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2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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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icarus444/221751480612 1/7
글을 읽다가...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소금쟁이
2019. 12. 27. 19:50
이웃추가
유숙자옮김, 민음사 2007 (세계문학전집 260)


엔도 슈사쿠는 『침묵』 이란 소설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일본의 소설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내 마음에 이토록 오래 남는 까닭은 그의 소설은 겉으로 보면 카토릭신자의 입장에서 쓴
종교소설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의 작품이 단순한 종교적 테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내밀한 인간성의 핵심을 꿰뚫는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깊은 강』은 작가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나이 일흔에 발표한 이 작품은 작가가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이 책은 1993년 간행되었는데 이때는 신장병
으로 복막투석수술을 받으며 투병생활을 하던 시기이다. 그 후 입원과 퇴원을 계속하다 3년 후인 1996년 타계하였는데 그의 뜻에 따라 『침묵』과 『깊은 강』 두 권이 그의 관 속에 넣
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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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거기 있기에...
3/22/23, 11:35 PM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icarus444/221751480612 2/7
『깊은 강』은 여러 인물들의 경우를 들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죽은 아내의 환생을 믿고 인도의 여기저기를 찾아 헤메는 이소베, 삶의 공허를 견디지 못해 신부가 된 대학동창 오쓰
를 찾아 인도로 온 미쓰코, 죽은 새를 기리며 새에 관심이 있는 누마다, 젊은 시절 미얀마 정글에서의 전투에서 사람 고기를 먹은 전우 쓰카다의 괴로운 영혼을 달개주기 원하는 기
구치 등 각기의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찾는 그 무엇을 찾아 인도 여행을 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이 소설이 관통하고 있는 테마는 ‘환생’의 의미이다.
『깊은 강』은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을 말한다. 힌두교에 대한 종교심이 없는 우리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갠지스 강은 너무 더럽고 오염되어 있다. 시체가 떠내려가는 그 더러운
물에서 목욕을 하고 입을 행군다. 위생적으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헌데 인도의 힌두교인들의 입장에서 갠지스 강은 “거룩한 강”이다. ‘깨끗한’ 강이 아니라는 거다. 갠
지스 강은 종교의 대상이자 실천의 장인 것이다. 그리하여 죽기 위해서, 다음 생에 더 좋은 삶으로 태어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이 강에 와서 죽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의 오래된 병폐인 카스트제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 외 아웃 케스트 불가촉천민(하리잔)이 있다.) 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됬다. 또한 힌두교의 여신, 선과 악, 잔혹함과 사랑이 혼재된 칼리여신과 차문다여신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내가 신을 버리려고 해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결혼을 앞둔 미쓰코, 마음 깊숙이 뭔가 파괴적인 것이 숨죽이고 있다. 그것이 분명한 형태를 취하기 전에 칠판지우개로 글씨들을 모조리 지우듯 소멸시키고 싶었다. 이런 파괴적인
무엇을 자극할 만한 것은 보통 남자(야노)와 결혼하여 평범한 주부로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소설 속에서 미쓰코는 불문학을 전공한 이로 되있는데 프랑수아 모리악의 <테레즈 데케루>라는 작품을 많이 언급한다. 이는 불문학을 전공한 엔도가 심취한 평생에 걸쳐 아낀 애
독서이다. 지적이고 매력적인 테레즈. 그러나 그녀는 뚜렷한 동기도 없이 너무 평범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해하는 남편 베르나르에게 초조감을 느끼고, 마침내 남편에게 독약
을 먹여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왜 이 내용이 미쓰코에게 투사된 것일까. 미쓰코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복잡한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의 본질을 투사해 보고 싶었던 것
은 아닐까.
체념과 피로가 뒤섞인 생활, 그 존재만으로도 그녀를 피곤하게 하는 선량한 남편.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이 남자는 무엇 하나 비난받을 구석이 없다. 없는 까닭에 테레즈는 그에게도
자신에게도 초조함을 느낀다. 초조함은 그녀의 의식 아래 쌓여, 이윽도 랑드의 삿갓소나무 숲처럼 언젠가 불타오를 순간만을 가만히 기다린다. p.87
미쓰코가 느끼는 것은 <테레즈 데케이루>의 아내가 선량한 남편에게 품은 말할 수 없는 피로와 어렴풋한 증오심이다. 이 감정은 남편 야노 곁에서 자신이 느끼고 살아야할 피로와
증오심과 동일하다.
