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0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人生の踏繪 人生の踏絵

알라딘: [전자책]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eBook]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엔도 슈사쿠 (지은이),송태욱 (옮긴이)포이에마2018-09-17 
원제 : 人生の踏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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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 224쪽

책소개

그리스도교 문학의 정점 <침묵>의 작가, 일본의 대문호 엔도 슈사쿠의 강연집. 대표작 <침묵>을 비롯한 <사무라이> <스캔들> 등 자신의 작품에 얽힌 창작 비화와 집필 의도, 프라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와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등 20세기 유럽 문학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엔도 슈사쿠의 목소리로 듣는다.

이 책의 원제 '인생의 후미에(人生の踏繪)'에서 '후미에(踏繪)'는 에도시대 그리스도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동판에 새겨 나무판에 끼워 넣은 것으로, 이를 밟으면 용서받지만, 밟지 않으면 곧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는다. "인간은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며 엔도는 신념을 배반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약점과 슬픔을 위로하고, 자신의 인생관, 종교관, 문학관을 들려준다.


목차

인생에도 후미에가 있으니까 - 《침묵》이 완성되기까지
문학과 종교 사이의 골짜기에서
| 첫 번째 강의 | 교향악을 들려주는 것이 종교
| 두 번째 강의 | 사람이 미소 지을 때
| 세 번째 강의 | 연민이라는 업
| 네 번째 강의 | 육욕이라는 등산로 입구
| 다섯 번째 강의 | 성녀로서가 아니라
| 여섯 번째 강의 | 그 무력한 남자
의지가 강한 자와 나약한 자가 만나는 곳 - 《침묵》에서 《사무라이》로
진정한 ‘나’를 찾아서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첫문장
 
저는 대설가大說家가 아니라 소설가라서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P. 17예수상이 새겨진 동판인 후미에(踏?)를 밟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당시의 기리시탄에게는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의 얼굴,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 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의 얼굴을 밟는 일이었습니다. 예컨대 연인의 얼굴을 밟으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습니까? 안 밟으면 고문하고 죽여버리겠다고 한다면 밟겠습니까? 저라면 아내의 얼굴을 밟겠지만요.(강연장 웃음) 여러분, 지금 웃었습니다만, 이 부분이 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에도시대 기리시탄의 후미에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우리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기는 신조, 동경하는 삶, 그런 것을 흙 묻은 신발로 짓밟듯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전후(戰後)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 역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후미에’를 갖고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접기

P. 18~19우리 소설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더듬듯이 소설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인생에 대해 결론이 나오고 미혹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소설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소설가는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고 손으로 더듬어가며, 인생의 수수께끼에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겁니다. 접기

P. 25우리는 순교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배교한 사람들을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밟았을지 모르니까요.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을 침묵의 재 안에서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침묵의 재를 긁어모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울러 저는 박해 시대에 그렇게 많은 탄식과 피가 흘렀는데도 왜 신은 침묵했을까, 하는 ‘신의 침묵’과도 겹쳐놓았습니다. 접기

P. 28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아름다운 것이나 매력 있는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바보라도 가능하지만 퇴색한 것, 낡아빠진 것, 많이 봐와서 싫증난 것에 마음이 끌린다거나 계속 갖고 있는 데에는 재능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잖아요.(강연장 웃음) 아니, 웃으면 안 됩니다. 인생은 모두 그런 것입니다. 인생은 매력 있는 것, 아름다운 것, 반짝이는 것이 아니기에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버린다는 것에는 자살이나 자포자기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인생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접기

