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스님은 사춘기
스님은 사춘기 - 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명진 (지은이)
이솔 201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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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쪽
152*223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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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명진 스님이 봉은사에서 천일기도를 하면서 일요 법회 때마다 신도들에게 법문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통해 부처님 법을 만났고, 그 고통을 스승으로 삼아 40년 동안 치열하게 구도의 길을 걸어 온 명진 스님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로 ‘마음에서 힘을 빼라’ 이다.
마음에서 힘을 빼라는 것은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고정관념, 오랫동안 익혀온 지식과 정보, 길들여져 있던 습관, 이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마음에서 힘을 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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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죽음보다 더 큰 스승은 없다
어린 시절
왜 나만 불행한가
출구를 찾다
내가 갈 길
해인사로 출가하다
백련암 행자 시절
또 한 번의 죽음
죽음보다 더 큰 스승은 없다
제2장 나는 누구인가
스승을 찾아 헤매다
드디어 계를 받다
용맹정진
한 물건
나는 누구인가
도인 행세
살아있는 화두
나의 아버지
마조 원상 법문에 걸리다
제3장 중 사춘기
중 사춘기
친구의 여동생
장군죽비
도반과 소머리
다비식에서 부른 유행가
스님의 목을 쳐 마당 밖에 던졌습니다
세간에서 만난 선지식
도인 노파
도는 일상에 있다
스승의 한 마디
제4장 힘 빼!
운동권 스님
불자여, 눈을 떠라!
감옥에서 배우다
개운사 주지
봉암사 옥석대에서
허물을 지고 묻다
법거량
화두의 낙처
힘 빼!
제5장 모름 속으로
가사를 벗다
송담 스님
어미 닭이 알 품듯이 고양이가 쥐 잡듯이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맡다
천일기도와 재정 공개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단지불회
마음이 허공이다
불교는 우상숭배가 아니다
복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라
접기
책속에서
* 스님의 목을 쳐 마당 밖에 던졌습니다
성철 스님이 법상에 올라가 법문을 하시려고 할 때 내가 벌떡 일어섰다.
“성철의 목을 한 칼에 쳐서 마당 밖에 던졌습니다. 그 죄가 몇 근이나 되겠습니까?”
“백골연산白骨連山이다”
“예? 뭐라구요?”
“시끄럽다 앉아라! 저노무 자슥, 열아홉 살 행자 때부터 알았네 몰랐네 하고 다니더니 아직도 저러나, 사기꾼 같은 놈!”
그 때 나는 하루 빨리 눈을 번쩍 떠서 성철스님의 멱살을 잡아야겠다는 욕심으로 꽉 차 있었다.
...깨닫는 것을 세수하다가 코 만지는 것보다 쉽다고 한다. 알고 보면 그냥 바로 그 자리인데 자꾸만 애써서 무엇을 구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깨달으려고 하기 때문에, 구하려는 욕심 때문에 본성을 못 보는 것이다. 일체 구하는 마음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접기
* 죽음보다 더 큰 스승은 없다
진해 통제소 강당으로 달려가 보니 바다에서 바로 건진 시신들이 줄줄이 눕혀져 있었다. 동생이 거기 있었다. 관 속에 누워 있는 게 내 동생이 맞았다. 환하게 웃던 동생이, ‘형’하고 부르며 쫓아다니던 동생이, 하나뿐인 내 동생이 거기 있었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 때문에 머리가 한쪽으로 삐뚜름하게 구부러진 채 좁은 관 속에 눕혀져 있던 동생, 그 모습을 지금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49재 마지막 날 국립묘지를 나서며 원願을 세웠다.
‘생사에 대한 문제, 존재에 대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한들 그게 무슨 영예가 될 것이며, 극락에 간들 무엇이 그리 즐겁겠는가? 내가 날 모른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를 무등 태우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양 옆에서 나를 부축하고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진다 한들 그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고 죽는 이 주인공의 본래 모습을 바로 알 수만 있다면 나는 하루에 천 번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에 들어가고, 천 번 쇠꼬챙이로 몸을 쑤시고 찌르고 토막 내는 그런 지옥에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가겠다.’ 접기
* 살아있는 화두
“지난 철에는 어디서 살다 왔느냐?”
