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 - 스캇 펙 박사가 현대인에게 던지는 자살과 안락사에 대한 메시지
M. 스캇 펙 (지은이),조종상 (옮긴이)율리시즈2013-01-28
원제 : Denial Of The Soul: Spiritual And Medical Perspectives On Euthanasia And Mortality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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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쪽
책소개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은 인간이 죽음을 택하는 거의 모든 방식-살인, 자살, 안락사, 자연사에 이르기까지-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죽음 해부학을 펼쳐 보인다.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매개체는 ‘안락사’이지만 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영혼과 그 영혼이 가진 가치와 아름다움이다. 즉, 안락사라는 문제에 대면한 순간, 인간이란 존재에게 영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1997년에 출간된 이 책의 문제 인식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되는 것은, 살면서 당연히 겪는 생존적 고통과 직면하기보다는 쉬운 길을 택할 권리/자유를 추종하는 것을 사회가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상황의 유사성 때문이다. 사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그것에 승복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더 옳아서가 아니라 더 쉬워서 그렇다.
하지만 누구나 삶의 고통을 말끔하게 끊어낼 방법은 없다. 인간의 조건이란, 종종 우리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를 지닌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스캇 펙은 자신이 경험한 숱한 사례들을 통해, 죽어가는 것으로부터의 배움의 문제를 일깨우고 인생의 역경에 맞서는 법을 배우는 용기를 불러일으키기를 희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을 우리 또한 절실히 반문해봄 직하다.
목차
1부: 혼돈에서 명료함으로-의학적˙정신질환적 관점들
1장. 플러그를 뽑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공식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삶의 질/과도한 조치란 무엇인가/환자가 죽음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안락사 논쟁의 핵심
2장. 육체적 고통
축복은 잠재적 저주/가장 널리 행해지는 의료 범죄/중독에 대한 오해/기타 약물 부작용/ 공식과 스케줄보다 환자의 통증이 먼저다/꾀병 부리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감정 이입이 되지 않아서/모르핀 알레르기
3장. 정서적 고통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심신증적 정신질환/신경증과 성격장애
4장. 살인, 자살 그리고 자연사
살인-낙태와 안락사, 사형제도에서의 살인/자살-그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가/ 자연사-인생의 은총/마침내 정의를 내리다
2부: 인간의 영혼은 존재하는가
5장. 세속주의
6장. 인간이라는 존재
신이 창조하다/신이 양육하다/인간의 영혼은 모두 고유하다/영혼은 필연적으로 발전한다/영혼의 불멸성/온 세상은 의식과 영혼을 지녔다/정신 그리고 영혼/영혼의 신비
7장. 죽음의 과정에서 배우는 것
죽음과 임종의 단계/퀴블러-로스의 단계와 배움/케노시스의 길을 간다는 것
8장.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
안락사는 죽음의 부정인가
3부: 미래로-우리 사회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다면
9장. 조력 자살
10장. 안락사 논쟁에 대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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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M. 스캇 펙 (M. Scott Peck)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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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하버드대학(B.A.)과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M.D.)에서 수학한 후, 10여 년간 육군 군의관(정신과 의사)으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개인과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고 그러한 통찰은 여러 편의 책에서 구체화된다. 1978년, 마흔두 살에 쓴 첫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사랑, 전통적 가치, 영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심리학과 영성을 매우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며 이후 《뉴욕타임스》의 최... 더보기
최근작 : <아직도 가야 할 길 세트 - 전5권>,<마음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아직도 가야 할 길, 그 길에서의 명상> … 총 138종 (모두보기)
조종상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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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의 번역 활동 및 수년의 번역 교육 경험을 녹여 새롭고 온전한 노인과 바다를 번역했다. 글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는 생각에, 좋은 글로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는 작가이자 번역가 및 출판인이다.
현재 고전 및 문학 소설로 논술과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 센터 <소리와글>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번역을 하고 싶다 잘』, 『살고 싶다 잘』, 『믿고 싶다 잘』이 있고, 주요 번역서에는 『빨간 모자의 진짜 이야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 『진실 게임』... 더보기
최근작 : <믿고 싶다 잘!>,<살고 싶다 잘>,<번역을 하고 싶다 잘> … 총 2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자유의지가 있는 피조물로서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게 할 윤리적.도덕적 권리가 있느냐에 관한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다른 사람의 삶의 질을 놓고 생사를 판단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죽음을 허용하는 것과 생명을 빼앗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육체적.정서적 고통은 어느 때에 안락사의 근거가 되는가
우리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친구여, 우리는 일생을 통해 계속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하네.
그런데 훨씬 더 놀라운 일은 우리는 일생 동안 계속 죽는 방법도 배워야만 하는 거라네.” -세네카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삶’과 ‘죽음’ 두 가지 문제뿐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 外 연작에서 스캇 펙은 줄곧 외로움과 고통, 불완전함, 문제투성이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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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나온 책이라 지금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다. 책의 제목만 보고 안락사를 다룬 책인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죽음에 대한 선택권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리내 2013-09-1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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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권리.
낮에뜬별 2013-02-1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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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 길 -죽음편-
멘탈로봇 2013-03-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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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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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가?
