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2

관념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마르크스주의 [관념론(觀念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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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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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진스는 "우주가 거대한 기계라기보다는 거대한 정신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라고 기술하였다.

관념론(觀念論, 영어idealism독일어Idealismus프랑스어Idéalisme)은 실체 혹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실체는 근본적으로 정신적으로 구성되었거나 혹은 비물질적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적 입장이다. 인식론에서 관념론은 정신으로부터 독립된 것을 인식할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나타난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관념론은 인간의 생각, 특히 믿음과 가치가 사회를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주안점을 둔다.[1] 존재론적 교의로서 관념론은 더 나아가, 모든 것은 마음이나 정신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2] 관념론은 "모든 것은 물질적으로 실제한다"고 보는 물리주의나 물리적 실체와 정신적 실체를 분리하여 파악하는 이원론의 주장은 모두 배척한다.

관념론은 마음 · 정신 · 의식이 물질 세계를 형성하는 기초 또는 근원이라고 주장은 유심론(唯心論)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3] 유심론이 유물론에 반하여 물질적 실재를 부정하는 것과 달리, 관념론은 실재론에 반하여 정신에 기반하지 않는 객관적 실재의 인식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4] 이에서 더 나아가 물질 세계가 마음정신 또는 의식이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 또는 상념의 현현 또는 표상이라는 입장과 물질 세계가 원인의 세계가 아닌 결과의 세계라는 입장으로 사물의 세계가 "본질적인" 실체(實體) 또는 실재성(實在性)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다만 "임시적인" 실제성(實際性)만을 가진다고 보는 환영설(幻影說)도 관념론의 일부를 이룬다.[5]

경험의 세계가 정신에 기초한다는 현존하는 가장 이른 논의는 인도와 그리스에서 발생하였다. 인도의 힌두 관념론자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자는 실체의 토대 또는 진정한 성질로서의 만연한 의식을 옹호하는 내재신론적 논증을 펼쳤다.[6] 반면에 기원후 4세기에 인도에서 발생한 대승불교 교파인 유가행파는 정신만을 인정하는 관념론의 근거를 대부분 인간의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에 기반을 두었다. 이러한 주관적 관념론으로의 전환은 18세기 유럽에서 유물론에 대한 회의적 논증을 채용하여 관념론을 되살린 조지 버클리와 같은 경험론자의 등장을 예견하였다.

이마누엘 칸트로 시작하여, G. W. F. 헤겔요한 고틀리프 피히테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같은 독일 관념론자들은 19세기 철학을 지배하였다. 모든 현상의 정신적 또는 "관념적" 특성을 강조하는 전통은 영국 관념론부터 현상론실존주의를 아우르는 관념론적, 주관주의적 학파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관념론 학파의 역사적 영향은 심지어 마르크스주의나 실용주의실증주의와 같은 관념론의 형이상학적 가정을 거부하는 학파에게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관념론으로는 힌두교의 우파니샤드 철학과 베단타 학파불교의 유식설과 화엄종유대교의 카발라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혼 불멸설플라톤주의의 이데아론신피타고라스주의기독교 신학영지주의헤르메스주의신플라톤주의원효의 일심 사상유교의 성리학라이프니츠의 모나드설버클리의 유심론, 칸트의 비판철학헤겔의 절대정신 및 시대정신론 등이 있다.

고전 관념론[편집]

일원론적 관념론은 물질이 아닌 의식은 모든 것의 토대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우주에는 오로지 한 가지의 실체만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일원론적이며, 그 하나의 실체는 의식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관념론적이다.  아낙사고라스는 모든 것은 누스에 의해 생성된다고 생각했으며, 누스는 코스모스와 일치하여, 인간을 코스모스와 연결시키고 신으로 가는 길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였다.

