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효 교수와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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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론] 김지하 칼럼(7/3 프레시안)
고영남
조회 수 : 10279
2008.07.04 (22:42:47)
줄탁(啐啄)을 생각한다
[김지하 칼럼] '촛불'은 후천개벽의 시작이다
등록일자 : 2008년 07 월 03 일 (목) 19 : 27
줄탁(啐啄). 정확하게는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무엇일까? 생명의 세계에서는 달걀 속의 병아리가 때가 되어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달걀 속에서 어떤 한 부위를 부리로 쪼기 시작하면 어미가 밖에서 그 쪼는 부위를 아주 정확히 쪼아줌으로써 달걀을 깨고 병아리가 태어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안팎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생명탄생의 신비로운 비밀이다.
불교에서는 해탈(解脫)의 선기(禪機)가 무르익은 수좌(首座)의 기미를 조실 스님이 눈치채고 결정적인 때에 봉갈(棒喝)로 충격을 가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것이고, 후천개벽론에서는 젊은 후천(後天)의 기운이 우주의 접근 속에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면에 노력을 집중할 때에 늙은 선천(先天)의 지혜나 그 문제 영역을 타격해줌으로써 안팎의 개벽을 성취시키는 것이다.
지금은 후천개벽의 기운이 다방면으로 무르익은 때다. 즉 문명권 전체의 대전환의 때다. 인류와 지구 또는 우주의 지화점(至化点) 즉 '오메가 포인트'다. 이 대전환의 주체가 나타날 때다. 인류사와 자연사, 생명사가 이 전환의 주체를 손 모아 기다리고 있다.
기후혼돈 등을 비롯한 세계사, 지구사는 종말적 대혼돈을 맞아 그 혼돈을 활용하여 그 혼돈을 빠져나갈 혼돈 그 나름의 독특한 질서를 기다리고 있다.
기독교의 종말관과 불교의 미륵회상이 그러한 사상이다. 19세기 한반도의 남조선 사상사, 남쪽조선에서 세계와 인류를 구할 새 민중사상사가 창조될 것이라는 전설에 따라 출현한 동학, 정역, 남학, 증산, 원불교 등이 바로 그 대전환과 새 세상의 도래를 예언한 후천개벽의 변혁사상이다. 이 변혁의 길에 대한 가르침은 기독교와 불교 등의 비폭력과 평화의 상상에도 이미 있다.
그리고 후천개벽의 남조선 사상사에는 그것이 거의 핵심내용을 이룬다. 그 한복판의 '혼돈적 질서'의 세상이 동학에서는 '지극한 기운-혼원지일기'로, 정역에서는 '여율(율려의 전복된 개념)'로, 증산에서는 '천지공사와 천지굿'으로 원불교의 소태산 사상에서는 '일원상법신불과 정신개벽운동'으로 제시되었다.
▲ 우리나라는 일반 청소년, 여성, 서민 일반이 개방적인 쌍방향 소통과 논쟁으로 가득찬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독특한 정신문화를 형성하여 이미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프레시안
서양과학문명의 발전에 따른 소통양식의 대변혁과 문화의 혁신과정에서 디지털 네트워크라는 사이버소통방식이 하나의 새로운 후천적 문화양식으로 등장했고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과는 또 다르게 우리나라, 그것도 일반 청소년, 여성, 서민 일반에게서 개방적인 쌍방향 소통과 논쟁으로 가득찬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독특한 정신문화를 형성하여 이미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바로 최근 '촛불'의 등장배경이다. 촛불은 2002년 월드컵 응원문화의 발전과정에서 축제 형식으로 등장해서 올해 쇠고기 문제와 대운하 문제의 정치 아젠다에 대한 직접민주주의 운동으로 그 차원을 높였다. 축제와 정치의 결합, 숭고한 새 '문화혁명'의 한 형태는 '정치적 상상력'의 한 양식이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후천개벽운동으로서의 거대한 네오 르네상스의 역동이 뜀뛰고 있다. 한민족은 고대 축제 때에 사흘밤 사흘낮을 춤추고 노래 부른 민족으로 이름나 있다. (중국 기록) 영고, 무천, 동맹의 축제 때와 고려 시에도 팔관이나 국중대회에서 계승된다.
