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기독교인이 바라본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 교류와 성령의 역사>
Michie Yoshida님에게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얘기를 했는데 우치무라 간조를 말한다면, 과거에 급제한 조선의 유학자(儒學者)로 임오군란 당시 민비를 위장해 피신시킨 공로로 일본으로 떠나 일본에서 근대화된 일본의 농업, 해운, 우편 시설 등을 배운 인물 얘기를 안할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수정(李樹廷) 선생입니다. 이수정 선생은 당시 조선의 농업 생산력 향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근대식 농업에 관심이 많아 당시 일본의 농학박사인 쓰다센(津田僊)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쓰다센 선생의 자택에서 그에게 전해 받은 것은 다른 것보다 복음의 충격이 컸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수정 선생은 쓰다센 선생에게 근대 농업 등에 대한 서적과 같이 최초로 한문 성경을 받아 읽게 됩니다.
이수정 선생은 쓰다센에게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훈련 받았고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셨던것 같습니다.(전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루터교에서 말하는 그 영적 체험을 여러번 경험해 대략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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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선생은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세례 직후 제3회 전국 기독교도 대친목회에 참석해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 앞에서 조선어로 대표기도를 하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조선어를 알아들을 리가 없는 데도 많은 일본인 신자들께서 영적 감화를 받아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흰 옷을 입은 인물이 이수정 선생이고 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쓰다센 선생, 둘째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동지사대학 설립자 니지마 조(新島 襄). 그리고 다섯번째가 제가 존경하는 무교회주의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입니다. 얼마나 각별하고 특별한 성령의 역사와 교류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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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선생은 자신의 성경의 깨달음을 신앙고백적 형식의 한시로 표현하곤 했는데 저는 다음에 일본에 가면 니지마 죠의 생가에 찾아가 거기에 남아있는 이수정 선생의 그 간증의 기록을 꼭 직접 보고 싶습니다.
그의 신앙은 살아있고 살아있음의 증거로 아름답고 순수한 경배와 빛이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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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있는 것은
나무에 뿌리가 있는 것과 같고
사랑함과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그 나무 뿌리가 마름과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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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은 물과 같아서 뿌리를 윤택하게 하나니
가을과 겨울에 나뭇잎이 떨어져도
그 뿌리가 마르지 아니하리라
항상 봄과 같아서 싹이 나고 꽃이 만발하여
그 잎이 무성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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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공경하고 말씀을 믿으면 꽃이 피고
얽히고 설킨 가지마다 열매가 가득하니
그 깊음이 있고 심히 크고 달도다
그 몸통은 소나무와 잣나무 같아서
눈과 서리가 와도 가히 시들게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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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선생은 이후 일본에서 한글 성경 번역 작업을 했고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앙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지금 일본의 한인교회들로 모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수정 선생은 조선에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미국 선교단체에 파송을 요청하기도 했고 조선 선교의 당위를 미국의 목회자들에게 절실하고 간절하게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1886년 그는 많은 기대를 안고 복음의 사역에 대한 사명감에 부풀어 조선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와 민씨척족 세력(위정척사)은 귀국하자마자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이수정 선생을 잡아 죽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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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대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어떠한 무지와 그릇된 편견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전근대 조선과 대한제국의 압제로부터 조선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했다고 한국이 저를 친일파니 신친일파니 해괴망칙한 말이나 표식을 붙여 아무리 잡아 죽이거나 정죄하려 해도, 사람이 고마운 것은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은 진실 그대로 말해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진을 볼때마다 저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말할 수 없는 감동의 교류와 손길과 성령의 역사를 느끼며 눈시울이 붉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누가 어떤 의도에서인지 이러한 양국 교류의 진실의 역사를 감추고 억압하고 분리시키려는 노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아마 저같이 진실을 알려고 하고 싶어하고 나누고 토론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친일파라는 표식을 붙여 정죄하여 현재의 증오의 체제에서 이득을 보려는 자들이 그들인 것 같습니다.
