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1

닥터 홀의 조선 회상 김동열: Hall, Sherwood, 1893- 원제 :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

Takt'ŏ Hol ŭi Chosŏn hoesang : Hall, Sherwood, 1893-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Publisher Sŏul-si : Choŭn Ssiat
Digitizing sponsor Kahle/Austin Foundation
Contributor Internet Archive

Language Korean
Title (alternate script) 닥터 홀의 조선 회상
Author (alternate script) 김동열

751 pages : 2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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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홀의 조선회상 
셔우드 홀 (지은이),김동열 (옮긴이)좋은씨앗2009-12-07
원제 :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






Sales Point : 1,772

9.2 100자평(2)리뷰(4)
736쪽
책소개
조선에서 선교 개척자로 일생을 바친 의사부부였던 부모 아래 태어나, 훗날 아내와 함께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다시 와서 16년의 세월을 보낸 닥터 셔우드 홀의 자서전. 조선조 말엽부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조선에서의 치열했던 삶의 모습들을 기록한 홀 일가의 이야기에는 그들이 이 땅에서 보여준 의료 및 선교와 교육 분야에 대한 업적과, 이곳에서 겪은 재미있고 코끝 찡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목차


추천의 글
닥터 홀의 편지 : 나의 사랑, 한국
머리말 : 긴 세월의 이야기를 풀며
프롤로그 : ‘보배’ 이야기

1. 시작
2. 첫 인상
3. 개척을 향한 모험
4. 평양에서의 수난
5. 에디스 마거리트
6. 마음의 상처를 수습하고
7. 은둔 왕국의 백인 소년
8. 시베리아―유럽 횡단여행
9. 내일을 찾아서
10. 조선을 향해
11. 조선으로 돌아와서
12. 오리엔테이션
13. 첫 번째 해와 예순한 번째 해
14. 첫아이
15. 원산의 여름
16. 기초 작업
17. 긴급 취임
18. 꿈은 이루어지고
19. 최초의 요양원―해주 구세요양원
20. 안식년 휴가
21. 크리스마스 씰
22. 이정표
23. 공수병 소동
24. 반가운 사람들의 방문
25. 화진포의 성(城)
26. 대행(代行)
27. 전쟁의 소리
28. 헌병대
29. 엉터리 재판
30. 조선을 떠나며
31. 만세

에필로그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 출간 후 뒷이야기
부록 : 닥터 홀 일가 중요연표

접기


책속에서


-1980년 로제타 셔우드 한국 도착, 한옥의 구조를 약간 고친 보구여관을 보고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시설이 좋다고 생각함.
-병원에는 진료실, 적당한 크기의 대기실, 약국, 창고가 있었다.
-크고 좋은 전실(前室)은 빛이 잘 들어와 수술실로 사용
-5개의 병실은 온돌이었음. 요 위에 천을 씌워 침대처럼 사용
-로제타 셔우드는 온돌형식의 병실이 당시 한국 환자를 위해 가장 좋은 병실이라고 생각했다. 온돌방이 따뜻하고 잠자기에 편하고, 방 전체가 하나의 침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환자가 침대 밖으로 나올 염려가 없다. 또 온돌방은 청결하여 소독하기 쉽고, 요를 쉽게 살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선교병원에서 사용하기에 경제적이다.
-71-72쪽 접기 - 생각의여름
-당시 한국어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로제타 셔우드는 이화학당에서 영어를 습득하였던 학생 4-5명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은 하루에 5-6시간 정도 진료소에서 통역을 담당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후에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는 김점동 즉 박에스더였다. -115쪽 - 생각의여름
아무리 높은 이상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수행하기 어렵다. 기억하라. 이러한 영적인 힘은 계속적인 기도로만 얻어질 수 있다. 우리의 체력이 날마다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유지되는 것같이 우리의 영적인 강건함도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만이 유지될 수 있다. 이때 우리의 목적은 인간의 영광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초점이 바뀐다. - 팥죽할멈



저자 및 역자소개
셔우드 홀 (지은이)

<닥터 홀의 조선회상>

최근작 : <닥터 홀의 조선회상>,<닥터 홀의 조선회상> … 총 3종 (모두보기)

김동열 (옮긴이)

1940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환경지질 전문가로서 땅과 물의 오염을 탐지하고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에 접촉하기 좋아하며 근세사에 관심이 크다. 역서로는 <닥터 홀의 조선 회상>(좋은씨앗)이 있다.


