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 따라가기가 한의학의 살길일까?
10년 후의 한의학을 위한 미래 발전 과제 (2)
윤영주 교수
·서울대 의대·동의대 한의대 졸업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동서의학회 학술이사
최근에는 ‘근거중심의학’이 현대의학의 대명제로 대두되면서, 한의학 연구에도 현대과학과 현대의학의 연구방법이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의대 교육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의대 교육을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한약 성분을 원료로 한 신약 개발, 한의 진단기기 개발 등을 한의학 과학화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의학 따라가기’가 한의학의 살길일까? 이런 방법으로 현대의학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의학 연구는 한의학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연구 방법론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한의대 교육 또한 의대 교육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더욱이 한방 신약이나 진단기기가 아무리 많이 개발된다 해도 현대의학의 각종 신약이나 진단검사기기와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현대의학이 지향하는 ‘더 많은 의료’ 즉 더 많은 검사, 더 많은 수술, 더 많은 투약과 같은 방식으로 한방 검사도 더 많이 하고, 침·뜸 시술도 더 많이 하고, 한약도 더 많이 복용하게 하는 것이 한의학의 발전일까?
물론 한의학에는 시급히 정량화·표준화·과학화되어야 하는 많은 영역과 과제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의 창출과 그 속에서 자기 위치를 정립하는 것을 통해서 한의학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많은 이들이 현대 의학과 의료의 문제점에 관해서 지적하고 있다. 현대의료는 더 많은 검사, 더 비싼 검사를 통해 병을 진단하고, 병의 진단기준을 변화시킴으로써 더 많은 환자를 만들어내고, 이전에는 정상 범주에 속했던 상태를 병명을 붙여 새로운 질병으로 만들어 내어 더 많은 약을 판매하고 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수술과 투약의 증가는 한국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전반적인 사회 환경의 변화로 평균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과연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현대의료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의학적인 상담,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평소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관리하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 병이 걸린 후에는 수술, 투약 등의 방법 외에 자연치유력을 최대로 강화하여 환자 스스로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등이 그 핵심 내용이 될 것이다. 질병 치료와 건강 유지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침습적 의료 행위들을 최소화하고, 환자를 치료의 주체로 만드는 의료로 변해야 한다. ‘더 많은 의료’가 아니라 ‘더 좋은 의료’로 고민의 중심이 이동해야 하고,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영역에서도 ‘더 좋은 의료’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영역은 한의학이 현대의학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점을 가진 분야이다. 보완대체의학도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는 있지만, 일부 요법에 국한되고 총체적인 이론 체계가 미비하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염담허무(염 虛無)’, ‘이도요병(以道療病)’ ‘치미병(治未病)’ 등을 강조하는 한의학은 이러한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 창출에 필요한 의철학과 실천 방법론 모두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현대의학 모방하기’의 방법은 물량공세의 경쟁 속에서 일정기간 동안 일부 한방의료기관의 성장을 가능하게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의료 전체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한의학의 장기적인 생존과 발전을 기한의학연구 현황과 미래
한의신문 펌]
현대의학 따라가기가 한의학의 살길일까?
이제마뛰어넘기
2010. 6. 7.
윤영주 교수
한방내과전문의 임정태의 근거중심한의학 대하기는 힘들다.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는 결국 사회 전반의 변화와 그 속의 개개인의 의식 변화를 필요로 한다. 한의학이 의술, 의학, 의료의 틀을 넘어서서 새로운 삶의 양식,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을 제시하는 의식과 사회문화 개조 운동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명한 의료 소비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하는 의료 소비자 운동에도 앞장서야만 한다.
2)한의사상의 변화
80년대, 90년대 한의계는 급성장과 호황의 시기를 누렸고, 그 결과 2006년 조사된 인기유망 직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과 부의 축적에 비례하여 사회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지는 못했다. 혹자는 국회의원, 공무원 등 공적 영역, 정치권에 한의사들이 많이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보인다. 빠른 신분 상승에 비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했던 것이 더 큰 원인이라 생각된다. ‘(의사에 비해 교육기간이 짧기 때문에) 쉽고 편하게 (보약을 팔아) 더 많은 돈을 버는 한의사’라는 것이 현재 일반 대중이 한의사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가 아닐까?
