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4

* 무소유 | 법정스님 1976, 1999 요약 및 평론

무소유 | 법정스님 | 알라딘

무소유 - 양장본
법정 (지은이)범우사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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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76년 첫 출간된 이 책은 그동안 80쇄 80만부를 돌파하며 낙양의 지가를 올린 스테디셀러. 문고판 수필집으로는 드물게 대학의 교재로 사용되기도 했고 선물용으로 가장 인기를 끈 책이기도 했다. 책을 읽고 스님에게 감사의 글을 띄운 뒤 출가(出家)한 사람도 있었다.

이 책은 35편의 맑은 글을 담고 있다. 길지 않지만, 숲에서 만나는 시원한 바람 같고 차가운 샘물 같은 글들이다.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살라는 잔잔한 권유가 마음을 파고든다.


목차


1. 복원 불국사
2. 나의 취미는
3. 비독서지절
4. 가을은
5. 무소유
6. 너무 일찍 나왔군
7. 오해
8. 설해목
9. 아파트와 도서관
10. 종점에서 조명을
11. 흙과 평면 공간
12. 탁상 시계 이야기
13. 동서의 시력
14. 회심기
15. 조조할인
16. 나그네 길에서
17. 그 여름에 읽은 책
18. 잊을 수 없는 사람
19. 미리 쓰는 유서
20. 인형과 인간
21. 녹은 그 쇠를 먹는다
22. 영원한 산
23. 침묵의 의미
24. 순수한 모순
25. 영혼의 모음
26. 신시 서울
27. 본래무일물
28. 아직도 우리에겐
29. 상면
30. 살아남은 자
31. 아름다움
32. 진리는 하나인데
33. 소음기행
34. 나의 애송시
35. 불교의 평화관
접기


책속에서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얽혀 있다는 뜻이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24쪽 접기 - ann138
우리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글나 우리는 언젠가 한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 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27쪽 - ann138
소유한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버리지못한것이있다는것이다.진정한 무소유는 자기를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나는 난을 던지고서야 나를 바라보는 눈을 뜰 수가 있었다.-112쪽 - ann138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24쪽 접기 - 한숲
우리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글나 우리는 언젠가 한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 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27쪽 - 한숲
소유한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버리지못한것이있다는것이다.진정한 무소유는 자기를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나는 난을 던지고서야 나를 바라보는 눈을 뜰 수가 있었다.-112쪽 - 한숲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 milibbong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으나 침묵 속에 머무는 사람들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나 막론하고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간에 그 내부는 비어 있다.` - milibbong
p47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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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법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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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전라남도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났다.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삶과 죽음에 고뇌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6년 효봉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은 후 통영 미래사,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고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60년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 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며, 불교계 언론과 유력한 신문에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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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요약 및 평론

1. 작품 개요와 출간 배경

<무소유>는 승려 법정이 1970년대 초중반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산문들을 엮어 1976년 4월 범우사에서 처음 펴낸 수필집이다. 이후 1999년에 이르러 개정판이 간행되며 한국 출판 역사상 가장 널리 읽히고 영향력을 미친 수필 문학의 고전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 기치 아래 압축적 산업화와 고도 경제성장이 맹렬히 진행되던 시기였다. 물질적 번영과 생산력 증대가 국가적 지상과제로 떠오르고 도시화와 물신주의가 일상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과열된 시대적 맥락 한가운데에서, 법정은 산중의 정적과 청빈한 일상을 거울삼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소유하려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세상을 향해 던졌다.

책은 표제작인 <무소유>를 비롯해 <난초에게 배운 것>, <침묵의 의미>, <조주선사의 차>, <인형과 인간>, <가을은> 등 30여 편 안팎의 단아하고 절제된 산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한 수사나 난해한 불교 교리의 나열 대신, 맑은 차를 달이고 난초를 돌보며 계절의 흐름을 응시하는 한 승려의 소박한 일상적 관찰이 주를 이룬다.

2. 핵심 내용 요약

난초 일화와 소유의 역설

표제 수필 <무소유>는 지인에게 선물 받은 난초 두 분(盆)을 정성껏 가꾸던 경험담에서 출발한다. 장마철이면 빗물이 닿을까 방 안에 들여놓고, 여름 볕이 따가우면 그늘로 옮기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던 그는, 어느 날 출타했다가 뜨거운 햇볕 아래 난초를 그대로 두고 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발걸음을 재촉한다. 허겁지겁 돌아와 간신히 축 늘어진 잎을 살려낸 뒤, 그는 자신이 난초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난초가 자신을 얽어매고 구속하고 있었다는 서늘한 깨달음에 직면한다.