반면에 동창생 오쓰는 차원이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그가 믿는 신은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해 놓았다. 하지만 그는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다. 선 속에도 악이 깃들고,
악 속에도 선한 것이 잠재되어 있다. 구분하는 것과 분별하지 않는 것. 무엇이 옳은 걸까.
신은 존재라기 보다는 손길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
강가강과 자무나강이 합쳐 지는 곳, 갠지스 강.
깨끗한 것과 성스러운 것은, 이 나라에선 다르지요. 인도인에게 강은 성스럽습니다. 그래서 목욕하는 겁니다. (p.161)
미쓰코에게 보내 온 오쓰의 편지는 동양인적인 범신론적인 사상을 보여주며 엔도의 철학이기도 한 것 같다. (p.177~178)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동양인인 저는 그들처럼 무엇이
건 확실히 구별하거나 분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신은 인간의 선한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죄조차 구원을 위해 활용하십니다. 서구의 기독교는 악과 선은 불가분이며 절대 양
립할 수 없다고 하며 이런 이원론적 마니교적 생각은 이단이라고 합니다. 저는 신부가 되는 것은 연기당했지만 신앙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따스함, 사랑 그 자체. 이 세상의 중심은 사랑이며 신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것만을 인간에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신학에는 친숙해 질 수 없었지만 제가 외톨이로 있
을 때 곁에서 제 외로움을 알고 미소 짓고 계시는 신. 자아, 내가 곁에 있도다.
내가 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신의 은혜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렇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타종교를 갖는 것은 신의 은혜가 없어서 일까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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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계십니다. 유럽의 교회뿐만 아니라 유대교에게도, 불교도에게도 힌두교에게도 신은 계신다고 믿는 믿음, 이를 기독교교리는 범신론이라 지적하지요.
샤르트르 대성당에도 그 지역의 지모신(地母神)을 성모 마리아로 승화된 것을 볼 수 있지요. 16,7세기에 귀화한 일본인들에게는 불교적인 것과 범신론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신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크사르 바가바티 절 지하에 있던 흰두교의 여신들 (p.208~210)
인도의 여신은 온화한 모습뿐만 아니라 무서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그녀가 탄생과 동시에 죽음도 포함하는 생명 전체의 움직임을 상징하기 때문이겠지요. 인
도의 여신들은 격력하게 죽음이나 피에 취하는 자연의 움직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칼리여신>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광폭한 여신. 생피를 즐기며 붉은 혀와 어금니를 드러내고 불길같은 모발을 하고 있다. 두개골이나 사람의 머리를 목걸이로 한다.
칼리여신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gnbone/70137271773에서 인용
<여신 차문다>
차문다는 묘지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발치엔 인간의 시체가 있지요 그녀의 오른발은 문둥병으로 짓물러져 있고 배도 허기로 움풀 꺼져 있고 게다가 전갈이 물어 뜯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런 병고와 아픔을 견디면서도 쭈그러든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인도인의 괴로움을 전부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도인이 겪어야만 했
던 병고와 죽음과 굶주림이 이 상에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헐떡이면서, 쭈그러진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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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beopbo.com/news/photo/201802/102277_31244_583.jpg 에서 인용
불교가 시작된 인도가 아니라 청정과 불결, 신성과 외설, 자비와 잔인함이 혼재되어 공존하는 힌두의 세계. 여신 칼리에게는 자비와 더불어 사악함이 있었지만 위선은 없었다. 여신
차문다에게는 고뇌와 질병과 사랑이 나무 뿌리처럼 뒤엉켜 있었지만, 위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쓰코와 오쓰의 대화 (여기서 양파는 신을 지칭한다.) p.278~280
힌두교도는 나이가 들면 집을 자식한테 물려주고 방랑 수행하는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 사람들을 사두라고 합니다. 양파가 이 마을에 들르신다면, 그이야말로 길가에 쓰러진 자를
등에 업고 화장터로 가셨을 겁니다. 마치 살아 있을 때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걸었듯이. 결국은 양파가 유럽의 기독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안에도, 불교 안에도 살아 계신다고 생각하
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갠지스 강을 볼 때마다 저는 양파를 생각합니다. 갠지스 강은 썩은 손가락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자도, 암살당
한 간디 수상도 똑같이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를 삼키고 흘러갑니다. 양파라는 사랑의 강은 추한 사람도 지저분한 사람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 들이고 흘러갑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 p.287
나는 힌두교도로서 본능적으로 모든 종교가 많건 적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는 똑같은 신에서 비롯됬다. 그러나 어느 종교이건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인간애 의해 우리
에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에 도달하는 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
갠지스 강은 힌두교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깊은 강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강에 들어가면 그때까지의 죄가 모두 씻기어, 다음 세상에 좋은 형편으로 태어
날 수 있다고 힌두교도 들은 믿고 있습니다. 갠지스 강 때문이겠죠. 이 강은 인간의 그 어떤 것도 보듬어...... 우리에게 그럴 마음이 내키도록 이끌어 주는걸요. p.294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불이(善惡不二).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일은 없다. 분별해선 안된다
인디라 간디의 장례식을 보며 세계 각처의 전쟁과 만연한 증오를 본다. 그런 세계 속에서 오쓰가 믿는 양파의 사랑 따위는 무력하고 비참했다. 양파가 지금 살아 있은들, 이 증오의
세계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미쓰코는 생각한다.
