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
Alain Badiou, Translated by Ray Brassier
May 2003
128 Pages
Series
Cultural Memory in The Present

DescriptionReviewsAbout the Author
In this bold and provocative work, French philosopher Alain Badiou proposes a startling reinterpretation of St. Paul. For Badiou, Paul is neither the venerable saint embalmed by Christian tradition, nor the venomous priest execrated by philosophers like Nietzsche: he is instead a profoundly original and still revolutionary thinker whose invention of Christianity weaves truth and subjectivity together in a way that continues to be relevant for us today.
In this work, Badiou argues that Paul delineates a new figure of the subject: the bearer of a universal truth that simultaneously shatters the strictures of Judaic Law and the conventions of the Greek Logos. Badiou shows that the Pauline figure of the subject still harbors a genuinely revolutionary potential today: the subject is that which refuses to submit to the order of the world as we know it and struggles for a new one instead.
<사도 바울: 보편주의의 기초> 요약 및 평론
<1. 집필 배경과 문제의식: 정체성주의와 자본주의적 보편성에 맞서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1997년에 발표하고 2003년 레이 브라시에의 번역으로 널리 알려진 <사도 바울: 보편주의의 기초>는 신학 서적이 아니다. 무신론자인 바디우가 사도 바울을 소환한 이유는 종교적 교리를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두 가지 왜곡된 보편성에 맞설 철학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바디우가 보기에 현대 사회는 두 축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하나는 전 지구를 단일 시장으로 묶으며 모든 인간적 가치를 화폐와 상품 교환으로 환원하는 <자본주의적 거짓 보편성>이다. 다른 하나는 이에 반발하여 민족, 인종, 젠더, 종교, 소수 집단 등 특수한 정체성에 갇혀 폐쇄적인 벽을 세우는 <상대주의적 정체성주의>다.
바디우는 이 둘 모두 진정한 해방을 가로막는다고 진단한다. 차이에만 매몰되는 상대주의는 분열을 낳고, 자본의 통합 논리는 인간을 상품 소비자로 전락시킨다. 바디우는 특수성에 기반한 차별과 분리를 단숨에 횡단하며 모든 인간을 하나로 묶는 <급진적이고 엄격한 보편주의>를 복원하고자 한다. 그리고 바로 이 보편주의의 최초 이론가이자 실천가로서 신약성서의 사도 바울을 재발견한다.
<2. 핵심 논지 요약: 사건, 주체, 그리고 네 가지 담론>
(1) 사건과 진리-절차: 부활의 의미 바디우 철학의 핵심 축은 <사건(Event)>과 <진리-절차(Truth-procedure)>다. 세계의 기존 질서와 법칙 안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단절적 계기가 터져 나오는 것이 <사건>이다. 바디우에게 기독교의 '그리스도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나 기적이 아니라, 순수한 사유의 사건 모델이다.
부활은 율법이나 자연 법칙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의 모든 규범적 잣대를 일거에 무효화하는 단절이다. 바디우는 바울이 예수의 도덕적 가르침이나 기적 행위에 집중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사건 하나에만 집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주체는 이 예측 불가능한 사건에 맞닥뜨려 그것을 참으로 선언하고, 그에 충실하게 헌신할 때 탄생한다.
(2) 유대적 율법과 그리스적 지혜의 극복: 네 가지 담론 구조 바울 당시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두 거대한 사유 틀이 있었다. 기적과 표적을 요구하며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선민과 이방인을 가르는 <유대적 담론>, 그리고 이성과 논증을 통해 세계의 우주론적 질서를 설명하려는 <그리스적 담론>이다.
바디우는 바울이 이 두 담론을 모두 거부했다고 분석한다. 유대적 율법은 구원을 민족적 혈통과 계명 준수라는 특수성에 가두며, 그리스적 철학은 세계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할 뿐 진정한 단절을 일으키지 못한다. 바울은 율법과 지혜를 넘어 <십자가의 어리석음>이라는 제3의 담론, 즉 사건에 근거한 선언을 내세운다.
(3) 특수성의 폐지와 보편적 주체 바울의 유명한 선언인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다"는 구절은 바디우 분석의 정점에 놓인다. 진리는 특정한 민족성, 사회적 신분, 젠더의 차이에 종속되지 않는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의 특수성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는 그러한 차이들이 아무런 권리나 특권을 갖지 못하도록 <무효화>하는 일이다. 진리는 만인에게 동등하게 열려 있을 때만 진리일 수 있다.