제목을 달리 해서 헷갈렸던 것 같습니다. 스캇 펙의 <이젠, 북을 수 있게 해줘>는 <Denial of the soul>을 원제로 하여 1997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우리나라에는 2001년에 민윤기님의 번역으로 <영혼의 부정; http://blog.joinsmsn.com/yang412/6647855>이란 제목으로 김영사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절판된 상태입니다. 불과 6년 전에 읽은 책인데 번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으니, 아무래도 저의 책읽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도 제목이 달라진 책을 샀다가 다른 책으로 바꾼 적이 한 번 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도 하게 되었으니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란 생각도 합니다.
이 책은 안락사와 자살 같이 자연의 순리에 따르지 않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안락사의 문제는 벌써 15년도 전의 생각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는 현재의 안락사의 개념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한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혀 새로운 책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리뷰 역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것 같습니다.
먼저 저자는 자살은 물론 자비로운 살인이라고 미화되는 의사조력자살, 나아가 적극적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1950년 14살의 나이로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고백이 웬지 낯설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1장 ‘플러그를 뽑다’에서는 젊은날 그는 아직은 뇌사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다른 의사의 견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생명유지장치를 꺼서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경험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저자가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것처럼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해결 불가능한 고통을 느끼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안락사라는 말은 아니다. 내 말은 어디까지나 이미 유용한 방법들을 활용하여 육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의료적 행위의 연장선상에서의 개선을 지칭할 뿐이다.(89쪽)”라고 적고 있어 안락사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1938년에 설립된 미국 안락사협회에서 안락사를 ‘심각한 육체적 고통을 끝낼 목적으로 통증 없는 수단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끊는 행위’라고 정의한 것이 ‘지극히 부적절한 정의’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진정한 안락사는 현재 앓고 있는 치명적인 질병의 마지막 단계에서 육체적인 죽음에 처한 경우, 고유한 생존적, 정서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또는 도움 없이 자살하는 행위다.(173쪽)”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내가 내 삶의 창조자니까. 나는 자 자신을 파괴할 권리도 있다.”고 하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매우 교만한 생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2부는 ‘인간의 영혼은 존재하는가’입니다. “영혼은 하느님이 창조하고 기르시는 고유하며 발전적인 영원한 인간 정신이다.(196쪽)”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영성에 대한 깊은 믿음은 저자가 쓴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http://blog.joinsmsn.com/yang412/12617702>에서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심지어 죽음이 배움과 영혼의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논하는 가운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죽음의)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락사는 결국 영혼의 성장과 학습의 기회를 차단하는 일이다. 안락사를 선택함으로써 바로 인간의 존재의 의미 그 자체를 부정해버리기 때문이다.(225쪽)”라는 저자의 주장은 ‘안락사는 신으로 향하는 길을 단절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을 속이고 훨씬 더 중요하게는 우리 자신을 속인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자는 안락사를 재생산하는 것, 적어도 불필요하게 적용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락사 대신에 집에서 호스피스의 간호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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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3-02-28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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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에 대한 선택권은 누구에게?
의료시설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간의 생명은 끊임없이 연장되어 왔다.
그에 따라 우리의 의지에 반해 이어지는 생명의 연장 문제도 같이 논의되어 온다.
전에는 그저 죽음을 맞이 할수 밖에 없는 질병도 놀라운 의료기술로 생명이 연장되고 치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때는 과연 이것이 치유의 과정인가, 그저 같은 상태의 연속선상에 놓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로에 설때도 있다. 그 끝을 알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아무도 그 결말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런 상황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안락사라는 주제는 복잡하다. 심지어 안락사의 일반적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안락사란, 오로지 환자나 죽어가는 누군가에게 의사나 가족중 한 사람이 행하는 하나의 행동일까? 또는 환자나 죽어가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을 죽이는 행위에 사용되는 용어일까? 안락사에는 환자의 동의가 필요한가? 또 가족의 동의는 어떠한가? 안락사는 다른 평태의 자살 및 살인과 분리될 수 있는가? 단순히 생명유지장치의 플러그를 뽑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과도한 조치 사용의 제한이 안락사의 한 종류라면 과도한 조치와 일반적 조치의 차이점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안락사와 고통의 관계는 어떠한가? 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고통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는가? 고통의 정도는 어떻게 평가 하는가? 무엇보다도 윤리적인 문제가 왜 관련되며 윤리적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지은이는 민감한 안락사의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또한 이 질문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고뇌한다.
그것은 지은이의 죽음에 대한 두가지 경험담 때문이었다.
펙 박사는 자신의 할머니가 위중한 상태에서 각종 의료적 행위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연장하게 되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꼈었다. 연세도 드시고, 약간의 치매 증상까지 있으신 분에게 그런 의료적 행위로 삶을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모든 치료를 이겨내시고 건강을 찾으셨다.
이후 5년동안 할머니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며 투정을 부리거나 불평하는 일도 없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행복해 보였고 재치나 유머감각도 그 어느때보다 좋았다. 그러므로 나는 의사들이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정맥 절개술을 감행하고 당시 내게는 과도한 조치로 보였던 방법들을 사용한것에 대해 감사할 수 밖에 없다.
다음의 한 예는 거의 신체적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 각종 약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로저라는 환자의 경우다. 펙 박사는 하루가 다르게 신체가 죽어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이렇게 고통스럽게 로저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그를 위한일일까 하는 회의가 든다.
