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8

청정도론 해제(解題) – 디지털 불교



청정도론 해제(解題) – 디지털 불교



청정도론 해제(解題)

Posted on2018년 9월 6일Authorhaein


청정도론 해제(解題)

1. 들어가는 말

현존하는 불교는 크게 북방불교와 남방불교로 나누어진다. 북방불교는 설일체 유부로 대표되는 부파불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승(Mahayana)이라 자처하고남방 불교는 스스로를 상좌부(Theravada)라 부른다.

상좌부는 말 그대로 부처님의 직계 제자를 위시한 장로 즉 큰스님들이 전승해온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상좌부는 스님(출가자)들이 전승해온 스님들을 위한 가르침1) 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의 45년간 가르침을 결집하고 전승해온 것도 스님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초기경들은 출가한 스님들이나 당시 외도 수행자들2)에게 한 가르침이 대부 분을 이룬다.

그리고 출가자들은 ‘법에 의지하라’는 부처님의 유훈에 따라 이런 법을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하고 체득하고 가르치는 일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이런 그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교학체계를 우리는 아비담마(Abhidhamma)라 부른다. 그래서 상좌부불교는 아비담마 불교이기도 하다.

1) 여기서 스님(bhikkhu)이라는 말 속에는 “도를 닦는 자는 누구나 비구라고 이름한다(<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80)”는 <장부 주석서> 의 말처럼 장부일대사를 해결하고자하는 마음을 낸 모든 사람이 다포함된다.

상좌부는 이런 마음을 낸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2) 외도(外道)는 ‘annatitthiya’의 한자역어이다. 여기서 ‘anna’는 ‘다른’을 나타내는 형용사이고 ‘titthiya’는 tittha(Sk. tirtha, 여울)에서 파생된 명사로 ‘여울에 있는 자’를 나타낸다. 그래서 문자적으로는 ‘다른 쪽 여울에 있는 자’라는 뜻이며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 이외의 다른 길을 가는 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外道로 옮겼고 sectarian으로 영역하고 있다.

이런 외도 수행자로 초기경에서는 주로 유행승(paribbajaka, 遊行僧) 들이 언급되고 있으며 그 외 사문(samana, 沙門), 바라문(brahmana), 나체 수행자(acela)들이 언급되고 있다.

아울러 육사외도(六師外道)로 여러 경에서 정리되어 나타난다.

이들 가운데 바라문들은 주로 결혼한 자들이었으며 다른 자들은 대부분 독신 수행자들로 이들은 모두 각 파에서 설정한 해탈(moksa, Pali, mokkha) 을 추구하여 수행을 하던 수행자들이었다.

아비담마는 문자 그대로 ‘법(dhamma)에 대해서(abhi)’라는 말이며 그래서 현장스 님은 구사론에서 ‘대법(對法)’으로 옮겼다. 아비담마는 사리뿟따 존자를 비롯한 부처님 직계제자들과 그 후에 수많은 스님들이 법을 참구하고 고뇌하면서 발전시킨 어떤 일관된 법체계이다.

그들은 아비담마를 ‘수승한 법, 특별한 법’이라 불렀으며3) 중국에서는 그래서 승법(勝法)이라 옮겼고 대법(大法)이나 무비법(無比法)이라고도 옮겼다.

이처럼 출가자들의 제일의 관심은 오직 법이었지 결코 중생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생이니 인간이니 하는 것은 법이 아닌 개념(pannatti)일뿐이었다. 그들은 법을 배우고 연구하고(pariyatti, 교학) 그것을 내 삶에 적용시켜 도를 닦고 (pariyatti, 도닦음) 그래서 무상. 고. 무아의 법의 실상(보편적 성질)을 꿰뚫고 통찰하여(pativedha) 부처님이 보이신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일생을 다 바쳤다.

이처럼 법을 참구하며 평생을 바친 스님들이 부처님의 법을 참구하여 출가사문이된 성스러운 과실(samannaphala, 沙門果)을 증득하고 불법이 오래 오래 이 세상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전승해온 가르침이 상좌부불교이고 아비담마이다.

그들은 소승이라든지 은둔불교라든지 아공법유라든지 부처님 가르침을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다든지 하는 그들을 향한 어떠한 비난이나 도전에도 별 관심이 없었 다.

그들의 관심은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법을 올바르게 이해(빠리얏띠)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시켜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고 바른 도를 실천하여(빠때빳띠) 괴로 움에서 벗어나(빠띠웨다) 부처님이 보이신 해탈열반을 직접 실현하는 것이었으며 이런 출가 생활이 이웃이나 불교도 들에게 가장 큰 공덕을 가져다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 punnakkhetta)이 된다고 부처님께서 설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존재한 어떤 불교보다도 그들의 법체계가 가장 부처님 원음을 순수하게 지켜오고 있다고 자부하여 왔으며 역사와 언어학이 발달한 요즘에는 이러한 사실을 거부하기 힘들다.

그리고 현장스님이나 의정스님의 기록을 보면 그 당시에도 인도대륙에는 법의 궁구를 근본으로 하는 상좌부를 위시한 소위 말하는 부파불교의 교세가 대승보다 월등히 우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무슬림의 침공으로 대승은 인도대륙과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그 자

취를 감추었지만 상좌부는 그 전통을 면면히 계승해왔다. 오히려 역대 왕들로부터 부처님의 정통성을 인정받아 교단은 보호를 받았으며 그들의 법에 대한 결백 증에 가까운 진지함과 엄격한 승행은 지역민들의 큰 외호를 받아왔다.

출가자가 평생을 바쳐 법을 궁구하고 실천하며 검소하게 살때 민중은 소승이라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승단을 존중하고 외호하였고 그들을 복밭이라 여겼다. 이것이 상좌부불교의 역사이다.

여기 이러한 상좌부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 『청정도론』이 있다. 붓다고사가 5세기에 편찬한 이 책은 너무나 잘 알려졌기 때문에 상좌부불교에 관한한 아무도 『청정도론』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은 더 이상 언설을 필요치 않는다. 『청정 도론』을 상좌부불교의 부동의 준거라고 인정한다면 이제 우리에게 이런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청정도론』은 무엇을 설하고 있기에 1600여 년 동안 상좌부불교의 대명사로 불려왔는가?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표방하고 가르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가르침은 정말 열반이라는 청정으로 인도하는 도가 될 수 있는 가?’

이제 해제를 쓰면서 철저히 이러한 관심과의문과 고뇌를 바탕으로 시작하려 한다. 그것이 역사적이고학문적인 접근보다 더 의미있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이런 고뇌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답은 『청정도론』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책과 마주 하고 앉아서 정독을 하고 계신 여러 독자들과 공유하는 보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으며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해제가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역사적 근거와 학문적인 분석 없이 『청정도론』의 근본 입각 처를 논하는 것은 자칫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접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청정도론』과 저자에 관한 일반적인 고찰을 한 뒤 이 문제를 나름대로 천착해 보고자 한다.

2. 상좌부불교에서 차지하는 『청정도론』의 위치와 성격

상좌부불교에서 차지하는 『청정도론』의 위치는 각별하다. 아니 『청정도론』 을 빼놓고 상좌부불교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래서 20세기 초서양의 어느 학자는 붓다고사를 스리랑카 불교의 두 번째 창시자라 부르기도 하였다.5)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거친 발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만큼 백여년 전의 서양학자들의 눈에도 붓다고사는 각별한 사람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청정도론』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청정도론』은 기본적으로 주석서 라는 점이다. 그것도 경장인 4부 니까야(Nikaya)에 대한 주석서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이 아무리 아비담마적인 방법론으로 불교의 기본 주제인 계.정.혜를 설명한다 하더라도 『청정도론』은 아비담마 논서가 아닌 경장의 주석서라는 기

본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 즉 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논의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붓다고사는 『장부 주석서』(DA)와 『중부 주석서』(MA)와 『상응부 주석서』(SA)와 『증지부 주석서』(VinA) 서문들에서 공히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모든 초월지들과 통찰지(慧)의 정의를 내리는 것과 무더기(蘊). 요소(界). 감각장소(處). 기능(根)과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諦)와 여러 조건(緣=緣起)의 가르침과 극히 청정하고 능숙한 방법과 경전을 벗어나지 않은 道와 위빳사나 수행 ㅡ 이 모든 것은 내가 지은 『청정도론』에서 아주 청정하게 [설명되었다] 그러므로 거기서 설한 것은 다시 여기서 고찰하지 않을 것이다.

『청정도론』은 네 가지 전승된 가르침(四阿含)6)들의 중앙에 서서 거기서 말씀하신 뜻을 드러내기 때문이다”7)

5) “It would be hardly too much to say that Buddhaghosa was the second founder of the Buddhism of Ceylon.(R S. Copleston, 5)” 6) 전승된 가르침으로 옮긴 원어 ‘아가마(agama)’는 중국에서 아함(阿含)으로 옮긴 바로 그 단어이다.

빠알리에서도 이렇게 4부 니까야를 4아함으로 부르고 있다.

7) 주해 생략.

그래서 노만(K.R. Noman)도 이렇게 고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청정도론』은 삼장으로부터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 諦)를 중심점으로 한 모든 중요한 가르침을 추출해 와서, 각 장을 그 주제와 관련 지어 그것으로 눈문의 전체에 수놓으면서 그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각 장은 이러한 인용과 설명을 통해서 시종일관된 전체적인 체계 안에 서로 긴밀하게 조직 되어 있다. 여기에다 인도나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아주 많은 일화들을통해서 특정 가르침을 예시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전체는 정교하게 만든 큰 건출물 안에 농축 되어 있다.”8)

실제로 역자가 VRI CD-ROM 버전으로 ‘visuddhimagge(위숫디막가에서)’라는 키워드로 조회해본 결과 경장의 네 가지 주석서들 가운데서는 206번이 나타났고 복주서들에서는 64번이 나타났으며 소부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에서는 33번, 아비 담마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에서는 53번, 율장의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에서는 21번이 나타났다. 『청정도론』이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언급하고 있는 곳을 합치면 이를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는 경장의 네 가지 주석서뿐만 아니라 붓다고사가 지은 율장의 주석서와 논장의 세 주석서와 다른 주석서들도 그 중심에는 항상 『청정도론』이 놓여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 논의한 주제는 그 주석서들에서 다시 설명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물론 많은 곳에 같은 설명이 반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므로 실로 『청정도 론』은 부처님의 직설이라고 자부하며 지금까지 남방 상좌부에서 면면히 전승해 오는 경.율.론 삼장에 대한 모든 논의의 핵심에 있고 모든 해설의 기본 토대가 되고 있다.

조금 더 부연해서 설명해 본다. 붓다고사는 방대한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가르침이나 문장들을 제일 먼저 『청정도론』에서 계.정.혜의 주제 하에 일목요연하게 해설하여 초기불교에 대한 밑그림을 완성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경장과 율장과 논장에 대한 주석서를 하나하나 지어나 갔다.

만약 어떤 주제가 『청정도론』에서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어떤 특정 니까야의 주석서의 주요주제로 이미 설명을 했다면 그 특정 주석서를 참조하라고 언급하고 다른 주석서에서는 생략하는 방법으로 전체 주석서를 하나의 큰 장으로, 큰 체계로 구성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장부』에서 『증지부』까지의 주석서들은 어느 것이 먼저 출간되 었다고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곤란할 정도로 서로서로 상호 언급(cross-reference) 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네 가지 주석서들은 『청정도론』을 중심에 두고 거의 동시에 발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마치 메인 컴퓨터 A의 하드디스크에 함께 공유할 데이터를 저장해놓고 A1, A2, …An의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다가 각각 다른 주제의 데이터를 저장하면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데이터는 매인 컴퓨터 A를 참조하라고 연결해주고, 그 뿐만 아니라 어떤 데이터가 An에서 중요한 테이터로 저장이 되어 있으면 특정 컴퓨터 에서는 An을 연결해 주면서 서로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는 체계와 같다.

여기서 메인 컴퓨터 A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청정도론』이며 A1, A2, …

An의 컴퓨터들은 각각 율장의 주석서들, 경장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 논장의 주석서

들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물론 붓다고사의 저작인지 의심스럽지만 그의 저작으로 인정되는 나머지 다섯 가지 주석서들9)과 담마빨라10)가 주석한 소부의 일곱 가지 게송으로 된 경들에 대한 주석서에서도 『청정도론』은 항상 그 중심에 놓여있다. 이경우에도 『청정 도론』에서 설명된 것은 『청정도론』을 참조하라는 언급만 있을 뿐 설명은 없다.11) 이런 구조의 핵심에 『청정도론』이 놓여있기 때문에 남방불교는 『청정 도론』불교요 붓다고사 불교라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한편 『청정도론』⇔ 주석서(Atthakatha)들의 구조는 Pm ⇔ 복주서(Tika)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청정도론』이 주석서들의 중심에 놓여 있다면 복주서들 가운데에는 『마하띠까』로 잘 알려진 『청정도론』의 복주서12) 『빠라맛타만주 사』(Paramattha-manjusa, Pm, Mahatika, 마하띠까)가 놓여 있다. 『청정도론』 복주서(Pm)의 저자인 담마빨라는 『장부』,『중부』,『상응부』의 복주서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담마빨라는 각각의 복주서들을 주석하면서 Pm에서 설명한 부분은 더이상 거론하지 않고 모두 Pm을 참조하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붓다고사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12세기에 사리뿟따에 의해서 만들어진 『증 지부 복주서』에서도 꼭 같은 방법이 적용되어 Pm에서 이미 설명한 것은 이 Pm을 참조하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청정도론』⇔ 주석서들의 관계는 Pm ⇔복주서들의 관계로 발전되는 것이다. 그만큼 『청정도론』을 이해하는 것은 남방불교의 삼장 ⇒ 주석서 ⇒ 복주서의 발전을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12) 『청정도론』의 주석서들은 주석서(Atthakatha)라 부르지 않고 복주서(Tika)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청정도론』이 삼장의 주석서(Atthakatha)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3. 책의 제목

먼저 『청정도론』에 나타나는 청정도론에 대한 설명부터 살펴보자.

(1. §5)에서는 스스로 이렇게 정의한다.

“여기서 청정(visuddhi)이란 모든 더러움이 없어진 지극히 청정한 열반이 라고 알아야 한다. 그 청정에 [이르는] 도가 청정도(visuddhimagga)다. 도 (magga)란 체득하는 수단(adhigama-upaya)을 뜻한다.”

여기에 대해서 담마빨라는 Pm에서 “이것으로 청정을 찾아간다, 찾는다, 얻는다

고 해서 청정도라 한다. 청정도는 비방편(nippariyaya)이므로 출세간도라고 알아야 한다.”13)라고 설명하고 있다.

붓다고사는 본서에서 경에 나타나는 청정도의 의미를 다섯 가지로 제시한 후 여기서는 계와 삼매와 통찰지 즉 계.정.혜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간추려서 말하면 계.정.혜를 상수로 하여 열반이라는 지극한 청정을 얻는 수단인 그 도,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청정도론』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붓다고사는본서에서(1. §7) 이런 계.정.혜를 통해서 실현되는 청정도를 다음과 같이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마치 사람이 땅위에 굳게 서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칼을 잡고큰 대나무 덤불을 자르는 것처럼, 계의 땅위에 굳게 서서, 삼매의 돌 위에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위빳사나 통찰지의 칼을, 정진의 힘으로 노력한 깨어있는 통찰지의 손으로써 잡은 뒤, 자기의 상속에서 자란 갈애으 그물을 모두 풀고 자르고 부수어버릴 것이다.

그는 도의 순간에 엉킴을 푼다고 한다. 그는 과의 순간에 엉킴을푼 자가 되어 신을 포함한 세상에서 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한 자가 된다.”

한편 청정을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곱 단계의 청정(sattavidha visuddhi) 즉 칠청정(七淸淨)이다. 칠청정은 1. 계청정 2. 마음청정 3. 견청정 4.

의심을 제거함에 의한 청정 5.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견청정 6. 도닦음에 대한 지견청정 7. 지견청정이다.

이 일곱 단계의 청정은 차례대로 얻어지고 각 단계는 바로 다음 단계를 떠받쳐주고 있다. 첫 번째는 계(戒, sila)와 두 번째는 정(定, samadhi, 삼매) 나머지 다섯은 혜(慧, panna, 통찰지)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처음 여섯 가지는 세간의 도이고 마지막은 출세간의 도이다. 그리고 칠청정 가운데서 뒤의 다섯 가지 청정은 순수 위빳사나의 길이므로 상좌부의 전통 수행법을 소상하면서도 분명하게 밝힌 상좌부 수행체계의 골수에 해당 된다.

사실 부처님 가르침을 계.정.혜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것은 모든 불교에 공통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칠청정에 초점을 맞추어서 불굘글 설명하는 것은 『청정도론』을 위시한 상좌부 전통에만 나타나는 각별한 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청정도론』과 『해탈도론』을 구분 짓는 잣대이기도 하며 『청정도론』과 다른 부파의 논서들을 구분 짓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칠청정에 대해서는 아래 § 14에서 상세하게 고찰해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 정도로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4. 저자에 대해서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 스님은 인도사람으로 알려져 있다.인도 역사가다 그러하듯이 붓다고사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인 근거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워낙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는 비교적 정확하게 그의 연대를 추적해볼 수 있다. 붓다고사에 관한 자료는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로 제일 중요하고 직접적인 자료는 그의 저술들 끝에 나타나는 간단한 후기(nigamana)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출가자들은 자신을 자세하게 드러내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빠알리 전적들의 후기를 가지고 저자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밝힐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스리랑카의 역사서인 『마하왐사』(Mahavamsa, 大史) 가운데 붓다고 사를 다루고 있는 부분(ⅩⅩⅩⅤⅡ. §§215-246)이다. 이것은 『 마하왐사 』 의제2편에 속하는데 제1편이 완성된 4세기보다 무려 800여년 뒤인 12세기 뽈론나루와 불교부흥 시대에 쓰여진 것이다.

세 번째는 15세기에 미얀마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붓다고사의 일대기를 다룬 『붓다고사웃빳띠』(Buddhaghosuppatti, 붓다고사의 탄생)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전기가 아니고 냐나몰리 스님이 ‘통속소설(popular novel)’ 이라고 폄하했듯 이14) 전설이나 소설에 가까운 문헌이기 때문에 자료로서의 가치는 많이 떨어진 다.

네 번째로는 17세기나 18세기에 미얀마에서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간다왐사』 (Gandhavamsa, 책의 역사)를 들 수 있다. 이것도 역시 후대의 저술이라 신뢰도는 떨어지지만 상좌부에 나타나는 여러 서적의 저자들을 전통적인 견해에 따라 비교적 정확히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신뢰도는 높은 편이다.

첫 번째 자료들 가운데서 MA와 AA의 후기(nigamana)에 의하면 그는 지금 마드라스 부근인 꼰제와람(Conjevaram)에 위치해 있었음이 분명한 마유라숫따빳따나 (Mayurasuttapattaa)에 살았으며15) 유명한 조띠빨라(jotipala) 스님과 함께 지금 타밀나두 주에 해당하는 깐찌뿌라(Kancipura)에 살았다고 한다.16)

그리고 『 청정도론 』 의 후기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를 모란다케따까(Morandakhetaka), 즉 모란다 지방 출신으로 부르고 있다. 남방스님들은 전통적으로 이지역을 붓다고사가 인도에서 머물던 사원이 있던 곳으로 보지 않고 붓다고사가 태어난 곳으로 보기도 한다. 이곳은 지금 인도 안드라쁘라데쉬의 나가르주나콘다와 아므라와띠 중간쯤에 있는 어느 마을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붓다고사가 부처님 성도지인 마가다(지금의 비하르주) 출신이라는 『마하왐사』의 기록과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인도학자들의 주장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더 정확한 근거와 자료가 필요하다 하겠다.

『사만따빠사디까』(VinA)의 나가마나(후기)에는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나타 난다. 이 부분을 옮겨본다.

“나는 위나야의 달인이신 붓다밋따(Buddhamitta) 장로로부터 싱할리어로 된 마하앗타까타(Maha-Attha[katha])와 마하빳짜리 (Maha-Paccari)와 꾸룬디(Kurundi, 큰 구름숲) 숲에는 세존의 보리수로 장엄된 대사(Mahavihara)가 있다. … [이 논은] 시리니와사(Sirinivasa)왕 20년에 시작하여 21년에 완성하였다. … “17)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시리니와사 왕은 마하나마(Mahanama) 왕(AD 409-431)이 라고 하는데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마하나마왕이 확실하다.

붓다고사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마하왐사』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붓다고사 멸후 700여년이 지난 12세기에 쓰여진 것이라 절대적으로 신뢰하긴 어렵지만 『마하왐사』의 정확성은 다른 문헌에 비해서 훨씬 높게 평가되고 있고ㅛ, 또지금 상좌부에서 인정되고 있는 붓다고사에 대한 정설이기 때문에 조금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운문으로 되어있는 『마하왐사』의 관련 구절(Mv.ⅩⅩⅩⅤ

Ⅱ. §§215-246)을 산문으로 옮겨본다.