P. 29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면 싱글벙글 히죽거리고 있지만 집에서는 가끔 ‘가스나 틀어놓고 죽어버릴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저는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고, 너무 오래 살아도 재미없을 겁니다. 하지만 자살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단 무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비겁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비겁하달까, 인생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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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지은이)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가톨릭 신자인 이모의 집에서 성장하였으며, 열한 살 때 세례를 받았다. 1949년 게이오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 가톨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결핵으로 인해 2년 반 만에 귀국한 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5년에 발표한 《하얀 사람》(白ぃ人)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으로 신쵸샤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고 일본의 대표적 문학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엔도는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후, 유럽의 [신의 세계]를 경험한 [나]가 결국 동양의 [신들의 세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자전적 소설 《아덴까지》를 발표했는데, 그 6개월 뒤에 《백색인白い人》을 발표하였고, 또 6개월 뒤에 《황색인黃色い人》을 발표했다. 그리고 백색인으로 1955년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다. 《아덴까지》의 작품 의식을 기반으로 한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 역시 엔도가 유럽과 동양의 종교문화의 차이로부터 겪은 방황, 갈등의 요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1966년에 《침묵》(沈默)을 발표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96년 타계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종교소설과 통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문학의 거장이자 일본의 국민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침묵》, 《예수의 생애》,《내가 버린 여자》, 《깊은 강》, 《사해 부근에서》, 《바다와 독약》, 《그리스도의 탄생》 등 다수가 있으며 1996년 9월 29일 서거. 東京 府中市 가톨릭 묘지에 잠들어 있다. 접기

수상 : 1980년 노마문예상, 1979년 요미우리 문학상, 1966년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1955년 아쿠타가와상
최근작 : <나의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사무라이> … 총 156종 (모두보기)

송태욱 (옮긴이)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을 지 냈고,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 《금수》,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비롯해 《나는 고양이 로소이다》 《도련님》 《마음》 등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 》(공저)이 있다.

최근작 : <그림 그리는 남자>,<르네상스인 김승옥>,<번역과 번역가들> … 총 208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엔도 슈사쿠가 쓰고 읽고 들려주는 구원의 소설, 소설의 구원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다” 엔도 슈사쿠, 《침묵》
“모리아크는 테레즈를 구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 《테레즈 데스케루》
“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성인을 제외하면 죄인이다” 그레이엄 그린, 《사건의 핵심》
“인간 누구에게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 있다” 쥘리앵 그린, 《모이라》
“마지막 대사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 해요’는 어떤 의미인가”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예수는 무력한 남자였고,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의지가 강한 사람과 나약한 사람은 같은 곳에서 만난다” 엔도 슈사쿠, 《사무라이》
“사회에서 부정당하는 자신이야말로 신이 안아주려는 대상이다” 엔도 슈사쿠, 《스캔들》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쓰고 읽은
여덟 편의 소설 속 약하고 슬프고 더러운 인간, 그 구원의 가능

《침묵》 《깊은 강》 《바다와 독약》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강연집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엔도 슈사쿠는 ‘신과 구원의 문제’, ‘그리스도교의 아시아적 수용’이라는 묵직한 주제의 종교소설을 주로 발표한 작가로 알려졌었고, 간간이 밝고 유머러스한 산문과 대중소설도 출간되었으나
강연집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 강연집에서 엔도는 자신의 대표작 《침묵》을 비롯한 《사무라이》와 《스캔들》에 얽힌 창작 비화와 집필 의도를 밝히고,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와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등 20세기 유럽 문학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와 인간의 모습을 위트 있는 말솜씨로 풀어나간다. 1966년부터 1986년에 걸쳐 기노쿠니야 홀과 ‘스튜디오 200’에서 진행했던 아홉 차례의 강연을 엮었다. 특히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과 소통하려는 엔도 슈사쿠의 모습과 뜨거웠던 반응도 확인할 수 있어 마치 현장에 앉아 엔도의 강연을 듣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밟아야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밟겠습니까?“

_자신의 꿈과 신조, 동경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위로와 지침
이 책의 원제 ‘인생의 후미에(人生の踏繪)’는 《침묵》의 독자가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따온 표현이다. ‘후미에(踏?)’는 에도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동판에 새겨 나무판에 끼워 넣은 것으로, 이를 밟으면 용서받지만, 밟지 않으면 곧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는다.
독자는 편지에서, 후미에 이야기는 자신과 관계없는 먼 시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읽다 보니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나름대로 ‘시대의 후미에’, ‘생활의 후미에’, ‘인생의 후미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각자의 후미에가 있기에 소설을 자신의 인생이나 생활에 투영해서 읽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인간의 약점과 그로 인한 고뇌, 슬픔을 알아주는 엔도의 말은 자신의 꿈과 신조, 동경하는 삶을 배신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된다.