과장이 기계를 가지고 나간후 나는 거의 15분동안 토니를 쳐다보며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서 정맥 주사기 튜브의 죔쇠를 조절하여 주사액 유입량이 반으로 줄어들도록 했다. 거의 들이붓다시피하던 주사액은 이제 빠른 속도로 방울져 떨어지는 정도가 되었다. 그런 다음 나는 의사 휴게실로 가서 담배 한대를 피웠다. 10분이 채 안돼서 병실로 돌아왔을때 토니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지은이의 손으로 로저의 생명선을 끊은것이다.
과연 펙 박사는 안락사에 대해 찬성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것일까?
우리들은 모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기 보다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 옳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죽음 맞을 때 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려움은 안락사 운동을 촉진 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 과정이 오로지 공포스럽고 길며 쓸데없이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전에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건 합리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공포증의 대부분은 이런 기본적인 생존적 두려움에 기인한다. 인간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두려움은 의식적 존재인 인간의 고유한 고통이다. 그러나 이 두려움을 어떻게 다룰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다.
이런 점에서 펙 박사는 현대의 의료인들이 환자에 대한 고통에 너무나도 둔감함을 지적하고 있다.
진단이 끝나면 서둘러 통증을 안전하게 줄일 수 있도록 약을 처방해야 한다. 만약 의료진이 환자의 극심한 통증을 쓸데없이 오래 지속되도록 놓아두게 되면 환자를 고문하는 것과 다름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통증에 대해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가장 널리 자행되는 의료 범죄다.
그러나 펙 박사는 여러가지 면에서 안락사를 찬성하지는 않고 있다.
나는 안락사를 비판하는 두가지 이유를 서술했다.
하나는 명백히 신학적이며 보통 모든 자살과 관련된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창조자이자 양육자인 하느님이 우리의 삶에서 우리 자신만큼 상당한 이해당사자가 된다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는 피조물로서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죽일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게 할 윤리적, 도덕적 권리가 있느냐에 관한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자살을 통해 인간은 자신에게 삶을 부여한 자와 관계없이 자신의 죽음의 때를 결정한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부정이자 그 영혼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부정이다.
안락사를 비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신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특별히 내가 정의했던 안락사와 관련된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것들을 배운다. 그러나 늙어가고 죽는 과정에 수반되는 생존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행위는 스스로 그 배움의 길을 막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런 학습의 기회를 설계한 하느님을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인 이유가 주된것이긴 하지만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의지와 선택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실명이나 그밖의 질병, 노화나 죽음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자면 대단한 의지가 필요하다.
하느님은 우리는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선 또는 악을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하느님도 인간의 의지를 반영하여 치유한다.
아내와 나는 둘 다 낙태를 찬성하지만 버스라이트라는 단체에도 약간의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버스라이트의 목적은 낙태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여성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단체에 가입한 이유는 선택권을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의 목적도 바로 그러하다. 안락사를 선택하거나 심지어 이를 돕는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사의 선택을 장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을 한다는 것을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옳은 결정이라고 누가 확신할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이문제에 대해 단숨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많이 생각하면서 각자의 의지와 선택권을 넓혀가야 한다.
안락사의 논의가 뜨거워지면 뜨거워질수록 사회는 건설적이면서도 빠르게 두 근본적인 문제를 더욱 쉽게 공론화 할 것이다. 그 문제 중에 하나는 결점 많고 예측 불가능한 미국 의료의 특성으로서 특히 통증 관리와 자연사를 돕는 일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세속주의다. 만약 이 두가지 병폐를 뽑을 수 있게끔 사회를 자극할 수만 있다면 안락사 논의는 커다란 희망의 불씨가 되는 셈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안락사나 자살을 이해, 찬성한다거나, 반대한다는 그런 입장을 정리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어느 한 쪽을 택한 사람들을 비난 하지는 않게 된것 같다. 물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약간의 분노감(공인인경우 그것에 대한 파장을 생각해)도 일어나기는 하지만 일방적인 나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은 잠깐 멈추게 될것 같다.
그리고 내가 만약 나의 상태에 대해 이런 판단을 해야 하는 때가 온다면 나 또한 힘들고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결정이라면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것 같다.
그래서 평소에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이 책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자살과 안락사에 대한 문제를 지은이의 전문적인 분야를 살려 잘 풀어나갔다고 볼수 있다.
다만 전체적인 내용이 조금 산만하여 정리가 잘 안되고 맥이 끊기며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것은 지은이의 오랜 경험을 통한 수많은 사례들이 읽는이의 이해를 도와주는데 많은 역할을 했고, 그 사례들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지은이의 주장은 마지막 까지 읽지 않으면 무엇을 즉, 안락사에 대한 찬성인지 반대인지 알수가 없도록 모호하다.
물론 이 주제가 단칼에 무 자르듯이 말할수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그래서 지은이 또한 많은 예외와 개인의 선택에 자율성을 두며 말하기도 했다.
또 지은이의 종교성때문에, 그리고 지은이의 주장은 이 종교성에 무게를 많이 두고 있기에
이 책의 뒷부분은 상당히 종교적이다.