(1) 보리수가 있는 곳(인도 보드가야) 근처에 바라문 학도가 있었다.

그는 모든 학문과 지식과 베다에 통달했다. 그는 그가 배운 것에 정통했고 정확하게 그 구절을 외웠다. 그는 각파의 가르침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 인도를 다니며 논쟁을 벌였다.(§§215-216)

(2) 어느 날 그는 어떤 사원에 와서 빠딴잘리의 [요가수뜨라]를 한한 구절도 틀린 데가 없이 정확하게 외웠다. 레와따라는 장로가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제도하고자하여 ‘누가 당나귀 울음소리를 내는가’라고 하였다. 그는 ‘그러면 당신은 당나귀 울음소리의 뜻을 아시오’라고 반문했고 장로는 ‘알지’라고 대답하고는 그것을 정확 하게 외우면서 각 구절의 뜻을 설명하고 잘못된 점까지 지적하였다.

(§§217-220)

(3) 청년은 물었다. 그러면 ‘당신의 진언(manta)을 외워보십시요.’

장로는 아비담마를 외웠다. 그러나 그는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수 없었다. ‘이것은 어느 분의 진언입니까?’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 침이라네.’ ‘제게 주십시요.’ ‘그대가 출가를 해야 하네. 그러면 주겠네.’ 그는 그 진언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출가 하였다.

삼장을 다 배우고 “이것은 유일한 도다(M.i.55)”라고 확신 하였다.

(§§221-223)

(4) 그의 음성(ghosa)은 부처님(Buddha)처럼 깊고 그윽했기 때문에 붓다고사(Buddhaghosa, 佛音)라 불렀으며 그의 음성은 부처님처럼

전 대지위에 [퍼질 것이다].(§§224)

(5) 거기서 그는 『나노다야』(Nanodaya)라는 논서를 지었고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인 『앗타살리니』(Atthasalini, Dhs A)를 지었다.18) 그 다음에 그는 빠릿따(Paritta, 護呪)에 대한 주석서를 짓기 시작햇다.(§§225-226)

(6) 레와따 장로가 그것을 보고 ‘여기는 단지 성전(Pali)만 남아있을 뿐이고 주석서(Atthakatha)는 남아있지 않으며 스승들의 학설도 조각나버리고 더 이상 전해오지 않는다네. 그러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싱할리 주석서가 아직 보존되어 있다네. 그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치셨고 사리뿟따 등이 합송한 그대로 3차 결집에 의해서 전승된 것이라네. 그것은 지혜가 구족하신 마힌다 장로가 바르게 주석하는 방법에 따라 싱할리어로 옮긴 것이라네. 그곳으로 건너가게.

가서 그것을 배우고 마가다어로 다시 옮기게. 그러면 온 세상에 큰이로움이 될 것일세.'(§§227-230)

(7) 이렇게 말하자 그는 기뻐하면서 출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큰 지혜를 가진 마하나마(Mahanama) 왕의 재위 때에이 섬으로 왔다.(§231)

(8) 그는 모든 참된 사람(sadhu)emfdl ajansms eotk(大寺, Maha-vihara)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는 대중방에 머물렀으며 상가빨라 아래서 상좌부의 가르침인 순수한 싱할리 주석서를 모두 다 배웠 다.

그는 ‘오직 이것만이 법의 주인께서 뜻하신 바이다’고 확신하였다.

(§§232-233)

(9) 그래서 그는 승가를 모아놓고 ‘제가 주석서를 만들도록 모든 책을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승가는 그를 시험하기 위해서 게송 두 개를 준 뒤 ‘이 게송으로 그대의 능력을 보여라. 그러면 우리는 책을 모두 그대에게 건네주겠다.’

그 게송에 대해서 그는 주석서와 더불어 삼장을 요약하였으며 그것을 『청정도론』이라고 이름하였다.(§§234-236)

(10) 그러자 [아누라다뿌라의] 보리수 아래에서 교학에 능통한 승가를 모이게 하여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그의 재능을 시험하기 위해서 신들의 무리가 그 책을 감추어버렸는데 두 번째, 세 번째까지 그것을 반복했다.(§§237238)

(11) 세 번째로 그 책을 읽기 위해서 가져왔을 때 신들이 앞의두 책도 가져왔다. 비구들은 그 세 책을 동시에 읽어 내려갔으며그 세 첵 가운데 장이나 뜻이나 자료의 순서나 구나 음절이

상좌부의 성전과 다른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승가는 크게 기뻐하여 ‘참으로 이 자는 미륵(Metteyya)이로다.’

라고 계속하여 외쳤다.(§§239-242)

(12) 그들은 그에게 주석서를 포함하여 삼장을 내어주었다.

그는 도서관(ganthakara)에 머물면서 싱할리 주석서를 근본 언어인 마가다어로 옮겼다. 그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이익을 주었다. 전통을 전승해온 장로들은 모두 그것을 성전(Pali)으로 승인하였다. 그 임무를 마치고 그는 인도로 돌아갔으며 [보드가야의 보리수에 예배를 올렸다.(§§243-246)

이런 역사적인 배경들을 바탕으로 학자들은 그의 연대를 이렇게 추적한다. 붓다고사는 마하세나(Mahasena, AD.334-362/ 274-302) 왕까지 언급하고 있는 『마 하왐사』의 전반부에 언급이 되지 않으므로 그 이전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견율비바사』의 중국번역연대(AD.498) 이후로 내려가지는 않는다. 중국 번역에는 붓다고사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지만 『청정도론』은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대략 370-450년 사이에 그를 넣을 수 있다.19)

『마하왐사』에는 붓다고사가 마하나마 왕(AD.409-431/ 349-371)때 스리랑카로 건너왔다고 적고 있다. 만일 중국 황제 Ma-ho-nam에게 AD.428년에 서신을 보냈다고 하는 왕이 같은 마하나마라면 이 연대는 확정적이다. 그리고 『사만따빠디까』 (VinA) 후기에서 그는 시리니와사(Sirinivasa) 왕 20년에 시작해서 21년에 끝냈 다고 적고 있으므로20) 붓다고사도 이 시대의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무리 내려가도 『 사만따빠사디까 』 가 『 선견율비바사 』 로 한역된 AD.489이하로는 내려오지 않는다.21) 그리고 『청정도론』이 다른 주석서보다 먼저 쓰여진 것을 감안한다면 『청정도론』은 대략 AD.425년 전후에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방할 것 같다.

5. 붓다고사가 지은 주석서들

『마하왐사』와 『간다왐사』22) 등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청정도론』외에도 다음 12가지 주석서들이 붓다고사의 저작으로 나타난다.

(1)율장의 주석서들

① 사만따빠사디까(Samantapasadika) : 율장의 주석서(VinA)

② 깡카위따라니(Kankhavitarani) : 빠띠목카에 대한 주석서

(2) 경장의 주석서들

③ 수망갈라윌라시니(Sumangalavilasini) : 장부의 주석서(DA)

④ 빠빤짜수다니(Papancasudani) : 중부의 주석서(MA)

⑤ 사랏탑빠까시나(Saratthappakasini) : 상응부의 주석서(SA)

⑥ 마노라타뿌라니(Manorathapurani) :증지부의 주석서(AA)

⑦ 빠라맛타조띠까(Paramatthajotika) : 쿳다까빠타(Kuddakapatha와 숫따니빠따(Suttanipata)의 주석서(KhuA, SnA)

⑧ 담마빠다앗타까타(Dhammapadatthakatha) : 법구경(Dhammapada)의 주석 서(DhpA)

⑨ 자따까앗타까타(Jatakatthakatha) : 본생경의 주석서(JaA)

(3) 논장의 주석서들

⑩ 앗타살리니(Atthasalini) : 법집론(Dhammasangani)의 주석서(DhsA)

⑪ 삼모하위노다니(Sammohavinodani) : 분별론(Vibhanga)의 주석서(VbhA)

⑫ 빤짜빠까라나앗타까타(Pancapakaranatthakatha) : 나머지 다섯 논장의 주석서

이 가운데서 경장의 4부 니까야의 주석서들과 율자으이 두 주석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붓다고사의 저술로 인정이 된다.

논장의 세 주석서는 큰 틀로는 앞에서 밝혔듯이 『청정도론』과 긴밀한 관계 속에 편찬되었지만 『청정도론』과 다른 견해가 등장하기 때문에 이는 붓다고사의 제자들이 붓다고사의 지시나 감독에 따라 편찬했을 것이라는 견해들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붓다고사가 큰 역할을 하면서 관련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노만은 몇 가지 이유로 이런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하왐사』의 서술에 따르면 논장의 『앗타살리니』(DhsA)나 『삼모하위노다니』(VbhA)는 붓다고사가 스리랑카로 오기 전에 인도에서 이미 저술한 것이고 그것을 다시 스리랑카에서 『청정도론』의 체계 속에 개작한 것이어서 견해가 다를 수도 있다고 보는 입장 이다.23) 역자도 이 견해를 존중한다.

나머지 붓다고사의 저작으로 언급하는 『 소부 니까야 』 에 대한 주석서들은 『청정도론』을 중심한 붓다고사의 저술들과는 서술방법 등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스님의 저술일 것으로 판단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거론 되는 다른 저자가 없고 전통적으로 붓다고사의 저술로 인정되기 때문에 냐나몰리 스님과 노만은 큰 무리 없이 붓다고사의 저술로 인정하는 편이다.24)

6. ‘청정도론’ 탄생의 역사적 배경

율장의 주석서인 『사만따빠사디까』(VinA)의 인유분(因由分, nidanakatha)에 의하면 아소까 대왕은 불교를 그의 통치이념으로 정하고 다른 나라나 인도의 변방으로 10무리의 전법사들을 파견하였다 한다.25) 이것은 산치대탑의 유물 가운 데서 열 곳의 전법사들의 유해(사리)를 담은 통이 발견됨으로 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다.

이렇게 전파한 불교는 아소까 대왕 때 이루어진 3차 결집에서 공인된 상좌부불 교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성공적으로 불법이 정착한 곳이 스리랑카와 간다라 지방(kasmira-gandhararattha)이었다.26)스리랑카는 현존하는 남방불교의 근원지이며 간다라는 북방 아비담마불교의 대명사가 된 설일체유부의 근거지이다. 규기가 지은 『이부종윤론술기』에 의하면 간다라지방에 그 교세를 펼쳤던 설일체유부는이 부파의 일곱 번째 논서인 『 발지론 』 을 지은 가다연니자(Katyayaniputra)에 의해서 BC150-50념쯤에 상좌부로부터 분파하였다고 한다.27)

스리랑카 불교역사도 예외 없이 이러한 부파분열의 현상이 드러나는데 그것은잘 알려진 바 무외산사(無畏山寺, Abhayagirivihara)가 BC100년쯤에 설립되면서 부터였다. 그러나 스리랑카는 정통상좌부 불교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큰자부심을 가진 대사(大寺, Mahavihara)의 각고의 노력으로 마침내 무외산사를 제압하고 정통 상좌부의 가르침을 지금까지 전승해오고 있다. 그 핵심에는 인도출 신인 붓다고사스님이나 역시 인도출신인 붓다닷따, 아난다, 담마빨라 스님 등 기라성 같은 대가들이 있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이런 사실만 봐도 인도 내의 상좌부와 스리랑카의 상좌부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인도 상좌부에서도 스리랑카의 상좌부를 그 정통으로 인정하고 있었 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에 불교가 미약해지면서 스리랑카는 상좌부 불교의 보고로서의 역할을 해왔으며 미얀마와 태국 등지로 전파되었다. 이제 스리랑카의 역사를 통해서 이를 살펴보자.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보수와 진보, 쇄국과 개방의 갈등과 대립은 있어왔을 것이다. 붓다고사가 스리랑카로 오기 몇 백 년 전부터 스리랑카의 상황도 마찬가지 였다고 본다. 스리랑카가 예부터 지금까지 인도대륙의 정치, 문화, 경제적인 영향권에 속한다고 볼 때 스리랑카의 정치와 문화 행위는 인도대륙과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런 와중에 보수는 항상 민족의식의 고취에 관심이 많고 진보는 외국(인도)의 사조를 수용하면서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동참하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사건 중심으로 이런 상황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아소까 대왕의 아들이며 출가해서 스님이 된 마힌다(Mahinda) 장로가 BC.

3세기 때 불교를 스리랑카에 전할 때 빠알리 삼장과 주석서를 함께 전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주석서는 마힌다 장로에 의해서 싱할리어로 옮겨져서 그 후 계속 해서 싱할리어로 전승되어왔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붓다고사가 지은 현존 주석서 문헌들을 자세히 분석한 점과 주석서에 나타나는 인도스님들의 언급은 거의 전부 마힌다 장로가 스리랑카로 전해주기 이전인 아소까 왕 이전의 스님들의 일화들이 고, 그 외에 언급되고 있는 것들은 모두 그 후에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일화들이 라고 한다.280) 이런 점에서 볼 때 초기주석서는 마힌다 장로가 전한 것이 분명 하고 이는 싱할리어로 계속 보강되면서 전승되어왔다고 보고 있다.

랑카에서 상좌부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그 주석서들을 빠알리가 아닌 싱할리어로 전승해왔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인도대륙의 변화무쌍한 학파난립과 신흥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

을 것이고, 실제 그것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다른 신흥사상과 섞지 않고 전승할수 있다는 큰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파로 자연적으로 스리랑카의 상좌부는 스리랑카에만 고립되게 되었을 것이다. 인도의 강한 문화적 정치적인 입김에서도 상좌부 전통을 잘 고수해오는 장점도 있지만 반면 자연 국제 불교의 흐름과는 고립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인도전역, 특히 남인도에 상좌부 가르침은 상당히 퍼져있었을 것이지만 스리랑카 상좌부의 입장에서는 그것마저도 신흥사상과 섞인 것으로 의심하였을 것이며 실제로 인도의 상좌부가 마힌다가 전한 것과 같은 고주석서를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스리랑카 대사(大寺)의 스님들은 더욱더 그들의 싱할리 주석서를 고수하였을 것이고 다른 부파에 노출시키기를 꺼려왔을 것이다.

그러던 중 역사적으로 큰 변화가 스리랑카 왕조에 생기게 된다.29) 왓따가마니 (Vattagamani, BC.104-88) 왕 때에 바라문 띳사가 모반을 일으키고 거기다가 기근과 침략까지 뒤따라 왕은 망명을 하게 된다. 대사의 비구들은 스리랑카의 남쪽 이나 인도로 피난한다. 14년 후에 왕이 되돌아오고 비구들도 되돌아왔으나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왕이 무외산사(無畏山寺)를 세운 것이다. 무외산사는 정통 상좌부의 대를 고집스럽게 이어 내려온 대사파에서 탈퇴하여 분파했다. 분명 무외산사는 신흥부파가 난립했던 인도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친인도적인 파였을 것이다. 왕은 무외산사를 옹호했다. 여기에는 인도와의 정치적 관계 등 여러 요인이 분명히 작용했을 것이다.

이에 위기를 느낀 대사(大寺)는 그 동안 구전으로 전승되어 오던 빠알리 삼장을 문자로 기록했다. 그것도 왕이 모르게 수도를 벗어나서 외딴 곳30)으로 가서 했다. 이 사실은 그들이 삼장에 대한 위기감을 크게 느꼈음을 말해준다. 왕의 후원이 끊어졌으므로 삼장을 구전으로 전승하기에는 역부족을 느꼈을 것이고 만일 왕이 안다면 왕권으로 삼장의 결집에 인도 신흥사상등 다른 이설을 넣으려는 영향 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렇게 문자로 정착된 역사적인 사실을 후대 상좌부 전통에서는 4차 결집으로 부르고 있다. 빠알리 삼장의 문자화는 이런 역사적인 진통을 겪으면서 탄생되 었다.

30) 지금 스리랑카 Matale 지방에 있는 알루 승원(Aluvihara)임.

반면 무외산사는 역사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승승장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사 (大寺)에서 독립하여 왓따가마니 왕(BC.104-88) 때 왓지뿟따까(Vajjiputtaka, 독자부)의 담마루찌 니까야(Dhammaruci Nikaya)를 그들의 정전으로 받아들였으며 보하리까 띳사(Voharika-Tissa, AD.215-237) 왕 때는 『방등부』(Vetuya Pitaka) 를 받아들였다. 이 『방등부』는 왕의 신임을 받지 못하여 불태워지기도 하는 등그 후 우여곡절을 겪었다. 『방등부』의 가르침은 대승에는 속하지 않지만 분명히 아함에서 더 발전된 경전군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무외산사에 속하는 저작이거나 혹은 무외산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스님이 지은 것이 확실시되는 『 위뭇띠막가 』 (Vimuttimagga, 해탈도론)도 이 무렵에 완성된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무외산사는 교학적으로도 체계를 갖추어갔으며 인도를 중심한 국제불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활발하게 전개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다시 대사의 위축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대사의 교리적 체계를 담고 있는 주석서들은 모두 싱할리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교학적인 열세는 당연하였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고타아바야(Gothabhaya, AD.254-267) 왕 말년과 젯타띳사(JetthaTissa, AD.267-277)왕 때 스리랑카는 큰 정치적 종교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는데 여기에는 인도 승려 상가밋따(Sanghamitta)가 개입되어 있다. 한때 젯타띳사 왕은 대사(大寺)를 옹호하고 상가밋따를 인도로 추방했으나 그를 뒤이은 마하세나 (Mahasena, AD.277-304) 왕은 그를 다시 불러오고 대사를 9년이나 폐쇄하였다.

그 후 상가밋따는 암살당하고 대사는 다시 개원하고 『방등부』(웨뚤라 삐따까) 를 다시 불사르는 등 크나큰 정치적, 종교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런 배후에는 인도와 스리랑카간의 정치적, 문화적 충돌이 큰 역할을 했을 것임은 자명 하다. 한편 『방등부』를 받아들이면서부터 무외산사파는 전통적인 빠알리로 전승된 삼장의 체계에서 볼 때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며 이것은 오히려 나중에 왕권으로부터 일종의 타락으로 의심받았던 것 같다.

그 후 민족의식이 점점 되살아나면서 붓다다사(Buddhadasa, AD.341-370)와 우빠 띳사(Upatissa, 370-412) 왕 때 스리랑카의 역사서인 『 디빠왐사 』 (Dipavamsa, 島史)가 만들어지고 마하나마(Mahanama, 412-434) 왕 때는 『 마하왐사 』 (Mahavamsa, 大史) 전편이 완성되기에 이르고 이때 붓다고사도 스리랑카로 들어 오게 된다.

랑카 왕들이 자주의식이 강해지고 그런 왕들의 후원을 받은 대사도 여러 면에서 의식을 전환하게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주석서를 싱할리어에 가두어두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장로들 사이에서도 팽배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싱할리 주석서들과 그 외에 싱할리어로 전승되어 오던 여러 견해들을 빠알리로 부흥 해내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며 그것을 그들 교단의 존립의 활로로 삼았을 것이다.

이미 『증지부 주석서』(AA)에 의하면 왓따가미니 왕(BC. 104-88)때 빠알리 삼장을 문자로 정착시키면서 비구들은 수행보다는 부처님의 바른 전승을 비구들의 더큰 의무로 생각했다고 한다.(AA.i.92이하 참조)

그리하여 그들은 부처님 직계제자들의 사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자부하는 싱할리 주석서들의 빠알리화를 위한 적임자를 찿았을 것이고 위에서 인용한 『마하 왐사』의 붓다고사전기의 내용은 이런 사실을 반영해주고 있다. 빠알리어가 인도 어이기 때문에 그들은 인도 대륙에 있던 상좌부 진영에서 이런 적임자를 물색했을 것이고 인도의 상좌부에 서는 붓다고사라는 영민한 스님을 주목했고 그를 대

사로 보냈거나 아니면 랑카의 상좌부에서 그를 초청하였을 것이다.

대사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을 거치면서 그에게 싱할리 주석서들을 가르친 후 넘겨주었고 붓다고사는 『청정도론』을 완성하여31) 드디어 장로들의 인정을 받고 『청정도론』을 근간으로 각각의 빠알리 주석서들을 큰 체계 하에 집필하면서 모든 주석서들을 거의 동시에 완성했을 것이다. 그래서 정통 상좌부임을 자부하는 대사(大寺)에서는 이를 정통 견해로 인정하는 도장을 찍어 배포했을 것이다.

31) 두 번의 저술이 없어져버렸다는 『마하왐사』의 서술은 의미심장하다.반대파들의 질투도 있었겠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교단내의 여러 사정들을 상징하고 있지 않나 싶다.

붓다고사의 이런 작업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나 하는 것은 그 후의 역사가 증명주고 있다. 무외산사나 제따와나사에서는 그 후 이렇다할 저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비해32) 대사에서는 이런 주석서들을 근간으로 바로 복주서들을 만들어내는등 아난다 스님이나 담마빨라 스님 같은 기라성 같은 대가들을 배출하여 상좌부의 틀을 아무도 감히 넘보고 도전할 수 없는 큰 체계로 완성시킨다. 특히 담마빨 라라는 대가에 이르러 상좌부는 완전한 기틀을 갖추고 그 후 어느 누구도 그 체계에 도전하지 못하게 된다.

