 허물었다.

기독교로 말하자면 예수에게로 집중된 神의 대상(배타)성을 실종시킨 것이다. 성전 종교가 가로막은 神/人의 직접성을 열어젖혔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는 말뜻도 의당 담겼다. 여기서 다석은 예수를 우리와 같은 미정고(未定稿)의 존재로 여겼고 우리가 예수보다 항차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주지하듯 한울을 자기 속에 모셨다는 시천주는 자신 속의 영(內有神靈)과 우주 속에서 활동하는 기운(外有氣化)을 달리 보지 않았다. 인격(개체)과 비(非)인격(전체)을 아우르는 존재를 한울이자 지기(至氣)로 여긴 것이다. 여기서 종종 서구와 견줘 범(凡)재신론이 말해지나 여기서 至氣는 이에 더해 ‘있음’과 ‘없음’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없이 있는 ‘있없’의 차원을 지녔다는 뜻이다. 가득 찼고 늘 있기에 없는 듯할 뿐이다.

허공 없이는 어떤 존재도 있을 수 없다. 허공이 존재의 토대이자 근거란 말이다. 이런 허공은 지기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이 인간 속에 바탈(받할)로 주어졌다고 다석은 사유했다. 이 경우 바탈과 지기는 허공의 양면으로서의 모두 영(靈)의 다른 표현이다. 수운은 기독교 서구는 인격(내유신령)만 알았고 외유기화, 곧 우주를 몰랐으며 성리학은 후자만 생각했기에 전자의 신적 측면을 놓쳤다고 비판했다. 달리 말하자면 서구는 허공을 잃었고 성리학은 능동적 평등한 개인, 곧 영적 주체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허공, 곧 없음을 놓친 서구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자본주의적 소비문화(GDP 위주의 경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뿐 아니라 우주 자연을 ‘있음(有)’의 영역으로 소급, 환원시켰기에 작금의 기후 붕괴를 초래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어 언급할 公의 회복을 위해서도 존재의 空적 측면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空의 전제 속에서만 公의 개념도 뜻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앞에서 有로부터 無(없음), 혹은 허공으로의 전회를 요청했다면 여기서는 私로부터 公으로의 전환을 논한다. 앞선 空에서 봤듯이 우주가 지기(至氣)로 가득 찼고 인간 개체 역시 허공을 품었기에 애초에 私的인 것은 없다. 종교, 정치를 비롯한 기존체제가 틈을 만든 것이지 태초에 허공, 없음만이 존재했다. 모든 것을 품는 허공이 하느님, 곧 ‘없이 계신 이’였다. 동학에서 말하는 무위이화(無爲而化) 역시 이런 배경에서 비롯한 한울님의 활동이었다. 허공이 결국 모든 것을 있게 하는 근거인 까닭이다. 세상이 모두 하느님의 것(시편 24:1)이란 말도 이런 선상에서 비롯했을 법하다.

여기서 시천주의 시(侍)의 마지막 풀이, 곧 각지불이(各知不移)란 말이 중요하다. 하늘이 곧 나이고 우주가 곧 개체이기에 이런 관계를 파괴하고 빼앗는 일을 그치라는 뜻이다. 거듭 말하나 우주의 기운과 내 속의 영이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하여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자각해야 옳다. 스스로든 강제적으로든 잊(잃)지도 빼앗겨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누구든 터-사이(空間), 때-사이(時間) 그리고 사람-사이(인간)에 있기에, 사이(間) 즉 그 허공을 독점할 수 없는바 空은 반듯이 公이 되어야만 한다. 하여 앞의 공을 뒤의 공의 존재근거라 말해도 있겠다. 公을 지켜 내는 일이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고(事人如天) 우주를 지켜 그 속의 영을 살리는 길이다.

이런 이유로 사인여천은 敬天, 敬人, 敬物의 三敬 사상으로 이어진다. 敬天을 앞세웠으나 실상 이는 경물, 경인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하늘(天)은 가시적 사람(人)과 물(物)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전통 기독교는 하느님-사람-자연 순으로 가치를 매겼으나 개벽 사유는 자연 없이 사람 없고 사람 없이는 허공(空) 또한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物)과 인간의 영이 至氣이자 空의 실재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 무위이화(無爲而化)란 말도 비롯했다.

