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언론-15. 돈오선(頓悟禪) - 법보신문
돈오선(頓悟禪)
윤창화
승인 2012.10.08
돈오는 일거에 다 깨달아 버린다는 뜻
어느날 갑자기 아닌 노력 있어야 성취돈오선에서 돈오(頓悟)란 ‘한 번에 깨닫다’ ‘일거에 다 깨달아 버리다’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깨달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일시에 모든 것을 깨닫는 것, 또는 곧장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런 참선수행법을 지향하는 것을 돈오선이라고 한다.
돈오(頓悟)는 점오(漸悟, ‘하나씩 차례대로 깨달아 나감’ 혹은 ‘수행의 단계를 거쳐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를 비판하면서 탄생한 사상 혹은 수증관(修證觀, 닦아 깨닫는 방법)이다.
따라서 점오의 반대적 개념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용이할 것이다. 이것을 야구에 비교하면 돈오는 만루 홈런 한방으로 끝내는 것이고, 점오는 매회 안타를 쳐서 차근차근 점수를 추가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홈런이라는 것도 꾸준히 연습, 노력한 결과 나오는 것이지 노력 없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돈오란 깨닫는 순간을 가지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돈오선은 계통적으로는 육조혜능(慧能, 638∼713)의 남종선을 가리킨다.
남종선이라면 대통신수의 북종선을 제외한 선, 즉 임제종, 조동종(묵조선), 위앙종, 운문종, 법안종 등 중국의 5가7종을 통칭한다. 역사적으로는 당(唐) 중기 이후의 선은 거의 다 돈오선이라고 할 수 있다.
육조혜능은 돈오에 대하여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지식들이여(여러분), 나는 홍인화상의 수행처에서 한마디의 가르침을 듣고 그 말에서 즉시 깨달았소. 곧바로 진여의 본성을 깨달았소. 그래서 이 교법을 널리 펴서 도(道)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곧장 보리(진리)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이오. 각자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의 본성을 돈오케 하기 위함이오
(善知識. 我於忍和尙處, 一聞言下大悟, 頓見眞如本性. 是故, 將此敎法, 流行後代, 令學道者, 頓悟菩提. 各自觀心, 令自本性頓悟. ‘六祖壇經’ 般若品)”
돈황본 ‘단경’에는 또 “오조화상은 깊은 밤(三更)에 나(혜능)를 조사당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었다. 나는 한번 듣고 즉시에 ‘금강경’의 뜻을 깨달았다. 그날 밤 오조홍인화상으로부터 법을 받았는데,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없었다. 또 홍인화상으로부터 돈법(頓法)과 가사를 전해 받았다(五祖夜至三更, 喚慧能堂內, 說金剛經. 慧能一聞, 言下便悟. 其夜受法, 人盡不知, 便傳頓敎及衣)”라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이 돈오사상은 육조혜능이 창안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약 300년 정도 앞서 활동했던 도생(道生; 竺道生, 355~433)이 처음으로 주장한 것이다.
도생은 승조와 함께 구마라습의 4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돈오성불론’이라는 글에서 종래의 수행 방법인 점수를 비판하면서 돈오를 주장했으나 당시에 이 주장은 호응을 받기는커녕 터무니없는 설이라고 하여 도생은 배척을 받고 쫓겨났다.
돈오, 즉 어느 순간에 한 번에 모두 깨달아 버린다는 것은, 하나하나 깨달아 간다는 점오(漸悟)의 논리와 대비하여 본다면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방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멋은 있지만 실제 가능한지가 문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것은 부단한 노력 끝에 이루어진다.
▲윤창화
다만 이루어지는 그 순간의 느낌으로는 ‘어느 날 갑자기’일 수는 있다. 그래서 ‘돈오’라고 할 수 있지만, 자칫 돈오주의는 노력은 하지 않고 어느 순간에 깨닫게 되겠지 하고 막연히 기대하게 되는 병통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