이 천의무봉의 신기, 신명, 신바람이 이후 976회의 외국침략에 억압되어 <한(恨)>이라는 이름의 그늘진 내상으로 침전되어서 오늘에 이르렀다. 2002년에 바로 이 억압된 신기가 한의 일방적 지배를 뚫고 폭발한 것이다. 이 역사적 굴곡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촛불은 해명되지 않으며 제대로 접수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신기, 신바람이 <풍류>라는 이름의 문화적 축적의 기본이요 <신시>라는 이름의 시장과 경제, 호혜와 교환의 자연생명존중과 인간친교통합의 성스러운 시장의 추동력이요, <화백>이란 이름의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적 단상 단하의 합좌기구를 통한 장기간에 걸친 토론을 거쳐 전원일치에 도달하는 "직접-대의"의 결합구조의 기원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지금 살아난 것이다.
우선 촛불의 진원지인 인터넷 디지털 네트워크 문화의 특징을 일별해 보자.
1. 다층성과 다양성
2. 쿨함, 즐거움, 감동
3. 함축성, 직접성, 속도
4. 개체적 융합
5. 내부공생과 자기조직화
6. 종합정보학적 집합지성
7. 상고신화와 미래 멀티미디어 세계에로의 쌍방향 통행성
8. 뇌과학적 이진법에 토대한 '아니다, 그렇다(no-yes)'의 생명논리학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1. 다층성, 다양성은 혼돈과 개체성, 자유, 우연성, 창발성을 전제한다. 그럼에도 자연스런 융합으로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2. 쿨함, 즐거움, 감동 : 재미없고 멋없고 갈등 없고 즐길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다
3. 함축성, 직접성, 속도 : 키워드나 키포인트, 촌철살인적 포괄성과 함께 자기자신의 현실과 연결된 직접성, 그리고 나의 행동에 대한 반응이 쉽게 그리고 빨리 돌아와야 하는 속도가 중요하다.
4. 개체적 융합 : 현대 자유의 진화론의 특징이다. 개체가 먼저고 개체가 중심이 되어 개체개체들이 융합한다. 개체가 전제되지 않는 공동체와 협동의 강제는 거부된다.
- 몬드라곤 공동체와 기브츠 공동체의 쇠퇴. "계와 품앗이"와 개체성을 토대로 한 저축조합, 민중은행, 사회적 기업 등의 등장. 붉은 악마 때나 이번 춧불에서 그 주체세대와 시민들은 거의 다 개체 중심의 융합을 상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2002년에 '밀실의 네트워크'니 '방콩의 연대'니 하는 유머는 모두 이것이다. 동학의 '각지불이(各知不移)'의 원리다.
5. 내부공생과 자기조직화 : 내부공생은 개체 내부의 우주적 생명공생체(린 마글리스) 작동에 의해 개체 개체가 자기 나름으로 소규모의 생활형식(life-form)을 자기 조직화하는 원리로서의 진화개념. 동학 등 남조선사상사 공유의 사상이요 디지털 시대의 생활상식이다.
6. 종합정보학적 집합지성 : 우주시대에 새로운 다양한 학문 모두를 하나로 종합하는 지성의 네트워크. 개별성을 하나하나 그대로 살리면서 종합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의 획일화 통일과는 거리가 멀다. 우주선 '스페이스 비글'이 그 선례다. 개체적 창의를 전제한 집합이므로 그 지성은 에드워드 윌슨 따위의 '통섭', 쏘셜 다위니즘, 전일적 우주생명론 강조의 에코 파시즘 등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7. 쌍방향성에 의한 문예부흥 : 문화혁명 가능성(入古出新)
8. 변증법을 대체할 '아니다, 그렇다(不然基然)' 류의 생명논리학의 출현
촛불세대는 분명히 한 가지 입장만을 고수하지 않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을 존중한다. (그 점에서 이것은 수운은 개체적 실천(各各明)이나 그것은 세계사의 밝은 기운(明明其道)과 연결되어야 운명이다)
그들은 미국을 위협만으로도 도움만으로도 일면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반미도 친미도 없다. 위협이 될 때도 있고 도움이 될 때도 있다고 본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여러 가지 다른 상황과 여러 가지 선택조건을 우선 전제하고 인정한다. 한 사람도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이고 시민이면서 정치가이다. 개별적이면서 포괄적이고 우선 인간은 다양하다는 것을 기존 인식으로 전제한다.
