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5

최봉영 - 이뭣고=이+무엇+고 , "영성이 무엇이냐?"

(9) 최봉영 | Facebook
17 mutual friends

  · 
♤ 묻따풀 학당에서 알려드립니다.

그 옛날 말을 만들어서 함께 배우고 쓰는 매우 별스럽고 이상한 동물, 곧 사람이라는 것이 나타나서 지구의 생태와 환경을 크게 바꾸어 나가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 언어에 바탕을 둔 재1차 언어혁명입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사람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인공 언어를 만들어서 기계가 사람처럼 일을 하게 되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인공 언어를 바탕으로 제2차 언어혁명이 무서운 속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40회 묻따풀 강학회에서는 언어와 언어혁명의 성격을 야무지게 묻고 따지고자 합니다. 많은 이들이 함깨 하기 바랍니다.
#한국인문학연구회
#묻따풀깨익배사되도
======
최봉영
3 d
  · 
♤ 묻따풀 학당
나는 MBTI 성격검사 방법이 너무 허술하다고 보아서, 2022년 3월에 새로운 성격검사 방법을 만드는 일에 힘을 쏟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내가 만든 성격검사 방법의 이름을 "말에 대한 태로로 알아보는 성격유형"이라고 불렀다.
나는 사람에서 볼 수 있는 말에 대한 태도를 12개의 상대적 유형으로 갈라놓은 뒤에 그것을 24개의 지표로 짝을 지어서 이끌리는 정도에 따라서 점수를 매기게 함으로써 하나의 도표로 드러나게 했다. 나는 그 일을 끝내자 "이제 사람들의 성격을 제대로 검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몇 분에게 내가 만든 것을 참고용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일들에 관심이 쏠려서 그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안영회님이 내가 보냈던 성격검사 방법으로 자신의 성격을 검사해서 브런치에 글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1,000을 넘었다고 단톡방에 소식을 알려왔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니 참으로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안영회님이  브런치에 쓴 글을 공유해 놓았다.
#묻따풀깨익배
#한국인문학연구회
말 하는 태도 기준으로 성격 가늠해보기
BRUNCH.CO.KR
말 하는 태도 기준으로 성격 가늠해보기
인문공학과 인문공학도구 7호 | 최봉영선생님께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다. 성격이론을 개발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내가 받은 자료가 초기 아이디어일까? 하여튼 선생님과 통화 후에 스스로 내 말의 태도를 그림으로 표현해보았.....
김수정
Reply2 d


최봉영
3 d
  · 
♤ 묻따풀 학당
노블교수와 도킨스교수가 묻고 따지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한마디로 무척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구가 몇백 년동안 앞서서 이끌어온 근대과학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들이 근대과학에 세워놓은 관점, 태도, 방법은 빈틈을 찾기 어렵다.
내가 비록 어설프지만 개념을 다듬어 이론을 만드는 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 것도 그들이 해온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로 들어서면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된다. 누가 더 높은 곳에 이르느냐는 저마다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담] 2022 노블교수와 도킨스교수의 세기적 논쟁 현장 - 이기적 유전자 시대는 끝났다!
YOUTUBE.COM
[대담] 2022 노블교수와 도킨스교수의 세기적 논쟁 현장 - 이기적 유전자 시대는 끝났다!


안영회
4 d
  · 
어제 신재웅 유영모 님과 논의하던 내용 반추한 글
더불어 권도균 님의 소중한 글귀와
최봉영 선생님의 강의 내용도 활용했다. 
프로그램의 가치 측정과 새로운 제조 회계를 위한 여정
BRUNCH.CO.KR
프로그램의 가치 측정과 새로운 제조 회계를 위한 여정
디지털 코어의 시작 9 | 어제 팀의 ART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프로덕트 설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직은 개념 설계 단계라고 해도 좋을 듯하네요. 논의의 맥락을 맞춰야 시너지가 난다 데이터 분석과 ....


최봉영
24 February at 20:22
  · 
# 묻따풀 학당
나는 오늘 강남구에서 운영하는 일원라온영어도서관 전시실에 들러서 김재민님의 한글 이미지 작품들로 된 "질문하는 글자"를 보고 왔다. 
나는 4년전에 "이뭣고"라는 글을 페북에 쓴 적이 있는데, 김재민님이 그것을 읽고서 글의 느낌을 한글 이미지로 그려내는 일을 하게 되면서 이번 전시회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겠다. 그 동안 글과 전화로 이어져온 우리의 인연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김재민님은 디자인을 전공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은 분으로서 현재 한국조폐공사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오늘 전시회에서 본 것 가운데 몇 개를 사진으로 올려 놓았다.
Dong Joo Choi
Reply3 w


최봉영
23 February at 21:06
  · 
# 묻따풀 학당에서 알려드립니다.