32) 물론 이는 그들의 역사가 소실되어 아무것도 전해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주석서나 복주서 등의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듯하다.

12세기에 인도에서 무슬림 정권이 들어서면서 스리랑카에서는 민족부흥과불교부 흥이 불기 시작했고, 그것의 주역인 빠락까마바후(Parakkama-baha) 1세 왕(1153-1186)의 뽈론나루와 시대에 나머지 띠까(복주서)들이 완성되고, 무외산사와 제따 와나사는 대사에 흡수되어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하여 스리랑카는 대사의 교리를 근본한 상좌부 불교의 본거지가 되며, 같은 12세기에 버마의 민족부흥과 불교부흥과 때를 맞추어 스리랑카의 상좌부불교는 버마와 태국과 캄보디아 베트남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상은 스리랑카으 민족운동과 상좌부 불교 부흥운동과 관련지어 고찰해 본 것이고 인도 대륙의 측면에서도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고찰을 해 볼 수 있다.

마우리야 왕조이후 여러 왕조로 난립하던 인도대륙은 다시 AD. 3-4세기에 빠딸라 뿌뜨라에 힌두(바라문) 왕조인 굽타왕조가 정착하여 인도의 많은 부분을 평정하 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굽타왕조33)는 학문을 크게 장려하여 이 왕조 때인도의 바라문교를 비롯한 6파철학과 불교 자이나교 등으 교학체계가 그 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굽타왕조는 모든 종교와 학파를 존중했으며 그들이 그들의 교리를 산스끄리뜨(넓게 보면 빠알리어와 자이나의 아륻마가디는 산스끄리뜨 안에 포함된다)로 정착시킬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이 시대에 각 사상의 학파들의 주요 수뜨라 문헌들이 많이 완성된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이 시대에 『구사론』이 완성되고 대승의 여러 기본 논서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더군다나 사회 통치체계와 관습체계로 『마 누법전』이 완성된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상좌부불교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 다.

이처럼 민족부흥과 상좌부 불교 부흥과 시기가 맞아 떨어져서 산스끄리뜨를 정확 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도 스님들이 그 주역이 됨은 당연하고 더군다나 굽타왕조의 중심부(지금 비하르 주의 빠뜨나나 가야) 출신들이 그 역할을 담당했음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런 배경으로 볼 때에도 상좌부 불교의 정전화(正典化, 빠알리화 혹은 산스끄리뜨화)는 미룰 수 없는 역사적인 요청이었을 것이다.

33) 平川彰, 『인도불교사』(하), 16-9 참조

7. 붓다고사의 역할 ? 著述家가 아닌 編譯/譯出家

이런 관찰을 토대로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붓다고사는 저술가의 장에서 『청정도론』을 지은 것이 아니고 편역가 혹은 역출가의 입장에서 『청정도 론』을 완성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역할은 대사의 장로들로부터 배우고 전승받은 싱할리어 주석서 들과 인도의 안다라 지방 등에 존재하던 주석서들과 상좌부나 스리랑카안에 존재 하던 다른 여러 전적들을 비교 검토하여 대사에서 통용되는 공식적인 견해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학설들을 취합하고 편집해서 대사의 정통견해로 고착시킨 것이 라는 점이다. 그는 적어도 『청정도론』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반영시키지 않았다고 본다.

『청정도론』을 지어서 대사의 까다로운 검증에 합격한 뒤 인도 있을 때 지었다고 하는 초판『앗타살리니』(DhsA)를 다시 개작해서 공표 했다는 설을 만일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앗타살리니』는 오히려 그의 개인적인 견해를 제법 담고 있을 것이며 이것이 몇몇 곳에서 『청정도론』과 『앗타살리니』가 미세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담마빨라는 Pm에서 유감없이 그의 해박한 지식을 한껏 드러내 보인다. 그런 해박한 지식으로 『청정도론』의 입장을 완벽하게 변호하고 지지한다. 『청정도 론』에는 이런 면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붓다고사가 해박한 지식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 청정도론 』 자체가 상좌부의 견해를 일목요연하게 만천하에 공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의 개인적인 입장은 극히 자제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으며 그런 면에서 그는 그의 임무에 충실하다고 하

겠다.

8. 『해탈도론』 (Vimuttimagga)과 『청정도론』

『 청정도론 』 을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 해탈도론 』 (Vimuttimagga, 위뭇띠막가)이다. 이 책의 존재는 남방이나 서양 학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 한역 대장경에 포함되어 있는 『해탈도 론』이 소개되면서부터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해탈도론』의 체계는 『청정도론』의 혜품을 제외하면 거의 그 편집과전개과정과 경인용 등의 방법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해탈도론』은AD.505년에 후난(Funan)의 삼장법사 상가빨라(Sanghapala, 僧護) 에 의해서 한역되었다. 원저자는 아라한 우빠띳사(Upatissa)라고 소개되었다.이 우빠띳사가 율맥의 전승자로 율장에 나타나는 스리랑카의 우빠띳사와는 동명이인 임이 분명한 것 같다.

한편 『청정도론』의 복주서인Pm은 “여기서 ‘어떤 자들은’이라는 것은 우빠사 장로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 분은 『 위뭇띠막가 』 (해탈도론)에서그렇게 설했 다.”34)라고 우빠띳사와 『위뭇디막가』를 단 한 번 직접 언급하고 있으며 그내용은 한역 『해탈도론』에 그대로 나타난다.35)

34) 35) 주해 생략

여기서 『 해탈도론 』 (위뭇띠막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바파트 (Bapat)는 몇 가지 이유로 『위뭇띠막가』는 인도승 우빠띳사가 인도에서 저술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그 때 당시 활약하던 상좌부 계열의스님들이 대부분 인도출신임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특히 『위뭇띠막가』의 두땅가에 대한 부분(이것은 『청정도론』의 두땅가와는아주 다르다)이 티벳어로 번역된 것을 예로 들면서 북인도에서 저술된 것으로 본다.

『해탈도론』을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언급이 『청정도론』의 주석 서인 Pm에 나타난다. 『청정도론』에서 붓다고사가 상좌부의견해에 따라 어떤 주제를 설명하면서 다른 자들의 견해를 인용하여 논박한부분들 가운데 다섯 군데를 Pm의 저자 담마빨라는 무외산사(AbhayagiriVihara)의 견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지적한 그 다섯 가지 견해들은하나도 빠짐없이 『해탈도론』(위뭇띠막가) 에 정확하게 그대로 나타난다.36)이 증거를 볼 때 『해탈도론』은 무외산사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무외산사의 저작이라고까지 볼필요는 없는 것 같다.노만37)과 냐냐몰리 스님38)이 지적했듯이 다른 곳(인도든 스리랑카든)에서 저작된 것을 그들이 받아들였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해탈도론』은 『청정도론』을 지은 붓다고사와 『청정도론』의주석서를 지은 담마빨라에게 익숙한 책이고 그들은 그 내용을 정확하게파악하고 있었으며 『청정도론』 저작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도의 배경 으로 『해탈도론』과 『청정도론』을 간략하게비교해보자.

36). 37). 38) 주해 생략

첫째, 『해탈도론』과 『청정도론』은 각각 해탈에 이르는 방법과 청정에이르는 방법으로 공히 계.정.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해탈도론』(총 12장) 은 『청정도론』(23장)보다 분량이 아주 적다.

이 두 논은 각각 경에 나타나는 사구게를 해설하는 것으로 시작한다.『해탈도론』 은 『증지부』 등(A.ii.2. D.ii.123)에 나타나는 다음 게송을 해설하는 형식으로 논을 전개한다.

“계와 삼매와 통찰지와 위없는 해탈이라는 이 법들은저 큰 명성을 가지신 고따마께서 깨달으신 것이다.”39)

그 다음 『청정도론』처럼 간략한 설명에서부터 상세한 설명에 이르고 다시계.정.

혜의 각 항목을 해설하는 것이 『해탈도론』의 전체 구성이다. 인용한계송에서 위뭇띠(vimutti, 해탈)를 취하여 책의 제목을 『위뭇띠막가』(해탈도론)라 이름한 것이다.이 방법은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로 시작하는『청정도론』의 방법론과 그대로 일치한다.

둘째, 『청정도론』에서 7청정은 청정을 성취하는 방법으로 채용되었으며또한 이것 때문에 『청정도론』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런 7청정의 개념이『해탈도론』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해탈도론』에는 『청정도론』의 XⅧ부터 XX?에 해당되는 부분이 없다. 『청정도론』의 18-23장은 청정을 얻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 청정도론 』 의 핵심에 해당하는부분인데 이것은 무려 66번이나 『무애해도』(ps)를 인용하면서 『무애해도』를 토대로 청정에 이르는 길을 구체 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위빳사나의 지혜로 연결짓고 있다.

셋째, 『해탈도론』의 핵심은 정품에 있는데 『청정도론』과 비슷한 형태를 유지 한다. 많은 부분이 서로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저술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서술방법은 서로 다르다.『청정도론』에 서는 40가지 명상주제를 설하는 대신에 『 해탈도론 』 에서는 38가지 명상주제를 설한다.40). 이것은 『중부 주석서』의 염처경의 주석 등에서 38가지 명상주제41) 라는 언급이 있듯이 40가지로 최종으로 정착되기 이전에 상좌부에서 통용되던 것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무량심과 무색계 4처는 두 책에서 서로 다르게 서술되고 있다.42) 그리고 물질은 28가지가 아니라 『해탈도론』에서는 30가지로 언급된다.43) 13가지 두땅가는 완전히 다르게 설명되고 있다.44) 그러나 두 책의 정품은많은 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청정도론』과 『해탈도론』의 들숨날 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서술은 『청정도론』이 훨씬 길고 자세하지만 거의 일치한 다.45)

넷째, 『해탈도론』에는 『청정도론』에 많이 나타나는 예날 스님들의 일화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해탈도론』이 삼매를 닦는 수행승들의 간결한 지침서로 저작된 것임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다섯째, 무엇보다도 『청정도론』해설의 핵심인 아비담마가 『해탈도론』에서는 체계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해탈도론』에는 처.계.온 등의간략한 설명은 나타나지만 이것을 아비담마라 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알음알이의 무더기를 설명하면서 『담마상가니』(Dhs)의 89가지 마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빠타나』(Ptn)의 인용문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인식과정도 단 한 번 간략하게 언급될 뿐46)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볼 때 붓다고사가 『 해탈도론 』 의 방법론을 빌어 아비담마의체계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칠청정과 위빳사나를 통한 도와과의 증득으로 귀결시키고 완성시켜 명실상부한 상좌부의 대표적 논서로 만든 것이 『청정도론』 이라 결론지을 수 있다.

39). 40) 주해생략. 41)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119.

42) 주해생략. 43) 위 책. 240. 44) 위 책. 27이하.

45) 위 책. 156-164 및 VIS. VIII. §§145-244를 참조할 것.

46) 주해생략.

남방 상좌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은 아마 『무애해도』일것이다. 삼장에 제일 늦게 편입된 것만 봐도 상좌부의 가르침을 나름대로집대성한 경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애해도』는 계속적인 반복 속에 전후가 서로 투영되고 있고 빠얄라(peyyala, 반복구문의 생략)가 수없이 등장하는 등 그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가 쉬운 것이 결코 아니다.

붓다고사가인도에서 이미 『 나노다야 』 (Nanodaya)를 완성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 비슷비슷한 개념과 술어들이 반복적으로 기술되어있으며 전체적으로 그 내용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이런 『무애해도』의 해설서였을 듯하며 47) 이것을 『해탈도론』에 접목시켜 『청정도론』으로 완성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거듭 언급하지만 『청정도론』 운데 특히 위빳사나의 지혜에 해당하는 5청정을

본격적으로 설명하는 18-23장에서 『무애해도』의 인용이 많은 것만 봐도 『청정 도론』은 『무애해도』를 중시하는 것만은 틀림없다.48)

이처럼 『청정도론』이라는 하나의 대작이 나타나기 위해서 『해탈도론』과 같은 중요한 징검다리가 있었던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로 비추어볼 때 『해탈도론』은 삼매수행의 지침서로 저술된 것이지 아비담에 바탕한 위빳사나 수행의 지침서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상좌부의 전통과는 다른 전통이나 스리랑카 상좌부에 전승되어오던 아비담마와 크게 관련이 없는 자가 지은 듯하다. 그래서 인도의 저술이거나 만일 스리랑카에서 저술된 것이라면 아바야기리나 제타와나 계열의 저술일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그러나 붓다고사가 『청정도론』을 저술할 때『해탈도론』의 방법론을 빌어온 점과 담마빨라가 그것을 잘 아는 것으로 보아 大寺와 각축을 벌이던 스리랑카의 다른 파의 저술이라 하기 보다는 인도출신인 이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인도에서 만들어진 저작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해탈도론』이 스리랑카 상좌부으 저술이 아니라 해서 대승 계열의 논서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분명 같은 상좌부계열의 논서 이다. 인용되고 있는 모든 경들이 초기경들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상좌 부의 심식설인 유분심(有分心, bhavanga-citta, 잠재의식,Life-continuum)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49) 그러므로 그 기간을 최대로 널리 잡아도 18부파 가운데 한 유력한 부파의 저술이지 대승의 저작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청정도론』은 상좌부 불교국가에서만 알려진 반면 『해탈도론』은 국제 적으로 잘 알려졌던 것 같다. 서역을 통해서 중국어로 번역이 되었고12세기 인도의 맹갈지방에서 제나 왕조 때 다살라슈리미뜨라(Dasalasrimitra)도 이 책을 이용했던 기록이 있다.50)

47), 48), 49), 50) 주해 생략

9. 『청정도론』의 복주서들

『청정도론』의 복주서들은 세 가지가 있다. 담마빨라 스님이 AD 6세기중엽에 지은 『빠라맛타만주사』(Paramatthamanjusa, Pm)와 저자를 알 수없는 『상케빳타 조따니 』 (Sankhepatthajotani)와 12 세기에 미얀마의 차빠다(Chapada)가 지은 『위숫디막가간티』(Visuddhimaggaganthi)가 있다.51)

이 가운데서 남방 상좌부 최고의 학승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는 담마빨라 (Dhammapala)52) 스님이 지은 Pm은 『마하띠까』(Mahatika, 대복주서)라불리며, 빠알리 문헌 가운데서 아난다 스님이 지은 논장의 주석서에 대한 복주서와 더불어 최고로 나해한 책으로 꼽힌다.

그래서 아난다 스님의 논장의복주석서를 『물라띠까』(Mulatika, 근본 복주서)라 부르듯이 이 책을 『마하띠까』(대복주서)라 부르는 것이다. 그것에 비해 『상케 빳타조따니』는 『쭐라띠까』(Culatika, 작은 복주서)53)라 부르는데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은 주로 태국에서 『청정도론』의 주석서로 널리 유통되고 있다. 하여 태국 어본이 전해온다. 한편차빠다가 지은 『위숫디막가간티』는스리랑카에서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마하띠까』가 『청정도론』의복주서를 대표한다는 점에는 어느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비담마의 나라라고 자부하며 Pm이 왕성하게 연구되어 왔던 미얀마에서 조차 역사적으로 Pm의 완전한 번역을 가지지 못했다. 부분적인 번역은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찾아내기도 힘들다고 한다.

이 책은 미얀마 근래의 최고 고승 중의 한 분이며 우리에게 위빳사나의 대가로잘 알려진 마하시 사야도에 의해서 1962-63년에 걸쳐서 총 네 권으로 번역되었으며 마하시 사야도의 명성은 바로 이 책의 완전한 번역 때문에 생겼다고 그의 제자 우 실라난다 스님은 전기에서 말한다.54)

51) 이들 세 책의 로마문자 교정본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최근에 유통되고 있는 VRI CD-ROM본을 통해서 로마문자로 읽을 수 있으며 프린트도 가능하다.

52) 담마빨라 스님이 한 명이냐 두 명이냐에 대한 논의 등담마빨라 스님에 관한 논의는 역자의 박사학위 청구논문 ‘A Study in Paramatthamanjusa’의 서문에 학계의 연구성과가 반영되어 있으니 참조할 것(『길라잡이』 서문 38번 주해에 요점이 정리되어 있다.) 53) 주해 생략 54) 『길라잡이』 서문 §13과 주해 53을 참조할 것.

Pm의 설명은 간결하나 심오하여 어느 한 두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전체 문맥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축약되어 있다. Pm에서 저자 담마빨라는 인도 육파철학의 가르침과 문법, 자이나 교설, 의학 등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분야에도 빠짐이 없을 정도로 해박하고 정통한 지식을 보여준다.

사실 Pm에 나타나는 이런 여러 학파들의 다양한 견해 때문에 남방에서는 Pm을 난해하다고 하는 측면이 강한 것 같다.그리고 Pm은 『청정도론』을 여러 면에서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으며 남방 아비담마에 대한 일체의 다른 견해를 불식시키고 있다.

그래서 남방 아비담마 불교는 담마빨라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정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마빨라 이후 그 어느 누구도 그의 견해에 이론을 제기하는 사

람은 아직 없다고 한다.

역자가 연구한 Pm의 혜품의 토대부분(『청정도론』XIV-XVII에 해당하는 Pm)을55) 보더라도 남방 아비담마는 사실은 담마빨라에 의해서 이미 완결이 되었으며 이것을 토대로 『아비담맛타 상가하』는 남방 아비담마의 전체 구도를 최종 확정지은 책이라 본다.

이처럼 상좌부 불교의 주석서체계를 완성시키는데 붓다고사와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세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붓다고사와 아난다(6세기 초)와담마빨라(6세기 중반)이다.(붓다닷따를 넣긷 하나 논의의 대상이 아니므로 제외한다).

아난다 스님은 빠알리 문헌 가운데 최초의 복주서(Tika)를 저술한분인데 그의 논장의 복주서에서 붓다고사스님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제법 드러냈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아난다의 제자로 여겨지는 담마빨라가 그의 빼어난 실력으로 붓다고 사의 견해를 지지함으로써 완전하게 상좌부의 견해로 정착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붓다고사가 남방불교의 큰 체계를 완성한 사람이라면 아난다는 여기에 대한 이론을 제기하여 몇몇 문제점들을 부각시켰고 담마빨라는 다시 이런 모든 다른 견해를 불식시켜 남방불교를 완전히 고착시켰다 해야 한다.

붓다고사는 그의 역할에 충실하여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기 보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모으고 편집해서 빠알리어로 재창출해내는 작업을 한 사람이라면 아난다는 거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고 담마빨라는 모든 다른 견해를 논파하고 아울러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유감없이 드러내면서 남방 아비담마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만천하에 천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56)

이렇게 상좌부의 교설은 담마빨라에 의해서 최종 완성단계에 이르게 된다. 자연 스럽게그 후에는 이렇다할만한 큰 인물이 나타나지 않으며 600여년이 지난 12세 기에 인도에서 무슬림왕조가 등장하자 불교가 사라지면 스리랑카에서는 뽈론나루와 시대가 열리고 불교도 부흥의 시대에 다시 들어서게 된다. 이때여러 대가들이 나타나서 다시 상좌부 교설을 여러 측면에서 연구하여 드러내게 된다.

55) 역자의 박사학위 청구논문을 참조할 것.

56) 위 책, 34참조

10. 『아비담맛타 상가하』(아비담마 길라잡이)와 『청정도론』

역자가 각묵 스님과 공역으로 『아비담마 길라잡이』라는 제목으로 번역과 주해를 한 『아비담맛타 상가하』(Abhidhammatthasangaha)는 ‘아비담마(abhidhamma) 주제(attha)의 길잡이(sangaha)’로 직역할 수 있는데 이것은원문만으로는 겨우 50쪽 남짓한 분량에 지나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이 작은 책 안에 아비담마으 모든 주제가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상좌부아비담마의 최고의 입문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책은 대략 10/11세기 쯤에 아누룻다(Anuruddha) 스님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상가하 』 는 한마디로 말해서 아비담마의 축약판이다. 방대하고 정교한상좌부 아비담마 체계를 소화하고 요약하여 50쪽 정도로 압축한 것이다. 그러나 『상가 하』에서 아비담마의 주제에 관한한 어느 한 부분도 놓친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초보자가 아무런 해설서 없이 이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상가하』의 위대성은 이것이 아비담마의 단순한 요약이나 축약이 아니라 비효 율적이고 비체계적인 듯한 전통적인 아비담마의 서술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했던 것에서 찾아야 한다. 전통적인 서술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청정도론』을 통해서 아비담마의 전체 윤곽을 그린다는 것은 초보자로서는 힘든 일이다.

예를 들면 『청정도론』에서는 마음·마음부수의 설명은 XIV장에서 인식과정은 I 장 §§57-58 등에서 인식과정에 개재되는 마음의 역할은 XIV장 §110에서, 이런 식으로 『청정도론』의 체계를 따르다보니 아비담마가 흩어져서나타나며 따라서 체계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비담맛타 상가하』는 이런 아비담마를 아주 정교한 체제 속에서 전체를 통일된 장으로 설명해내고 있다.

