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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강의 - 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 하는
기세춘 (지은이)바이북스2008-03-15
7.0 100자평(1)리뷰(6)
기본정보
양장본
807쪽
책소개
노자는 은둔과 저항이지 지배계급을 위한 정치론이나 입신양명을 위한 처신술이 아니라며 노자 왜곡을 비판하고 올바로 이해하고자 한다. 여러 번역을 소개하여 어떤 번역이 옳은지 독자 스스로 판단하고, 노자의 여러 판본들과 <장자>. <회남자>등 다른 문헌을 비교. 분석하여 노자의 본래 모습을 되살린다.
노자는 기존 지배 문명 즉 공자에 대한 안티테제이며 약자를 위한 철학이다. 본래 해방과 저항의 문서였던 <노자>는 정치 세력의 필요에 의해 왜곡됐다. 청대淸代에 이르러 실증적인 자세로 학문을 연구하려는 고증학이 일어났으나 조선은 청학을 배척해 우리 학자들은 이러한 영향을 받지 못했다.
<노자>는 인위적인 기존의 문명을 거부하고, 민중의 해방과 저항을 노래한 문서다. 문명의 이기를 반성하고 인간다움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노자>에 덧씌워진 오역과 왜곡을 걷어내고, <노자>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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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재번역 운동을 기대하며
일러두기
제1부 서론
1장 민중의 집단 창작
2장 노자와 도교
3장 노장과 견유학파
4장 선조들의 노장 읽기와 왜곡
제2부 민중의 저항
5장 민란의 성전
6장 가치 부정과 저항 정신
7장 페미니즘과 저항
제3부 반체제
8장 반유가 반인의
9장 반성인과 무치
10장 반전쟁
제4부 유토피아
11장 무위자연
12장 반문명
13장 원시 공산주의
14장 무경쟁 사회
15장 상벌이 없는 무치 사회
제5부 공동체적 인간상
16장 무욕
17장 무지
18장 동심
제6부 공동체의 도덕
19장 약자의 천연 도덕
20장 노자 도덕의 특징
제7부 생명주의
21장 신선과 양생술
22장 생명주의
23장 도인의 처세술
제8부 형이상학
24장 도
25장 천제
26장 기론
27장 무
28장 무극과 태일
제9부 인식론
29장 불가지론과 저항정신
30장 무명
31장 혼돈과 동이론
32장 형상과 직관주의
33장 <노자>의 상과 <주역>의 상
제10부 냉소주의 경계
34장 역설의 함정
부록
<노자>판본 대조표
주요 용어 및 인명 찾아보기
원문 출전 찾아보기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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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노자의 도덕은 자연 도덕이므로 공자의 인륜 도덕과는 대립적이다. 공자의 인륜의 덕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신분차별에 따른 신민臣民의 덕인 데 비해 노자의 자연의 덕은 인위적인 구속이 없는 자연인의 덕을 말한다.
공자는 주나라의 왕도주의를 지향했으므로 그의 인仁은 '주례周禮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고, 반면 노장은 신농씨의 원시 공산사회를 지향했으므로 그의 도道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왕도주의는 군자君子의 덕을 요구하고,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는 자연인의 품성을 요구한다. (본문 393~394쪽, '6부 공동체의 도덕'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기세춘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92년 『천하에 남이란 없다?묵자』 상·하권을 출간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묵자를 완역하고 해설한 책이다. 1994년에 신영복 선생과 공역으로 출간한 『중국역대시가선집』(전 4권)은 중국의 시사(詩史) 3,000년을 총망라한 우리나라 유일본이다.
1994년 문익환 목사와 공저로 『예수와 묵자』를 출간했고, 2009년 재출간했다. 1997년 서양의 현대철학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비교 분석한 『주체철학 노트』를 출간했다. 2002년에는 <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 시리즈로 『유가』, 『묵가』, 『도가』, 『주역』 등 네 권을 출간했다. 2005년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동양사상 바로 알기’를 주제로 『동양고전 산책』(전 2권)을 출간했다. 2007년에는 고전 재번역 운동의 일환으로 『장자』를 완역하여 출간했으며, 중국과 조선의 성리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성리학개론』 상·하권을 출간했다. 2008년에는 『노자 강의』를, 2010년에는 『논어 강의』를, 2012년에는 『실학사상』을 출간했다. 현재는 『주역』 출간을 위해 강의안을 손질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묵자>,<대한민국 청소년에게>,<예수와 묵자> … 총 2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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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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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자에 불과한 노자 도덕경은 제자백가서 중 가장 어려운 사상서로 꼽힌다. 내용을 두고 학자에 따라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일치된 의견은 없고, 시대마다 집권자의 의도에 맞게 윤색되어 왔다.`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의 강한 역설은 오늘날에 적용해도 배울점이 많다.