“이번이 첫 철입니다.”
“응? 첫 철이야? 그럼 화두는 어디서 탔는가?”
선방에서 참선을 하려면 화두를 받는 것은 기본이다.
“6 ?25전쟁이 나서 쌀 배급을 타는 것도 아니고 화두를 어디 가서 탑니까?”
...나는 ‘화두를 탄다거나 화두를 챙긴다’는 표현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전쟁 나서 쌀 배급 타는 것도 아니고 무슨 화두를 타러 다니는가? 화두가 보따리도 아니고 무슨 화두를 챙기는가? 내가 나를 모르는데 그것만 알면 됐지 뭘 따로 타서 의심을 하는가?
참으로 진실하게 자기 삶의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 가서 따로 화두를 탈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물음이 없거나 간절하지 않아 할 수 없이 큰스님들이 방편으로 화두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간절한 의심이 저절로 올라오지 않으니 억지로 의심을 짓는 것이다. 접기
* 다비식에서 부른 유행가
“어이 명진, 이춘성이가 말이여, 지옥이나 극락 가실 스님인가? 자기가 알아서 제 길을 가지 그거 못 갈까봐 앉아서 지장보살 염불을 해? 수좌가 말이여 평생 화두 들다가 죽었는데 극락 가라고 지장보살을 부르면 안 되지. 그거 때려치우게. 명진 수좌가 척 하니 알아서 분위기를 바꿔 봐.”
불길이 훨훨 치솟는 다비식장에 노스님들이 죽 앉아 있는데 내가 그 가운데로 나갔다.
“거 춘성 스님께서 극락 지옥 그거 못 찾아갈까 봐 지장보살을 염불합니까? 지금부터 전국 본사 수좌 대항 노래자랑을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먼저 법주사 대표로 ‘나그네 설움’을 불렀다. 그러자 다른 스님들이 우루루 나와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분위기가 곧 잔치판이 되어버렸다. 당시 오륙백 명의 신도들이 있었는데, 일부는 너무하다고 했고 일부는 춘성 스님 다비식이니까 그럴 만도 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아마 그 때 인터넷이 있었더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접기
* 나는 영원히 사춘기로 살고 싶다
누구나 살다 보면 사춘기를 겪게 된다. 반항하고 대들고, 못된 짓, 엉뚱한 짓을 도맡아 하는 시기가 그때일 것이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가장 순수한 물음은 그 사춘기 때 본능적으로 다가온다. 유년기에서 어른으로 가는 그 시기에 왜 살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이름이 남으면 뭐하고 남들이 알아주면 뭐하나? 나는 누구인가? 하는 아득한 물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사춘기 때 처음 다가왔던 그 순수한 물음으로 돌아가는 것, 나를 향한 물음으로 끝없이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 바로 도를 향해 가는 것이다. 나는 사춘기 때 다가왔던 그 순수한 물음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영원히 사춘기로 살고 싶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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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명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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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해 불교탄압대책위원장, 대승불교승가회 회장, 조계종 개혁회의 상임위원 등을 거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봉은사 주지를 역임했다. 봉은사 주지 시절 1천일 동안 1천 배를 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꾸준히 조계종 개혁과 사회적 현안 참여에 적극적으로 힘써왔다. 현재는 사단법인 평화의 길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 등이 있다.
최근작 : <힘 좀 빼고 삽시다 (큰글자도서)>,<평화의 길, 통일의 꿈>,<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 (큰글자도서)> … 총 1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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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는 누구인가’ 그 지극한 물음 속에 진리가 있다.
이 책은 명진 스님이 봉은사에서 천일기도를 하면서 일요 법회 때마다 신도들에게 법문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통해 부처님 법을 만났고, 그 고통을 스승으로 삼아 40년 동안 치열하게 구도의 길을 걸어 온 명진 스님. 스님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마음에서 힘을 빼라!’
