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9

알라딘: 깊은 강 엔도 슈사쿠 [원제 : 深い河]

알라딘: [전자책] 깊은 강


깊은 강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은이),유숙자 (옮긴이)민음사2015-04-28 
원제 : 深い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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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정가
6,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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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 352쪽

책소개

국내에는 <침묵>의 작가로 잘 알려진, 평생에 걸쳐 신과 구원의 문제에 천착한 엔도 슈사쿠는, 1993년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완성한 마지막 장편소설 <깊은 강>에 자기 문학의 모든 주제를 집약해 놓았다. 신은 인간 내면에 살아 숨 쉬며,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는 존재임을 이 소설을 통해 역설한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네 사람이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만난다. 이소베는 평범하게 살아온 가장이었다. 그러다 암 선고를 받은 아내가 투병 끝에 숨을 거두면서 꼭 다시 태어날 테니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긴다. 동화 작가인 누마다는 병으로 죽음의 고비를 맞았을 때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 준 구관조를 잊지 못한다.

기구치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얀마에서, 죽은 동료의 인육까지 먹어야 했던 처참한 상황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이소베의 죽어 가는 아내를 간호했던 미쓰코는 대학 시절 가톨릭 신자인 오쓰를 그저 장난으로 유혹했다가 버린 기억이 있다. 그녀는 신부가 된 오쓰가 인도의 수도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네 사람은 저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 인도로 간 것이다. 불가촉천민부터 수상이었던 인디라 간디까지, 신분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품어 안는 갠지스 강과 그곳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이들은 강한 인상을 받는다.

목차

1장 이소베의 경우
2장 설명회
3장 미쓰코의 경우
4장 누마다의 경우
5장 기구치의 경우

6장 강변 동네
7장 여신
8장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9장 강
10장 오쓰의 경우

11장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12장 환생
13장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작품 해설 / 유숙자
작가 연보

책속에서

복수나 증오는 정치 세계뿐만이 아니라, 종교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은 집단이 생기면 대립이 발생하고 분쟁이 벌어지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한 모략이 시작된다. 전쟁과 전후의 일본 속에서 살아온 이소베는 그러한 인간이나 집단을 싫증나게 보았다. 정의라는 단어도 지겹도록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마음 깊숙이,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막연한 기분이 늘 남았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 그는 사근사근하게 누구와도 잘 지냈지만, 어느 한 사람도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저마다 마음 깊숙이 자신만의 에고이즘이 있고, 그 에고이즘을 호도하기 위해 선의니 옳은 방향이니 주장하는 것을 실생활에서 납득하고 있었다. 그 자신도 그걸 인정하고서, 풍파 일지 않는 인생을 꾸려 왔다.
하지만 외톨이가 된 지금, 이소베는 생활과 인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겨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생활을 위해 사귄 타인은 많았어도, 인생에서 정말로 마음이 통한 사람은 단 수 사람, 어머니와 아내밖에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
그는 또다시 강을 향해 불렀다.
'어디로 갔어?'

강은 그의 외침을 받아 내고 그대로 묵묵히 흘러간다. 그런데 그 은빛 침묵에는, 어떤 힘이 있었다. 강은 오늘까지 수많은 인간의 죽음을 보듬으면서 그것을 다음 세상으로 실어 갔듯이, 강변의 바위에 걸터앉은 남자의 인생의 목소리도 실어 갔다. - 본문 중에서  접기

체념과 피로가 뒤섞인 생활. 그 존재만으로도 그녀를 피곤하게 하는 선량한 남편.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이 남자는 무엇 하나 비난받을 구석이 없다. 없는 까닭에 테레즈는 그에게도 자신에게도 초조함을 느낀다. -87쪽 - iamjune

"나는 그 후로, 생각합니다. 신은 마술사처럼 뭐든 활용하신다고, 우리의 나약함이나 죄도. 그렇습니다. 마술사가 상자에 지저분한 참새를 넣고 뚜껑을 닫고는, 신호와 더불어 두껑을 열잖습니까? 상자 속 참새는 새하얀 비둘기로 바뀌어 날아오릅니다."-93쪽 - iamjune