다수의 종교적 철학자는 관념론자이다. 지식을 가진 존재는 무감각한 물질을 앞선다는 믿음은 경험하는 주체가 필연적으로 실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힌두 관념론은 베단타 철학과 카쉬미르 시바파의 핵심적 교의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12세기부터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스콜라주의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신플라톤주의에 기반을 둔 관념론적 견해를 주장하였다. Hermann Lotze와 같은 이후의 유신론적 관념론자는 그 안에서 모든 것은 통일성을 획득한다는 세계의 토대(world ground)에 관한 이론을 제안하였다. 이 이론은 신교 신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신사상 운동과 같은 현대의 몇몇 종교 운동은 특별히 관념론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학은 관념론적 형태를 포함한다. 진정하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이자 신의 생각이며, 감각에 나타나는 세계는 그 본저에 있는 정신적 실체의 왜곡이며, 왜곡은 생각의 재설정을 통하여 교정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명나라의 유학자인 왕양명은 정신은 객체를 형상화하기 때문에 객체는 정신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세계가 정신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세계에게 원인을 제공하므로 정신은 내적인 빛과 선천적인 선, 어떤 것이 선한지에 대한 이해를 가져 모든 원인의 원천이라고 주장하였다.

유가행파 사상가들은 의식을 궁극적으로 실존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의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대승불교의 유가행파의 의식만을 염두에 두는 접근은 진정한 형이상학적 관념론은 아니다. 유가행파에게 의식은 원인과 상태를 요동치게 하여 순간마다 나타나기 때문에 단지 관례적으로 실존할 뿐이며, 의식은 과 의 원인이기 때문에 중요한 개념이다.

플라톤의 형상 이론은 관념적인 형상을 어떠한 상황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자로 묘사한다. Arne Grøn는 이러한 교의를 초월적 관념론으로서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의 고전적 예라고 부르는 반면, Simone Klein은 플라톤을 형이상학적 객관적 관념론의 가장 이른 대표자라고 부른다. 플라톤은 물질은 실존하지만 순간적이며 불완전하다고 주장하였고, 물질은 우리의 신체와 감각에 의해 인식되며, 우리의 이성적 영론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인식되는 외부의 이데아로부터 그 존재를 부여받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플라톤은 근대의 관념론자가 회피하려고 노력하는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이원론자이다.[7]

주관적 관념론[편집]

주관적 관념론(유심론 또는 현상론)은 경험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논한다. 주관념 관념론에서 객체는 인식자 내부의 감각 데이터의 모음 그 이상이 아니다. 클로인의 주교이자 아일랜드의 철학자였던 조지 버클리는 주관적 관념론의 주창자 중 한 명으로서 개인은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개념만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으며, 물질과 같은 비실재적인 것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신 스스로는 유심론이라고 부른 이론을 발전시켰다.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인식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며, 개념은 그 존재를 위하여 인식되는 것에 의존한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의 철학자인 아서 콜리어(Arthur Collier)는 버클리와의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보임에도 비슷한 주장을 발표하였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실제는 영원한 대상에 대하여 상상된 이미지이다. 그러한 이미지의 원인으로서의 물질은 생각될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관찰자와 관련되지 않은 절대적 물질로서의 외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하는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그것이 나타는 것처럼 존재할 수 없다. 콜리너는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인 존 노리스(John Norris)의 ⟪이상적 또는 정신으로만 인식되는 세계에 대한 이론에 관한 논문⟫(An Essay Towards the Theory of the Ideal or Intelligible World)의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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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관념론[편집]

이마누엘 칸트에 의해 18세기에 주창된 초월적 관념론은 정신은 우리가 인식한 세계를 시공간의 형태로 형상화한다고 주장한다.

... 물질적인 세계 전체는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의 감각 안에서의 현상적인 모습이자 상상의 일종일 뿐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주체를 제거한다면 세계는 한 번에 사라져야 한다.
— 순수 이성 비판

그런데 칸트는 규준 체계에서 오성(verstand)에 무제한의 자율성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자기 의지에 따라 감각인상을 구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주관적 관념론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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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관념론[편집]

관념론은 정신을 세계의 기초에 두는 견해를 취하는 철학이나 객관적 관념론은 이 정신을 인간 의식, 즉 주관으로서의 정신을 초월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신이라든가 절대정신)이라 하여, 이에 바탕을 두고 세계관을 수립하는 철학이다. 또한 개인적인 주관(의식)이 아니라 인간 일반(一般)의 의식을 생각하여 이것이 세계를 만든다는 생각도 객관적 관념론이라 하는 수도 있으나 이러한 입장은 오히려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객관적 관념론의 주창자로는 토머스 힐 그린조사이어 로이스찰스 샌더스 퍼스 등이 있다.