마음에서 힘을 빼라는 것은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고정관념, 오랫동안 익혀온 지식과 정보, 길들여져 있던 습관, 이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마음에서 힘을 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지 아는가? 모른다. 그러니 그 알 수 없는 물음으로 끝없이 몰입해 들어가 보라. 묻고 또 묻다 보면 내가 ‘안다’는 생각이 모두 비워지면서 내가 정말 ‘모른다’는 생각만 오롯이 남아 있게 된다. 그렇게 모든 앎이 끊어지고 완전히 힘이 빠진 자리, 그 완벽한 비어짐의 자리에서 우리는 무한한 지혜와 자유를 얻게 된다.
스님은 이 책을 통해 참선은 신비스럽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요, 깊은 산중의 선방에 앉아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누구인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과연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하고 물으면 그것이 바로 참선이고 수행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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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주목한 책
[조선일보] 2011.04.22 좌충우돌 명진 스님 40년 수행기
“이노무 자슥 봐라. 니 와 그리 빤히 쳐다보노? 우째 왔노?”(성철)
“무명(無明)번뇌를 자를 보검을 구하러 왔습니다.”(명진)
1969년 합천 해인사. 출가 보름 된 열아홉살 행자(예비 승려)가 방장 성철(性徹) 스님에게 당돌하게 대답했다. “야 임마, 선방(禪房)에 십 년 다닌 수좌도 그런 건방진 소리 안 한데이.”(성철)
작년에 환갑을 지낸 스님이 40여 년간 법주사·통도사·송광사·백련사 등에서 좌충우돌하며 수행한 사연을 이야기하듯 쉽게 적었다. 악동 같은 기행(奇行)과 알쏭달쏭한 선문답(禪問答) 등 선승(禪僧)들의 내밀한 세계가 속속들이 드러난다.
[중앙일보] 2011.04.21
어린 시절의 불우한 삶, 길을 찾기 위해 출가한 사연, 성철(性徹·1912~93) 스님을 만나 겁 없이 대들던 일화, 송담(松潭·1929~) 스님이 있던 선방 이야기 등을 맛깔나게 풀어간다. 거기에 법거량(法擧揚)을 주고받는 절집 안 풍경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은 담백하고, 표지에는 장난기가 깃들어 있다. 내용도 얼음장 아래 봄날의 시내처럼 졸졸 흘러간다.
[연합뉴스] 2011.04.11
6살 때 어머니를 여읜 이야기부터 출가 후 수행 이야기, 민주화 운동 등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봉은사 주지 재임시 추진했던 사찰 재정 공개와 1천일기도에 대한 뒷이야기와 소회도 들려준다.
[헤럴드경제] 2011.04.21 고통 벗 삼아…명진스님 구도의 길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귀결되는 성찰의 과정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마음에서 힘을 빼라는 것... 어렵고 무거운 철학적 물음들이지만 스님의 살아온 얘기들에 버무려 편안하게 접할 수 있다.
[BTN뉴스] 명진스님 <사춘기> 펴내자마자 2쇄
책은 주로 명진스님의 출가와 수행 이야기를 담았다. 이런 속에 절집의 일상이 담백하게 그려졌다. 절집 아니면 보고 느낄 수 없는 고유한 풍경과 정서가 담겨 있다. 숙연해야 할 다비장에서 전국노래자랑대회가 열릴 수 있는 곳은 절 말고는 없을 것이다.
[한국일보] 2011.04.29 전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 수행기 출간
명진스님은 봉은사 주지 시절 사찰 재정을 공개하고 1,000일 동안 산문을 나서지 않고 매일 1,000배를 올려 불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대중의 지지를 받았으나 결국 물러났다. 이번 책은 그를 둘러싼 논란은 언급하지 않고 유년기부터 환갑이 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선 수행과 결부해 썼다. 소박하면서도 천진한 면모와 치열한 구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문화일보] 2011.04.22
저자가 봉은사에서 천일기도를 하며 일요법회 때마다 신도들에게 법문한 내용을 엮었다.