"나는 이곳 사람들처럼 선과 악을 그다지 확실히 구분할 수 없습니다. 선 속에도 악이 깃들고, 악 속에도 선한 것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신은 요술을 부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죄마저 활용해서 구원으로 이끌어 주셨지요."-97쪽 - iamjune

누마다는 어떤 부부건 간에, 서로 용해될 수 없는 고독이 있음을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알았다. -115쪽 - iam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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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지은이) 

1923년 도쿄에서 태어나 만주 다롄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귀국한 후 고베에 정착했다. 열한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니며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1949년 게이오 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결핵으로 인해 2년 반 만에 귀국한 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5년에 발표한 『하얀 사람』으로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으로 신쵸샤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1966년에 『침묵』을 발표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하였고, 이 작품은 동서양 문화의 차이나 신학으로 해결하기 난해한 문제 등을 밀도 높게 다루었다는 극찬을 받으며, 전 세계 25개국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1995년 문화훈장을 수상하였고, 1996년 타계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종교소설과 통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문학의 거장이자 일본의 국민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침묵』 『바다와 독약』 『예수의 생애』 『내가 버린 여자』 『깊은 강』 등 다수가 있으며, 그 밖에도 『삶을 사랑하는 법』 『회상』 등 다수의 인생론과 수필집을 펴냈다.

수상 : 1980년 노마문예상, 1979년 요미우리 문학상, 1966년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1955년 아쿠타가와상
최근작 : <그리스도의 탄생>,<사무라이>,<나를 사랑하는 법> … 총 154종 (모두보기)


유숙자 (옮긴이) 

번역가. 지은 책으로 『재일한국인 문학연구』(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재일한인문학』(공저), 옮긴 책으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손바닥 소설』, 『명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옛이야기』, 『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대산문화재단 번역 지원), 『유리문 안에서』,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쓰시마 유코의 『「나」』, 김시종 시선집 『경계의 시』, 데이비드 조페티의 『처음 온 손님』, 사토 하루오의 『전원의 우울』, 가와무라 미나토의 『전후문학을 묻는다』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재일 한국인 문학>,<재일한국인 문학연구> … 총 3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본 전후 문학계 대표적인 작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60번)으로 출간되었다. 엔도 슈사쿠는 특히 종교적 문제, 신과 구원의 문제에 천착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에서 큰 영향을 받아 왔지만, 그의 작품들은 종교소설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보편적 삶과 그 삶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아 왔다. 『깊은 강』은 엔도 슈사쿠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가 평생 동안 추구해 온 모든 가치들을 집약해 놓은 그의 대표작이다.

상처 받은 인간들에게 신이 내미는 구원의 손길

『깊은 강』은 엔도 슈사쿠가 1993년 완성한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이때는 그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투병 생활을 하던 때로, 이 작품은 자신의 50년 가까운 문학 인생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엔도 슈사쿠는 자신에게 커다란 명성을 안겨 준 『침묵』과 함께 이 책을 관 속에 넣어 달라고 유언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엔도 슈사쿠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하여 지금까지 자신이 추구해 왔던 모든 주제들을 그려 내고 있다. 삶의 기쁨과 슬픔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인생의 여러 굴곡을 겪고 이제 황혼기를 맞은 네 사람이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만난다. 

이소베는 평범하게 살아온 가장이었다. 그러다 아내는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고, 고통스런 투병 끝에 숨을 거둔다. 그녀는 꼭 다시 태어날 테니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겼다. 

동화 작가인 누마다는 병으로 죽음의 고비를 맞았을 때 구관조에게 큰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구관조는 마치 그를 대신하듯 죽어 버렸고, 그는 아직도 그 구관조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다. 

기구치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가 미얀마에서 부상을 입고 낙오되었을 때 동료인 쓰카다가 곁에 남아 주었다. 쓰카다는 기구치를 살리고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다른 동료의 시체를 먹어야 했고, 그는 일본으로 무사히 돌아온 후에도 그 처참한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평생 괴로워했다. 