이 전체 특징은 우선 뚜렷이 후천적이며 개벽적이다. 그런데 왜 인정되지 않는가. 왜 양극단의 폭력 악순환에 의해 훼손되고 괴로워지는가. 시위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요구 사항 속의 사상들.
<생명>
1. 광우병 쇠고기 반대 - 음식, 생활의 제일가치
2. 대운하 반대 - 생태, 환경의 중요성
3. 물문제 - 생명
4. 의료민영화 반대 - 생명
5. 공기업민영화 반대 - 생명의 중요성
6. 교육개혁 - 영성, 유년, 세계와의 일치
핵심은 생명과 생활.
<평화>
1. 채식 대안의 등장 - 생명, 평화
2. 미국, 유럽가축 동물사료 사육, 도축 비판 - 평화(생명관)
3. 미국과의 진정한 우정의 조건 형성의 요구 - 평화
아기 유모차 등장. 초중학교, 중학교 여학생, 여성, 주부, 광범의 청소년 주체
<풍류>
1. 비폭력 일반화 - 생명
2. 유머의 일반화 - 평화
3. 유희, 축제, 제의 - 프리드리히 실러의 문화혁명론
풍류의 새 가능성. 정치, 경제, 도덕, 자연 중심의 프랑스혁명 시월혁명의 비판
4. 밤새운 토론
- 화백의 가능성. 단상, 단허의 합좌시도
- 가르치는 자도 학생도 없고 모두가 토론자다
- 장시간 토론에 의한 전원 일치에의 지향
5. 음식나눔 - 신시장터의 등장가능성
6. <경향신문>이 전하는 바대로라면 디지로그(디지털아나로그문화) 출현 가능성과 함께 현실 삶에서의 동학이나 불교의 중도나 채식 가능성도 논의됐다.
- 방향을 청와대 쪽으로 한 것은 아직도 낣은 정치관의 반영
- 컨테이너 등장 결과
- 촛불의 방향 : 사방, 팔방, 시방으로 전우주 전세계로 열려 있어야 하고
- 토론 등 연관. 한 연관으로 일방 집중돼선 안 된다.
- 일방집중(연사, 대책회의 멤버, 사회)은 세뇌의 시작이다.
- 우주 전 방향으로 소리 주장, 유희, 촛불, 노래, 농담, 잡담까지도 <사방치기> <사방뿌리기>(탈춤과 같다)가 되어야 한다.
- 마당이 원형이면 일방적 폭력선동은 안된다.
(누가 '어디로 가자' 소리지르면 한 귀퉁이에서 '너나 가거라' 대답하면서도 반대로 기이하게 '비판적 갈등'이 있다. 이것이 '생명 평화' 촛불비폭력의 힘이다)
6월 10일 이후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한다. 한쪽은 낡아빠진 보수 꼴통들이요 다른 한 쪽은 좌파 시위꾼들이다. 이것은 순수한 촛불을 훼손했다. 바로 이 폭력선동자, 폭력조장자 양쪽을 나는 <까쇠>라고 이름지어 부르기로 한다.
▲ 촛불세대는 분명히 한 가지 입장만을 고수하지 않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을 존중한다ⓒ프레시안
프랑스에는 데모 때마다 복면을 쓰고 나타나 폭력선동으로 그 결과를 난장판으로 귀결시키는 파괴자들을 가리켜 <Casseur. 까쇠르>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키워드>로 떠올리기로 한다. 이 <키워드>(촛불세대의 문화)를 통해 사태전모와 위험을 제거하고 비판해야 할 문제점을 순식간에 이 혁명과 인식해야 하는 것이 신세대 문화이다.
