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이슬람의 사상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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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이슬람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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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사상 분류에는 다음과 같은 세부 분류가 존재한다.

  1. 이슬람의 사상〔槪說〕
  2. 이슬람세계의 성립
  3. 마호메트
  4. 코란
  5. 이슬람 정통사상
  6.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
  7. 이슬람 철학사상의 계보
  8. 알 킨디
  9. 알 파라비
  10. 이븐 시나
  11. 알 가잘리
  12. 서방 이슬람의 사상가
  13. 이븐 루시드
  14. 현대 이슬람 사상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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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통사상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
Islam 正統思想 이슬람 교도의 9할 이상을 점하는 대중을 순나파(순니)라고 부르고 있다. 순나라는 것은 고인(古人)이 보여준 생활의 규범이라는 뜻으로서 이슬람에서는 특히 마호메트의 언행을 의미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성전(聖傳)(하디스)에 의하여 후세에 전달되었으며, 하디스를 연구하는 전문가를 무핫다신이라고 한다. 성전은 마호메트의 사후(死後)에 여러 가지로 종교상의 의견이나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각기 자기에게 편리하게 창작되었기 때문에, 성전 학자(聖傳學者)는 각 성전의 경로(이스나드)를 음미하여 진위(眞僞)를 결정하는 일에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수십 만의 성전 중에서 유래가 정확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선별되었다. 그 선별(選別)이 일단 안정을 보인 것은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전반에 걸쳐서이다. 이 안정된 순나(規範)를 좇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른바 정통파라고 하는 것이 형성되었다.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점에서 견해도 달리 하는 것은 분파로 나누어졌으며, 혹은 이단으로도 되었다. <코란>과 하디스는 이슬람교의 근본이기는 하지만 <코란> 중에서도 여러 가지 의의(疑義)가 생겼으며, 또 <코란>에도, 하디스간에도 상호모순되는 조항이 약간 있다. '알라는 인간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코란>은 알라가 창조한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과거로부터 존재한 것인가(創造·非創造說)', '인간은 신(神)이 미리 정한 운명의 궤도 외에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인가(宿命說)', 아니면 '의지의 자유가 어느정도 허용되고 있는 것일까',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사상상(思想上)의 파벌이 생겼다. 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8세기 초경부터 성대하게 된 무타질라파(派)일 것이다. 이 파는 선행(先行)한 카다르파(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파)의 이론에 그리스합리주의을 가미하여 그들의 이론강화를 꾀했으며, 나아가 <코란>에 대해서는 차조설을 취하였고, 알라에 대해서는 육체설(肉體說)을 부정하고 있다. 정통파는 <코란>의 비창조설,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는 숙명설을 취하였으나, 아바스조(朝) 초기, 특히 알 마문과 알 무타심 시대(9세기 전반)에는 무타질라파가 대세력을 얻었다. 그리하여 <코란> 비창조설(非創造說)을 고집하는 아하마드 이븐 한발(780∼855) 등이 2년간이나 투옥당할 정도였다. 이후 말 아슈아리(873∼935) 등이 나타나 무타질라파의 이론을 역용하여 정통파의 주장을 그러한 공격에 감내할 수 있도록 보강하였다. 정통파 중에서도 성법(聖法)(샤리아)의 운용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학파(學派)를 낳았다. 이슬람의 법원(法源)은 <코란>·하디스·키야스(類推)·이주마(교도의 합의)등이나 그것들에 대하는 비중의 차(差)를 두고 지금은 네 개의 학파로 나뉘어져 있다. 그밖에 다른 제학파는 거의 망하였다. 가장 합리주의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아브 하나피(699 ?/80∼767 ?)가 일으킨 하나피파이며, 가장 전통을 고집하고 우익적이라고 일러지는 것이 아하마드 이븐 한발의 한발파(派)이고, 중용적(中庸的)인 것이 말리크 이브 아나스(715/12∼795)에 주창된 말리크파와 알 샤피(767∼820)의 샤피파이다. 네 개의 법원(法源) 중 이주마는 이슬람 교도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라마(아리무의 복수로서 이슬람 학자의 뜻)의 공론(公論)이 그것을 대표한다. 이주마의 권위는 <코란>이나 순나보다도 숭고하다고까지 생각되었으며, 따라서 우라마는 이슬람 사회의 중심 세력을 이루면서 금일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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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