이처럼 『상가하』는 워낙 체계적으로 잘 편집되었기 때문에 일단 이 책이 나타 나자 남방의 모든 아비담마 체계는 이 책의 주제(attha)를 쫒아서 다시 편성되어 가르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비담마의나라라고 불리는 미얀마뿐만 아니라 모든 남방 불교국가에서 이 책은 아비담마를 가르치고 배우는 기본 텍스트로 자리 잡아왔으며 영어로도 번역이 되었다.

역자가 각묵스님과 공동 번역한 『아비담마 길라잡이』는 『상가하』의번역을 기본으로 하지만 아비담마에 관한 설명은 거의 대부분 『청정도론』을 인용하였다.

그 이외의 중요한 인용은 논장을 비롯한 여러 아비담마 주석서들, 특히 상가하의 주석서인 『위바위니 띠까』와 『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서 발췌하여 보강하였 다. 이런 의미에서 『아비담마 길라잡이』는『아비담맛타 상가하』를 몸통으로 하고 『청정도론』을 날개로 하여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라잡이』에서도 밝혔지만 역자들의 의도는 무엇보다도 『아비담맛타 상가하』 에 나열되고 있는 아비담마의 주제와 가르침을 가능하면 『청정도론』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는 것이었으며 일차적인 목적은 『청정도론』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비담마의 술어들을 아비담마의 전체구도 속에서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 었다. 이렇듯 『길라잡이』는 『청정도론』을 깊이 염두에 두고 역해한 것이다.

그래서 본 『청정도론』을 번역하면서 중요한 술어나 개념에 대해서는 『길라잡 이』의 관련 페이지를 거의 대부분 주로 밝혔다. 『길라잡이』를 통해서 개념을 파악하면 『청정도론』은 한결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청정도

론』만 읽어서는 특히 처음 접하는 분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 길라잡이 』 는 『 청정도론 』 의 참고서이다. 『 길라잡이 』 를 항상 곁에 두고 『청정도론』에 나타나는 생소한 술어들은 『길라잡이』의 색인에서 확인하여 그해당 페이지를 찾아 설명을 읽으면 많은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런 목적으로 역자가 『청정도론』출간 이전에 각묵 스님과 공역으로 『길라잡이』를 먼저 두권으로 출판한 것이다.

『 길라잡이 』 가 아비담마의 지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교학의 지침서라면 『 청정도론 』 은 아비담마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에 적용되고 있는가를 심도 깊게 밝히고 있는 수행의 지침서라 해야 한다.

『 길라잡이 』 에서분석하여 드러낸 법들과 그들의 관계(조건, paccaya, 緣)가 『 청정도론 』 에서는 7청정 가운데서 5청정으로 적용되어 설명된다.다시 말해서 열반과 10가지 추상적 물질을 제외한 71가지 법을 내안에서확인하는 것이 바로세 번째 청정인 견청정(XVIII)이며, 법들의 상호관계(조건, 緣, paccaya)를 내안 에서 확인하는 것이 네 번째인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XIX)이다.

다시 이 법들을 조건(緣)과 순간의 관계로써 파악하는 것이 다섯 번째 청정인 도와 도아님에 대한 지견청정(XX)이다. 이를 바탕으로 8가지 윗빠사나의 지혜를 닦아가는 과정이 여섯 번째인 도닦음의 청정(XXI)이며 이를 통해서 도와 과와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 마지막 일곱 번째 청정인 지견청정(XXII)이다.

이처럼 아비담마를 모르면 5청정으로 표현되는 윗빠사나수행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아비담마가 위빳사나고 위빳사나가아비담마라고 한다. 이 정도의 핵심 적인 이해를 가지고 이제 수행의 측면에서 『청정도론』을 고찰해보자.

11. 『청정도론』의 중요성 ? 수행의 측면에서의 고찰

이상 문헌학적인 측면에서 『청정도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청정도론』은 문헌학적인 측면에서도 남방불교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저작이지만그보다는 『청 정도론』이 담고 있는 내용의 측면에서 볼 때 그 가치는 훨씬더 뛰어나다.

『청정도론』은 부처님 시대부터 붓다고사 때까지 전해 내려온삼장과 싱할리 고주석서들을 통한 가장 전통적인 상좌부 불교를 있는 그대로 어떤 일관된 체계 속에 농축해서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관된 체계는 다름 아닌 아비담마인데 『청정도론』은 아비담마의 체계로 계·정·혜의 주제를 철저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정도론』은 계청정과 마음청정 이라는 두가지 청정을 바탕으로 나머지 5청정으로 표현되는 위빳사나의 실참실수를 통해서 도와 과와 열반을 증득하는 실제수행으로 종결을 짓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도 밝혔듯이 아비담마와 위빳사나를 이어주는 수행지침서라는 점이다.

이처럼 『 청정도론 』 이 중요한 근본적인 이유는 『 청정도론 』 이 아찰나(Sub-

moment)를 다투는 극미의 세계에서부터 광활한 우주를 논하고 무수히많은 중생의 거처를 논하고 깨달은 성자들의 경지를 논하는 고담준론이나 거대담론의 교학체 계에만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 내 안에서 법의 찰나성과 연기성을 발견하고 체득 하는 실천의 체계로, 철저한 수행의 체계로 살려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도대체 계를 어떻게 지녀야 하며 삼매는 어떻게 닦아야 하며 섬광보다도 예리하고 털끝을 쪼개는 것보다 더 날카롭다는 통찰지는 도대체 어디서부터시작해서 어떻게 닦고 개발해야 하는가 하는 실제적인 측면을 『청정도론』은 하나하나 그중요한 요점들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청정도론』을 읽으면서 이런 실수행의 측면을 밝혀내지 못하고 이를 지금 여기서 내 수행과 연결짓지 못한다면 『청정도론』은 한갓 옛스님이 지은 교리서나 고담준론이나 거대담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역자는 해제를 쓰면서 『청정도론』의 실참실수의 측면을 어떻게 잘 달할까하는 것이 제일의 관심이며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기쁘겠다.

『 청정도론 』 이 어떻게 실제수행에 중요한 지침서가 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이제 상좌부 불교의 교학체계의 근간부터 살펴보자.

12. 상좌부 불교의 발전 단계

역사적으로 발전되면서 전승되어온 상좌부불교는 크게 세 가지 층으로 추적해서 이해할 수 있다.57)

57) 이하 상좌부불교의 발전 단계는 냐나몰리 스님의 xxviii-xxx의 해당부분을 참조하였다.

첫 번째 층에는 빠알리 경장(Sutta Piaka)이 놓여있다.두 번째 층에는 논장 (Abhidhamma Pitaka)이 놓여있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 담마상가니 』 (法集論)와 『위방가』(分別論)와 『빳타나』(發趣論)가 상호깊은 연관 속에 함께 놓여 있다.

세 번째 층에는 본 『청정도론』의 저자가 이전의 싱할리어로 된 자료들을 철저 하게 모아서 그것을 빠알리로 편집하고 번역하여 완성한 주석서의 체계가 놓여있 다. 물론 이 층에는 그 후에 계속 보강되어 온 논의들, 특히 6세기 때 담마빨라가 지은 복주서들부터 12세기 때 『상가하』의 저자인 아누룻다 스님이나 그 후대의 복주서들이 공헌한 자료들까지 모두 포함되지만 이는 지금 우리의 논의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이제 세 단계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붙여본다.

첫째, 경장은 부처님 원음을 간직하고 있는 전적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4부 『니 까야』, 『숫따니빠따』, 『법구경』, 『장로게』, 『장로니게』, 『여시어경』,

『자설경』 등은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원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데 큰이설은 없다.

둘째, 논장은 경장의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아주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체계이며 경장의 가르침에 대한 보충적인 논의를 모아놓은 성격이 짙다. 논장의 제일 즉각 적인 목적은 법체계화이다.

여기서 법이란 ‘나’라는 존재(五蘊,무더기들)를 출발점으로 해서 전개되고 벌어지는 무수한 사건들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을 계열화한 것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정신(名)을 구성하고 있는 법들(마음과 마음부수법들) 과 그들의 특징들과 역할들을 밝혀내고정확하게 찍어내어 이들이 의지하고 있는 물질적인 토대나 대상과의 관계를 규명하고 그 마음과 마음부수법들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부차적인 목적으로는 외도의 가르침과 다른 부파들의 주장으로부터그들의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법을 분류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끊임없이 그리고 한량 없이 많은 취착을 유발시키면서 취착의 완전한 소멸을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는저 가설(pannatti), 관념, 개념들, 예를 들면 자아니, 영혼이니,중생이니 하는 여러 가지 실제론적인 개념들을 부수는데 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법이라는 미명 하에 표출되고 있는 여러 가지 신비적인 체험들을 가려내고, 또 그것을 가려내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고안하고 찾아내어 그런신비체험에 속아서 일대사를 그르치는 불상사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법의 분류와 체계화라는 이런 도구는 초기경장의 측면에서 보자면 새로운시도이 다. 물론 이런 법의 분류 내지 체계화는 이미 경장에서 연원하고 있음도 분명하 다. 부처님의 후반부 20년은 기원정사에서 제자들과 함께 이런 법체계화에 몰두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주제별로 가르침을 모은 상응부의 5천 가지 이상의 경들 가운데서 절반이상이 기원정사에서 설해졌다는 것이그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중부』의 여러 가지 위방가에 관계된 경들58)을 위시하여 적지 않은 경들을 통해서 세존께서 이미 사리뿟따나 깟짜야나 등 직계제자들과 아비담마적인 법체계화를 행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니까야의 적지 않은 경들이 사리뿟 따나 깟짜야나 등 직계제자들에 의해설해진 것이며, 특히 『장부』의 「상기띠 경」(D33)과 「디숫따라 경」(D34) 등도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이 법체계화를 위해서 얼마나 고심하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58) 예를 들면 「짧은 업분석경」(Culakammavibhanga Sutta, 135), 「긴 업분석경」(Mahakammavibhanga Sutta, 136), 「육처분석경」(Salayatanavibhanga Sutta, 137),

「요점분석경」(Uddesavibhanga Sutta, 138), 「무쟁분석경」(Aranavibhanga Sutta, 139) 「계분석경」(Dhatuvibhanga Sutta, 140) 「진리분석경」(Saccavibhanga Sutta, 141), 「보시분석경」(Dakkhinavibhanga Sutta, 142)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논장에서 법의 체계화에 등장하는 특별한 방법은 다음 세 가지로 들수 있다.(1) 찰나적 존재인 법들의 아주 엄격한 구분 및 정의를 들 수 있다.

이것은 『담마상가니』(법집론, Dhs)와 『위방가』(분별론, Vbh)에서 완성되었다.

특히 『담마상가니』는 선·불선·무기와 욕계·색계·무색계·출세간이라는 분류법을 통해서 이런 각각의 사건 혹은 시간에서(samaye)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을모두 89 가지로 분류해서 설하고 있다.

아울러 이 각각의 마음들이 일어날 때 어떤 마음부수(心所)법들이 일어나는가를 나열하고 다시 물질이 일어나는것을 분류하고 있다. 마음을 선·불선·무기와 욕계

·색계·무색계·출세간에 바탕하여 89가지로 엄격하게 구분되고 정의되고 있다.

(2) 이러한 법들을 분류하고 가려내기 위해서 삼개조와 이개조로 된 논모 (論母, matika, 논의의 주제)들을 창출해내었다. 아비담마는 논모를 통해서 발전되었다. 부처님이 설하신 법들을 여러 가지 논모로 정리하고 이런 논모를 토대로 법들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담마상가니』에는 22가지 삼개조 논모(tika-matika) 142가지 이개조 논모(duka-matika)가 정리되어있다.

(3) 『빳타나』(발취론, Ptn)에서는 24가지 조건(paccaya)들의 조목을 아주 미세 하게 완성시키고 있다. 이런 도구들을 통해서 모든 법들은 일시적인멈춤 상태에 있는 찰나적인 존재이며 이 찰나적인 멈춤은 다시 조건들에 의해서 연속적인 상태로 연결되고 있으며 논모는 그런 연속상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4가지 조건은 법들 상호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도구이다.

『빳타나』는 다양한 측면에서 함께 일어나고 멸하는 법들과 전찰나와 후찰나의 관계로 일어나는 법들 사이의 과계를 심도깊이 해체하여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담마상가니』와 『위방가』와 『빳타나』는 후대에 ‘아비담마의방법론 (abhidamma-naya)’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82가지로 분류되는 제법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논장의 7론 가운데 나머지 4론은 여러 전문 분야에서 이 셋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기서 재삼 거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이것은 논장에 대한 아주 대략적인 테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논장에는 아직 탐험하지 않은 광대한 미로를 가지고 있다 하겠다.

이제 세 번째 논의로 넘어가기 전에 여기서 한 가지 부연설명을 하고 넘어가자.

출가스님들의 가장 큰 역할이 무엇일까?

물론 스승이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해탈열반을 성취하고 생사문제를 해결하여 부처님 가르침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불멸후에는 이보다는 법의 전승을 스님들의 가장 큰 역할로 꼽게 되었다.

이것은 특히 상좌부불교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스리랑카불교역사가 증명해준다. 『증지부 주석서』(AA)에 의하면 대사의 스님들은 삼장을 문자로 기록할 즈음에 수행(Patipatti)보다 경의 전승(suttante rakkhite)을 더 중시하 기로 공사에서 결정했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59)

그래서 예로부터 스님들은 암송 전문승(bhanika)들을 육성하여 부(Nikaya)별로 경을 암송해서 구전으로 전승해왔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미얀마에 그대로 남아있어 삼장을 고스란히 다 외는 스님들이 지금 네 분이나 살아있다고 한다. 그외도 매년 시험으로 2와 1/2장 법사, 2장 법사, 1장 법사, 니까야 법사 등으로 암송전문스님들을 육성해서 경의 암송전통을 전승해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부처님 생시부터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은 법체계화에 혼신의 힘을다 기울여왔다. 특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20여 년간은 사왓티의 제따와나 급고독원에 머무시면서 법체계화에 심혈을 기울이셨고 그 자취가 『상응부』 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런 전통은 즉시에 아비담마로 전승되어 사리뿟따 존자를 필두로 불멸후에는 더욱 더 박차를 가하여 논장(아비담마 삐따까)으로 전승되어왔다. 이런 논장은 다시 기라성 같은 스님들의 주석을 거쳐 스리랑카에서는 싱할리어로 적힌 여러 고주석서들로 전승되어오다가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붓다고사에 의해 다시 빠알리어로 편찬되어서 전승되어오는 것이다.

이제 세 번째 층인 주석서(Atthakatha)들에 나타나는 이런 법체계에 대한 고뇌의 흔적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59) 주해 생략

세 번째 문헌군인 주석서들에서 발견되는 체계들은 모두 논장(AbhidhammaPitaka) 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경장에 대한 주석서일지라도 논장, 즉 아비담마의 제법에 대한 분석적인 방법론을 빌어 설명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경장은 발견한 귀중한 보물에 대한 묘사를 제공하고 있고 논장은 그것에 대한 지도를 만들고 있지만 이제 주석서에서는 발견도 강조하지 않고 지도를 만드는 것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주석서의 입장은 이들을 정착시키고 부족한 부분을 메워서 불교의 총체적인 틀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경과 논에 서술된 자료들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철저히 재음미된다. 그래서 상좌부 불교라는 큰 틀을 완성시키고 있다. 이 틀을 계정혜와 7청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청정도론』이다.

『청정도론』은 이런 세 번째 층의 근본이 되는 주석서이다. 그러므로 『청정도 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세 번째 층을 이루는 중요한 방법론 가운데 몇 가지를 조금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제일 먼저 들 수 있는 방법론으로는 법을 정확하게 분류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고유성질(sabhava, 自性)이라는 개념이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바와(sabhava) 라는 술어는 경장이나 논장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주석서에서부터 제법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방법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A라는 법과 B라는 법이 서로 구분되는 이유는 바로 각각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탐욕 없음과 성냄 없음과 어리석음 없음이 각각 다른 이유도 그 각각의 법의 고유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고유성질을 인정하지 않으면 부처님이 설하신 많은 법들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가 없으며 부처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상좌부에서 분류하는 82가지 법들 가운데 추상적인 물질 10 가지를 제외한 72가지 법들은 모두 고유성질을 가지며 이런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은 다시 위빳사나로 실참실구하는 대상이 된다고 정리한다.

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관찰이 없이는 위빳사나는 불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도 고유성질은 중요하다.

물론 제법이 고유성질을 가진다는 이러한 주장 때문에 대승으로부터 아공법유(我 空法有)라는 존재론적인 비판이 제기된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상좌부를 위시한 모든 부파에서는 이런 고유성질을 인정하고 있으며 아비담마/아 비달마의 이런 입장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온 것이 반야부를 위시한 대승불교이다.

그러나 상좌부를 위시한 모든 부파에서는 당연히 보편적 특징(samanna-lakkham, 共相)으로서의 제법무아는 기본전제로 그대로 튼튼히 유지되며 『 청정도론 』 의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상좌부에서는 법을 결코 실유(實有)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2) 『담마상가니』에서 사마야(samaya, 사건, 경우, 때, 시간)로 나타나던 법의 개념이 이제 카나(khana, 찰나, 순간)로 정착이 된다. 물론 이런 찰나는 이미 『위방가』와 『빳타나』를 위시한 논장에서 아주 많이 등장하는 술어이다.그 러나 주석서에서 이 찰나는 심도깊이 규명되고 설명된다.

이는 주석서가 법의 고유성질이란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법을 존재론적으로 잘못 이해할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법의 찰나생ㆍ찰나멸을 더욱더 강조하게 되었 다고 보여진다. 찰나의 규명은 주석서 문헌을 통해서 이루어낸 아비담마 불교이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비담마 불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존재를 법들의 흐름(santati, 相續) 으로, 찰나의 연속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법은 일어나고 사라짐, 그것도 찰나 생ㆍ찰나멸의 문제이다. 그것은 있다ㆍ없다의 문제가 아니다.

아비담마에서 법을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라고 정의한다 해서 법을 유ㆍ무의 측면 에서 고찰하면 그것은 아비담마를 크게 호도하는 것이 된다.

대승에서도 많이 인용하는 「가전연경」(S12:15)에서도 세상의 일어남을 보기에 없다하지 않고 세상의 소멸을 보기에 있다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으며 이런 것을 중(中)의 견해라고 하고 있다.

아비담마의 이런 입장은 초기불교의 도처에 나타나는 무상의 가르침과 법들의 일어남, 사라짐, 머문 것의 변화함60)이라는 가르침을 철저하게 계승한 것이다.

수행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흐름, 변화, 무상성, 찰나를 제거해버린 수행이 다름 아닌 사마타수행 혹은 삼매수행이다. 삼매는 변하는 대상에서 변하지 않는 표상 (nimitta, 니밋따, 이것은 법이 아닌 개념에 속함)을 취해서 거기에 집중하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위빳사나 특히 『청정도론』XVIII-XXII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위빳사나는 변화와 무상을 주시하는 수행이다. 변화와 무상을 관찰해 들어가서 찰나를 만나고 이런 찰나생ㆍ찰나멸하는 법을 내관하는 수행법이다.

제법의 찰나생ㆍ찰나멸을 직시하여 매순간 무너지고 있는 법의 무상이나 법의 고나 법이 무실체성을 직시하여 무너짐(해체)의 지혜(bhanga-nana)로서 ‘나’니 ‘내것’이니 하는 존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제행에 대해서 평온(우뻬카, 捨) 을 유지하는 지혜를 개발해서 도와 과를 증득하는 체계를 위빳사나수행이라하고 있다. 이처럼 찰나는 법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며 그러므로 법을 통찰하는 위빳사나와도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리고 주석서는 더 나아가서 이 찰나도 다시 일어나고 머물고 무너지는(uppadatthiti-bhanga) 세 아찰나(亞刹那, sub-moment)로 구성된다고 특수한 상황을 설정하게 된다.

찰나란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흐름 그자체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역자가 사용한 아찰나(sub-moment)라는 술어는 서양학자들이 만들 어낸 것일 뿐 주석서에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아비담마에서는

아찰나란 단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일 아찰나란 단위를 인정 한다면 다시 아찰나를 구성하는 아아찰나(亞亞刹那) 를 인정해야 하고 다시 더 짧은 단위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무한소급의 오류에 빠질 뿐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은 법의 무상ㆍ고ㆍ무아를 통찰하는 위빠사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면서 존속하는 최소단위가 찰나이고 이것은 위빳사 나의 대상이다. 그래서 법은 찰나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60) 주해생략

(3) 그리고 주석서에서는 이런 법의 찰나성을 더욱더 깊이 규명하여 물질과 정신이 머무는 순간을 다르게 이해한다. 그래서 물질이 머무는 순간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멸하는 것으로 전체 인식과정(vithicitta)의 틀을 완성하고 있다. 즉물질적인 대상을 알기 위해서는 16번 혹은 17번의 마음이 일어나고 멸한다고 정교한 인식과정을 체계화하고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런 과정에는 과보로 나타난 마음과 작용만하는 마음이 항상 개재되고 있으며 이런 매찰나 마음의 작용을 바탕으로 유익한(善) 업을 짓거나 해로운(不善) 업을 짓는 일곱 번의 속행(자와나)의 과정이 진행되면서 매순간의 마음들과 업과의 관계가 설정되고 있다.