<까쇠>는 '까는(파괴하는)' '까부는(난동부리는)' ' 까발리는'선동만 하는)'것을 직업으로 하는 놈(마당쇠 따위의 쇠)을 뜻한다. <까쇠르>를 이제부터 <까쇠>로 부른다. <까쇠>는 정부에도 반정부좌파에도 있다.(종북전술단위) 이들 목적은 아무 이익도 없는 (시민에게) 파괴뿐이다. 또 인터넷에도 있고 활자 신문에도 있다. 인터넷에는 <댓글알바>가 그것이고 신문에서도 <극우선동꾼>이다. 이것을 대중화시키는 것은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나는 최초에 '줄탁동시'에 관해 말했다. 촛불의 후천적 개벽 요구가 달걀을 깨고 현실적으로 <개벽>하고 나오려면 바로 이같은 <까쇠>들이 설치는 폭력적인 어둠 속에서 <선천>과 연결된 <후천>이라 하더라도 종교, 교육, 문화와 연결된 기존세력, 즉 달걀 밖의 어미닭이 달걀의 바로 그 부위(정치문제)를 동시에 쪼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개벽은 <까쇠>들이 주장하듯이 선천을 완전히 섬멸하는 후천만의 단독행동이 아니요, 수구권력자들이 맹신하듯이 후천의 난동을 철저히 <까부수는> 낡아빠진 선천만의 보수주의적 군림이나 일부 부유층의 독점과는 인연이 없다.
해월은 개벽이 후천을 중심으로 하되 (달걀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병아리가 주인공이다) 선천의 어미(기존 지식인, 종교인, 정치인)가 새롭게 권리를 정립함으로써 선후천이 협동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거대한 고대회복. 새로운 땟길(문예부흥)로서의 혁명(문화혁명)이요 우주와 역사변동이다.
수운 최제우의 동학은 '등불이 물 위에 밝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고 기둥은 낡았으나 아직도 힘이 남았다' 또는 "인의예지는 공자 성인의 가르침이니 버리지 말고 수심정기(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는 한국 고대 이래의 선도사상)는 내가 다시 정하는 바이니 따르라"고 했다.
동학의 조직이 포(包)와 접(接)의 이중구조로 돼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치다. 접은 후천 동학꾼의 기초 조직이고 포는 유불선 명망가들(유학자, 스님, 산에서 수련하는 도사)의 전선조직인 것이다.
경전도 한문과 한글 두 종류가 있고 주문도 두 종류다. 모두 다 식자층과 민중, 어른들과 아이들, 나성 가부장과 여성 주부들 대상으로 이중화되어 있고 둘 사이의 공동해석을 겨냥하는 해월 최서형 선생 등의 수많은 현실적 통합해석과 가르침들이 있다.
원불교에서도 소태산 선생의 진리(계시)와 실천적 삶의 직결된 관계(백지혈인의 기적 직후 며칠 만에 가장 현실적 문제인 저축조합으로 운동을 시작하는 역사) 또는 일원상 법신불의 대혼돈 원리가 모은 운동을 통해서 또한 개간사업, 교육사업을 통해서 질서화하는 것. 또는 일원상 법신불의 수양원리에 입각해서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의 개별적, 다층적인 정신 개벽운동을 전개하는 복합관계 등이 그것이다.
강증산의 주장도 이와 비슷하니 동서양 모든 종교 신들의 원탁회의인 통일신단을 기초로 해서 최초의 세계 정치기구인 UN의 이상적 모델이 세계 조화 정부라는 '혼돈적 질서'를 추구했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동학과 같은 동세개벽(폭력용인)이 아닌 정세개벽(비폭력 평화변혁)으로 나아가되 개벽은 개벽인 점 등이다.