미쓰코는 이소베의 죽어 가는 아내를 간호했던 자원 봉사자였다. 그녀는 대학 시절 가톨릭 신자인 오쓰를 그저 장난으로 유혹했다가 버린 기억이 있다. 그녀는 신부가 된 오쓰가 인도의 수도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오쓰는 신부의 길을 걷기 위해 프랑스 수도원에서 수련을 하지만 신과 구원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곳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인도로 가서, 홀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갠지스 강으로 데려다 주는 일을 하게 된다.

『깊은 강』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지울 수 없는 슬픔을 가슴속에 품은 채 살아간다. 등장인물들의 삶, 나아가 이 작품 전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인생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이들은 인도에서 불가촉천민부터 수상이었던 인디라 간디까지, 신분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품어 안는 갠지스 강과 그곳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는 사람들을 보면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구원에 이르는 강의 이미지,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신의 모습

『깊은 강』은 다음과 같은 흑인 영가로 시작되며, 엔도 슈사쿠는 이 흑인 영가에서 작품의 제목을 따왔다.

깊은 강, 신이여, 나는 강을 건너,
집회의 땅으로 가고 싶어라.

흑인 영가에 나타나는 ‘강’은 그들의 고달픈 기억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만나는 새로운 세계, 구원의 세계에 대한 간절한 꿈을 이루어 주는 신과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소설 <깊은 강>에서 말하는 ‘강’은 힌두교도들이 죽음을 맞기 위해 찾아오는 성스러운 갠지스 강, 나아가 삶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구원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어머니와 같은 깊고 큰 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힌두교의 여신 차문다를 통해 인간들의 고난을 상징적으로 그려 내면서, 나아가 그 고통을 함께 하고 또 끊임없이 사랑을 베푸는 신의 존재를 보여 준다. 이는 역시 강의 상징적인 이미지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오랜 병고를 대신 짊어진 채로 그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신은 우아하고 고결한 성모마리아와 대조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엔도 슈사쿠는 차문다를 통해 인간 위에 있는 신이 아닌, 인간과 함께하며 인간 안에 살아 숨 쉬는 신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녀의 젖가슴은 이미 노파처럼 쭈글쭈글합니다. 하지만 그 쭈그러든 젖가슴에서 젖을 내어, 줄지어 있는 아이들한테 나눠 줍니다. 그녀의 오른발이 문둥병으로 짓물러 있는 걸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배도 허기 때문에 움푹 꺼질 대로 꺼졌고, 게다가 그걸 전갈이 물어뜯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런 병고와 아픔을 견디면서도, 쭈그러든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습니다.

평생 신을 좇는 삶을 살아온 인물인 오쓰 역시 엔도 슈사쿠가 말하고자 하는 ‘강’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오쓰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이미 가톨릭교도가 되었고, 평생을 진정한 신을 찾아 헤매었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나라를 떠나 프랑스까지 갔지만, 모든 인간을 품어 안는 신을 찾던 그는 신학교에서마저 배척당한 후 인도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계급이나 성별 등 인간이 만들어 놓은 두터운 벽과는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갠지스 강에 감동한다
결국 엔도 슈사쿠가 ‘강’의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하는 주제종교를 초월하여 인간의 영혼이 갈구하는, 선과 악이 혼재한 모든 삶을 포용하는 지닌 신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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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분포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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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410번 버스 타고 퇴근 길에 <깊은 강>을 펼쳐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 옆 사람한테 쪽팔려 죽는 줄 알았다. 각 자는 자기 마음 속에 모두 깊은 강을 하나 씩 품고 있다. 자기 마음 속에 흐르는 이 깊은 강을 스스로 자기 힘으로 건너야 하는게 인간일런지도 모른다. 

wolf1000 2014-06-20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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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큼이나 깊은 생각에 빠지게하는 위대한 소설.  구매
kronovaserk 2009-09-25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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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리고 신... 결국엔 인간의 삶에 내포되어 있고 죽음과 삶은 서로 등을 맞대고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결국 다양한 길(종교들, 인생들)을 걸어 결국엔 같은 곳(겐지스강)으로 향하는 것 뿐이 아닐까....  구매
윤재홍 2016-09-13 공감 (1) 댓글 (0)
     
《침묵》보다는 많이 약하지만 가볍게 읽을만한 종교관련 소설책..엔도 슈사쿠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책이라 감동이 덜해도 숙연한 느낌은 든다.  구매
마콘도 2015-09-05 공감 (1) 댓글 (0)
     