이것은 특히 북방 아비달마에는 나타나지 않는 상좌부 주석서에만 전승되어오는 고유한 가르침이다. 이러한 인식과정은 찰나와 조건(緣)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조직된다. 인식과정에 대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4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더 이상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4) 주석서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sabhavam dharenti)을 법이라 한다’고 정의 한다. 이런 법들의 고유성질을 고찰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주석서는 특징 (lakkhana), 역할(rasa), 가까운 원인(padatthaba), 나타남(paccupattana)의 네가지를 채용하고 있으며, 법이 아닌 모든 것은 개념(pannatti)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채용하고 있다.

이것은 실수행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하다. 위빳사나란 다름 아닌 개념을 해체해서 법을 보는 것, 더 구체적으로 법의 고유성질과 보편적 성질(무상ㆍ고ㆍ무아) 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의 입장에서 보자면 개념은 82가지 법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마음과 마음부수법들이 대상과 조우하면서 혹은 대상을 계속해서 문지르면서 (anumajjana)61) 만들어낸 물안개나 물보라와 같은 일종의 표면효과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매 찰나의 법들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표면효과에 지나지 않는 개념을 실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거기에 크나큰 의미를 부여하여 그것을 ‘나’ 혹은 ‘내 것’이라고 집착하여 아등바등하고 사력을 다해 거머쥐기 때문에 중생은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아비담마의 목적은 이런 개념들을 법들로부터 해체하고 분석하고 분리해서 이런 법들의 찰나적인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직접 확인해서 모든 취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5) 그리고 『빳타나』를 대신해서 마노(意)가 일어나는 토대로 심장토대를 명시 하고, 물질을 구성하는 순수한 팔원소(깔라빠)의 개념이 주석서에서 등장한다.

현대 서양의 아비담마 학자들은 주석서에서 마노가 머무는 물질적인 토대를 심장 토대로 설명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노가 머무는 물질적인 토대는 심장이 아닌 뇌라고 보려는 입장이다. 깔라빠도 물질을 이해하는 중요한 술어 이다. 깔라빠란 물질의 더미란 뜻이다.

18가지 구체적인 물질은 항상 깔라빠로 존재한다. 그들은 각각 분리되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수화풍 형상 냄새 맛 자양분이라는 8가지 물질의 최소단위가 함께 결합되어서 존재하며 이것을 순수한 팔원소라 한다.

이것을 기본으로 소리의 구원소 눈의 십원소 등으로 무리지어 깔라빠(더미)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XX. §2와 『길라잡이』 6장 §7의 10번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 외에 경에 나타나는 몸의 32가지 부위62)에 대한 상세한 서술을 비롯하여 몇가지를 더 들 수 있지만 생략한다. 물론 이런 것들은 분명 인도대륙에서 전개되 어온 불교 내외의 여러 논의들과 상호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런 측면은 현존하는 『구사론』(俱舍論, Abhidhammakosa)을 비롯한 북전의 많은 논서들과의 비교연구를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61) 본서 IV. §88에서 지속적인 고찰의 특징으로 이 단어가 쓰이는데 음미해 볼만하다.

62) 경에는 31가지이고 『쿳다까빠타』와 『무애해도』와 주석서들에는 32가지임.

13. 『청정도론』의 구성 및 개관 ? 계ㆍ정ㆍ혜를 중심으로

이 정도로 상좌부 불교의 발전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고 이제 『청정도 론』을 중점으로 살펴보자. 잘 알다시피 『청정도론』 전체는 상응부에 나타나는 다음 하나의 게송에 대한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비구는이 엉킴을 푼다(S.i.13)”

『청정도론』은 먼저 이 게송을 간단하게 해설하고 이를 다시 계ㆍ정ㆍ혜의 3학과 계청정 등의 7청정으로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이것이 『청정도론』의 전체 구성이다.

여러 학자들의 지적대로 『청정도론』은 법을 실참실구(實參實究)하는 수행자들의 상세한 참고서라고 해야 마땅하며 전체 23장은 한 부분도 예외 없이 치밀한 계획 하에 아주 체계적으로 조직되고 구성되어있다.

『청정도론』은 일화를 소개하는 부분과 접속사들이나 몇몇 부사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한 단어도 아무런 의미 없이 수사학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치밀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번역에 임하면서 이런 부분은 거의 대부분 번호를 붙여서 전후 상호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필요하면 주로 부연설명을 하려하였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청정도론』은 계ㆍ정ㆍ혜의 측면과 칠청정의 측면에서 분류 된다. 여기서는 먼저 계ㆍ정ㆍ혜의 측면에서 『청정도론』의 구성과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전체 23장 가운데 I장과 II장은 계품에 속하고, III장부터 XIII장은 정품에 속하 며, 나머지 XIV부터 XXIII장까지는 혜품에 속한다. 계ㆍ정ㆍ혜를 상세하게 설명 하기 위해서 저자는 각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여기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논을 전개하고 있다.

① 무엇이 계/정/혜인가?

② 무슨 뜻에서 계/정/혜라 하는가?

③ 그들의 특징,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은 무엇인가?

④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계/정/혜가 있는가?

⑤ 무엇이 그들의 오염인가?(계와 정에만 나타남)

⑥ 무엇이 그들의 깨끗함인가?(계와 정에만 나타남)

⑦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정과 혜에만 나타남)

⑧ 계/정/혜를 닦으면 무슨 이익이 있는가?

각 품의 시작에서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 뒤 하나하나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과 설

명을 제시하는 것이 『청정도론』의 전체 구성이다. 『청정도론』은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사용하여 해설을 전개하고 있다.

(1) 기본적으로 『청정도론』은 삼장 특히 경장에 대한 주석서이기 때문에 『청 정도론』에 등장하는 모든 해설은 반드시 해당되는 삼장의 경문을 인용하고 그것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가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삼장의 인용을 찾지 못할 때는 고주석서를 인용하여 이것을 해설한다.

(2) 이 경우 견해가 여럿일 때는 제일 널리 인정되는 (혹은 대사의 공식적인) 견해를 처음에 소개하고 다른 것은 옵션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럴 때는 예외 없이 ‘va(혹은)’이나 ‘atha va(그런데 혹은)’라는 단어를 사다.63)

(3) 이렇게 전개해나가면서 중요한 용어나 가르침에 대해서는 가능하다면 그 때까지 있었던 여러 스승들의 견해를 가급적이면 많이 밝히고 있다.64)

(4) 대사(大寺)에서 통용되지 않는 스승들이나 문파의 견해를 언급할때는 ‘어떤 분들은(keci pana)’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이 경우에 Pm에서는 대부분 그 출처를 밝히고 있다.65)

(5) 각 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를 여러 측면에서 상세하게 기술할 때 대부분 ‘vinicchayo veditabbo(판별이 알아져야 한다)’라는 표현이사용됙 있다.66)(6) 필요한 부분에는 옛스님들의 일화를 들어서 실제 수행에 적용되는 방법을 보여준다.67)

63) ~67) 주해생략

이제 『청정도론』의 계품ㆍ정품ㆍ혜품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인 개관은 아래 칠청정의 설명에서 언급될 것이다.

(1) 먼저 계품은 ‘④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계가 있는가?’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다. 여기서 저자는 여러 가지로 분류되는 계를 열거하고 이 가운데서 계목의 단속, 감각기능(根)의 단속, 생계의 청정, 필수품에 관한 계의 네 가지 분류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2) 정품은 ‘⑦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정품에 하는 III장부터 XIII장 가운데서 III. §27부터 XI. §120번까지, 다시 말해서 정품의 거의 대부분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를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사실 삼매란 것은 어떻게 닦을 것인가라는 실천의 측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품은 주로 40가지 명상주제를 닦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모든 명상주제는 III장의 일반적인 설명과IV장의 땅의 까시나에

서 설명하고 있는 삼매증득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간략하게 요점만 설명되어 있다.(그러나 VIII장의 몸에 한 마음챙김과 들숨날 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음) 그러므로 정품은 III장과 IV장을 숙지해야 한다.

특히 IV장은 땅의 까시나를 통해서 근접삼매와 본삼매를 증득하는 과정을 구체적 으로 기술하고 있고 초선부터 제4선까지 그곳에 나타나는 禪의 구성요소들을 중심으로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정형구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삼매수 행의 중요한 지침이 된다.XII-XIII에서는 ⑧ 삼매를 닦으면 무슨 이익이 있는가?’ 를 5신통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삼매와 신통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으며 삼매를 기초로 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신통을 나투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 혜품도 ‘⑦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 혜품에 속하는 XIV장부터 XXIII장 가운데서 XIV. §32부터 XXII장 마지막까지, 그러 니까 XXIII장만 제외하고 혜품의 전체를 여기에 할애하는 셈이다.한편 XIV. §3 에서 저자는 통찰지수행에 대한 아주 요긴한 진술을 하고 있다. 전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무더기(蘊), 감각장요(處), 요소(界), 기능(根), 진리(諦), 연기(緣起) 등으로 구분되는 법들은 이 통찰지의 토양(bhumi)이다. 견청정,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견청정, 도닦음에 대한 지견청정, 지견청정 ― 이 다섯은 [통찰지의 몸통(sarira)이다.

그러므로 먼저 토양이 되는 법들에 대한 파악과 질문을 통해서 지혜를 굳건하게 한 뒤, 뿌리가 되는 두 가지 청정을 성취하고, 몸통이 되는 다섯 가지 청정들을 성취함으로써 통찰지를 닦아야 한다. 이것이 요점이다.”

인용문에서 보듯이 저자는 통찰지수행을 열반이라는 궁극의 청정을 실현하는 본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앞의 계와 삼매는 통찰지의 뿌리로 파악하고 있으며 온ㆍ처ㆍ계ㆍ근ㆍ제ㆍ연(蘊ㆍ處ㆍ界ㆍ根ㆍ諦ㆍ緣)의 법들을 토양으로, 나머지 청정을 몸통으로 파악하여 이것을 통해서 도와 과와 열반을 실현하는 것으로(XXII) 결론짓고 있다.

이런 진술만 봐도 『청정도론』은 삼매수행의 지침서는 결코 니다. 삼매수행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도와 과와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뿌리일 뿐다. 물론 뿌리 없는 열매란 생각할 수 없지만. 그래서 굳이 사마타냐 위빳사나냐를 구분해서 말하 자면 『청정도론』은 역시 위빳사나를 강조한 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초기/남방/북방에 공통되는 불교의 입각처라 할 것이다.68) 여서 위빳사나란 바로 법에 대한 통찰지 즉 반야를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혜품의 XIV장부터 XVII장까지는 통찰지의 토양이라 하여 온ㆍ처ㆍ계ㆍㆍ 제ㆍ연(蘊ㆍ處ㆍ界ㆍ根ㆍ諦ㆍ緣)의 여섯 가지 불교의 근간이 되는 기본 법수들을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아비담마의 82법, 즉 물질 28법, 마음 1법, 마음부수 52법, 열반 1법이 전부 특징,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의 네 가지 면에서 구체적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아울러 89가지 마음(알음알이)의 분류가 상세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청정도론』 가운데서 가장 길고 가장 어렵다고 려진 XVII장에서는 24가지 조건(paccaya, 緣)이 설명되고 있다. 『청정도론』XIV부터 XVI장까지는 아비 담마의 법수를 이해하지 못하면 따라가기 힘들다.

『 아비마길라잡이 』 를 통해서 아비담마의 82법과 89가지 마음과 24가지 조건에 대한 이를 먼저하고 이 부분을 읽을 것을 권한다.

XVIII부터 마지막 XXII까지는 통찰지의 몸통이라 하여 7청정 가운데 5청정을 각각의 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앞의 온ㆍ처ㆍ계ㆍ근ㆍ체ㆍ연(溫ㆍ處ㆍ界ㆍ根ㆍ諦 ㆍ緣)을 근본으로 하는 통찰지의 토양이 완전히 이론적이라면 이 다섯 장에서는 이런 아비담마의 정확한 이해가 실제 위빳사나 수행에서 어떻게 적용되어 지금 여기서 구체적으로 관찰되어야 하는가를 심도 깊게 설명하고 있다.

역자는 정품나 혜품의 토양보다도 이 부분을 『청정도론』의 핵심으로 파악하며 독하여 자신의 수행을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빳사나 수행을 하면서 내가 배운 스승이나 센터의 방법대로만 위빳사나를 이해하고 또 그것만을 위빳사나라고 고집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보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XXIII장은 통찰지수행을 통해 얻는 이익을 과의 증득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

68) 북방의 북종선과 간화선도 삼매보다는 통찰지를 강조한 수행이다.

그래서 『육조단경』도 ‘唯論見性 不論禪定解脫(오직 견성을 논할뿐 선정을 통한 해탈은 논하지 않는다)’을 설하고 있다. 간화선과 위빳사나에 대한 비교연구는 간화선과 위빳사나 「무엇이 같고 다른가」 를 참조할 것.

14. 칠청정의 측면에서 본 『청정도론』

역자는 앞에서 본서를 『청정도론』이라고 이름한 가장 큰 이유는 본서가 칠청정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계ㆍ정ㆍ 혜라는 체계와 더불어 『청정도론』을 전개하는 또 다른 방법인 7청정의 측면에

서 위빳사나 수행과 관련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칠청정의 개념은 『중부』제42경 「역마차 경」(Rathavinitasutta, M.i.145이하)에 처음 나타나며 여기서 아누룻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음과 같이 그가 세존 아래 출가수행하는 이유를 칠청정으로 명쾌하게 대답 하고 있다.

“도반이여, 그와 같이 계청정은 마음청정을 위해서입니다.

마음청정은 견청정을 위해서입니다. 견청정은 의심을 제거 함에 의한 청정을 위해서입니다. 의심을 제거함에 의한 청정은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견청정을 위해서입니다. 도와도 아님에 대한 지견청정은 도닦음에 대한 지견청정을 위해서 입니다.지견청정은 취착이 없는 완전한 열반을 위해서 세존을 스승으로 청정범행을 닦는 것입니다.”

이 칠청정은 다시 『 장부 』 제34경 「 디숫따라 경 」 (Dasuttara-sutta, D.iii.288)에서 9청정으로 나타나는데 이 칠청정에다 통찰지(panna)의 청정과 해탈(vimutti)의 청정을 첨가한 것이다.

전체 『청정도론』은 이 칠청정을 통한 열반의 실현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삼매수행이 『청정도론』의 핵심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냐나몰리 스님조차 그의 서문에서 『청정도론』의 이런 입각처를 강조하지 않고 있어서 유감스럽다.

이 칠청정은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 역자가 나름대로 요약하여 정리한 바가 있다. 그러나 너무 산만한 감이 없지 않아서 여기서 다시 더 간단하게 핵심만 간추려 적으려 한다.

(1) 계청정

계청정의 핵심은 단속(samvara)이다. 단속은 감각기능, 즉 육근의 단속과 의식주 삼사의 단속이다. 그래서 본서에서도 계목의 단속, 감각기능(根)의 단속, 생계의 청정, 필수품에 관한 계의 네 가지 분류를 통해서 단속을 심도 깊이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XVIII. §1에서도 “계청정이란 지극히 청정한 계목의 단속에 관한 계 등네 가지 계를 뜻한다.”라고 계를 요약하고 있다.

(2) 마음청정

마음청정의 핵심은 바로 삼매이다. 본서에서 삼매는 “삼매란 유익한 마음의 하

나됨이다.(kusalacittekaggata samadhi, 善心一境性)(III. §2)”라고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청정이 바로 삼매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III.§3에서 “마음과 마음부수들을 하나의 대상(eka-arammana)에 고르고 바르고 모으고, 둔다는 뜻이다”라고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듯이 삼매란 유익한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된 상태이다.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삼매에서 가장 중요한 술어 중의 하나가 바로 대상 (arammana)이다. 우리는 가끔씩 아무런 근거 없이 대상을 뛰어넘는 것이 삼매요 수행의 요체라는 식으로 삼매를 설명하려드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수행을 하고 있는 불자들은 삼매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개념을 바르게 파악하고삼매의 정확한 설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관적인 편견으로삼매를 이해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대상이 없는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고 대상 없는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고 대상 없는 삼매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을 역자는 거듭거듭 강조한다. 물론 명명백백하게 현전하는 표상의 대상 하나에만 집중될 때는 다른 것은 모두 의미가 없어지므로 앞뒤가 끊어져서 시간 개념이 없어진다고 그래서 대상을 초월했다고 표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닮은 표(patibhaga-nimitta, 相似映像)이라는 분명한 대상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무색계선은 이런 표상을 바꾸는데서 출발한다. 신통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대상과 표상의 중요성을 모르고서 바른 삼매를 증득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서의 정품(III-XIII)은 삼매수행자들이 반드시 정독 해야 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겠다.

거듭 밝히지만 삼매수행의 핵심은 대상에 대한 표상(nimitta)이다. 대상에 집중하여 익힌 표상(uggaha-nimitta)을 얻고 이것이 다시 닮은 표상(patibhagaNimitta)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표상이란 개념이고 개념은 시간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69) 이 닮은 표상은 너무 강렬하고 맑고 밝고 깨끗하여 이것에 마음이 하나로 집중될 때 이 강렬한 닮은 표상에 집중된 힘으로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은 극복된다.

따라서 초선부터 제4선까지 그 경지에 따라 여섯 가지 禪의 구성요소들, 즉 일으킨 생각, 지속적인 고찰, 희열, 행복, 마음의 하나됨, 평온이 강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이 삼매수행의 핵심이다.

이러한 초선부터 제4선(혹은 오종선의 제5선)까지를 본삼매라 부르며 본삼매를 증득하기 이전의 단계를 근접삼매라 한다. 본삼매는 다시 증득(samapatti, 等至)

이라고도 부르며 때에 따라 이것은 사마타(samatha, 止)라고도 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禪과 본삼매와 증득과 사마타는 동의어이다.

삼매는 넓은 개념의 집중을 뜻한다. 그래서 근접삼매, 본삼매, 그리고 위빳사 나에서만 나타나는 찰나삼매도 삼매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근접삼매나 찰나삼 매는 엄밀히 말하면 禪=증득(등지)=사마타는 아니다.

그리고 본삼매 가운데서도 제4선의 지극히 평온하고 깨끗함을 바탕으로 그 대상을 바꾸면서 무색계4선(공무변처 증득부터 비상비비상처 증득까지)도 차례대로 증득된다. 그래서 선의 경지로는 제4선과 무색계4선은 같은 경지로 취급한다.

열 가지 까시나 중에서 허공의 까시나를 제외하고 9까지 까시나 가운데 어느 하나를 가지고 색계 제4선, 혹은 5종선일 경우 제5선에 들었다가 무색계선에 들고 자하면 그 까시나를 없애고 허공을 대상으로 제1무색계선에 든다. 하여 차례대로 무색계4선에 들 수 있다.

이처럼 색계 제4선에 도달한 경우에만 무색계의 네 가지 선은 성취가 된다. 그래서 XVIII. §1에서 ”마음청정이란 근접삼매를 포함한 여덟 가지 증득(等至)을 뜻한다”라고 마음청정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삼매수행은 다섯 가지 자유자재의 실현으로 귀결된다고도 할 수 있다.

『청정도론』은 말한다.

“다섯 가지 자유자재가 있으니, ① 전향의 자유자재(avajjana-vasi)

② 입정의 자유자재(samapajjana-vasi) ③ 머묾의 자유자재(adhitthana-vasi) ④ 출정의 자유자재(vutthana-vasi) ⑤ 반조의 자유자 재(paccavekkhana-vasi)이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기간만큼 초선으로 전향한다. 전향에 어려움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전향의 자유자재이다. 원하는 곳에서 ㆍㆍㆍ 입정한다. 입정에 어려움이 없다. ㆍㆍㆍ (IV. §131)”

이렇게 해서 삼매를 통해 마음을 임의자재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렇마음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야말로 삼매수행을 마음청정이라 부르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런 다섯 가지 자유자재한 힘을 얻어서 삼매는 제4선을 바탕으로 해서 초월 지, 소위 말하는 오신통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제4선에 들지 않고서는 절대로 신통을 나툴 수 없다.

그래서 제4선을 기초가 되는 禪(padaka-jjhana)이라고 한다. 제4선은 무색계 4禪 과 신통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禪의 경지는 위빳사나의 튼튼한 기

초이다. 이 경우에 초선부터 제4선까지는 역시 위빳사나의 기초가 되는 禪이라고 부른다.

『청정도론』에서는 이러한 계청정과 마음청정을 [통찰지의] 뿌리(mula)고 부르고 있다. 이정도의 이해를 바탕으로 삼아 이제 통잘지의 몸통이 되는 5청정에 들어가 보자.