그러나 책 표지 어디에도 그런 내용을 가늠할수 없기에
같은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다 보면 뒷부분에서 조금 난감해 할것 같다.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조금은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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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스맘 2013-03-06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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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이 치유다
직면이 치유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싫어하여 피한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고통은 거부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직면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치유 또한 불가능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고통을 끔직히 싫어하기 때문에 늘 쾌락만을 추구하려 한다. 자신의 부족이나 허물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려 한다. 역사 속에서 간신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고통은 직면하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는다. 직면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는다. 고통은 아프지만 좋은 것이다. 그래서 스캇 펙은 그의 책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달아나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고통을 수반하고 삶을 힘겹게 한다. 칼융은 이러한 인간의 반응을 신경증-노이러제라고 불렀다. 신경증은 고통을 피하려는 것이다. 융에 의하면 인간의 진정한 고통은 고통을 피하는 것 자체라고 말한다. 고통을 피하다보면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장악하고 마음의 고통을 만는다. 즉 신경증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 아니라 고통 자체다. 불교의 교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고 삶은 번뇌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큰다. 고통이 없으면 성장하지 않으며 어른이 되지 못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과에 순복하여 삶을 책임지는 것이다.
직면하면 성장한다. 성장은 직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회피는 정신적 성장을 거부함으로 그대로 머무는 것이다. 기억의 자아는 과거에 묶어둠으로 성장을 방해한다. 직면은 이러한 방해물을 뛰어넘어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한다. 직면은 배움이며, 탄생이다.
고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고통을 직면하다는 것은 문제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고민한다. 생각을 깊게하고, 사유를 넓게하고, 의지를 강하게 한다. 직면을 통해 문제를 뛰어 넘는다. 문제를 뛰어 넘으면 더 큰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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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3-06-11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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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책, 몇 권
얼마 전엔 좀 관심이 있었지만 요즘은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책 소개를 보다보니 자꾸만 이런 책들이 눈에 띈다. 이 책들을 모아보지 않으면 계속 눈에 띌 것 같아 올려본다. 죽음에 관한 책들.
처음 '죽음'에 관해 관심이 생겼을 때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관심이 생긴 걸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다. '죽어가는' 자, 를 생각하면 그 '고독'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혹은 내가 만약, 곧 죽음을 맞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죽어가는 자의 고독』(1982)은 대작 『문명화 과정』(1939)으로 사회학계의 거장 반열에 오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생애 말년에 남긴 죽음에 대한 성찰, 고독한 죽음의 사회학이다. 현대인은 전례없이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고 평균수명도 크게 늘었지만, 오히려 외로운 죽음은 점점 늘고 있다. 엘리아스는 이를 ‘문명화’의 부작용으로 진단한다."
읽으면서 밑줄을 상당히 그읏던 것 같다. 책이 얇아 들고다니며 읽기에도 편했기 때문.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고독사에도 관심이 생겼고, 엘리아스가 말하는 노인들의 쓸쓸한 죽음에도 뭔가 짠함과 동시에 남의 일이 아니구나, 뭐 그런 생각도 하고^^;;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오늘 죽음에 관한 책을 모아봐야지, 맘 먹게 한 책이다. 인문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어서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전에도 이런 책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간 까닭은 뭘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 누구나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라는 이유를 배제하면 그건 아무래도 예일대 강연이라는 문구 때문인 것 같다는 나의 소심한 의견(-.-). 물론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판단은 나빠! 미리보기를 보니, 책이 궁금해지긴 한다.
"이 책은 셸리 케이건 교수가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철학 정규강좌 ‘DEATH’를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DEATH’는 하버드대 ‘정의’및 ‘행복’과 함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으로 불리는 강의이며,17년 연속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로 꼽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왔던 심리적 믿음과 종교적 해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다."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과 삶에 대해 말한다면, 그래 읽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죽음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삶에 대한 긍정도 더 많이 생기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분명 될 것이다.
이 책은 스캇 펙의 저서라는 점과 제목 때문에 눈에 들어왔던 책이다.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라니!! 문득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안락사?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소개를 보니 역시, 그랬다.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에는 인간이 죽음을 택하는 거의 모든 방식-살인, 자살, 안락사, 자연사에 이르기까지-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죽음 해부학을 펼쳐 보인다.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매개체는 ‘안락사’이지만 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영혼과 그 영혼이 가진 가치와 아름다움이다. 즉, 안락사라는 문제에 대면한 순간, 인간이란 존재에게 영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스캇 펙이 써온 글은 '삶을 어떻게 대면하고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나름의 해법'을 알려주는 글이었다. 책소개에서 이제 60세가 된 스캇 펙이 그동안 쌓아온 경험의 노하우로 '죽어가는 것으로부터의 배움의 문제를 일깨우고 인생의 역경에 맞서는 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거란다. 그러니까 우린 '잘 죽는 것'도 배워야 한다는 사실.
