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3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 Alain Badiou,

Saint Paul | Stanford University Press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
Alain Badiou, Translated by Ray Brassier
May 2003

128 Pages
Series
Cultural Memory in The Present


DescriptionReviewsAbout the Author


In this bold and provocative work, French philosopher Alain Badiou proposes a startling reinterpretation of St. Paul. For Badiou, Paul is neither the venerable saint embalmed by Christian tradition, nor the venomous priest execrated by philosophers like Nietzsche: he is instead a profoundly original and still revolutionary thinker whose invention of Christianity weaves truth and subjectivity together in a way that continues to be relevant for us today.

In this work, Badiou argues that Paul delineates a new figure of the subject: the bearer of a universal truth that simultaneously shatters the strictures of Judaic Law and the conventions of the Greek Logos. Badiou shows that the Pauline figure of the subject still harbors a genuinely revolutionary potential today: the subject is that which refuses to submit to the order of the world as we know it and struggles for a new one inst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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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 보편주의의 기초> 요약 및 평론

<1. 집필 배경과 문제의식: 정체성주의와 자본주의적 보편성에 맞서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1997년에 발표하고 2003년 레이 브라시에의 번역으로 널리 알려진 <사도 바울: 보편주의의 기초>는 신학 서적이 아니다. 무신론자인 바디우가 사도 바울을 소환한 이유는 종교적 교리를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두 가지 왜곡된 보편성에 맞설 철학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바디우가 보기에 현대 사회는 두 축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하나는 전 지구를 단일 시장으로 묶으며 모든 인간적 가치를 화폐와 상품 교환으로 환원하는 <자본주의적 거짓 보편성>이다. 다른 하나는 이에 반발하여 민족, 인종, 젠더, 종교, 소수 집단 등 특수한 정체성에 갇혀 폐쇄적인 벽을 세우는 <상대주의적 정체성주의>다.

바디우는 이 둘 모두 진정한 해방을 가로막는다고 진단한다. 차이에만 매몰되는 상대주의는 분열을 낳고, 자본의 통합 논리는 인간을 상품 소비자로 전락시킨다. 바디우는 특수성에 기반한 차별과 분리를 단숨에 횡단하며 모든 인간을 하나로 묶는 <급진적이고 엄격한 보편주의>를 복원하고자 한다. 그리고 바로 이 보편주의의 최초 이론가이자 실천가로서 신약성서의 사도 바울을 재발견한다.

<2. 핵심 논지 요약: 사건, 주체, 그리고 네 가지 담론>

(1) 사건과 진리-절차: 부활의 의미 바디우 철학의 핵심 축은 <사건(Event)>과 <진리-절차(Truth-procedure)>다. 세계의 기존 질서와 법칙 안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단절적 계기가 터져 나오는 것이 <사건>이다. 바디우에게 기독교의 '그리스도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나 기적이 아니라, 순수한 사유의 사건 모델이다.

부활은 율법이나 자연 법칙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의 모든 규범적 잣대를 일거에 무효화하는 단절이다. 바디우는 바울이 예수의 도덕적 가르침이나 기적 행위에 집중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사건 하나에만 집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주체는 이 예측 불가능한 사건에 맞닥뜨려 그것을 참으로 선언하고, 그에 충실하게 헌신할 때 탄생한다.

(2) 유대적 율법과 그리스적 지혜의 극복: 네 가지 담론 구조 바울 당시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두 거대한 사유 틀이 있었다. 기적과 표적을 요구하며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선민과 이방인을 가르는 <유대적 담론>, 그리고 이성과 논증을 통해 세계의 우주론적 질서를 설명하려는 <그리스적 담론>이다.

바디우는 바울이 이 두 담론을 모두 거부했다고 분석한다. 유대적 율법은 구원을 민족적 혈통과 계명 준수라는 특수성에 가두며, 그리스적 철학은 세계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할 뿐 진정한 단절을 일으키지 못한다. 바울은 율법과 지혜를 넘어 <십자가의 어리석음>이라는 제3의 담론, 즉 사건에 근거한 선언을 내세운다.

