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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신학의 오늘과 내일(해암신학연구소, <교회와 신학>2호, 201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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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암신학연구소20140930]
한국 진보신학의 오늘과 내일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목차-
1. 한국 '진보신학'의 호칭문제
2. 한국 진보신학의 특징
3. 한국 진보신학의 오늘의 현황
4. 한국 진보신학의 내일의 과제
1. 한국 '진보신학'의 호칭문제
주어진 논제는 '한국 진보신학의 오늘과 내일' 이다. '진보신학' 이라는 표현대신에 '진보주의 신학' 혹은 '자유주의신학' 이라는 표현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진보신학'이라는 짧은 표현을 쓰기로 한다. 왜냐하면 이 호칭은 한국 기독교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신학의 경향성인 통칭 '보수신학'과 비교하는 일반적 호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호칭에 불과하지만, 호칭이란 어휘의 개념이 지닌 상징성과 그 어휘가 사용되는 언어공동체 안에서의 '전이해'(前理解) 때문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가령 한국 기독교계에서 보수주의 계열은 '보수신학'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지만 '진보신학'과 차별화 하면서 기독교 정통신학을 지키는 '복음주의신학'이라는 어휘와 '보수신학'을 동일시하려 든다. 그리고, '진보신학'은 통칭 '자유주의신학' 혹은 심할 땐 '인본주의신학' 이라는 선입관을 갖기 쉽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신학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 또렷이 하려는 의도로서 '복음주의신학'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더 선호할 경우에, 신학적으로 다른 입장을 하는 신학운동과 신학자들은 '비복음주의적'이라는 신학적 가치판단을 암묵적으로 주입시키는 독선적 입장이 은폐되어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사에서 오순절 성령운동의 한 분파로서 '하나님의 성회' 교단이 '순복음교회'라고 교회간판을 내걸었다고 해서, 장로교나 감리교나 성결교등 여타의 다른 교단소속 교회들은 '순복음'을 신앙하는 교단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듯이, 어휘의 선택과 그 오남용은 보다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임이 한국기독교사에서 드러난 것이다.
일부 보수주의 교단의 목회자들이 한국의 진보적 신학운동을 '자유주의신학, 신신학, 인본주의신학'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세계 신학의 역사 혹은 기독교 사상사의 흐름에 입각한 공정한 사고가 아니다. "계시된 경전의 권위와 정통교의를 무시하고 신학을 신학적 규범에 제약을 받지않고 멋대로 자유롭게 하는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이 아닌가?"라는 판단은 소박한 생각이다. 세계 각국의 신학계에서 말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란 엄정한 역사적 기간동안 형성되었던 유럽에서의 신학운동에 대한 전문적 용어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유주의신학'이란 18세기 계몽주의 운동이 사상계 전반을 강타한 이후, 19세기의 유럽 종합대학교 신학부의 신학자들의 반응으로서 슈라이에르맛허, 리츌, 하르낙 등으로 대표하는 신학사상 흐름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적 신학운동은 세계신학사에서 말하는 의미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보수주의 신학이 비판하는 불트만, 바르트, 틸리히,니버로 대표되는 20세기 초반의 신학운동은 18세기 '신교 정통주의 신학'과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동시에 극복하려는 신학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념의 혼동과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이 글에서 '진보신학'이라 함은 어떤 신학적 입장, 혹은 신학함의 경향성과 특징들을 공유하는 신학인가를 먼저 개념정리 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국의 '진보신학'이라고 할 때 다음같은 5가지 특징, 입장, 혹은 경향성을 지닌 신학운동을 의미한다.
2. 한국 진보신학 흐름의 특징
첫째, 한국 개신교권 안에 앞으로 소개할 다양한 진보신학운동의 흐름이 있지만, 그들의 공통적 특징으로 '성경연구에서 비판적 연구방법 수용'이라는 특징을 제일 먼저 들수 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보수신학 진영'과 '진보신학 진영'의 장점을 아우르려는 소위 통전신학 , 중도신학, 중제신학에 해당하는 신학자들을 '보수신학 진영'에 속한다고 분류할 것인지 진보신학 진영에 속한 다고 분류할 것인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장로교신학대학 총작직을 수행했던 이종성교수나 현재 총작직을 수행하는 김명룡교수를 보수와 진보 어느진영 신학자라고 분류할 것인가 질문을 받는다면, 이 글에서 필자는 '진보진영'에 속한다고 분류할 것이다. 왜나하면 신학계나 정치계에서 흔히 '진영논리'에 입각한 패가름을 필자도 아주 싫어하지만, 그 두분의 조직신학은 현대20세기 성서학계의 '비평적 성서연구 방법'을 열린 맘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느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무리 사회참여와 현실비판적 역사참여 활동을 펼치더라도, 그 분의 성서관이 20세기 성서학계가 이룬 '비평적 성서연구방법'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보수신학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경에 대한 비판적 연구수용'이라 함은, 소위 학계에서 고등비평이라고 총칭하는 비판적 연구방법들 예들면, 문헌비판 〮역사비판 〮편집비판 〮 전승비판 〮수사비평 연구등 모든 비평적 성경연구태도를 "신구약 상경이 전하려는 복음의 참 본질을 밝혀내기 위하여" 연구방법으로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한국 기독교계의 소위 '보수신학' 일명 '복음주의신학'이란 성경무오설 교리를 가장 중요한 근본교리로 삼는 토대주의 신학인 것이다. '보수신학' 계열안에도 다양할 편차가 있겠지만 공통적 특징은 앞서 언급한 현대 20세기 세계신학계가 연구하는 '비평적 성경연구방법'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성경무오설' 이라는 근본교리에 충실하기 때문에 진화론을 거부하고,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현대사회윤리의 상황적 응답을 반복음적이라고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이 글에서 한국신학계의 진보주의 신학 특징으로서 현대문명의 위기적 ‘삶의 상황’에 복음적 입장에서 대답하고 복음을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변증법적 신학’ 입장을 취한다.
20세기 초, 소위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로서 촉발된 일명 ‘신정통주의 신학 운동’과 보다 더 자유로운 신학운동은 모두 강렬한 ‘변증적 신학과제’를 인정하고 그 책임을 수행하려는 학문적 운동이었다. 구미 신학자들을 예들면 칼 바르트, 폴 틸리히, 라인홀드 니버, 루돌프 불트만, 에밀 부룬너, 본 훼퍼등 20세기 전반기에 크게 활동했던 신학자들은 모두 그들 나름대로 ‘변증접적 신학’ 을 수행했다.