이외에도 자연스러운 삶, 평온한 죽음을 위한 노인요양원 의사의 따뜻한 조언이 담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삶의 막바지에서 비로소 감동적인 진실과 마주한 사람들, 그리고 그 덕분에 인생과 관계를 치유한 어느 호스피스 의사의 실화를 담은 『일주일이 남았다면』, 모든 인간 관계가 끊긴 상태에서 혼자서 죽어 거두어 줄 사람이 없는 죽음에 대해 말해주는 『무연사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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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쪽
책소개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은 인간이 죽음을 택하는 거의 모든 방식-살인, 자살, 안락사, 자연사에 이르기까지-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죽음 해부학을 펼쳐 보인다.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매개체는 ‘안락사’이지만 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영혼과 그 영혼이 가진 가치와 아름다움이다. 즉, 안락사라는 문제에 대면한 순간, 인간이란 존재에게 영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1997년에 출간된 이 책의 문제 인식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되는 것은, 살면서 당연히 겪는 생존적 고통과 직면하기보다는 쉬운 길을 택할 권리/자유를 추종하는 것을 사회가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상황의 유사성 때문이다. 사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그것에 승복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더 옳아서가 아니라 더 쉬워서 그렇다.
하지만 누구나 삶의 고통을 말끔하게 끊어낼 방법은 없다. 인간의 조건이란, 종종 우리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를 지닌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스캇 펙은 자신이 경험한 숱한 사례들을 통해, 죽어가는 것으로부터의 배움의 문제를 일깨우고 인생의 역경에 맞서는 법을 배우는 용기를 불러일으키기를 희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을 우리 또한 절실히 반문해봄 직하다.
목차
1부: 혼돈에서 명료함으로-의학적˙정신질환적 관점들
1장. 플러그를 뽑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공식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삶의 질/과도한 조치란 무엇인가/환자가 죽음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안락사 논쟁의 핵심
2장. 육체적 고통
축복은 잠재적 저주/가장 널리 행해지는 의료 범죄/중독에 대한 오해/기타 약물 부작용/ 공식과 스케줄보다 환자의 통증이 먼저다/꾀병 부리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감정 이입이 되지 않아서/모르핀 알레르기
3장. 정서적 고통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심신증적 정신질환/신경증과 성격장애
4장. 살인, 자살 그리고 자연사
살인-낙태와 안락사, 사형제도에서의 살인/자살-그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가/ 자연사-인생의 은총/마침내 정의를 내리다
2부: 인간의 영혼은 존재하는가
5장. 세속주의
6장. 인간이라는 존재
신이 창조하다/신이 양육하다/인간의 영혼은 모두 고유하다/영혼은 필연적으로 발전한다/영혼의 불멸성/온 세상은 의식과 영혼을 지녔다/정신 그리고 영혼/영혼의 신비
7장. 죽음의 과정에서 배우는 것
죽음과 임종의 단계/퀴블러-로스의 단계와 배움/케노시스의 길을 간다는 것
8장.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
안락사는 죽음의 부정인가
3부: 미래로-우리 사회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다면
9장. 조력 자살
10장. 안락사 논쟁에 대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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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M. 스캇 펙 (M. Scott Peck)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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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하버드대학(B.A.)과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M.D.)에서 수학한 후, 10여 년간 육군 군의관(정신과 의사)으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개인과 조직에서의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고 그러한 통찰은 여러 편의 책에서 구체화된다. 1978년, 마흔두 살에 쓴 첫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사랑, 전통적 가치, 영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심리학과 영성을 매우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며 이후 《뉴욕타임스》의 최... 더보기
최근작 : <아직도 가야 할 길 세트 - 전5권>,<마음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아직도 가야 할 길, 그 길에서의 명상> … 총 138종 (모두보기)
조종상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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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의 번역 활동 및 수년의 번역 교육 경험을 녹여 새롭고 온전한 노인과 바다를 번역했다. 글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는 생각에, 좋은 글로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는 작가이자 번역가 및 출판인이다.
현재 고전 및 문학 소설로 논술과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 센터 <소리와글>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번역을 하고 싶다 잘』, 『살고 싶다 잘』, 『믿고 싶다 잘』이 있고, 주요 번역서에는 『빨간 모자의 진짜 이야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 『진실 게임』... 더보기
최근작 : <믿고 싶다 잘!>,<살고 싶다 잘>,<번역을 하고 싶다 잘> … 총 2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자유의지가 있는 피조물로서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게 할 윤리적.도덕적 권리가 있느냐에 관한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다른 사람의 삶의 질을 놓고 생사를 판단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죽음을 허용하는 것과 생명을 빼앗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육체적.정서적 고통은 어느 때에 안락사의 근거가 되는가
우리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친구여, 우리는 일생을 통해 계속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하네.
그런데 훨씬 더 놀라운 일은 우리는 일생 동안 계속 죽는 방법도 배워야만 하는 거라네.” -세네카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삶’과 ‘죽음’ 두 가지 문제뿐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 外 연작에서 스캇 펙은 줄곧 외로움과 고통, 불완전함, 문제투성이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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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나온 책이라 지금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다. 책의 제목만 보고 안락사를 다룬 책인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죽음에 대한 선택권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리내 2013-09-1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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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권리.
낮에뜬별 2013-02-1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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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 길 -죽음편-
멘탈로봇 2013-03-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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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가?