결국 그는 난초를 다른 이에게 넘겨줌으로써 비로소 묵직한 집착의 멍에를 벗고 홀가분한 해방감을 맛본다. 여기서 법정이 설파하는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절대적 물질 결핍이나 파산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에 얽매이지 않고, 불필요한 집착으로부터 내면의 자율성을 되찾는 상태>, 즉 <크게 버려야 비로소 크게 얻는다>는 존재론적 자유의 선언이다.

침묵과 홀로 있음의 존엄

작품 전반에 흐르는 또 하나의 중심 줄기는 고독과 침묵에 대한 긍정이다. 법정에게 고독은 현대인이 두려워하는 소외나 단절이 아니다. 소음과 잡담, 천박한 언어의 범람 속에서 오염된 영혼을 씻어내고 온전한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거룩한 단독자의 시공간>이다. 침묵은 단순한 발화의 중지가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깊이 응시하고 내면의 파동을 가라앉히는 가장 심오한 언어적 실천이다.

자연과의 교감과 분수에 맞는 삶

책에 실린 글들은 자연 생태계와의 겸허한 합일을 노래한다. 스님은 겨울 숲의 메마른 가지, 처마 끝을 울리는 바람 소리, 한 잔의 차를 통해 생명의 엄숙함을 읽어낸다. 자연을 정복과 수탈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근대적 도구주의를 거부하고, 인간 역시 흙과 바람 속에 깃들어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임을 환기한다. 분수를 지키며 간소하게 살아가는 태도야말로 인간다운 품격을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일관되게 역설한다.

3. 심층 비판적 평론

문학적·윤리적 성취: 언행일치의 산문 미학

<무소유>가 거둔 최고의 문학적 성취는 텍스트의 유려함보다 저자의 실존과 글의 일치성에 있다.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언어와 삶이 이토록 긴밀하게 조응한 사례는 드물다. 법정의 문장은 한자어의 남용이나 현학적 수사를 배격하고, 정갈하고 투명한 한국어 고유의 결을 살려낸 간결미를 자랑한다.

특히 자본 축적과 소비의 과시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1970년대 후반의 산업화 시대와 1990년대 후반의 신자유주의적 소비 사회 전개 과정에서, 이 책은 세속적 탐욕에 지친 현대인에게 거대한 정신적 피난처이자 비판적 거울 역할을 했다. 입적 직전 자신의 모든 저작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김으로써, 저자 스스로가 책이라는 마지막 물리적 흔적에 대한 대중의 집착마저 허물고자 했다는 점은 <무소유>라는 사유가 단순한 문학적 관념에 머물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한계와 비판적 쟁점: 고립적 청빈과 구조적 맹점

그러나 사회학적·비판이론적 관점에서 읽을 때 <무소유>는 뚜렷한 인식론적 한계를 노출한다.

첫째, <청빈의 실천 가능성에 내재된 계급적·조건적 편차>다. 스님이 보여주는 담백하고 우아한 무소유의 삶은, 가족 부양의 의무, 임금 노동의 굴레, 주거비와 의료비 마련 등 세속적 재생산 구조에서 면제된 독신 출가자의 제도적 울타리 안에서 유지될 수 있었다. 하루하루의 물질적 결핍이 실존적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되는 평범한 서민과 노동자에게 "적게 가짐으로써 행복해지라"는 권고는, 자칫 그들의 절박한 물질적 고통을 개인의 마음가짐이나 욕망 통제의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탈정치적 윤리화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둘째,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석의 공백>이다. 현대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 생태 파괴는 단순히 개개인의 과도한 물욕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자본의 무한 증식을 강제하는 체제적 동학, 자원 배분의 불균형, 제도화된 착취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무소유>는 개인의 내면적 각성과 윤리적 절제라는 미시적 해법에 집중함으로써, 불의한 사회 구조를 변혁하고 공적 제도를 개혁해야 할 집단적 실천의 중요성을 주변화시키는 한계를 지닌다.

셋째, <역설적 상품화와 위안의 도구화>다. 무소유를 역설한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수백만 부가 팔려나가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상품이 되었다. 세속의 소비자들은 백화점에서 명품을 구매하듯 서점에서 <무소유>를 구매해 서가에 꽂아둠으로써, 물질주의적 삶에서 오는 불안과 죄책감을 손쉽게 면죄받는 심리적 소비재로 소비했다. 급기야 스님의 입적 이후 품귀 현상이 벌어지며 중고 서적 시장에서 폭리가 취해졌던 촌극은, 탈물질주의적 담론조차 자본의 시장 논리에 의해 상품화되고 왜곡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4. 결론

<무소유>는 구조적 변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사회과학적 분석서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물질의 소유자가 아닌 소유물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물신주의 시대를 향해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 고결한 정신적 잠언록이다.