(3) 특수성의 폐지와 보편적 주체 바울의 유명한 선언인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다"는 구절은 바디우 분석의 정점에 놓인다. 진리는 특정한 민족성, 사회적 신분, 젠더의 차이에 종속되지 않는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의 특수성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는 그러한 차이들이 아무런 권리나 특권을 갖지 못하도록 <무효화>하는 일이다. 진리는 만인에게 동등하게 열려 있을 때만 진리일 수 있다.

(4) 믿음, 희망, 사랑: 진리의 실천 양식 바디우는 바울의 세 덕목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한다.

  • <믿음(Pistis)>: 사건의 발생을 인정하고 선언하는 결단이자 충실성이다.

  • <사랑(Agape)>: 믿음을 세계 속에서 실제로 살아내고 보편적 연대를 구축하는 물질적 힘이다. 사랑 없이는 보편적 진리가 조직화될 수 없다.

  • <희망(Elpis)>: 사건의 효과가 역사 속에서 지속될 것이라는 지치지 않는 끈기다.

<3. 비판적 평론: 해방의 보편성과 독단의 경계>

(1) 현대 정치철학에 던진 결정적 충격 바디우의 <사도 바울>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시킨 차이의 철학, 미시정치,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통렬하게 짚어낸 명저다. 정체성 정치가 오히려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흡수되어 하위문화 소비로 전락하던 시기에, 바디우는 특수성을 가로지르는 대담한 보편성의 정치를 복원해냈다. 바울을 교회 제도의 창시자가 아니라 '레닌'과 같은 혁명적 조직가로 읽어낸 그의 독해는 2000년대 대륙철학계 전반에 바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 추상성과 형식주의의 위험 그러나 바디우의 사유는 명확한 한계와 위험성을 함께 안고 있다. 첫째, <구체적 삶의 맥락에 대한 탈색>이다. 바디우는 보편성을 세우기 위해 문화적, 역사적 특수성을 지나치게 부차적인 것으로 격하시킨다. 현실의 억압은 젠더, 인종, 계급이라는 구체적인 차별의 축을 통해 작동하는데, 이를 '진리 앞에서는 무의미한 것'으로 일축하는 것은 자칫 구체적 차별 투쟁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할 위험을 낳는다.

둘째, <결단주의와 독단성의 함정>이다. 사건은 합리적 근거나 객관적 징후 없이 오직 주체의 충실성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이는 진리와 맹신, 혁명과 파시즘적 광신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철학적 난점을 노출한다. 부활이라는 허구를 모델로 삼아 진리의 힘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결국 진리의 정당성을 증명할 외부적 기준을 완전히 상실한 채 주체의 일방적인 선언에 의존하게 만든다.

<4. 맺음말>

바디우의 <사도 바울: 보편주의의 기초>는 민족적, 국가적, 집단적 테두리에 갇힌 편협한 애국심이나 정체성의 울타리를 단호히 거부한다. 동시에 자본의 획일화에 굴복하지 않는 제3의 길, 즉 만인을 향해 동등하게 열린 해방적 보편성의 가능성을 치열하게 논증한다. 역사적 바울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분열과 고립이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차이를 넘어 보편적 연대를 기획할 것인가를 묻는 이들에게 여전히 강력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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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 Alain Badiou, Translated by Ray Brassier May 2003 --- 1,000 단어 요약 평론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은 프랑스어 원저 <Saint Paul: La fondation de l’universalisme>(1997)의 영어판으로, Ray Brassier가 번역하여 Stanford University Press에서 2003년에 출간한 111쪽의 짧지만 밀도가 높은 책입니다. 목차 자체가 <Paul: Our Contemporary>에서 시작해 <Paul Against the Law>, <Love as Universal Power>, <Universality and the Traversal of Differences>로 진행되며, 바울을 신학자가 아니라 ‘보편적 진리의 주체가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보여주는 사상가로 읽습니다.