갠지스 강가에서 개와 독수리에게 타다 남은 시체 조각을 뜯어 먹히는 시신을 보면서 전갈과 코브라에게 물어뜯기는 걸 견디는 차문다여신의 모습이 중첩된다.
믿을 수 있는 건,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하는 광경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
픔. 그 안에 저도 섞여있습니다. 양파로 한정되지 않은 뭔가 거대하고 영원한 것인지도 몰랐다.
의미 없어. 고작 그 정도로는 인도에 가난한 자들고 걸인은 안 없어져요. 우스꽝스럽다는 말이 오쓰의 비참한 반생을 떠올리게 했다. 오쓰나 마더 테레사의 수녀들이 바라나시에서
죽어6가는 노인과0노파들을 무료 숙박소나 강의 화장터로 옮긴다 한들, 그게 얼머만 한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들과 오쓰는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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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23, 11:35 PM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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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시는 건가요?
이 질문에 다음의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25:40)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이것이 무슨 해결책이란 말인가 라고 하찮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 세상의 불평등과 증오와 분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작은 일 뿐이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친절할 것.
동양과 서양, 강자와 약자, 선과 악,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만년의 엔도에게는 이미 무의미한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한데 혼연히 이루어진 인류의 거대한 흐름
을 부드럽게 응시하는 초월적인 존재, 모성적인 신의 세계에 작가는 마침내 당도하게 되었다. <작품해설 p.335>
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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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icarus444/221751480612 1/7 글을 읽다가...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소금쟁이 2019. 12. 27. 19:50 이웃추가 유숙자옮김, 민음사 2007 (세계문학전집 260) 엔도 슈사쿠는 『침묵』 이란 소설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일본의 소설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내 마음에 이토록 오래 남는 까닭은 그의 소설은 겉으로 보면 카토릭신자의 입장에서 쓴 종교소설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의 작품이 단순한 종교적 테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내밀한 인간성의 핵심을 꿰뚫는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깊은 강』은 작가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나이 일흔에 발표한 이 작품은 작가가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이 책은 1993년 간행되었는데 이때는 신장병 으로 복막투석수술을 받으며 투병생활을 하던 시기이다. 그 후 입원과 퇴원을 계속하다 3년 후인 1996년 타계하였는데 그의 뜻에 따라 『침묵』과 『깊은 강』 두 권이 그의 관 속에 넣 어졌다. 6 0 그대가 거기 있기에... 3/22/23, 11:35 PM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icarus444/221751480612 2/7 『깊은 강』은 여러 인물들의 경우를 들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죽은 아내의 환생을 믿고 인도의 여기저기를 찾아 헤메는 이소베, 삶의 공허를 견디지 못해 신부가 된 대학동창 오쓰 를 찾아 인도로 온 미쓰코, 죽은 새를 기리며 새에 관심이 있는 누마다, 젊은 시절 미얀마 정글에서의 전투에서 사람 고기를 먹은 전우 쓰카다의 괴로운 영혼을 달개주기 원하는 기 구치 등 각기의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찾는 그 무엇을 찾아 인도 여행을 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이 소설이 관통하고 있는 테마는 ‘환생’의 의미이다. 『깊은 강』은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을 말한다. 힌두교에 대한 종교심이 없는 우리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갠지스 강은 너무 더럽고 오염되어 있다. 시체가 떠내려가는 그 더러운 물에서 목욕을 하고 입을 행군다. 위생적으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헌데 인도의 힌두교인들의 입장에서 갠지스 강은 “거룩한 강”이다. ‘깨끗한’ 강이 아니라는 거다. 갠 지스 강은 종교의 대상이자 실천의 장인 것이다. 그리하여 죽기 위해서, 다음 생에 더 좋은 삶으로 태어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이 강에 와서 죽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의 오래된 병폐인 카스트제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 외 아웃 케스트 불가촉천민(하리잔)이 있다.) 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됬다. 