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의 기독교·이슬람엔 종교간 포용정신 있었다”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애초의 기독교·이슬람엔 종교간 포용정신 있었다”
등록 2008-01-04 21:55
신소영 기자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펴낸 이명권 교수
인터뷰 /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펴낸 이명권 교수
종교간 대화·상생 위한 세번째 저술
같은 신 섬기면서 1500년 싸워온건
교리보다 신앙추종자들의 잘못 탓
제2의 예수·무함마드로 다시 태어나야
〈예수, 노자를 만나다〉 〈예수, 석가를 만나다〉에 이어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코나투스 펴냄·1만8천원)이란 책이 나왔다. 지은이는 같다. 중국 길림사범대 교환교수인 이명권 영성수련공동체 ‘코리안 아쉬람’ 대표(사진)가 바로 그이다.
그의 연구를 꿰는 주제는 종교간 대화와 상생이다. 그가 예수를 축으로 노자와 석가 그리고 무함마드(마호메트)를 비교하면서 그 차이와 다름을 밝히고 평화와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자신의 뜻과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예수, 석가를 만나다〉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에 그가 합장하는 사진이 실린 게 발단이었다. 김 교수가 강의를 하고 있던 기독교 재단 대학 쪽에서 이를 빌미삼아 그를 학교에서 축출한 것이다. 이런 관용의 부재에서 대화와 상생은 초현실의 영역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종교가 공존해 온 역사를 꿋꿋이 환기시킨다. 이번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다. 두 종교의 신봉자들이 믿는 신은 “실질적으로 같다”는 데서 그는 출발한다. 이슬람 예언자인 무함마드가 아브라함과 그 계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기독교와 이슬람은 1500여 년 가까이 다투어 왔다.”
하지만 이 기간 다툼의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원시 기독교와 초기 이슬람에는 종교간 화해와 관용, 포용의 정신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이슬람 경전인 꾸란(코란) 외의 이슬람 복음서를 보면 예수가 금욕주의자이면서 예언자적인 스승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꾸란은 예수의 신성 부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예수를 격하시키는 경향이 있으나 비정통적 경전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이슬람 사상가인 이븐 아라비는 예수를 ‘성자들의 봉인자’(The seal of Saints)라고 높였고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 사상가 가잘리는 예수를 엄격한 윤리적 가르침과 신비적 교훈을 제시하는 자로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무함마드 예수 그리고 이슬람〉이 교수는 이처럼 무슬림이 자신의 종교 안에 다른 종교의 영적 스승을 무한한 존경과 헌신, 사랑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점은 종교 간 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모범적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꾸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계시를 믿고, 너희들에게 주어진 것도 믿는다.” 다른 종교의 계시를 인정한다는 것은 포용의 다른 말이다.
“모든 종교는 자기 비움이며 나눔이고 공동체적 사귐입니다.” 그가 말하는 종교의 본질이다. 그는 노자와 석가의 사유도 허(虛)와 공(空)으로 풀었다. 자기 비움과 자기 부정의 사유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 그리스어로 비움을 뜻하는 케노시스, 이슬람에는 무와 존재를 뜻하는 파나와 바카가 같은 개념입니다.” 그에게 자기 비움은 모든 종교가 만나는 결절점이다.
“꾸란의 중심에는 ‘라 일라하 일랄라’(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가 있습니다. 절대자에 대한 복종이지요. 예수도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게세마니 동산에서 ‘아버지여 될 수만 있으면 이 쓴 잔을 내게서 거두어 달라’고 거듭 기도한 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절대적 복종이지요.” 이런 종교 체험에 내재해 있는 게 자기 비움이라는 것이다. ‘방랑설교자’ 예수가 창녀·죄인들과 함께 밥상공동체를 열어나간 점이나 무함마드가 알라의 뜻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기도와 자선을 강조한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이런 ‘종교적 원체험’은 어떻게 변질되어 갔을까? 그는 “교리적 문제보다는 신앙공동체 추종자들”에게 그 책임을 돌렸다. 그들의 이해관계 등에 따른 자의적 해석이나 판단에 의해 애초의 정신이 변질되어 갔다는 것이다. “제2의 예수와 무함마드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 교수는 모든 종교는 “신비주의 그리고 침묵에서 다 만난다”는 소신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언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가 있습니다. 분석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도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고 했죠. 침묵에서 다 만납니다.”
글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