셸링은 객체 없이 주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피히테의 나(I)는 내가 아닌 것(Not-I)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즉 관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에 차이는 없다. 이것이 셸링의 절대적 동일성이다. 관념이나 정신적인 이미지는 정신 외부의 확장된 객체와 동일하다.

절대적 관념론은 어떻게 존재가 포괄적인 전체로서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G. W. F. 헤겔의 입장이다. 헤겔은 자신의 철학을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과 칸트와 피히테의 "초월적 관념론"과 구별하여 "절대적" 관념론이라고 불렀다.[8] 그는 유(有)와 무(無)의 대립을 통한 현존의 성립을 주장하였다. 그는 현실의 제 모순의 내용을 통찰하는 과정으로서 여러 의식 단계를 설정하였고, 최종적으로 절대지로 나아가면 모순의 제 내용을 파악하여 객체의 실체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헤겔이 보기에 주관적 관념론이나 초월적 관념론은 헤겔의 관념론과 달리 역사에 대한 궁극적이고 변증법적인 철학의 비판에 기반하지 않았다. 이성과 지성의 활용은 철학자가 궁극적인 역사적 실제와, 자기 결정의 현상학적인 성질, 자기 인식의 변증법적 발전, 역사의 영역에서의 성질을 알게 해 준다.

헤겔은 자신의 저서 ⟪대논리학⟫에서 유한한 성질은 자신을 결정하기 위하여 다른 유한한 성질에 의존하기 때문에 완전히 "실제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질적인 무한은 더욱 자기 결정적이며 그러므로 완전히 실제적이다. 비슷하게 유한한 자연적인 것은 덜 자기 결정적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책임있는 인간, 윤리적인 공동체, 과 같은 정신적인 것과 보다 덜 실질적이다. 그러므로 유한한 성질이나 자연적인 대상이 완전히 실제적이라는 유물론과 같은 학설은 잘못되었다.[9]

객관적 관념론자는 대개 철저한 수학적 연역론과 감각 및 지각과는 질적으로 다른 추상적 사유를 통한 판단을 중시하며, 이러한 판단이 객체에 관한 객관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선언한다. 주관적 관념론과 달리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의 존재를 인정하며, 더 나아가 외부 세계의 실재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실체(객관화된 객체)는 오로지 최상의 단계에 진입한 정신으로 관통할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관념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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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가[편집]

이상국가(理想國家)는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국가관이다. 정치는 진리에 기하여 사회의 최고선을 위하여 행하여져야 한다는 이상(이데아)을 체현한 것이다. 플라톤은 데모크라시를 중우정치(衆愚政治)라 하여 배척하고 정의의 이데아를 갖고 행동하는 소수의 현인이 지배하는 귀족정치를 최고의 정치형태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상국가를 실현하지는 못했다.[10]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Macionis, John J. (2012). Sociology 14th Edition. Boston: Pearson. p. 88. ISBN 978-0-205-11671-3.
  2.  Daniel Sommer Robinson, "Idealism", Encyclopædia Britannica
  3.  김영봉 외, 《교육학개론》, 서현사, 2007년, ISBN 978-89-9035-729-8, 71쪽
  4.  앙리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살림, 2008년, ISBN 978-89-5220972-0 {{isbn}}의 변수 오류: 유효하지 않은 ISBN., 71쪽
  5.  한길사 편집부, 《가자 고전의 숲으로 - 한길사 그레이트북스 100권 길라잡이》, 한길사, 2008년, ISBN 978-89-3565-875-6, 56쪽
  6.  Ludwig Noiré, Historical Introduction to Kant's Critique of Pure Reason
  7.  Simone Klein. “What is objective idealism?”. 《Philosophy Questions》. Philosophos. 2011년 7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8월 7일에 확인함.
  8.  One book devoted to showing that Hegel is neither a Berkeleyan nor a Kantian idealist is Kenneth Westphal, Hegel's Epistemological Realism (Dordrecht: Kluwer, 1989).
  9.  An interpretation of Hegel's critique of the finite, and of the "absolute idealism" which Hegel appears to base that critique, is found in Robert M. Wallace, Hegel's Philosophy of Reality, Freedom, and Go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10.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이상국가〉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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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觀念論) ] (idealism)

I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해 유물론과는 대립되는 철학의 근본경향으로서, 궁극적으로 ‘의식’이 물질에 비해 일차적이며 규정적인 것이라고 답하는 세계관(철학 내지 철학적 견해)이다. 관념, 정신의 우선성 또는 심리적인 것, 감각의 우선성에 입각하여 그것들을 규정적인 것이라고 보는 동시에 물질, 객관적 실재 전체를 이차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는 철학적 견해나 체계, 조류들은 모두 관념론의 범주에 포함된다.