“에도시대 기리시탄의 후미에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우리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기는 신조, 동경하는 삶, 그런 것을 흙 묻은 신발로 짓밟듯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전후(戰後)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 역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후미에’를 갖고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17쪽)


“우리는 순교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배교한 사람들을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밟았을지 모르니까요.” (25쪽)

“저는 소설가라서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_소설가의 일과 고민: 진정한 인간을 그릴 것, 거짓 심리를 그리지 않을 것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저는 대설가(大說家)가 아니라 소설가라서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소설가 나부랭이’라 부르는 엔도 슈사쿠가 하는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다. 아니, 작기 때문에 커다란 의미와 울림이 있다. 소설가는 대설가가 아니기에 《침묵》 역시 타인이나 사회를 판단하는 것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라고 한다.

“역사가 침묵하고 교회가 침묵하고 일본도 침묵하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생명을 주고, 그들의 탄식에 목소리를 주고,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조금이라도 말하게 하고, 다시 한 번 그들을 걷게 하며 그들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정치가나 역사가의 일이 아니라 역시 소설가의 일입니다.“ (25쪽)

소설가 역시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의 수수께끼에 다가가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며 그는 소설가를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이라 부른다. 그렇게 헤매는 목적은 ‘인간의 진실’을 그리기 위함이며, 소설가가 어떤 주의나 사상의 올바름을 증명하기 위해 작품을 쓴다면 소설가의 의무를 등지는 것이라고 한다. “작중인물은 소설가가 조종하는 인형이 아니다”라는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말을 소개하며 엔도는, 그 말은 옳지만 현장에서 소설을 쓰는 소설가로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털어놓는다.

“아무래도 제가 “우향우”라고 말하면 역시 작중인물은 오른쪽으로 향합니다. 제가 “좌향좌”라고 했는데도 작중인물이 “아니, 난 싫어. 여기서 왼쪽으로 도는 것은 인간의 심리에서 보면 거짓이야”라고 선언하며 멋대로 다른 방향으로 자꾸 가버리는 느낌은, 글쎄요, 서너 번밖에 경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49쪽)

“그 함정의 일부분만이라도 소설에 쓸 수 있다면
그 소설은 그리스도교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_그리스도교 문학이란 무엇인가

엔도 슈사쿠는 소설가로서 진정한 인간을 그리기 위해서는 인간 내면의 어둡고 지저분한 부분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소설가가 그리스도교 신자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금기시하는 죄와 악도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신을 우선시하여 그런 부분을 피해버리면 ‘그리스도교는 좋은 것’이라고 선전하기 위한 소설밖에 쓸 수 없다. 하지만 소설가의 의무로 그런 부분을 깊이 파고들면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자신이 파괴될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다보면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간접적으로 많이 맛보게 되며, 때로는 스스로 확실히 죄를 범했다고 느끼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작가들의 고민과 갈등이다.

“만약 그리스도교 작가가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인간의 아름답고 깨끗한 부분만 쓰는 게 아닙니다. 보통의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더러운 부분, 추한 부분, 눈을 돌리고 싶은 부분을 씁니다. 보통의 소설가와 다른 것은 그 작품 안에서 악이나 죄에 빠진 인간을 고독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돌파하고 지양해서 더욱 절대자로 향하는 지향을, 얽히고설킨 인간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그리스도교 작가의 한 가지 일입니다.” (99쪽)

엔도의 말처럼 그리스도교 소설가라는 게 있다면, 자신의 주인공을 고독과 어둠 속에 내버려두지 않고 구원의 길, 빛의 세계로 이끌려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는 구원의 가능성을 어렴풋이, 신중하게, 상징적으로 한두 줄이라도 써넣는다. 엔도는 청중들과 함께 그런 부분을 찾아 읽어나간다. 행동으로 드러나는 심리보다 더 깊숙한 곳, 무의식을 넘어서는 내면이 바로 그런 부분에 나타나 있기에, 그렇게 깊숙한 내면까지 그려내 교향악적인 울림을 주는 작품이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교 문학이라고 이야기한다. 같은 맥락에서 죄나 악, 세상이 부정하는 자신의 모습 역시 신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려는 함정이라고 말한다.