알랭 바디우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
<성 바울: 보편주의의 기초>
2003
번역 Ray Brassier

  1. 바디우는 왜 무신론자인데 바울을 읽는가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저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가 기독교인이 아니라 철저한 무신론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초월적 진리로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바울을 현대 정치철학의 중요한 인물로 불러낸다. 그 이유는 바울이 ‘무엇을 믿었는가’보다 ‘하나의 사건을 믿게 된 인간이 어떻게 새로운 보편적 주체가 되는가’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바디우에게 바울은 성인도, 교회 신학자도 아니다. 또한 니체가 비난했던 원한과 금욕주의의 창시자도 아니다. 그는 오히려 ‘사건(event)의 시인-사상가’이며, 특정한 집단의 전통에서 발생한 사건을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는 보편적 진리로 변환한 천재적인 정치적 조직가이다. 실제로 이 책을 소개하는 출판사 설명도 바울이 유대 율법과 그리스 로고스라는 두 질서를 동시에 돌파하여 새로운 보편적 주체를 만들어냈다는 점을 핵심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이 책은 사실상 바울에 관한 책인 동시에 바디우 자신의 철학에 관한 입문서이다. ‘사건–선언–충실성–주체–진리–보편성’이라는 바디우의 핵심 개념들이 바울이라는 한 역사적 인물을 통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1. 사건: “그리스도가 부활했다”

바디우가 바울에게서 발견하는 출발점은 매우 단순하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했다.”

바울에게 모든 것은 이 선언에서 시작한다. 바디우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역사적으로 사실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이 어떤 사건을 선언하고 그 사건에 자신의 삶을 걸었을 때 무엇이 일어나는가’이다.

바디우의 철학에서 사건은 기존 세계의 법칙으로부터 연역할 수 없는 새로운 발생이다. 현재의 지식체계나 제도, 권력구조 안에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 갑자기 출현한다. 사건은 기존 질서로 증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 이후에 사람들이 그것에 충실하게 살아감으로써 그 사건의 의미가 드러난다.

바울에게 부활이 바로 그러한 사건이다. 예수의 부활은 유대 율법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지 않으며, 그리스 철학으로 증명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선언된다.

여기서 바디우의 급진성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은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바울이 부활을 중심으로 만든 ‘사건의 구조’는 정치·과학·예술·사랑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혁명적 정치운동이나 새로운 과학적 발견, 새로운 예술형식, 사랑의 만남 역시 기존 질서를 단절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

  1. 그리스인도 유대인도 아닌 제3의 담론

바디우는 당시의 사유를 크게 ‘그리스적 담론’과 ‘유대적 담론’으로 나눈다.

그리스적 담론은 세계를 하나의 질서 있는 우주(cosmos)로 이해하려 한다. 철학은 이 우주의 보편적 법칙을 파악하는 ‘지혜’이다.

반대로 유대적 담론은 신이 선택한 백성과 신의 표징(sign)에 기초한다. 예언자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의 일반 법칙이 아니라 신이 특정 백성에게 보낸 특별한 징표이다.

바디우가 보기에 두 담론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둘 다 이미 존재하는 질서를 전제로 한다. 하나는 자연적·우주적 질서를, 다른 하나는 율법과 선택된 민족의 질서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바울의 복음은 둘 다 아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그리스인은 지혜를 찾는다”라는 바울의 구절에서 바디우는 새로운 제3의 길을 발견한다. 바울은 지혜도 표징도 아니라 ‘사건’을 선언한다. 따라서 기독교적 주체는 그리스 철학의 현자도 아니고 유대 예언자도 아니다. ‘사도(apostle)’이다.

사도란 진리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사건을 선언하고 그 결과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1.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다”

이 책의 중심은 갈라디아서의 유명한 문장이다.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도 없다.”

바디우에게 이것은 보편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선언이다.

바울 이전의 세계에서 인간은 민족, 법, 사회적 지위, 성별 같은 차이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충실성 앞에서 그러한 차이는 진리를 결정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은 계속 유대인이고 그리스인은 계속 그리스인이다. 남자와 여자, 노예와 자유인의 사회적 차이도 현실에서는 남아 있다. 하지만 진리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에는 차이가 없다.

여기에서 바디우 특유의 보편주의가 나온다.

보편적 진리는 모든 차이를 제거하여 모두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이들을 ‘가로질러’ 간다.

따라서 보편주의란 “모두가 똑같아져야 한다”는 동질화가 아니다. 오히려 “어떠한 특수한 정체성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바디우가 현대의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와 공동체주의를 비판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1. 율법과 죄

바디우가 특히 중요하게 읽는 것이 로마서의 율법 논의이다.