69) 주해생략

(3) 견청정

본서에서 “정신ㆍ물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견청정(見淸淨, ditthivisuddhi) 이다.(XVIII. §2)”라고 정의하고 있듯이 아비담마에서 분석하고 분류하고 있는 81가지 법(열반제외)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견청정이다.

여기서 본다는 개념은 관념으로 보거나 아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내 안에서 직접 확인하고 체험한다는 의미이다. 81가지를 전부다 봐야하는가. 『청정도론』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의 처해진 상황에 따라 ‘어느 한 가지 방법으로 간략하게 혹은 상세하게(XVIII.5)’ 보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러므로 물질을 파악하는 것이 선명하게 된 자가 정신(= 수상행식)을 파악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면 안된 다.(XVIII. §23)”라는 점이다. 이것은 뒤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청정들에서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견청정에 나타나는 요긴한 말씀 중의 하나이다. 『청정 도론』은 말한다.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들이 있을 때 중생이나 인간이라는 인습적인 표현이 있을 뿐이지 궁극적인 뜻에서 하나하나 세밀히 조사하면 ‘내가 있다’라든가 혹은 ‘나’라고 거머쥐는 토대가 되는 중생이란 것은 없다. 궁극적인 뜻으로볼 때 오직 정산 물질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는 자의 봄 (見, dassana)을 있는 그대로 봄(yathabhuta-dassana, 如實見) 이라 한다.(XVIII.§28)”

이것이 견청정을 닦는 이유이다. 비단 견청정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나머지 청정 들을 통해서도 아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영혼)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청정도론』 은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법을 지금여기 이 순간, 내 안에서 파악하는 것이 견청정이다.

법을 본다는 것은 찰나(순간)를 보는 것이다.(XX. 97이하 참조)

(4)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

“정신ㆍ물질에 대한 조건(paccaya, 緣)을 파악함으로써 삼세에 대한 의심을 극복하여 확립된 지혜를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kankhavitarana-visuddhi, 度 疑淸淨)이라 한다.(XIX. §1)”라는 정의처럼 조건의 파악이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이다.

사실 모든 의심은 조건, 즉 연기법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정말 과거에 존재했는가 아니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는가?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 되었다가 다시 무엇이 되었을까? ㆍㆍㆍ(M.i.8, XIX, §6)”등의 과거ㆍ현재ㆍ매래에 대한 16가지 의심은 조건과 연기법에 대해 미혹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는 정신ㆍ물질의 법들을 여거가지 조건으로 파악하는 방법이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정신의 조건을 공통적인 것과 특별한 것 두 가지로 보고 물질의 조건은 업 등의 네 가지로 본다(XIX. §7)”고 요약하고 있다.

다시 조건의 파악에서는 연기의 순관ㆍ역관과 12가지 방법으로 업을 파악함을 통해서 파악한다. 이렇게 되면 ‘안 것의 통달지(nataparinna)’를 얻는다.

(5)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견청정

5청정 가운데서 실제 수행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청정도론』XX장 에서 설명되고 있는 이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견청정이다. 그러니 조금 상세하게 살펴보자.

“이것은 도고 이것은 도가 아니라고 이와 같이 도와 도 아님을 알고서 확립된 지혜를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知)와 견(見)에 의한 청정이라 한다.(XX. §1)” 그러면 무엇이 그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견청정의 핵심인 법을 봄과,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의 키워드인 조건을 함께 적용시켜, 지금 여기서 물심의 현상을 본격적으로 참구해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도를 아는 것으로는 깔라빠의 명상을 들고 있고 이런 물질의 철저한 파악을 통해서 그 다음에 정신(수상행식=마음과 마음부수들)을 명상한다. 이렇게 하면 드디어 초보적인 생멸에 대한 지혜가 일어나게 된다.

이를 즈음에 광명 등 열 가지 경계가 생기는데 이 경계를 바르게 알아 이들은 도가 아니라고 하면서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 도가 아님에 대한 지견청정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순간과 조건으로 정신ㆍ물질의 법을 파악하는 것은 도에 대한 지견 청정이고 그럴 때 나타나는 10가지 경계를 바른 도가 아니라고 파악하는 것이 도가 아님에 대한 지견청정이다.

여기서 도를 아는 것은 깔라빠의 명상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제대로 위빳 사나를 하기 위해서는 깔라빠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이것을 내 몸속에서 정확하게 찾아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깔라빠의 명상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깔라빠를 내 안에서 정확하게 확인하면 그 즉신에 우리는 이런 깔라빠로 된 물지의 무상ㆍ고ㆍ무 아를 뼈시리게 보게 된다. 그래서 『청정도론』은 말한다.

“물질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그 모든 물질을 무상하다고 구분하는 것이 한 가지 명상 이다. 그 물질을 괴로움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한 가지 명상이다.

무아라고 구분하는 것이 한 가지 명상이다.(XX. §6; §)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 어려운 자들을 위해서 본서는 친절하게 여러 가지 관찰법을 제시하고 있다. 너무 길어진 듯하여 여기서는 이정도로 마친다.

이런 깔라빠를 통한 물질의 명상을 바탕으로 §43이하에서 정신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46이하에서 물질에 대해서 명상하는 7가지 방법을 상술하고 있음 다시 이를 바탕으로 §76이하에서 정신에 대해서 명상하는 7가지 방법을 상술하고 있다.

이렇게 간략한 방법에서부터 아주 구체적인 방법에 이르기까지 정신과 물질을 명상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것을 통해서 도(수행의 바른 길)에 대한 지견을 확립시켜주고 있다. 실로 이것은 아비담마의 정신ㆍ물질(=법)의 분석과 정의를 구체적으로 내안에서 확인해가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아비담마는 위빳사나 수행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추상적인 물질 10가지를 제외한 아비담마의 71가지 법을 내안에서 확인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점점 더 깊이 그리고 더 확고하게 무상ㆍ고ㆍ무아인 제법의 특징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확인하면 자연스레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은 극복되어 모든 취착을 여의고 도와 과와 열반을 확고하게 실현할 튼튼한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 금생에서 도와 과와 열반을 실현하지는 못한다하더라도 적

어도 이런 해탈열반의 확고한 발판을 얻어야 우리가 위대한 대스승의 교설을 만난 참다운 의미와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인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이것은 생사의 두려운 바다를 건너는 튼튼한 배가 되어줄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초보적인 생멸을 관찰하는 지혜(udayabbayanupassana-nana)가 나타 난다고 본서는 말하고 있다.(XX. §104) 역자는 다음에 나타나는 구절을 『청정 도론』의 전체 가운데서 가장 간절한 말씀 중의 하나라고 파악한다.

“그가 무명 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무더기들의 일어남을 보고,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무더기들의 소멸을 보는 것이 조건을 통해 일어나고 사라짐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생기는 특징과 변하는 특징을 보면서 무더기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볼 때 그것은 순간을 통해 일어나고 사라짐을 보는 것이다.

오직 일어나는 순간에 생기는 특징이 있고, 무너지는 순간에 변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XX. §99)” (그래서 『청정도론』은 다시 말한다.) “조건과 순간 을 통해 상세하게 마음에 잡도리한다.(XX. §97)”

이 순간(khana)과 조건(paccaya)은 아비담마의 두 가지 기본 주제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해서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매순간에 집중하여 그들이 무상ㆍ고ㆍ무아라는 것에 사무치고, 매순간 일어나는 이들 오온의 기멸은 모두 조건의 힘(paccaya-satti)에 의해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조건지워져서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파악해야 위빳사나에 바로 들어가는 자라 할 수있다.

인용에서 보듯이 특히 『청정도론』에서는 순간보다 조건을 앞에 두어조건을 파악함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24가지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조건들을 통해서 물심의 현상을 분석하고 분해하지 않는 한 미세한 의심은 결코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번째 청정인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은 바로 24가지 조건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청 정도론』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건과 조건의 힘을 보는 눈을 가지면 왜 부처님께서는 12연기로 대표되는 ‘이것에 조건됨(idappaccayata)’을 그렇게 강조하고 계시며, 왜 『청정도론』 에서는 XVII장에서 그렇게 상세하면서도 복잡하게 그것도 그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해가면서 그리고 조건의 설명은 어렵다고 거듭 하소연하면서 강조하고 있는지, 왜 담마빨라 스님은 자신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서 그렇게 상세하게 연기

의 주석을 하고 있는지, 왜 레디 사야도가 조건에 대한 이해의 대가라 불리는지 확실히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왜 나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물심의 현상이 남에게서는 일어나지 않고 바로 매순간 나의 물심의 현상으로 일어나는가?왜 특정한 심리현상은 두고두고내 마음들의 대상이 되는가 등의 근원적인 문제를 상좌부에서는 24가지 조건을 설정하여 이를 통해서 파악하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이 순간과 조건에 눈뜨지 못하는 한, 순간과 조건에 대한 법안(dhammacakkhu)이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는 한, 위빳사나는 단지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 다. 『청정도론』은 말한다.

“일어나고 사라짐의 관찰이라 부르는 초보적인 위빳사나의 지혜를 얻는다. 이것을 얻었기 때문에 위빳사나를 시작한 자(araddhavipassaka)라는 명칭을 얻는다.(XX. §104)”

『청정도론』에서는 이처럼 순간과 조건에 눈을 떠야 비로소 위빳사나를 시작한 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둘에 눈뜨기 전에는 제법 그럴듯한 기법을 구사하거나 혹은 수승한 경계가 나타난다 해도 그것은 위빳사나가 아니다. 단지 경계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경들이 도가 아님을 밝혀주기 위해서 이제 다음의 열 가지 위빳사나의 경계(오염, 결함, upakkilesa)를 『청정도론』은 드러내보이고 있다.

순간과 조건에 사무치지 못하면 누구든지 이런 경계에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 다. 이제 이를 살펴보자. 도가 아님을 아는 지견청정을 두고 『청정도론』은 이렇게 말한다.

“이 초보적인 위빳사나로써 위빳사나를 시작한 자에게 열 가지 경계(결함, upakkilesa)들이 일어난다.

위빳사나의 경계는 진리를 통찰함에 이른 성스러운 제자에게 그리고 그릇되게 수행 하거나, 명상주제를 놓아버린 게으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바르게 수행하고 지속적으로 명상주제와 함께하는 위빳사나를 시작한 선남자에게 일어난다.

무엇이 그 열 가지 경계들인가?

①광명 ②희열 ③경안 ④결심 ⑤분발 ⑥행복

⑦지혜 ⑧확립 ⑨평온 ⑩욕구이다.

(XX. §105)”

구체적인 것은 해당되는 본문을 살펴보기 바란다. 그러나 그 강조점은 다음에 있다.

그는 이런 광명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면,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M.i.136)’라고 면밀히 관찰한다.(XX. §127)

한편 이런 세 가지 청정을 통해서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렇게 내안에서 이 셋을 철저하게 확인해야 우리는 비로소 고집도의 세 가지 진리를 알았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아직은 세간적인 차원이지만 『청정도 론』은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견의 청정에서는 정신ㆍ물질을 구분함으로써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구분하였다.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에서는 조건을 파악함으로써 일어남의 진리(集諦)를 구분하였다. 이 도와 도아님에 대한 지견청정에서는 바른 도를 강조함으로써 도의 진리 (道諦)를 구분하였다. 이와 같이 세간적인 지혜로 세 가지 진리들을 구분하였다.(XX. §130)”

거듭 강조하거니와 도와 도아님에 대한 지견청정을 통해서 우리는 순간과 조건이 라는 아비담마와 위빳사나의 핵심 주제에 사무쳐야 하겠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위빳사나를 시작한 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역자는 이 도와 도아님에 대한 지견청정이 위빳사나 수행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 하다고 판단하여 상세하게 소견을 피력하다보니 너무 장황해진 느낌이 든다. 이제 간단하게 나머지 두 가지 청정의 정의를 살펴보고 마무리하려 한다.

(6) 도닦음에 대한 지견청정

도닦음의 지견청정은 다음의 9가지로 구성된다.

“이제 여덟 가지 지혜를 통해서 위빳사나는 정점에 이르게 된다.

아홉 번째는 진리에 수순(隨順)하는 지혜이다. 이 [아홉 가지를] 도닦음에 대한 지견청정이라 한다.

① 경계(결함)를 벗어났고 과정에 들어있는 도를 닦는 위빳사나 라고 불리는 생멸을 관찰하는 지혜

② 무너짐을 관찰하는 지혜

③ 공포로 나타나는 지혜

④ 위험을 관찰하는 지혜

⑤ 역겨움을 관찰하는 지혜

⑥ 해탈하고자하는 지혜

⑦ 깊이 숙고함을 관찰하는 지혜

⑧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

– 이들을 여덟 가지 지혜라 한다고 알아야 한다.

아홉 번째인 진리에 수순하는 지혜란 수순(隨順, anuloma)과 동의 어이다.(XXI. §1)”

이 아홉 가지에다 앞의 깔라빠에 대한 명상의 지혜를 넣어서 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라고도 부른다.

이 가운데서 ① 생멸을 관찰하는 지혜와 ② 무너짐을 관찰하는 지혜와 ⑧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가 핵심이다.

한편 생멸을 관찰하는 전반부는 10가지 경계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들을도와 도아 님에 대한 지견청정을 통해서 청정하게 하고 도닦음의 지견에서다시 이를 닦는다.

여기서는 더욱더 오온의 무상ㆍ고ㆍ무아를 철저하게 관찰하고 체득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로 무너짐을 관찰하는 지혜가 위빳사나 지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전환 점이다. 이제 드디어 철옹성처럼 단단하게 조합되어 ‘나’니 ‘내 것’이니 자아니 영혼이니 하면서 굳게 뭉쳐있던 무더기들이 해체되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이다. 이 지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대상을 바꿈(vatthu-sankamana)이란 물질이 무너짐을 본 뒤, 물질이 무너짐을 본 그 마음도 무너짐을 봄으로써 첫 번째 대상으 로부터 다른 대상으로 옮겨감이다.

통찰지의 전이(vivattana)란 일어남을 버리고 소멸에 머묾이다.

전향하는 힘(avajjana-bala)이란 물질이 무너짐을 본 뒤, 무너짐을

대상으로 가졌던 그 마음도 무너지는 것을 보기 위해 즉시에 전향하는 능력이다.(XXI. §20)”

[그래서] “모든 상카라(行)들의 일어남과 머묾과 진행과 표상을 내려놓고 오직 무너짐을 본다. 마치 깨지기 쉬운 도자기가 깨지는 것을 보는 것처럼, 가는 먼지가 흩어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볶인 깨가 터지는 것을 보는 것처럼.(XXI. §27)”

여기서 핵심은 물질의 무너짐을 본 그 마음도 무너짐을 철저하게 관찰하는 것이 다. 이렇게 해서 오온이, 즉 나라는 철옹성 같던 개념이 해체되고 부서지고 무너 지고 무너지는 것이다. 남방 스님들도 이 무너짐의 지혜를 수행의 대전환점으로 강조하고 있다.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는 “이와 같이 공하다고 보고는 세 가지 특상을 제기 하여 상카라들을 파악할 때 공포와 기뻐함을 버린 뒤 상카라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고 중립적이 되고,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취하지 않는다.(XXI. 61)” 라고 설명되고 있다.

중요한 부분이므로 본문을 정독하시기 바라며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서 세 가지 해탈의 관문으로 들어간다. 그것에 대해서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고 한 대목만 인용하면서 마무리 짓는다.

“여기서 무상이라고 천착한 자든, 괴로움이라고 천착한 자든, 무아라고 천착한 자든 출현할 때에 무상으로부터 출현함이 있으면이 세 사람은 믿음이 강하다.

그들은 믿음의 기능(信根)을 얻는다. 표상 없는 해탈로써 해탈한다. 첫 번째 도의 순간에 믿음을따르는 자들이 된다. 일곱 곳에서 믿음으로 해탈한 자들이 된다.

만약 괴로움으로부터 출현함이 있으면 이 세 사람은 편안함(輕安)이 크다. 삼매의 기능(定根)을 얻는다. 원함 없는 해탈로써 해탈한다. 모든 곳에서 체험한 자들이 된다.

무색계 禪을 의지처로한 자는 최상의 과의 경우 양면으로 해탈한 자가 된다.무 아로부터 출현함이 있으면 이 세 사람들은 영지가 크다. 통찰지의 기능(慧根)을 얻는다.

공한 해탈로써 해탈한다. 첫 번째 도의 순간에 법을 따르는 자들이 된다. 여섯 곳의 경우 견해를 얻은 자가 된다. 최상의 과의 경우 통찰지로 해탈한 자가 된다.

(XXI. §89)”

(7) 지견청정

이제 마지막으로 지견청정의 정의를 살펴보자. 『청정도론』은 “예류도,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 이 네 가지 도에 대한 지혜를 지견청정이라 한다.(XXII. §2)” 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예류도부터 아라한과까지의 사쌍팔배(四雙八輩)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 후 이들 네 가지 지견청정의 위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하고 잇는데 특히 37조도품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문을 정독하시기 바라면서 지견청정에 대한 설명은 이정도로 줄인다.

15. 번역의 저본 및 현존하는 번역본들

『청정도론』이 중요한 책인 만큼 『청정도론』 빠알리 원본은 남방불교의 각 나라마다 잘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모두 자기들 고유의 문자로 쓰여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널리 알려진 영국의 PTS본이 국제적으로는 모든 빠알리 연구의 기본 텍스 트로 자리잡고 있다. 『청정도론』도 이미 PTS에서 1920/1년에 리즈 데이빗(CAF Rhys Davids) 여사가 교정본을 출판하여 『청정도론』 연구에 많은 기여를 했다.

PTS본은 스리랑카 필사본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으며 단락 번호가 명기되어있지 않은 단점이 있다.

『청정도론』이 중요한 테스트인 만큼 그 교정본에 대해서도 서양학자들은 일찍 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그 가운데서도 미국출신의 헨리 와런(Henry Warren)이 심혈을 기울여 교정본을 만들다가 미처 출판하지 못한 상태에서 요절하고 인도학자 담마난다 꼬삼비(Dhammanda Kosambi)가 교정을 마무리하여 Harvard Oriental Series(HOS)로 출판한 HOS본70)은 아비담마의 나라라 불리는 미얀마본을 저본으로 해서 여러 다른 필사본들을 참조해서 교정한 것이다.

HOS본은 각장을 다시 단락별로 상세하게 구분하여 편집하였기 때문에 참조하기가 편리하게 되어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제일의 영어 번역으로 통하는 냐나몰리 스님의 영역본이 이것을 저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원문과 영어번역을 대조해서 보기가 용이하다. 그래서 역자도 이 HOS본을 저본으로 번역하였다.

로만 문자로 원문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판본은 인도의 고엔카 위빳사나 센터에서 설립한 VRI(Vipassana Research Institute)에서 내놓은 CD-ROM버전(1997)이다.

이것은 미얀마 육차결집본을 그대로 컴퓨터에 입력한 것이기 때문에 육차결집본

이라 불러도 상관이 없을 정도이다.

이 CD-ROM의 『청정도론』 원문은 거의 오타가 없을 정도로 잘 편집되어있으며 역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Pm이 함께 입력되어있고 단락번호까지 같아서 둘을 함께 참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외 Pm은 스리랑카본과 태국본도 참조하였다. 자세한 것은 참고도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청정도론』 최초의 서양번역은 PTS에서 뻬 마웅 틴(Pe Maung Tin)이 1922년(제 1권), 1928년(제2권), 1931년(제3권)까지 장장 10년에 걸쳐서 번역해낸 것을 들수 있다.

역자는 이 책을 많이 참조하지는 않았지만 애매한 부분은 많이 체크한 셈이다.

전체적으로 냐나몰리 스님의 번역에 비하면 용어 선택 등이 신중하지 못한 것 같고 오역도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그러나 미얀마의 전통적인 해석을 많이 반영하고 있어서 애매한 부분을 해결하는데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한편 서양최초의 상좌부 스님이면서 유명한 학승으로 알려진 독일출신 냐나띨로 까(Nanatiloka) 스님이 1927년에 독일어로 번역출판을 하였다. 완전한 번역을 꼽는다면 냐나띨로까 스님의 이 독역을 서양최초의 번역이라 해야 할 것이다. 스님은 1952년 재판을 찍으면서 뻬 마웅틴 번역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고 한다. 역자가 독일어를 모르는 탓으로 참조하지 않았다.

한편 불기 2500년을 기념하여 스리랑카에서 펴낸 냐나몰리 스님의 영역본 ‘The Path of Purification’은 1956년에 초판 발행하였으며 지금까지 최고의 영역본 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책의 역자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는 당대에서 내노라하는 세분 서양출신 스님들의 노고가 들어있다.

역자인 냐나몰리 스님의 은사스님이면서 독일어로 번역한 냐나띨로까 스님이 1-2 장을 꼼꼼히 교정하셨다. 그러나 이미 연로하신 스님은 병 때문에 더 이상 교정을 보지 못하셨고 그 분의 제자인 역시 독일 출신인 냐나뽀니까 스님이 나머지를 독일어 번역본과 대조하면서 꼼꼼히 체크했다고 한다.