‘변증법적 신학 방법’이란 두가지를 함의한다. 그 한가지는 계시적 성경진리를 인간 삶의 정황을 무시하고 변함없이 ‘계시적 진리’로서 선포만하지 않고, ‘상황’과의 상호대화 속에서 기독교진리를 새로운 인간상황 안에 증언한다는 점이다. 또다른 한가지는 변증법적(dialogical) 신학방법을 수행하면서 복음의 구원과 진리를 옹호하는 적극적 과제 즉 복음진리의 변증(apologetic) 임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어느 신학 교육기관에서 혹은 신학자가 현대신학의 방법적 특징으로 ‘변증법적 신학’을 수행했던, 앞서말한 20세기 초 신학거성들을 비롯하여 진화론적 신학, 종교다원론적 신학, 생태여성신학, 아시아의 빈곤신학등 세계신학계 운동에 긍정적으로 경청한다. 예들면, 신학자 떼이야르 샤르뎅, 죤 캅과 죤 힉, 인도의 사마르타와 대만의 송천성, 영미 여성신학자들 로스마리 류터나 맥 페이그를 강의실에서 자유롭게 논의 할수 있는 신학이 아니라면 진보신학 기관이거나 진보신학자라고 할 수 없다. 한국신학계에서 진보적 신학이란 포스트모던니즘과 대화하고 포스트모던니즘 안에서 복음을 변증하려는 적극적 신학을 의미한다.
셋째, 오늘의 한국 신학계에서 ‘진보신학’이라 함은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 진영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오늘의 구원’을 강조하는 선교신학 정신에 긍정적으로 참여하는 속칭 ‘에큐메니칼 신학’을 의미한다.
오늘의 한국신학계에서 그 신학교육기관 혹은 신학자가 ‘진보신학’인가 여부를 가늠하는 쉬운 기준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강조하는 교회의 일치연합 운동, 교회들의 사회적 책임강조, 타계적-미래적 구원만이 아니라 ‘오늘-여기’에서 구원을 강조하는 상황적 신학운동을 지지하는가의 입장으로서 구별된다.
넷째, 한국신학계에서 ‘진보신학’은 신학을 하나님 백성들의 순례자적 신앙고백으로 이해하여 ‘한국적 우리신학’ 정립에 긍정적으로 복무하는 공통특징을 지닌다.
보수신학의 대부였던 박형룡박사가 보수신학은 “선교사가 전해준 복음적 정통신학을 그대로 보수하는 것”을 신학자의 기본 입장으로 삼았다면, 진보신학은 ‘순례자의 신학’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복음의 진리’는 영원하지만 그것을 해명하고 변증하는 ‘신학들’은 어디까지나 시대적 상대성을 갖는다고 믿는다. 신학체계를 절대불변한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학문적 시도로서의 ‘신학 ’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하는 반복음적 피혜를 초래한다고 확신한다.
한국의 ‘진보신학’은 우리들에게 많은 좋은 점들을 가져다준 구미신학들, 예들면 라틴적 스콜라신학,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영미신학, 독일신학, 그리고 남미의 해방신학등이 필요하고 귀중하듯이 동아시아의 신학과 한국신학이 필요하고 당연하다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동아시아-한국적 삶의 자리와 토양 속에서 주체적으로 ‘한국신학’을 말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다섯째, 한국신학계에서 진보신학은 21세기 지구적 상황속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기존의 ‘십자군의 영성신학’을 극복하고 ‘십자가의 영성신학’의 재정립에 복무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신학의 ‘패러다임전환’을 공통적으로 지향한다.
‘십자군의 영성신학’이라 함은 교회의 선교적 사명의 일환으로서 진행하는 신학함의 태도에 있어서, 타문화및 세상 정복적 태도와 교회의 무한성장 번영을 복음적 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말한다. ‘십자가의 영성신학’이란 정복이 아닌 섬김, 성장번영이 아닌 낮춤과 비움, 금관의 예수가 아니라 가시관의 예수를 더 주목하는 신앙적 태도를 의미한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대로, 이 글에서 말하는 한국 신학운동 흐름에서 ‘진보적 신학들’이라고 분류하는 기준을 5가지로 삼았다. 다시 정리하면 ① 비판적 성경연구 방법수용 ②변증법적-변증적 신학입장 ③ 에큐메니칼 신학정신 ④ 한국적 우리신학 정립 ⑤ 십자가의 영성 강조, 이상 5가지 이다.
위에서 말한 진보신학 특징들을 감안하여 필자는 다음장에서 아래의 다섯그룹을 한국의 진보신학계 현황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i) 통전적 조정신학 운동 (ii) 민중지향적 사회-정치신학 운동 (iii) 종교문화신학 운동 (iv) 여성신학 운동 (v) 생태학적 신자연신학 운동 등이다.
이상의 5가지 그룹의 한국 신학계 ‘진보신학 운동들’의 현황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언급하는 신학자 이름들은 그 분야의 특징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선택한 신학자 이름들 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한국 신학계는 이 글에서 지면관계로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수많은 귀중한 신학자 지성집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구약 성서신학자들의 활동은 『신학과 교회』창간호와 이번호 특집에서 각각 자세하게 다루는 전문적 연구논문이 있으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신학자 명단 언급은 하지 않는다.
3. 한국 진보신학 운동의 현황
(1) 통전적 조정신학 운동
한국의 진보적 신학운동의 첫 번째 흐름의 특징을 명시하기 위하여 필자는 ‘통전적 조정신학’(integrating modulation Theology)이라는 어휘를 일부러 만들어 쓰려한다. 이 어색한 신조어 명칭에서는 ‘통전’(integration, 統全)이라는 단어와 ‘조정’(modulation,調整)이라는 두 개의 어휘가 이 진보적 신학지성 집단의 특징을 지시한다. 통전(統全)은 본래 교육심리학에서 중요하게 사용하는 단어로서 한인격체가 원만한 성숙성을 가지고 정서적, 도덕적, 철학적 측면에서도 균형과 통합을 이룬 상태를 의미한다. 조정(調整)은 본래 음율, 음색, 음조등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들리도록 조절하는 일과 많이 관련되는 단어이다.
신학의 특징을 ‘통전적 조정신학’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극단적인 진보나 보수적 사고를 통전하고 조정하려는 신학이며,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부분적 진리측면을 강조하는 신학적 견해들을 종합(synthesis)하여 보다 ‘건전하고 온전한 형태의 신학’을 형성하려는 신학을 말한다. 이러한 ‘통전적 조정신학’ 작업에 특별한 관심과 업적을 남긴 한국 신학자로서 장로회신학대학장을 오랫동안 맡아 수고하셨던 이종성 박사의 신학작업을 예로들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신학 저작물들은 ‘독창적 새로움의 신학’ 이 아니지만, 길게는 그리스도교 신학사 전체를 섭렵하고 짧게는 20세기 세계신학운동의 다양한 흐름들을 이해 한후에, 그 나름대로 ‘통전적 조정신학 체계’를 저술물 속에서 서술하였다.