<침묵>이 확실히 더 좋지만, 엔도 슈샤쿠가 종교에 대해 한 평생의 고민들이 한 눈에 쉽게 잘 보이는 작품이다.  구매
GoldSoul 2017-10-1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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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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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흉내 짓은 더이상 원치 않아

인도의 바라나시는 유달리 일본인과 한국인 관광자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거리를 걸어가면 여기저기 일본어와 한국어로 쓰인 간판과 홍보문구가 눈에 띄고 심지어 일본어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장사꾼들도 만날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바라나시가 가지고 있는 신비롭고 영적인 분위기가 동양인들이 그리는 인도의 이미지에 부합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뭉뚱그린 추측을 해보았을 뿐. 그런데 인도의 갠지스 강을 배경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구원에 대해 이야기 하는 '깊은 강'을 읽고서, 적어도 일본인들의 바라나시 사랑에는 이 책이 한 몫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일본인이라도 이 책을 읽고서 바라나시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구원'을 이야기하는 종교성 짙은 글이라, 처음에 너무 좋아 빨려들어가면서도 결국 뻔한 설교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고통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고통을 설마 신의 은총이란 거짓말 같은 것으로 다 해결해버리는 것은 아니겠지.하는 걱정. 책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죽으며 다시 환생하겠다 말한 아내를 찾아 인도로 온 이소베, 병에 걸려 정신없는 와중에 돌보지 못해 굶겨죽인 구관조를 가슴에 품은 누마다, 전쟁터에서 인육을 먹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는 기구치, 대학시절 장난으로 유혹했던 찌질한 남자를 잊지 못하고 권태에서 허우적 대는 미쓰코. 가장 흥미로웠던 건 미쓰코의 이야기이다. 그저 놀려먹기 위해, 잠시간의 무료함을 잊기 위해 카톨릭 신자를 유혹하고 당신이 믿는 신이란 게 뭐냐고 놀리고 아무렇지 않게 차 버렸는데 그 뒤로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삶의 권태에 부닥칠 때마다 그 답답하고 멍청했던 남자를 떠올리게 된다. 현대인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란 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생사가 달린 사건사고라면 차라리 그에 매몰되어 살아지겠는데 부족한 것 없으면서도 마음이 허한 고통, 이유도 없고 답도 없이 생을 덮치는 권태라는 괴물. 

작가는 구원을 이야기한다. 구원이되, 내가 지금껏 본 구원과는 다른 구원. 물 같은 구원, 공기 같은 구원,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 구원, 시나브로 스며드는 구원. 신을 믿지는 않지만 이런 종류의 구원은 충분히 존중의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진짜를 향한 작가의 마음이 책에서 느껴져서, 그래서 그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가트 근처의 길에는 오늘도 아이들 외에 손가락을 죄다 잃은 문둥병 환자들이 늘어서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 없는 그 손과,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천으로 짓무른 피부를 감춘 남녀가 누마다와 미쓰코에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냈다. 

"똑같은 사람인데." 

참다못한 누마다가 울먹이다시피 말했다. 

"이 사람들도....똑같은 인간인데."

미쓰코는 응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관광객인 우리가 무얼 해 줄 수 있겠는가 하는 목소리가 마음 깊숙이 들려온다. 산조나 누마다 같은 값싼 동정은 미쓰코를 안절부절못하게 한다. 사랑의 흉내 짓은 더 이상 원치 않았다. 진정한 사랑만을 원했다.

사랑의 흉내 짓은 더 이상 원치 않는다는 절규같은 저 마음가짐이 책에서 읽힌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대가는 자신이 평생 천착했던 구원이란 주제에 대해 보이지 않게 써내려 간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그 여운이 아주 오래 갔다. 사진과 그럴듯한 말 몇 줄로 쉬운 감수성 자극하는 책 말고, 가슴이 아파서 갠지스 강을 찾고 싶단 생각을 하게 만든는 이런 책을 가진 일본 국민들이 부러웠다. 