[서울경제] 2011.04.22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통해 법을 만나고 그 고통을 친구 삼아 40년 동안 치열하게 걸어온 구도의 길이다. 어렵고 무거운 철학적 물음들이지만 스님의 살아온 얘기들에 버무려져 편안하게 접할 수 있다.
[세계일보] 2011.04.24
봉은사에서 천일기도를 하면서 일요 법회 때마다 불자들에게 법문한 내용을 엮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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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는 누구일까?.. 이 책을 읽고 진지하게 한번씩들 고민해봤음 좋겠다.. 구매
칭찬고래 2011-04-27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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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막 주문했는데 스님의 촌철살인의 활구가 죽비가 되어 우리를 깨우칠 것입니다 구매
tongko 2011-04-2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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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책을 주문했습니다. 명진스님 책은 처음인데, 조금 설렌다~ 그리고 기대된다 구매
램브란트 2011-04-2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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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구매
데조로 2011-05-2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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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자신의 유년을거쳐 스스로 터득한 존재의 의미를 쉽게 풀어주셨네요. 구매
바람타는섬 2011-04-2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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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계속 철들지 마세요.^^ 새창으로 보기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무서운 세상. 민주주의의 시계가 계속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이 시절에, 그나마 명진 스님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인가. 불의를 행하는 위정자에겐 거침없이 죽비를 내리치고, 하루아침에 공권력에 의해 삶의 터전과 핏줄을 잃고, 또, 감옥 보내고 우는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서는 스님도 그들과 함께 울었다.
눈물 닦는 사진과 동영상을 유독 많이 찍힌 스님을 보노라면 혹자는 속세를 떠난 구도자가 왜 저리 눈물이 많은가 오해 할 수도 있겠으나 알고 보면 스님의 눈물은 다 지극한 사랑이자 위로임에랴. 이 눈물 많은 스님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한권의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스님은 사춘기>(이솔). 덕분에 목적 없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삶속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스님이 던지는 삶의 의미, 존재에 대한 화두에 물음표하나 던지며 쉬어 갈수 있게 되었다. 스님은 어이하여 출가를 하였던가.
모든 스님, 신부, 수녀님들에겐 식상한 질문이겠으나 중생은 그것이 또 가장 궁금한 질문임에랴. 명진 스님은 6살 어린나이에 ‘죽음’이라는 화두를 만났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통해.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죽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죽음은 내가 삶을 투철하게 성찰하도록 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도 이른 나이에 죽음과 맞닥뜨렸다. 내가 처음 마주친 죽음의 대상은 불행하게도 어머니였다.>-본문 11쪽
뿐인가. 스님에게 죽음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서로 의지했던 동생이 해군에 입대한지 불과 몇 달 만에 군함 전복사고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연이어 쉰이라는 이른 나이에 아버지마저 병고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 언저리 푸른 청춘에 피붙이 모두 떠나고 세상엔 스님 혼자만 달랑 남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예기치 않은 시기라면 하나만 던져도 암흑이거늘 스님은 젊은 날에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세 개 씩이나 받았다. 그러니까 익히 보이던 스님의 눈물은 수행의 미진함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중생의 아픔을 가슴으로 알기에 흐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구나. 흐르되 걸림은 없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허공이다? 스님의 변을 들어보자.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본래 허공과 같이 텅 비어서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 한 물건을 마음이라고 하지만 마음이라는 게 어디 실체가 있는가.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슬픔이나 기쁨, 욕심이나 자비심 같은 모든 감정은 허공같이 텅 비어 있는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용이다.......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살펴서 내 마음이 허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 마음이 허공같이 텅 비어 공적한 것임을 알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이 하나의 작용일 뿐 실체가 없는 것임을 투철하게 깨달으면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대 자유를 얻게 된다. 내 마음이 바로 허공인 그 자리는 능히 모든 것이 자유자재한 자리이다.>-본문 256쪽
노스님들은 명진 행자가 무서워~
스님의 걸음하면 법정스님의 빠르고 거침없는 걸음걸이가 생각나는데 명진 스님은 의외였다. 지난해 봉은사에서 뵌 스님의 걸음걸이는 평소 말씀이 거침없는 것에 비해 사뿐사뿐 한발 한발 새색시같이 내 딛으셨다. 그것이 참 인상적이어서 봉은사 신도인 친구에게 말했더니 절은 더 하다고 하였다.