물질적 다소(多少)가 곧 삶의 성패로 환산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법정의 <무소유>는 소유의 크기가 결코 존재의 깊이를 보증하지 못한다는 영원한 진실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사유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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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무소유> — 버림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는 역설

법정의 <무소유>는 1970년대 초에 쓴 글들을 모아 1976년 범우사에서 처음 출간한 산문집이다. 1999년에는 새롭게 꾸민 개정판이 나왔으며, 당시 이미 80쇄 80만 부를 넘긴 장기 베스트셀러였다. 책에는 <복원 불국사>, <무소유>, <미리 쓰는 유서>, <침묵의 의미>, <본래무일물>, <진리는 하나인데>, <불교의 평화관> 등 35편이 실려 있다. 동아일보

이 책을 흔히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게 살자”는 생활수필로 기억하지만, 전체를 다시 읽으면 훨씬 넓은 문제의식이 보인다. 법정이 묻는 것은 재산의 많고 적음만이 아니다. <나는 무엇에 붙잡혀 있는가>, <문명과 개발은 인간을 정말 자유롭게 하는가>, <종교는 인간을 갈라놓는가 하나로 만드는가>, <죽음을 의식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무소유>는 청빈론이면서 동시에 자유론, 문명비판, 종교론이다.

1. 난초 두 분에서 시작된 ‘무소유’

표제작 <무소유>의 출발점은 아주 사소하다. 법정은 선물 받은 난초 두 분을 정성껏 기른다. 그러나 어느 날 외출한 뒤 햇볕에 내놓은 난초가 걱정되어 길을 되돌아오면서 자신이 난초에 얼마나 붙잡혀 있는지를 깨닫는다. 결국 난초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나서 홀가분함을 느낀다. EncyKorea

여기서 핵심은 “난초를 소유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소유관계의 역전이다.

내가 난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난초가 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법정에게 소유란 단지 물건을 보관하는 행위가 아니다. 소유한 것을 잃지 않으려는 걱정과 애착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많이 가질수록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현대사회의 상식에 그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많이 가질수록 관리할 것, 지킬 것, 잃을 것이 많아지므로 오히려 더 많이 얽매이는 것 아닌가.

이것이 <무소유> 전체를 관통하는 역설이다.

<가지지 않기 때문에 빈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붙잡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워진다.>

이 생각의 불교적 근원은 무상·무아·무집착에 있다. 연합뉴스가 소개했듯 법정의 무소유는 선불교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과 연결된다. 태어날 때 가져온 것도 없고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없다는 인식이다. 연합뉴스

2. 무소유는 ‘가난’의 찬양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가난하게 살아라”라고 읽으면 법정의 뜻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된다.

법정은 필요한 물건까지 없애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문제는 필요가 욕망으로 바뀌고, 욕망이 다시 인간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무소유의 반대는 단순히 ‘소유’가 아니라 <집착>이다.

가난한 사람이 집 한 채를 갖기를 원하는 것과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부동산을 축적하려는 것은 같은 ‘소유욕’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구분은 법정의 글에서 체계적인 사회경제 분석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무소유>를 읽을 때 필요한 비판적 보완점이다.

그럼에도 법정의 통찰은 상당히 현대적이다. 오늘의 소비사회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낸다. 광고, 유행, 비교, 지위경쟁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사람에게 속삭인다. 법정은 소비자본주의라는 전문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그 심리를 정확하게 겨냥한다.

무소유란 결국 <충분함을 아는 능력>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3. 자연은 인간이 소비할 대상이 아니다

<무소유>의 여러 글에는 산, 흙, 나무, 눈, 계절, 작은 암자와 여행길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것은 단순한 자연예찬이 아니다.

<흙과 평면 공간>, <설해목>, <영원한 산> 같은 글을 관통하는 것은 현대인이 자연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잃어간다는 불안이다. 법정에게 자연은 경제성장을 위해 이용할 ‘자원’이 아니라 인간 자신도 속해 있는 생명의 세계다.

이 지점에서 무소유는 생태윤리로 발전한다.

우리가 더 많이 소유하려면 더 많이 생산해야 하고, 더 많이 생산하려면 더 많은 자연을 소비해야 한다. 따라서 욕망의 절제는 단순한 개인수양이 아니라 자연과 다른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가 된다.

1970년대에 쓰인 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감수성은 선구적이다.

4. <복원 불국사> — 개발주의에 대한 불편함

첫 글 <복원 불국사> 역시 중요하다. 법정은 복원된 불국사를 바라보면서 옛 절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지나치게 새것처럼 정비된 모습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의 표현에는 당시 새마을운동식 개발 분위기에 대한 거리감도 드러난다. 황한식(그루터기) 블로그

여기서 법정의 보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 특이한 면이 나타난다. 그는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문명에 대한 보수주의자>에 가깝다.

