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해부’를 마치며 | 도덕경 해부
동서고금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덕경을 해석하여 왔지만 합의된 정설은 고사하고 단 두 사람의 해석도 일치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도덕경 해설서만 해도 줄잡아 200여 종은 될 것입니다. 각자 나름대로는 자신의 주장이 옳고 정당한 근거도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도덕경이 훌륭한 책이라는 점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데 그 내용에 대한 해석에는 아무도 일치하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만의 유명한 노자 연구학자인 陳鼓應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였습니다.
“우리는 도를 실존적 관점(existential viewpoint)에서 처리할 수는 없고, 가설적인 관점(hypothetical viewpoint)으로 토론할 수 있을 뿐이다.”(최재목 · 박재연 역, 『진고응이 풀이한 노자』,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4, p71)
여기에서 ‘실존적(實存的)’은 개개인의 삶의 관점을 가리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도덕경은 아마도 이 세상을 사는 ‘나’에게 어떤 종류의 길을 제시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는 것입니다. 陳 선생도 처음에는 도덕경을 실존적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나름대로의 가설적 관점을 지니고 다른 학자들과 서로 토론하면서 올바른 이해에 근접해가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가설적(假說的)’이란 자신의 견해를 잠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더 합당한 견해가 나오면 그것을 수정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학자는 의외로 보기 드뭅니다.
그런데 저는 도덕경이 철두철미하게 실존적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저 자신도 이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너덧 해에 걸쳐 도덕경을 거듭 뒤집어서 흔들어보기도 하고 파헤쳐 보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사실은 점점 더 분명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원고로 작성하여 도덕경을 전공하는 몇몇 학자들에게 보내 비평을 요청하였습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에 철학을 전공한 관계로 몇 명의 교수들과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그런 사람들의 소개도 받을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모든 사람이 아예 무반응이거나 마지못해 몇 마디 얼버무리는 정도로 대응을 회피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각자 자신의 ‘가설’에 만족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겨우 알았습니다. 진리보다 권위를 중시하는 학자는 자신이 제시한 가설이 그대로 정설로 굳어지기를 바랄 것입니다. 배우는 학생들은 감히 스승의 견해를 반박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럴만한 학식이 없으니까요. 한편 학자들은 서로의 가설을 비평하면서 하나의 정설을 모색하는 대신에 도덕경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으므로 한 가지 해석만 옳다고 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입을 모아 주장합니다. 학자라는 사람들이 자리보전에 급급하느라 미리부터 진리에 겁을 먹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것입니다.
노자가 絶學無憂라고 한 뜻을 깊이 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모든 학문은 가설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서가 적절하게 비유하였듯이, 학문은 경험을 재료로 구워낸 정의(定義 definition) 또는 개념(槪念 concept)이라는 벽돌(adobe)을 이성(理性)이라는 역청(tar)으로 쌓아올리는 바벨탑입니다. 즉, 학문은 사물에 관한 개념들을 논리의 법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일입니다. 학문은 有의 산물이므로 그것으로는 有의 세계를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사람이 有를 초월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아마도 그가 有가 아닌 곳, 즉 無로부터 오는 지혜를 지닐 때일 것입니다. 無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니면 有를 결코 초월하지 못합니다. 도덕경의 주제는 바로 無이고, 無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존적 자아뿐입니다. 제가 말하는 ‘실존적 자아’는 일체의 有를 벗어나 無 앞에 나선 자아를 가리킵니다. 그가 어떤 일을 겪는지는 그 자신 밖에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실존적 자아는 가설 또는 학문의 대상을 넘어서는 神的인 존재이며, 노자가 聖人이라고 지칭하는 바로 그입니다.
도덕경을 학문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가설적인 관점을 결코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도덕경을 조금도 알 수 없습니다. 도를 실천하는 실존적 자아만이 실존적 관점으로 올라가 거기에서 비로소 도덕경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덕경을 읽는 목적은 도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도덕경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도를 실천하여 자유로운 실존적 자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도는 無이므로 도에 대한 지식이란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을 어떻게 하면 세상에 알릴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노자 도덕경』이라는 책을 엮어서 출간한 것이 작년 10월입니다. 출판은 ‘푸른나무’에서 맡아주었습니다. 자비(自費) 출판인 관계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책의 분량을 극소화하다 보니 마치 주석을 붙인 논문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체계적인 문장으로 쓰려고 하면 아마 500 페이지는 가벼이 넘을 것이므로 비용이 너무 커집니다. 그런데 과학문명의 덕택으로 블로그라는 좋은 수단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블로그라면 분량과 비용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읽고 의견을 줄 수도 있고 서로 생각을 교환할 수도 있습니다. 도덕경에 관한 한 이것으로써 대충 제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해부’라는 타이틀을 얹어놓은 이유는 도덕경의 내용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생체조직처럼 서로 연결되어 확실한 작용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도덕경은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어느 한 부분, 한 글자도 두리뭉실하게 넘어갈 것이 없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여지도 없습니다. ‘도덕경 해부’를 처음부터 차근히 살펴보고 만져보시면 그것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관심이 더 큰 어떤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먼저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전후 맥락을 모르면 얼핏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1장부터 81장까지 순서대로 해부해 놓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쉽게 원하는 부분에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 내용을 수정하거나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의견이나 질문이 있으시면 서슴지 마시고 댓글로 올려주시거나 메일을 주십시오. 기꺼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모쪼록 도에 취미를 붙여서 인생의 참된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노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