“어떤 죄 안에도 신을 지향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고, 어쩌면 어떤 죄 안에도 신이 그 인간을 바로 옆으로 끌어당기려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좀처럼 알 수 없지만, 작가가 그 함정의 일부분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그 소설은 그리스도교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99쪽)

번역에 들어가기 전 이 책을 검토한 일본 인문, 소설 분야의 대표 번역가 송태욱은 “지금껏 많은 책을 검토해왔지만, 이 책만큼 망설이지 않고 추천하기로 한 책은 별로 없었다”며 “이 책의 내용 자체로 번역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지만 이 강의를 즐기는 데 신앙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는 문학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일반 문학 독자에게는 소설을 맛있게 읽는 법과 창작의 비화를 듣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또한 대략의 줄거리를 말해주며 이야기를 전개해가고 있어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들을 읽지 않았어도 강의를 즐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진지한 자세로 소설을 읽어나가려는 독자들에게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접기



평점 분포

9.3



이 책을 통해 <사건의 핵심> 그리고 쥘리앵 그린의 소설도 알게 됐어요
그런데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라는 책은 없더군요
옛날중고책으로 사서 읽고 있습니다
엔도 슈사쿠작가가 좋은 책 추천을 해준 느낌이에요.
goth1254 2018-09-20 공감 (4) 댓글 (0)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가론.
깐따삐야 2018-11-1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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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당신의 후미에는 무엇인가요?

저는 대설가(大說家)가 아니라소설가라서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네? 이게 무슨 말이죠? 일본의 대문호가 이런 겸손한 이야기를 하다니, 절로 숙연해집니다.

저는 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사실 책에 흥미를 가진 계기도 영화죠. 영화의 감동을 이어가고 싶거나 영상에서 풀어내지 못한 캐릭터를 알고 싶어 원작을 읽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책도 영화의 연장선으로 읽었지만 종교는 없어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이끌리듯 읽었던 이유는 '마틴 스콜세지'가 만든 영화 <사일런스>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 에도시대 기리시탄을 다룹니다. 포르투갈 선교사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러 왔다가 무참히 죽습니다. 후미에(예수상이 새겨진 동판)를 밟고 배교한 선교사를 찾아온 젊은 선교사가 신에 대한 물음과 절망을 목도하는데요. 그 고난을 함께 지켜보는 흥미로운 영화이자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원작으로 합니다.



© 영화 <사일런스> , 리암 니슨

《침묵》은 믿음과 신념에 대한 필독서인데요. 무교인 집에도 있을 정도로 꼭 종교가 있어야지만 보는 책은 아닙니다. 그렇게 영화를 통해 소설을 알게 되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섭렵하는 도미노식 탐미를 하다 보니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까지 와버렸습니다.

서두가 좀 길었지만 결론은 영화 <사일런스>를 재미있게 봤거나, 소설 《침묵》을 읽었거나, 엔도 슈사쿠의 글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거란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저는 비론 종교는 없지만 위의 3가지를 충족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30년도 더 지난 저 강의장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소설가는 인간의 모든 것을 직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중략) 그렇게 쓰면 평범한 작가라도 인간의 어둡고 지저분한 부분을 많이 맛보게 됩니다.

엔도는 종교인이지만 호교하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종교를 통해 보통 인간을 그리고 싶기 위한 것이지, 그리스도교가 좋은 것이라고 선도하는 글은 쓰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책에는 함께 읽고 이야기할 문학이 등장하는데요. '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엔도 슈사쿠'의 《사무라이》, 《침묵》, 《스캔들》에 대해 다룹니다. 다 읽어보면 좋지만 부득이하게 알지 못할 경우, 친절하게 줄거리를 설명해 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 영화 <테레즈 데케루> , 오드리 토트