제목을 달리 해서 헷갈렸던 것 같습니다. 스캇 펙의 <이젠, 북을 수 있게 해줘>는 <Denial of the soul>을 원제로 하여 1997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우리나라에는 2001년에 민윤기님의 번역으로 <영혼의 부정; http://blog.joinsmsn.com/yang412/6647855>이란 제목으로 김영사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절판된 상태입니다. 불과 6년 전에 읽은 책인데 번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으니, 아무래도 저의 책읽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도 제목이 달라진 책을 샀다가 다른 책으로 바꾼 적이 한 번 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도 하게 되었으니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란 생각도 합니다.
이 책은 안락사와 자살 같이 자연의 순리에 따르지 않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안락사의 문제는 벌써 15년도 전의 생각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는 현재의 안락사의 개념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한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혀 새로운 책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리뷰 역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것 같습니다.
먼저 저자는 자살은 물론 자비로운 살인이라고 미화되는 의사조력자살, 나아가 적극적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1950년 14살의 나이로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고백이 웬지 낯설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1장 ‘플러그를 뽑다’에서는 젊은날 그는 아직은 뇌사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다른 의사의 견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생명유지장치를 꺼서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경험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저자가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것처럼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해결 불가능한 고통을 느끼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안락사라는 말은 아니다. 내 말은 어디까지나 이미 유용한 방법들을 활용하여 육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의료적 행위의 연장선상에서의 개선을 지칭할 뿐이다.(89쪽)”라고 적고 있어 안락사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1938년에 설립된 미국 안락사협회에서 안락사를 ‘심각한 육체적 고통을 끝낼 목적으로 통증 없는 수단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끊는 행위’라고 정의한 것이 ‘지극히 부적절한 정의’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진정한 안락사는 현재 앓고 있는 치명적인 질병의 마지막 단계에서 육체적인 죽음에 처한 경우, 고유한 생존적, 정서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또는 도움 없이 자살하는 행위다.(173쪽)”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내가 내 삶의 창조자니까. 나는 자 자신을 파괴할 권리도 있다.”고 하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매우 교만한 생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2부는 ‘인간의 영혼은 존재하는가’입니다. “영혼은 하느님이 창조하고 기르시는 고유하며 발전적인 영원한 인간 정신이다.(196쪽)”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영성에 대한 깊은 믿음은 저자가 쓴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http://blog.joinsmsn.com/yang412/12617702>에서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심지어 죽음이 배움과 영혼의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논하는 가운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죽음의)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락사는 결국 영혼의 성장과 학습의 기회를 차단하는 일이다. 안락사를 선택함으로써 바로 인간의 존재의 의미 그 자체를 부정해버리기 때문이다.(225쪽)”라는 저자의 주장은 ‘안락사는 신으로 향하는 길을 단절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을 속이고 훨씬 더 중요하게는 우리 자신을 속인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자는 안락사를 재생산하는 것, 적어도 불필요하게 적용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락사 대신에 집에서 호스피스의 간호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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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3-02-28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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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에 대한 선택권은 누구에게?
의료시설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간의 생명은 끊임없이 연장되어 왔다.
그에 따라 우리의 의지에 반해 이어지는 생명의 연장 문제도 같이 논의되어 온다.
전에는 그저 죽음을 맞이 할수 밖에 없는 질병도 놀라운 의료기술로 생명이 연장되고 치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때는 과연 이것이 치유의 과정인가, 그저 같은 상태의 연속선상에 놓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로에 설때도 있다. 그 끝을 알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아무도 그 결말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런 상황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안락사라는 주제는 복잡하다. 심지어 안락사의 일반적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안락사란, 오로지 환자나 죽어가는 누군가에게 의사나 가족중 한 사람이 행하는 하나의 행동일까? 또는 환자나 죽어가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을 죽이는 행위에 사용되는 용어일까? 안락사에는 환자의 동의가 필요한가? 또 가족의 동의는 어떠한가? 안락사는 다른 평태의 자살 및 살인과 분리될 수 있는가? 단순히 생명유지장치의 플러그를 뽑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과도한 조치 사용의 제한이 안락사의 한 종류라면 과도한 조치와 일반적 조치의 차이점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안락사와 고통의 관계는 어떠한가? 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고통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는가? 고통의 정도는 어떻게 평가 하는가? 무엇보다도 윤리적인 문제가 왜 관련되며 윤리적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지은이는 민감한 안락사의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또한 이 질문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고뇌한다.
그것은 지은이의 죽음에 대한 두가지 경험담 때문이었다.
펙 박사는 자신의 할머니가 위중한 상태에서 각종 의료적 행위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연장하게 되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꼈었다. 연세도 드시고, 약간의 치매 증상까지 있으신 분에게 그런 의료적 행위로 삶을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모든 치료를 이겨내시고 건강을 찾으셨다.
이후 5년동안 할머니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며 투정을 부리거나 불평하는 일도 없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행복해 보였고 재치나 유머감각도 그 어느때보다 좋았다. 그러므로 나는 의사들이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정맥 절개술을 감행하고 당시 내게는 과도한 조치로 보였던 방법들을 사용한것에 대해 감사할 수 밖에 없다.
다음의 한 예는 거의 신체적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 각종 약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로저라는 환자의 경우다. 펙 박사는 하루가 다르게 신체가 죽어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이렇게 고통스럽게 로저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그를 위한일일까 하는 회의가 든다.
