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7

[서평] [아직도 가야 할 길>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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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직도 가야 할 길>
기자명 이종인  승인 2010.07.16

내가 스캇 펙을 만나게 된 계기는 좀 특별하다. 2009년 겨울 유난히 차가웠던 겨울 한 날, 울산을 향하는 714번 버스를 탔다. 버스의 제일 마지막 긴 자리 바로 앞, 왼편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참을 달리는 동안 아무런 느낌이 없다가, 왼쪽 손잡이 아래로 두터운 책 한 권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캇 펙의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그곳에서 만났다. 누군가가 흘렸을 책이라는 생각에 그냥 두고 가야 하는 것이 옳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한 장 두 장 차 안에서 읽어 내려가면서, 책에 빠져들었고 결국 책을 들고 내렸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가지고 갈 책일 텐데 뭘~ 하면서 말이다. 나쁜 놈.

이후로 스캇 펙의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어서 <거짓의 사람들>을 구매하여 탐독했다. 더불어 <끝나지 않은 여행>, <그리고 저 너머에>, <평화 만들기>와 같은 책을 구입해서 탐독을 할 예정이다. 정신과 의사이고 심리학자이면서 많은 책들을 출판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다른 행동주의 또는 환원주의 심리학자들과 달리 사람이 영적 존재라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인다. 정부에서 심리 상담사로 높은 직위에도 머물렀던 그의 특별한 점은 인간론에 있다 보여진다. 그의 저서 모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읽어 낼 수 있다.

본서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훈련을 언급한다. 고통과 좌절 그리고 신경증의 문제를 이겨 내는 훈련으로서, 자제와 책임 그리고 헌신과 균형의 문제를 다룬다. 2부에서는 사랑에 대해 논하는데,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거짓과 가식의 두려움을 뚫고 사실을 올곧게 바라보고,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라 말한다. 

3부에는 과학의 신화, 즉 모든 것을 실험과 경험으로만 파악하는 좁은 시선을 넘어서 종교적 세계관의 유익과 가치를 역설한다. 4부는 은총에 대한 맥락을 다루지만 3부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살아가는 인생, 즉 삶 자체가 신비이며, 건강하게 유지되는 모든 일들이 기적적이요 신비라는 사실을 들추어 냄으로써 은총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지속해야 할 첫 번째 길은 '훈련'의 길이다. 삶은 쉼 없는 문제의 연속이고, 문제의 해결 방법 중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훈련'이다. 문제 앞에서 정면으로 돌파하고, 풀어 가려 하지 않고 회피하고 달아날 때에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문제를 대면하기보다 주변을 맴돌고 다른 쉬운 길을 찾으려는 태도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이 훈련을 매우 단순한 훈련으로 어린아이도 훈련으로 가능하다. 이 훈련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접 마주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문제를 대면하지 않고 회피함으로 더 크고 많은 문제들을 불러들인다. 회피와 가면을 쓰는 <거짓의 사람들>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진실 앞에 정직하게 서는 훈련으로 된다.

한 번의 거짓말이 여럿 거짓말을 낳는 법이다. 솔직함으로 문제를 인정하고 대면하지 않고, 감추고 문제로부터 도망하려 할 때 신경증이라는 마음의 병이 찾아든다. 부모에게 잘못한 후에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서 마음으로 끙끙거린 적 없는 이가 있겠는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지 않았는가? 문제 앞에 용기 있게 서는 훈련이야말로, 건강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체력이다. 죄의 문제와 우리가 씨름하여 이기겠는가? 하나님 앞에 솔직함이 우리의 영적 폐가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지 않겠는가?

우리가 계속 걸어야 할 두 번째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낭만이나 감정적인 것과 함께 사용된 탓에 '사랑'의 본의가 희석된 것이 사실이다. 사랑은 오직 인격적인 존재만이 행할 수 있는 것으로 근본적인 성장을 가져다주는 열쇠이다. 저자는 사랑을 마조히즘적으로'자기 학대'와 '자기희생'으로 오해하는 것을 경계한다. 도리어 사랑은 '자기 확대'로서 자신을 채워 나가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더불어 느낌이나 '애착'을 넘어서는 것으로 누군가를 향한 의지적 행위이다. 감상적 느낌으로가 아니라, 누군가를 선택하고 그에게 자신의 의지와 마음을 집중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수용하는 노력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랑 아닌 사랑을 하고 있는가? 느낌을 좇고 감각을 좇아 가며 사랑이라 착각하는가? 무책임하고 인격성이 사라진 본능적이고 이기적인 욕구를 사랑이라 오인하는가? 오해를 벗겨 내고 진정한 사랑의 길을 걸어감으로써만 영적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일, 그를 수용하고 끌어안아 내는 일은 녹녹한 일이 아니다. 먼 길이며, 수고와 의지적 결단이 요구하는 길이다. 저자는 사랑하는 일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듣는 일에 대해서 언급한다. 

"산업 현장의 관리인 정도의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읽는 데는 1시간, 대화에는 2시간, 듣는 것은 8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는 법을 가르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그리고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는 그나마 약간의 시간이라고 할애하지만 듣는 법을 가르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177쪽)

마지막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가야 할 길은 '은총'의 길이다.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내어 버리는 좁은 시야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과학자들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은총을 입고 있고 누려 가고 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얼마나 더 많은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더 광범위하고 놀라운가? 우리가 아는 것만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우리는 더 넓은 길을 향해 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 길은 은총의 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드러내신 은총을 감사함으로 알아 가는 길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얼마나 더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님만이 아신다. 우리 인생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오늘도 걷는다. 폴 투르니에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험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길을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 부지런히 걸어가야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만남과 환경이라는 은총을 기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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