LAYLA 2013-08-12 공감(12)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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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건너게 되는 깊은 강

몇권 되진 않지만 근래 읽은 일본 작가들의 소설엔 모두 작가들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인생 경로를 걸어왔는지.

순탄치 않았던 삶이 소설을 쓰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소설 속에 작가의 삶이 인용 된 것일까.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읽는 사람은 그런 배경을 알고 읽다보면 작품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푹 빠져봐도 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게 사실이다.

엔도 슈사쿠. 이 작가 역시 1923년에 태어나 1996년 세상을 뜨기 까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생을 보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3살때 만주로 떠났다가 7년 후 부모의 이혼으로 일본으로 귀국. 세례를 받고 일본에서 대학을 마친후 프랑스 카톨릭 대학으로 유학. 건강이 좋지 않아 귀국하여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 건강이 계속 안좋아져서 이 책 <깊은 강>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하여 결국 마지막 장편 소설이 되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관속에 함께 넣어졌다는 이 책.

이 책은 시작이 인상적이다. 가망없다는 선고를 받고 병실에 누워있는 아내 옆을 지키는 남자의 귀에 병실 창 너머로 들리는 군고구마 장수의 군고구마 사라는 소리로 시작하는데, 웬지 일부러 지어낸 상황같지가 않다. 오래 병실 생활을 했던 작가이니 실제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들은 적 있던 군고구마 장수의 소리가 인상 속에 남아있다가 이렇게 소설의 첫머리로 등장시키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한 생명이 꺼져가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땀 흘리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이 세상은 엄연히, 무심하게, 어쩌면 냉혹하게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군고구마 사라는 외침은 얼마나 간절하고 아쉽게 들릴 것인가.

아내는 눈을 감으며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다시 태어나겠으니 꼭 자기를 찾아달라고.

남자에게 그녀는 무던한 아내였지만 살아있을 당시 한번도 잘 해 준 기억이 없는 아내의 그 말이 남자의 마음에 새겨진다.

이 남자 이소베 외에 이 작품엔 세 명의 다른 주요 인물들이 나온다.

동화작가 누마다는 외로웠던 어린 시절, 유일하게 자기의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통해 준 개와 억지로 이별한 후로 동물들에게 애틋한 정을 가지고 되어 주로 동물들의 이야기를 쓰는 동화작가가 되었다. 그가 큰 병을 얻어 수술을 받는 도중 위기의 순간이 오게 되고, 바로 그 순간에 그가 키우던 새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새의 죽음이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 한사람의 인물, 기구치라는 남자가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동료와 둘이 살아남게 되었는데 서로 의지하여 버텨나가는 상황에서 누구 하나라도 먼저 죽어 혼자 남게 되면 남은 사람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에 옆의 동료는 인육까지 먹고 버틴다. 그가 먹은 것이 죽은 다른 동료의 인육이었던 것을 알고 그는 평생을 죄책감으로 시달리다 병을 얻어 죽게 되었다는 것을 기구치는 뒤늦게 알게 된다.

대학 시절, 신부가 되려던 남자를 장난 삼아 유혹하고 다시 버려서 신부의 꿈을 흔들리게 만들었던 일이 있는 여자 미쓰코. 짧은 결혼 생활도 끝장이 난후 예전에 자기가 버렸던 남자가 신부가 되어 머물고 있다는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이들 넷이 공통으로 향한 곳은 인도이다. 모두 어느 정도 인생의 깊은 속까지 들어가 본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인도의 갠지스 강, 삶과 죽음이 어우러져 있는 그 강을 보며 각자 자기의 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오랜 투병 생활을 해왔으며, 카톨릭 세례를 받고 신의 존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는 작가의 생각이 네 사람의 행로와 생각으로 분산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여러 각도에서 해석 가능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작품 자체가 '깊은 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예술상 수상을 하기도 했다는 이 소설.

작품 속 인물의 경험과 생각이 직접 서사로 드러나기 보다는 상징과 은유로 전달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때문에 별점 네개에 체크한다.

hnine 2014-02-04 공감(9) 댓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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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라기 보다 손길˝


<침묵>의 작가로 유명한 엔도 슈사쿠의 책을 7월에 처음으로 읽었다. 읽은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 다시 책을 꺼내 살펴보니 참으로 줄을 많이 쳐놨다. 평생을 신과 구원에 대해 고민했던 작가의 마지막 소설이다.