짧은 한국 개신교 역사 안에서 불행하게도 보수와 진보라는 두 신학진영이 갈라지고 서로 각각의 ‘진영논리’에 갇혀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향성을 노정하는 현실에서 한국의 ‘통적적-조정신학 운동’은 건전한 신학지식을 목회자들과 신도들에게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큰 공헌을 하였다. 일부 급진적 진보신학자들 중에서는 이종성박사로 상징되는 중도적 신학을 통전적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만, 한국의 ‘진보신학’의 한 흐름으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가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2장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진보신학의 범주’에 어떤 신학운동을 포함할 것인가에 대항 5가지 조건중에서 적어도 4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성서비평학 수용, 변증법적 신학, 에큐메니칼 신학, 생태학적 여성신학과 과학신학에도 긍정적 입장을 가지므로, 이종성교수의 신학을 ‘보수신학’이라고 부른다면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 생존하신 한국 신학계 원로 신학자들 중에서 ‘통전적-조정신학 운동’ 에 속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신학자로서 예들면 해암 이장식 박사를 비롯하여 조종남, 김성수, 민경배, 강근환, 박근원, 선한용, 황승룡, 이형기, 정장복, 서정운, 이원규, 송순재, 윤응진, 박종천, 최인식교수들을 예로 들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신학계에서 ‘통전적-조정신학 운동’의 대표적 신학자는 조직신학 영역에서 김균진교수, 김명룡교수, 오영석교수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김균진 교수는 『기독교조직신학』(1권-5권)을 완성함으로서 20세기 전세계 진보적 신학흐름을 총정리했으며, 특히 말년에 집필한 『죽음의 신학』이라는 명저를 집필했는데, 긍정적 의미에서의 ‘통전적-조정신학’의 면모를 유감없이 나타내고 신학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김명룡교수는 선배 이종성박사의 뒤를 이어 학문적으로나 신학교육 행정면에서 한국 신학계의 ‘통전적-조정신학자’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본다. 그와 김균진 교수와의 공동 노력에 의하여, 20세기 후반기 유럽 조직신학계의 대표적 학자 율겐 몰트만의 중요한 저작들이 10여권 번역되어 신학계와 일선 목회자들에게 큰 공헌을 하였다. 오영석교수도 그의 저술물을 통해서 바르트-몰트만 신학계보의 개혁파신학의 흐름을 건전하게 전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한국 진보신학 흐름중 첫 번째 운동으로서 ‘통전적-조정신학’은 칼빈의 개혁신학 전통, 루터의 종교개혁전통, 웨슬레 신학 전통의 본래성과 그 오늘의 의미를 창조적으로 이어가려는 신학운동이다. 성서비평학과 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세속사회의 도전들에 열린맘으로 응전하면서도 종교개혁자들의 ‘성서적 신학’이 전승해주는 그리스도교 복음의 고유성과 우월성을 굳게 지키려는 심정을 공유한다. ‘복음과 상황’이 만날 때 대등한 관계의 해석학이 아니라 복음 우선적이며, ‘기독교와 이웃종교’가 대화할 때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 유일성을 약화시키지 않으려 한다. 그러한 신학적 입장 때문에, ‘통전적-조정신학’은 충분히 그리고 철저히 변증법적 해석학 공리를 준수하지 않으면 ‘정통보수적 신학’의 연장이 아닌가라는 비평을 받기도 한다.
(2) 민중지향적 사회정치신학 운동
필자는 한국 진보신학운동의 둘째번 흐름으로서 ‘민중지향적 사회정치신학’을 언급하고자 한다. 복음운동은 주기도문의 핵심화두 처럼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는 신앙고백이요 삶이요 운동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언은 래세적이고 역사초월적 측면 못지않게 현세적이고 역사 내재적 측면을 지닌다. 엄밀하게 말해서 “종말론적이 아닌 신학은 기독교신학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사회정치적 증언을 소홀히하는 신학은 충분히 기독교적 신학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민중지향적 사회정치신학 운동은 한국적 삶의 총체적 자리안에 하나님의 정의, 자유, 평등, 평화가 온누리에 실현되어 실질적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요10:10) 일에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힘쓰는 신학이다. 한국적 사회정치신학에 참여하는 신학자들이 모두 민중신학회 회원도 아니고 민중신학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갈릴리 복음이 민중지향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먼저 한국신학계에서 진보적 사회정치신학 운동에 힘을 쏟는 신학운동의 현황을 살피고 그 다음에 민중신학운동을 살피려고 한다. 두 그룹은 대체로 중복되지만 구별된다. 왜냐하면 한국의 ‘민중신학’은 한국적 ‘사회정치신학’의 래디칼한(radical) 한 신학 형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회정치신학의 본격적 태동은 1961년 박정희 군사혁명 이후, 군부세력의 집권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군사정부가 추진하는 반민주주의적, 반인권주의적, 경제성장 제일주의적 정책의 강행이 성서가 증언하는 복음의 자유, 인간 존엄성, 정의로운 평화, 그리고 지속가능한 사회의 비젼에 심각하게 위배되고 충돌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의 사회정치신학 운동에 동참했던 선구자들은, 지금은 대부분 고인이 되었지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12:1)이 있다. 고인이 되신 분들로는 김재준, 김정준, 박대선, 서남동, 문익환, 안병무, 김관석, 현영학, 김찬국교수 얼굴이 떠오른다.
민중신학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도 뚜렷한 한국의 ‘진보신학’ 계열로서 한국적 사회정치신학(Korean socio-political Theology)운동에 힘쓴 신학자들로서 현존하는 인물을 예로 든다면 박순경, 손규태, 노정선, 김창락, 박명철, 황성규, 임태수, 김성재, 유석성, 채수일장윤재, 정재현등을 예로 들수 있다. 현존하는 민중신학자로서는 원로신학자로서 서광선, 김용복교수를 비롯하여 임태수, 권진관, 김은규, 강원돈, 김진호, 류장현, 최형묵, 김영철, 방인성, 김희헌등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눈에 뜬다. 한국 진보신학계열에서 ‘민중지향적 사회정치신학’이 강조하려는 신학적 관심을 아래에서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기독교복음의 본질파악을 위해서, 십자가와 부활사건의 리얼(Real)한 이해를 위해서는 성서연구에서 정치사회적 조명등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본다. 복음이 말하는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한 인간구원과 해방’이 정치사회적 차원에 머문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지만, 정치사회적 현실을 도외시한 해석은 관념적이고 반복음적이 된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순복음교회가 강조해왔던 소위 ‘삼박자 축복의 구원론’과 ‘성장과 풍요의 교회론’을 복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두가지 속성은 ‘공의로우심’(정의)과 ‘긍휼하심’(사랑)인데, 특히 예언자적 성서전통에 의하면 “가난한 자와 눌린자와 포로된자들”(루가 4:18)에게 자유, 해방, 평등, 평화를 선물하는 ‘민중에 대한 우선적 배려’가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특히 민중신학의 강조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장소가 성경, 예배당, 수도원, 크리스챤 형제공동체 못지않게 ‘고난당하는 민중현실’에서 만나라고 강조한다. ‘오클로스 민중론’을 예수와 특별관계로서 세계에 제시함으로써 민중신학은 국내보다도 세계에서 훨씬 높은 관심과 평가를 받았다.