최봉영
20 February
  · 
# 묻따풀 학당
묻따풀 학당의 바탕인 <한국 인문학 연구회>에서 알려드립니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물러간 자리에 조금씩 봄기운이 돌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여러분이 크게 성원해주신 덕분으로 2월 18일에 <한국 인문학 연구회>가 사단법인으로 등기를 마치고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애써주시고 도와주신 여러분께 크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인문학의 판을 새롭게 만드는 일에 힘을 다하겠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또렷이 그려볼 수 있도록 훌륭한 판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한국말 생성체계 연구소>, <인지 및 인격 발달 연구소>, <묻따풀 학당>, <한국말 놀이 마당>, <묻따풀 출판사>와 같은 것이 차례차례 모습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크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내내 잘 계십시오.  
2023년 2월 20일.
최봉영 올림.
김상석
GIF
Reply4 w
==
최봉영
25 February at 09:53
  · 
# 묻따풀 학당
4년 전에 나와 김재민님을 벗으로 맺어준 글이다. 아침에 안창영님이 불러다 놓은 것을 보고서 여기로 다시 옮겼다.
최봉영
25 May 2020
  · 
《 이뭣고=이+무엇+고 》
오늘날 불교쪽에서는 "이뭣고"를 화두로 삼아서 참구(參究)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뭣고"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묻는 일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크게 강조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말에서 "이뭣고"라는 말은 "이무엇고"를 줄인 말이고, "이무엇고"라는 말은 "이것은 무엇이고" 또는 "이것이 무엇이고"를 줄인 말이다.
1. "이+뭣+고"에서 "이"
"이뭣고"에서 "이"는 이때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임자가 바야흐로 어떤 것을 "이것"으로서 마주하고 있음을 말한다. 임자는 마주하고 있는 "이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어떤 것에 대해서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하게 된다. 
임자가 "이것"에 대해서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하지 않게 되면, 마주하고 있는 "이것"이 사라지면서, 머리 속이 멍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멍때린다"라고 말한다.
임자는 "이것"에 바탕을 두고서 "이것"의 곁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저것"이라고 말하고, "이것"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갖가지 것을 "여러것"이나 "모든것"이라고 말한다. 임자는 "이것"과 "저것"과 "여러것"과 "모든것"이 자리하고 있는 이때이곳에서 마음 안에 있는 "그것"에 기대어서, 바야흐로 마주하고 있는 "이것"을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함으로써, 무엇을 스스로 하는 하나의 임자로 서게 된다.
2. "이+뭣+고"에서 "뭣"
"이뭣고"에서 "뭣"은 임자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임자는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해서 묻는 일을 하게 되면, "어떤 것"이 "무엇"으로 바뀌게 된다. 반면에 임자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해서 묻는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것"은 그냥 "어떤 것"으로 남아 있게 된다.
한국말에서 "뭣"이라고 말하는 "무엇"은 "뭇", "무리". "무릇", "묻다", "물음"과 바탕을 같이 하는 말이다. 임자가 어떤 것을 "무엇"으로 묻는 일은 "어떤 것"이 "어떤 무리"에 속하는지 "어떤 것"의 무리를 갈라서 무리를 지어보는 일이다. 예컨대 임자가 "어떤 것"이 "무엇"인지 묻는 일을 해서,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임자가 "이것"을 "사슴"이라는 "무리"와 견주어 보아서, "이것"을 "사슴"의 무리로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한국말에서 "무엇"은 "어떤 것"이 "어떤 무리"에 들어가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무리"는 같은 꼴이나 일을 지니고 있는 것들을 하나의 무리로서 묶어 놓은 것을 말하고, "뭇"과 "무릇"은 같은 "무리"에 속하는 모든 것을 하나로 싸잡아서 말하고, "묻다"와 "물음"은 "무엇"이 어떤 무리에 드는지 "무리"를 지어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3. "이뭣고"에서 "고"
 "이뭣고"에서 "고"는 임자가 무엇이 어떤 무리에 드는지 묻고 있는 "~이고"를 말한다. "~이고"는 "~이다"나 "~이라"나 "~이지"처럼 어떤 말을 끝내는 말로서, 임자가 어떤 것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임자가 마주하고 있는 "이것"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임자가 마음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 안에 있는 "어떤 것"과 같게 여겨서 "이것은 사슴이다"와 같은 판단을 내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임자가 "이것은 무엇이고"라고 묻는 일은 마음 밖에 있는 "이것"을 마음 안에 있는 "그것"에 견주어서 "이것"을 "무엇"으로 알아차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때 임자의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는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은" "무엇이고=무엇+이+고"라고 말한다. 
한국말에서 "~고"는 아직 어떠한 것으로도 여겨지지 않은 상태의 "~것"이기 때문에 "그냥 그것인 것"으로서, "본디의 그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임자는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임자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본디의 그것"을 있는 그대로 그냥 가만히 두지 않는다. 임자는 본디의 그것인 "고"를 "무엇"으로 묻고 따지고 풀어서 어떠한 것으로 여길 수 있게 되면, "~이지", "~이다", "~이라"와 같은 판단을 내린다. 임자는 이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삼아서, 스스로 뜻을 내거나 둘 수 있는 하나의 몸통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한국사람은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는 "그것"을 가리키는 "고"를 붙들고서, 마음 밖에 널려 있는 갖가지 것들에 대해서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고"에 기대어서 "무엇"에 대해서 깊고 넓게 "곰곰이" 묻고 따지는 일을 거듭함으로써, 깨침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깨침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삼아서, 나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살리는 일을 하는 모든 것들, 곧 나, 너, 우리, 남, 풀, 나무, 벌레, 짐승, 산, 강, 들, 해, 달, 별과 같은 모든 것을 크게 고마워하게 된다. 한국말에서 "고"는 "곰", "곰곰이", "고마", "고맙다", "골"과 바탕을 같이 하고 있는 말이다.
한국사람이 "이뭣고"를 묻고 따지는 일의 길잡이로 삼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말에서 "이", "것", "이것", "무엇", "뭇", "무릇", "무리", "묻다", "물음", "그", "고", "그것", "곰곰이", "고마", "고맙다"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잘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들이 "이뭣고"를 붙들고서 아무리 많은 힘을 쏟아붓더라도, 좋은 열매를 맺기 어려울 것이다.