셔우드 홀(지은이)의 말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국의 사랑하는 독자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드립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국에서 일어났던 근세 역사의 단편들과 그밖에도 매우 흥미 있는 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 책에는 한국인들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결핵이라는 적을 상대로 싸워 이기는 이야기와 이런 과정에서 한국 최초로 설립된 결핵 요양원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사랑하는 한국에서 보낸 수많은 행복했던 날들이 기억나 즐거웠습니다. 독자들도 이 책을 즐겁게 읽어주기 바랍니다.
이 책을 즐겁게 읽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이야기란 서로 나누어 갖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의 청진기로 조선 사람들의 심장을 진찰할 때면
내 심장도 조선과 함께 뜁니다.” ―닥터 셔우드 홀

- 원서에 있던 당시의 희귀 사진자료를 완벽히 보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원서를 대조하여 수정보완한 2009년 전면개정판!

- 의사 누가가 1세기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면,
의사 셔우드 홀은 20세기에 『조선회상』과 『인도회상』을 썼다.
이 두 책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

이 책은 조선에서 선교 개척자로 일생을 바친 의사부부였던 부모 아래 태어나, 훗날 아내와 함께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다시 와서 16년의 세월을 보낸 닥터 셔우드 홀의 자서전이다.
조선조 말엽부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조선에서의 치열했던 삶의 모습들을 기록한 홀 일가의 이야기에는 그들이 이 땅에서 보여준 의료 및 선교와 교육 분야에 대한 놀라운 업적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겪은 아름답고 재미있고 코끝이 찡한 에피소드들이 가득 담겨 있다.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히길 소원했던 셔우드 홀과 그의 아내 매리언 홀의 가슴 속에 있었던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그들의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이 책을 통해 찬찬히 음미해보자.


★★★이 책을 읽고 기쁨으로 추천해 주신 분들 (가나다순)

고(故) 문창모 박사 | 전 원주기독병원장
닥터 셔우드 홀은 한국 땅에서 태어나 한국 이름과 한국말을 쓰면서 우리 한국인들을 위해 큰일을 많이 한 분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의료선교 사업에 대한 귀중한 사료로 남을 것이다.

박상은 원장 | 샘병원 의료원장, 전 한국누가회 이사장
이 책은 2대에 걸친 선교사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국선교 백여 년 역사이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닥터 홀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어쩌면 이 책이야말로 홀 선교사에게 있어 선교 사역의 가장 큰 열매가 될지도 모른다.

박재형 교수 | 서울의대 교수,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회장
중국과 한국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홀과 셔우드를 이 땅으로 인도하시고 민족의 수난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살도록 보내주심은 주님의 성육신을 생각하게 한다.

오정현 목사 | 사랑의교회
양화진에는 셔우드 홀의 아버지, 어머니, 자녀, 그리고 홀 부부가 모두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단순히 선교사의 시신이 묻힌 곳이 아니라 결코 멈출 수 없는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이 심겨진 곳입니다.