시골향기 2014-08-1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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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또 다른 왜곡.
이 책은 작년에 출간된, 강신주 [장자와 노자]와 비교된다. 두 분 다 어찌 보면, 장자로부터 노자로 거슬러 간 격인데, 그 결론은 사뭇 상반된다.
강신주씨는 장자와 비교하여 노자는 국가주의적이며, 심지어 파시즘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기세춘 선생님의 견해는 '반문명, 반체제의 저항문서'란다. 동일한 대상을 놓고 전혀 상반된 해석이 존재하는 '기현상'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강신주씨나, 기세춘 선생 모두, 각기 다른 이유로 초간 노자를 제외시켜 놓고, 도덕경과 백서 노자를 함께(어떻게, 결합, 발췌, 절충?) 본 끝에 전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강신주씨의 경우는 장자 이후 전국 말에, 노자가 출현하여 노자가 장자를 부인했다는 입장에서, 춘추말 혹은 전국초에 성립했다고도 볼 수 있는 초간 노자의 존재 자체를 무시한 반면, 기세춘 선생의 경우는 초간 노자가 유가와 대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초간노자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초간 노자를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실을 확인치 않은 오류에 기초한 것이다. 노자의 연대는 장자가 노자를 수 없이 인용해 [장자]라는 대서사시를 낳은 것처럼, 장자 이전이지 그 이후일 수가 없다. 또 기세춘 선생이 초간 노자가 유가와 대립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본 중국의 초간 변석은 엉터리일 뿐더러, 설사 그 변석에 따라, 극히 일부 문장에서 노자가 인의를 반대치 않았더라도, 이 외에 초간 노자의 많은 내용은 현재 도덕경에서도 유가와 대립한다고 볼 수 있는 내용, 즉 學을 반대하고 수양론이 없으며, 유가처럼 天命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더 나아가, 제왕의 권위를 절대화 하지 않아서, 결코 유가의 논리에 동조했다거나 서로 유사하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초간 9편에는
道亘亡名, 僕, 唯{卜曰女}, 天地弗敢臣. 侯王女能獸之, 萬勿將自{ 宀貝 }이라, "道는 항구히 이름을 잃어, 종이고 비록 점괘를 전하는 여자, 한낱 시녀일 뿐라도, 하늘과 땅이 감히 신하 삼길 떨친다. 제후, 왕이 여자처럼 음전이 앉아 사냥해지는 것이니, 만가지 날림들이 장차 스스로 집안에 재물이라" 했던 것이다. 이는 전국시대 맹자가 하늘의 뜻을 거스른 왕을 몰아낼 수 있다고 한 역성혁명론의 입장보다 시기적으로도 앞선 것이면서, 내용적으로도 제후나 왕도 사냥해질 수 있는 것인데 비해, 종, 마부, 시녀라도 영원히 이름을 잃은 道인 자는 천지도 감히 부릴 수 없다 본 파격으로, 아무리 聖君이라도, 기껏 하늘 아래 만인지상의 위치에 제왕을 두었던 유가의 논리를 넘어섰던 것이다.
만일 기세춘 선생이 이 문장을 초간에서 찾아 내실 수 있었다면, 결코 초간 노자가 노자가 아니라고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신주씨 역시, 초간의 이 문장의 내용을 알았다면, 결코 노자가 파시즘적 국가주의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도덕경]에 대해서는 강신주씨의 말도 맞고, 기세춘 선생의 말씀도 맞으나, 모두 부분적 사실을 지적한데 그친다는 것이다. 즉 노자는 춘추시대 원본 노자가, 전국초에 백서 갑으로 주석되었는데, 이 주석본을 근간으로, 1차 한고조 때 법가적으로 개작된 것이 백서 을 노자며, 한문제 때 2차 다시 이를 유가의 입맛에 맞게 개작한 것이, 현행 [도덕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행 [도덕경]에는 법가 또는 유가에 흡사한 내용을 얼마든 지 찾아 낼 수 있어, 강신주씨가 본 것처럼, 파시즘적 국가주의라고도 할 수 있고, 또 왕필이 유가와 노자를 통합해 노자의 저항 정신을 희석해 주석할 만한 내용이 충분히 있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세춘 선생이 잘 못 보신 것은, 이러한 저항정신의 희석과 체제내화가, 왕필의 주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본래의 노자를 [도덕경]으로 '위작'한 한나라 왕실의 치적(?!)이라는 것이다. 또 이는 보다 근원적으로, 제후, 왕이라도 사냥해 질 수 있다는 초간 노자를, 제후, 왕이 지켜지는 것이라고, '사냥할 수獸'를 '지킬 수守'로 바꾼 백서 갑 주석본 부터, 시발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즉 기세춘 선생은 왕필에게 노자 왜곡의 혐의를 두었지만, 진범은 따로 있었으니, 이미 권력자들의 발 빠름은 그 이전부터, 책 [노자]를 손 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범행 시간은, 시황제의 '분서갱유'를 전후로 한 것이었고, 왕필 주석 이전에 주석의 원문을 훼손할 기회와 여견은 충분했었다 볼 수 있다. 사실 왕필이 한 역활이라야, 벌써 두차례나 위작되며 너무나 훼손이 심한 나머지, 그 내용조차 알 수 없게 된 도덕경을 적어도 유가가 이해할 수 있게 해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일 고고학적 대 발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천년간 왜곡되어 알려진 권력자들의 노자, 즉 제왕학적 [도덕경]을 오직 노자의 저서로 밖에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자의 진의가 세상에 빛을 내는 것은, 아마도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니, 현재의 정치, 사회, 문화적, 지형은 강신주씨나, 기세춘선생처럼, 본래 노자에 대해, 어떠한 악의나 편견이 없었던 분들이라도, 각기 다른 이유로, 새로운 '분서갱유'를 불사하고라도, 과거의 노자를 덮어 두고자 하는 상황적 필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천여년 간 구축된 노자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이 그 만큼 깊다는 뜻일 것이다.