또한 힌두교의 여신, 선과 악, 잔혹함과 사랑이 혼재된 칼리여신과 차문다여신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내가 신을 버리려고 해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결혼을 앞둔 미쓰코, 마음 깊숙이 뭔가 파괴적인 것이 숨죽이고 있다. 그것이 분명한 형태를 취하기 전에 칠판지우개로 글씨들을 모조리 지우듯 소멸시키고 싶었다. 이런 파괴적인 무엇을 자극할 만한 것은 보통 남자(야노)와 결혼하여 평범한 주부로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소설 속에서 미쓰코는 불문학을 전공한 이로 되있는데 프랑수아 모리악의 <테레즈 데케루>라는 작품을 많이 언급한다. 이는 불문학을 전공한 엔도가 심취한 평생에 걸쳐 아낀 애 독서이다. 지적이고 매력적인 테레즈. 그러나 그녀는 뚜렷한 동기도 없이 너무 평범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해하는 남편 베르나르에게 초조감을 느끼고, 마침내 남편에게 독약 을 먹여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왜 이 내용이 미쓰코에게 투사된 것일까. 미쓰코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복잡한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의 본질을 투사해 보고 싶었던 것 은 아닐까. 체념과 피로가 뒤섞인 생활, 그 존재만으로도 그녀를 피곤하게 하는 선량한 남편.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이 남자는 무엇 하나 비난받을 구석이 없다. 없는 까닭에 테레즈는 그에게도 자신에게도 초조함을 느낀다. 초조함은 그녀의 의식 아래 쌓여, 이윽도 랑드의 삿갓소나무 숲처럼 언젠가 불타오를 순간만을 가만히 기다린다. p.87 미쓰코가 느끼는 것은 <테레즈 데케이루>의 아내가 선량한 남편에게 품은 말할 수 없는 피로와 어렴풋한 증오심이다. 이 감정은 남편 야노 곁에서 자신이 느끼고 살아야할 피로와 증오심과 동일하다. 반면에 동창생 오쓰는 차원이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그가 믿는 신은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해 놓았다. 하지만 그는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다. 선 속에도 악이 깃들고, 악 속에도 선한 것이 잠재되어 있다. 구분하는 것과 분별하지 않는 것. 무엇이 옳은 걸까. 신은 존재라기 보다는 손길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 강가강과 자무나강이 합쳐 지는 곳, 갠지스 강. 깨끗한 것과 성스러운 것은, 이 나라에선 다르지요. 인도인에게 강은 성스럽습니다. 그래서 목욕하는 겁니다. (p.161) 미쓰코에게 보내 온 오쓰의 편지는 동양인적인 범신론적인 사상을 보여주며 엔도의 철학이기도 한 것 같다. (p.177~178)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동양인인 저는 그들처럼 무엇이 건 확실히 구별하거나 분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신은 인간의 선한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죄조차 구원을 위해 활용하십니다. 서구의 기독교는 악과 선은 불가분이며 절대 양 립할 수 없다고 하며 이런 이원론적 마니교적 생각은 이단이라고 합니다. 저는 신부가 되는 것은 연기당했지만 신앙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따스함, 사랑 그 자체. 이 세상의 중심은 사랑이며 신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것만을 인간에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신학에는 친숙해 질 수 없었지만 제가 외톨이로 있 을 때 곁에서 제 외로움을 알고 미소 짓고 계시는 신. 자아, 내가 곁에 있도다. 내가 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신의 은혜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렇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타종교를 갖는 것은 신의 은혜가 없어서 일까를 생각합니다. 6 0 그대가 거기 있기에... 3/22/23, 11:35 PM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icarus444/221751480612 3/7 신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계십니다. 유럽의 교회뿐만 아니라 유대교에게도, 불교도에게도 힌두교에게도 신은 계신다고 믿는 믿음, 이를 기독교교리는 범신론이라 지적하지요. 샤르트르 대성당에도 그 지역의 지모신(地母神)을 성모 마리아로 승화된 것을 볼 수 있지요. 16,7세기에 귀화한 일본인들에게는 불교적인 것과 범신론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신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크사르 바가바티 절 지하에 있던 흰두교의 여신들 (p.208~210) 인도의 여신은 온화한 모습뿐만 아니라 무서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그녀가 탄생과 동시에 죽음도 포함하는 생명 전체의 움직임을 상징하기 때문이겠지요. 인 도의 여신들은 격력하게 죽음이나 피에 취하는 자연의 움직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칼리여신>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광폭한 여신. 생피를 즐기며 붉은 혀와 어금니를 드러내고 불길같은 모발을 하고 있다. 두개골이나 사람의 머리를 목걸이로 한다. 