(4) 믿음, 희망, 사랑: 진리의 실천 양식 바디우는 바울의 세 덕목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한다.
<믿음(Pistis)>: 사건의 발생을 인정하고 선언하는 결단이자 충실성이다.
<사랑(Agape)>: 믿음을 세계 속에서 실제로 살아내고 보편적 연대를 구축하는 물질적 힘이다. 사랑 없이는 보편적 진리가 조직화될 수 없다.
<희망(Elpis)>: 사건의 효과가 역사 속에서 지속될 것이라는 지치지 않는 끈기다.
<3. 비판적 평론: 해방의 보편성과 독단의 경계>
(1) 현대 정치철학에 던진 결정적 충격 바디우의 <사도 바울>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시킨 차이의 철학, 미시정치,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통렬하게 짚어낸 명저다. 정체성 정치가 오히려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흡수되어 하위문화 소비로 전락하던 시기에, 바디우는 특수성을 가로지르는 대담한 보편성의 정치를 복원해냈다. 바울을 교회 제도의 창시자가 아니라 '레닌'과 같은 혁명적 조직가로 읽어낸 그의 독해는 2000년대 대륙철학계 전반에 바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 추상성과 형식주의의 위험 그러나 바디우의 사유는 명확한 한계와 위험성을 함께 안고 있다. 첫째, <구체적 삶의 맥락에 대한 탈색>이다. 바디우는 보편성을 세우기 위해 문화적, 역사적 특수성을 지나치게 부차적인 것으로 격하시킨다. 현실의 억압은 젠더, 인종, 계급이라는 구체적인 차별의 축을 통해 작동하는데, 이를 '진리 앞에서는 무의미한 것'으로 일축하는 것은 자칫 구체적 차별 투쟁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할 위험을 낳는다.
둘째, <결단주의와 독단성의 함정>이다. 사건은 합리적 근거나 객관적 징후 없이 오직 주체의 충실성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이는 진리와 맹신, 혁명과 파시즘적 광신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철학적 난점을 노출한다. 부활이라는 허구를 모델로 삼아 진리의 힘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결국 진리의 정당성을 증명할 외부적 기준을 완전히 상실한 채 주체의 일방적인 선언에 의존하게 만든다.
<4. 맺음말>
바디우의 <사도 바울: 보편주의의 기초>는 민족적, 국가적, 집단적 테두리에 갇힌 편협한 애국심이나 정체성의 울타리를 단호히 거부한다. 동시에 자본의 획일화에 굴복하지 않는 제3의 길, 즉 만인을 향해 동등하게 열린 해방적 보편성의 가능성을 치열하게 논증한다. 역사적 바울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분열과 고립이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차이를 넘어 보편적 연대를 기획할 것인가를 묻는 이들에게 여전히 강력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역작이다.
알랭 바디우와 조르조 아감벤의 사도 바울 해석 비교 분석입니다.
<알랭 바디우와 조르조 아감벤의 사도 바울 해석 비교 분석>
2000년대 초 현대 철학계에서 일어난 '바울 르네상스'의 양대 축은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 보편주의의 기초>(1997)와 조르조 아감벤의 <남겨진 시간: 로마서 주해>(2000)다. 두 철학자는 모두 무신론적 관점에서 바울 서신을 급진적 정치철학의 원천으로 다루었으나, 바울 텍스트를 읽어내는 시각, 율법과 메시아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해방적 주체관에서는 뚜렷한 대립각을 세운다.
<1. 핵심 개념과 방법론의 차이: 선언적 단절 대 메시아적 정지>
두 사상가의 해석 차이는 텍스트를 대하는 방법과 궁극적으로 도출하려는 사유 틀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 비교 항목 | 알랭 바디우 | 조르조 아감벤 |
| 중심 텍스트 | 고린도전서 (특히 십자가의 어리석음, 보편적 사랑) | 로마서 첫 문장 (메시아의 부르심을 받은 종) |
| 핵심 범주 | 사건(Event) 과 주체의 충실성(Fidelity) | 메시아적 시간(Messianic Time) 과 무위화(Inoperativity) |
| 방법론적 성격 | 급진적 단절을 내세우는 영웅적·선언적 모델 | 기존 질서를 안으로부터 해체하는 문헌학적·탈작동 모델 |
| 정치적 지향 | 새로운 보편적 진리를 건설하는 조직적 혁명 | 지배 권력과 법적 장치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비활성화 |
<2. 율법(Torah / Nomos)에 대한 태도: 폐기와 무효화 대 정지와 완성>
두 사람의 가장 결정적인 쟁점은 바울이 유대 전통의 '율법'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에 있다.