한편 마지막으로 꼭 지적해야 할 문제는 기세춘선생의 번역이, 앞서 강신주씨 처럼, 주제별 발췌에 따른 것이란 점이다. 물론 기세춘 선생님이나, 강신주씨는 모두 책 [노자]를 한 사람에 의한 일관된 저작이 아니라, 춘추전국시대를 떠돌던 여러가지 금언들을 긁어 모은 편집서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발췌 번역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일 테지만,
문제는 이러한 입장에서는 노자에 대해 어떠한 통일된 이해와 올바른 번역도 기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노자라는 사람도 책도 없고, 시대에 따라 각자의 입장과 해석에 따라 편집한 각자의 노자만이 존재할 뿐이니 무엇을 진정한 노자라 확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강신주씨와, 기세춘 선생은 이러한 동일한 발췌 번역의 방법으로, 서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해서, 이러한 발췌 번역의 결과가 얼마나 상반된 결론을 유도할 수 있고 그 합치점을 찾기 어려운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증이 되었을 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기세춘 선생은 정말, 노자 재번역 운동을 주창하고 싶으신 것일까?
스스로의 완역을 부인케 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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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읽기 2008-04-11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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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노자
노자를 읽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무정부주의 아니면 파시즘.
“약하게 하고 싶으면 반드시 강하게 해주어라.
무너트리고 싶으면 반드시 흥하게 해주어라.
뺐고 싶으면 반드시 주어라.”
36장이다. 주자는 장자는 좋아했지만 노자는 싫어햇다. 권모술수라는 이유엿다. 36장은 법가류의 말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마라(不以兵强天下)”는 문구나 국가권력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소국과민(小國寡民)과 같은 내용은 법가적인 사상가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다.
책 한권을 놓고 양극단으로 읽을 수 있는 경우는 노자 이외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 해답은 땅 속에서 나왔다. 중국에서 백서본에 이어 죽간본이 나오면서 왜 그런 양극단의 해석이 가능한지 밝혀진 것이다. 통용본인 왕필본과 대동소이한 백서본과 달리 죽서본은 통용본과 아주 다른 텍스트였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노자란 책의 저자는 한 사람 이상이다. 학계에선 적어도 두 사람 이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렇다면 노자란 한권의 책에 두가지 이상의 사상이 담겨졋다고 놀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은 논어에도 여러 번 나오는 원시도가류의 은자일 것이고 한 사람은 전국시대가 한창일 때 법가류의 사상가일 것이다.
저자도 복수의 저자가 노자를 썼을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노자를 두가지로 읽는데는 반대한다. 그것이 노자를 읽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노자라는 책은 어느 무명인의 저작으로 시작하여 여러 사람이 첨삭 개작해 왔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장 적실한 것같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읽어온 ‘노자의 원본은 죽간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장사상은 이 백서본에 근거한 것이다. 예컨데 조선의 ‘춘향전’이 어느 무명인의 저작으로 시작하여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첨학 개작하여 내려오다가 탁월한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정형화된 사례와 비슷할 것이다.”
춘향전의 원본이 우리가 아는 춘향전과 다르다고 원본을 쫓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노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우리가 노자에서 읽어야 할 것은 긴 세월동안 사람들이 읽어온 노자가 무엇인가라고 말한다.