냐나뽀니까 스님은 저 유명한 BPS의 창시자며 30여 년 간을 회장으로 있으면서 BPS를 세계제일의 불교출판 및 학회로 일으킨 장본인이며 많은 번역을 하다가 1992년에 입적하셨다.

이처럼 냐나몰리 스님의 ‘The Path of Purification’은 냐나띨로까(Nanatiloka) ? 냐나뽀니까(Nanaponika) ? 냐나몰리(Nanamoli)로 연결되는 지난세기 서양 출신 고승 세 분들71)의 공이 들어있는 책이며 당시 유명한 학승이었던 스리랑카의 소마(Soma) 테라의 역할도 컸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된 책이라서 그런지 이 책은 지금까지 『청정도론』에 관한한 최고의 번역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자는 이 영역본을 가장 많이 참조하였다.

그리고 이 책은 Pm의 중요한 부분을 주해에서 많이 소개하면서 본문의 이해를 돕고 있다. 단점이라면 뒤로 갈수록 Pm의 영역에 애매하고 잘못된 부분이 제법 나타난다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역자가 비록 본서에서 냐나몰리 스님의 애매하고 잘못된 번역을 다소 지적하고 있기는 하지만 냐나몰리 스님의 전체 번역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냐나몰리 스님의 ‘The Path of Purification’은 역자의 번역에 큰 힘이 되었으며 이제 한글번역판을 내어놓음으로써 스님께 감사의 보답을 조금이라도 하게 된 셈이다.그 외에 역자가 참조한 번역본으로는 중국어 번역본이 있다.

역자를 밝히지 않고 전 3권으로 1971년에 타이페이에서 출간된 것이다. 어려운 빠알리 표현을 어떻게 한문으로 정착시키는지를 알 수 있어서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거의 대부분 뻬 마웅 틴의 영역본과 역시 뻬 마웅 틴의 영역본을 참조해서 옮겼다고 하는 일역본을 참조하면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역자가 일어에 어두워서 일역본은 참조하지 않았다.

역자가 미얀마어를 모르기 때문에 미얀마 본도 직접적으로는 참조할 수 없었고 위에서 밝혔듯이 우 난다말라 사야도를 통해서 수웨즈리 사야도의 번역본을 참조 하였고 애매한 부분은 그 분의 번역본에 의지한 곳이 몇 군데 된다.

전체적으로는 『청정도론』의 『대복주서』(마하띠까)인 담마빨라 스님의 Pm에 크게 의존하였다. 난해한 문장이나 합성어의 분해는 거의 전적으로 Pm에 의지했 다. Pm이 아니었으면 수없이 등장하는 『청정도론』의 합성어를 제대로 분석해낼수 없었을 것이다. 거듭 담마빨라 스님의 위대함에 감탄하였다.

70) 1950년에 출판하였으나 담마난다 꼬삼비의 서문은 1927년에 쓴 것으로 나타난다. 2차대전 등의 영향으로 출판이 지연되었던 것 같다.

71) 이 분들은 상좌부 불교를 서양에 뿌리내리는데 큰 역할을 한 분들이다. 이들의 맥을 잇고 있는 지금 스리랑카 BPS(Buddhist Publication Society)의 회장직을 맡으면서 『상응부』(이미 출간)와 『증지부』의 신역에 힘을 쏟고 계신 비구 보디(Bhikkhu Bodhi)도 서양불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스님이다. 공교롭게도 이 네 분은 국적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유태인 출신들이라 한다.

16. 『청정도론』에 나타나는 주요단어들의 한글번역에 대하여

본서를 옮기면서 정한 기본 방침은 정확한 이해와 한글화이다. 이런 방침은 『길 라잡이』의 역자서문의 §13에서 언급하였다. 여기서는 『청정도론』에 나타나는 중요한 술어나 단어들을 본서에서 어떻게 옮기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1) 기본 교리와 관련된 술어들

『청정도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통찰지의 토양이 되는 초기불교의 법수는 온ㆍ 처ㆍ계ㆍ근ㆍ제ㆍ연(蘊ㆍ處ㆍ界ㆍ根ㆍ諦ㆍ緣)으로 정리가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6가지를 기본 골격으로 한다고 『청정도론』은 이해하고 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5온ㆍ12처ㆍ18계ㆍ22근ㆍ4제ㆍ12연기이다.

물론 이 외에도 번뇌, 폭류, 속박, 장애, 오염원 등의 불선법들의 더미들과 37조 도품 등이 있는데 이는 이는 『길라잡이』 제7장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이를 참조하기 바란다.

온(蘊)으로 한역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khandha는 본서 전체에서 ‘무더기’로 옮기고 있다. 그래서 색온은 ‘물질의 무더기’로 수온은 ‘느낌의 무더기’로 상온은 ‘인식의 무더기’로 행온은 ‘상카라들의 무더기’로 식온은 ‘알음알이의 무더기’로 옮긴다.

여기서 문제는 행온(行蘊)으로 한역한 상카라칸다(sankara-kkhandha)인데 아직 마땅한 역어를 찾지 못해서 그냥 ‘상카라(行)들으 무더기’로 옮겼다. 상카라는 문맥에 따라 다르게 옮겨야 정확한 뜻을 전달하겠는데 일반적으로는 ‘형성된 것’ 으로 12연기에서는 ‘업형성력’으로, 오온에서는 ‘심리작용’으로 이해하면 무난할 듯하다. 공통되는 역어가 없어서 ‘행들의 무더기’로 옮기려다가 그냥 상카라들의 무더기로 옮겼다. 여기에 대해서는 XIV. §131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 다.

느낌과 인식도 각각 감성과 지성과 관련된 단초가 되는 심리현상이므로 감각(感 覺)과 지각(知覺)으로 옮기면 둘이 잘 대비가 되어서 좋을 것도 같지만 여태까지의 번역과 통일을 기하기 위해서 느낌과 인식으로 그대로 두었다.

처(處)로 한역되었던 ayatana는 ‘장소’라고 옮기며 특히 이것의 12처로 알음알 이가 일어나는 대상과 기능의 관계를 드러내는 경우에는 모두 ‘감각장소’, ‘법의 감각장소’이다.

계(界)로 한역한 dhatu는 ‘요소’로 옮겼고 근(根)으로 한역한 indriya는 ‘기 능’으로 옮겼으며 감각과 관련된 육근(六根)은 모두 ‘눈의 감각기능’ 등 ‘감 각기능’으로 옮겼다.

제(諦)로 한역한 sacca는 ‘진리’로 옮겼으며 연기(緣起)로 한역한 paticcasamuppada는 그대로 ‘연기’로 옮겼다. 이와 관련하여 연(緣)으로 한역한 paccaya는 ‘조건’으로 옮겼다.

물론 이들 술어들은 때에 따라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괄호 안에 한문을 병기한 곳이 많다.그리고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로 한역한 kusalaㆍakusalaㆍ abyakata는 모두 유익함ㆍ해로움ㆍ결정할 수 없음으로 옮겼다. kalyana는 ‘좋은’ 으로 옮겼고 guna는 ‘덕으로 punna는 ‘공덕’으로 sucarita는 ‘선행’이나 ‘좋은 행위’로 duccarita는 ‘악행’이나 ‘나쁜 행위’로 옮겼다.

불교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dhamma는 ‘법’으로 한역 된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혹 드물게 문맥에 따라 현상 등으로 옮긴 경우가 있는데 이 대는 반드시 ‘(法)’이라 부기해 넣어서 그것이 담마(dhamma)의 역어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내 안에서 파악하는가 하는 것은 불교의 근본이며 특히 법(dhamma)과 대면함(abhi)을 근본주제로 하는 아비담마의 생명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현상’이니, ‘것’이니, ‘사물’이니 하는 애매한 용어로 dhamma를 옮기는 것은 피하였다.

그리고 viparinnama-dhamma같은 경우에는 ‘변하기 마련인 것’이라든지 ‘변하기 마련이며’라는 등으로 옮기지 않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라고 ‘법’을 살려서 옮겼다. 경에서 부처님께서 dhamma라는 술어를 채용하셨을 때는 그런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지혜(nana)와 관련된 술어 밎 단어들

위의 기본 법수 외에 초기불교와 주석서 문헌군들에서 가장 중요하게 나타나는 술어는 아마 지혜와 관련된 용어들일 것이다.72) 아니 그 성격상 기본법수들보다더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불교는 지혜의 가르침이요 이런 지혜를 통해서 내 안에서 법을 확인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혜라 하면 얼른 반야를 떠올린다. 그 이외의 지혜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니 반야(panna, Sk. prajna)가 아닌 것은 알음알이 놀음이 거나 지식쯤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부처님 가르침을 자칫 단편적으로 이해하는데 그치고 만다.

그러나 초기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다향한 지혜를 말씀하고 계신다. √ jna(to know)에 여러 가지 접두어를 붙여서 부처님께서는 기존의 베다문헌이나 초기 산스끄리뜨 문헌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다양한 전문 술어를 만들어 지혜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고 계신다.

이제 초기경에서부터 나타나며 특히 주석서 중의 주석서인 『청정도론』에서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는 술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염두에 두어야할 점은 √ jna(to know)에서 파생된 술어들은 크게 두 부류

로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하나는 불교의 지혜를 나타내는 술어군이고 다른 하나는 지혜가 아닌 일반적인 앎(알음알이, 인식)에 관계된 술어군이다.

먼저 전자부터 살펴보자 초기경과 『청정도론』에 나타나는 지혜에 속하는 술어 들은 다음과 같다. 냐나(nana, 지혜), 빤냐(panna, 통찰지), 아빈냐(abhhinna, 초월지), 빠린냐(parinna, 통달지), 안냐(anna, 구경지)이다.

① 냐나(nana)는 지혜를 나타내는 가장 보편적인 술어이다. nana는 지혜가 아닌 일반적인 앎이나 지식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전문술어로 사용될 때는 예외 없이 지혜를 뜻한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모두 ‘지혜’로 옮기고 있다.

초기경에서도 예를 들면 둑케 냐나(dukkhe nana, 괴로움에 대한 지혜)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장부 상기띠숫따(D33)와 디숫따라 숫따(D34)에서는 10가지 지혜로 정착이 되었다.

무애해도에서는 73가지 지혜가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술어로 사용되며 본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② 빤냐(panna)는 pra(앞으로)+√ jna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반야로음역하고 있으며 지혜를 나타내는 술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술어이다.

이 빤냐는 냐나와 거의 동의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냐나가 지혜일반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빤냐는 통찰해서 아는 조금 특수한 영역을 나타내는 술어라고 봐야 한다.

이것의 동사 빠자나띠(pajanati)도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본서에서는 모두 ‘통찰지’로 옮겼다.문자적으로 보면 그냥 피상적으로 대상을 분별해서 알거나 (vijanati, 위자나띠, 分知 ⇒ vinnana, 識) 뭉뚱그려 아는 것(sanjanati, 산자 나띠, 合知 ⇒ sanna, 想)을 넘어서서 ‘앞으로 더 나아가서(pra-) 아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반야의 가장 초보적인 의미라 하겠다.

그래서 꽃들이 있구나(산자나띠)라거나 장미, 백합, 라일락이 있구나(위자나띠) 라고 대상을 그냥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저 대상을 변하는 것으로(無常, anicca, Sk. anitya) 알고, 그러기에 필경에는 고(苦, dukkha Sk. duhkha)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며, 그러기에 어떤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無我, anatta, Sk.

anatma) 아는 것을 pajanati라고 한다.

그 외에도 사제(四諦)를 안다든지 특히 긴 념처경(大念處經, D22)에서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pajanati) ???’ 등의 공부짓는 과정에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해탈했으면 해탈했다고 안다 (pajanati)’(위 9, 14번 주해 참조할 것), 그리고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옮기

는 ‘yathabhutam pajanati’ 등으로 초기경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역자는 본서에서는 그래서 ‘통찰지’로 옮기고 있으며 ‘pajanati’는 꿰뚫어 안다’로 옮기고 있다. 이 술어는 빠띠웨다(pativedha, 통찰) ? 빠띠윗자띠 (pativijjati, 통찰하다)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통찰 혹은 꿰뚫음의 의미가 강하다.

③ 아빈냐(abhinna)는 abhi(향하여, 위로, 넘어서)+√ jna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 다. 불교에서 만들어진 술어 가운데서 접두어 ‘abhi’는 대부분 ‘수승한’의 의미가 있고 그래서 한문으로 勝을 써서 번역하고 있다.(예를 들면 Abhidhamma를 勝法으로 옮김) 문자적인 의미로 본다면 ‘위로 초월하여 안다’는 뜻이다.

아빈냐(abhinna)는 일반적으로는 모든 종류의 신통을 나타낸다. 특히 찰아빈냐 (chalabhinna, 여섯 가지 초월지)는 육신통(六神通)으로 한역된 술어이다. 그러나 역자는 일반적으로 신통으로 옮기고 있는 ‘iddhi’ 와 구분 짓기 위해서 아빈냐를 ‘초월지’로 옮기고, 잇디(iddhi)는 ‘신통’으로 옮긴다.『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는 ‘abhinna’를 ‘신통지’로 옮겼다.

그러나 아빈냐는 신통만을 뜻지는 않는다. 본서 III. §15에서 “처음 禪을 닦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禪의 근접삼매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되는 삼매의 수행을 도닦음(patipada)이라 한다. 근삼매부터 시작하여 본삼매까지 계속되는 통찰지를 초월지(abhinna)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것은 본삼매에서 생기는 지혜이므로 초월적이다. 서양의 ‘transcendental’과도 통하는 의미이다. 삼매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초월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신통이란 것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초월지’라 옮겼다. 물론 이 초월 지에는 여러 가지 신통들도 다 포함된다.

72) 여기에 대해서는 『금강경 역해』136-40을 많이 참조하였다.

④ 본서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술어에는 빠린냐(parinna)가 있다. 이것은pari(둘 레에, 원만히)+√ jna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문자적인 의미대로 무엇을 ‘완 전히, 철저히, 원만히 안다’는 뜻이다.

경에서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는 말(sabbupadana-parinna-vada)’이라는 등으로 나타난다. 반야를 통해서 성취되는 지혜이다.

본서에서는 ‘통달지’로 옮기고 있다. 중부의 M43에 “빤냐(통찰지)는 무엇을 목적으로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빤냐(통찰지)는 무엇을 목적으로 합니 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빤냐(통찰지)는 아빈냐(초월지)를 목적으로 하고 빠

린냐(통달지)를 목적으로 하고 빠하나(버림)를 목적으로 합니다.”라고 나타난다.

이처럼 아빈냐(초얼지)와 빠린냐(통달지)는 빤냐(통찰지)가 있어야 개발되는 지혜라 할 수 있다.

본서 XX. §3에는 다음의 세 가지 통달지를 설명하고 있다.

“안 것의 통달지(nataparinna, 知遍知), 조사의 통달지(tiranaparinna, 審察遍知), 버림의 통달지(pahanaparinna, 斷遍知)가 있다.

물질은 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느낌은 느껴진 특징을 가진다고 이와 같이 그 법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조사함으로써 생기는 통찰지가 안것의 통달지이다.

물질은 무상하고 느낌은 무상하다는 방법으로 그 법들에게서 보편적인 특징을 제기한 뒤 생기는 보편적인 특징을 대상으로 가지는 위빳사나의 통찰지가 조사의 통달지이다.

이런 법들에서 영원하다는 인식 등을 버림으로써 생긴 특징을 대상으로 가진 위빳사나의 통찰지가 버림의 통찰지이다.”

그리고 이것의 동사 빠리자나띠(parijanati)는 ‘철저히 안다’로 옮기고 있다.

⑤ 안냐(anna)는 a(이리로, 넘어서)+√ jna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경에서는 모든 번뇌를 멸한 구경의 경지를 나타내는 술어로 나타난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구경지’ 혹은 ‘구경의 지혜’로 옮겼다. 즉 “생은 멸했 다. 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바를 모두 다했다. 이제 이 이후에 다신 존재하지 않는다고 꿰뚫어 안다.”는 것을 경에서는 안냐(anna)라고 부르고 있다.

그 외에도 동사 아자나띠(ajanati)는 제자들이 세존의 법문을 ‘원숙하게 완전히다 안다’고 할 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탐욕은 마음의 오염원이다. 증오는 마음의 오염원이다. 미혹은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오랜 세월을 이런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것을] 저는 완전히 알고 있습니 다.(M14/i.91)”

⑥ 이러한 특별한 영역의 지혜에는 포함시킬 수 없지만 주석서에서 지혜로 취급 하고 있는 √ jna에서 파생된 중요한 술어로 삼빠자나(sampanna)를 들 수 있다.

먼저 이것의 동사 삼빠자나띠(sampajanati)부터 살펴보자.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빠자나띠(pajanati)에다 다시 접두어 sam(함께)을 더 첨가

한 것이다. 이것의 중성 명사형인 삼빠자나(sampajana)는 sati(念)와 함께 쓰여서 사띠삼빠자나(sati-sampajana)로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正念正知로 번역하고 있듯이 마음챙김의 부에서 중요한 술어로 쓰이고 있다.

본서에서는 ‘분명하게 알아차림’으로 옮겼다. 특히 「긴 념처경」에 “비구는 나아갈 때에도 물러날 때에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智) 행한다 (sampajana-kari).”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율장에서 쓰여서 예를 들면 삼빠자나 무사와다(sampajana-musa-vada)라 하면 잘 알고 있으면서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삼빠자나띠는 충분히 잘 아는 것, 고의성이 짙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을 뜻한다 하겠다.

이를 통해서 「긴 념처경」에 나타나는 알아차림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 다.이처럼 「긴 념처경」 등에 나타나는 삼빠자나(sampajana, 분명하게 알아차림) 를 다시 주석서에서는 여성형 추상명사인 삼빠잔냐(sampajanna)로 표기하여 위의 여러 추상명사와 동일한 계열로 표기하며 이를 지혜(nana)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이를 ‘분명한 지혜’로 옮긴다.

이와 같이 초기경에서는 여러 가지로 지혜를 나타내고 있다. 이제 √ jna가 지혜가 아닌 일반적인 앎의 뜻으로 나타나는 술어들을 살펴보자.

⑦ 먼저 인식으로 옮기고 있는 산냐(sanna)는 sam(함께)+√ jna에서 파생된 여성 명사이다.

이것의 동사 산자나띠(sanianati)는 일반적으로 ‘인식하다’는 의미인데 예를 들면 여러 다른 종류의 꽃들을 ‘꽃’이라고 합쳐서(sam) 인식하는 것, 즉 표상 (表象)하고 지각하는 것을 뜻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식에는 소위 말하는 계열화작업이 들어가는데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A1, A2, A3 등을 보고 우선 일차적으로 A라고 인식하고 지각하는 작용을 생각하면 접두어 sam(함께, totether)이 쓰인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경과 주석서에서는 단순한 지각이나 표상작용만이 아닌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니밋따(nimitta, 표상)나 빤냣띠(pannatti, 개념) 등과도 또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⑧ 알음알이로 옮기는 윈냐나(vinnana)는 vi(분리해서)+√ jna에서 파생된중성명 사이다.

중성명사형 어미 ‘-na’는 모두 진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앞에서 나온 여러 단어들이 여성형 추상명사인데 반해서 윈냐나는 진행을 나타내는 중성명 사형 어미 ‘-na’를 붙여서 만든 단어라는 것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동사형 위자나띠(vijanati)는 문자 그대로 ‘분별해서 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한 곳에 놓인 여러 가지 꽃들을 보고 장미, 백합, 카네이션, 튤립 등으로 분리해서(vi-) 아는 것을 말한다 하겠다. 물론 장미니 백합이니 하고 인식하는것 자체는 산냐이지만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윈냐나(識)는 서양학자들이 ‘mere awareness’라고 이해하고 있듯이 개념작용 (nation, 산냐)이 생기기 이전의 단계로 매찰나 대상을 접하는 순간순간 생기는 (생겼다가는 멸하고 또 다시 다른 조건에 의해서 생겼다가는 멸하고를 반복하는) 그런 알음알이 작용(consciousness)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주석서에서는 이것은 항상 찟따(citta, 마음, 心)와 동의어로 간주되며 감각기능과 감각대상과 더불어 찰나생ㆍ찰나멸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동사로서 경에 많이 나타나는 산자나띠(sanjanati)와 위자나띠(vijanati)를 굳이 분별해서 말해본다면 어떤 대상들을 보고 저게 꽃이라고 인식하면 그것은 산자나 띠라 할 수 있겠고, 저것은 장미꽃, 저것은 무슨 꽃이라고 분별해서 안다면 그것은 위자나띠라고 할 수 있겠다. 산자나띠와 위자나띠는 이처럼 서로 반대되는 기능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산자나띠와 위자나띠 두 가지는 우리가 보통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표현한 말이라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본서 XIV. §§3-6에서 붓다고사 스님은 ‘sanjanati ? vijanati ? pajanati’라는 의미를 중심으로 ‘sanna ? vinnana ? panna’의 의미를 비유와 함께 설명하고 있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⑨ 그리고 아비담마에서 아주 중요하게 등장하는 빤냣띠(pannatti, 개념)도 이어근에서 파생된 술어이다.