셋째, 민중지향적 사회정치신학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죄성이 개인적인 것만 아니라 집단적 사회구조적 죄성의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구조적 정치경제 악의 실체에 맞서서 ‘선한 싸움’을 하자는 것이다. 현재 전체 지구촌을 덮고 있는 소위 ‘신자본주의 세계질서’를 당연한 것이거나 피 할수 없는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프란체스코교황이 강조하듯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는 것을 강조하고 한국사회 전반에 ‘정의의 실현’을 요청하고 힘써 실천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넷째, 민중지향적 사회정치신학이 ‘오늘의 신학적 아젠다’로서 제시하는 것들은, 철저한 민주주의 실현, 남북의 무기경쟁중단과 외세의존 탈피, 남북 민족의 주체적 화해와 평화통일, 소외된 사회계층에 대한 배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에 대한 비판, 그리고 교회의 사회적 공공성 회복 강조등이다.
(3) 한국적 종교문화신학 운동
한국 진보신학의 세 번째 그룹은 ‘한국적 종교문화신학’을 형성하려는 신학자 그룹이다. 흔히 줄여서 ‘한국문화신학’라고 부르는데 이 신학캠프는 ‘한국민중신학회’와 쌍벽을 이루면서,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한국의 진보신학을 견인해가는 신학운동이다.
일찍이 폴 틸리히는 1920년대초 그가 독일 학계에 데뷔하는 베르린학회에서 「문화신학의 이념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 논문발표에서 그는 문화종교신학의 본질에 대한 고전적 정의를 다음같이 피력한바 있다: “종교는 문화의 알짬(substance)이요 문화는 종교의 표현형식(form) 이다”. 다시말해서 문화의 다양한 장르들 법률, 예술, 문학, 이념, 건축, 그리고 심지어 과학에 이르기 까지, 그 모든 인간의 의미있는 활동의 “깊이 차원”에 종교가 있기 때문에, 사람생명체에 비교한다면 ‘종교’는 정신과 영혼이며 ‘문화’는 신체와 활동이다.
한국 신학계에서 종교문화신학의 발아지역은 장로교보다 감리교 였다. 일찍이 탁사 최병헌목사가 기독교에 접한 이후 한국 전통종교와 기독교와의 관계성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주체적 문제의식을 가졌을 때부터, 소위 ‘복음의 토착화론’에 선구적 역할을 감리교신학교수단 에서 했고, 윤성범, 변선환, 유동식교수등 용기있는 개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대체로 한국의 장로교회 교단은 칼빈주의의 강력한 영향으로 ‘복음의 토착화론’에 소극적이거나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한국적 종교문화신학 운동은 3가지 목적을 갖는다. 첫째, 복음의 빛에 비추어 한국의 전통문화와 종교들을 조명하면서 ‘복음’과 ‘한국전통문화’와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려는 과제를 갖는다.특히 이웃종교들과의 바른 관계정립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둘째, 한국인 크리스챤으로서 복음의 진리를 한국의 문화, 예술, 삶의 표현형식으로 조형(造型)하고 증언하려는 창조적 노력을 의미한다. 예배 전례상의 상징적 표현들, 건축과 미술과 음악의 한국토착적 표현들, 기독교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소설, 연극, 시 작품창작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셋째, 2,000년 그리스도교신학과 동아시아 영성전통과 만남으로서 제3천년 시기의 ‘제3의 눈’의 신학 형성을 지향한다. 헬라적 교부신학, 라틴신학, 게르만 독일신학, 영미신학이 있었듯이,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정신토양 속에서 형성된 ‘제3의 눈’의 신학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한국적 종교문화신학 운동은 종교문화라는 폭넓은 관심영역 때문에, 문화신학학회 정회원만이 아니라 다양한 신학전문 분과 학자들이 참여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성서신학자, 여성신학자, 기독교 사회윤리학자, 정치신학자들이 고루 고루 참여하고 있다. 한국 종교문화신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저술물도 남긴 학자들중 그 일부만 열거하면 유동식, 유재신, 심일섭, 이계준, 김광식, 김경재, 박재순, 이정배, 김영일, 서창원, 김흡영, 이정구, 송성진, 허호익, 이찬수, 손호현, 박일준 교수와 여성신학자로서 특히 차옥숭교수의 무교연구와 이은선교수의 유학연구, 오정숙박사의 다석연구가 돋보인다. 여성신학자들 활동은 ‘여성신학’운동의 항목에서 별도로 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문화종교신학계를 지난 30년간 이끌어온 대표적 학자는 유동식 교수이다. 그의 학술적 공헌은 매우 독창적인데 대표적 저술물로서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풍류신학』, 『신학과 예술의 만남』이 대표적인 저작물이다. 유동식교수가 한국의 종교문화신학 운동에서 끼친 독보적 공헌의 의미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한민족의 종교심성 바탕에 깔려있는 무교 혹은 무속연구를 통하여, 그동안 한국종교사에서의 ‘무교’를 이스라엘 종교사에서 ‘바알신앙’과 동일시해왔던 오해와 갈등을 상당부분 해소 시켰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민의 종교심성의 영성적 원형바탕을 ‘풍류도’로서 밝힘으로서 기독교신앙의 한민족에 수용과정에서 선교과제를 분명하게 밝혀주었다. 셋째, 특히 말년엔 ‘예술신학’을 제창하면서 신학의 최고경지가 예술과의 만남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묵상에서 꽃핀다는 것을 밝혀준다.
한국의 종교문화신학 운동사에서 변선환목사에 대한 감리교단의 ‘파문’은 감리교단의 역사내 부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신학사에서 큰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변교수가 “이웃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발언한 것이 파문죄목의 중요한 한가지 원인이 되었다면, ‘구원’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변교수가 의미하는 내용과 교단의 보수적 정통 교권주의자들의 의미하는 내용사이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라고 본다. 변선환 교수에게서 ‘구원’은 구체적으로 구원받은 종교인들의 생명현상학에서 세가지를 의미했다. 첫째, 자기중심적이던 이기적 실존이 실재(Reality)중심의 해방된 존재로 자유인이 된다. 둘째, 자유인이 된 종교인은 고통 받고 있는 타자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과 함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한다. 셋째,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에 대한 신앙내용에 다양성이 있으나, 공통점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였고 죽음을 넘어선 승리적 삶을 산다.
유동식, 변선환교수의 선도적 문화신학의 과업을 이어받아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종교문화신학 운동을 젊은 세대들과 호흡을 맞추며 크게 활동한 학자는 이정배교수와 감신대를 중심으로한 그 선후배 동료신학자들이다. 『문화와 신학』 정기 학술지를 꾸준히 발행하고 있으며 『한국신학, 이것이다.』(한들출판사, 2006)와 『한류로 신학하기』(동연,2013)를 간행하여 한국문화종교신학회의 과거정리와 미래지평을 새롭게 열어가는 시범을 보였다. 이정배, 김흡영, 박재순 박사를 비롯한 문화신학자들이 동아시아의 종교유산의 토양에 뿌리 박은 한국신학을 정립하려는 역저를 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본다.