저자는 노자를 집단창작으로 본다. 그리고 노자를 읽는 방향은 그 집단의 성격이 무엇이냐가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 집단의 성격은 황건적이 노자를 성전으로 읽은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황건적이 읽은 노자는 무정부주의의 노자엿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반체제로 시작한 황건적 역시 체제에 편입되면서 변질되고 도교로 발전한다. 그 첫걸음은 조조가 내디뎠다.
“조조는 한말 도교 세력이 주축이 된 농민 반란군인 황건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 천하를 차지한 사람이다. 도교 세력이 위력을 잘 아는 조조는 정권을 잡은 이후 노장의 반체제적 민중성과 반문명적 저항성을 제거하려 햇다.”
조조는 도교의 성전인 노자가 읽히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엇다. 그 작업에 나선 사람이 왕필이었다. 왕필의 해석은 노자의 저항성은 허무주의로 바꾸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표적인 해석이 1장의 해석일 것이다. 1장의 ‘無名天地之始’의 주어를 왕필은 무명이 아니라 무로 읽었다. 그러면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이른다가 된다. 왕필은 무를 독립된 존재론적 개념으로 만들어 노자의 정치성을 무력한 고담준론으로 표백햇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무가 주어가 아니라 무명이 주어여야 한다고 말한다. 무명의 명은 분명하게 정치적 대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고대중국에서 명(名)이란 명분을 말한다. 공자의 ‘君君臣臣父父子子’란 정명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이름은 그 이름이 속한 시스템의 질서 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1장은 그 질서에 대한 부정을 선언하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1장이 도의 부정으로 시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부정되는 것은 성인 즉 당시 용어로는 지배자의 도를 말하며 공자의 유가가 말하는 도를 말한다.
“항상 경전의 제1장은 그 경전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노자 첫장을 다시 읽어보라. 그것이 처세술인가? 레지스탕스인가? 논어의 첫 장은 학이시습지로 시작한다. 이것은 글쟁이 선비를 찬미하는 말이고 성왕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익히라는 권고다. 그런데 노자 첫장은 옛 성황들이 말한 도는 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글쟁이들의 말이 아니고 민중의 말이다. 민중 세력은 스스로 지배 세력이 될 수는 없지만 지배 세력을 교체할 수는 있다. 그들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식이다. 그놈이 그놈이지만 갈아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이며 불가지론이다. 민중들은 ‘지금의 도는 도가 아니다’라고 외친다. ‘오늘날 너의 덕은 덕이 아니라 위선이다’(덕경 첫장인 38장)라고 외친다. 바로 무지한 자들의 혁명 선언이다. 그래서 노자는 황건의 난의 성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노자를 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길래 그런 저항을 외친 것인가? “공자는 귀족을, 묵자는 노동자를, 노자는 몰락한 귀족을, 순자는 신흥 관료와 자본가를 대변했다고 말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몰락한 귀족의 어떤 사람일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논어 미자편의 5장에서 7장까지 나오는 은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충고했다. “탁한 물이 도처에 도도하게 범람하는데 누가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나쁜 사람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세상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란 은자들의 조롱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자신을 변호햇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른과 어린이의 질서를 폐기할 수 없는데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어떻게 폐기할 수 있겠는가? 자기 한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사회관계를 파괴한 것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도의가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다.”
공자는 사회의 근간인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주와 신하는 오늘날 상급자와 하급자라는 직무상의 관계이고 그 원칙은 의(義), 즉 공평하고 정직하며 공적인 일을 받들고 법을 지키며 편을 들어 사사로움을 도모하지 않으며 윗사람을 속이거나 아랫사람을 억누르지 안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구별이 있다는 것은 가정 중심의 가치관이다. 사랑에 그치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서 피차에 언제나 돕고 이끌어주며 고나용하고 양해라며 어른을 높이고 어린이를 어루만져주는 것” (리쩌허우) 공자가 하려한 것은 그런 당연한 도리가 천하에 행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자와 그를 조롱한 은자들이 살던 시대는 그것이 당연할 수 없는 시대엿고 시대가 그렇다는데 공자와 은자들은 이견이 없었고 논어에서 공자는 자신을 조롱하는 은자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그들의 차이는 세상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엿다. “새나 짐승과 함께 살 수 없지 않느냐? 사람의 무리가 아니면 누구와 함께 하겠느냐? 천하가 태평하다면 내가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에서 공자 자신이 항상 말한 사람에 대한 사랑 또는 사람다움이란 뜻인 인(仁)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러나 은자들은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담의 제자 백구가 제나라에 도착하자 형벌을 받아 기시된 시체를 보았다. 시체를 밀어 바로 누이고 조복을 벗어 덮어주엇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곡하며 말했다.