한의사의 사회적 위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한의사들이 개원 이외의 다양한 영역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더 많은 기부와 봉사이다. 부를 축적한 한의사들이 여러 형태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모범을 보이는 것, 모든 한의사들이 일상 진료와 생활에서 소외된 이웃에 대한 봉사와 기부를 실천하는 것이 절실하다.
또한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서 한의사 집단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고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출산율 저하, 고령화, 흉악 범죄의 급증,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도박 중독 등 비물질적 중독 병증의 증가 등에 관해 보건 정책, 복지 정책의 관점에서 의견과 대안을 제시하고 한의사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이 마련된다면 한의학에 대한 친근감, 호감도가 한의사 집단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3)한의학에 우호적인 세력과 한의학의 외연을 넓히는 것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한의학의 명맥이 이어지고 이만큼 성장하게 된 데는 민족 문화와 생활 전반에 한의학 전통이 뿌리 깊이 내려 있었던 것의 힘이 컸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 <동의보감>, TV 드라마 <허준>, <대장금> 등이 대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전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계는 전통 한의학에 대한 대중의 친근감을 현대 한의학에 대한 접근성과 친화력을 높이는 것으로 발전시키는데는 부족함이 많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역사학, 한학, 철학, 인문학 등 한의학에 우호적인 인접 학문의 지식인 집단을 적극적으로 한의학의 우군으로 만드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유학을 기본으로 하면서 한의학을 유학의 일부로 학습하던 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임상 진료를 하면서 명의로 이름을 떨치게 된 유의(儒醫)의 전통이 뿌리 깊다. 현대에도 서양의학의 횡포에 염증을 느끼며 대안을 모색하는 지식인들 중에는 여러 가지 경로와 방법으로 한의학 이론과 실기를 습득하는 사람이 많고, 그들 중 일부는 자신과 가족을 넘어서 치료를 해보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기도 한다. 그간 한의계는 이러한 사람
들에 대해 무면허자의 돌팔이 의료를 경계하는 눈길과 움직임만을 보였을 뿐, 한의학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측면에서 활용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뜸사랑, 수지침협회 등은 이런 욕구와 일반인들의 자기 치료 욕구를 적절히 활용하여 조직적인 세를 갖추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물론 면허제도가 엄연한 상황에서 한의사들의 업권은 보호되어야 하고, 국민 건강 측면에서도 무면허 무자격자의 시술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의계는 돌팔이와의 싸움이라는 차원에서 내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했고, 결국 밥그릇 지키기에도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발상을 전환하여 침구사를 정식으로 제도화하여 한의학의 우군으로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일까? 침구사의 자격 요건을 엄격히 하여 제한된 인원만을 배출하고, 물리치료사나 의료기사처럼 한의사의 지도 감독 하에서 한방의료기관 내에서만 시술할 수 있도록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필자가 이런 견해를 피력하면 많은 분들이 이미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현
재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보완대체의학의 제도화 과정에서 침구사 제도에 대한 요구와 압력은 지속될 것이고, 그 제도를 요구하는 이들의 한의학 폄훼, 한의계와의 갈등 또한 더욱 증폭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중장기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약분쟁의 결과 탄생한 한약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장기적인 계획 하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한방의료기관에 한약사를 의무 고용하도록 제도를 만들고 추진해 왔다면 이제까지 배출된 한약사들은 차별화된 한약 품질과 한약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한의계의 주요한 세력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오히려 수지침협회나 뜸사랑에 못지 않게 한의사들을 공격하는 집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양방과의 갈등 상황에서 양방에 대한 피해의식, 돌팔이에 대한 피해의식으로만 똘똘 뭉쳐 지금 쥐고 있는 밥그릇을 어떻게든 뺏기지 않겠다는 식으로 협소하게 대응할 것이 아니라, 한의학에 우호적인 지식인, 대중, 한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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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내과전문의 임정태의 근거중심한의학
산업 관계자 등 광범위한 사회 계층을 우군으로 만들어 전선을 확대하며, 한의계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야만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세 가지가 역사적 전망 속에서, 전체 사회 속에서 한의학의 10년 후를 내다보는 차원의 장기적인 발전 전략이라면 다음은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당면 과제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