Islam 神秘主義(Sufism) 수피즘(타사우프)는 이슬람 그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말과, 그리스도교나 그리스·이란·인도 등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있으며, 그 쌍방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그리스도교의 금욕 고행의 수도승을 의미한다고 생각되는 말이 <코란>중에 보이고 있으므로, 그 영향이 일찍부터 있었다고 하는 경향도 있다. 금욕주의의 독신가(篤信家)로서 우선 역사에 기록된 사람은 바스라의 하산 알바스리(728 사망)와 여성으로는 라비아 알 아다위야(801 사망)등이 있다. 이들은 다함께 수피즘의 선구자로 인정되고 있다. 후자는 처음에 사막에서 정진생활(精進生活)을 하고 있었으나, 후에 바스라에 거주하며 여러 가지의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슬람의 고행자를 수피(값싼 양모직의 寬衣를 입었기 때문이라 한다.)라고 부르게 된 것은 8세기 중엽부터이다. 그들은 대접이나 사발 등을 가지고 탁발(托鉢) 여행을 계속하면서 불교도(佛敎徒)의 염불에 비유할 만한 데이클을 부르며 걸어다녔던 것이다. 수피즘의 이론을 처음으로 정리한 사람은 9세기의 알 무하시비(857 사망)라고 한다. 그의 제자에 아츠·쥬나이드(910 사망)라고 하는 영걸이 나왔다. 또 알 하라쥬(922 사망)는 수피의 대사(大師)들 중에서 가장 걸출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바그다드에서 형을 받아 죽었다. 그는 이란의 농촌에서 출생했으며 쥬나이드의 제자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나는 진리(眞理) 이다"라고 하는 그 말은 알라와 융합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수피즘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여 이름이 높다. 또한 에스파냐의 이븐 아라비(1240 사망)라든가 이집트의 이븐 알 파리드(1235 사망) 등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요컨대 수피즘에서는 명상(瞑想)·망아(忘我) 등의 수양에 의하여 오로지 알라를 사랑함으로써 마침내 그것과 융합한다고 하는 법열(法悅)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무욕(無欲)·무사(無私)의 생활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나중에는 많은 승단(僧團)을 만들어 속세(俗世)를 떠난 생활을 보내는 것이 보통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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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철학사상의 계보 알 킨디→
Islam 哲學思想-系譜 다른 제 종교도와 접촉한 결과 그 자극으로 말미암아 이슬람 교도는 신앙상의 일, 인간의 행위, 자유의지, 숙명(宿命), 알라와 사람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들에 대한 사상에 따라 여러 파가 대립 논쟁하게 되었다. 이 논쟁에 있어서 자설(自說)을 수호하고 상대를 논파(論破)하기 위하여 그리스·이란·인도 등의 학문이 섭취되었는데, 특히 그리스 철학의 도입은 특필할 만한 것이었다. 9세기의 바스라의 사람인 아불 푸다일 등이 그 선구이며 안 낫자무는 그 제자이다. 당시는 그리스 철학을 배우는 사람이 적고, 그런 사람은 다하루(永遠)의 무리라 불리어졌다. 낫자무는 <코란>과 순수일신(純粹一神)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하여 이들 다하루의 무리들을 맹렬하게 공격하였지만, 그로 해서 자신도 그리스 철학을 배우게 되어 이것을 무기로 삼았던 것이다. 10세기 초에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알 무안마르, 바스라파의 앗 쥬바이(916 사망)와 그의 아들 아부 하심(933 사망) 등은 모두 그리스 철학을 무기로 삼아 자설(自說)을 지키려고 한 이슬람의 신학자들이다. 이와 같은 이슬람학(學)과 그리스 철학과의, 이른바 절충주의자들과는 달리 그리스 철학의 도(道)에 더욱 깊이 들어간 사람들을 아라비아어화(語化)한 그리스어(語)로 파이라스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스 철학을 와전(訛傳)하여 파루사파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의 사람들은 이슬람의 지식계급 사이에서는 특수한 것으로 간주되어 냉대된 나머지 박해를 당하거나 살해되기까지 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슬람을 배반한 사람들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 철학을 통하여 알라의 가르침의 진의(眞意)를 탐구하려던 진지한 무슬림(이슬람 교도)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그들은 종교와 철학과의 조화라고 하는 문제에 목숨을 걸고 매달렸던 사람들이었다. 이슬람의 철학자들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웠다고 일컬었고, 또 그렇게 믿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신(新)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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