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7

김석관 - 신경증 vs. 성격장애 독서모임에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7) 김석관 - 신경증 vs. 성격장애 1. 어제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원내 독서모임에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 Facebook


김석관

신경증 vs. 성격장애
1.
어제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원내 독서모임에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놓고 토론했는데, 젊은 박사들의 소감이 뜻 밖이었다. 인격적(영적) 성숙의 길을 안내해주는 이 책의 내용이 자신들을 혼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약간 불편했다는 것이다. 요즘 나오는 힐링 목적의 자기계발 서적은 ‘너 힘들지, 위로해줄게’라고 말하는 것이 기본적인 톤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고,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것을 너의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해’라고 하면서 ‘즐거운 일은 뒤로 미루라’는 등의 (꼰대같은) 조언을 늘어놓아서 낯설기도 하고 약간의 거부감도 들었다고 한다. 
2.
여기서 잠깐 Latte is Horse...
내가 대학에 들어간 80년대를 돌이켜보면, 대학생들은 그 동안 입시 준비에만 몰두하느라 전혀 접하지 못했던 여러 서적과 활동들을 접하면서 자신과 사회에 대한 기본적 인식과 사고체계가 바뀌는 일종의 ‘세계관적 전환’을 많이 경험했던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는 사회과학 서적과 서클을 통한 사회적/이념적 전환, 종교 서적과 서클을 통한 영적 전환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둘보다는 조용한 방식이었지만 이들에 못지 않게 널리 경험되었던 트렌드가 있었다. 바로 심리학 서적들을 통한 ‘심리학적 전환’이다. 그 전까지 ‘나’라는 자아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챙길 여력도 없이 입시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와 각종 심리학 책들을 읽으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자아, 정체성, 관계, 상처, 용서, 연애, 인격적 성숙 등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와, 이런 세계가 있었네, 왜 그동안 학교에서는 이런 걸 안 가르쳐줬지? 인생 사는데 정말 중요한 건 이런거 아닌가?” 라고 탄식하면서, 일종의 심리학 세례를 받았던 것 같다. 


3.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그런 심리학적 전환을 안내해준 책들 중 단연 최고의 명저였다. 1978년에 나온 이 책이 지금까지 스테디셀러가 된 것은 ‘시간을 이기는 보편성’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명저의 권고들이 힐링에 도움이 안 되고 꼰대의 조언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젊은 박사들의 독후감을 들으니 살짝 문화적 충격이 왔다. 

4.
그런데 그 다음 질문과 이어지는 답변은 이 충격을 더 확대시켰다. “삶의 고통을 통과할 때(스캇 펙은 기본적으로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내 자아가 성숙될 것이라는 일종의 ‘성장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 기둥처럼 자신을 지탱해주지 않는가? 그것이 없다면 고통스러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힘을 얻지?” 라고 질문을 했더니, 

“왜 진보를 해야 하는거죠? 지금 세대들은 인격적 성숙이나 진보의 필요성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5.
한 10년쯤 전에 대학 교수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요즘 학생들에 대해 물어보면, “너무 불쌍해요, 미래가 없잖아요...”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전혀 다른 인종이 탄생했다고 보시면 되요”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들이 많았다. 최근 노동연구원의 한 시니어 연구자가 다음과 같이 발표하시는 것을 들었다. “과거에는 인사관리를 두 그룹,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서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세 그룹으로 나눠서 해야 합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그리고 MZ세대” 스캇 펙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이분들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조금 실감하게 되었다. 

6.
책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하다가, 586과 MZ가 대조되는 이야기들이 더 나왔다. “92년에 서울대학원에 가보니 나라 일을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586) “왜 힘들여서 더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하나? 오늘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MZ) 그리고 정확히 무슨 이야기였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ㅠㅠ) 대충 “윗 세대는 문제의 원인을 내면에서 찾고, MZ는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때 스캇 펙이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 것이 떠올랐다. 

(48쪽)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책임감에 장애가 있다. 그런데 세상과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서로 상반된다. 신경증인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려 하고 성격장애인 사람들은 응당 져야 할 책임조차 피하려든다.