바울에게 율법은 단순히 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을 구원할 수도 없다. 오히려 율법이 “하지 말라”고 명령할 때 금지된 욕망이 발생한다.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없었다면 탐욕이 죄로 의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바디우는 이를 정신분석과 매우 가까운 방식으로 읽는다. 법은 욕망을 억압할 뿐 아니라 욕망을 생산한다. 따라서 법과 죄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 상태를 바디우는 ‘죽음’의 질서라고 해석한다.

여기에서 ‘육(flesh)’과 ‘영(spirit)’도 흔히 생각하는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이 아니다. 육은 법과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의 주체적 상태이며, 영은 사건 이후 새롭게 형성된 삶의 주체이다.

따라서 바울의 핵심 문제는 육체를 버리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법에 종속된 인간이 어떻게 새로운 삶의 주체가 되는가?”이다.

  1. 죽음보다 부활

바디우는 기독교 전통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경계한다.

그에게 바울의 혁명성은 죽음에 있지 않고 부활에 있다.

죽음은 인간의 보편적 조건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따라서 죽음 자체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그러나 부활은 죽음이라는 기존 질서 안에서는 불가능했던 가능성이 출현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바디우는 죽음과 부활을 헤겔식 변증법으로 읽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부정이 부활이라는 긍정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죽음에서 논리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것’은 과거의 모순이 저절로 발전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사건으로 출현한다.

이 점에서 바디우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결정론과도 거리를 둔다. 혁명은 자본주의 모순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사건이며,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충실성을 통해 진리의 과정이 만들어진다.

  1. 믿음, 사랑, 희망

바디우는 바울의 유명한 세 덕목인 ‘믿음·사랑·희망’을 자신의 철학 언어로 번역한다.

믿음(faith)은 사건의 선언이다.

사랑(love)은 그 사건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보편적 힘이다.

희망(hope)은 사건에 대한 충실성이 끝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여기서 사랑이 특히 중요하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자선이 아니다. 사건의 진리가 특정 민족이나 계급의 소유물이 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따라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바디우에게 윤리적 친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진리 앞에서 타자를 나와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보편주의의 실천이다.

  1. 차이를 없애지 않는 보편주의

이 책에서 가장 현대적인 부분은 제10장 <Universality and the Traversal of Differences>이다.

바디우는 바울이 문화적 차이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 가능한가?

음식, 할례, 관습 같은 문화적 차이가 더 이상 진리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어떤 관습을 가져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 관습이 “나만이 진리의 주체가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문제가 된다.

이를 현대적으로 말한다면 바디우는 두 극단을 모두 거부한다.

한쪽에는 “우리 문화만 옳다”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모든 사람을 문화적·성적·인종적 정체성 집단으로 나누어 각자의 진리를 따로 인정하는 극단적 상대주의가 있다.

바디우의 보편주의는 이 둘 사이가 아니다. 오히려 둘을 동시에 넘어가려 한다.

차이는 존재하지만 진리는 차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1. 이 책의 강점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바울을 교회의 소유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이다.

바디우의 바울은 기독교 교리를 세운 성직자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모든 자격과 정체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성을 창조한 급진적 사상가이다.

특히 “보편성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더욱 중요하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이 인종, 민족, 성별, 종교, 문화, 국가 등의 정체성을 통해 설명되는 일이 많다. 정체성은 억압받은 집단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를 정체성으로만 설명하면 인간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공통의 진리나 공동선을 말하기 어려워진다.

바디우는 바울에게서 다른 가능성을 찾는다.

“나는 누구인가?”보다
“어떤 진리에 충실한 주체가 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바울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1. 그러나 가장 큰 약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바디우가 자신의 철학에 필요한 바울만을 추출한다는 데 있다.

역사적 바울에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조건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바디우는 그리스도의 신성, 속죄, 종말론, 교회, 성령 등 기독교의 구체적 내용을 거의 모두 제거한다.

그래서 남는 것은 놀랄 만큼 바디우 자신과 닮은 바울이다.

후대의 바울 연구자들은 바로 이 점을 비판했다. 바디우가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다”를 강조하면서도 그 문장의 결론인 “너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구체적 기독교적 조건을 사실상 희석한다는 비판이다. 또한 역사학자들은 바울의 보편주의가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순수한 보편주의가 아니라 유대적 메시아주의 안에서 발생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바디우의 책은 역사적 바울에 대한 충실한 주석이라기보다 ‘바울을 매개로 쓴 바디우 철학’이라고 읽는 편이 정확하다.