한국적 종교문화신학 운동에서 특히 불교와의 대화가 학자들간에는 열매를 조금씩 거두어간다. 우선 한국교수불자연합회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공동주관으로서 붓다와 예수를 상대편 종교인으로서 어떻게 보는가를 시민공개강좌로서 갖고 『인류의 스승으로서 붓다와 예수』(동연, 2006)라는 표제의 단행본으로서 출판된 것은 특기 할만한 일이다. 기독교 학자로서 불교와 기독교 상호관계연구 결실로서 종교학자이면서도 제1급의 신학자인 길희성교수의 연구서는 신학계의 주목을 받아야 한다. 불교계의 전문 학술지 『불교평론』에서 기독교신학자들의 글을 싣는등 학문적 대화는 종요히 계속되어 가고 있다.
천도교, 원불교, 유교, 전통민족종교들과 기독교와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기독교와 불교와의 관계는 그동안 타종교의 가치와 존재를 부정하는 보수적 교회들의 배타적 태도로 말미암아 기독교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선교전선의 약화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진보적 기독교 목회자들이 ‘종교간 대화모임’에 열린자세로 임하며, 특히 생태환경운동이나 사회정의 구현에서 협력관계를 지속하고, 성탄절과 석탄봉축일에 서로 경축하는 따뜻한 마음은 조금씩 증가되어가는 추세여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우주적 보편종교이다. 양대 종교사이의 대화와 협력은 상대방을 정복하려는 것도 아니고 흡수통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양대종교의 특징과 진리증언의 길에 서로 경청하면서 보다 성숙해지려는 것이다. 개신교의 종교신학은 결코 종교혼합론이 아니며 도리혀 종교혼합론은 이웃종교 종교배타론 만큼 위험하고 성숙하지 못한 독선과 독단론이라고 본다.
(4) 여성신학 운동
한국신학계의 진보적 신학 운동의 현황소개에서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여성신학 운동’ 만큼 눈부신 활동과 엄청난 학문적 기여및 사회실천적 공헌을 한 지성집단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보다 자세한 여성신학의 역사와 현황소개는 여성신학협의회에서 간행한 훌륭한 단행본 및 논문들이 있으므로 관심있는 사람들은 참고해야 할 것이다.
한국 기독교 교계와 신학계를 막론하고 소위 ‘보수, 진보’를 구별하는 확실한 판단도 그 교회, 목회자, 그리고 신학자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세계에서 일어난 ‘여성신학 운동’과 1980년대 초기에 그 반응으로 태동한 ‘한국 여성신학’의 소리들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경청하고 받아드리는가의 태도로서 여부로서 구별이 가능하다. 그만큼 진보적 여성신학 운동은 전통적 한국보수교회 안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전통 비판적 주장과 래디칼한 문명비판적 주장들을 담고있기 때문이다. 한국신학계에서 여신학자 협의회가 정식 결성된 해는 1984년이어서 어느듯 30년이 되었지만, 한국 여성신학자들의 활동현황을 살펴보기 전에 ‘여성신학’ 이 지향하는 일반적 특징을 아래의 몇가지로서 먼저 요약하고자 한다.
첫째, 여성신학은 기독교문명사회와 교회공동체 안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권억압이 가부장적 성서해석에 있음을 주장하고 새로운 성서해석을 시도할 것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핵심 주제는 인간으로서 존엄한 여성의 ‘해방’이다.
경전으로서 성경의 문자무오설과 절대권위를 주장하는 보수적 신학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렵겠지만, 여성신학자들은 경전으로서의 성경자체의 형성과 편집과 전승이 ‘가부장적 문화권’ 안에서 이루어진 태생적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성서를 ‘억압과 차별’의 경전으로서가 아니라‘해방과 평등과 자유’의 원천으로서 이해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의 완성자이신‘예수의 마음자리’에서 성서를 읽고, 성서문자에 메이지 말고 성서가 말하려는‘살리는 영’으로 읽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한국 여신학자 협의회가 엮은 『새롭게 읽는 성서의 여성들』(1994), 구약신학자 이경숙의 『구약성서의 여성들』(1994), 신약학자 최영실의 『신약성서의 여성들』(1995) , 그리고 최만자의 『성서와 여성신학』(1995)등이 여성신학자들의 새로운 성서해석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둘째, 여성신학은 교회안에서와 사회에 편만한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부당한 억압구조와 사회와 문명의 성차별적 가부장적 문화구조 해체를 통한 양성평등의 새로운 인간공동체 구성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핵심주제는 여성의 평등권을 담보하는 ‘정의’이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제반 활동영역에서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 무능한 존재, 지배받고 남성에 의해 계도(啓導) 받아야할 존재로 생각하는 일체의 허위의식 지배이데올로기를 철폐하고, 양성 평등 문명사회를 요청하고 투쟁한다. 한국의 여성신학계는 서구사회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국사회에서의 여성폄하적인 노동의 임금차별, 직장의 진급제약, 여성에게 가하는 성의 상품화, 가사노동의 집중과부하등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비인간화 현실을 극복하려는 ‘실천적 여성신학 운동’으로 발전해나갔다. 여성의 ‘해방과 평등’의 아젠다를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여성신학은 민중신학과 파트너쉽을 가지고 발전해가고 있다.
셋째, 한국의 여성신학은 생태계의 위기상황에 주목하고 ‘생태학적 여성신학’의 과제를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중심 주제는 ‘생명의 평화’ 이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 ‘해방’모티브를 중심으로한 기독교계, 여성의 ‘평등’ 주장을 하는 정치사회 인간문명의 맥락을 넘어서, 기독교 여성신학은 오늘날 인류문명이 직면한 자연파괴, 기후붕괴, 생태계의 위기가 성경을 포함한 가부장적 인류종교경전의 잘못해석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세계 지성계는 인류문명이 당면한 자연환경 오염, 기후붕괴, 생태계의 위험문제가, 다른 어떠한 주제들 예들면 경제발전이나 우주과학실험이나, 신무기 개발경쟁보다도 우선순위에 놓여야한다는 점에 한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여성의 비하와 억압은 자연(대지)에 대한 무한 공격적 개발과 관련되고, 생태계의 조화와 순환원리를 무시하는 남성적 문화의 ‘바벨탑 건설 본능’과 관련되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여선신학계의 원로이셨던 고 이우정선생의 고희기념논문집 책이름이 『여성,평화,생명』(경세원,1993)이었다는 것이 상징적으로 여성신학의 지향성을 잘 나타낸다.
넷째, 한국의 여성신학은 외국의 여성신학과 다른 독특한 한민족의 분단상황, 동족간 상잔, 전쟁위협과 무기경쟁을 극복하고 모성의 심정으로 민족의 화해, 협력, 평화통일의 과제를 신학적 의제로 진지하게 삼는다. 중심주제는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이지만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모성’이다.