II 관념론은 크게 ‘객관적 관념론’과 ‘주관적 관념론’으로 분리될 수 있다. ‘객관적 관념론’은 의식을 역사적, 사회적 토대로부터 분리시켜 하나의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존재로 전환시킴으로써 물질적 세계의 상위에 있는 창조적이고 근원적인 원리로 삼는다. 반면 ‘주관적 관념론’은 객관적 실재를 단지 의식의 내용으로만 간주한다. 따라서 사유하는 주체로부터 독립해 있는 외부세계의 존재에 반론을 제기한다. 플라톤은 ‘객관적 관념론’이 수미일관하게 완성된 철학체계가 될 기초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객관적 관념론으로는 중세의 토마스주의 Thomism와 근대의 라이프니츠 Leibniz, 헤겔 Hegel의 철학이 있다. 이들의 기본적인 공통점은 외부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정하긴 하지만 그것을 오직 창조적인 정신적 활동의 결과라는 형태로만 인정한다. 즉 인간의식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전제된 정신적이며 관념적인 초자연적 원리(신, 절대정신, 이성 등)의 전개나 구현으로서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객관적 관념론의 인식론적 기초를 볼 때, 객관적 관념론은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해 전체로서의 사유(의식) 혹은 특정한 사유형식을 객관화, 절대화함으로써 객관적 실재를 전도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반영되는 답변을 한다. 이와는 내용에서 차이를 갖는 ‘주관적 관념론’은 18세기 초에 버클리 Berkeley와 흄 Hume에 의해 일정한 경향으로 발전되었다. 현대 부르주아 철학 중에서 주관적 관념론으로는 대표적으로 ‘실증주의’ ‘신실증주의’ ‘생철학’ ‘실용주의’ ‘실존주의’가 있다. 이러한 경향들 및 개별학파들 사이의 공통점은 객관적 실재성을 갖는 사물 및 현상을 주관적 의식으로부터 도출하고 그에 의해 평가한다는 점, 이때 인식의 감성적 단계 특히 감각을 절대화함으로써 물질세계의 사물 및 현상을 의식의 내용이나 감각복합이라고 본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과정의 주관화에는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대개의 주관적 관념론은 이러한 유아론(唯我論, solipsismus)적 결론을 피하기 위해 초개인적 의식을 인정함으로써 객관적 관념론의 입장을 받아들이거나 곧장 신앙주의적이며 종교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컨대 버클리의 ‘신의 지각(知覺)’, 칸트의 실천이성의 요청으로서의 ‘신(神)’ 개념 등에서 잘 나타난다. 주관적 관념론은 버클리, 칸트, 마하 및 실증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인식회의론’ 또는 ‘불가지론’의 가능성을 자체내에 가지고 있다. 활동을 강조하면서도(예컨대 피히테 Fichte의 경우라 하겠다) 동시에 숙명론적, 종교적인 주장들은 바로 이러한 주관적 관념론의 토대 위에서 생겨난다. 아울러 주관적 관념론은 사회에 대한 고찰에서도 역사적 개인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엘리트 이론’을 가능하게 한다.

III 관념론의 사회적 원천은 적대적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관계 및 사회적 분업 그리고 계급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심화되어온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에 있다. 인식의 복잡성 때문에, 물질과 의식의 관계가 전도되고 인식과정의 개별적 계기가 고립되어 절대화 할 가능성 자체가 주어진다면, 이러한 가능성은 특정한 사회적 조건의 결정적 영향을 받아 현실화한다. 그러한 사회적 조건이란 지배계급의 특수한 층이 교양을 독점하고 사회적 실천과는 유리된 일면적인 정신적 활동에만 전념하는 상황 또 반동적 착취계급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사회의 내적 모순을 은폐하고 사회적, 과학적 진보를 방해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관념론은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의 산물이며, 그것의 존속은 계급사회와 결부되어 있다. → 물질과 의식, 불가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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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 (Idealism)