이동원 목사 | 지구촌교회
나는 이 책을 우리 교회에 추천하여 많은 성도들이 읽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의 고귀함을 다시 각성하고 선교의 마당으로 나아갈 이 땅의 미래 선교사들과 그들을 준비시킬 다시 없이 귀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현수 선교사 | 한국 프론티어스 국제선교회 대표
오늘날 한국 사회는 닥터 홀이 100년 전에 보여주었던 그리스도의 사랑이 절실하다. 그런 맥락에서 닥터 홀의 「조선회상」은 우리에게 분명한 도전과 본보기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임영국 원장 | 미래한국병원 병원장, CM이사장
「조선회상」은 한 가정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고귀한가를 보여주는 데 있어 손색이 없다. 지금 셔우들 홀 가정, 여섯 식구들의 몸은 양화진에 묻혀 있지만, 그들의 삶은 나의 가슴에 묻혀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한철호 선교사 | 선교한국 상임위원장
한국에 온 서양선교사들의 전기나 기록이 여러 권 발행되었지만 셔우드 홀의 「조선회상」처럼 당시 한국 사회의 정황과 조선인들의 생활상 그리고 영적, 사회적 처지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한 책은 없다.

허버트 웰치 박사 | 전 한국-일본 감리 교구 주재 감독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굽힐 줄 모르는 인내심과 결단력으로 처음에는 한국에서, 나중에는 인도에서, 병든 사람들에게 귀한 의술을 베풀었으며 자신의 삶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여기에, 그의 책보다 더 위대한 한 사람, 닥터 홀이 있다.

홍정길 목사 | 남서울 은혜교회
이 책은 닥터 홀이 이 땅에서 겪었던 수많은 사건들, 그가 주님을 사랑해 순종했던 길, 삶 속에서 늘 복음을 붙잡고 살았음을 보여주는 귀하고 복된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찬찬히 깊이 음미하며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땅에서 쓰인 사도행전의 속편이기 때문이다. 

평점 분포

9.2



정말 좋은 책, 감동!!!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likeabird 2010-03-25 공감 (3) 댓글 (1)
마이리뷰

[마이리뷰] 닥터 홀의 조선회상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의 감동 스토리


친구 망둥이의 강압(?)에 못이겨 인천 배다리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이다. 두께도 700페이지가 넘고 종교 관련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책벌레가 추천하는 책이니 기본은 하겠지라는 긍정 마인드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


저자인 셔우드 홀은 조선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조선에서 보낸다. 의사이자 선교사인 부모님이 조선에서 의료활동과 선교활동을하는 기간동안에 태어난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한후 선교사 자격으로 조선(해주,평양)으로 돌아와 평생 헌신적인 의료활동과 더불어 선교활동을 펼친다.


책 내용의 대분이 구한말~일제시대까지 낙후되고 힘들던 조선에서 헌신적인 의료활동과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종교적 신앙으로 하는 것일텐데 책에는 기독교에 대한 주장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즘 기독교는 쫌 아닌듯...)


더불어 학창시절 역사책이나 사회책에서 단편적으로 배웠던 역사적 사건(청일전쟁,동학혁명등)과 당시 서민들의 살아있는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이게 진짜 살아있는 역사 교육이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보건데 큰 거부감없이 감동을 느끼며 이 책을 읽을수 있었던 이유가, 종교적 주장(집착)을 떠나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노인 셔우드 홀의 따뜻한 마음이 그데로 전해져서 일것이다.


양화대교 근방 ˝양화진˝(항상 지날때마다 양화진이 뭐지? 라고 생각했는데) 에 셔우드 홀 일가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하니 ‘조선회상‘을 들고 한번 찾아가 보고 싶어진다.
- 접기
이현 2017-03-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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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닥터 홀의 조선회상


팥죽할멈 2020-02-10 공감(0) 댓글(0)