과장이 기계를 가지고 나간후 나는 거의 15분동안 토니를 쳐다보며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서 정맥 주사기 튜브의 죔쇠를 조절하여 주사액 유입량이 반으로 줄어들도록 했다. 거의 들이붓다시피하던 주사액은 이제 빠른 속도로 방울져 떨어지는 정도가 되었다. 그런 다음 나는 의사 휴게실로 가서 담배 한대를 피웠다. 10분이 채 안돼서 병실로 돌아왔을때 토니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지은이의 손으로 로저의 생명선을 끊은것이다.
과연 펙 박사는 안락사에 대해 찬성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것일까?
우리들은 모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기 보다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 옳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죽음 맞을 때 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려움은 안락사 운동을 촉진 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 과정이 오로지 공포스럽고 길며 쓸데없이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전에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건 합리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공포증의 대부분은 이런 기본적인 생존적 두려움에 기인한다. 인간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두려움은 의식적 존재인 인간의 고유한 고통이다. 그러나 이 두려움을 어떻게 다룰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다.
이런 점에서 펙 박사는 현대의 의료인들이 환자에 대한 고통에 너무나도 둔감함을 지적하고 있다.
진단이 끝나면 서둘러 통증을 안전하게 줄일 수 있도록 약을 처방해야 한다. 만약 의료진이 환자의 극심한 통증을 쓸데없이 오래 지속되도록 놓아두게 되면 환자를 고문하는 것과 다름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통증에 대해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가장 널리 자행되는 의료 범죄다.
그러나 펙 박사는 여러가지 면에서 안락사를 찬성하지는 않고 있다.
나는 안락사를 비판하는 두가지 이유를 서술했다.
하나는 명백히 신학적이며 보통 모든 자살과 관련된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창조자이자 양육자인 하느님이 우리의 삶에서 우리 자신만큼 상당한 이해당사자가 된다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는 피조물로서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죽일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게 할 윤리적, 도덕적 권리가 있느냐에 관한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자살을 통해 인간은 자신에게 삶을 부여한 자와 관계없이 자신의 죽음의 때를 결정한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부정이자 그 영혼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부정이다.
안락사를 비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신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특별히 내가 정의했던 안락사와 관련된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것들을 배운다. 그러나 늙어가고 죽는 과정에 수반되는 생존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행위는 스스로 그 배움의 길을 막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런 학습의 기회를 설계한 하느님을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인 이유가 주된것이긴 하지만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의지와 선택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실명이나 그밖의 질병, 노화나 죽음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자면 대단한 의지가 필요하다.
하느님은 우리는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선 또는 악을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하느님도 인간의 의지를 반영하여 치유한다.
아내와 나는 둘 다 낙태를 찬성하지만 버스라이트라는 단체에도 약간의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버스라이트의 목적은 낙태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여성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단체에 가입한 이유는 선택권을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의 목적도 바로 그러하다. 안락사를 선택하거나 심지어 이를 돕는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사의 선택을 장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을 한다는 것을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옳은 결정이라고 누가 확신할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이문제에 대해 단숨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많이 생각하면서 각자의 의지와 선택권을 넓혀가야 한다.
안락사의 논의가 뜨거워지면 뜨거워질수록 사회는 건설적이면서도 빠르게 두 근본적인 문제를 더욱 쉽게 공론화 할 것이다. 그 문제 중에 하나는 결점 많고 예측 불가능한 미국 의료의 특성으로서 특히 통증 관리와 자연사를 돕는 일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세속주의다. 만약 이 두가지 병폐를 뽑을 수 있게끔 사회를 자극할 수만 있다면 안락사 논의는 커다란 희망의 불씨가 되는 셈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안락사나 자살을 이해, 찬성한다거나, 반대한다는 그런 입장을 정리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어느 한 쪽을 택한 사람들을 비난 하지는 않게 된것 같다. 물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약간의 분노감(공인인경우 그것에 대한 파장을 생각해)도 일어나기는 하지만 일방적인 나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은 잠깐 멈추게 될것 같다.
그리고 내가 만약 나의 상태에 대해 이런 판단을 해야 하는 때가 온다면 나 또한 힘들고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결정이라면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것 같다.
그래서 평소에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이 책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자살과 안락사에 대한 문제를 지은이의 전문적인 분야를 살려 잘 풀어나갔다고 볼수 있다.
다만 전체적인 내용이 조금 산만하여 정리가 잘 안되고 맥이 끊기며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것은 지은이의 오랜 경험을 통한 수많은 사례들이 읽는이의 이해를 도와주는데 많은 역할을 했고, 그 사례들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지은이의 주장은 마지막 까지 읽지 않으면 무엇을 즉, 안락사에 대한 찬성인지 반대인지 알수가 없도록 모호하다.
물론 이 주제가 단칼에 무 자르듯이 말할수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그래서 지은이 또한 많은 예외와 개인의 선택에 자율성을 두며 말하기도 했다.
또 지은이의 종교성때문에, 그리고 지은이의 주장은 이 종교성에 무게를 많이 두고 있기에
이 책의 뒷부분은 상당히 종교적이다.