마르크스는 관념론의 형이상학적, 역사적 그리고 윤리적 형식에 반대하였다. 형이상학적 관념론은 실재가 (유한하거나 또는 무한한) 정신, 또는 (특수하거나 선험적인) 관념으로 구성되거나 여기에 의존하는 것으로 본다. 또 역사적 관념론은 역사적 변화의 우선성이나 유일한 동기를 작인(作因), 관념 또는 의식 속에 설정한다. 그리고 윤리적 관념론은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보다 높거나’ 또는 ‘보다 나은) 상태를 행위의 판단이나 합리화의 길잡이로서 제안한다. 마르크스의 반관념론, 또는 '유물론'은 관념의 존재와 그리고 (또는) 관념의 인과율적 효율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그는 환원론적 유물론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쪽으로 이것을 강조하였다),그것에 부여된 자율성 그리고 (또는) 설명적 우선성을 강조한 것이다.
1843년에서 1847년 사이의 마르크스 저작들은 그와 엥겔스가 함께 그 이전의 철학적 양심과 결별하고 원(原) 과학적 탐구의 영역을 확정하기 시작한 과정에서 행한 관념론에 대한 폭넓은 비판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비판은 이중의 운동으로 구성되었는 데, 그 첫 번째는 두드러지게 포이에르바하적 계기로서 이 때 관념(moment ideas)은 구체화 된 유한한 정신의 속성으로서 위치한다. 두 번째는 뚜렷하게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기로서 그와 반대로 이러한 정신들이 역사적으로 발전되는 사회관계의 산물로서 위치한다.
마르크스가 이 첫 번째 계기를 거쳐갔을 때만 해도 그것은 헤겔 변증법에 촛점이 맞추어 지면서 헤겔의 절대 관념론적 존재론, 사변적 합리적 인식론, 그리고 실체적 관념론적 사회학이라는 헤겔의 3중적 주관-객관(subject-predicate)의 전도(轉倒)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졌으며, 또한 전도의 규칙을 동일시한 데 대한 헤겔비판-즉, 첫째, 존재를 인식으로 환원하는 데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었는 데, 여기서 그는 이러한 환원을 가능하게 한 숨어있는 조건을 무비판적 실증주의로서 구분해 놓았다. 그리고 다시 마르크스는 과학의 철학으로의 환원에 대해서도 비판했는 데, 즉 여기서 그는 바로 이 환원의 결과가 이데올로기의 전체적 적응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게 하였다. 포이에르바하적 관념론의 비판을 완결하고 나서 마르크스는 고정된 인간 본성에 대한 포이에르바하적 문제제기를 발전하는 인간사회의 역사적-유물론적 문제성으로 대치한다. 즉 ‘인간 본질은 각 개인들에게 고유한 추상이 아니다. 실제 그것은 사회관계의 총화이다’(《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6번째 테제). 이와 함께 마르크스는 역사는 ‘그의 목적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행위일 따름이다’(《신성가족》)라고 주장한다. 그가 사회형식의 재생산과 변화에 관한 그의 개념과 인간 실천이나 노동에 있어서의 일반적으로 역사적 과정에 관하여 그의 개념을 정식화했듯이, 그는 본질주의적 개인주의와 마찬가지로 존재론적 근본원리와 그리고 주의(主意)주의와 함께 물신숭배도 회피하려고 고심하였다.
엥겔스와 레닌이 회의론이나 주관적 관념론에 대하여 날카로운 반론을 폈던 반면에 그들이 열어놓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전통은 때때로 독단적이며 관조적 유물론으로 퇴보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루카치와 코르쉬에 의해서 발단된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적 유물론이 지닌 주관적이며 비판적 측면을 재강조하면서, 때때로 이러저러한 형식의 인식론적 주관주의로 기울어지고는 하였다. 또 마르크스의 ‘윤리적 자연주의’는 다같이 칸트주의자들과 제2인터내셔날, 그리고 2차 대전 뒤 스탈린 이후 시대에 융성했던 인간주의와 실존주의 철학자들 모두에 의해서 배척당했다. 이와 함께 역사적 유물론의 정확한 의미와 위치에 대한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논쟁거리가 되어 있다. 그래서 어떠한 방식으로 든 관념론의 문제는, 그것이 처음에도 그러했듯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인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