오래된 것, 손때 묻은 것,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것, 침묵과 느림을 보존하려 한다.

반대로 새것, 속도, 개발, 효율, 거대화를 경계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무소유는 단순한 불교 교리가 아니라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었다고도 읽을 수 있다.

5. 고독과 침묵 —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

<침묵의 의미>, <나그네 길에서>, <미리 쓰는 유서> 등에는 법정 특유의 고독의 철학이 잘 나타난다.

현대인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말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 만나지 못한다. 법정에게 홀로 있음은 사회로부터 도피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그에게 침묵은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필요한 말이 사라진 상태이다.

무소유가 물질의 비움이라면 침묵은 언어의 비움이며, 고독은 관계에 대한 집착의 비움이다.

이 셋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자기 자신을 되찾는 것>이다.

6. 죽음을 앞당겨 생각하기

<미리 쓰는 유서>는 법정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한 글이다.

죽음을 삶의 반대편에 있는 사건으로 미루어두지 않고 지금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끌어들인다. “오늘 죽는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다투고 있는 것, 자랑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무소유가 설득력을 갖는 것도 결국 죽음 때문이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따라서 삶의 문제는 얼마나 많이 획득했느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보고, 사랑하고, 나누었느냐가 된다.

법정에게 죽음의 자각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삶을 단순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장치다.

7. 종교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개방적이다

책의 후반부 <진리는 하나인데>와 <불교의 평화관>은 법정이 단순한 자연수필가가 아니라 종교사상가였음을 보여준다. 실제 목차의 마지막 글도 <불교의 평화관>이다. 예스24

법정에게 종교의 가치는 교단의 규모나 교리의 우월성에 있지 않다. 인간이 얼마나 자유롭고 자비로운 존재로 변화되는가에 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종교가 자신만 진리라고 주장하며 싸우는 것은 종교가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상태다.

이 대목에서 법정의 불교는 상당히 보편주의적이다. 불교의 독점적 우위를 주장하기보다 종교 너머의 진리를 바라본다.

후기의 법정이 다른 종교인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던 정신적 토대가 이미 <무소유>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8. 가장 큰 장점 — 불교를 생활언어로 번역했다

법정의 가장 큰 업적은 새로운 불교철학을 만들어낸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무상, 무아, 무집착, 공, 해탈 같은 난해한 불교 개념을 <난초 한 분>, <낡은 절>, <탁상시계>, <여행>, <책>, <나무> 같은 일상의 경험으로 번역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무소유>는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읽을 수 있다.

“집착하지 말라”는 추상적인 가르침보다, 난초가 걱정되어 길을 되돌아가는 한 승려의 모습이 훨씬 강력하다.

법정의 산문이 오랫동안 읽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학을 설교하지 않고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9. 그러나 <무소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가장 중요한 한계는 <구조의 문제를 마음의 문제로 환원할 위험>이다.

사회에는 개인이 욕심을 버린다고 해결되지 않는 가난과 불평등이 있다. 노동자의 저임금, 주거 불평등, 식민지 지배, 전쟁, 국가폭력 같은 문제는 개인의 집착을 내려놓는 것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을 비우라”는 가르침은 잘못 사용될 경우 불의한 현실에 적응하라는 종교적 위안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소유> 자체에도 이 한계를 넘어설 씨앗은 있다. 마지막에 <불교의 평화관>을 배치했고, <복원 불국사>에서는 개발주의를 비판하며, 표제작에서도 인간의 소유욕을 개인 심리만이 아니라 인간사의 문제로 확대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이 작품이 소유욕의 문제를 평화와 자유라는 사회적 문제로 확장한다고 평가한다. EncyKorea

그러므로 법정을 단순한 ‘내면치유의 승려’로만 보는 것도 부족하다.

10. 종합 평론 — 무소유의 목적은 ‘없음’이 아니라 ‘자유’다

<무소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법정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의 진정한 주제는 <소유>보다 <자유>다.

물질로부터의 자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명예와 지위로부터의 자유, 종교적 독선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다.

그러나 2026년에 <무소유>를 읽는다면 법정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질 필요가 있다.

<개인이 무소유해야 한다면 사회도 무소유해야 하지 않는가?>

즉 개인에게 욕심을 줄이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기업과 부유층과 국가가 과도하게 소유하고 독점하는 구조 역시 물어야 한다. 여기까지 나아갈 때 법정의 <무소유>는 단순한 ‘심층종교적 마음공부’를 넘어 생태·평화·사회정의의 윤리로 확장될 수 있다.

그 점에서 <무소유>는 완성된 사회철학이라기보다 매우 강력한 <출발점>이다. 법정은 우리에게 사회구조를 분석하는 도구를 충분히 주지는 않았다. 대신 그 구조를 움직이는 인간 욕망의 근원을 아주 단순하고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질문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오히려 더 불편하고 중요해졌다.