66You, 崔明淑, Jaewon Choi and 6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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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is Park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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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replied·1 reply - Lee Doosoo이수정 선생에 대해선 처음 들았습니다. 감사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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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Choi replied·1 reply - Jaewon Choi홍영선 잘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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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Jaewon Choi정양희 위정척사와 반일, 친중과 종복이 한국 현재의 권력 아닙니까? 저는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현실 바로 앞의 절벽에 두려움을 느끼고 위험성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소환한 역사입니다.결국 이동인도 일본으로 떠나기 전 ‘근본도 없는 놈’이 잘난척하고 고종에게 관심 받는다며 김홍집에 의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까?죽을 놈이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중요한 매개자 행위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나라의 모습에서 지금은 벗어 났는지, 지금 한국 사회가 고립과 민족주의로 회귀할 수 밖에 없는 차단이그런 생기와 매개를 착실히 소거해나가는데 따른 결과를 아닌건지 묻고 싶습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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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Jaewon Choi길도형 이수정 선생은 신앙인이 되기 전에 정해진 토지의 생산량에 굶주리는 백성을 배불리 먹을 방법을 근대적 농법에서 찾고자 했던 애국자셨습니다.조선의 관료가 조선의 의복을 멋지게 지켜 입는게 저는 멋있어 보입니다^^ 그때 유학자들 일부에게는 그런 강단과 자세 눈빛이란게 있었는데지금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엇이라 생각합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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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Jaewon Choi김승호 이수정 선생님이 신앙에 눈 뜬 모습이 저는 조선 백성이 예수님의 사랑을 만난 감격적이고 뜨거운 순간이라 생각합니다.유교 성리학의 바탕 위에 성경 공부 해나가는 이수정 선생 모습에서 저는 기독교인 분들이 말씀하시는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저런 빛과 따뜻함이라는 것을 느끼며 알 수 있을것만 같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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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호Jaewon Choi 네, 공감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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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Jaewon Choi저는 기독교를 잘 모릅니다. 성경은 세 번 이상 정독했고 성령충만하게 많은 은혜속에서 읽었습니다.저는 한국 사회의 위기가 곧 한국 교회의 위기이자 기독교인들의 위기라 생각합니다.기독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저는 우치무라 선생과 김교신 선생의 신앙에서 오직 말씀만 부여잡으려 했던 몸부림이 가르쳐주고 말해주려는 것들이 많다 생각합니다.한국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기본에서 오직 말씀의 기본만을 움켜쥐고 성령의 지혜로 지금 한국의 위기와 벼랑 앞에서 기독교인들이 예수님 당신의 사랑과 강건함과 지혜의 역사를 부르짖으며 강구해주시를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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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최지영 저는 신앙인들이 말 그대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아직 모르는 이들에게 그 주님의 사랑을 증거해주시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갈급한 그야말로 영적 도전과 위기에 우리가 처해 있다 생각합니다.전 이런 대화를 할때도 많은 성경의 구절들이 떠오르고 옵니다. 갈급하고 주린 자들에게 성경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해주고 복음을 전해주세요.한국에는 지금 당신의 사랑을 알고 체험한 이들의 복음과 실천이 필요합니다..“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입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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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 Jounbo Shim수신사 김기수가 일본의 공장 등 근대화된 산업기반에 대한 시찰을 거부하고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뭐 김기수라고 호기심이 없고, 궁금증이 없었겠습니까? 자칫 호기심을 보이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귀국 후 한 방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바짝 엎드려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 이 나라의 돌아가는 꼬락서니도 과히 다르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도 트집잡힐 걱정 없이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죠. 여기에 무슨 자유가 있고, 창의가 남겠습니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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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h