오 그대여! 천하에는 피살자가 많은데 그대가 먼저 당했구려! 말끝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하지만 영욕으로 핍박하니 이런 병통이 나타났고 재화가 한곳으로 모이니 이런 쟁투가 나타났다. 지금은 사람을 몰아 세워 병들게 하고 사람을 모아 싸우게 하고 사람의 몸을 곤궁하게 하여 한시도 쉬지 못하게 하니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재물을 위해 간계를 부리고 지혜롭지 못하면 어리석다 하고 어려운 일을 시키고 감내하지 못하면 죄를 주고 무거운 임무를 맡기고 다하지 못하면 벌을 주고 먼 길을 가게 하고 이르지 못하면 죽인다. 그러므로 부득이 민(民)은 지혜와 힘을 다해 꾀로 죄를 모면하려 한다. 무릇 힘이 부치면 꾀를 쓰고 지혜가 부족하면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도둑이 횡행하는 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옳은가?” (장자 잡편 칙양)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공자는 성인의 질서로 돌아가자(복례 復禮)를 말하면 지배층의 질서를 바로잡아 천하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은자들은 그런 공자를 조롱하며 공자가 되돌아가자는 성인의 질서(예)를 조롱했다. 그들은 전쟁과 살육, 착취와 억압은 권력의 본성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권력이란 것 자체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꿈이라고? 꿈이 아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않은가? 수렵채집사회에선 모두 평등했다. 누가 누구를 착취할 수 있는 힘 있는 자가 없던 시절이다.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뿐이다. 그것이 불가능한가?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는 무치(無治) 즉 무정부주의이다.
“그들이 동경한 것은 자연의 자유인이다. 그 자연은 왕도 군주도 없고 인간의 조작과 다스림과 속박이 없는 때 묻지 않은 천연 그대로인 자연이다. 그러므로 무위는 자연을 설명한 말일 뿐 그 자체가 도이거나 목적은 아니다.”
노자는 다스림이란 자체, 정치권력이란 자체 그리고 그 위에서 만들어진 문명 자체가 하늘의 순리를 거스른 인위(人爲) 즉 위(僞) 즉 하늘의 순리인 도를 거스른 ‘거짓’이라 보며 인위를 거둬내고 순리를 따르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과 지혜를 버려라’ ‘배움을 끊어라’와 같은 말은 인위적인 질서를 천명이라 주장하는 지배자들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도덕이라 하면 국민 또는 공민으로서 품성을 닦고 사회의 질서를 잘 지키라는 기율로 인식되고 도덕률이라고 통칭된다. 그러므로 도덕은 국가나 지배자나 사회를 위한 것이고 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도덕률은 천명이라는 신성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도덕률의 생산자는 천자 또는 왕 또는 성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노자의 도덕은 자연의 도와 생명의 덕을 뜻한다. 이것은 지배자나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군주 지배가 없는 자연의 자유로운 생명을 살리고 발현케 하려는 것이다ㅓ. 그러므로 공자의 도덕은 천명인데 반해 노장의 도덕은 무치의 자연이다.”
1장의 ‘도가도 비상도’는 그 지배자들이 선포하는 도에 대한 거부이다. 너희들이 말하는 도는 가짜인 인위 노자식으로는 유위(有爲) 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도인가? 노자는 그에 대한 답으로 그들이 말하는 도는 거짓이며 진정한 자연의 도는 다르다 말하는 선언이다. 무위자연의 도에 대한 노자의 형이상학은 그 도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 도는 어떻게 알 수 잇는가를 파고드는 것이다.
치도(治道)만 말하는 “공맹의 도와는 달리 노자의 도는 주역에서 말한 음양의 운동법칙과 같은 의미의 자연법을 의미한다. 이처럼 주역과 노자에서 비로소 도의 범주는 신을 대신하여 우주의 본원이란 개념으로 확장되고 정립된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도는 노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노자가 말하는 “도는 시대와 필요에 따라 변하는 성왕의 법이 아니라 항상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을 말하는 것이므로 상자연(常自然)이라고 표기한다. 그리고 장자에 이르러 도는 이(理)로 해석되기 시작한다.” 저자는 노자의 도 개념은 후에 성리학의 ‘태극이무극(太極而無極)’이란 테제로 이어져 이기론으로 확장되엇다고 말한다.