“절은 또 얼마나 정성스럽게 하시는 줄 아냐? 천천히 한배, 두 배... 시종여일하게 하신단다.”
“그렇게 해서 언제 하루에 천배를 다하신다니?”
“한 꺼 번이 아닌 아침 점심 저녁 중간 중간 나누어서 하시는 거지.”
아무튼 스님의 걸음걸이와 절하는 모습으로 유추해 볼 때는 스님의 행자생활도 지극히 새색시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했는데 웬걸. 스님은 행자세계의 문제아였다.(웃음) 스님의 파란만장한 수행담은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다른 스님들은 스스로 점잖아서도 못하고 무서워서도 못하는 질문을 명진 스님은 노스님들에게 거침없이 해댔다. 해인사 백련암 행자시절엔 일본어 배우라는 성철 스님의 말에 교학보다는 참선에 관심이 많던 스님은 일본어를 배워야 할 이유를 납득 못하였기에, 그냥 말도 없이 내뺐다.
‘남쪽에는 성철, 북쪽에는 전강’하던 그 시절에 성철 스님 눈에 단번에 들어 행자자리 꿰찼으면 일본어 아니라 더 한 것도 배우려 노력했으련만 스님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그 후로도 쭉 운수납자로 떠돌았다. 물론 가는 곳 마다 사건(?)도 일으켰다.
안동 봉정사에서의 일화 한 토막. 간염과 영양실조에 걸린 지인스님에게 소머리를 삶아 먹이려다 주지스님과 신도회장이 항의하자 스님 왈,
“그럼 스님 머리를 삶을 까요?”
주지스님과 신도회장이 아연실색했음은 물론이고 말리지도 못하였다. 결과는, 지인스님이 기력을 회복했다고.
그런가 하면 용맹정진기간에 졸음을 깨우기 위해 당번이 될 경우 보통 노스님이 졸면 모른척하는 게 관례하면 스님은 반대로 하였다. 젊은 스님이 졸면 모른 척 눈감아 주고 대신 노스님이 졸면 죽비가 부러지게 내리 쳤단다.
행자시절하면 보통 행자의 설움이 말도 못하게 큰 것으로 전해지는데 명진 스님의 경우는 행자인 명진 스님 보다 은사스님들이 더 힘들어 보였다.(^^) 아무튼 이 한권의 책에는 어느새 환갑이 된 지난 60년 스님의 인생이 시시콜콜 다 있다. 군부독재에 맞서고 불교개혁에 앞장섰던 것에서부터 스님을 짝사랑한 어느 여인의 이야기까지.
타협하지 않고 언제든 자유인으로 당당히 돌아서는 스님의 당당함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행자시절부터 쭈욱 견지하고 있던 초지일관의 한 단면이었다. 후후~ 우좌간 스님은 그 순수한 야성을 잃지 마시길.
<불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끝없는 ‘물음’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종교이다.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살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탐욕과 어리석음이 허망한 것임을 깨달아 무한한 자유와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본문 262쪽
정말 그런 것 같다. 불교는 끝없는 물음을 통해 스스로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종교라기보다 ‘사상’이다. ‘자유’에 이르게 하는 사상 말이다.