- Michie Yoshida저도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모리 아리마사 森有正(메이지의 정치가 모리 유레이/아리노리森有礼의 손자)가 저서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1976)를 쓰고, 저는 20대에 모리 아리마사가 그 전에 쓴『바빌론의 흐름의 강가에서』로 실존주의적인 자기형성의 출발점에 섰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공부할 때 국제 기독교대학교 대학원의 종교학 교수(스코틀랜드 국교회 목사)에게 구약성서를 텍스트로 읽어 나가는 색다른 방법으로 영어를 배웠는데(ㅋ), 거기서 우치무라 간조에 대해 알게 됐어요.제 지식은 모두 어중간하지만 기독교와 일본인, 일본 속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다소 알게 되었습니다.사상가 우치무라 간조를 높이 평가한 철학자·불문학자 모리 아리마사에 대해 쓴 『모리 아리마사 - 그 경험과 사상』(스기모토 하루오: 시인, 문예평론가)속의 한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예술가는 정의定義를 조형으로 상징하려고 할 것이다.사상가는 문자에 의해서.……중략……그리고 정의의 극치로서 하나의 종교적인 것을 (사람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것이 인간의 더듬이는 보편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단편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기독교적 자연관도 아미니즘과 통하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략적인 지식으로 극론으로 치닫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만...사진은, 그 교수가 쓴 「Chiristianity and Japan」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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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Michie Yoshida 엔도 슈사쿠遠藤周作가 쓴 <침묵沈黙>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격을 저는 잊을수 없습니다. 저는 조선 말과 마찬가지로 헐벗고 민란과 잦은 봉기 속에 그것이 천주교든 기독교든 예수님이든 이름은 아직 모르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체제에서 벗어나 절대자의, 주님의 구원을 부르짖고 먼저 부르짖으며 구원으로 달려갔던 이들의 그림자가, 바로 이 침묵에서도 묘사되었던 모습이 감격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에서도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의 그것이었던 것입니다.저는 독일에서 처음 성경을 접했었어요. 유럽의 문명적 지반과 계보의 근원이자, 모든 도구상자와 어휘와 상징들이 성경에서 연원하고 유래하고 있기 때문에, 실은 조금만 깊은 철학 레벨의 대화로 들어가려면 성경에 대한 이해와 앎없이 철학적 대화를 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말씀하신 내용에서 좀 더 발전시키고 집중해 보자면 예술가가 애초에 정의(定義)를 조형으로 상징하려고 했던 구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언어 활동에서 추방하고 있는 대기와 시간성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해요. 정의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미끄러지고 실패하고 새롭게 규정됩니다. 예술가가 조형으로 상징화하려 했던 정의가 있고, 이러한 과정에 시간이 개입하며 작용되는 정의의 새로운 규범이 있고, 형상으로서 추구되는 그 정의의 형상성이 있고, 물리적 형상화 속에 새롭게 나타나는 변태의 새롭지만 모호한 것이 있으며, 그 작품을 통해 사회와 관객들에게 투영하려는 의도의 정의와, 사회가 피드백하며 내적 출렁임(intra-action)을 가지는 즉 재설정되는 정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저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기독교적 자연관이 애니미즘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의 애니미즘은 불교로부터 연원하는 것으로 이해했었거든요. 불교에 대한 얘기는 제가 시간이 허락되는 다음 기회에 얘기해보기로 하구요. 선생님이 일본 기독교와 애니미즘 연관성을 말씀하셨다면 저는 우리가 <정의定義>를 논하는데 있어 이것을 언어로 다루기 때문에 놓치는 대기와 시간성의 개입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예술가는 정의(定義)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며 애초에 규정된 정의를 고수하려고 했을때 오는 작용의 미학적 위험성을 몸으로 경험하며 체화해 가는 존재들입니다. 물질을 통해 만지고 겨루고 시간을 소요하며 대기와 화학 반응과 전기적 작용 등을 통해 개입하는 자연을 항상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술가가 추구하는 물리적 형상화, 정신성의 투영이 체화할때 노자적 의미의 새로운 도로서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불투명하고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불확실성의 조형적 갈등의 노정을 과감히 '도'로서 지나야만 과거의 인습을 벗어난 새로움과 간신히 찾아지고 조우할 수 있다는 걸 안다는 것입니다.일본이 가진 애니미즘과 만물 정령에 대한 상상력과 모티브는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실험실의 진공된 표본이나 문자의 세계가 가진 한계, 즉 관념화를 통해 대기와 흐름과 시간을 배제시키고 추방하는 맹점을 극복하고, 다양한 형태의 변형과 수평적인 세계의 출렁임을 허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원주의적 세계상의 다양한 변태들을 관용하고 공존할 수 있는 지혜의 여지를 가지게 된 결과의 세계상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그러나 모화사상과 끊임없이 관념 차원의 수사학과 레벨링에 매몰되었던 조선은 실험실의 레벨에서 대기와 물질의 현상성으로부터 차단된 블랙박스의 구조 안에서 스스로 세계로부터 유리되었고 소중화의 준거틀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주자가례의 죽은 제례에 포획당하고 만 것이라 생각하는 관점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상징조작과 세레모니가 가문 차원으로 수렴되니 더이상 영적 활동과 공유되는 상상력은 지극히 제한되고 다원주의적 세계상은 사문난적으로 추방되니 조선이 남기고 전하는 유산이란 다양성과 풍부함을 가지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봅니다.