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9

현각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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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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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승려가 되기까지3. 한국 불교에 대한 실망과 절연 선언(?)4. 근황5. 저서

1. 개요[편집]

玄覺
속명은 폴 뮌젠(Paul Muenzen). 1964년 11월 28일 생.

독일계 미국인으로 가톨릭 집안 태생이다. 외가는 아일랜드계라고 한다. 가톨릭계 사립고등학교를 다니며 영적 방황을 겪었고, 결국 예일대에 입학해 철학과 문학을 전공한다. 이때 쇼펜하우어와 낭만파 시인들에 심취했다. 유태인계 미국인[1]으로서 미국에 한국 절을 지은 무량 스님[2],청안스님과 더불어 꽤 알려진 한국 불교로 귀의한 백인 스님이다.

2. 승려가 되기까지[편집]

어린 시절은 독일계 미국인[3] 집안에서 태어났다. 전형적인 미국 동부 중산층 가정으로 부모님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고 9남매 중의 하나로 자라며 사립학교[4]를 다녔는데, 그야말로 판에 박은 듯한 엄친아 집안이다 동기의 말로는 고등학교때 대마초 엄청 많이 피우면서 성적은 잘받는 학생이었다고 청소년기에 친하게 지내던 사촌이 교통사고로 고통스럽게 죽는 것을 보고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자각하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후 부모님이 졸업한 예일대로 진학했으며, 학생운동에 투신하기도 하고 그중에도 철학을 공부하며 유럽에 교환학생을 다녀오기도 했다. 현각 자신은 훗날 이 당시를 회고하며 쇼펜하우어의 말기 철학에서 불교와의 접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다.[5]

1989년 하버드 대학원 입학 허가서를 받고 학비를 벌기 위해 월스트리트 법률사무소에서 일했는데 대표적인 물질주의 사회인 월스트리트의 삶에 절망을 느끼고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브루클린 다리에 투신하려는데 우연히 만난 흑인 거지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서 마음을 바꾼다. 어차피 자살할 생각이었으니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적선했더니 거지는 "오늘이 며칠인지 알아? 오늘은 네 생일이야. 나중에 내가 한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게 될 거야." 하며 축가를 불러줬다고 한다. 지나가던 거지의 위엄 현각스님 자신은 어쩌면 그 거지가 관음보살의 현신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고.

이후 하버드에 입학해 비교철학을 공부하던 중 당시 일본인 지도교수가 숭산의 하버드 강연에 참석할 것을 권하면서 한국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다음 날 케임브리지 젠센터(선원)를 방문해 참선 등 기초적인 내용을 배우기 시작해 결국 하버드를 휴학하고 1990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계룡산 신원사에서 90일 동안거를 마치고 귀국, 학업을 계속했으나 결국 1992년 수계식을 받고 정식으로 출가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수계식을 한 장소가 중국 남화사(南華寺)였다. 이곳은 육조 혜능이 머물던 곳이니 한마디로 한국 선종의 뿌리라 불러도 좋은 곳이었다. 참 묘한 인연.[6]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 KBS 일요스페셜 2부작 만행[7]으로 유명해졌고, 곧이어 출간한 책인 "만행(萬行)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전 2권)"으로 더더욱 유명해졌다.

사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재미있는데 어느 날 출판사에서 다큐를 봤는지 "스님이 스펙 쩌는 엄친아인데 출가한 이유가 참 궁금합니다. 수필 써주시면 숭산 스님 책도 같이 내드릴게요"하는 말에 낚여서 글을 쓰기 시작해서 6주 만에 탈고했다고. 이렇게 나온 책이 "선의 나침반".

아무튼 이 책 때문에 자신이 너무 유명해지자 수행에 방해된다고 스스로 절판시켜 버렸다.

이 책에서 겪은 이야기를 보면 한국에서 길을 가는데 백인이 왜 불교 마귀에 심취하냐고 딴지거는 예수쟁이도 만나봤다고 한다. 백인이 왜 사탄인 불교를 믿느냐 이러기에 그러는 당신은 아시아인은 무조건 불교믿어야 한다는 편견이나 다를 거 뭐냐톡쏘아 한마디하자 그 예수쟁이는 말문이 막히는지그..그렇군. 맞개종 콜! 그냥 예수천국이나 외치다가 가버렸고 뭐 종교에 광적으로 빠져들면 저런다는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저서와 여러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독특한 인연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그가 91년에 계룡산의 신원사라는 절에서 수행을 할 때, 우연히 다른 스님의 방에서 한국 민요나 전통가요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울컥하여 하염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도 또 몇 년 뒤에 동국대학교에서 불교 경전 강의를 하다가 우연히 광복 50주년 기념 관련 행사에서 흘러 나오는 똑같은 노래를 듣고 다시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노래는 바로 애국가였던 것. 너무나 신기한 경험에 이 이야기를 스승인 숭산에게 말했더니 "너는 전생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독립군이었는데 일본인들에게 총을 맞고 죽으면서 부강한 나라에 태어나 한국을 돕길 기원했던 것 같다"는 답을 들었다고. [8]

이런 이야기도 있다. 그가 지리산 연곡사 토굴에서 참선수행을 하는데 밤에 독경을 할 때마다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고, 날이 갈수록 그 소리가 뚜렷해졌는데 비명소리, 울음소리 같은 귀곡성이었다고 한다. 현각스님은 이 당시 오밤중에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지만 수행 자체는 근성으로 계속했는데, 신기하게도 스물하루밤이 지나자 그 소리가 딱 그치면서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훗날 이 이야기를 다른 스님에게 했더니 그 스님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지리산의 빨치산 토벌에 관한 역사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연곡사는 군경과 빨치산간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피아골 한가운데에 있고, 이후 빨치산의 백골이 수백 구 단위로 발굴되었다.