특히 여성신학의 제1세대들 박순경, 이우정은 여성신학운동의 본질적 과제가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임을 역설하였다. 한국의 진보적 여성신학자들이 여선신학의 긴급한 주제로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의제로 삼는것은 단순히 한국의 일반학계 정치학, 외교학, 군사학등에서 통일문제를 접근하는 관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족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여신학자 선언」(1988)에서 천명한바와 같이, 한민족의 분단을 강요하고, 지속하고, 군비경쟁을 강화하는 모든 어리석은 국제정치적 행위자체가 따지고 들어가면 인류문명의 가부장적 죄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18-19세기 서구열강들의 식민지 쟁탈, 1,2차 세계대전의 국가주의 발호, 2차대전 후의 세계 냉전체제, 근래 한반도를 둘러싼 6자회담의 정체가 모두 가부장주의 정치문화의 열매이다. 힘의 중앙집권을 추구하는 패권주의, 국가주의 경쟁과 보복의 악순환, 군사문화의 창궐,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구입등등은 그 어리석음을 뿌리에서 비판하여 극복하지 않으면 않되기 때문에 여성신학의 중요 아젠다가 된다.
하나님의 모성적 심성의 자리에서 본다면, 어떤 명분을 내걸더라도 전쟁으로 인한 인간살상과 긴장갈등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신학의 중요한 신학적 의제로서 ‘생태학적 여성신학’과 ‘민족평화 통일 신학’은 마침네 신학의 아킬레스건이랄 수 있는 전통적 신관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주장한다. 그동안 서구신학이 설명한 ‘하나님론’이 다분히 가부장적, 남성적, 지배적 힘숭배의 관념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반성이다.
한국의 진보적 여성신학운동은 성서가 증언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무시되거나 잊혀온 ‘하나님의 모성적 속성들’ 예들면 ‘산고의 진통’, ‘기다림과 설득’, ‘차마못하는 마음’, ‘내어줌으로서 만족’, ‘비움으로서 충만’ 등의 속성을 기독교 신관이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 신관은 율법제정자, 질서의 보존자, 인과응보적 심판주, 선악의 재판관, 세계정상의 지배자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관의 혁명은 역동적인 기독교 ‘영성운동’에 창조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신학의 한 흐름인 여성신학자들의 ‘지성집단’의 힘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 놀라운 결실을 맺을 것이다. 필자의 이글은 여성 신학자들의 활동과 논저를 소개할 목적에 있지 않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다만 ‘구름같이 많은 한국의 에스더들’의 면모를 독자들이 감지하도록 하기 위해 필자의 서재에서 발견되는 여성신학자들의 면모를 소개하는데 그친다. 물론 미처 소개못하는 인재들이 더 많다. 이우정, 박순경, 손승희, 안상님, 정숙자, 최만자, 선순화, 장상, 김윤옥, 최영실, 이경숙, 박경미, 김애영, 임희숙, 정미현, 이영미, 강남순, 유춘자, 이현숙, 이문숙, 윤수경,한국염, 김순영, 이숙진, 김정수, 권미경, 명노선(무순) 제씨의 이름이 떠오른다.
(5) 생태학적 신자연신학 운동
한국의 진보신학 운동의 다섯번째 캠프는 생태학적 신자연신학 운동이다.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이해를 본질로 하지만, 일반적인 현대 물리학이나 천문학등 과학일반의 새로운 지식에 대한 신학적 응답보다는 그 핵심이 지구촌이 당면한 ‘생태학적 위기’(ecological crisis)에 대한 신학적 응답으로서 자연신학적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전통적 ‘자연신학’(natural theology)과 한국 진보신학 운동의 한 갈래로서 ‘신자연신학’( new theology of nature)은 다음같은 차이가 있다. 전통적 ‘자연신학’은 계시론과 신 인식론에 관련된 개념으로서, 자연질서와 리성을 포함한 일반자연을 매개로하여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의 이론이었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한 초자연적 ‘말씀계시’(성서) 만이 아니라, 자연도 하나님의 또다른 말씀이라는 긍정적 생각이 그 단초를 이룬다. 특히 중세 스콜라신학 체계에서 ‘우주론적 신존재증명’(cosmological arguments)은 전형적인 전통적 ‘자연신학’의 한 사례이다.
20세기 초, 칼 바르트와 에밀 부룬너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자연신학 논쟁’도 인간성의 ‘전적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응답능력이 인간성안에 존재하느냐 않느냐의 논쟁이므로 전통적 ‘자연신학’ 개념에 속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새롭게 등장한 ‘신자연신학’은 계시론이나 신인식론의 가능성 여부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뉴톤-데카르트적 기계론적 자연이 아니라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 진화적 자연, 새로움을 생성하고 창발시키는 자연, 자기조직능력과 자기조절능력을 자신 안에 갖춘 유기체적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지와 씨름하는 신학적 통찰이 관련되어 있다.
한국 진보신학계의 한 갈래로서 ‘생태학적 신자연신학’의 의제와 특성들을 3가지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보적 ‘신자연신학’ 운동은 종교(신학)와 자연과학과의 관계정립에서 상호 배타적 관계모델이나 평행적 독립모델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대화모델과 상호 통합모델까지를 추구한다.
이언 바버(Ian Barbour)는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 책안에서 인류문명사속에서 자연과학과 종교간의 만남의 관계유형을 4가지로 이론으로서 대별하여 설명하였다: 갈등이론, 독립이론, 대화이론, 통합이론이 그것이다. 한국 기독교가 성서무오설에 입각하여 진화론을 부정하고 생명 종들의 독립적 창조론을 주장할 때,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는 갈등모델에 해당한다.
창세기 창조설화를 자연과학 지식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창조의 목적과 근원과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설화로서 이해하고, 객관적 사실세계(fact) 탐구를 주업무로 하는 자연과학과 창조의 궁극적 의미와 뜻을 탐구하는 주관적 가치세계(meaning)를 탐구하는 정신과학을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신학자들은 독립이론에 해당한다. 칸트 이후 개신교 신학자들의 거성들( 불트만, 바르트, 틸리히, 부룬너, 라인홀드 니버)은 사싱 독립모델의 캠프에 속한 신학자들이다.
그러나 세계 자연과학계와 신학계는 1960년 이후, 이전의 독립이론에 안주 할 수 없게 되었다. 과학과 종교(신학)의 관계성 정립에서 대화이론과 통합이론이 활발하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세계 지성계의 흐름을 한국 신학계에 소개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신진 신학자들은 테드 피터스(Ted Peters)가 엮은 책 『과학과 종교: 새로운 공명』을 우리말로 공동번역한 5명의 신학자들이다. 김흡영, 배국원, 윤원철, 윤철호, 신재식, 김윤성 교수가 수고했는데, 특히 이분야에서 김흡영교수의 선도적 노력이 컸다. 문화신학자 이정배교수는『기독교 자연신학』을 저술하고 죤 폴킹혼(John Polkinghorne)의 『과학시대의 신론』을 번역하였으며,김흡영교수는 『현대과학과 그리스도교』를 저슬했다. 강성열교수는 『기독교 신앙과 카오스 이론』을 저술했고, 심광섭교수는 『기독교신앙의 아름다움』 이라는 책을 통해서 현대과학과 신학의 새로운 대화 곧 신자연시학을 연구발표 하였다.