일본과 자꾸 비교해서 송구합니다만 저는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침묵沈黙>은 정말로 위대한 소설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의 선교사 역사는 그 압박과 순교의 역사는 일본만큼이나 혹독하고 잔인하고 처절했습니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와 이노우에 가오루 등의 조슈 오걸 들과 기독교 선교사들과 그들보다 먼저 광명을 갈구하며 조선의 체제를 벗어 나고자 했던 백성들의 처절한 역사를 기록한 한국의 소설이 저에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엔도 슈사쿠가 있다는 것으로만으로도 같은 동북아 인으로 자랑스러워 해도 될까요?한국에서도 기독교가 말하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힘과 성령의 은혜와 이 모든 것을 감싸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대질과 창작의 과정이 있었지요. 그것이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춘원 이광수를 말하고 싶지만 평가해야 할 위대한 기여의 인물들 모두에게 친일파라는 표식을 붙이고 저주의 감옥에 가둬 두었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과 같은 위대한 소설이 춘원 이광수의 이름으로든 누구의 이름으로든 한국에서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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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호Jaewon Choi 저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처음엔 흥미진진했지만, 도중부터 너무 처절하여 다 읽을 수 없었지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책이었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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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h
- Jaewon Choi김승호 침묵의 본 뜻과 의도는 처절한 비명을 부르짖는 내용부터 등장합니다.“... 당신은 왜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까?” 하고 신부는 가냘픈 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이 당신을 위해 만든 마을까지도 당신은 왜 불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사람들이 내쫒길 때에도 당신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시지 않고, 이 어둠처럼 왜 그저 침묵만 지키고 계셨습니까? 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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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호Jaewon Choi 하나님의 뜻 성사(成事)는 인간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그래서 예수님 이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침묵하실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요?고통과 애통함이 없는 지상천국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뜻 성사(100%)는 하나님의 책임(95%)과 인간의 책임(5%)이 합쳐져야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러나 인간의 책임 5%도 인간에게는 100%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겠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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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김승호 저는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죄에 속한 인간들이 감히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헤아리거나 평가하거나 기대한다는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 생각합니다. 엔도 슈사쿠는 제가 책을 읽은 느낌으로는 카톨릭적 신앙 모델에서 프로테스탄티즘으로 전회하는 과도기에 하나님을 부르짖고 주의 침묵에 대해 카톨릭적으로 절망하고 칼뱅주의적으로 묵상하는 것이 그의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우리는 구원을 예정할 수 없으므로 생활 속에서 자기 삶의 비전과 지극히 성실함과 진심을 다하며 구원해 줄 것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프로테스탄티스트들의 올바른 윤리이자 신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전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주의 종들이 그러한 성실함과 비전에의 노력과 기도와 실현을 통해 궁극적으로 부의 축적을 통해 자본주의를 잉태하였고 그러한 바탕에서 자유주의의 위대한 꽃을 피워낸 것이라 생각합니다.그 씨앗은 조선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유산 위에 있는 것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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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호Jaewon Choi 공감합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하고 놀랍죠.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예수님 이후 2천년간 우리가 침묵이라고 느낀 그 기간, 주님이 다시 오셔도 생각이 다르다고 죽일 수 없도록,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를 준비하시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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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김승호 저는 성경의 다음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그것은 오직 개인과 자유함 속에서 가질수 있는 것이며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가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하기 이전에 선택받은 존재들이란 것 또한 성경의 말씀이라 생각합니다.