나는 이제 결론 부분에 왔다. 유모차 타고 나온 아기, 젊은 어머니들, 초등학교 중학교 여학생들. 그 어여쁘고 아름다운 촛불의 춤과 노래. 이 문화와 유희를 통한 생활 정치ㆍ생명 정치의 현실 변혁에의 요구와 지식인, 종교인 등의 도움이 연결된 이 몇 달 간의 촛불 -촛불에 대한 폭력의 훼손 과정- 뒤를 이은 종교에의 비폭력 평화 촛불시위의 과정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남조선 사상사의 두 번째 큰 흐름인 '정역(正易)'은 1879년에서 1885년 사이에 충청도 연산땅 김일부(金日夫) 선생에 의해 공표된 후천개벽기 한국과 민중과 아이들과 백성들과 세계 인류 전체와 지구 우주 중생 모두의 신비과학, 즉 역(易) 철학이다.
정역에는 후천 개벽기인 '기위친정(己位親政)', '십일일언(十一一言)', '십오일언(十五一言)'이라는 세 마디가 나온다. 기위친정은 개벽이 시작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던 것들이 임금처럼 정치를 담당하게 되는 큰 전환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럼 십일일언은 무엇일까? 이는 이제껏 매만 맞고 구박만 받던 나이 스물 미만의 청소년 어린이들과 젊은 여성들이 정치를 담당한다는 뜻이다. 바로 고대정치다.
십오일언은 무엇일까? 바로 이러한 때에는 기존의 지식인과 종교인, 정치인은 뒤로 물러나 교육, 문화, 종교에 몰두하면서 청소년과 여성의 정치를 음으로 돕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십일일언과 십오일언 둘 다 뒷부분에 일언(一言), 즉 한 마디가 똑같이 붙어있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십일'의 청소년ㆍ여성 정치와 '십오'의 중년ㆍ남성ㆍ전문 지식인의 지혜와 경험, 영성적 능력이 이심전심으로 언어, 즉 '진리'를 통해 소통한다는 것이다.
▲ 나는 촛불에서 비움으로, 그 비움을 근거로 동학의 그 '모심'으로 전개되는 한 마디(一言)를 배운다. 또 광장을 지키는 것은 그 광장이 화백과 선서와 풍류의 새 생명사상의 후천개벽적 참 민주주의의 성소(聖所)라는 뜻을 배운다. 그 핵심에 생명이 있다.ⓒ프레시안
바로 이 한 마디, 즉 '일언'이야말로 달걀 속 병아리의 쪼는 행위와 달걀 밖의 어미 닭이 그에 맞게 같은 부분을 쪼아주어 달걀을 깨고 병아리가 탄생하는 개벽과 전환의 비밀스런 부분이다. 개벽이 임박했을 때는 바로 이 '한 마디(一言)'가 가장 중요한 노스님의 몽둥이요 호령 소리다.
촛불이 폭력에 빠져들어 선을 넘었을 때,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해서 옛 군사정권의 상투적 전술인 마타도어처럼 군대가 진주할 수 있는 계엄령 선포의 사유를 만들고자 너트며 몽둥이를 쓰고 물대포, 방패 등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정체불명의 '까쇠'들이 그것을 조장하는 폭력의 악순환 과정에서 촛불은 거의 꺼지려 했다.
이 절망의 순간에 종교계의 비폭력 촛불 시위가 개입한 것이다. 지난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촛불시위를 시작으로 3일 아침 원불교 교무들의 침묵의 기도집회가 동참했다. 그리고 같은 날 밤 평화 애호 개신교 목사들과 오는 4일 불교 스님들이 연이어 비폭력 평화 촛불 시위에 들어선다. 바로 이것이 어미 닭이 병아리와 똑같은 달걀 부위를 쪼아줌이고 십오일언의 그 한 마디(一言)다.
사제단은 지난 30일 절망한 촛불들에게 "괴로웠지요. 위로하러 왔습니다"고 말했다. 비폭력, 평화, 고시철회 주장에 이어 청와대가 아닌 남대문 행진 뒤 밤늦게 해산을 종용했다. 정부와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폭력을 중지했다.
다른 종교단체들도 이미 똑같은 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그들이 왜 어미 닭이며 선천임에도 십오일언인지 보자. 2008년 7월 2일 수요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사제단 전종훈 대표신부의 말이다.