바디우: 율법의 철저한 폐기와 무효화
바디우는 율법을 '분할과 차별의 원리'로 본다. 율법은 죄와 의, 선민(유대인)과 이방인(그리스인)을 끊임없이 가르는 규칙이다. 바디우에게 부활이라는 <사건>은 율법의 이러한 분할 체계를 단숨에 무력화하고 낡은 것으로 만든다.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과한 주체는 율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은혜와 보편적 사랑 속으로 진입한다. 따라서 바디우의 바울은 율법 질서와의 전면적 결별을 선언하는 혁명가다.
아감벤: 카타르게오(Katargeo) - 율법의 탈작동과 잠재성 회복
아감벤은 바디우가 바울을 반(反)유대주의적이거나 율법 폐기론자로 오독했다고 정면 비판한다. 아감벤은 바울이 자주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 <카타르게오(katargeo: 작동을 멈추다, 무위화하다)>에 주목한다. 메시아적 사건은 율법을 파괴하거나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Destruction)이 아니다. 그것은 율법의 강제적 집행력을 정지시켜, 율법이 더 이상 인간을 억압하거나 처벌하지 못하도록 <기능을 해제하는 것>이다. 아감벤에게 바울은 유대 율법을 버린 탈주자가 아니라, 율법을 문자적 집행에서 해방시켜 그 본래적 잠재성을 회복(완성)하려는 철저한 유대적 메시아주의자다.
<3. 주체와 실천의 모델: 영웅적 투사 대 '~하지 않는 것처럼(Hos Me)'>
해방을 실천하는 주체의 형상에서도 두 철학자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바디우: 새로운 보편을 세우는 능동적 투사
바디우의 주체는 사건을 선언하고 그 진리를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전투적 주체(레닌적 모델)다.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다"는 선언은 모든 특수성을 초월하는 새로운 평등의 보편 질서를 건설하겠다는 적극적 결단이다. 주체는 사건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헌신과 충실성을 통해 기존 세계에 대항한다.
아감벤: 상태를 소진시키는 메시아적 잔여(The Remnant)
아감벤은 바울의 고린도전서 7장 구절인 <'마치 ~하지 않은 것처럼(hos me)'>을 주체성의 핵심으로 삼는다.
"아내가 있는 자들은 없는 것처럼 하고,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것처럼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것처럼 하고, 매매하는 자들은 소유하지 않는 것처럼 하라."
아감벤의 주체는 새로운 정체성을 쟁취하거나 세상을 뒤엎는 혁명 투사가 아니다. 그는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모든 신분, 역할, 소유, 법적 지위 속에 그대로 머물면서도, 그것에 완전히 동일화되지 않은 채 안으로부터 그 힘을 무력화한다. 즉, 세상의 장치들을 전복하는 대신 '사용하되 소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의 질서를 헛돌게 만드는 존재다.
<4. 종합적 평가: 혁명적 구축과 메시아적 해체>
바디우와 아감벤의 논쟁은 현대 해방 정치의 두 가지 근본적인 길을 보여준다.
바디우의 길은 <구축과 보편>이다. 특수성의 함정에 빠진 현대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 기존의 모든 분할을 넘어서는 절대적이고 대담한 단절의 선언, 그리고 그에 기반한 새로운 공동체적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 그러나 이 길은 필연적으로 결단주의적 독단성과 초월적 영웅주의의 위험을 안게 된다.
아감벤의 길은 <해체와 무위(無爲)>다. 권력과 법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내부에서 정지시키고,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이 변형되는 메시아적 틈새를 찾아낸다. 그러나 이 길은 현실의 구체적인 정치 조직화나 제도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수동적이거나 종말론적인 무력감에 머무를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바디우가 바울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보편적 주체를 조직할 것인가'를 물었다면, 아감벤은 바울을 통해 '어떻게 지배 권력의 법적 장치 자체를 작동 불능으로 만들 것인가'를 사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