그 사례가 원작은 읽어보지 못했고 4년 전 봤던 '오드리 토투'의 <테레즈 데케루>입니다. 영화 속 그녀는 여자도 모를 여자의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엔도가 말한 원작 속 테레즈는 훨씬 복잡한 내면과 영화적 각색을 거치지 않은 무의미한 여성이더군요. 이래서 원작을 읽어봐야하나봐요. 독서욕구가 강렬하게 들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책은 엔도의 집필 의도, 소설가의 역할, 작품에 관한 뒷이야기를 들여주며 다른 소설을 주제로 인생을 말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당신 마음속 '후미에'를 들춰보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후미에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예수상이 새겨진 동판인 후미에를 밟는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본인의 신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 가족애(愛), 자신이 이상이라 여기는 무엇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라면 살기 이해 후미에를 밟을 수 있겠습니까? 작가는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공포와 두려움을 끄집어 내 그것을 배반하더라도 괜찮다고 다독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남루하고 연약한 것이지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끊임없이 신념과 타협해야 하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때마다 소신을 굽혔다고 스트레스받기보단 누구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인간임을 되새기길 바랍니다.실패를 원동력 삼아 조금씩 고쳐가는 일, 평생에 걸쳐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인간의 업(業)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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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09 2018-10-07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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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침묵‘의 작가가 바라본 문학과 종교


<침묵>을 쓴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강연집이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작가가 이 책의 일부를 낭독한 걸 듣고 호기심이 동해 구입해 읽었다. 저자의 대표작 <침묵>을 비롯해 <사무라이>, <스캔들> 등의 창작 비화와 집필 의도, 같이 읽으면 좋을 책들을 설명하는 책인 만큼 저자의 작품(최소한 <침묵>만이라도)을 미리 읽고 나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의 원제는 '인생의 후미에[人生の踏繪]'이다. 후미에[踏繪]란 에도시대 그리스도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동판에 새겨 나무판에 끼워 만든 것으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이를 밟으면 용서받지만, 밟지 않으면 곧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세례를 받은 저자는 성인이 된 후 그리스도교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져서 고민했는데, 그러던 중에 우연히 후미에를 만났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




저자는 배교자의 발자국이 큼지막하게 남아 있는 후미에를 보면서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렸다. 동판을 밟으면 배교자로 낙인찍히고, 밟지 않으면 끔찍한 고문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가혹한 상황. 나라면 저 동판을 밟고 목숨을 구할까, 아니면 동판을 밟지 않고 믿음을 지킬까. 성경 말씀대로 신이 너그럽고 자비롭다면 내가 저 동판을 밟고 목숨을 구한다 해도 개의치 않고 용서해줄 것이다. 하지만 신이 진정으로 너그럽다면 애초에 나로 하여금 저 동판을 밟을지 말지 고민하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지 않았을까. 저자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올랐고, 결국 저자는 이 모든 의문의 최종 해답이라고 할 수 있는 <침묵>을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




이 책은 저자가 <침묵>, <사무라이>, <스캔들>을 집필하게 된 동기와 창작 비화를 설명하고, 저자가 읽은 그리스도교 문학 작품들 -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등 - 을 깊이 있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제는 쉽지 않지만 강연록에 기반한 책인 만큼 문장은 어렵지 않고 유머 또한 녹아 있다. 그리스도교 문학 입문서로도 볼 수 있지만, 그리스도교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과 종교, 선과 악, 죄와 벌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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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2018-12-27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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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문호가 들려주는 문학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 

엔도 슈사쿠의 대표적인 작품 <침묵>(2003,홍성사), <깊은 강>(2007,민음사),<바다와 독약>(2014,창비)을 읽어 본 적이 없음에도 일본의 대문호인 엔도 슈사쿠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다. 일면식이 없는 작가인 동시에 그가 천착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문학은 그야말로 내가 문학을 읽는 데 있어 가장 취약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정 종교를 믿지 않을 뿐더러 종교와 관련된 책이라면 질색을 하는터라 책을 읽지 않는데 그의 문학 강의는 종교는 있지만 웃음과 해학이 있어 그가 들려주는 문학강의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에도시대 기리시칸의 후미에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우리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기는 신조, 동경하는 삶, 그런 것을 흙 묻은 신발로 짓밟듯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전후前後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 역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후미에'를 갖고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 p.17

그는 에도 시대 기리시칸의 후미에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동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이 밟느냐, 밟지 않느냐를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밟고 살아 갈 수 없는 시간들을 이야기 한다.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교에 관한 구원에 대한 목소리는 깊이 전달하지도, 전달받지 않았으나 그가 읽고 들려주는 문학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간다. 그의 작품들과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각기 다른 작가의 문체이지만 서로 닮아있다. 남녀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신이라는 존재가 그들에게는 벽이 되고, 그들이 벌인 행동의 심판이 되어 그들의 죄를 더 깊이 논하기도 한다.