⟪도덕경⟫의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란 말 또한 그 뜻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완성하는 道는 정작 이름은 물론 형체도 없다. 여기에 하늘은 사람을 통해 일한다는 뜻도 담겼다. 터, 때, 사람의 사이 존재인 인간이 저마다 ‘各知不移’ 할 때 사람 일은 하늘 일이 된다. 동학의 경우 ‘베 짜는 하느님’이란 말도 있다. 우주 허공(氣化)이 인간의 ‘바탈’(神靈)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이 과정신학과 여성 신학의 틀을 사용하여 세 조건-자신의 본질을 드러낼 것, 공동체를 이롭게 할 것, 자연을 돌보는 일을 할 것-을 지닌 노동을 하느님 일로 여기는 이유와 맥락이 같다.

‘한울로서 한울을 먹는다’(以天食天)란 말은 (내유)神靈이 곧 (외유)氣化인 것을 자각하는 것은 公을 회복시켜 空에 이르려는 聖/俗 경계를 허문 삶의 영적 차원을 일컫는다. 다석의 용어로 말하자면 ‘빈탕 한데 맞혀(맞쳐) 노니는 일’이 될 것이다. 원불교의 경우 사은(四恩) 사상-천지 恩, 동포 恩, 부모 恩, 법률 恩-이 여기에 해당한다. 만물의 이치와 운행을 恩의 관계로 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경우 원죄보다 원(原)은총을 강조할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에 ‘빈탕’이 어렵다면 최소한 덜어내는 일이라도 결심해야 옳다. 단순성(simplicity)이 우리 시대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인류가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그것은 공생공빈(共生共貧)의 길인바 약탈 된 공유지의 회복(공유경제)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자본주의에 잠식되었으나 軸의 종교들을 비롯한 개벽 사유 속에 사회주의적 에토스가 석과불식(碩果不食)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4.

이제 마지막 공(共)은 정치와 관계되는 부분이다. 앞서 필자는 서구는 空을 놓쳤고 자본주의는 公을 빼앗았고 정치(민주주의)는 共(共生)을 망각했다고 적었다. 지금껏 자본주의는 공유지의 약탈사와 궤적을 함께해왔다. 공(公)을 무력과 돈과 기술로 사유화한 것이 자본주의 실상이다. 하늘. 땅, 바다, 심지어 전자파, 종자까지 모든 것을 사사 화했다. 최근에는 문화적 공유재마저 이들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지역의 자원을 착취했고 그곳을 자신들 시장으로 만들었으며 급기야 쓰레기 집산지로 더럽혔고 사람들 영혼마저 황폐토록 했다.

주지하듯 근대 이후 정치와 종교,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면서 사람들은 사적개인이 되어 버렸다. 기독교의 경우 개인의 ‘믿음’을 강조했고 경제도 사적 ‘재산’을 추동하였던바 모든 것이 ‘개인’ 문제로 귀결되었다. 公을 빼앗은 자본주의 체제가 ‘私的’ 개인을 정치, 경제 및 종교의 핵심 개념으로 부상시킨 것이다. 사회주의마저 내쳤던 자본주의가 서구 기독교와 공생 공조했다는 것 또한 정설이다. 신/인간 간의 중개자를 강조한 기독교와 대의(代議) 민주주의가 한 쌍이며 사적개인의 ‘오직’ 믿음과 자본주의 체제의 골격인 사유재산제가 또 다른 쌍으로 결합 되었다.

같은 유일신 종교라도 유대교와 이슬람에서 자본주의가 발생치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의 민주제는 다수를 대변한다는 미명으로 더불어 함, 곧 共을 버렸고 편을 갈랐으며 결국 소수 이익을 대변했다. 公을 약탈하는 자본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점서 국민의 힘과 민주당의 차이가 없다. 그럴수록 시민 사회주의의 등장, 곧 직접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크다. 지역 차원에서 과거 ‘두레’와 같은 민회(民會)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본래 에클레시아란 이름의 교회도 두레, 민회와 같은 형태이자 모습이라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견해다. 직면한 문제를 공동으로 내걸고 그 해결 과정에 모두가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곳이었다. 오늘처럼 예배공동체로서만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공론의 장 그것이 교회였다. 상하(上下) 위계질서 대신 평등한 민주적 토론 과정을 중히 여겼다.

개벽 종교로 시작했던 원불교는 삼동(三同) 윤리 중 하나인 ‘동척사업(東拓事業)’에 역점을 두었다. 분리된 세상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밖이 아닌 세상 속으로 출가(出家)하자는 가르침이다. 여기서는 평신도와 성직자의 구별도 없다. 다석의 귀일(歸一) 사상은 이점에서 중요하다. 내적 귀일(歸一)과 외적 대동(大同) 세상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나뉠 수 없기 때문이다. 개벽 사상으로서의 동척사업은 聖/俗 구별조차 폐하고 세상을 달리 만드는 일이다.

