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 의미 다시 생각할 때 - 불교신문
‘비구’ 의미 다시 생각할 때
이미령 승인 2012.05.20
〈16〉청정하게 걸식하는 사람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수행하는 남성수행자를 ‘비구’라고 합니다.
‘비구’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첫 번째 뜻은, 비(比)는 ‘부수다’, 구(丘)는 ‘번뇌’의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번뇌를 부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계를 받을 때에 스스로 “나 아무개 비구는 목숨이 다하도록 계를 지니겠습니다”라고 맹세한 사람이라는 두 번째 뜻도 있고,
세 번째로는 겁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이 수행자는 틀림없이 번뇌를 모두 끊어버리고 열반에 들게 될 것”임을 알아차린 마왕이 그 앞에서 겁에 질려 벌벌 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비구라는 말에 담긴 으뜸가는 뜻으로는 ‘걸식하는 사람’입니다.
존자 사리불이 성에 들어가서 걸식을 한 뒤에 벽을 향해 앉아 공양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때 어떤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수행자여, 당신은 지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밭을 가는 일이라도 해서 그것으로 끼니를 해결합니까?”
“아닙니다.”
“당신은 그럼 신자들에게 별자리를 봐주거나 날씨 등에 관한 점을 쳐주면서 그것으로 끼니를 해결합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방으로 권력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공양으로 끼니를 해결합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들의 미래를 예언하고 길흉화복을 점쳐주면서 그것으로 끼니를 해결합니까?”
“아닙니다.”
사리불이 거듭 부정하자 여성이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 네 가지 방식으로 밥벌이를 하는데 당신은 다 부정하고 있습니다. 대체 당신은 무엇으로 밥을 먹는다는 말이지요?”
가장 천한 방식으로 밥 얻지만 수행자로서 본분 잊지 말아야 사리불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출가자가 약을 조합하여 조제하거나 곡식의 씨앗을 뿌리거나 나무를 심는 등의 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하구식(下口食)이라 합니다. 출가자가 별자리나 해와 달, 바람과 비 번개와 벼락을 관찰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서 그것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앙구식(仰口食)이라 합니다.
출가자가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첨을 하고 그들의 심부름으로 이곳저곳을 쫓아다니거나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방구식(方口食)이라 합니다.
출가자가 갖가지 주술을 배워 길흉을 점쳐주며 그것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사유구식(四維口食)이라 합니다. 이 네 가지는 깨끗하지 못하니 출가자에게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나는 이 네 가지 부정한 식사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직 청정한 걸식으로 살아갑니다.”
세상 대부분 사람들의 밥벌이는 위의 네 가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른 길을 걸어가는 수행자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팔지 않습니다. 사리불 역시 걸식으로 살아가는 수행자이나 그의 걸식은 굶주린 위장에 음식을 채워 넣으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밥을 빌어서 먹으면서도 “청정한 걸식으로 살아간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대지도론 제3권)
걸식은 사실 가장 천한 생계수단입니다. 그러나 뜻한 바 있어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였기에 <대승본생심지관경>에는 걸식을 하면, 부처님에게 있는 육계(肉?)가 그에게 생겨나거나 자신의 79가지 교만한 마음을 항복받고, 인색한 사람들을 복 짓게 하며, 가난한 집과 부유한 집을 분별하는 마음을 없애주고, 모든 부처님이 기뻐하여 일체지를 얻는 가장 좋은 인연이 되는 등의 열 가지 이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가장 천한 방식으로 밥을 얻으나 그 행위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스스로에게도 수행의 완성을 가져다주기에 스님들 중에는 빈털터리인 것을 오히려 당당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행자의 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 청정하게 걸식하는 사람이란 뜻의 ‘비구’라는 이름에 자꾸 마음이 머뭅니다.
[불교신문 2819호/ 5월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