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가?
류대영 한동대 명예교수
승인 2026.08.30
■ 저자에게 듣는다_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때』 (류대영 지음, 푸른역사, 304쪽, 2026.06)

책
이번에 출간한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때》(푸른역사)는 마르크스의 종교관을 다룬 책이다. 제목만 보면 책의 주제가 종교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원래 내가 생각한 제목은 “마르크스와 종교”, “마르크스와 인간 구원”, “카를 마르크스: 종교적 평전” 등이었다. 그러나 출판사는 인문학 책, 그것도 마르크스에 관한 책에 그런 제목 붙이는 것을 무모하게 생각했다. 하여, 편집진뿐 아니라 아내와 제자들까지 동원하여 수십 가지 제목을 짓고, 검토하는 작업을 한동안 하다가 모두 지쳐갈 때쯤 출판사가 택한 것이 그 제목이었다.
왜 마르크스의 종교관에 대한 책을 써놓고도 “마르크스와 종교”라는 단순 명확한 제목을 달지 못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르크스라는 경계심 드는 이름에 종교라는 머리 아픈 주제까지 덧붙이는 일이, 그렇지 않아도 팔리지 않을 인문학 책에는 최악의 조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마르크스도, 종교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피해야 할 주제가 결코 아니며, 둘의 조합은 더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카를 마르크스는 1999년과 2005년에 영국 BBC 방송국이 설문조사를 통해 “천 년의 사상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선정한 인물이다. 지난 천 년 동안 나왔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로 많은 사람이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좋아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의 대표적 저술 몇 편은 읽고, 그의 사상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하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나는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 한창일 때 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군사독재기의 억압적 분위기에 순응하느라 그를 공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두고두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부끄러움은 대학에서 역사와 종교, 고전을 가르치면서 점점 더 깊어졌다. 이 책은 젊은 시절 내가 마르크스에 관해 공부하지 않은 데 대한 일종의 뒤늦은 반성문이다.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진입장벽이 높아도 너무 높은 사상가다. 그를 읽고 이해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이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이 의무감 때문에라도 몇 번 그의 저술을 읽으려 시도하다 결국 도중에 포기하는 이유다. 《자본론》은, 펭귄판 영역본을 예로 들자면, 본문만 제1권 약 810쪽(여기에 부록 약 130쪽), 제2권 약 490쪽, 제3권 약 890쪽 정도다. 분량만 그렇게 방대한 것이 아니라 내용도 어려워, 전문가들이 각 권 내용을 분석하고 해설한 해제(introduction)만 각기 80-90쪽에 달한다. 더구나 이 방대하고 난해한 저술의 시작인 제1권 제1장은 마르크스가 서문에서 “모든 학문의 시작은 어렵다. 따라서 이 책의 첫 장을 이해하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라고 대놓고 경고할 정도로 어렵다. 《자본론》을 한번 읽어보겠다고 굳게 결심한 독자라도 본질적 가치, 사용가치, 교환가치, 추상적 인간 노동,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같은 철학적-경제적-변증법적 개념과 논리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이다 처음 몇 페이지도 넘어가기 못하기 마련이다.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손꼽을 수 있는 거대한 지성 가운데 한 명이다. 그를 조금만 진지하게 공부해 보면, 그를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든, 그 사실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도 시대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가진 사람이었고, 이번 책에서도 그런 점을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놀라운 천재성은 끝없는 탐구심, 그리고 사회경제적 정의감과 만나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저작들을 남겼다. 마르크스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를 단지 공산주의 혁명가로 알고 있겠지만, 정작 그가 가장 좋아한 것은 “책벌레 노릇”이었다. 그는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 좋아했다. 그런데 그가 읽은 책과 써놓은 원고는 정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었다. 《자본론》만 하더라도 그가 구상한 것은 전체 3권이었다. 그 가운데 제1권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그의 생전에 유일하게 출간된, 《자본론》 제1권이다. 그가 미완으로 남긴 제2권은 원고가 너무도 방대하여, 엥겔스가 그의 사후에 두 권으로 나누어 편집해서 출간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론》 제2, 제3권이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3권으로 생각했던 것이 《잉여가치 이론》이라는 제목으로 사후에 출간된 원고인데, 그것만 총3권 분량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방대한 규모의 《자본론》이 사실은 그가 구상했던 6부작 “경제 연구 통합”의 제1부, 그것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책을 집어삼킨 후 그것을 변형된 형태로 역사라는 똥 더미에 던져 놓도록 저주받은 기계”라고 자탄한 사람이다. 그가 읽은 책과 그것의 결과물인 저작의 분량은 실로 초인적이어서,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한 일이라는 표현이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읽은 문학에 관한 애정, 지식과 소양은 엄청나서 《자본론》처럼 몇 페이지 읽기도 힘든 딱딱한 책에 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단테와 셰익스피어, 괴테와 밀턴, 그리고 동시대의 하이네까지 수많은 문학 작품을 자유자재로 인용·변용하며 책의 내용적, 형식적 층위를 높이높이 쌓아 놓았다.