창시자 소태산은 입산하여 道를 깨친 후 정작 세상으로 나올 때 삭발했다. 세상을 위해 종교가 있고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향아설위(向我設位)의 종교가 되란 말이다. 이런 동척사업을 위해 종교가 할 일은 힘 합쳐 하나(共)가 되는 일이다. 종교조차 私의 영역에 머물러 편 가르는 역할에 자족하면 세상은 끝이다. 四恩에 대한 背恩이다.

다른 세상을 위해 종교가 함께(共)할 때 - 그러려면 歸一해야 한다- 정치도 경제도 달라질 수 있다. 共을 잊고 편 만들기에 여념 없는 정치, 私를 키우는 경제체제 하에서 종교마저 共과 담쌓고 있기에 종차(宗差)를 넘어 함께 개벽(開闢)해야 옳다. 그래, 다시 개벽이다. 백여 년 전 기독교가 손잡지 못했던 개벽, 하지만 이제 지금 그를 품고 세상을 구원할 일이다. 이것이 개벽 종교로의 기독교의 전회를 꿈꾸는 이유이자 교회가 지향할 목표라고 생각한다.

5.

본디 기독교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묵시문학 배경에서 탄생했다. 지혜문학과의 연계를 강조하는 역사적 예수 연구 경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묵시문학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외세에 종노릇 한 습성과 기존 성전 체제에 안주했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서기관(신학자)들의 저항과 반란의 산물이다.

신학자 李信은 여기서 종래 예언서를 능가하는 ‘영적 양극성’을 읽었다. 세계 부정을 통한 대 긍정의 힘을 본 것이다. 신약성서는 예수의 탄생을 이런 선상에서 살폈고 하느님 나라 운동 역시 묵시 의식의 절정으로 여겼다. ‘없이 있는’ 하느님(空)의 한 모습인 예수는 당대 정치적 정세 속에서 핍박받은 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神이기를 포기한 그의 겸비는 ‘없이 있는’ 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와 존재론적으로 차이가 없다. 우리 역시도 하늘 바탈(至氣)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리아 찬가에서 드러나듯 예수는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고자 했다. 禧年 사상이 말하듯 하느님 것(公)의 회복을 위해서였다. 그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민중들과 더불어 펼쳤으나 없이 있는 하느님을 자신들 소유로 삼았던 종교 기득권자들의 눈 또한 뜨게 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이/저곳도 아닌 우리들 속(사이)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고 말했으니 그는 공공성(公共性)을 역설한 것이다. 교회가 예배 지상주의를 벗고 두레처럼 민회(民會)의 형식으로 변혁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필자는 기독교의 탄생과 개벽 사유를 기존의 유비를 넘어 ‘역사 유비’의 차원에서 관계 짓고자 한다. 이는 자연과 초자연의 관계를 강조하는 존재 유비(가톨릭), 개인의 내적 믿음에 역점을 둔 신앙 유비(개신교)와 변별되는 개념이다. 묵시적 배경 속에 탄생한 기독교와 개벽 사상은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지향성 차원에서 닮았다.

이것은 하느님 영의 활동과 무관치 않다. 존재 유비가 神을, 신앙 유비가 기독론에 함몰되었다면 역사 유비는 성령론에 방점을 둔다. 이 경우 성령은 J. 몰트만이 주장하듯 그리스도 영에 의존되지 않는다. 요아킴 휘오레의 靈 이해에 근접할 수 있겠다. 至氣라 말할 수도 있을 법하다.

따라서 역사 유비는 종교 차(差)를 부정할 수 있는 토대 또한 제공한다. 이웃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두 시각인 포괄주의, 배타주의를 무화(無化)시킨다. 여러 유형의 다원주의와도 구별될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정행(正行, Ortho-Praxis) 중심의 다원주의라 말할 수 있겠다. 동시에 이는 신구약 성서 간의 관계 역시 새롭게 조명한다. 구속사 및 보편사의 틀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실패한 역사에 관심하기 때문이다. 영적 양극성을 중시하는 까닭이다.

하여 개벽적 기독교는 자신의 신관(神觀)부터 바꿔야 한다. 서구가 간과했던 空의 회복이 그 시작이다. 그로써 자본주의에 영혼을 빼앗긴 기독교는 公을 회복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세상 의제를 내놓고 함께 토론, 해결하는 共의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神學에서 ‘信學’으로의 전회를 제시한 이은선의 주장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야 다수를 빌미로 편파적인 대의 민주제를 비판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맞설 것이며 기후 붕괴 현실에 대응할 수 있다.

이정배(顯藏아카데미) ljbae20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