<우리는 정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사는가, 아니면 가진 것을 지키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우리의 삶 자체를 내어주고 있는가?>

바로 이 질문 때문에 1976년의 <무소유>는 아직 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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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그런데 우리는 소유 하기 위해 치열하다.
희동이 2010-04-13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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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받았는데 믿기지가 않내요 영원희 소장하겠음
영화사랑 2010-04-03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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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하여 우리들에게 무언가 전하고자하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분명...
hyun2c 2010-07-1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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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을때면 꺼내어 본다.
돌고래양 2009-07-1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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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읽지 않았다면 읽어 보시길....
cmj3241 2010-04-1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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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책

제목처럼 표지도 참 정갈했다. 워낙 유명한 책이었고, 수능 공부하던 시절에는 모의고사 예문에도 곧잘 나오던 편이어서 잊을 수 없는 책이었는데,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왔다.


친한 지인에게 책을 왕창 빌렸는데, 그때 내가 고르지 않은 책이 딸려왔으니 바로 이 책 '무소유'였다.


너무 유명해서, 마치 다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사실은 읽지 않고 제목과 저자만 알았던 책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읽기로 했다. 차분히 읽으려고 펴들었는데, 이 책이 70년대에 첫출간된 책이고, 게 중에는 50년대에 쓰여진 내용도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흠, 고전에 속하는 편인가... 중얼거렸다. ^^


그리고 두번째 놀라기. 작품의 내용 중 여럿이 어디선가 읽었다는 것이다. 범인(?)은 뻔하다. 분명 수능 대비 모의고사나 문제집의 예문에서 보았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이 글을 쓴 사람이 '법정' 스님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하더라도 무심코 넘어갔거나 아니면 보고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그때는 단순히 '입시용'으로만 보았을 테니까.


그래서 새삼스러웠다. 이미 읽은 내용을 다시 읽을 때에도 느낌이 새로왔다. 와, 이래서 사람이 환경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어려서 읽은 책을 나이 들어 읽었을 때 똑같은 감동을 받기는 어려울 테니까. 또 그 사람의 성장배경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또 다르게 느껴질 테니까.


그래서, '난초'를 키울 때의 에피소드가 마음에 남았다. 이 글이 바로 수능공부하던 시절에 예문에서도 보았던 글인데, 그때는 '무소유'의 의미를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지금이라고 내가 그 깊은 뜻을 다 좇아갈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그로부터 십년 세월 지나고 보니 조금 더 남다르게 느껴지는 게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견물생심.. ^^


으, 지금도 내 주변엔 사놓고 미처 못 본 책들이 수두룩하건만, 지금도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다 보면 보관함으로 직행하는 책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가 할인 소식이 들리면 덜컹! 주문부터 하고 택배가 왜 이리 많냐는 어무이의 잔소리가 들리면 슬며시 후회도 한다.


단순히 책욕심만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지식욕이, 지적 욕구에 대한 탐욕이 들어차 있는 것이다. 좋은 책 많이 읽어서 나쁠 것 없지만, 머릿속만 채워가고(혹은 다른 것이 들어찰 여지를 주지 않은 채 문 걸어자금고) 더 중요한 마음은 비워있는 것 아닐까 순간 섬뜩해졌다.


스스로에게 많이 부끄러운 탓이다. 무소유의 소유. 비움의 채움, 조금씩 배워갈 수 있을까. 조금씩, 아주 천천히라면... ^^
마노아 2006-06-13 공감(4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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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무소유.. 법정스님께서지으신... 무소유..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언가를 갖는 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엘리사 2007-01-26 공감(3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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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 이것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딱히 돈에 관해서가 아니더라도 특정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어떤 이는 옷에, 어떤 이는 차에.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으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내 생활을 뒤돌아 볼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다. 열심히 사들였던 책들도 그렇고, 얼마전에 바꾼 핸드폰, 아끼는 반지 등.

법정스님은 소유욕이 없는 걸까. 아무리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 공백기간 동안 빈 손으로 산다는 건 생각조차 못하는 게 보통 사람이다. 무소유의 원리로 인생을 살아가는 그는, 욕심도 없어 보인다. 물건 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도. 이를통해 행복을 찾으며 살고 있다.