===
최봉영
16 February
  ·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0:07 / 4:24
최봉영
23 December 2020
  · 
# 묻따풀 학당
아래의 글은 나의 벗 강주영 선생이 쓴 글이다. 어제 페북에 글이 올라왔을 때, 글과 영상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낮에 무슨 까닭인지 영상이 사라지고 글만 남아 있었다. 이호재 선생이 보내준 본래의 영상을 끌어다가, 글의 뜻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강주영 선생님의 글》
#묻따풀 묻고 따지고 풀다

아래 움직그림 최봉영 선생의 "영성이 무엇이냐?"는 물음 풀이 말씀 기막히다. 

꼭 들어 보시기 바란다. 자하원 원장이시고 종교 연구가이신 이호재 선생께서 찍으셨다. 묻따풀학당 최봉영 선생의 말씀을 이 자리에 알린다. 

우리말 뜻의 바탕을 "묻고 따지고 풀다."의  묻따풀 말씀들은 그 어느 사상가의 말보다 쉬웠으나 훨씬 깊고 넓었다. 생각들이 맑아져서 뚜렷해졌다.

 '비'는 농사 지으며 하늘에 비는 '빌다', '해'는 '하다'에서 온 '해'요, '일'은 '이루다'에서 왔다. 영성은 뭣뭣 다움이라 하신다. 하느님의 영성은 하느님 다움이다. 사람의 영성은 사람이 사람다워야지 사람답다고 할 때의 그것이다. 사람을 사람마다 다르게 새길 수 있지만 적어도 이때의 '사람'은 제대로 된 '살다'에서 온 '사람'이니 한국 사람 치고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강의 영성은 강을 강답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것답게 하는 것이 영성이니 스스로 그러하게 하는(자연) 것이다. 
말의 '되돌이 사슬'(순환참조, 논리오류)이라 대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언어의 논리로만 우주를 보는 서구의 논리학에만 더렵혀진 먹물이다. 묻따풀 말씀이야말로 서구사상에 찌든 머리를 단박에 깨는 한국사람다운 개벽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사월에 한국사람이 흔히 말하는 '일'과  사회•경제학에서 말하는 '노동'이 같은가 다른가 하는 생각에 깊게 빠져 있었다. 자치•자연•자급에서는 마르크스의 '노동'과는 다른 결의 뜻말(개념)이 있어야만 했다. 어느 글에서 한나아렌트가 '노동'의 여러 결을 말했는데 영 아니올시다였다. 이때 동학사상가인 야뢰 이돈화 선생이 <신인철학>에서 '노동은 자연을 사회에 수입하는 것이다.' 라는 글을 만나기도 했으나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말 '일'은 스스로 그러하게 '이루는' 것이지 않을까? '일'은 이루다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닿았다. 자치•자급•자연에 딱 들어맞았다. 터무니가 섰다. 하지만 튼튼한 믿음이 서지 않았다. 

즉 자치•자급•자연의 일과 노동의 결을 달리 생각하여 스스로 찾다가 최봉영 선생을 만났다. 이 어찌 즐겁고 기쁘지 않겠는가! 최봉영 선생의 말씀을 듣고서야 아 내 생각의 졸가리가 틀린 것은 아니구나 하였다.

묻따풀은 한국문학과 천지인문학(어찌 건방지게 사람만의 무늬인 인문만 말하는 것인가? 하늘, 땅 사람을 아울러야 하니 하늘•땅•사람 천지인문학이래야 옳다.)의 개벽을 가져올 엄청난 일이다. 이 자리를 빌려 최봉영 선생께 큰 절 올린다. 스승을 얻음은 고맙고도 복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