생각의여름 2010-08-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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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란 무엇이며, 선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종교적 관심사 내지 사명감을 뒤로 쳐두고라도 2대에 걸쳐 한가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목숨을 담보로 미개한 나라에 몸을 던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전혀 두려움없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나가는 모습은 참 감동스럽다. 뭐 회고록의 특성상 자신의 쪽팔린 행동이나 생각은 기술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1890년 홀의 아빠가 의료선교사로서 아내(역시 의사)와 함께 조선에 입국한 다음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 아빠는 한국에서 병으로 요절한 다음 아들이 미국에 가서 의학공부를 하고 또 의사인 아내와 함께 조선에 들어와서는 1940년 일제에 의하여 추방되기 까지 회고한 글이다. 1940년에도 미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곧바로 인도로 가서 20여년간 의료선교활동을 한 걸 보면 대단한 깡다구의 소유자다. 1988년에 이 아저씨가 91세 되던 해에 한국에서 이 분의 공적을 알고는 한국으로 초청을 했는데, 이 양반이 입고 나갈 외출복이 없었단다. 아지매도 마찬가지. 그래서 양복은 캐나다에 있는 한국인 독지가들이 마련해주고, 아지매 옷은 부유한 친구들의 것을 얻어입고 한국을 방문했단다. 그리고는 1991년 98세에 돌아가시고, 아지매는 5개월 후 95세에 돌아가셨단다. 물론 죽은 곳은 고향인 캐나다에서 죽었는데 화장한 다음 한국의 양화진에 묻었단다. 거기에는 아빠, 엄마, 아들, 누나, 마누라, 딸도 함께 묻혀있다는 걸 보면 한국에 대하여 참 대단한 애정을 가진 거 같다. 이 장면에서는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의사라면 어딜 가든 부자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인류에 헌신하고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사는 모습은 참 멋지다.



몇몇 인상적인 부분만 추려보면

- 1890년에 아빠가 처음 선교사로 부산에(물론 배편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18일이 걸려서) 도착했는데,

. '언덕과 산들이 매우 가파르고 암석이 많고 나무가 없어 삭막해보였다'...아마도 땔감이 없어서 모든 나무들을 부엌 아가리로 보낸, 가련한 삶을 살고 있을 때가 아닌가.

. 일본인, 중국인보다는 키가 월등히 크다. 모자를 장신구로 쓰고 그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선비, 고관들은 모두 부채를 들고 다닌다. 여름, 겨울 구분없이.

- 이 때만 해도 사과가 국내에는 없었다.1892-1932년에 선교사로 한국에 재직한 스웰런이란 분이 도입했다.

- 불교는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서민은 잡신을 숭배, 양반들은 유교를 숭배...이 아저씨가 잘못 파악한 거 같다. 대부분이 잡신 아니었나 싶다. 요즈음도 뭐, 한꺼풀만 벗기면 '祈福' 아닐까.

- 평양은 그 모양이나 풍수지리설에서 '떠나가는 배'모양이라, 성중에 우물이 없단다.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아서 도시가 가라앉는다고 해서.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북청물장수라는 산업도 생긴거라.

- 서양의 천년전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만큼 후진 모습이었다.

- 아직도 도심에 호랑이가 출몰한다.

- 조선사람들은 대부분 시계없이 살고 있다. 조선에선는 사람들의 긴박감과 시간개념을 배울 수 없었다. 조선인들의 생활철학은 서두르지 않는 태평함에 있다.

- 조선의 영문표시는 'CHO-SEN'이다.... 아마도 1800년대 말부터 조선을 강점한 일본인들이 자기들 부르기 쉽게 이렇게 표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조센징'이 되었을 거 같다.

- (선교사들의 눈으로 볼 때)가장 아름다운 곳이 소래포구와 원산의 해변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조선의 풍경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금강산도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침 해돋이도 다른 나라의 그것과는 달리 너무 장엄하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걸 해돋이를 보면서 느꼈다.

- 가장 참기 어려운 거 중의 하나가 무당이 밤세워 굿하는 소리, 그 중에서도 찢어지는 듯한 징소리와 북소리이다.

- 조선인들의 믿음은 산이라도 움직일 듯 굳건하다. 이들은 밤을 세워서 기도하고, 큰 소리로 하기를 좋아한다....요새도 마찬가지.

- 크리스마스 실은 덴마크에서 시작했다. 어떤 시골마을의 폐결핵 환자 촌에 운영비가 부족한 걸 그 동네의 우체국 직원이 우표를 작은 값에 사는 것을 보고 십시일반으로 크리스마스 때 실도 함께 팔아서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 같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고, 성공적이서 덴마크는 폐결핵인구가 당시 세계 최저였다. 홀이란 분이 이걸 한국에 처음 적용했다.