노자의 무정부주의는 문명 자체에 대한 거부로 확장된다. “노장이 활동하던 기원전 4세기는 철기를 발명함으로써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제2차 문명혁신 시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노장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반문명 복자연(復自然)의 테제는 이러한 반자연의 제2차 문명혁신을 거부하는 것이엇다. 왜 그들은 철기문명을 거부했을까? 그것은 철기문명이 가져온 계급과 국가의 탄생을 반대하고 지배 복종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저항적인 노장의 원시 회귀 사상은 ‘기계 거부운동’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마치 18세기에 증기기관과 방적기를 발명함으로써 촉발된 제3차 문명혁신인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항거하여 일어난 19세기 초의 이른바 러다이트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노자의 말은 말 기술이 뛰어나면 졸렬해보인다는 반어가 아니라 말 그대로 기술에 대한 거부라는 장자의 해석을 따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노자의 문명의 거부, 소국과민은 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닌가? “노장의 무위자연설은 ‘자연은 낙권이며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반면 순자는 노장과는 반대로 자연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불행한 것으로 보았고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자연으로 돌아가 소박한 본성을 회복하자는 노장의 무위론은 강자가 약자를 살육하는 정글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순자는 노장과는 정반대로 ‘위(僞)’만이 악한 성을 선하게 할 수 잇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위(僞)는 문명을 말하고 노장의 무위는 자연을 말하는 것이므로 순자와 노장의 대립은 문명과 자연의 대결이다.’ 역사는 순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같다.
“좋았던 시절의 삶이여!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수렵채집인의 에덴동산에는 뱀이 있었다. 어쨌든 휴일의 캠핑 같은 삶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폭력의 위험이 만성적이고 상시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햇다. 인류에게는 포식자가 없는 상황에서 기근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낮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전쟁 덕분이엇기 때문이다. 플라우투스는 말햇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다.’ 수렵채집인의 신체가 건강하고 유연했다면 그것은 살찌고 둔한 사람들이 새벽에 화살이나 창을 맞고 모두 죽었기 때문이ㅏㄷ.
현대 수렵채집인 중 2/3는 거의 항시적인 부족 전쟁 상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엇다. 87%는 연례적으로 부족 전쟁 상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쟁’이라고 하지만 새벽의 습격이나 우발적인 접전, 수많은 가식적 위협 등을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사망률은 높다, 통상 성인 남성 중 305는 살해당한다.” (매트 리들리)
문제는 그런 역사적 인류학적 근거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군주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길은 무엇인가? 혹자는 당시 성인이라고 불린 군왕과 지배자들을 뒤엎는 민주혁명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400년전 노예제 사회에서는 그런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잇는 이른바 시민계ㅔ급이 잇지도 않앗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이때 노자는 노예 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지배자들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잇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산속에 숨어 고사리나 뜯어 먹고 풀뿌리나 캐 먹고 살라는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노자는 슬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의 초상화를 그린다면 공자는 뿔 관에 고나복을 입고 근엄한 고관대작의 모습일 것이며 묵자는 검은 노동복을 입고 민중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혁명가의 모습일 것이며 노자는 거지 옷을 입고 자연에 숨어 사는 은자의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노자의 사상적 특징은 겉모습으로만 보면 염세, 탈속, 은둔이다. 그러나 그 곳 모습은 절망과 저항이다. 이러한 노자의 양면성은 대체로 염세적인 열자와 저항적인 장자로 이어진다.
이러한 허무와 저항의 양면성은 약자와 패자의 생존 방식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승자는 몇 사람뿐이요 대다수는 패자다. 그러므로 허무와 저항은 다수 민중의 생존방식이다.’
노자는 난세에 민중들의 소망을 담아 약자와 약소국의 생존방식을 은유적이며 절망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절망에 빠진 민중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소망한 것은 당시 삶을 도륙하는 거짓되고 포악한 지배 ‘문명’에 대한 거부였다.
노자의 사상은 절망에서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철학인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이다.이러한 문명과 자연의 대칭 구조는 노자의 기본 골격이다. 강함보다 부드러우을, 밝음보다 어둠을 봉우리보다 계곡을 남성보다 여성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자에게 강함은 죽음이요 약함은 삶이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은 사회에서의 소외를 자연과의 일체를 통해 위안받으려는 것은 소극적이지만 사회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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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lu 2011-03-04 공감(3)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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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과 에덴동산
성경에 보면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은 해로운 것이 없다. 사람을 통해 나오는 것이 해로울 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의 생각(판단 및 이에 따른 희노애락을 포함한)을 통하여 이루어진 말과 행동이 惡하다는 의미이다. 자연 또한 그렇다. 본래 자연 그 자체는 순리에 의해 과하면 넘치고, 이 넘친 것이 부족함을 매우고 그렇게 순환하는 것인 데, 사람이 개입을 하면 물길을 바꾼다 땜을 만든다 하여 자연을 기준하지 않고 사람 자신이 기준이 되기에 결국 스스로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어찌 至高의 善이 있을 수 있는가? 이미 人爲이면 善과 惡이 공존하거늘.