“과학적 비판에 기초한 의견이라면 모두 환영한다. 소위 여론이라는 것의 편견에 대해서는 나는 한 번도 양보한 적이 없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권 서문 말미에 쓴 문장이다. 그는 단테의 《신곡》을 변용하여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인용하며 서문을 맺었다. “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은 떠들게 놔두고.” 마르크스는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냉전기를 대표하는 전쟁을 겪었고 지금까지 분단된 우리나라는 마르크스에 대한 ‘여론의 편견’이 극단적으로 강한 나라다. 이 책은 그 편견 속에 오랫동안 함몰되어 있던 한 필부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애쓴 흔적이라고 보면 정확하겠다.

종교
마르크스의 저작은 워낙 방대하고, 거기서 다룬 주제와 함의들 또한 다양하다. 따라서 현대 학자들은 경제학, 철학, 정치학, 역사학뿐 아니라 문학, 종교, 식민주의, 민족주의, 인종, 생태이론, 여성학 등과 관련해서도 그의 사상을 접목하여 해석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은 그가 정치경제학이라고 부른 경제 이론이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 개론 하나 수강하지 않은 그 분야의 문외한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저술, 특히 《자본론》 같은 경제학 관련 저술을 읽어내는 일은 첩첩산중을 헤매는 일과 다름없었다. 내가 그나마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어찌어찌 목숨 부지하고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종교’라는 작은 지도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생애, 사상, 그리고 저술의 여정을 그의 종교관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마르크스와 종교라는 말을 들을 때 일단 그 명제부터 떠오른다면, ‘여론의 편견’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르크스가 1844년 2월, 자신이 프랑스에서 공동발행하던 《독불연보》에 기고한 《헤겔 법철학 비판》 서론에서 그 말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의미는 ‘여론의 편견’과 전혀 달랐다. 또한 ‘여론의 편견’은 그가 그 유명한 명제를, 그 시점에 말하게 된 이유와 역사적, 사상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때》는 바로 그런 점들을 밝혀 보려는 노력이다.
마르크스의 삶과 사상은 1842년 《라인신문》 편집자로 부임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그는 본대학에서 베를린대학으로 전학하여 브루노 바우어 등 헤겔의 제자들에게 배우고 청년 헤겔학파 젊은이들과 사귈 때만 해도 철학적 무신론자였다. 이 시기는 마르크스의 생애에서 기독교를 중심으로 종교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가장 격렬하게 그것을 비판한 때였다. 철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예나대학에 제출한 논문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대학에서 학자의 길을 갈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와 유신론을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과목들을 개설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국인 프로이센은 정교일치의 기독교적 절대왕정 국가였고, 프로이센과 더불어 독일연맹을 이끌던 오스트리아는 프랑스혁명의 충격과 파장을 극복하기 위해 ‘메테르니히 체제’라는 보수반동적 정치와 외교를 주도하고 있었다. 당시 대학교수는 국가 공무원이었다. 왕권과 기독교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이 대학교수가 될 가능성은 없었다.