폭설 2011-05-17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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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스님은 사춘기 새창으로 보기
# 죽음보다 더 큰 스승은 없다.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엄청 울었다. (눈물이 많은 편이다)죽음을 통한 성장이니 만큼 영웅의 서사 프롤로그와 닮아 있다. 게다가 변모하기전 스님은 영략없는 양아치다.그러나 ‘나는 누군인가‘에 대한 치열한 물음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열망에는 숙연해진다.책 제목 잘지었다싶게 스님의 삶은 온통 사춘기를 앓고 있는 십대 소년같다. 스님의 말씀처럼 철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건 내 욕심일까?언제까지나 깔대기 들이대고 해맑게 웃는 스님이었으면...
지그재그 2017-06-04 공감(6)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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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춘기를 갖고 계시길... 새창으로 보기
내 자신에게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무엇인가"-
글쎄 언뜻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어서 뭐를 우선 순위로 꼽아야할지 막막함을 느낀다.
이 책을 쓴 봉은사 주지스님인 명진스님은 "죽음" 이라고 말씀하신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노.병.사의 근본적인 탐구를 해 가며 끊임없이 물음에 물음에 꼬리를 물고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해답을 얻어가는 종교인 불교란 것에 비춰볼 때 당연시 되는 중요함을 차지한다.
스님의 자신 스스로가 겪어온 인생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낸다.
6살에 명을 버린 엄마의 장지에서 오면서 느꼈던 삶에 대한 물음, 끊임없는 방황과 몸 싸움을 하던 학창시절, 대학을 보내준단 사촌형님의 말에 무주 구천동 관음사에 가서 대입공부를 하던 중 같은 방을 쓰게된 지나가던 스님으로부터 내가 나를 알아야된다는 말을 듣고서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고등학교만이라도 졸업하고 출가하란 아버지의 말씀에 이를 따르게 되고 곧이어서 월남전 파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다.
단 하나의 혈육이던 동생의 군 입대를 해군 군악대로 추천하게 되고 면회를 가야겠단 생각으로 있던 차에 사고로 인해 동생이 먼저 생을 지게되는 일을 겪는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뒤로 한 채 출가를 하게되고 성철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기 닷새전에 여기에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해인사를 뒤로 하고 나오게 된다.
이후 탄성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각 도처에 있는 절에 선방을 다니면서 언뜻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던 시기를 사춘기처럼 겪었던 때와 같다고 생각하고 나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에 정진하게 된다.
춘천에 있던 절에 몸담고 있던 때시절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생사문제와 사회 불의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감옥에 가면 독방이 생기고 공부하기에 좋을 것이란 어떤 수배자에 말에 전국규모의 규탄대회에 앞장섬으로써 구속이 된다.
구속이 풀린뒤로는 개운사 주지를 시작으로 봉은사 주지스님이 됨으로써 그간 자신이 생각했던 불교와 신자간의 관계를 더욱 곤고히 하고 좀 더 발전될 수 있는 계획을 세워나간다.
1000일 기도 행진과 불전함의 돈을 신도들에게 공개하고 맡김으로써 투명성 있는 절의 혁신적인 개혁을 시도한 스님의 행로는 오늘도 여전히 사춘기적 방황의 길로 진행중이다.
모든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대상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복종을 한다.
세계의 주요종교는 그런면에서 우리의 연약한 맘에 강한 심성을 심어주고 이를 토대로 어려운 역경을 헤쳐나가는 데에 얼마간의 위안과 안정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뭐랄까?
한마디로 가슴이 찡한 뭉클한 사연과 종교에 의지해 끊임없이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수행의 끈을 놓지않고 있는 종교인의 모습이 보인다.
삶의 회의를 느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어렸던 6살적의 충격은 동생의 죽음이란 것과 맞물리면서 더욱 곤고히해진 결과를 낳았지만 종교인이기에 전에 세상에 의지 할데라곤 서로의 한 몸뿐이었던 동생의 죽음을 다룬 글에선 주체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이별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49재를 홀로 행하고 돌아오는 그 당시의 감정, 한 때나마 자신을 좋아했던 친구의 여동생을 마다했던 젊은 날의 청춘의 시절은 누구나 겪었을 삶의 일부를 보는 것 같기에 더욱 가까움을 느끼게 해 준다.
