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3

불교 신자는 아닙니다만, 보리수 나무 아래 서니 - 오마이뉴스

불교 신자는 아닙니다만, 보리수 나무 아래 서니 - 오마이뉴스

불교 신자는 아닙니다만, 보리수 나무 아래 서니
[인도] 불신자의 성지순례①
23.03.22 08
김찬호(widerstand365)

콜카타에서 하룻밤 기차를 타고 제가 도착한 곳은 인도 비하르 주의 가야(Gaya)입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이 도시에 온 이유는 불교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야 역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30여분, 곧 보드가야(Bodhgaya)에 도착합니다.

보드가야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출가한 이후 혹독한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6년의 고행 끝에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죠. 석가모니는 육체를 괴롭히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겠다 생각하고 고행을 멈춥니다.

석가모니는 지나가던 '수자타'라는 소녀가 공양한 우유죽을 마십니다. 그리고 어느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아 명상에 들었죠. 마왕의 유혹마저 모두 물리친 석가모니는 결국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곳이 지금의 보드가야입니다.


▲ 보드가야 시내 풍경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보드가야는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 입멸지인 쿠쉬나가르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로 불립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 주변으로는 '마하보디 사원'이라는 사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주변 마을에는 세계 각지의 불교도가 만든 사원이 세워져 있죠.

태국이나 스리랑카, 미얀마처럼 불교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들은 그만큼 넓고 화려한 사원을 세웠습니다. 일본은 거대한 불상을 세웠고, 대만 역시 사원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고려사'라는 절을 세웠고, 지금은 '분황사'라는 새로운 사찰을 건설 중에 있습니다.

여행자들이 적은 비하르 주이지만, 보드가야에서만은 불교 수행자들을 중심으로 여러 방문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행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묵을 공간을 내어주는 절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마을을 잠시 돌아다닌 뒤, 어느 절에 짐을 풀었습니다.


▲ 다이조쿄 대불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제가 보드가야에 방문했을 때는 인도의 축제인 홀리 기간이었습니다. 물과 염료를 뿌리며 노는 축제 기간인데도 마을 안은 조용했습니다. 마을을 떠나는 날, 가야 시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홀리 축제 현장을 보고 아주 놀랐을 정도였으니까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성스러운 공간을 찾아 온 불교 신자와 수행자를 따라 마하보디 사원 옆을 걸었습니다. 탑 주변을 걷는 사람들. 자리에 앉아 한참이나 탑을 바라보는 사람들. 마하보디 사원 안에는 석가모니가 수행했다는 보리수 나무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아래에서 불경을 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불교의 승려들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불교 신자는 아닙니다. 애초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불교 미술을 공부하거나 불경을 사료로서 공부한 적은 있지만, 불교 철학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기도 합니다. 제가 공부한 역사학과 철학은 인문학 안에서는 가장 거리가 있는 학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성지에서 만난 불교는 제게 특별했습니다. 책이나 미술품으로 보던 불교와는 달랐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이유도 없이 종교에 정진하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일까요. 어떠한 응답도 없는 진리에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일까요.



▲ 마하보디 사원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생각해보면 나무 한 그루에 불과합니다. 그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한 명의 수행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를 따라가려는 수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를 따라 진리를 갈구하던 수행자들이 지난 2500여 년 간 끊어지지 않고 긴 길을 만들었습니다. 마하보디 사원 앞, 조용히 명상을 하는 수행자들을 통해 그 길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긴 길 위에서, 그저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인 사람들입니다. 다만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뿐인 사람들이죠. 그 다음의 일은 굳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눈 앞의 정념을 떼어내는 데 모든 것을 바칠 뿐입니다.

종교인의 삶이란 그런 것이겠죠. 사실 종교를 가지지 못한 제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온 생을 바쳐 무엇인가에 정진하고 궁구할 수 있는 삶을 저는 동경합니다. 그것이 흔치 않은 성지순례지에 제가 온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 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나무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석가모니의 제자였던 유마거사의 이야기를 다룬 <유마힐소설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욕망에 흔들리는 것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이미 두려움을 떠난 자에게는 모든 오욕이 할 수 있는 바가 없다고요.

왠지 잠시 곁을 내어주는 듯한 보리수 나무 근처에 앉아, 저도 잠시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가진 두려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오늘 하루의 이야기일 수도, 이번 여행의 이야기일 수도, 혹은 삶 전체를 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요.

그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불신자인 제가 갈구할 수 있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눈 앞에 보이는 스님들처럼, 저는 그것에 제 삶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럴 용기를 가진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의탁할 신조차 없는 저는 그 용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 보드가야의 한국 절, 분황사
ⓒ Widerstand

관련사진보기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석가모니가 얻었다는 깨달음이 무엇인지 저야 알지 못합니다. 사성제(四聖諦)니 팔정도(八正道)니 하는 글자만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요.

다만 오늘까지도, 지난 2500여 년을 한 순간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을 수행자들의 긴 역사를 생각합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쯤은 저처럼 작고, 확신하지 못하고, 때로 비겁하지 않았을까 마음껏 상상해 봅니다.

종교에 발도 제대로 담가보지 못한 저는, 다만 그런 사실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이 긴 길이 이어졌다는 사실. 대가 없이 진리를 바라고, 더 옳고 바르고 평등한 것을 따라 걸어간 사람들이 한 시대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역사가 지금 제 눈 앞에서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불신자에게 성지란 별 의미 없는 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제겐 충분한 용기이고 힘이었습니다. 의탁할 신이 없는 저 역시, 성지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만큼은 어떤 두려움을 잠시나마 끊어낼 수 있었던 기분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태그:#세계일주, #성지순례, #보드가야, #세계여행, #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