대학교수의 길이 막힌 마르크스에게 새롭게 열린 길이 언론이었다. 그는 《라인신문》 편집인이 된 이후 《독불연보》(1844), 《신 라인신문》(1848, 쾰른), 《신 라인신문》(1850, 런던)을 연이어 발행하였다. 이후 런던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도 뉴욕의 《뉴욕 데일리 트리뷴》, 프로이센의 《신 오더신문》에 기고했다. 끊임없이 지속된 것은 아닐지라도 1840~50년대에 걸쳐 마르크스의 유일한 직업은 언론인이었다. 대학교수라는 공적 지식인과 달리 언론인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급진적 생각을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언론은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마주하며 고민할 수밖에 없는 세계였다.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물질적 이해관계”를 마주한 것도 《라인신문》 편집인이 된 후였다. 그는 1841년 출간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계기로 철학적 무신론에서 유물론적 무신론으로 전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포이어바흐 역시 역사나 정치 같은 현실의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그가 밝힌 것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
《헤겔 법철학 비판》 서론은 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이 완성된 형태로, 총체적으로 표현된 글이었다. 여기서 그는 그동안 그의 종교관에 영향을 준 헤겔, 바우어, 포이어바흐의 생각을 종합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인간이 종교를 만든다. 종교가 인간을 만들지 않는다...종교는 자신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이미 다시 상실해 버린 인간의 자기의식이며 자기감정이다.” 그는 이렇게 부연 설명한다.
종교적 고통은 동시에 현실적 고통의 표현이자 현실적 고통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인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그것은 민중의 아편이다.
민중의 허구적 행복으로서 종교의 폐지Aufhebung[지양]는 그들의 현실적 행복에 필수적인 것이다.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때》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한 소절을 할애했다. 요약하자면, “민중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던 아편과 마찬가지로 종교가 민중의 고통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전제했다. 종교의 현실적 효용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편이 고통을 완화해 줄지언정 근본적 치료를 해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는 민중이 자본주의 하에서 겪는 “현실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허구적 행복”에 불과했다. 마르크스는 “현실적 행복”을 위해서 종교를 “폐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후 마르크스의 공부와 저술, 그리고 삶은 민중(프롤레타리아)에게 ‘현실적 행복’을 주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역사적 유물론과 경제학이 그의 주된 관심거리였다. 민중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탐구하여 알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가 된 것이다. 이제 종교는 더 이상 그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종교는 그 자체로 생존할 수 없는 어떤 부수적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인간의 욕망이 투사된 허상, 사회경제적 관계들의 한 증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종교와 싸우는 것은 그림자와 싸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관계들이 해체될 때, 즉 상품이 “자유롭게 연대한 인간들에 의해 생산되고, 그들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통제 아래 놓일 때” 종교도 자연히 사멸되리라 생각했다.
《헤겔 법철학 비판》 서론 이후 《1844년 경제학·철학 원고》부터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 주요 저술에서 종교(특히 성서와 기독교)는 그의 논지를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한 예시, 비교, 비유, 역설 등으로 사용될 뿐이다.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때》는 그의 주요 저술에서 종교가 그렇게 사용된 사례들을 찾아서 그 궤적을 살펴보았다. 물론 그 종착점은 《자본론》이다.
다시,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민중의 아편’인 종교를 없애기 위해 싸운 사람이 아니라 민중이 ‘종교라는 아편’에 기대어 현실의 고통을 위무할 수밖에 없는 그 잔혹한 현실과 싸운 사람이었다. 그는 초인적 분량의 독서를 하고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쓴 학자였다. 천재적 지성과 몸을 아끼지 않는 공부가 만나 탄생시킨 저술은 방대했고, 문장은 탁월했으며, 그 내용은 심오했다. 그러나 엥겔스가 장례식 추도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학자로서의 마르크스는 그의 일면에 불과했다. 그는 혁명가였다. 그의 공부는 어떤 추상적 진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해방이라는 현실적 목적 아래 행해진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언론 활동, 저술 및 출판을 통해 인간해방을 도모한 혁명가였다.
많은 사람이 마르크스를 실패한 혁명가, 예언가로 평가한다. 그가 예견했던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지 않았으며, 자본주의는 그의 시대 이후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며 진화하여 오늘에 이렀다. 그리고 종교는 자본주의에 적응하며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위기가 닥치고, 자본주의의 심각한 모순이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다시 찾는다. ‘모든 경제적 가치는 인간 노동에 기반하고, 노동의 상품화는 인간 소외를 낳으며, 노동과 생산수단의 분리는 잉여가치와 부의 편중을 낳고, 생산수단의 발달은 그것을 무한히 강화할 따름이다.’ 자본주의에 관한 마르크스의 생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놀라운 이 통찰력은 자본주의라는 제도와 그 문제들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마르크스도 잊히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지금이야 말로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류대영 한동대 명예교수
한국과 미국에서 영문학, 성서신학, 기독교역사, 미국사를 공부했으며, 한동대에서 기독교, 역사, 고전을 가르치다 은퇴했다.
류대영 한동대 명예교수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