그러나 책 표지 어디에도 그런 내용을 가늠할수 없기에
같은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다 보면 뒷부분에서 조금 난감해 할것 같다.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조금은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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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스맘 2013-03-06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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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이 치유다
직면이 치유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싫어하여 피한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고통은 거부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직면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치유 또한 불가능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고통을 끔직히 싫어하기 때문에 늘 쾌락만을 추구하려 한다. 자신의 부족이나 허물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려 한다. 역사 속에서 간신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고통은 직면하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는다. 직면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는다. 고통은 아프지만 좋은 것이다. 그래서 스캇 펙은 그의 책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달아나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고통을 수반하고 삶을 힘겹게 한다. 칼융은 이러한 인간의 반응을 신경증-노이러제라고 불렀다. 신경증은 고통을 피하려는 것이다. 융에 의하면 인간의 진정한 고통은 고통을 피하는 것 자체라고 말한다. 고통을 피하다보면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장악하고 마음의 고통을 만는다. 즉 신경증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 아니라 고통 자체다. 불교의 교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고 삶은 번뇌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큰다. 고통이 없으면 성장하지 않으며 어른이 되지 못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과에 순복하여 삶을 책임지는 것이다.
직면하면 성장한다. 성장은 직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회피는 정신적 성장을 거부함으로 그대로 머무는 것이다. 기억의 자아는 과거에 묶어둠으로 성장을 방해한다. 직면은 이러한 방해물을 뛰어넘어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한다. 직면은 배움이며, 탄생이다.
고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고통을 직면하다는 것은 문제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고민한다. 생각을 깊게하고, 사유를 넓게하고, 의지를 강하게 한다. 직면을 통해 문제를 뛰어 넘는다. 문제를 뛰어 넘으면 더 큰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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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3-06-11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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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책, 몇 권
얼마 전엔 좀 관심이 있었지만 요즘은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책 소개를 보다보니 자꾸만 이런 책들이 눈에 띈다. 이 책들을 모아보지 않으면 계속 눈에 띌 것 같아 올려본다. 죽음에 관한 책들.
처음 '죽음'에 관해 관심이 생겼을 때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관심이 생긴 걸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다. '죽어가는' 자, 를 생각하면 그 '고독'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혹은 내가 만약, 곧 죽음을 맞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죽어가는 자의 고독』(1982)은 대작 『문명화 과정』(1939)으로 사회학계의 거장 반열에 오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생애 말년에 남긴 죽음에 대한 성찰, 고독한 죽음의 사회학이다. 현대인은 전례없이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고 평균수명도 크게 늘었지만, 오히려 외로운 죽음은 점점 늘고 있다. 엘리아스는 이를 ‘문명화’의 부작용으로 진단한다."
읽으면서 밑줄을 상당히 그읏던 것 같다. 책이 얇아 들고다니며 읽기에도 편했기 때문.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고독사에도 관심이 생겼고, 엘리아스가 말하는 노인들의 쓸쓸한 죽음에도 뭔가 짠함과 동시에 남의 일이 아니구나, 뭐 그런 생각도 하고^^;;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오늘 죽음에 관한 책을 모아봐야지, 맘 먹게 한 책이다. 인문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어서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전에도 이런 책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간 까닭은 뭘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 누구나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라는 이유를 배제하면 그건 아무래도 예일대 강연이라는 문구 때문인 것 같다는 나의 소심한 의견(-.-). 물론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판단은 나빠! 미리보기를 보니, 책이 궁금해지긴 한다.
"이 책은 셸리 케이건 교수가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철학 정규강좌 ‘DEATH’를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DEATH’는 하버드대 ‘정의’및 ‘행복’과 함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으로 불리는 강의이며,17년 연속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로 꼽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왔던 심리적 믿음과 종교적 해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다."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과 삶에 대해 말한다면, 그래 읽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죽음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삶에 대한 긍정도 더 많이 생기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분명 될 것이다.
이 책은 스캇 펙의 저서라는 점과 제목 때문에 눈에 들어왔던 책이다.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라니!! 문득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안락사?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소개를 보니 역시, 그랬다.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에는 인간이 죽음을 택하는 거의 모든 방식-살인, 자살, 안락사, 자연사에 이르기까지-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죽음 해부학을 펼쳐 보인다.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매개체는 ‘안락사’이지만 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영혼과 그 영혼이 가진 가치와 아름다움이다. 즉, 안락사라는 문제에 대면한 순간, 인간이란 존재에게 영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스캇 펙이 써온 글은 '삶을 어떻게 대면하고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나름의 해법'을 알려주는 글이었다. 책소개에서 이제 60세가 된 스캇 펙이 그동안 쌓아온 경험의 노하우로 '죽어가는 것으로부터의 배움의 문제를 일깨우고 인생의 역경에 맞서는 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거란다. 그러니까 우린 '잘 죽는 것'도 배워야 한다는 사실.
이외에도 자연스러운 삶, 평온한 죽음을 위한 노인요양원 의사의 따뜻한 조언이 담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삶의 막바지에서 비로소 감동적인 진실과 마주한 사람들, 그리고 그 덕분에 인생과 관계를 치유한 어느 호스피스 의사의 실화를 담은 『일주일이 남았다면』, 모든 인간 관계가 끊긴 상태에서 혼자서 죽어 거두어 줄 사람이 없는 죽음에 대해 말해주는 『무연사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