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3

[한살림과 철학 6강]원불교 : 지구를 공경하는 불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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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과 철학 6강]원불교 : 지구를 공경하는 불교

푸훗

2021. 4. 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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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강의에서 우리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해월선생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해월선생의 추모비를 세운 후 도와준 분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알아보았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해월 선생은 삼경(三敬)을 설파하셨어요.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이치를 볼 때에 인간과 천지만물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한울님으로 섬기고 공경하시고 가셨기에 모든 이웃이라는 말로 하였고, 벗이란 말은 삼경의 도리로 볼 때에 선생님께서는 도덕의 극치를 행하셨기 때문에 일체와의 관계가 동심원적 자리, 절대적 자리에 서계셨기 때문에 벗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보따리라는 말은 방방곡곡 어디를 가시나 지극히 간단한 행장으로 보따리를 매시고 다니셨기에 일행을 지긋이 한자리에 머무실 수 없이 설법하고 민중들과 같이 하셨으므로 최(崔)보따리라고 했습니다.

이 한마디 법설에는 해월 삼경(三敬)의 일체의 도리가 다 들어있고 이렇게 하태(下台) 전면에 쓰게 된 것은 산업문명에서 탈출하여 앞으로의 지구, 나아가서 우주의 일체의 존재가 공생할 수 있는 도리가 여기에 있음으로 이렇게 썼습니다.”

1990년 4월 17일 장일순


오늘의 수업은 삼경의 일체의 도리를 받아안은 종교, 원불교에 대해 듣는 시간.

원불교는 대종사 소태산 박중빈이 큰 깨달음을 얻은 1916년, 최초의 법어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고, 교단의 경제적 기초를 확립하는 시기(저축조합 설립), 경전을 만드는 시기(교리를 모은 정전, 창시자의 언행록 대종경), 인재를 양성(유일학림 설립- 원광대학의 전신)하고 포교활동을 하는 시기를 거치며 교단을 발전시켜 나갔다.

원불교는 궁극의 진리를 '일원상(ㅇ)'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모두가 하나다' 라고 의미이고, 사은 중 동포은은 해월의 천지부모 사상과 다르지 않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자와 여자도 하나다'라고 해서 교단내 에서도 여성의 권위가 정확히 지켜지고 있고, 실제 오늘도 두 명의 여성 지도자 일화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오늘의 이야기 중에 나에게 와닿았던 것 중 첫 번째는 원불교는 경계를 부정한다는 것.(국한, 간격, 한계, 울타리, 장벽을 부수고) 세상만물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해서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다 잘 살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진리를 활용하지 하면 다 무용한 것이라며^^

"널리 살피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저의 하는 일에만 고집하며 저의 집 풍속에만 성습되어 다른 일은 비방하고 다른 집 풍속은 배척하므로 각각 그 규모와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드디어 한 편에 떨어져서 그 간격이 은산철벽같이 되나니, 나라와 나라 사이나 교회와 교회 사이나 개인과 개인 사이에 서로 반목하고 투쟁하는 것이 다 이에 원인함이라. 어찌 본래의 원만한 큰 살림을 편벽되이 가르며, 무량한 큰 법을 조각조각으로 나누리요. 우리는 하루 속히 이 간격을 타파하고 모든 살림을 융통하여 원만하고 활발한 새 생활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니 그러하다면 이 세상에는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나니라."

두 번째 인상깊었던 것은 '상(相)'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성환 선생은 이런 고정성의 부정을 동양철학의 특징이라며 몇 가지 예를 들어주셨다.

소태산 박중빈 스스로 '나는 너희들에게 참 선생을 인도하여 주는 사람이다'라고 박노신에게 말했는데 일찌기 공자도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겠는가? 배움에는 일정한 스승이 없다'고 했단다.

"세상 사람들은 사서삼경이나 팔만대장경이나 기타 교회의 서적들만이 경전인 줄로 알고 현실로 나타나 있는 큰 경전은 알지 못하나니 어찌 답답한 일이 아니리요. (중략)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도 경전이 아님이 없나니 (중략) 언제 어디서나 조금도 끊임없이 경전이 되나니라"

이런 표현보다는 이공주와의 대화에서 내가 베푼 은혜 또한 상이 되어 나의 죄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 '어떠한 선을 지었더라도 선을 지었다는 상이 없어야 무상한 천지대덕의 가르침을 본받은 사람'

공부하는 사람은 달마의 "응용무념을 덕이라 한다", 노자의 "상덕은 덕이라는 상이 없다"는 도리를 알고 이 마음을 응용하여야 은혜가 영원한 은혜가 되고 복이 영원한 복이 되어 천지로 더불어 그 덕을 합하게 될 것이니, 그대는 그 상 없는 덕과 변함없는 복을 짓기에 더욱 꾸준히 힘쓸지어다.(『대종경』제6 변의품(辨疑品) 24장)

원불교의 법문 중 천지의 이치를 깨닫고 진리의 중추로 삼을 것을 설파하고 천지가 없다면 우리도 없음을 알아 그로부터 큰 은혜를 받음을 깨닫고 천지의 도를 본받아 행함으로써 보은이 되는 동시에 우리가 곧 천지와 합일하여 덕화가 만방에 미칠 것이다라는 것이 있다.

이는 해월선생의 천지부모 사상과 다르지 않다.

“천지는 곧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니, 천지부모는 일체이다. 부모의 포태가 곧 천지의 포태이니, 지금 사람들은 다만 부모 포태의 이치만 알고 천지포태의 이치와 기운을 알지 못한다. 하늘과 땅이 덮어주고 실어주니 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앙으로써의 원불교는 모든 종교의 진리를 받아안아 끊임없는 교육과 수행(수련)을 통해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단다. 한 살림 역시 끊임없는 공부와 현실에서의 수행을 통해 경계를 자각하고 발전적인 지속성을 갖기를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