천년, 이천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위대한 사상은 가치가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지만 본연의 의미는 그대로일 것이고 굳이 말로 형언할 필요도 없다.
다른 분들의 노자, 도덕경 책자들과는 다른 구성으로 다소 산만함과 굳이 다른 분들을 조롱하는 자세는 아쉬움으로 있지만 다른 분들보다는 의미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기울여주신 노력은 이 책의 가치를 보상한다고 믿는다.
50으로 들어서면서 세상을 좀더 이해하고 싶다면 한번 읽어야할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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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angun 2009-05-2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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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을 이해하려 한다면 비추
독한 책이다. 이책은 기존 다른 번역서 저자들의 번역을 지독하게 비판하며 전개한다. 특히 도올 김용옥의 관점과 번역을 집요하게 비판한다. 저자의 주장에 수긍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딱히 공감할만한 '주장'도 없다. 원래 도덕경은 몇글자 안되는 단촐한 책이다. 그러나 이책은 두께가 상당하다. 그건 다른 번역서들의 번역을 함께 싣고 있어서 그렇다. 챕터의 구분을 저자가 재구성했다. 도덕경을 접하기 위해 이책을 본다면 비추다.
ingee 2008-08-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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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불온한 민중의 저항정신
1.
기세춘이 서문에서 말한다.
논어는 임금에게 충성하는 군자로 출세하기 위한 교과서라는 사실과 노자는 황건의 난이라는 민중 봉기를 일으킨 저항정신의 성전이었다는 역사성을 은폐해서는 안된다.
노장은 본래 원시 공산사회를 소망한 아나키스트라며, 노자는 불온한 책이라고
불온한 노자, 기세춘이 읽는 노자다.
2.
노자를 민중봉기의 성전으로 반체제 평화주의자 아나키스트의 글로 읽는것은 좋은대 여러사람의 해석을 비교하는 것은 번거롭다.
그냥 기세춘의 해석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을텐대.
노자의 저항의식을 유가의 군주의 입맛에 맞게 바꾼 오역과 왜곡의 역사 또한 이천년이다.
여전히 해석이 중요하다고 기세춘이 안타까와 하는것은 알겠다.
그래도 이런방식은 읽는대는 걸치적 거린다.
노자의 은둔철학과 허무주의는 위정자들, 지식인들의 이런 잘난 왜곡을 이미 알고 있는걸
노자는 열린텍스트이고 시같다.
기세춘의 편집본으로 따라 읽으면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문제가 직설화법이고 단순하여 장황한 수사없이 정직한 문체다.
장자/외편/재유
지금 세상은 목잘린 시체가 서로 베고 누웠고
차꼬를 찬 죄인들이 서로 밀치며
형벌로 죽은 자들이 서로 원망한다.
...나는 성인과 지자가
사람을 구속하는 형클의 고리가 되고
인의가
손발을 묶는 질곡의 자물쇠가 되지 안흔다고 말할 수 없다.
어찌 유가들이
걸주와 도척의 효시가 되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노자는 말하기를
"성인을 없애고 그들의 지혜를 버려야만
천하가 태평할 것이다" 라고 했다.
길고긴 노장의 오역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장자가 해석한 노자를 자주 인용하고
공자와 한비자 지배자들을 위한 철학과 비교한다.
노장의 은둔철학, 무위자연보다 묵가의 노동자철학이 더 명쾌하고 더 혁명적이다.
노자는 한사람이 아니다.
난세에 굶어죽고 얼어죽고 길가에 버려진 시체들을 보며 살아낸 민중들이 공동창작한 시다.
저항의식이 있고 세상의 순리를 아는 순박한 마음이 있으나 모두 잊고 그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숨죽여 '살고' 싶다.
참으로 민중스럽다.
도올 김용옥을 비롯한 이시대의 오역에 대한 해석보다
노자를 해석하며 유가를 본래의 위치로 정확하게 해석한 것이 더 시원하다.
유가는 출세를 지향하는 공자의 학원이었거든
신분질서와 계급을 인정하며 군주의 눈에 잘 보이고 싶은 지배계급의 철학이다.
지배계급의 철학은 원래 저항하는 철학을 배격하고 저 홀로 세상을 지배하기를 바란다.
노자와 장자가 유가를 비웃는 것이 재밌다.