행자시절에 보인 입바른 소리와 거칠 것없이 높은 스승 앞에서 말하는 행동은 천상 종교인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이지 별종이란 생각이 들 만큼 무서운 것 없고 거칠 것 없는 행보를 보이신다. )
불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리를 배우는 과정과 하안거, 동안거를 통한 스님들의 참선과 화두에 대한 공부에 대한 과정은 TV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는 즐거움과 경외심을 드러내 준다.
또한 주지로서 불교에 대한 신도들의 믿음을 더욱 다지기 위한 행보의 실천, 뭣보다 타종교가 현 시대에 맞는 행보을 보인단 점에 대해서 불교인으로서 그간 불교가 지닌 소극적인 태도에서 좀 더 대중들과 사회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순 없는지에 대한 생각을 내포한 점은 같은 종교인들이라면 깊이있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단 느낌이 든다.
***** 세상에 대한 문제, 존재에 대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간들 그게 무슨 영예가 될 것이며 극락에 간들 무엇이 그리 즐겁겠는가 *****
***** 우리는 죽음이 나의 일이 아니라고 ,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만큼씩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
***** 죽음을 스승으로 삼아 삶과 죽음의 문제를 물어야한다.
'삶은 무상함-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변하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상한 것에 집착하면서 괴롭게 살아야하는가' 라고 물어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진실한 물음이 바로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다. *****
***** 종교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옳다고 생각한는 것이 과연 옳은지 끊임없이 회의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
***** 마음에서 힘을 빼라!
이는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고정관념, 오랫동안 익혀온 지식과 정보, 깃들여져 있는 습관을 모두 버리라는 뜻)
주지로서 그간 신자들에게 쉬운 불법을 행하는 과정에서 수행이란 즐겁게 해야 힘도 덜 들것이란 생각에 당신 스스로 말하고 싶지않았던 개인적인 일을 말함으로써 더욱 가깝게 느낄수 있도록 한 법문을 묶어서 내 놓은 것이기에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친근감 있는 책이란 생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불교의 용어 자체가 생소한 것이 많은 까닭에 책 뒤편에 주석을 달았지만 차라리 책 본문 아래에 위치를 두었거나 한 단어의 뒤에 괄호를 치고 해설을 달았다면 읽어나가는데에 많은 수고가 덜해졌을 거라 생각이 든다.
***** 깨질 듯 차가운 겨울
하늘에 솔개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먹이는 찾았는가?
허공을 비행하느 날개짓이 걸림 없다.
도터재를 넘어온 북풍 찬바람이 삼십 리를 쏟아져 내려온다.
천 년세월의 이끼 낀 탑전에 멈추어
부지런한 스님들 비짓을 피해 뒹굴던 겨울
낙엽 몇 잎을 휘감는다.
찬 기운이 정수리를 찌른다.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북노마드 2011-06-0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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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 감사드리며...
솔직한 얘기여서 가슴을 울린다. 울컥 눈물을 자아내기도 한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하고 싶은 말은 내뱉고야마는 대찬 성품은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이렇게 살아온 내력으로 진행된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불교와 수행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지는데 그 흐름에 젖어있다보면 나도 어느 새 수행자가 되어버린다.
깨달음의 근처도 못가는, 전혀 관계없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더운 여름 한 철을 어떻게 지내야하는 지를 이 명진 스님의 글을 통해 한가닥 빛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방학이 다가오면 으례 떠나던 여행을 올 여름부터는 딱 끊기로 했다. 여행을 가야할 이유보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 쉽지 않았다. 흠, 실연당한 기분이랄까.
명진 스님의 다음 글이 아프게 와닿는다.
(256)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살펴서 내 마음이 허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 마음이 허공 같이 텅 비어 공적한 것임을 알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이 하나의 작용일 뿐 실체가 없는 것임을 투철하게 깨달으면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대자유를 얻게 된다. 내 마음이 바로 허공인 그 자리는 능히 모든 것이 자유자재한 자리이다.