(※참고) “신경증(neurosis)과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 신경증 환자는 자신이 외부에 적응하려 노력하고(autoplastic), 성격장애 환자는 주변을 탓하며 외부 환경을 바꾸려고 한다(alloplastic)”(인터넷 블로그 참고)

이 구절이 떠올라서 “586세대는 신경증에 가깝고 MZ는 성격장애에 가깝다는 뜻이군”이라고 말했더니 독서모임의 모두가 동의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586은 사회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다가 지친 것 같고, 
MZ는 사회에 나올 때 이미 지쳐 있는 상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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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dy Kung
아직도 가야할 길 인생의 책입니다. 좋은 글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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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kyu Yi
모두가 지쳐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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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kyu Yi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폭넓어서 시간을 이기는 보편성이라는 걸 앞으로는 점점 만나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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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wang Kim
흥미로운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작년인가 어떤 심리학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한국인 포닥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해줬는데 그 친구는 시큰둥 해서 적쟎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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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 Hong Rim
이 책 명저이긴 한데 워낙 오래되다보니 학술에 대한 맹신, 남성 위주 등 과거에 기본이지만 현대에 맞지않을 수 있는 내용이 좀 있는듯합니다. 대학생때 봤을 때는 무릎을 탁 쳤는데 올해 다시읽어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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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관
임채홍 그렇군요! 다시 꼼꼼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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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 Hong Rim
Neurosis와 psychosis아니었던가요? 음 제 기억이 잘못된건지.. 그러나 원내에서 쥬니어 시니어가 하는 독서모임이 유지되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주니어 구성원과 당해조직체가 상당히 건강하다는 느낌이듭니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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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 Hong Rim
스캇펙 선생님은 모든 그분 저서에서 뉴로시스(우울증) 사이코시스(남탓왕)로 마음의 짐을 분리해서 남탓왕을 매우 비난하십니다. '악이란 무엇인가' 에서 그 정점을 이룹니다 ;; 저도 뉴로시스에 가까운 인간으로서 전에는 무척 동감했는데 근자에는 남탓왕을 잘 끌어안고 사는 것이 뉴로시스 인간의 숙제라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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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관
임채홍 네, 저도 <악이란 무엇인가> 읽으면서 탁월한 분석이라고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뉴로시스와 사이코시스가 스캇 펙의 기본 틀이라는 점은 저도 잘 몰랐는데, 이를 인지하고 책을 보면 더 이해가 쉬울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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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eon Kim
훌륭한 통찰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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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ng Wan Nam
어제 로컬크리에이터 관련 강연에서 사회적 참사(삼풍,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세월호 , 그리고 최근의 이태원)가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부분도 있을거라합니다. 나와 현재,오늘,지금, 여기에 집중하고 중요시. 586은 광주518 , 박종철,이힌열 ㅡ 역사적 학살의 영향으로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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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윤
Kyong Wan Nam사회학자 김홍중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성 레짐'..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같은 것들로 대표되는 그런 정서가 있지요. 이미 그런 것은 쇠락하고 있었지만, 그것과 완전히 단절되고 그걸 아예 모르는 세대가 시작될때 뭔가 크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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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윤
수많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삶이라는 것에 바라는 눈높이가 너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MZ세대인 저부터가 그렇구요. 윗세대 그 누구도 밝은 미래를 철저히 약속받고 진흙탕에 들어가지 않았을거에요. 그 약속을 믿어주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을 뿐이지. 두들겨맞고 크고 말도 안되게 자신을 갈아넣어야 하고.. 누구나 대체로 자기와 다른 시간대에 산 사람의 여건을 이해할 능력까지는 없구나 싶지만, 저는 MZ들의 윗 세대 및 세상을 향한 시선이 좀 야속하다 느낍니다. 저는 사회가 MZ에게 너무 관대한데, 그것부터가 인구구조라는 힘은 거스를 수 없는 상수이기 때문이라 봅니다. 앞으로도 갈길이 먼 양성고용평등 문제의 진전, 경제성장 둔화 등 개인간 경쟁격화 요인은 많습니다만, 그건 가야 할 길이니까 모두가 감수해야 하구요.
모두가 꿈꾸던 워라밸, 일을 통한 자아실현 문제 등이 점점 그래도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나이먹은 사람에게는 모든게 지나간 기차인걸, 나이어린 사람들은 위에서 그만큼 고통받고 순응하는 짬짬이 소리질러 변화시킨 것을 자기가 너무 서둘러 전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염치가 조금 있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떼는"이라는 밈으로 윗 세대가 자기경험 말하는걸 비웃는것도 저는 사실 좀 불편합니다. 물론 기분나쁘게 "라떼는"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니가 쳐 구른건 그때 태어난 니 불운이고 나는 내가 누릴걸 누려야겠다'는거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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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jin Song
많은 요소가 있지만, 사회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시려던 분들이 막상 사회적 문제도, 자신의 삶도 그렇게 멋지게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며 MZ가 다른 길을 선택하게도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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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이책을 보면서
사회를 다르게 볼 수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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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관
MZ 신입사원도 힘들고 상사도 힘들다 [신과대화: 곽연선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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