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6

조성택 교수 “한국불교, 대승불교 맞나?”

 조성택 교수 “한국불교, 대승불교 맞나?”

POSTED ON 2013-06-03 BY 대한불교진흥원

조성택 교수 “한국불교, 대승불교 맞나?”
우리는선우 토요법석서 ‘서양인이 불교 매료된 이유’ 주제 특강

2013년 06월 01일 (토) 17:50:53 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라고 하는데 조계종이 과연 대승불교인지 궁금하다. <금강경>에서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고 했는데, 한국불교는 그렇지 못하다.”

조성택 교수(고려대·우리는선우 이사장)는 1일 서울 장충동 우리함께빌딩에서 열린 우리는 선우 6월 토요법석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조 교수는 ‘서양인이 불교에 매료된 이유’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서양인이 불교에 매료된 까닭을 석가모니 부처가 보여준 혁명 같던 요소들로 설명했다.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도 서구전통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불교적 요소에서 서구인들은 인류 미래의 기원을 발견했다는 설명이다.

“모두 ‘집으로 돌아오라’ 할 때 석가모니는 출가 강조”

조 교수는 서양문학 최초문학으로 일컬어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로 본보기로 들며 강연을 시작했다.

조 교수는 “기원전 8~9세기 그리스신화를 재구성한 <오딧세이>는 귀향·귀환을 주제로 읽혀진다”며 “당시 왜 귀향·귀환이 강조됐는지는 그때부터 인류가 농사를 짓거나 항해를 항거나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구조가 성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는 각자가 집을 나가 재화를 만들어 집으로 돌아오는 시기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고 했다.

조 교수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을 자아가 집에 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오딧세이’가 칼립소가 제안한 불사(不死)를 거절하면서까지 집으로 돌아왔던 것은 자아 찾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이어 “그러나 기원전 5~6세기 석가모니 부처는 자아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며 “잉여생산물이 생겨 밖에서 벌어들인 재화를 집안에 축적하는 삶이 윤택해진 시기에 부처님이 집을 나가라고 한 것은 (재화를) 축적하는 것 자체가 욕망의 근원이고 고통의 뿌리가 되는 것을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반복된다. 석가모니의 출가 독려와 같은 움직임이 1960년 미국에서는 히피운동으로 재현됐다”고 했다.

조 교수는 “최근 젊은이들은 국경을 초월해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삶을 꾸리는 유목민적 인 삶(nomad culture)을 살고 있다”며 “모바일폰도 그 본보기이다. 집전화와 달리 고정된 장소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조 교수는 “돌아갈 곳 없이 사는 이 시대에 다시 불교가 거론되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라며서도 “한국불교에서는 스님들이 인도 젊은이를 흉내 내 출가를 했다. 그런데 집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산중에 들어가 자기들끼리 가족(문중)을 새로 만들었고, 문중끼리 싸움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자끼리 가족(문중)을 이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왜 굳이 집단을 만들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인간이 믿지 않으면 神은 죽는다”

조 교수는 3000년간 계속됐던 고대 이집트 문명의 태양신 레(Re)를 언급하며 “사람이 믿지 않으면 신도 죽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종교가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불교는 2500여 년, 기독교는 200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부처님이 등장했던 기원전 6세기께는 중국에서는 공자가,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 등 현인이, 중동에서는 선지자들이 등장한 시대였다”며 “인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마다 왜 이들의 저술인 ‘고전’을 참조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도 말했다.

“부처님 출현 의미는 절대자를 인간 속으로 끌어들인 것”

조 교수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 의미는 인류 문명 최초로 밖에 있는 신이라는 절대자를 인간 안으로 끌어들였다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부처님 재세시 바라문교는 절대를 밖에 뒀다. 때문에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사제(바라문) 위상이 높았다. 가톨릭도 사제를 통하는 것과 같은 구조라는 설명이다.

밖에 있는 절대를 내 안으로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 우파니샤드 시대였고, 이 시기 범아일여(梵我一如)가 주장됐다. 그러나 밖에 있던 절대는 없애지 못했다. 내 안에 비슷한 것이 있다고만 했다.

조성택 교수는 “외부에만 존재하던 절대를 완전히 외부에서 지운 것이 부처님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지금 불교는 인간 외부에 또 무엇인가를 만들어 냈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불교는 내 안의 것만을 믿는 고급종교의 모습을 갖춘 불교와 외부의 절대를 신앙하는 불교 등 모든 종교형태가 다 들어있다. 이것이 서양인들이 불교에 관심 갖는 이유의 하나”라고 말했다.

“내 안의 절대 인정하면 ‘연기’는 자연스런 논리”

조 교수는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당시 석가모니 부처의 선언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부처님 탄생계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본보기로 들며 “석가모니 부처는 인간의 주체성 강조했다. 이는 인간은 완전한 존재이며, 스스로 거룩한 존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당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었다. 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시절에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강조했다”며 “이것이 부처님이 탄생한 이유·의의”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내 밖의 신을 지워버리고 나면, 내가 해야할 것은 내 행위와 결과간의 도덕적 인과관계를 살펴야한다”며 “밖에 신을 뒀을 경우 도덕은 신과 나의 약속관계이지만 신이 없어지고 나면 내 행위의 선악 여부가 내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이것이 업”이라고 설명했다.

“의업(意業) 강조한 종교는 불교가 유일무이”

조 교수는 “어떤 종교도 인간의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업이라고 말한 종교는 없다”며 “ 제사를 지내고 할 것인가는 신업(身業), 어떻게 신을 칭송할 것인가는 구업(口業)이지만, 그 이전에 의업(意業)을 언급한 것은 불교가 최초”라고 말했다.

그는 “(의업이 강조되는 까닭에) 마음의 업을 해결하는 마음수행이 중요하게 됐다”며 “불교가 기존 인도 명상이 다른 것은 선정과 지혜의 결합에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무속에는 지혜가 없어 윤리적이지 못한 것”이라며 “명상(수행)은 지혜와 결합돼야만 불교인으로서, 스님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처님은 언어가 갖는 권위 경계했는데…”

조성택 교수는 “부처님은 자신의 비언어적 체험을 언어화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했다.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부처님은 스스로 제자를 찾아갔다. 불교 이전과 이후에 어떤 종교에서도 제자를 찾아다니는 종교는 없었다“고 했다.

“당시 인도에서는 범어(산스크리트어)로 된 것이 중요한 내용을 의미했을 정도로 권위가 컸지만 부처님은 자신의 말씀이 범어로 기록되는 것만을 강조하지 않았다”며 “이는 언어의 권위를 타파했던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언어의 권위를 부정했던 부처님과 달리)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한자 영어에 집착하고 있지 않느냐”며 “이는 한자 영어를 특권화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부처님이 당시 범어가 아닌 현지어를 강조한 것은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인식했던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었다”며 “우리가 당연시하는 이런 점들이 서양인들에게는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사 이어집니다)
<기사 제공 = 불교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