무소유를 보며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다. 나룻터에 관한 내용인데, 법정스님이 나룻터에 막 도착했을 무렵, 배가 막 떠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상황에 보통의 사람같으면 대략 두부류로 나뉠 것이다. "어떡해" 하며 울상짓는 사람. "아 정말XXXXXXXXXX" 화를 내며 욕을 남발하는 사람. 그렇다면 법정스님은? 설마 두번째? 물론 아니다. "내가 너무 일찍 왔군." 어차피 지나간 배에는 집착을 버리고 다시 올 배를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3개 정도의 이야기만 기억하고 있다.) 나도 버스를 상대로 몇 번이나 해봤지만 난 절대 할 수 없었다. 화부터 나니 말이다.^^

어쨌건, 모두 함께 읽어보고 법정스님의 삶의 방식에 대해 감동을 느껴보길 바란다. 법정스님이 암만 무소유, 무소유 해도 이건 모든 사람이 소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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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머리앤 2007-01-12 공감(2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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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이 책은 참 자그마한 책이다. 페이지 수도 많지 않고 가벼워서 그리 크지 않은 내 핸드백에도 쏙 하고 들어간다. 아니, 꼭 가방에 넣지 않아도 깔끔한 흰 표지로 되어있어 들고 다니기만 해도 상큼하다. 마치 표지도 무소유!를 주장하듯이..

이 책을 얼마전에 잡고 읽다가 문득 깨달은 건, 내가 이 책을 예전에 한 번 읽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꽤나 오래전에. 처음엔 치매를 의심하며 머리를 쥐어뜯었으나,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고 나서 이 책을 두번째 읽게되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상당히 좋았으니까.

무소유. 라는 제목 그대로의 글들. 분명히 글의 말투는 조용하고 담담한데 뭔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되지 않던 것이 소화제를 먹은 듯 쑤욱 내려가는 느낌이다. 난 개인적으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가끔 스님들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왠지 모르게 향기로운 녹차처럼 입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밑줄도 많이 그었고 아....하고 조용히 읽던 책을 덮고 곰곰히 생각도 많이 해 보았다.

첫번째 읽을 때는 별로 알아채지 못했었는데, 꽤나 놀랐던 것은 이 책의 글들이 대부분 60-70년대에 쓰여진 글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한강 나룻배 이야기 같은 에피소드는 글이 쓰여진 시대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이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이기는 커녕 지금 읽어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역시 좋은 글은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일까.

아마 한 5년쯤 뒤에 또 한번 이 책을 들고 한 10페이지쯤 읽다가 어 이거 분명히 예전에 읽었는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이 책의 글들은 나이를 먹지 않을 테니, 세 번째로 읽은 후에도 5년 후의 나에게 또 다른 많은 생각꺼리를 줄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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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1-01 공감(25)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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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모든 것을 가지려 하는...

혹자는 법정(法頂) 스님이 모순된다고들 한다.그분의 가장 잘 팔리던 베스트셀러가 '무소유'였지만, 기실 그의 이름은 '불법의 정점'이라는 것이다.한자로 보면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법정 스님의 가벼운 글들은 결코 우리의 삶이 가볍지 만은 않고, 우리의 삶들이 지고 나갈 의무들을 챙겨 나가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 바르게 사는 함께 사는 삶의 아름다움. 사회인으로서의 행동하는 지성의 길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웅변은 가볍지만은 않다.비꼬지 않고, 진실되게 말하면서 인생의 진리를 툭툭 건드리는 그런 죽비의 소리로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설해목'이란 수필이 맘에 꼭 든다. 눈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꺾여 부러지는 나무들. 그 나무들은 거센 비바람에도, 눈보라에도 결코 꺾이지 않지만, 그 부드러운 눈의 가벼운 무게에 쓰러진다는 것이다. 북풍과 해님 이야기의 다른 목소리다.

스님의 가르침보다는 훈계나 꾸짖음보다는, 그저 인간의 무게를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던 큰스님의 모습은 '달마야 놀자'에서도 큰 스님의 모습으로 나타나 일갈하지 않았던가.사람은 사람으로 볼 일이다. 지위나, 가진 것으로 그 가벼운 것으로 느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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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3-02-25 공감(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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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단상



법정 단상



1

최근 법정이 소멸했다. 싯다르타보다 겨우 2살 적게 살았으니, 절대 짧게 살지는 않았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40년만 살아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니, 어쩌면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서울에서만 하루 100명이 죽어 나가는 마당에 한 개인의 죽음에 이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것도 불교스럽지 못하다. 게다가 난리 법석을 떠는 자들의 면면을 보니, 무소유는 커녕 재물과 권력에 침을 질질 흘리던 배불때기들이라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2
40년 동안이나 눕지도 자지도 않고 수도와 공부에 열중한 스님이 있었다. 그가 하산해서 설교하자 그 ‘내공’과 방대한 지식에 사람들이 열광했고 급기야 KBS는 석가 탄신일에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다. 이런 화려한 이력에 귀가 솔깃해 그가 써놓은 책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방대한 지식이나, 치밀한 사색의 흔적은 볼 수 없었고, 온통 부처님 만세 타령뿐이었다. 너무도 단순하고 빈곤했다.