종교는 진리는 찾아가도록 길을 인도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삶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가 종교에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종교는 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미리 답을 정해놓고 그 답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하는 듯 하다.

어찌보면 종교도 주입식 교육이니 스스로에게 질문할 기회가 없음은 당연하다.

이 소설에는 카톨릭 신부인 오쓰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신부가 되기위해 프랑스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지만 그의 믿음에는'이단적인 구석'이 있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신의 사랑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서양 중심적이라 일본인인 오쓰는 그 사상에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결여되 있음을 느낀다. 그가 느끼는 신은 유럽의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생명'처럼 그 어디에나 있는 존재이다.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p.177)

"신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계십니다. 유럽의 교회나 채플뿐만 아니라, 유대교도에게도 불교도에게도 힌두교도에게도 신은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p.182)

"저는 오히려 신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계시며 각각의  종교에도 숨어 계신다고 생각하는 편이 진정한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p.184)

오쓰는 프랑스의 성직자 앞에서 이런 말들을 쏟아낸다. 기독교만이 절대라고 믿는 서양 성직자의 도도함 앞에서 그의 이런 발언은 '순종의 덕'이 부족한 이단적인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며 생각하는 오쓰에게서 나는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을 보았다.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 안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실현하고 구하고자 한 그의 정신과 행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에는 각기 사연이 다른 4명의 인물이 나온다. 이들은 인도 단체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되는데, 무슨 사연으로 인도라는 나라를 찾게 됐는지, 이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인도를 배경으로 번갈아가며나온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강', 정확히 힌두교도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찾아오는 성스러운 장소인 갠지스 강은 신의 손길처럼 한없이 자애롭고 더 이상의 차별이 없는 모두를 구원으로 이끄는 어머니와 같은 강이다. 우리 인간에게 어머니의 마음으로 감싸주고 받아주는 그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위안이고 어찌보면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기도 할텐데, 교리와 원칙의 노예가 된 종교는 인간에게 진리로 가는 길의 안내자가 될 수 없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책 속에서 오쓰가 자주 읽는 <마하트마 간디 어록집>에 나오는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 (p.287)

우리는 같은 목적지(진리)를 향해 가는 모두가 가련하고 애틋한 사람들인데 왜 길이 다르다고 서로를 죽이고 미워하며 등 돌리는가...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신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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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9-13 공감(8)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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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깊은 강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밖에 있어 우러러보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힌두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깊은 강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누구에게나 신은 필요하며 어디에나 신은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몽이엉덩이 2017-09-21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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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올초에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클래식 캘린더>를 샀더랬다. 무엇인고 하니.. 매일 한페이지씩 민음사전집의 1권부터 제일 첫 페이지가 나오는 식이다. 어떤 책의 첫페이지만 읽어도 끌리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첫 문장은 군고구마, 군고구마아, 따끈따근한 군고구마아. 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 이 소설에는 인도 단체여행을 함께 가는 사람들이 몇명 나온다. 물론 제각각 인도를 여행하려는 이유는 다르다. 이소베는 아내의 환생을 찾아서, 미쓰코는 한 때의 남자 오쓰를 찾아서, 기구치는 기구치대로 정글에서 인육을 먹은 고뇌를 잊고자, 누마다는 유일한 위안이었던 동물 구관조를 찾아서.. 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자신의 인생에서 놓지 못하는 무언가를 붙잡고 번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무언가를 붙잡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갈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몇년전 재밌게 읽었던 <테레즈 데케루>의 이야기가 자주 나와 반가웠다. 엔도 슈사쿠는 종교색이 짙은 작품이 많다는 데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종교에 대한 생각이라면 오쓰의 경우처럼 모든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데 나도 동감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순간순간 그 만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주어진 하루를 값지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도라는 나라는 흥미롭지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도 갠지스 강가는 이런 분위기일까 궁금해진다. 이 소설의 '깊은 강'은 인도인에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몸도 마음도 정화가 일어나고 자신의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도인의 힘이 이 강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인도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가 마음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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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피필름 2017-03-14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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