- 크리스마스 실과 관련한 압권...이 사업을 시행한 첫 해에 여러 사람, 조직으로부터 다양한 편지가 왔는데 대부분은 좋은 행사다. 앞으로도 계속 지원하겠다 등등이었는데, 그 중의 한 편지에는.......

'.....저는 당신이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광고를 보고 실을 샀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이 실을 정성껏 가슴에 붙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약은 나의 심한 기침을 조금도 낫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돈을 돌려주시기를 청구합니다'.

...................

'...여러 사람들 입에 자자한 그 훌륭한 크리스마스 실 약을 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값은 얼마라도 지불하겠습니다...'

...'당신의 요양원에 무료 입원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실 입원권을 좀 보내주십시오. 저의 친구들도 많이 들어가려고 합니다'

- 조선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어떤 아줌마가 아팠는데, 의사를 3명을 고용해서 치료하는 중에 또 이 양반에게도 치료를 해달라고 해서 격분했다....요즈음 말하는 '의료쇼핑'이 그 때도 있었다고나 할까.

- 일제가 전쟁에 광분하면서 단파라디오는 모두 압수해갔다. 그래서 이 양반은 의사가 가지고 있는 청진기를 활용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장파라디오의 스피커 부분에 청진기를 대고 튜너를 조심스레 돌려 봤다. 그랬더니 단파 방송 중의 하나가 잘 들렸다. 그래서 외국에서 보내는 방송을 청취할 수 있었다.

- 인도를 기행하면서, '정적의 탑'이란 곳을 방문하였는데 Parsee교도들이 사람의 시체를 독수리가 뜯어먹게 하는 것을 봤다...鳥葬이라고도 하고 天葬이라고도 한다....그 신자 중의 한사람에게 물었더니, 왈, '새에게 먹히는 것 보다 벌레에게 시체를 먹히게 하는 것이 더 몸서리쳐지는 것'이라고 했다...같은 행동(장례)에 대하여 사람의 생각에 따라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나 싶다.





참 부러운 것이 보였는데, 뭐냐하면 미국 내지 캐나다의 사회 시스템이란 것이다. 선교활동과 생물학자 등을 중심으로 식자층들이 제3세계로 진출하는 이면에는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본국에 전한다는 것이 있다고 하지만

- 종교단체에서 선교자금을 받다가 자기가 벌인 사업을 수행하기에 예산이 부족하면 주저없이 본국의 친구들, 교회, 자선단체에 사업계획서와 자신이 이룬 성과 등등을 보내면 이들은 믿고 지원을 해준다는 것.

- 안식년이라는 걸 철저히 준수하여 충전의 기회를 갖고(쉬기도 하지만 새로운 전문지식을 더 쌓는 기회로 여기는 것 같음), 자신의 사업을 널리 이해시키고(교회 등지에서 설교하는 시간을 배려), 자금도 모으는 기회도 가지며,

- 안식년을 통하여 특정한 사람에 의하여 조직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하여 조직이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즉, 안식년으로 이 사람이 자리를 비우게 되니 반드시 대타를 마련해서 그 조직을 맡긴다).

- 많은 여행을 통해서 식견을 넓힌다. 서울에 부임, 안식년(2차례)을 가지려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는 행로를 만주와 러시아를 관통하는 경로, 유럽과 인도, 싱가폴 등지를 통하는 경로를 선택하여 1달 내외 기간 동안 여행하면서 통과하는 나라를 방문한다.

- 이상은 미국인들이 100년전에도 하던 생활방식인데 우리나라의 살림살이도 많이 좋아진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애들을 키우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학원, 과외, 경쟁...불신지옥 예수천국... 생각할 바가 많다. 물론 사회적으로 제동장치가 있는 그들 나라와, 내가 무너지면 가족이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리사회와는 분명 많은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