3

한국 승려들의 지적 수준은 냉정하게 말해 ‘양아치’ 수준이다. 실제로 큰 스님들의 상당수가 조폭 출신이다. 이렇게 무식과 수도를 동일시하는 한국 불교계의 현실은 불교TV에서 당장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 강사로 등장하는 비구들은 그야말로 무식과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심지어 승복 입고 보험 광고도 한다. 낡은 김지하도 불교 TV에서는 ‘진보 지식인’으로 대접받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4.


그는 자신을 ‘보수주의자도 혁신주의자도 아니며, 부처의 지혜와 자비를 믿고 따르는 수행자’라고 말했지만, 반공주의는 없애지 못한 것 같다. 그는 북한에 다녀온 임수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미군이 철수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등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언동에 아연해하지 않을 수 없다.’ (버리고 떠나기)



5


문제는 사회적 차원의 것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 강준만 (인물과 사상 16 - 법정)


법정은 1954년 전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출가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굉장히 까다롭고, 성깔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인데, 사회를 전혀 경험하지 않고 출가한 스님들이 그렇듯이, 현실적인 분석 없이, 그저 절간의 단순하고 문학적인 논리로 세상을 판정하고 있다는 점이 법정의 가장 큰 한계다.

그가 읽었거나 추천했던 책들을 보면 사회과학 분야는 거의 없고 다른 도사들이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법정에게 냉정하고 과학적인 분석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6

혼자 ‘무소유’로 청정하게 사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삶인가 하는 것이다. 소유하면서 소유당하면서 .....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닌가. 나는 스님이 사람들의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 김영현 ‘김영현의 깊이읽기’ - 경향신문


스님은 무소유 하기 쉽다. 일단 먹고 잘 곳이 보장되어 있다. 절간의 주지 정도 되면 어떤 사찰에 가도 숙박이 해결될 것이다. 요즘 절간은 TV,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는 물론이고 스카이라이프까지 갖추고 있다. 여기에다 밥, 빨래, 심지어 자가용 까지 대주는 든든한 아줌마들이 버티고 있다.

그러면 아들 병원비 3천만원을 대기 위해 새벽마다 인력시장에 나가는 40대 가장이나, 먹고 잘 곳도 없어서 노숙하는 이들, 고시원 방값에 허덕이는 알바 청년들에게 무소유는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글쓰기, 문방구에 대한 집착, 클래식 음악, 좋은 책, 잦은 해외여행, ....

어떤 면에서 법정은 스님의 전형이라기보다는 귀족 인문주의자에 가까웠다.


7

그 혹독한 감방 독방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인쇄물이 3가지가 있었다. 보수 기독교 신문, 법정 스님의 수필집, 그리고 샘터라는 잡지.... 사람을 골방에 처넣고 인간의 논리적 깨우침의 능력을 아예 뭉개버리자는 문화적 범죄였다. - 백기완 ‘박정희 유신독재와의 정면대결’

법정은 안전하다. 사실 그 누구보다 무소유를 실천해야 할 사람들은 시민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이건희 패밀리, MB와 같은 자본가, 권력자들이 아닌가?

그러나 법정은 이들에게 전혀 부담되는 인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탐욕에 물들어 보기 싫다고 고시생을 절간에서 내쫓았다고 자랑스럽게 썼던 그가 정작 힘있는 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병원비를 댄 사람은 이건희의 부인이었다.

그의 책은 할 수 없이 가질 수 없는 사람들, 아니면 재물과 명예를 탐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에게(그가 경멸해 마지않는) 잠깐의 위안을 제공하는 진통제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법정은 너무도 안전한 사람이었고, 그가 부르짖었던 ‘무소유’는 이미 배부른 돼지가 된 한국인들에게 '간식'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P.S

난데없이 절판하면서 책값이 최대 25만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차라리 블로그에 공개했다면 이런 난장판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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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비니 2010-04-25 공감(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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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집착하시는 분들에게...

우선은 이 책을 정말로 간절히 읽어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임을 먼저 밝힙니다.

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그 유언에 따라 출판사들의 절판 결정이 내려지므로써 책들이 일찌감치 품절되었고, 심지어 '무소유'라는 이 책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가격으로 중고 시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두명이 4~5만원에 올리고, 인터넷 뉴스에도 보도가 되며 그 책들이 팔리는 것을 보자 너도 나도 중고 상품을 등록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책을 파는 가격은 본인의 자유 의사이고 마음이니, 뭐 그 분들을 물질적 가치만 판단하네 뭐네 흉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책을 소유할 자격조차 없는 분들이니 말입니다. 이 책을 팔아서 마련한 돈이 영원히 본인들의 소유가 될런지는 의문입니다만...