  1. 더 심각한 문제: 보편주의는 정말 순수할 수 있는가

바디우는 특정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진리를 원한다.

매우 매력적인 이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는 보편을 대표한다”는 주장은 위험할 수도 있다. 프랑스 혁명, 공산주의, 서구 문명, 기독교 모두 자신을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면서 특정한 사람들의 경험과 문화를 주변화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디우에게도 이 위험이 있다.

특히 그의 바울 해석은 유대교를 ‘율법과 특수성’, 바울을 ‘사건과 보편성’에 배치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율법적인 유대교 대 자유로운 기독교’라는 낡은 도식을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바디우의 바울론은 현대 바울학과 유대교 연구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는다.

  1. 종합 평론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은 바울 연구서로 읽으면 문제가 많은 책이지만, 정치철학서로 읽으면 대단히 자극적인 책이다.

바디우가 발견한 바울의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보편적 진리는 보편적인 장소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특수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모든 특수성을 가로질러 보편적인 것이 된다.’

예수의 부활이라는 극도로 특수한 사건이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종도 자유인도, 남자와 여자도 없다”는 보편적 선언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흥미롭게도 퀘이커의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빛(that of God in everyone)’과도 비교할 수 있다.

두 전통의 근거는 전혀 다르다. 바디우에게 보편성은 초월적 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사건에 대한 충실성에서 나온다. 반면 퀘이커에게 인간의 평등은 모든 사람 안에서 발견되는 신적 현존과 연결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입장은 중요한 한 점에서 만난다.

사람의 민족, 신분, 성별, 교파, 제도적 자격이 그 사람의 진리에 대한 접근을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퀘이커적 관점에서 보면 바디우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사건에 대한 충실성’만으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진리 확신을 어떻게 성찰하고 수정할 것인지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바디우의 ‘militant’, 즉 투사적 주체는 강력하지만 때때로 너무 확신에 차 있다. 퀘이커의 discernment는 진리에 대한 충실성에 침묵·경청·공동체적 검증을 덧붙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뒤 남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울은 최초의 보편주의자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다.

“특정한 사건에서 태어난 확신이 어떻게 타인을 억압하는 교리가 되지 않으면서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있는가?”

바디우는 바울을 통해 그 문제를 탁월하게 제기했다. 그러나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 점 때문에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은 바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책이라기보다, ‘보편주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기 위한 아주 훌륭한 첫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세진님이 계속 읽어오신 <마르크스–스피노자–바디우>의 흐름에 놓으면 이 책은 더 흥미롭습니다. 바디우의 바울은 신학자라기보다 일종의 ‘혁명적 주체 형성론’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최근 요청하신 <Marx and Spinoza>와도 연결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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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와 조르조 아감벤의 사도 바울 해석 비교 분석입니다.

<알랭 바디우와 조르조 아감벤의 사도 바울 해석 비교 분석>

2000년대 초 현대 철학계에서 일어난 '바울 르네상스'의 양대 축은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 보편주의의 기초>(1997)와 조르조 아감벤의 <남겨진 시간: 로마서 주해>(2000)다. 두 철학자는 모두 무신론적 관점에서 바울 서신을 급진적 정치철학의 원천으로 다루었으나, 바울 텍스트를 읽어내는 시각, 율법과 메시아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해방적 주체관에서는 뚜렷한 대립각을 세운다.

<1. 핵심 개념과 방법론의 차이: 선언적 단절 대 메시아적 정지>

두 사상가의 해석 차이는 텍스트를 대하는 방법과 궁극적으로 도출하려는 사유 틀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비교 항목알랭 바디우조르조 아감벤
중심 텍스트고린도전서 (특히 십자가의 어리석음, 보편적 사랑)로마서 첫 문장 (메시아의 부르심을 받은 종)
핵심 범주사건(Event) 과 주체의 충실성(Fidelity)메시아적 시간(Messianic Time) 과 무위화(Inoperativity)
방법론적 성격급진적 단절을 내세우는 영웅적·선언적 모델기존 질서를 안으로부터 해체하는 문헌학적·탈작동 모델
정치적 지향새로운 보편적 진리를 건설하는 조직적 혁명지배 권력과 법적 장치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비활성화

<2. 율법(Torah / Nomos)에 대한 태도: 폐기와 무효화 대 정지와 완성>

두 사람의 가장 결정적인 쟁점은 바울이 유대 전통의 '율법'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에 있다.