"어린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생명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먹는 것에 무슨 이념이 있고 좌우가 있는가. 우리 국민은 누가 앞에서 선동한다고 쉽게 손뼉치고 따라가지 않는다. 사제들은 촛불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바른 국민인가 뼈저리게 느꼈다. 광장에 모인 촛불이 이를 증명한다. 색깔론은 이제 너무 상투적이다.
사제단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우선 촛불 민심의 발원지인 광장을 지키며 기도하고 매일 밤 미사를 열 것이다. 광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고 매일 촛불이 모이는 곳이다. 광장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이 자리가 무너지면 국민들의 마음도 무너진다.
'섬긴다'는 말은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섬겨야 한다. 단식은 '비움'이다. 비워야 그 안에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비우지 못하면 다른 목소리와 주장을 담아낼 수 없다. 이 대통령도 그 점을 좀 알았으면 한다."
나는 촛불에서 비움으로, 그 비움을 근거로 동학의 그 '모심'으로 전개되는 한 마디(一言)를 배운다. 또 광장을 지키는 것은 그 광장이 화백과 선서와 풍류의 새 생명사상의 후천개벽적 참 민주주의의 성소(聖所)라는 뜻을 배운다. 그 핵심에 생명이 있다.
불교 스님들 역시 비폭력, 평화를 강조하고 염주, 촛불, 연등을 갖춰 광장에서 108배를 올린다고 한다. 불교의 촛불 참가는 아마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문화적 개벽을 가져올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다시 본격적으로 다루겠다. 약속한다.) 원불교는 '비폭력으로 생명 평화를!'의 현수막을 펼쳤다. 이 모두가 '십오일언'이다.
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는 이어 말한다.
"우리는 인격의 크기와 예의로 싸워야 합니다. 오늘 행진에서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미소로 서로를 품을 수 있도록 합시다. 어제 우리가 불타버린 숭례문으로 행진했는데, '숭례'는 예를 높인다는 뜻입니다. 예의 첫 번째는 무엇을 먹을 것이고 무엇이 못 먹는 것인지를 가리는 것입니다. 시궁창에 떨어진 쌀 한 톨도 주워 먹을 수 있는 것이 예입니다.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은 먹지 않는 것 또한 예입니다."
'십일일언'은 어떤가? <한겨레> 보도를 보자. 대답 없는 정부를 향해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목 놓아 외치던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시민들은 때로 침묵이 함성보다 더 강렬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시민들은 전날에 이어 이 날도 웃음과 박수 속에 촛불 집회의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았다.
충북 청주에서 올라왔다는 한 대학생은 "사제단이 함께 해 시민들의 마음속에 다시 촛불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 떠오른 것 같다"며 "불법과 폭력이라고 우리를 매도한 정부와 보수언론에 다시 맞설 자신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노정석(47) 씨는 지하철역에서 산 장미꽃을 사제단에 건넸다. 노 씨는 "사제단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평화로운 촛불의 큰 힘을 되찾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촛불 시위는 밤 9시 40분께 함성과 노랫소리 속에 끝났다. 시민들은 "너무 일찍 끝나는 것 아니냐"면서도 웃음을 머금고 집으로 향했다.
▲ 역사의 차원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는 없으나 후천개벽의 대세, 십오일언과 십일일언의 중대성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프레시안
신민철(26) 씨는 "학교에서 공부 못 한다고 꾸지람 듣던 학생이 집에 와 엄마에게 '착하게만 자라다오'하는 위안을 받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신 씨는 "50일 남짓 시청을 벗어나며 세상은 적막했다. 그 때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힘들어 할 때 사제들이 지지해줌으로써 다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일 새벽 최창열(26) 씨는 "이명박 정부와 우리가 무슨 정치적 이념이 달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다만 잘못된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옳지 못한 정부를 규탄하는 것입니다"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분명한 것은 이 개벽 시대, 다가오는 다민중의 시대에는 십오일언에 한 마디(一言)가 있다. 십오일언의 반응 뒤에야 비로소 침묵이 살아있는 말씀이 된다는 점이다. 불교의 4일 시위는 아주 장중하리라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더욱 아름답고 영적인 해방의 문화가 촛불 주위를 에워쌀 것이다. 나는 이 점을 다시 공부해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한겨레> 칼럼에서 연세대 정치학과 박명림 교수는 이명박 퇴진을 반대하고 있다. 그대로 두고 이번에 나타난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 의견에 동의한다. 나 역시 동감이다. 그리해야 한다. 나라를 생각하자.