둘째, 한국의 진보신학 운동중 ‘신자연신학’ 운동의 뚜렷한 목표는 기독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다시말해서 어떤 형태이든 진화론을 부정하는 기독교계의 ‘창조론’을 극복해야할 21세기 신학적 과제라고 본다.
위 주제를 가지고 특별히 노력을 경주한 진보신학자 신재식 교수는 최근 『예수와 다원의 동행』을 출판하여 기독교신앙과 진화론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기독교신앙이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보다 성숙한 신앙이 될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신재식은 이 책에서 기독교신앙과 진화론과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쟁점들과 이론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신자연신학을 이끌어가는 한국 진보신학계 중진 신학자로서 면모를 보인다.
신자연신학의 주제중 특히 진화론과 전통적 창조신앙과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돕는 존 F. 호트(John F. Haught)교수의 명저 『다윈 이후의 하느님: 진화의 신학』을 박만교수가 번역하였는데, 그 주제에 관하여 신선한 통찰을 우리들에게 선물한다. 이 책에 관하여 서평자 그리핀이 말하는대로 “ 이 책을 통하여, 우주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며, 창조주는 진화로 인해 제약을 받는 전능하신 설계자가 아니라 가능성과 가치, 새로움, 정보,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는 우주적 원천으로 이해된다”.
셋째, 신자연신학 운동은 실천적 시급한 지구촌 문제의식과 더불어 생태학적 영성과 신학의 새로운 재구성을 힘주어 주장한다.
한국 기독교의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구가 환경파괴문제및 기후붕괴, 그리고 생태계 교란 등으로 위기상태에 직면해 있다는 의식에서는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응책에 관혀 진보신학이 보수신학과 다른점은 생태환경 파괴의 위기 극복은 단순히 ‘개인적 경건윤리 의식’을 고취함으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 있다. 다시말하면, 정통적 신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특히 생태계 안에서 인간의 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정통적 기독교 패러다임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개인윤리적 생활에서, 근검절약, 자원의 재활용, 자연환경보호운동등의 실천으로서만은 않된다는 인식을 갖는다.
생태학적 윤리, 혹은 생태학적 영성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이유는 지금까지 무엇이 선하고 옳은 일인가의 윤리적 판단기준은 인간과 하나님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관계에서 정의, 진실, 정직, 평등, 사랑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및 생태계와의 관계가 고려되지 않는 바른 도덕적 삶, 영적 삶이란 지극히 부분적이거나 심지어 반윤리적, 비영성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자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국 진보신학계의 생태신학에 대한 비상한 관심은 한국교회환경연구소가엮은 책 『현대 생태신학자의 신학과 윤리』에서 15명의 신학자들이 세계 생테신학의 동향을 한국에 소개하였다. 이 책안에서 세계적 생태신학자들 예들면 제이 맥다니엘, 디터 헷셀, 다글라스 할, 샐리 매페이그, 버나드 앤더슨, 로즈마리 류터, 매튜 폭스등이 소개되었다.
특히 생태학적 신학에 관한 한국 기독교계의 각성과 응답을 촉구하면서 여러신학자와 출판사가 노력하지만, 한국기독교연구소의 김준우박사의 열정에 힘입어 이 분야의 좋은 논저가 한국 교계에 소개되었는데 그 공헌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진보신학의 여성신학운동과 생태신학 운동의 배경에는 현대 기독교 신관에 대한 새로운 재성찰이 요청되는데, 과정신학의 신관은 다양한 측면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과정신학을 한국 진보신학계에 소개한 학자들로서 류기종, 김상일, 장왕식,김희헌, 전철, 정강길 등의 공헌이 있었다.
생태학적 신학운동캠프에 속한 신학자는 아니지만,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한국사회에서 이끌어가는 평신도 크리스챤 과학자인 장회익 교수의 명저 『삶과 온생명』은 특기할만한 저술물로 주목을 받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책안에서 저자는 전통적인 인간중심주의 윤리학을 극복하고 동시에 동양사상이 흔히 빠지는 범신론적 만물동체주의(萬物同體主義)에도 빠지 아니하고, 전체지구를 '유기체적 한 몸'으로 볼 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자리매김은 '중추신경계'에 해당한다는 은유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4. 한국 진보신학의 내일의 과제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 진보신학의 운동현황을 간략히 살펴보면서, 진보신학 캠프안에 흐르는 5가지 색깔을 그 신학적 지향성과 특징들이 무엇인지 대략살펴 보았다. 한국 진보신학의 내일의 과제라는 것은 앞으로 10년 혹은 30년 을 내어다 보면서 미래의 과제를 살피자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언제나 현제 속에 이미 다가오고 있는 것이며, 내일의 과제는 곧 오늘의 과제이다. 특히 힘써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미쳐 수행하지 못한 신학적 책임을 각성하자는 의미에서 내일의 과제라고 말한 것 뿐이다. 진보신학의 개념규정과 그 현황 흐름을 각각 5가지 언급했으므로, 내일의 전망과 과제도 5가지를 간추려 살피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첫째, 한국의 진보신학 운동들은 아직 교회론을 충분하게 담론화 하지 못했으며, 21세기 세속화 물결과 포스트모던사회 속에서 새로운 교회론의 치열한 담론화가 요청된다.
기독교 신학이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 모인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들의 믿는 바를 서술하고 세상에 증언하며 새로운 세상 상황 속에서 변증하는 과제를 지닌다. 줄여말하면, 신학이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교회답게 봉사하는 책임을 갖는다. 신학이란 본질적으로 교회공동체의 공동작업인 것이지 개인 신학자의 기독교에 관한 소견이거나 특정 지식인 집단의 기독교철학 작업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본의아니게 한국의 진보적 신학운동들은 1960년대 이후, 급진적으로 변화된 시대상황과 한국적 ‘삶의 자리’에서 보다 복음적이고 책임적 신앙고백과 실천적 참여를 하는 과제앞에서 일차적으로 기존 전통신학의 굳어지고 시대착오적 신학틀과 담론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과제에 복무하지 않으면 않되게 되었다. 그리고. 진보적 신학운동을 펼처갔던 신학자들은 ‘굳건한 정통신학’에 안주하려는 보수적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충분하게 설득하지 못하고, 기존교회 울타리 밖에서 그리고 진보적 신학집단들 학회활동 안에서 주로 신학운동을 펼쳐간 것이다.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교회’, ‘선교의 아방가르로서 교회’, ‘민중운동으로서의 교회’, ‘전위적 제자직을 수행하는 교회’, ‘평신도중심의 만인 사제직 교회’, ‘자연과 세속사회를 제단으로 삼는 범성례전적 교회’ 등등 다양한 모습으로서의 제도적 전통교회의 형태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감성과 윤리성과 지성이 아울러 충만한 <21세기에 걸맞는 영성적 제3교회> 시대를 아직 열지 못했다. 이것이 제일 첫 번째 과제이다.