  • 바디우: 율법의 철저한 폐기와 무효화

    바디우는 율법을 '분할과 차별의 원리'로 본다. 율법은 죄와 의, 선민(유대인)과 이방인(그리스인)을 끊임없이 가르는 규칙이다. 바디우에게 부활이라는 <사건>은 율법의 이러한 분할 체계를 단숨에 무력화하고 낡은 것으로 만든다.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과한 주체는 율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은혜와 보편적 사랑 속으로 진입한다. 따라서 바디우의 바울은 율법 질서와의 전면적 결별을 선언하는 혁명가다.

  • 아감벤: 카타르게오(Katargeo) - 율법의 탈작동과 잠재성 회복

    아감벤은 바디우가 바울을 반(反)유대주의적이거나 율법 폐기론자로 오독했다고 정면 비판한다. 아감벤은 바울이 자주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 <카타르게오(katargeo: 작동을 멈추다, 무위화하다)>에 주목한다. 메시아적 사건은 율법을 파괴하거나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Destruction)이 아니다. 그것은 율법의 강제적 집행력을 정지시켜, 율법이 더 이상 인간을 억압하거나 처벌하지 못하도록 <기능을 해제하는 것>이다. 아감벤에게 바울은 유대 율법을 버린 탈주자가 아니라, 율법을 문자적 집행에서 해방시켜 그 본래적 잠재성을 회복(완성)하려는 철저한 유대적 메시아주의자다.

<3. 주체와 실천의 모델: 영웅적 투사 대 '~하지 않는 것처럼(Hos Me)'>

해방을 실천하는 주체의 형상에서도 두 철학자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 바디우: 새로운 보편을 세우는 능동적 투사

    바디우의 주체는 사건을 선언하고 그 진리를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전투적 주체(레닌적 모델)다.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없다"는 선언은 모든 특수성을 초월하는 새로운 평등의 보편 질서를 건설하겠다는 적극적 결단이다. 주체는 사건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헌신과 충실성을 통해 기존 세계에 대항한다.

  • 아감벤: 상태를 소진시키는 메시아적 잔여(The Remnant)

    아감벤은 바울의 고린도전서 7장 구절인 <'마치 ~하지 않은 것처럼(hos me)'>을 주체성의 핵심으로 삼는다.

    "아내가 있는 자들은 없는 것처럼 하고,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것처럼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것처럼 하고, 매매하는 자들은 소유하지 않는 것처럼 하라."

    아감벤의 주체는 새로운 정체성을 쟁취하거나 세상을 뒤엎는 혁명 투사가 아니다. 그는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모든 신분, 역할, 소유, 법적 지위 속에 그대로 머물면서도, 그것에 완전히 동일화되지 않은 채 안으로부터 그 힘을 무력화한다. 즉, 세상의 장치들을 전복하는 대신 '사용하되 소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의 질서를 헛돌게 만드는 존재다.

<4. 종합적 평가: 혁명적 구축과 메시아적 해체>

바디우와 아감벤의 논쟁은 현대 해방 정치의 두 가지 근본적인 길을 보여준다.

  • 바디우의 길은 <구축과 보편>이다. 특수성의 함정에 빠진 현대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 기존의 모든 분할을 넘어서는 절대적이고 대담한 단절의 선언, 그리고 그에 기반한 새로운 공동체적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 그러나 이 길은 필연적으로 결단주의적 독단성과 초월적 영웅주의의 위험을 안게 된다.

  • 아감벤의 길은 <해체와 무위(無爲)>다. 권력과 법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내부에서 정지시키고,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이 변형되는 메시아적 틈새를 찾아낸다. 그러나 이 길은 현실의 구체적인 정치 조직화나 제도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수동적이거나 종말론적인 무력감에 머무를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바디우가 바울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보편적 주체를 조직할 것인가'를 물었다면, 아감벤은 바울을 통해 '어떻게 지배 권력의 법적 장치 자체를 작동 불능으로 만들 것인가'를 사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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