현정사 주지스님이었다가 그만두었다. 불교 TV를 보면 법문 방송을 볼 수 있다. 영어로. 물론 자막이 제공되며 자막을 바탕으로 영어법문을 리스닝하려고 노력해보면 되도록 쉬운 단어를 선택하여 설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문 어휘가 많이 사용되는 설법보다 더 쉽게 법문을 이해할 수 있다. 영문으로 진행된 금강경 강해는 여기서 볼 수 있다.(자막有) 유튜브링크

3. 한국 불교에 대한 실망과 절연 선언(?)[편집]

그렇게 한국 불교에 몸담은 미국인 스님으로서 유명해졌지만, 수년간의 생활 끝에 기복신앙적인 한국 불교에 회의를 느끼고 2016년 7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 불교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국 불교를 떠날 것을 선언했다.[9] 조계종이 화계사 국제선원을 완전히 해체시켰고, 유교적 인습과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운영한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 승려는 장식품' 이라고 지적하며 종단의 국적에 대한 차별을 비판하였다. 페이스 북의 글에서 '화계사 국제선원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송설정'이라고 언급된 부분의 송설정은 화계사의 송원 설정인 것으로 보인다.[10] 현재 페이스 북의 해당문구는 삭제되었지만 기사로 볼 수 있다.(기사링크) 이미 근래 2~3년간 외국인 스님들이 잇따라 떠나며 불교계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어왔지만, 현각 스님은 일반에 인지도가 좀 더 높은 인물이기 때문에 파급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각 스님은 환속하는 것은 아니고, 유럽이나 미국에서 현대인들이 참다운 화두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한다. 기사1 기사2 페이스북(현재 글 삭제됨)

다만 이후 BT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는 한국불교를 떠난다고 한 적 없다. 언론 보도가 와전되었다#며 자신의 한국어 실력 미숙을 탓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기사. 결론적으로 현 조계종에 개혁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말의 뉘앙스는 와전되었다는 것.

4. 근황[편집]

논란 이후 언론 등지에는 거의 모습을 비추지 않으며, 2020년 현재는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본인이 2016년에 건립한 사찰 불이선원에 상주하며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국식 불교를 포교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한국 불자들과도 함께하고 있다.
한 여행객이 쓴 블로그 글을 보면 불이선원의 모습을 알 수 있다. 현지에 여행을 온 한국인 지인에게 숙식을 제공한 모양이다.

5. 저서[편집]

  •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전 2권)
  • 선의 나침반 (전 2권, 엮은이) - 위의 저서를 쓰게 된 낚시 원인이 된 책.
  • 오직 모를 뿐 - 숭산 대선사의 서한 가르침 (엮은이)
  • 부처를 쏴라 (엮은이)
  • 공부하다 죽어라 (여러 저자 중 하나)

만행을 제외하면 모두 불교서적이고 현각 자신을 포함한 국제선원의 도반들이 숭산의 가르침을 편찬한 것들이다. 부처님 머리에 담뱃재를 털고(Drop the ashes to Buddha: 한국 정발명은 '부처님께 재를 털면')는 숭산 본인의 저서로 보아야 하므로 여기에는 미포함.
[1] 무량의 할아버지는 아예 랍비였고 아버지는 개신교인으로서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교로, 만행에 의하면 무량이 보낸 불교 귀의를 알리는 편지를 첫 구절만 읽고 두 번 다시 읽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의 귀의를 그다지 탐탁치 않게 여긴 듯 하다. 다만 무량의 어머니는 그의 귀의를 일절 비난하지 않고 응원했다.[2] 미국 이름은 에릭 버럴.[3] 물론 이민온 지는 몇 세대가 지나 완전히 미국화되었다.[4] 뉴저지주 Metuchen에 있는 St. Joseph High School[5] 실제로 쇼펜하우어는 말년에 불상을 모셔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6] 한국 선종은 육조혜능으로 시작된 남종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만 선종의 정통성 문제는 학계의 오랜 연구와 회창법난 이전 돈황 선종문헌의 발굴로 원래 정통은 북종선이었는데 남종선파가 힘이 커지면서 흡수되었다는 게 정설.[7] 후술할 책 제목처럼 "萬行"으로 쓰이지 않고 '卍行'이란 제목으로 쓰여졌다.[8] 당시 널리 불리던 애국가 곡조가 현재 우리가 아는 애국가의 곡조와 다르다는 사실은 안비밀. 단, 지금과 같은 애국가가 1940년 12월 20일 처음 불린 바 있었고 임시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국가로 명문화한 시점은 1942년이니만큼 광복군으로 가정한다면 무리는 아니겠다.[9] 유사하게, 한국의 대표적 선승인 송담 큰스님도 조계종의 돈선거와 법인화, 파벌싸움 등의 문제로 실망하여 탈종을 선언하였었다. 기사링크[10] 송원 설정은 기도로 암을 이겼냈다는 인터뷰를 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