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30

나는 왜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봉고차를.. 동현(東鉉)만필(漫筆)

나는 왜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봉고차를.. : 네이버블로그






나는 왜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봉고차를 대절해 화장터로 직행했는가

이북도민작가 이동현2020. 8. 2. 

“얘, 난 이담에 성당 요양원에 보내주거라.”


옛날에 어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대한성공회 정동 성당을 평생 섬겼는데, 여기서 운영하는 교외 요양원이 있다는 것이었다(대한성공회는 개신교임에도 교회를 성당이라고 불렀다). 당시 젊은 나는 어머니 말씀을 한쪽 귀로 흘려들었다. 회사 일에 바빠 어머니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노경에 접어들자, 당신의 과거 부탁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는 하숙을 치면서 할머니를 모셔와 10년간 돌아가실 때까지 섬겼다. 그 후에 어머니는 과로로 인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초인적인 노력으로 재활했다. 어머니는 바로 외할머니를 모셔와 돌아가실 때까지 10년간 봉양했다. 그랬으면서 자신을 한없이 낮췄다. ‘요양원에 보내 달라’는 소박한 부탁으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것이다. 어머니 당부 말씀에는 당신의 생애 진리가 요약되어 있었다. 하마터면 나는 어머니의 심법(心法)을 허투루 지나칠 뻔하였다.

​따라서 내가 어머니 말씀을 거역하고 당신을 요양원에 보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어머니는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할머니를 모셔와 돌아가실 때까지 봉양했다. 그런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기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 또한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의 섬김을 받는 일이었다. 어머니의 생애가 헛되지 않았음은 당신의 자식에 의해서만 입증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성당을 향해 걸어가시는 어머니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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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둘러 운전을 배웠다. 그때부터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어머니를 성당에 모시고 다녔다. 초기에 나는 어머니 예배시간 동안에 성당 근처 사우나탕에 가 있었다. 예배가 끝나면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다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그랬던 것이 나중에는 성당 안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어머니 거동이 더 불편해져 성당 안에서 예배를 도와드려야 했다.

​하지만 만 3년이 지나고 나서, 일요일에 어머니를 더 이상 성당으로 모시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 용태가 예배를 보기에 무리가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종교단체에서 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 효자의 열심을 본받아야지. 효자가 어머니 모시듯 전도를 하면 못할 게 뭐 있어.”

“부모님을 위한 훌륭한 요양 시설을 건립해야 해. 그래야 자식들이 신앙생활에만 전념할 수 있겠지.”

피라미드 다단계 영업사원 같은 종교인, 토건(土建)업자 마인드를 가진 신앙인이 다수였다. 효의 '무산자(無産者,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내 어머니의 유산을 증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이 세상 어디에든 계신다고 믿는 것이 종교라는 것쯤은 안다. 효자가 보기에 하나님과 부처님이 거하실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은 노쇠한 어머니 곁이다. 그런데도 삼라만상 중에서 하필이면 살아 있는 어머니만 콕 빼놓은 채로, 천국과 불국토에 당도하기를 전력으로 기도한다니 믿기 어려웠다. 
등잔 밑이 어두운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안 보인다고 다른 사람도 안 보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어하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요기가 바로 세상의 구멍이구나! "

어머니가 별세했을 때, 나는 당신이 섬겼던 교회의 장례의식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에 10만 원짜리 봉고차를 대절해 화장터로 향했다. 
불효자들의 손에 의해 통속적인 장례 제의 속에 어머니가 잊혀질 바에야, 차라리 ‘영구결번’이 되는 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상의 구멍이 알려져야 내 심청이 어머니를 증거할 수 있지 않겠는가!

https://blog.naver.com/donghlee1001/222041124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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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에세이) 적중(的中)에 대하여-종교적 이단에 빠지지 않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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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북도민작가 이동현 ・ 2020. 3. 7.

2013년3월7일, 오늘의 어머니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확산돼 전례없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세계적인 방역체계시스템을 갖춘 우리나라에서 예기치 않은 변수까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단으로 간주되는 기독교단체의 대구 교회에서 감염자가 확산되어 뜻밖의 양상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육십 인생에 이같은 전염병이 창궐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기독교 이단교파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종교적 이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일까? 기독교 성경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이단에 빠질 우려가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이든 불경이든 종교 경전을 접할 때는 특정 대목에서 막히기 쉽다. 종교적 신념체계는 일상의 논리를 초월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앙인이 그 대목에서 종교적 의문을 풀지 못하고 흔들리게 된다. 이러한 혼란기에 사이비 단체가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그 단체가 이단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사정이 이러하기에 우리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종교적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 본질의 모순이다. 우리는 인생의 고비마다 해당 사안을 정확히 파악해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잘 모르는 채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운명이다. 모든 분야마다 전문가가 되어 판단할 수 없으며, 또 전문가라고 해도 올바른 결정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는 얼떨결에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세월이 흘러서 그것이 올바른 판단이었음을 깨닫고 안도할 때가 많다. 가령 한국전쟁의 격변기에서 남행을 결정한 우리 이북도민 어르신들의 후예가 그러하다. 수험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도 시험지를 받아들면 모르는 것 투성이다. 시험 종료시간이 임박해 아무 것이나 찍은 것이 정답으로 확인되어 한숨을 돌리게 될 뿐이다.



효(孝)도 그러하다. 우리는 보통 예의범절을 잘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우리는 효에 대해 잘 이해해서 효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효에 대해 모르는 채로 살아왔는데, 알고보니 그게 효였던 것이다. 효자 효녀는 자기가 효자 효녀인 줄 모른다. 남들이 효자 효녀로 부르고 나서야,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라고 놀라게 되는 것이다. 효를 모르고 행했는데, 그게 효였음이 ‘적중’한 것이다.



당신이 심청이 아들이라면 학교 순회강연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효심을 고취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는 효를 잘 알아서 효를 행한 것이 아니다. 행했던 것이 효였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았을 뿐이다.



효를 미리 공부한다고 효를 행한다는 보장이 없다. 효는 모르는 상태에서 올바른 것을 적중시키는 삶의 지혜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효자는 종교적 이단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



다음번에는 불교적 이단에 대해서도 거론해야 공평할 것 같다.


https://blog.naver.com/donghlee1001/221830138408
[출처] (효 에세이) 적중(的中)에 대하여-종교적 이단에 빠지지 않는 지혜|작성자 이북도민작가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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