세련되봐야 군주의 순발이 되어 민중들을 고생시키기 밖에 더하니. 잘난척 하지 마라. ^^
500년 전국시대를 겪으며 춥고 배고프고 죽임을 당하던 민중들이 세상을 등지고 도망가서 은둔해서 사는것이 장땡이라고
도망자이고 주린자이고 비천한 자들이
세상을 다 갖고 싶을리없이, 세상을 다스리고 싶은 야망따위 없이, 세상이란 원래 주인이 없는것이라고
인의예, 세련된 명분은 개나 물어가라고, 어차피 현실에서 지배자들의 허세일 뿐이라고
인간의 도가 아니라 자연의 도에 따라 순리대로 살고 싶다고
도망가면서 숨어서 궁시렁대는 느낌
고달픈 민중들의 소리를 장자가 이어간다.
장자/외편/재유
천하는 자유롭게 풀어둔다는 말은 들었어도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문제는 2000년전 20대의 천재였던 왕필부터 현대의 김용옥까지
민중의 저항시를 지배자들을 위한 순종으로 읽는는다면 그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왕필의 왜곡이 승리하여 질기고 오랜 수명을 누릴수 있었던 것은 노예적 봉건제의 수명이 질기고 길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제 자본을 찬미하는 자들의 왜곡와 오역의 수명이 또한 길 까봐, 기세춘은 답답하다.
노자의 역설과 반어는 전국시대의 사회 혼란과 민생 파탄에 절망한 민중의 담론이다.
기세춘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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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쥐만세 2012-01-2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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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노자, 장자를 좋아하시는 분에게 드리는 TIP
요새 한비자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한비자는 어떤 목표나 결과를 달성하기에는 기가 막히게 잘 드러맞는다. 경영전략이나 인사 업무를 할 때 한비자는 놀라운 혜안을 제공해 준다. 노자 역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사물을 관조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언제나 매력적인 책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책의 정확한 위치와 쓰임을 알 때 더 많은 성찰을 줄 수 있다.
만약 한비자나 노자가 처음으로 접해 보는 동양고전이라면 커다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한비자나 노자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사고방식에 대한 대안이거나 파격, 즉 비판서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 책들의 역사성이다.
기존의 사고방식이란 유가를 말한다. 먼저 문제가 되는 노자의 경우 "공자가 찾아가서 예를 물었다"는 사마천 사기의 내용 때문에 유가보다 앞선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공자의 <논어>보다 <노자>가 시기적으로 뒤에 있을 뿐만 아니라 유학의 유구한 전통에 비해서는 너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학은 B.C.2288년, 즉 지금으로부터 3,300년 전 요임금 시기부터 시작하는 반면, 노자는 공자의 생몰연대인 B.C.552~479년 이후부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의 인간은 유전적으로 유가의 피를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양인의 존재와 행동은 유가가 규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바탕 위에 노자와 한비자가 있다.
한비자의 사상을 받아들여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는 서쪽의 변방에 있던 나라로 중원의 중국인으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유가의 사고방식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비자는 중국 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한(韓)나라에서 유세하였으나 개혁적 성향은 보수적인 유가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한비자의 책을 눈여겨 본 진시황이 한비자의 사상을 철저히 받아들이고 진나라가 가혹하게 적용한 끝에 극단적인 효율성을 무기로 전국시대를 통일할 수 있었다.
결국 한비자는 유가의 기반 위에 개혁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한비자를 읽을 때 이런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된다. 결국 유가에 대한 반론으로서 법가를 주창한 것이다.
동양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가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유가의 유전자가 몸에서 빠져나가려면 적어도 수백 년은 지나야 한다. 법가나 노장을 존재와 행위의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원인 불명의 상태가 된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가를 원류로 하고 한비자와 노장 등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학습했다. 다산 정약용도 마찬가지였다.
즉 유가로 발제를 삼고, 노자를 통해 유가의 고정관념과 맹신이 어떤 부분인지 가려내고, 한비자를 통해 유가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가려낸다. 한비자 본인 역시 자신의 책이 정도를 벗어났다고 고백했다. 잔인한 전국시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극약처방이 필요했다는 게 그의 해명이었다.
마지막으로 특정 사상가에게 몰입하는 경우 그 사상가의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성향을 가질 위험이 있다. 나는 1998년 스피노자의 <에티카>로 철학공부를 시작했다. 스피노자로 모든 현상이 설명이 된다고 믿어 5년 넘게 스피노자에 빠져들었다. 철학과 은사님이 "전체 철학사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스피노자가 가지고 있는 위치를 조망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셔서 철학사를 10권 가까이 읽었다. 그 결과 스피노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서당을 다니면서는 주자에 빠지게 되었는데, 주자로부터 자유롭게 되기까지는 10년 정도의 세월이 걸렸다. 노자와 장자, 사마천 등을 보면서 주자의 한계를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주자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특정한 사상가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그 폐해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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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12-11-02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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