문제는 이 책을 정말 읽어보시고 싶어하시는 분들입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지역마다 도서관이 있고 그 도서관에는 분명 법정 스님의 대부분의 저서가 있을거라 예상됩니다만 도서관 대출 사정도 마찬가지겠지요.

이 책은 수필 모음집으로서 책의 제목은 무소유이지만, 책의 내용 중, 그러니까 여러 수필들 중에서 진짜 무소유의 제목을 달고 있는 수필은 한 분량입니다. 전체 159쪽 중에서 단 5쪽 뿐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읽고 싶어하시는 내용이 단지 그 다섯쪽의 내용은 아닌지, 그래서 몇 만원의 돈을 주고 사서 읽고 나서 혹시 후회를 하시지는 않을지, 그래서 되팔기 위해 비슷하거나 더 높은 가격에 책을 내놓아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됩니다.

다섯쪽뿐인 무소유라는 제목의 수필은 비단 이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수필 모음집 중에 법정 스님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이라면 이 무소유는 거의 들어가 있습니다 (가령 아름다운 우리 수필, 다시 읽는 우리 수필 등). 멀리 찾지 않아도 스님의 또 다른 책 '맑고 향기롭게'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맑고 향기롭게'는 출가 50주년을 기념하여 스님께서 직접 가려뽑은 산문들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여러 수필집을 사는 것보다 이 한권을 사는 게 더 낫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의 말씀 대부분이 무소유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에 스님의 어느 책을 보더라도 스님의 뜻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에서 어떻게든 스님의 글들을 읽을 수 있게 하겠다고 했으니,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인터넷 상에서 공개 방식을 취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의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 될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님께서 돌아가셨고 출판을 금하신 이상 모든 사람들이 대가없이 스님의 글들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런 터무니 없는 책 값은 서서히 없어질 것입니다.

무소유를 '정말 읽고' 싶으신 분들은 수필 '무소유'가 포함된 다른 책을 사서 보시거나, 빌려 보시면 됩니다. 무소유를 '정말 소유'하고 싶으신 분들은 저런 가격이라도 괜찮다면 구매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이미 예전에 구매하여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간절히 원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완전히 헤아리기에는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간절히 읽어보기를 원하는 분들의 입장과 그 내용의 본질이 뭘까에 초점을 맞춰 지껄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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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pa 2010-03-23 공감(1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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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소장가치 있는 책이예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인 것 같아요. 책 내용도 깨끗하고 그만큼 문체도 간결해서 읽기에 부담스럽지도 않고. 참고로 수연스님의 이야기에서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무소유의 가르침과 함께 수연스님의 따뜻한 마음씨가 가장 인상에 남네요.
mono 2006-09-15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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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형언 할수 없도록 뭔가를 알았고,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것이 얼마나 많은것을 알았고,얼마나 행복한지 알았고,얼마나 선택받은 사람인지 알았고,얼마나 나쁜人인지 알았고,앞으로 어떻게 살야하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울러, 누가 나를 추켜 세운 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해서 화를 낼 일도 못된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이다.
enrich 2004-04-25 공감(10)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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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정스님의 책은 기본 두번이상은 읽게 된다.
무척 오래전, 서점에서 제목에 현혹해 산 책이었다. 무소유라...하면서.
요즘 다시 읽어보아도 역시 옛 느낌이 난다. 너무 오래된 책은 이래서 가끔은 잡기가 싫어지기도
한다. 지금의 스님 글에서 볼 수 있는 확고한 느낌이 훨~적기 때문이다.
오래전, 자신의 입지가 확고히 정리 되기도 전인 듯 한 느낌이 강해서 아마 두번 이상은 읽기를
그만 둔 것 같으다. 무소유를 읽으면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소로우의 월든은 몇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읽히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걸
보면 아주 아주 훌륭한 책임에는 분명하리라.)
지금은 어디에 계실까?
재물이며 육신은 쓸모 없는 것,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이라 했다.
스님의 덕은 그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의 가슴에 남아 있을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 계실까?
그 고결한 영혼은 어디에 계실까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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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0-03-18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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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댓글

ㅠㅠ bbbome2ㅣ 2023-05-09
법정스님의 무소유, 꼭 구입하고 싶습니다. 열려라 참깨ㅣ 2023-05-09
법정스님의 오리지널 무소유 비로그인ㅣ 2023-04-14
읽어보고 싶어요 창공9ㅣ 2023-04-14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소유하고 싶습니다... wildappleㅣ 2023-04-13
읽고싶어요! 김세민 Semin Kimㅣ 2023-04-09
절판되어 구할 수 없고 중고도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구하기 어렵습니다. adxxastraxxㅣ 20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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