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중 한 사람인 틱 낫한 스님이 21일 베트남 후에에 있는 불교 사원에서 입적했다. 95세.
틱 낫한 스님은 명상을 현대인에게 일상 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게끔 쉽고 구체적으로 전했다. [중앙포토]
고인이 설립한 프랑스의 수도공동체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는 이날 “2014년부터 틱 낫한 스님이 뇌출혈로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웠고, 사람들과 소통할 때는 몸짓으로 했다”며 입적 전 틱 낫한 스님의 상태에 대해서도 밝혔다.
고인은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16세 때 출가했다. 61년에 미국으로 가서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코넬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반전 평화 운동을 펼쳤다.
틱 낫한 스님과 제자들이 반전 평화 운동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사이공의 탄압에 대한 저항 운동과 반전 평화 운동에 대한 공으로 67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런데 그 해에는 노벨평화상이 누구에게도 수여되지 않았다. 틱 낫한 스님의 지구촌 평화 운동을 저지하고자 베트남 정부는 귀국 명령을 내렸고, 틱 낫한 스님은 73년에 프랑스로 망명했다. 2005년이 돼서야 비로소 틱 낫한 스님은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장기 망명한 팃 낫한 스님은 프랑스에서도 난민 구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1982년에는 프랑스 보르도 근처에 있는 수도공동체 ‘플럼 빌리지’를 설립했다. 플럼 빌리지는 불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명상과 힐링을 찾는 현대인에게 커다란 마음의 쉼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서구인에게 불교식 명상의 현대적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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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낫한 스님은 2003년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당시 서울에서 전남 순천의 송광사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주최 측은 틱 낫한 스님을 위해 따로 VIP용 승용차를 준비했다. 틱 낫한 스님은 “나는 함께 온 일행들과 움직이고 싶다”며 승용차 탑승을 거절하고, 대중과 함께 버스로 이동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절집에서 회자된다. 그는 대중과 함께하는 일상 생활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다.
2003년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를 찾은 틱 낫한 스님(오른쪽)이 서옹 스님(왼쪽)에게 선물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틱 낫한스님는 미국에서도 ‘그린 마운틴 수행원’을 세워서 현대인을 대상으로 명상을 전했다.
저술 활동도 무척 활발했다. 『귀향』『화』『틱 낫한의 걷기 명상』『부디 나를 참이름으로불러다오』등 100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했고, 이중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상당수다.
뉴욕타임스는 21일 틱 낫한 스님의 부고 기사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어록을 하나 뽑았다. “태어남과 죽음은 단지 개념일 뿐이다. 죽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그들은 실제가 아니다.(Birth and death are only notions. No Death, No Fear. They are not real.)” 불교에서는 진리의 자리는 오고 감이 없다고 말한다. 태어남과 죽음도 바다 위에 일어나는 파도와 같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틱 낫한 스님의 불교적 이해와 수용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틱 낫한 스님은 베트남 출신이다. 반전 평화 운동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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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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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 11시간 전
중의 명복을 빈다니. . . 여기 독자들 희한하네. 종교전문기자도 황당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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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c4**** 12시간 전
공산주의자의 실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남베트남에서 전쟁반대 평화협상등을 주장 국론 분열 남베트남을 적화시키는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고있던데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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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13시간 전
같은 시대에 같이 호흡하고,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책을 읽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인연에 감사합니다. 인류의 스승이 우리 곁을 떠남에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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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불교 지도자·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 열반…향년 95세(종합2보)
General / 김범수 / 2022-01-23 00: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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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반대하다가 추방…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고국서 여생 보내
"고통을 이용해 행복 느낄 수 있어" 명상 수련 강조
인권 운동가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 틱낫한 스님의 2007년 당시 모습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및 DB 금지]
(하노이·서울=연합뉴스) 김범수 특파원 김연숙 기자 =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자 평화 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이 향년 95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22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와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중부 도시인 후에의 뚜 히에우 사원에서 별세했다.
그가 프랑스에 세운 불교 명상공동체 플럼빌리지 사원은 틱낫한 스님이 이날 자정에 입적했다고 고인의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베트남 출신인 틱낫한 스님은 시인이자 교사, 평화 운동가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살아있는 부처', '영적 스승'으로 꼽혔다.
고인은 1926년에 태어나 23세의 나이에 승려가 됐다.
영어 등 7개 국어를 구사했던 그는 1960년대 초반 미국 프린스턴대와 컬럼비아대를 방문해 불교와 관련된 강의를 했다.
지난 1963년 고국에 돌아온 뒤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가 남베트남 정부에 의해 추방당했다.
이후 주로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불교 원리를 정치·사회 개혁에 적용하는 참여불교 운동을 전개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 2018년 4월 인도서 강연하는 달라이 라마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고인은 생전에 미국의 인권 운동가인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만나 갈등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평화와 비폭력을 지향하는 틱낫한 스님에 감명한 킹 목사가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서방 세계에 불교를 널리 알린 인물이다.
프랑스에 플럼빌리지 사원을 세운 뒤 줄곧 마음의 수련과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늘상 "고통을 받는 법을 알게 되면 고통을 줄일 수 있으며, 고통을 이용해 행복과 환희를 느낄 수 있다"고 설파해왔다.
고인은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2018년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후에 시신을 화장해서 전세계에 있는 플럼빌리지 명상 산책로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생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틱낫한 스님은 국내에도 '화', '틱낫한 명상',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등 다수의 책이 소개됐다.
틱낫한 스님의 열반 소식이 전해지자 달라이 라마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달라이 라마는 고인의 트위터에 공유된 메시지를 통해 "나의 친구이며 영적형제"라고 지칭했다.
그러면서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과 자비로움이 내면의 안정에 도움을 주고, 마음의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진실로 의미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틱낫한 스님이 생전에 베트남전을 반대했고 킹 목사의 인권 운동을 지지한 점도 높이 평가했다.
이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최선의 방법은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그의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현지매체인 VN익스프레스는 전했다.
전세계 유수의 언론사들도 틱낫한 스님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애도의 뜻을 전했다.
AFP통신은 고인을 "서구에 마음챙김을 소개했다"고 전했고 뉴욕타임스는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승려"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CNN은 "평화 운동가로서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했다"고 전했다.
고인의 장례는 뚜 히에우 사원에서 일주일간 조용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