이것은 빠자나띠(pajanati)의 사역형태인 빤냐뻬띠(pannapeti)에서 파생된 명사로 ‘알게 하다, 선언하다, 지적하다, 인정하다, 정의 하다’ 등의 뜻에서 ‘알게 하는 것 = 개념, 정의, 이름’ 등을 뜻하며 아비담마에서는 82가지 법을 제외한 우리가 개념 짓고 이름 붙여 아는 모든 것을 빤냐띠라고 한다.

마음과 마음부수들과 대상의 역동적인 관계를 통해서 산출된 것으로써 예를 들면 ‘자아, 인간, 컴퓨터, 책상, 산하대지, 꽃’ 등 우리가 이름붙여 아는 수많은 것들을 개념(빤냐띠)들이라 이해하면 된다.

⑩ 이와 유사한 술어로 윈냣띠(vinnatti)가 있다. 같은 방법으로 이것은 위자나 띠(vijanati)의 사역동사인 윈냐뻬띠(vinnapeti)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아비담마 에서는 까야 윈냣띠(kaya-vinnatti)와 와찌 윈냣띠(vaci-vinnatti)로 정착되었다.

중국에서는 각각 身表와 言表로 옮겼으며 역자는 ‘몸의 암시’와 ‘말의 암시’

로 옮겼다. 이는 각각 몸의 업(身表)과 말의 업(口業)과 연결된 중요한 술어이다.

⑪ 그리고 본서에서는 아눈냐(anunna)도 제법 나타나는데 주로 I장에서 부처님께서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하신 네 가지 필수품과 관련된 문맥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허용, 허락’ 등으로 옮겼다.

⑫ 그 외에 빠띤냐(patina)도 나타나는데 이는 ‘명제, 맹세, 약속, 서원 등으로 문맥에 따라 옮겼다.

(3) 견해(ditthi)와 관련된 술어 및 기능

초기경에서 자나띠(janati, 알다)라는 동사와 밀접한 관계로 나타나는 동사가 빳사띠(passati, 보다)다.

이런 자나띠-빳사띠(janati-passati)의 구문은 수행과 관련해서 아주 많이 나타 나며 이 경우에는 예외 없이 항상 ‘자나띠-빳사띠(안다-본다)의 순서로 나타나고 이것이 명사화되면 냐나닷사나(nana-dassana, 지와 견, 지견)로 정착이 되며 이것은 본서의 핵심인 다섯 가지 청정의 마지막 세 가지를 나타내는 술어로 등장 하고 있다.

우리 상식으로는 먼저 보고(빳사띠, passati) 그 다음에 아는(자나띠, janati) 것이 순서일 것 같지만 경에서는 반드시 알고(janati) 본다(passati)는 순서로 나타남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경우 빳사띠(passati, 보다)와 닷사나(dassana, 견해, 확정적 견해)73)는 모두 지혜로 통찰한 것을 직접 [눈으로]74) 확인한다는 의미가 아주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알고 보는 구문으로 정착이 되고 지와 견으로 또 지견으로 정착이 된 것이다.

이것은 초기불교를 이해하는 생명줄과도 같은 술어이다. 그래서 5청정에서도 지견이라는 술어가 그렇게 강조되어 등장하고 있다.

빳사띠(passati)에다 접두어 vi(분리해서)를 붙인 위빳사띠(vipassati)도 경에 나타나며 이것의 명사형인 위빳사나(vipassana)는 우리가 잘 아는 술어이다.

위빳사나는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나의 다섯 무더기 안에서 [무상ㆍ고ㆍ무아인 법의 특징을] 뼈시리게 직접 체험, 확인, 체득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역자는 위빳사나의 의미를 살려 ‘위빳사나 한다’로 옮겼다.

「긴 념처경」 등 수행에 관계되는 경에서 나타나는 아누빳사띠(anupassati, 관찰하다, 隨觀하다)도 몸 느낌 마음 법을 바로 지금 여기서 직접 알고 체험한다는 뜻이다. 역자는 ‘관찰하다’로 옮기고 있다.

사마누빳사띠(samanupassati)라는 또 다른 술어가 있다. 더 면밀히 더 세밀히 관찰한다는 의미에서 역자는 ‘면밀하게 관찰하다’로 옮겼다.

한편 빳사띠(passati)의 명사로는 경과 주석서에 두 가지로 나타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딧티(ditthi)와 닷사나(dassana)이다.

경에서는 닷사나(dassana)라는 단어는 냐나-닷사나(nana-dassana)의 구문 외에는 그렇게 많이 나타나지 않고 주석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딧티(ditthi)와 닷사 나(dassana)의 차이는 무엇일까?

딧티(ditthi)는 단독으로 쓰이면 거의 대부분 잘못된 견해(邪見)를 나타낸다. 물론 여기에 삼마(samma)라는 접두어가 붙으면 삼마딧티(samma-ditthi) 즉 바른 견해(正見)라는 의미가 된다.

특히 가따(gata, 간)라는 어미가 첨가되어 딧티가따(ditthi-gata)로 나타날 경우 ‘사견에 빠진’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닷사나(dassana)는 불교에서는 대부분 ‘바른 견해, 확정된 견해, 분명한 견해’를 뜻하고 다른 외도를 지칭하면서 사용될 경우는 그들의 확정된 사상이나 철학적 견해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현대 인도에서 닷사나의 산스끄리뜨인 다르샤냐(darsana)는 철학 (philosophy)으로 옮기고 있다. 자이나에서는 그들의 제일 신조인 ‘바른 다르샤 나(sammyak-darsana, Pali, samma-dassana)’를 ‘바른 믿음(right belief)’으로 옮기기도 한다.

이와 같이 닷사나는 단순한 봄을 뜻는 것이 아니라 철학, 신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그래서 본서에서는 dassana를 문맥에 따라 ‘봄, 확고한 견해’ 등으로 옮기지만 봄은 단순한 봄이 아니라 바른 믿음, 확고한 견해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냐나닷사나는 ‘지견(知見)’ 혹은 ‘지와 견’으로 옮긴다.

우선 지혜와 견해에 대한 술어를 이만큼이라도 이해해두자. 초기경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리라 확신하며 초기불교 수행을 접하는 우리의 태도도 더 깊어질 것이 다.

한편 ‘안다’는 동사로 √ vid(to know)를 빼놓을 수 없는데 불교에서는 웨다나 (vedana, 느낌, 受)가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으며 무명으로 옮기는 아윗자(avijja) 와 영지로 옮긴 윗자(vijja, 明)도 이것에서 파생되었다.

또한 기술이나 지식으로 옮기는 vijja도 여기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처럼 √ vid 는 안다기보다는 직접 ‘경험한다, 체험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하겠다. 그러나 √ vid에서 파생된 단어들은 √ jna의 경우처럼 전체적인 통일 속에서 특별한 전문적인 술어로 정착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겠다.

73) 왜 동사는 passati인데 명사는 passana가 되지 않고 dassana가 되는 가라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동사 passati의 어근은 √ drs(to see)이기 때문에 명사는 dassana가 된다. 이런 불규칙은 산스끄리 뜨에서 아주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나 접두어가 붙을 때는 명사형은 passana가 되어 vipassana(위빳사나) 등으로 된다.

74) 여기서 눈으로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경에서는 법을 꿰뚫어 보는 눈을 법의 눈(dhamma-cakkhu, 法眼)이라 표현하고 통찰지의 눈(panna-cakkhu, 慧眼)이라는 표현도 나타난다. 그리고 닛데사에서는 다섯 가지 눈이 언급되고 있으며 금강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어떤 눈이든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체험하고 체득한다는 의미가 passati(본다) 와 dassana(見)에 강하게 들어있다.

(4) 설명과 관련된 술어 및 단어들

그 다음에 살펴봐야 할 술어나 단어들은 설명에 관한 것들이다. 본서에서 저자는 다양한 단어들을 채용하여 성전의 문구들을 풀이하고 있다. 그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본다.

먼저 웃데사(uddesa)와 닛데사(niddesa)를 들 수 있다. 이 두 술어는 주석서에 자주 등장한다. ‘uddesa’는 요점이나 개요를 나타내고 ‘niddesa’는 세부적인 설명이나 해설을 뜻한다.

예를 들면 경이나 주석서에서 먼저 그 경의 요점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은 웃데사 이고 그 후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해 나가는 것은 닛데사이다.

역자는 전자를 ‘개요’로 후자를 ‘해설’로 옮기고 있다. 이들은 uddisati와 niddisati 등의 동사로도 나타난다. 동사의 경우는 크게 세분해서 옮기지 않고 ‘가르치다’라는 일반 동사에 준해서 문맥에 어울리게 옮겼다.

다음으로 까타(katha)와 완나나(vannana)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주석이나 설명과 관련된 술어인데 둘 다 큰 구별을 하지 않고 ‘설명’이나 ‘주석’ 등으로 옮기고 있다.

이 두 술어 가운데 특히 까타(katha)는 윗타라(vitthara)와 상케빠(sankhepa)라는 단어와 함께 쓰여 각각 ‘상세한 주석’과 ‘간략한 주석’ 혹은 설명으로 옮기고 있다.

빠까사나(pakasana)와 동사 빠까사티(pakasati)도 자주 나타나는데 분명하게 드러내다라는 의미인 ‘분명하게 설명하다, 분명하게 드러내다’로 옮겼다.

그리고 중요한 술어로 위닛차야나야(vinicchayanaya, 판별하는 방법)가 있는데

이것은 이미 앞에서 밝혔듯이 각 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를 어떤 특정한 측면에서 상세하게 기술할 때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설명의 술어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와와타나(vavathana)도 많이 나타나는 술어인데 여기서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는 특히 몸의 32가지 부위나 사대 등에서 정확하게 그 부위를 구분하고 구별하고 확실하게 아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로 쓰인다. 그래서 일단 ‘구분’으로 옮겼는데 그 뜻을 있는 그대로 다 살려내지 못한 것 같다. 단순한 구분의 의미와 함께 이를 직접 내 안에서 찾아내고 정확하게 확인한다는 실수행과 연결된 의미가 강하다.

그리고 ‘말하다 설하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동사형들이 무수히 나타난다. 그들은 동사 왓띠(vatti), 와짜띠(vaccati)와 관련된 동사형들인데 다음을 들 수 있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태가 웃따(vutta, 과거분사형)인데 부처님이나 옛 스님들의 말씀을 인용했을 경우에는 ‘설하셨다’로 저자의 앞의 설명일 경우에는 ‘설 했다’, 설명했다’ 등을 옮겼다.

그 다음으로 아하(aha, 대과거형)를 들 수 있는데 대부분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 쓰이며 물론 옛스승들의 견해를 인용할 때 가끔 쓰인다. 이 경우에는 모두 ‘말씀하셨다’로 옮겼다.

대여섯 번 정도 아보짜(avocca, 아오리스트 과거형)가 나타나는데 아오리스트가 가까운 과거를 나타낸다는 문법적인 설명과는 달리 이 단어는 예외 없이 부처의 일화나 말씀의 인용에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존칭의 의미가강하다. 물론 ‘말하 셨다’로 옮겼다.명사형인 와짜나(vaccna)도 무수히 나타나며 문맥에 따라 ‘씀, 말, 설명’ 등으로 옮겼다.

(5) 증득과 관련된 술어 및 단어들

이쯤에서 『청정도론』에 많이 나타나는 증득에 관계된 단어들을 살펴보자. 먼저 본서에서 전문술어로 정착한 ‘증득’이라는 술어는 중국에서 등지(等至)75)로 옮긴 본삼매의 증득을 뜻하는 사마빳띠(samapatti)이다.

이 술어는 sam+a+√ pad(to go)에서 파생된 여성명사로써 사선-사처-상수멸(四禪 -四處-想受滅)의 본삼매에만 적용되는 전문술어이다.

증득이라는 술어가 다분히 일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다른 합당한 단어를 찾고 있지만 충분히 그 뜻을 살릴 역어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여 증득이라고 옮긴 다.

문자 그대로 옮긴 한역 등지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든 술어일것 같다. 동사 사마빳자띠(samapajjati)도 증득하다로 옮겼다.같은 동사 √ pad

에서 파생된 단어로 우빠삼빠데띠/우빠삼빠다(upasampadeti/upasampada)를 들 수잇는데 명사는 ‘구족’으로 동사는 ‘구족하다’로 옮기고 잇다. 우빠삼빠다 (upasampada)가 계와 관련되어 쓰이면 구족계로 옮긴다.

얻음, 성취, 증득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어근 √ gam과 √ i에서 파생된 단어들로는 adhigacchati/adhigama(체 득하다), apeti/appana(얻다), sameti(성취하다)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문맥에 따라 ‘얻다, 성취하다’ 등으로 옮겼다.

그리고 또 많이 나타나는 √ ap(to get)에서 파생된 동사 papunati도 뻴 수 없다.

이 단어도 ‘얻다’를 중심으로 문맥에 맞추어 옮겼다.

한편 √ sadh(to accomplish)에서 파생된 sadheti, siddheti와 명사 siddhi 등은 ‘성취하다, 성취, 완성’ 등으로 옮겼다. 얻다를 뜻하는 동사 √ labh에서 파생된 단어도 많은데 labheti는 ‘얻다’로옮겼고 명사 labha는 주로 세속적인 이익 이나 성취를 뜻하므로 ‘이득’으로 옮겼다.

이와 관련하여 anisamsa는 계ㆍ정ㆍ혜의 이익에 관계된 문맥에서 나타나므로 ‘이익’으로 옮겼고 attha가 이런 의미로 쓰일 때도 ‘이익’ 등으로 옮겼다.

hita는 ‘이로움’으로 옮겼다.

75) samapatti의 한문 역어로는 等持 보다는 等至가 더 많이 쓰였으며 실제로 等至가 sam+a+√ pad(to go)의 원의미에 잘 부합한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等持대신에 等至로 한문을 표기한다.

(6) 소멸과 관련된 술어 및 단어들

한편 소멸과 관련된 비슷한 단어들 가운데 많이 나타나는 kaya는 ‘부서짐’으로 vaya는 ‘사라짐’으로 bhanga는 ‘무너짐’으로 vinasa는 ‘파괴, 없어짐’등으로 nirodha는 ‘소멸’로 viraga는 ‘탐욕의 빛바램’으로 옮기며 그 외의 단어 들은 문맥에 맞게 옮겼으며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는다.

열반과 적정과 관련된 단어인 upasama는 ‘고요함’으로 santi는 ‘고요’ 혹은 문맥에 따라 ‘평화’로 nibbana는 ‘열반’으로 khema는 ‘안온’으로 yogakkhema는 ‘유가안은’으로 옮겼으며 다른 단어들은 문맥에 따라 옮겼고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다.

(7) 수행과 관련된 술어 및 단어들

빠알리 술어들을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들이 수행과 실천에 관계된 것들이다. 먼저 일반적으로 수행이라 옮기는 단어로 bhavana를 빼놓을 수 없다.

√ bhu(to become)에서 파생되었으며 ‘되어감, [좋은 방향으로] 되게 함’이라는 일차적인 의미에서 광의의 수행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역자는 문맥에 따라서 ‘수행’이나 ‘닦음’으로 옮긴다.그 다음에 언급하고 싶은 단어가 patipatti인데 이 단어는 prati(對하여)+ √ pad(to go)에서 파생된 여성형 추상명사다.

‘[길을] 대하여 밟고 가다’는 원의미에서 역자는 ‘도닦음’으로 옮긴다. 중국 에서는 行道로 옮겼다. 실천적인 의미가 강하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 음(道聖諦)으로 나타나며 본서에도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이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도(道)로 옮기는 magga이다. 일반 적인 도닦음, 수행이라는 의미에서는 이 두 단어는 거의 동의어라 해도 무방하지만 전문술어로 쓰일 때는 다르다.

엄밀히 구분할 때는 patipatti(도닦음)는 출세간의 도와 과에 이르기 이전까지의 수행을 뜻하고 magga(도)는 출세간도까지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수행에 적용되는 술어다.

이제 일반적으로 실천에 관계된 단어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sikkhati는 말그대로 ‘공부하다’로 옮겼고 bahutikara는 말 그대로 ‘많이 짓는다’인데 역자는 ‘많이 [공부]짓는다’로 옮겨 실수행의 의미를 살렸다.

punappuna도 수행과 관련해서 많이 나타나는데 ‘거듭거듭’으로 옮겼다.

asevana는 ‘반복함’으로 manasikara는 ‘마음에 잡도리함’으로 옮겼다.

중국에서 여리작의(如理作意)로 옮긴 yoniso manasikara도 수행에서 빼놓을 수없는 단어인데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함’으로 옮겼다.

수행과 실천과 관련지어 언급해야 할 단어 가운데 pariyatti는 교리적인 학습을 뜻하므로 ‘교학’이나 ‘배움’으로 옮겼고 pativedha는 ‘통찰’로 옮겼다.

pariyatti(교학)-patipatti(도닦음)-pativedha(통찰)를 남방에서는 불교수행의세 과정으로 설명한다. nibbedha도 통찰과 관련된 문맥에서 나타나는데 이는‘꿰 뚫음’으로 옮겼다.

전혀 다른 문맥에서 나타나지만 한글로 옮기면서 구분하지 않을 수 없는 단어가 sasana(명령)이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 부처님 교단, 교법으로 옮길 수 있는데 앞의 pariyatti(교햑)와 구분하기 위해서 ‘교단’으로 옮겼다. sasana는 요즘 인도에서는 법원을 뜻한다. 그만큼 강한 의미가 들어있는 술어이다.

그리고 또 언급해야 할 일군의 술어들이 있다. abhinivesa는 긍정적인 의미일 때는 ‘천착’으로 옮겼고 부정적인 의미일 때는 ‘독단적 신조’라고 옮겼다. 떤

사안에 깊이 들어가서 그것을 음미하고 파고 매달리고 하는 의미이다.

abhisamaya도 몰입 등을 뜻하는데 문맥상 ‘관통’으로 통일해서 옮겼다.

이와 관련해서 언급해야 할 일군의 술어들이 또 있다. pariggaha는 말 그대로 [핵심을] 움켜쥔다는 의미에서 ‘파악(把握)’으로 옮겼는데 실제로 철저하게 음미하고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gaha/gahana도 공부하는 문맥에서 사용되면 이해하다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이해’ 등으로 옮겼다.paccavekkhana는 많이 등장하는 전문술어인데 ‘반조’ 로 옮겼다. 특히 삼매에 들었다가 나올 때는 반드시 조의 지혜가 일어난다.

그리고 공부와 관련된 일련의 술어들로는 upaparikkha(면밀히 조사하다), pariyesana(탐구), patisancikkhati(숙고하다), patisankha(숙고), sallakkhati(주시하다)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구분지어 설명해야 할 단어 들이 많지만 이 정도에서 마치고자 한다.

17. 맺는 말

이상으로 『 청정도론 』 에 관해서 개략적으로 살폅았다. 마무리 지으면서밝히고 싶은 점은 역자는 무비판적으로 상좌부를 옹호하거나 『청정도론』제일주의를 지향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역자는 부처님 원음을 대하면서 그 의미를 두고 많은 고뇌를 하게 되었고 내 깜냥돼로 금구성언을 이해하여 그것을 옳다고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두려웠 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빠알리 삼장에 대한 상좌부의 전통적 이해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2600여년을 끊이지 않고 전승해온 그들의 견해를 먼저 섭렵하지 않고서는 부처님 원음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는 확신이 점점 자리잡았으며 그러다보니 주석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청정도론』에 몰두하게 되었다.

상좌부가 전승해온 법체계는 역자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엄밀한 것이며 특히 그것을 위빳사나 수행이라는 실참실구에 철저하게 적용시키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의 체계는 정말 출가자의 일대사를 다해 마칠 큰 체계라는 것을 나름대로 보았다. 이제 그것을, 바른 도를 실천하는 여러 수행자들과 나누어 가지고자하여 일천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해 번역작업에 임했다.

그래서 해제는 가급적이면 상좌부의 입장에 서서 그리고 역자가 고뇌했던 문제들을 접목시켜 쓰려고 하였다.

역자는 본서가 우리 수행승들의 필독서가 되기를 희망한다. 『 청정도론 』 하며,

이것을 내안에서 직접 확인해 들어갈 때 일대사가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초기경에서 부처님이 제시하신 바른 수행(정정진)은 선법ㆍ불선법의 판단, 즉 법의 간택(擇法)에서붙 출발한다.

이런 의미에서 법을 그 생명으로 하고 있으며 7청정을 통해서 도닦음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 『 청정도론 』 은 우리나라 수행자들에게도 수행의 지침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며 도닦음을 삶의 최고 가치로 삶고 열심히 정진하시는 분들께 도움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역자가 수행이 부족하고 언설이 모자라서 제대로 상좌부불교와 『청정도 론』을 다 설명해내지 못하였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잘못된 부분은 독자들의 가차없는 질정을 바란다.

(대림스님)

글출처: 허공처럼 살자(여허공님)

진흙속의연꽃 편집 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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