그러나 어떤 보수들은 종교계의 촛불 참여를 마치 커다란 패륜 행위처럼 매도하고 있다. 한참 웃었다. 입장이란 무서운 조건이다. 이 신문 유신시절엔 아직 없었는가?
정부와 여당이 더 우습다. 평화와 화해의 실마리가 나타났는데 완연히 낙담 일변도다. 정치력이라고는 전무한 집단이다. 중상모략 수준이다. 공적으로는 의전적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사적 자리에서는 당황감 일변도라는 것이다.
'다 돼가는 판에 곤혹스럽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청와대가 술 먹고 춤추는 데 쯤인듯 착각하는 사람 말투다. 나라 생각은 조금도 없다. 종교계의 가세가 저희들을 귀찮게 한다는 정도 뿐이다.
경찰은 어떤가? "'불법, 폭력 시위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한 검ㆍ경의 태도를 머쓱하게 했다"고 보도된다. 아마도 이 따위 '머쓱'해지는 태도의 근본 원인은 정권이나 경찰 지휘부의 그때그때 제못대로의 단속 지시였을 뿐, 근본적으로 법과 평화, 비폭력의 자세로 시민을 인도하는 경찰들의 지혜롭고 민주적인 '가이드 라인'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국회는 이 점부터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다.
역사의 차원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는 없으나 후천개벽의 대세, 십오일언과 십일일언의 중대성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시절도 개벽기요, 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촛불과 시민들이 끝끝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며 석별하며 제거시켜야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터넷과 공중파, 활자신문과 길거리, 경찰과 정부요 시민단체와 정당, 그리고 시민들 도처에서 복면을 쓰고 폭력 경찰과 부딛쳐 싸우면서도 동시에 불만 지르고 내빼는 '까쇠'들을 경계하는 일일 것이다. 온라인까쇠, 오프라인 까쇠들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 하기야 불난 집에 들어와 도둑질 하는 놈들도 있는 법이니!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과 동학, 불교, 역철학의 '이중 구속(double bind)', 그 해결책인 '이중 통합(double message)'과 양리성, 중도, 이중성, 철학으로 양극단의 폭력의 악순환을 넘어서는 중도 보수의 원리가 나올 차례다.
마지막 한 마디, 일언(一言)이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정부에 있다.
정신을 차려라.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 2~3년 안에 남북을 포함한 동아시아 태평양에 거대한 정치ㆍ사회ㆍ경제ㆍ군사적 대변동이 올 것이다. 이어서 7~8년 안에 온난화와 바이러스 공격, 대전염병 창궐, 지진, 화산 등 생태적 대변동이 온다. 정신 차려라. 폭력을 유도해서 정치적 입지만 그때 그때 확보하려는 음흉하고 낡아빠진 꼼수정치를 빨리 포기하라. 이명박 정부가 제 잘못을 종교계까지 포함한 '10년 좌파 정권'에 떠넘기는 것 역시 까쇠다.
촛불을 물대포나 구속으로 막을 수 있는 시절은 이미 갔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에 대한 징벌과 복수는 촛불이 아니라, 종교가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극우파시스트 군사집단이나 그들과 별 차이 없는 자칭 좌파의 엉터리 폭력주의자들에게 당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결국은 까쇠가 문제다. 절에서 사용하는 몽둥이는 쇳덩어리가 아니라 대나무, 죽비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승리'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승리가 아니라 시작이다.
미국 예일대 사회학자인 제프리 알렉산더 교수가 "종교적 상징인 촛불과 순수의 상징인 10대 소녀가 만나 이 운동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환상적인 일이다"라고 극찬한다. 이것은 개벽의 시작이다. 시작이다.
* 이 글은 김지하 시인이 4일 오후 원불교 은덕문화원에서 행한 소태산 아카데미 강연의 전문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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