칼리여신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gnbone/70137271773에서 인용 <여신 차문다> 차문다는 묘지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발치엔 인간의 시체가 있지요 그녀의 오른발은 문둥병으로 짓물러져 있고 배도 허기로 움풀 꺼져 있고 게다가 전갈이 물어 뜯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런 병고와 아픔을 견디면서도 쭈그러든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인도인의 괴로움을 전부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도인이 겪어야만 했 던 병고와 죽음과 굶주림이 이 상에 드러납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헐떡이면서, 쭈그러진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도입니다. 6 0 그대가 거기 있기에... 3/22/23, 11:35 PM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icarus444/221751480612 4/7 사진출처:http://www.beopbo.com/news/photo/201802/102277_31244_583.jpg 에서 인용 불교가 시작된 인도가 아니라 청정과 불결, 신성과 외설, 자비와 잔인함이 혼재되어 공존하는 힌두의 세계. 여신 칼리에게는 자비와 더불어 사악함이 있었지만 위선은 없었다. 여신 차문다에게는 고뇌와 질병과 사랑이 나무 뿌리처럼 뒤엉켜 있었지만, 위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쓰코와 오쓰의 대화 (여기서 양파는 신을 지칭한다.) p.278~280 힌두교도는 나이가 들면 집을 자식한테 물려주고 방랑 수행하는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 사람들을 사두라고 합니다. 양파가 이 마을에 들르신다면, 그이야말로 길가에 쓰러진 자를 등에 업고 화장터로 가셨을 겁니다. 마치 살아 있을 때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걸었듯이. 결국은 양파가 유럽의 기독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안에도, 불교 안에도 살아 계신다고 생각하 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갠지스 강을 볼 때마다 저는 양파를 생각합니다. 갠지스 강은 썩은 손가락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자도, 암살당 한 간디 수상도 똑같이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를 삼키고 흘러갑니다. 양파라는 사랑의 강은 추한 사람도 지저분한 사람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 들이고 흘러갑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 p.287 나는 힌두교도로서 본능적으로 모든 종교가 많건 적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는 똑같은 신에서 비롯됬다. 그러나 어느 종교이건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인간애 의해 우리 에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에 도달하는 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 갠지스 강은 힌두교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깊은 강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강에 들어가면 그때까지의 죄가 모두 씻기어, 다음 세상에 좋은 형편으로 태어 날 수 있다고 힌두교도 들은 믿고 있습니다. 갠지스 강 때문이겠죠. 이 강은 인간의 그 어떤 것도 보듬어...... 우리에게 그럴 마음이 내키도록 이끌어 주는걸요. p.294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불이(善惡不二).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일은 없다. 분별해선 안된다 인디라 간디의 장례식을 보며 세계 각처의 전쟁과 만연한 증오를 본다. 그런 세계 속에서 오쓰가 믿는 양파의 사랑 따위는 무력하고 비참했다. 양파가 지금 살아 있은들, 이 증오의 세계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미쓰코는 생각한다. 갠지스 강가에서 개와 독수리에게 타다 남은 시체 조각을 뜯어 먹히는 시신을 보면서 전갈과 코브라에게 물어뜯기는 걸 견디는 차문다여신의 모습이 중첩된다. 믿을 수 있는 건,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하는 광경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 픔. 그 안에 저도 섞여있습니다. 양파로 한정되지 않은 뭔가 거대하고 영원한 것인지도 몰랐다. 의미 없어. 고작 그 정도로는 인도에 가난한 자들고 걸인은 안 없어져요. 우스꽝스럽다는 말이 오쓰의 비참한 반생을 떠올리게 했다. 오쓰나 마더 테레사의 수녀들이 바라나시에서 죽어6가는 노인과0노파들을 무료 숙박소나 강의 화장터로 옮긴다 한들, 그게 얼머만 한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들과 오쓰는 ........ p.323 그대가 거기 있기에... 3/22/23, 11:35 PM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icarus444/221751480612 5/7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시는 건가요? 이 질문에 다음의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25:40)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이것이 무슨 해결책이란 말인가 라고 하찮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 세상의 불평등과 증오와 분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작은 일 뿐이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친절할 것. 동양과 서양, 강자와 약자, 선과 악,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만년의 엔도에게는 이미 무의미한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한데 혼연히 이루어진 인류의 거대한 흐름 을 부드럽게 응시하는 초월적인 존재, 모성적인 신의 세계에 작가는 마침내 당도하게 되었다. <작품해설 p.335> 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