그러나 이 못나고 어리석은 존재가 그리 쉽게 달라지나. 여름 한 철을 수행한다는 생각에 지레 기가 꺾이고 만다. 스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꾹꾹 담아넣는다.
(270) 수행은 존재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를 간절하게 물어가는 것이 수행이다. 그 물음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 우리가 익혀서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정보와 그 정보를 통해서 판단했던 모든 사유의 굴레, 그리고 우리가 길들여져 있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여름, 나의 수행의 끝자락은 어디쯤 닿아있으려나.
nama 2011-07-2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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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불회, 다만 모름을 알 뿐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찰의 운영도 당연히 수행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천도재나 제사가 기본이 되는 ‘제사종’, 관람료를 받아서 운영하는 ‘관람료종’, 입시기도 위주의 ‘입시종’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거듭나야 한다.”
명진 스님은 언제나 거침이 없다. 해야 할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시는 분이다. 때문에 적도 많고 지지층도 두껍다. 정말 운이 좋게도 스님을 여러 차례 뵐 기회가 있었고, 봉은사의 주지로 계실 때 일요법회를 참석해 스님의 법문도 들을 기회가 종종 있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으면, 정말 종교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스님이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담은 책은 소박하지만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준다. 마치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처박고 세상의 모든 불의를 외면하려 한 나의 어깨를 후려치는 죽비라고 할까.
젊은 수행 시절, 당대의 스승이신 성철 스님께 버릇없이 덤비기도 했던 명진 스님. 자신이 깨우쳤다고 느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감에 넘쳤던 스님.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님은 진정 깨우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부처님의 길을 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욱 뼈저리게 느끼셨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안다는 것은 무엇이고,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는 주체는 누구인지, 그 누구는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배설을 하는 그 놈은 과연 누구인지. 여기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할 수 없다면 그 어떤 부귀영화도 한낱 거품에 불과하다는 사실. 스님은 지금도 끝없이 묻고 또 묻고 있다.
“다만 모를 뿐이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오직 모를 뿐이다. 그렇게 모름의 세계 속으로 끝없이 몰입을 해 가다 보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의 물거품이 전부 가라앉아 잔잔해진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 홀로 드러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알 수 없는 그놈이 밥을 먹고 알 수 없는 그놈이 잠이 들고 알 수 없는 그놈이 꿈을 꾼다. 허공같이 텅 비어져 알 수 없어진 그 자리, 오직 알 수 없는 그놈 하나만 남아서 알 수 없음과 내가 일체가 된 자리가 바로 진리의 바다에 직통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모든 앎이 끊어지고 오직 알 수 없는 그것만이 간단없이 이어지는 완벽한 비어짐의 자리에서 부처님은 별을 보았고 어느 조사 스님은 닭 우는 소리를 들었고 또 어느 조사 스님은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스님의 어린 시절은 언뜻 너무나 불행해 보인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젊을 적엔 사랑하는 동생을 먼저 떠나보냈다. 하지만 스님은 바로 그 죽음이라는 스승을 통해 뜨겁게 삶을 성찰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곧은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눠온 스님.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맡을 당시 천일기도를 통해 수행 중심의 참 불교를 실천으로 보여주신 스님. 천일 중 단 하루,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 절 밖을 나섰던 스님. 이명박 정권의 어처구니없는 실정에 매서운 죽비의 목소리로 호통 쳤던 단 한 명의 종교인. 천일기도 후 가장 먼저 용산참사 유가족을 찾아 위로해주셨던 스님.
나에게 명진 스님은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다. 하지만 막상 스님 앞으로 달려가 인사를 드린다면 그 변함없는 미소로 반겨주실 것을 안다. 사바세계에서 오직 나 하나만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지금, 끊임없는 용맹정진으로 많은 이들에게 견성의 길을 보여주신 이 시대의 선지식.
이제 봉은사를 떠나 다시 자유인이 되신 스님이 더 맑고 더 시원한 법문으로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길 바란다.
메틀키드 2011-08-2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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