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8

공멸의 지표 GNP‧GDP와 공생의 지표 GNH 유정길


Yoo Jung Gil
22 August 2019 ·



공멸의 지표 GNP‧GDP와 공생의 지표 GNH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성장‧발전‧진보의 직선적 패러다임, 공멸의 지표 GNP


인류는 그동안 발전과 성장, 진보를 추구해왔다. 그 특징은 정신보다 물질을 중심에 두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는 직선적 발전 패러다임이다. 무한한 성장이 진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고 등장한 사회주의도 생산력의 고도화, 즉 물질적 풍요가 진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뉘는가? 역시 생산(Product)이다. 그리고 그것을 숫자로 표현한 지표가 GDP와 GNP다. 생산을 많이 하는 나라일수록 앞선(先) 나라이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뒷선(後) 나라가 되어 모든 국가가 1위부터 꼴찌까지 서열이 매겨진다. 한때 우리나라는 11위를 했다고 뿌듯해 했고, 15위로 밀렸다고 불안해하기도 했다.

생산을 많이 한다는 말은 곧 소비를 많이 한다는 말이며, 그만큼 폐기를 많이 하는 나라를 의미한다. 미국 같은 앞선 나라가 표준모델이 되어 30년 또는 10년 뒤졌다고 채근하며 뒷선 나라들은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선진국들의 자원소비가 기후변화라는 전지구적인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이제까지 척도가 된 GNP는 인간을 절멸로 이르게 한 어리석음의 지표였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유한한 자원을 무한으로 알고 살아온 어리석음

오늘날 세계 70억 인구의 5% 밖에 안 되는 미국이 전세계 자원을 23% 정도 소비하고 있다. 또한 20%의 잘사는 국가들이 세계 화석연료를 83%나 사용한다. 거꾸로 말하면 80%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17%의 화석연료를 나눠 쓰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환경문제는 마땅히 83%의 화석연료를 소모하는 20% 잘사는 나라들의 책임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미국와 유럽, 일본, 한국이 이렇게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도 절멸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80%의 가난한 나라들의 적은 자원소비 덕분이다.

선진국의 성장논리 핵심은 ‘유한한 자원’을 ‘무한한 것’이라고 착각해 만들어졌다. 20%의 소수국가가 누리는 지금의 풍요를 시간간격을 두고 언젠가 인류 모두가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자원이 무한하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깨닫게 됐다. 실제의 자원은 당연히 무한하지 않다. ‘하나뿐인 지구’라는 말은 곧 그 유한성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잘사는 국가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써야할 자원을 빼앗아 풍요를 누리고 있다. 더 나아가 미래 세대들이 써야할 자원까지 남김없이 빼앗아 쓰고 있는 셈이다.

인류 희망의 지표 GNH

이처럼 인간을 유토피아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한 국민총생산(GNP)이라는 지표가 반대로 우리를 디스토피아(Dystopia)로 끌고 온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깨달음은 새로운 지표를 찾게 됐다. 그래서 행복과 발전의 프레임을 다시 짜기 위해서 나온 지표가 Green GNP, 참진보지수(GPI Genuine Progress Indicator), 지구행복지수(HPI Happy Planet Index), 국민행복지수(GNH Gross National Happiness)다. 이중 가장 현실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1974년 히말라야의 작은 불교국가 부탄의 국왕이 1974년 제시했던 국민행복지수(GNH)다. 최근 OECD를 비롯해 프랑스나 일본 등의 나라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이 GNH를 지속가능한 발전 지표로 적용하기 위해 개발 중이다.

부탄은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발전 ▲생태계의 보전과 자연환경 회복 ▲전통과 문화의 보호 ▲좋은 통치와 민주주의라는 네 가지를 중요한 정치이념으로 한다. 그리고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기보다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며 강대국이 되려하지 않고 근대화를 서두르지 않는다. 교육과 의료는 모두 무료이며 농업중심의 자립국가를 기반으로 지역이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지수(GNH Index)는 9개 영역, 33개 지표, 124개 변수에 대한 충족도를 점수화해 측정한다. 그래서 국민 행복의 정도를 4개 그룹으로 나누어, 50% 미달하는 사람은 불행, 50-66%에 속하는 사람은 좁게 행복, 66-77%에 속하는 사람은 넓게 행복, 77% 이상은 매우 행복으로 분류한다.

이제는 더 이상 선(先)진국과 같은 발전방식은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하는 발전방식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선진국’이라는 표현 대신 ‘소수세계’라는 표현을 쓰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한 가난한 나라들의 삶이 자연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보편적인 삶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후진국’이라는 말 대신에 ‘다수세계’로 바꾸어 부르자는 제안이 지지를 얻고 있다. 기후위기시대, 우리는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결정해야 하며 그에 따라 지표를 새롭게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길에서 살길을 찾을 수 있다.