강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그의 글은 작품을 읽지 않는 이들 또한 공감할 수 있도록 작품을 짤막하게 소개했으나 아쉽게도 프랑수아 모리아크와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은 번역되지 않았거나 번역되어 있어도 선택의 폭이 작다. 키스를 할 때 눈을 감는 이들과 달리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의 주인공 테레즈는 눈을 뜨고 키스를 하는 상대방의 얼굴을 지켜보는 여인이다. 그의 눈동자에 깃든 감정을 느끼는 여자인 동시에 그의 남편인 베르나르를 심중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몸이 상한 그가 극약 처방을 받아 비소를 약하게 한 두방울 넣어 먹던 그에게 알면서도 그가 약을 먹었던가 하는 물음에는 침묵하여 그가 다시 약을 먹게 만든다. 다시 약을 먹은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구토를 하게 되고, 쓰러지지만 테레즈는 약제사를 속여 약을 구입해 다시 남편에게 극약을 먹인다.

남편을 죽일 마음은 없었으나 일상이 나른하고, 한번만 더, 한번만 더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는 그녀의 마음은 자신 조차도 왜 남편을 죽일 생각까지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다행히 베르나르는 목숨을 건졌고, 후에 그는 테레즈에게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물어본다. 그녀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 달리 "아마 당신 눈에서 불안과 호기심의 빛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그녀의 남편은 분노하며 테레즈 곁은 떠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리아크는 과연 테레즈의 행동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걸까.

엔도 슈사쿠는 테레즈의 행동에서 그녀를 구원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해석과 모리아크의 작품 이야기가 너무 재밌게 읽혀 그가 말하고 있는 신과 구원의 문제는 그의 작품을 비롯해 그가 소개하고 있는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관통한다. 선과 악, 신과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그는 청중들과 독자들에게 잘 버무려내는 동시에 우리가 갖고 있는 꿈과 사랑, 동경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어 빚어 놓는다. 처음 접하는 소설들이지만 그의 글을 통해 전해듣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종교적인 작품인 동시에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이고, 두 사람의 관계의 간극을 때로는 신과 구원의 문제로 풀어가는 작가들의 동성애와 관련이 있는 것도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접하지 않았던 작품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말하고 있는 주제와 끝내 구원할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재밌게 읽혔다. 아직도 종교에 관해서라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나 그 부분을 관통하지 않고, 이야기를 끌어갈 수 없음에도 문학적인 해석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좋아 제법 얇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공들여 읽었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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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2018-10-07 공감(5) 댓글(0)



엔도 슈사쿠의 문학강의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 포아에마 / 엔도 슈사쿠

그가 쓰고 그가 읽은 책들을 통해 엔도의 사고의 틀에 한 발자욱 다가갈 수 있는 강의집이다.
<침묵>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에 관한 안내를 시작으로 6개의 강의와 그의 작품 <사무라이>와 마지막 소설가로서의 변신을 꽤한 <스캔들>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인생에도 후미에가 있으니까 - <침묵>이 완성되기까지

문학과 종교 사이의 골짜기에서

첫 번째 강의 - 교향악을 들려주는 것이 종교

두 번째 강의 - 사람이 미소 지을 때

세 번째 강의 - 연민이라는 업

네 번째 강의 - 육욕이라는 등산로 입구

다섯 번째 강의 - 성녀로서가 아니라

여섯 번째 강의 - 그 무력한 남자.

의지가 강한 자와 나약한 자가 만나는 곳 - <침묵>에서 <사무라이>로

진정한 '나'를 찾아서

엔도는 강의를 통해 뼈속까지 소설가일 수 밖에 없는 그를 드러내보인다. 대설가가 아니라 소설가이기에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는 농담으로 강연을 시작하는 그이지만 그의 강연은 소설이 아닌 대설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 깨닫게 된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강한 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다. 자신과 같이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인생의 질곡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그 질곡속에 임하는 신의 임재를 누구보다도 갈망하고 사모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이 세상에서는 소외되고 배제되는 소리죽인자들의 목소리가 되고자 했다.