둘째, 진보신학의 다음과제는 신학을 진보적 신학자들 집단의 전유물로서 생각하거나 전문적 신학써클 안에서만 논하는 학문적 엘리트주의를 극복하고, ‘진보신학 운동의 대중화, 소통강화’라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대중화는 학문성의 하향조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교회의 적지않는 지성인 신도들은 기존교회의 설교와 신학내용에 만족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진보적 신학서적 독서를 통하여 신학적-영적 갈증을 메꾸어오고 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열린강좌’가 시대의 흐름이듯이 ‘감성과 지성이 함께 숨쉬는 열린 신학강좌’를 기획하여 귀중한 한국진보신학 써클이 지닌 집단지성을 ‘생명의 떡과 포도주의 잔치’로 펼쳐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통은 세상의 다른 학문들과 학제간 소통, 기독교 안에서 보수신학과 진보신학과의 소통을 과제로 갖는다. 평화통일 신학은 남북한의 역사적 경험이 융합된 소통의 신학을 요청한다.
셋째, 한국의 진보신학만이 아니라 세계신학의 최대화두는 계몽주의 시대 인간 역사의 경험, 아우슈비치 홀로코스트, 그리고 지구촌의 생태계 위기를 겪으면서 ‘하나님 이해’를 새롭게 하는 일이다.
신학은 학문이름 그대로 결국은 ‘신론’이 중심을 이룬다. 기독교의 위기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위기이거나 ‘예언자와 사도들이 증언한 성서적 진리’의 위기가 아니라, 그 해석과 이해의 틀을 새롭게 재해석하지 못하고 기존교리에 안주하는데서 오는 위기이다. 적어도 “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 하시고, 만유안에 계시는 한 하나님”(엡4:6) 고백에 걸맞는 새로워진 하나님론을 말해야 할 과제를 지닌다. 다시말하면, 새로운 시대의 기독교 신관은 만유를 초월하시는 주 하나님, 들꽃과 고난당하는 피조물의 고통에 참여하시는 내재적 하나님, 그러나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창발하면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과정적 하나님 체험이 동시에 살아나는 신관을 요청한다.
넷째, 한국의 진보신학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종교개혁신학 원리의 총체적 메타크리틱’ 과제를 숙제로 갖는다.
흔히 종교개혁의 3대모토로서 ‘오직 믿음만, 오직 성서만, 오직 은총만’의 신학원리를 강조한다. 본래적인 의미에서라면 언급한 종교개혁 정신의 3대원리는 항구적 진리를 갖는다는 것을 우리는 고백한다. 그러나, 지난 500년을 지나오는 동안, 종교개혁이 3대원리는 많은 신학적 문제를 제기해왔다는 것을 개신교 교회사에서 증명한다. 특히 개신교 교회안에 영성수행의 약화, 성례전 신학의 약화, 성서해석상의 분파주의, 교회의 통일성, 거룩성, 공공성의 약화를 초래했다.
다섯째, 세계신학사 지평에서 볼 때, 한국 진보신학은 동아시아 정신적 영성토양에 뿌리내린 ‘동아시신학’(East-Asian Theology)을 형성하여 세계 그리스독교 신학사에 공헌한 과제와 사명을 갖고 있다.
한국의 진보신학 운동의 역사는 짧고 각각의 관심영역으로 분화되어 시대적 과제를 수행할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구미신학의 역사가 각각 위대한 복음진리를 그들 시대와 문화역사적 토양 속에 육화시켜 독특한 신학전통을 창출해 냈다면, 동아시아 문화역사 토양에서 그 가능성은 훨씬 더 큰 것이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문화권 안에는 불교, 유교, 노장철학, 한국의 종교등과 더불어 아시안인들의 고난경험과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등 이분법적 양자택일의 실패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진보신학은 그 과제를 피할수 없는 세계신학사적 과제로서 인식하고 있다. (탈고 2014.9.23)
[논문 한글 요약]
이 논문은 한국의 진보신학의 동향과 그 과제를 개론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진보신학’이라는 명칭은 한국의 교계나 신학계에서 ‘보수신학’이라는 표현에 대비하여 사용하는 호칭을 일컫는데 다음같은 신학함의 경향성을 공통으로 한다: (i)세계 신학계의 비평적 성경연구 방법의 수용 (ii) 복음과 상황과의 변증법적 관계 (iii)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신학운동 참여 (iv) 토착적 한국신학 형성추구 (v) 십자군의 영성을 지양한 십자가의 영성을 추구함이 공유하는 정신이다.
오늘날 한국의 신학계에서 진보적 신학운동으로서는 다음같은 다섯가지 신학써클을 통하여 진보신학의 현황과 미래과제를 살펴보았다: (i) 통전적 조정신학 운동 (ii) 민중지향적 사회-정치신학 운동 (iii) 종교-문화신학 운동 (iv) 여성신학 운동 (v) 생태학적 자연신학 운동이 그것이다.
한국의 진보신학 운동들이 안고 있는 내일의 과제들은 진보신학에 걸맞는 교회론의 강화, 진보신학운동의 대중화, 21세기 지식인들이 고백하는 하나님론의 새로운 정립, 그리고 종교개혁 정신의 근본적 재성찰, 그리고 세계신학계에 공헌해야 할 동아시아 영성신학 정립으로 보았다.
(중요 어휘) : 성서비평학, 오늘의 구원, 생태학적 여성학, 우주신인론적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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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영문요약]
This essay is a bird's eye view of Korean Progressive Theology, which is a common title in contrast to Korean Conservative Theology. In a broad sense Progressive Theology in Korea shows some marked trends toward doing theoloy : acceptance of biblical criticism , dialectical method between gospel and situation, commitment to the ecumenical movement of WCC, through investigation into indigenous theology, and pursuit for spirituality of crucifixion.
For making a general survey of Progressive Theology in Korea, this essay classifies Progressive Theology of Korea into five large groups: (i) theology of modulation (ii) minjung oriented socio-political theology (iii) indigeneous religio-cultural theology (iv) feminist theoloy (v) eco-theology of nature. And some specific chracters and tendencies of each theological movements are described comprehensively.
At the end of this treaties, the urgent tasks of Progressive Theology for today as well as future are suggested to theologians of five groups above mentioned: formation for update ecclesiology corresponding to post-modern world, driving of progressive theology to win a public support, proposal of new doctrine of God overcoming a supernatural God of orthodoxy protestants, and shaping of new christian spirituality deep rooted in east-Asian fertile soil.
(key words) Biblical criticism, liberation, salvation of Today, eco-feminism, cosmotheandric spiritu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