개인과 자유는 결코 처음부터 보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도 마치 이러한 자유가 처음부터 보장되어 있었던 것처럼 느끼는 우리들에게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을 예정받지 못했음에도 마치 구원을 확정받은 선민들처럼 행동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자들도 처음부터 사악한 원흉이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원이 예정되었다 오만하게 믿는 이들이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매달아 놓는 죄악을 저는 오늘에도 봅니다.“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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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호Jaewon Choi 공감합니다. 그러기에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죠.2천년전 구원받은 것처럼 생각하며 구세주를 죽인 유대인들처럼, 오늘날 우리도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서로 심판하다가 실족할 수 있겠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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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
Active - Jaewon ChoiMichie Yoshida 오늘 긴 얘기들을 나누다보니 문득 제가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어느 미완성 하모니카 곡을 듣고 싶어지네요<한국사람>이라는 하모니카 연주곡이에요. 한국사람은 아직 변태중이고 변신중이며 제안되고 형상화되고 또 열심히 해킹도 당하며균열을 일으키기도 하는 그러한 과정 중의 존재라 생각합니다. 정하여진 것도 없고 고정되어만 있을 필요도 없지만 이제부터는 국가정체성과 국가이성을 분명히 가져가는 것이 더 행복한 개인이 많아지는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생각해요.그런데 자유롭게 열린 만큼이나 불안도 큽니다. 대륙의 초입이거나 말미이거나 허파에 해당하는 반도 지정학의 운명일수도 있겠네요어쨌거나 잠이 오지 않아 하모니카를 들으며왜 김현식은 이 노래를 한국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완성도 못한채 남겨두었을까요? 허튼 또는 의미없는 질문에 빠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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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won Choi수군작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저는 선생님이나 다른 분께 제 글에 대해 평가를 부탁드리며 쓴 것이 아닙니다.제가 한국에서 토론을 노력하지만 자주 접하는 한계이자 문제라 선생님께 감히 송구스러움을 무릎쓰고 말씀 드리자면많은 분들은 다른 누군가의 발제가 있을때 그걸 관전하고 평가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저는 발제한 이에 대해 우선 고마움을 표하고, 평가를 하기 이전에 거기에 대한 읽은 이의 생각과 의견을 담아 제안해주시면 더욱 생산적인 논의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과 나름의 논리로 발제했을때 그만큼은 아니어도 다양한 여러 선생님들의 생각을 담아 주시면 감사한 것입니다.저는 일제시대 또는 일정기를 식민화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적인 현상이지만, 제 조상이기도 하지만, 전근대 문명 개화되지 않은 원시인들이 근대화 되고 나니 그게 해방이 아니고 식민화는 나쁘다는 식의 관전하는 자체가 저에게는 가당치 않은 관점이라 생각합니다.조선과 대한제국은 외세를 붙잡든 내부에서 일어난 봉기나 피의 쿠데타든 떨쳐 버리고 근대화 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성령의 역사를 느끼며 눈시울이 붉어오는 것을 느낍니다"라는 부분을 발췌하여 껄끄럽다 하셨는데 저는 선생님의 껄끄러움이나 그런 반응을 기대하거나 평가받기 위해 쓴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저는 종교적 멘탈리티로 역사를 해석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제가 보고 느낄때 이러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위와 같은 발화 외에 그것을 이성이나 어떠한 과학적 준거로 꼭 환원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선생님의 댓글에 대해 감사합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쓰는 공동체에서 꼭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제안드렸습니다. 혹시 무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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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석고등학생 때는 강경 무신론자였고 지금도 종교가 없지만, 대학교에서 들은 교양 강의 덕분에 기독교를 보는 시각을 바꿀 수 밖에 없었습니다.성경 강좌라길래 수업의 형식을 빙자한 간증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교수님은 굉장히 지혜로운 분이시더군요. 그 분은 불교나 유교처럼 인간이 수행을 통해 관념적인 진리에 도달하면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무한사상'과 달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진리는 눈에 보이는 자연 그대로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감각기관을 통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도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유한사상'이기에 민주주의와 과학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고 설명하셨죠.저는 전근대 사회의 모순과 제3세계의 참혹한 삶, 그리고 소련과 중국을 보면서 서구 자유주의 이외에 대안 문명의 길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러고 나니 그 뿌리인 기독교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