"우리 소설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고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더듬듯이 소설을 스고 있을 뿐입니다. ... 소설가는 헤매고 헤매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고 손으로 더듬어가며 인생의 수수께끼에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겁니다.p18-19"

"역사가 침묵하고 교회가 침묵하고 일본도 침묵하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생명을 주고 그들의 탄식에 목소리를 주고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조금이라도 말하게 하고 다시 한 번 그들을 걷게 하며 그들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정치가나 역사가의 일이 아니라 역시 소설가의 일입니다."p25

그의 소설의 그리스도교 작품으로 한정한다면 그의 작품을 반쪽밖에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의 작품속에는 연약한 인간이 겪는 내밀한 갈등과 고통이 너무나 세밀하고 자애로운 눈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인간의 모든 것을 직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질퍽한 부분, 죄와 악의 부분도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소설을 스고 있으면 육욕을 갖고 살인을 범하고 질투심을 가진 인간의 어둡고 지저분한 부분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p51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 그레이엄 그린의<사건의 핵심>,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쥘리앵 그린의<모이라> 베르나노스의<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그의 작품 <사무라이><스캔들>까지 그의 눈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우리들에게 폭넓은 작품이해로 이끌어준다.그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그리스도교에 대한 표현을 하지만 그는 그만의 잘 차려진 옷을 입고 있었다. 분명한 신앙의 색채. 그리고 그 색채는 그의 사상과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나 우리들에게 일본적 예수의 눈, 일본적 예수의 마음을 보게한다.


"그리스도교의 사고에서는 매력이 없는 것 퇴색한 것 괴로운 것도 버리지 않는 게 사랑입니다. 사실 인생이란 종기 같은 것입니다. 종기 같은 인생이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고 소중하게 맛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p111

"우리가 가장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배덕조차도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것을 이용합니다. 이용할 뿐만 아니라 그 배덕 안에서 신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을 저도 소설을 쓰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오는 가운데 알게 되었습니다."p137

일본으로 가 엔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할만큼 젊지도 여력도 없지만 알면 알수록 그의 책을 대하면 대할수록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일본에 있을 때 엔도를 알았다면 내 인생도 어쩜 바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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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uka 2018-09-1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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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문학 세계 읽기



그리스도교 가톨릭 신자로 저자의 소설 『침묵』을 읽으며 느낀 바가 있었다. 지난해 다시 영화로 개봉한 <사일런스>를 보며 영상으로 그려지는 원작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이런 소설을 쓴 저자는 어떤 사람이고 그의 문학 세계관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를 읽게 됐다.
첫 부분부터 『침묵』에 대한 강연 내용이 나오기에 참 만족스러웠다. 잊고 지냈던 용어 '후미에'에 대해서도,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됐는지와 내가 생각했던 의미와 맞는지도 듣고 싶었다. 종교적인 부분을 떠나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상징적 요소 '후미에'의 의미에 대해서도 공감하게 된다.
이후 '문학과 종교 사이의 골짜기에서'라는 여섯 번의 강의 내용이 나온다. 익숙한 이름의 앙드레 지드의 작품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내겐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된 텍스트로 소개가 된다. 각각의 텍스트 안에서 그리스도교적인 내용들을 드는 저자의 논리에 어떤 부분은 수긍을 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신앙을 가진 작가에게 종교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의지가 강한 자와 나약한 자가 만나는 곳'에서는 과거 저자의 작품 『침묵』에서 책 속 강연에 새로 소개하는 신작 『사무라이』에 대해 전한다. 내용 중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 도망치는 나약한 자들이었으나 결국에는 예수님 말씀을 전파하다 각각의 장소에서 박해를 받고 죽어가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앙을 처음 접하고 많이 흔들리는 시기가 있지만 스며들듯 빠지며 단단해지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사무라이』는 읽어보지 않았으나 처음 타의에 의해 받아들인 신앙을 버릴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을 짐작하며 『침묵』과의 연계선상에서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을 결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강연 중 저자의 유머러스함을 느낄 수 있었고, 『좁은 문』이 그리스도교와 플라토닉 러브를 풍자하고 비판했다는 부분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또 너무 가볍지 않은 저자의 내공이 담긴 강연을 모아둔 책이었다. 엔도 슈사쿠의 문학 세계관을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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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坤 2018-10-0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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